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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026. 성스러운 구함의 경(Ariyapariyesanā Sutta)

실론섬 2016. 4. 4. 16:14

MN026. 성스러운 구함의 경

Ariyapariyesanā 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사왓티로 탁발을 가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아난다 존자를 만나러 갔다. 만나러 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는 세존을 친견하여 설법을 들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가 세존을 친견하여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다면 존자들은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으로 오십시오. 세존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시고 탁발에서 돌아와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동쪽 숲[東園林]의 녹자모 저택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동쪽 숲의 녹자모 강당(뿝바라마의 미가라마뚜 저택)으로 가서 낮 동안을 머무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셔서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뿝바꼿타까로 목욕을 가자."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동쪽 숲[東園林, Pubbārāma]은 사왓티의 동쪽 대문 밖에 있는 원림이다.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시면서 낮 동안에는 이 동원림에서 지내셨다고 한다.(DhpA.i.413; MA.i.369) 바로 이곳에 위사카(Visākhā)가 세존과 승가를 위해서 본경의 녹자모 강당(Migāramātu-pāsāda)을 건립하였다.
*녹자모 강당(Migāramātu-pāsāda)은 위사카(Visakhā)가 지은 강당이다. 그녀는 상인이었던 그녀의 남편 미가라에 의해 어머니의 대접을 받았기 때 문에 미가라마따(Migāramātu, 녹자모, 鹿子母)라고 불렸다.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위사카의 남편 미가라는 처음에는 니간타(Nigaṇṭha)를 따르던 신도였는데, 나중에 그의 아내 위사카의 설득으로 휘장 뒤에서나마 세존의 설법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내에게 너무도 감사하여 '당신은 오늘부터 나의 어머니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위사카라는 이름 보다는 미가라의 어머니(미가라마따, 鹿子母)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MA.ii.296; DhpA.i.387; AA.i.220)

2.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뿝바꼿타까로 목욕을 가셨다. 뿝바꼿타까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서 가사 하나만을 입고 몸을 동쪽을 향하여 서 계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이 멀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은 상쾌하고,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은 편안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연민의 마음을 일으켜 라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으로 가시면 좋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으로 가셨다. 그때 많은 비구가 법담을 나누며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에 모여 있었다. 세존께서는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문밖에 서 계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 헛기침을 하시며 문을 가볍게 두드리셨다. 그 비구들은 세존께 문을 열어드렸다. 세존께서는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에 들어가셔서 마련해 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슨 이야기를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모여 앉았는가? 그대들 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한 법담을 나누고 있었고 그때에 세존께서 들어 오셨습니다."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법담을 위해 모인 것은, 비구들이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일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오직 두 가지 할 일이 있으니,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3.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라는 두 가지 구함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태어남의 법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늙음의 법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병듦의 법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죽음의 법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슬픔의 법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오염의 법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하인과 하녀가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금. 은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집착의 대상들)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탐착하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태어남의 법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하인과 하녀가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금. 은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탐착하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늙음의 법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하인과 하녀가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금. 은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탐착하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병듦의 법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하인과 하녀가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금. 은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탐착하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죽음의 법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하인과 하녀가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금. 은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탐착하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슬픔의 법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하인과 하녀가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금. 은이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번뇌의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탐착하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번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번뇌의 법을 구한다."

 

4.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성스러운 구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태어남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위험을) 보아서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인 열반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병듦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죽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슬픔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여기 어떤 사람은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오염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구함이다."

 

5. "나도, 비구들이여, 깨닫기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자신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태어남의 법을 구하고, 자신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늙음의 법을 구하고, 자신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병듦의 법을 구하고, 자신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죽음의 법을 구하고, 자신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슬픔의 법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오염의 법을 구했다.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나는 자신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태어남의 법을 구하고, 자신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 자신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 자신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 자신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 자신이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오염의 법을 구하는가? 나는 자신은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이러한 태어남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이러한 늙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이러한 병듦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병듦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이러한 죽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죽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이러한 슬픔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슬픔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이러한 오염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보아서 오염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해야겠다.'라고."

 

6.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젊은 청년이 되어 한껏 치장하고 새까맣고 윤기 흐르는 머리 나풀대며 즐길것 많던 청춘기에, 부모님과 친지들을 슬픔에 몰아넣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노란 옷을 입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런 나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유익[善.선]인지를 구하고 위없는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라라 깔라마시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비구들이여, 알라라 깔라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익혔다. 비구들이여, 나는 스스로 아는만큼 입을 열고 말을 통해 법에 대한 앎과 확실함을 말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알라라 깔라마는 단지 확신과 믿음만으로 '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라고.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알라라 깔라마시여, 존자께서는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것입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라라 깔라마 존자시여, 존자께서는 이렇게(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까?"

"도반이여, 나는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알라라 깔라마 존자시여, 나도 역시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존자와 같은 분이 우리의 동료 수행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큰 축복입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그 법을 그대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처럼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압니다. 이와 같이 그대는 나와 같고, 나는 그대와 같습니다. 오십시오, 도반이여. 우리 둘이 함께 마물면서 이 대중들을 이끌어 나갑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의 스승이였던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나를 크게 공경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이 법은 염오(싫어하여 떠남)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단지 무소유처에 태어남으로 인도할 뿐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을 싫어하여 그곳을 떠났다.

 

7. "비구들이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善.선]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는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웃다까 라마뿟따시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비구들이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익혔다. 비구들이여, 나는 스스로 아는만큼 입을 열고 말을 통해 법에 대한 앎과 확실함을 말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단지 확신과 믿음만으로 '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웃다까 라마뿟따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라고.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다.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웃다까 라마뿟따시여, 존자께서는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것입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웃다까 라마뿟따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웃다까 라마뿟따 존자시여, 존자께서는 이렇게(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까?"
"도반이여, 나는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웃다까 라마뿟따 존자시여, 나도 역시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존자와 같은 분이 우리의 동료 수행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큰 축복입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그 법을 그대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처럼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압니다. 이와 같이 그대는 나와 같고, 나는 그대와 같습니다. 오십시오, 도반이여. 우리 둘이 함께 마물면서 이 대중들을 이끌어 나갑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의 스승이였던 웃다까 라마뿟따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나를 크게 공경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이 법은 염오(싫어하여 떠남)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단지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남으로 인도할 뿐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을 싫어하여 그곳을 떠났다.

 

8. "비구들이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善.선]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는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마가다 지방에서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쎄나니가마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고요한 숲과 유유히 흐르는 깨끗한 강과 아름다운 강기슭과 근처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땅은 풍요롭고 숲은 상쾌하다. 유유히 흐르는 강은 맑고, 강기슭은 아름답다. 근처에는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참으로 이곳은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자제들이 정진하기에 적당한 곳이다.'라고.

 

9. "그런 나는, 비구들이여, 자신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태어남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본 뒤에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늙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본 뒤에 늙음의 법이 없는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늙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우간안온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병듦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본 뒤에 병듦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병듦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죽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본 뒤에 죽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죽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슬픔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본 뒤에 슬픔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슬픔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오염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염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오염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의 법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증득했다.

나에게 앎과 봄이 생겼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고.

 

10.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탐욕을 즐기고 탐욕을 좋아하고 탐욕을 기뻐한다. 탐욕을 즐기고, 탐욕을 좋아하고, 탐욕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지,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는 어렵다. 또한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의 근거를 완전히 놓아버림, 갈애의 부서짐, 탐욕의 떠남, 소멸인 열반을 보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법을 설한다 해도 저들이 내 말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만 피로하고 나만 불편해질 것이다.'라고. 그때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에게 어렵게 증득한 법을 설하는 것이 이제 필요할까?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 법을 깨닫기란 실로 어렵다. 
 흐름을 거스르고 독창적이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법을
 어둠의 무더기에 덮이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한다.'라고.

 

11.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생각할 때 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주저함으로) 기울었다. 그때,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의 일으킨 생각을 알고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경우에도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세상은 타락할 것이고, 세상은 파멸할 것이다.'라고.
그러자,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 그런 짧은 시간 사이에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 옷을 입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채 나를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선서께서는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거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타락할 것입니다. 그 법을 이해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일찍이 마가다에 오염된 생각 때문에 청정하지 못한 법이 나타났지만,  
 그대들은 이제 때 없는 분이 깨달은 불사의 문을 여는 법을 들으십시오.

마치 산 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의 사람들을 두루 보는 것처럼,
현자시여,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분이시여, 그와 같이 법으로 충만한 궁전에 올라 
슬픔을 제거한 분께서는 슬픔에 빠져있고 태어남과 늙음에 고통받는 저들을 살펴주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영웅이여, 승리자여, 대상(隊商)의 지도자시여, 허물 없는 분이시여,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십시오.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12.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범천의 간청을 충분히 알고서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깨달은 이의 눈[佛眼]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다.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중생들도 있고, 많이 오염된 중생들도 있고, 근(기능)이 높은 중생들도 있고 둔한 중생들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중생들도 있고 악한 중생들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중생들도 있고 어려운 중생들도 있으며, 그리고 저 세상(내세)과 비난(죄악)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중생들, 저 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지 않고 지내는 중생들도 보았다.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있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속에서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의 표면까지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 물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당당하게 서서 물에 젖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중생들도 있고, 많이 오염된 중생들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중생들도 있고 둔한 중생들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중생들도 있고 악한 중생들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중생들도 있고 어려운 중생들도 있으며, 그리고 저 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중생들, 저 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지 않고 지내는 중생들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들에게 불사(열반)의 문은 열렸다.귀를 가진 자들은 믿음을 버려라(삿된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연민하지 않는 생각을 가졌던 나는 사람들에게 잘 실천되고 뛰어난 법을 설하지 않았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만들었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그곳에서 사라졌다."

 

13.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 수 있을까?'라고.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알라라 깔라마는 현자이고 슬기롭고 현명하여 오랫동안 눈에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러자, 비구들이여, 천신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했습니다.'라고.

그러자 비구들이여, 내게도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을 했다.'라는 지(앎)와 견(봄)이 일어났다.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알라라 깔라마는 크게 잃었구나!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즉시 알았을 것이다.'라고.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 수 있을까?'라고.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현자이고 슬기롭고 현명하며 오랫동안 눈에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러자, 비구들이여, 천신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했습니다.'라고.

그러자 비구들이여,  내게도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을 했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크게 잃었구나! 그가 이 법을 들었다면 즉시 알았을 것이다.'라고.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알 수 있을까?'라고.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용맹정진을 할 때 다섯 명의 비구들이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면 어떨까? 그들은 이 법을 즉시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다섯 비구들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라고.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다섯 명의 비구들이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빠다나의 미가디야(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우루웰라에서 충분히  머물고는 바라나시로 출발했다."

 

14. 비구들이여,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가 가야 강과 보리수 사이에 큰 길을 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아주 맑습니다. 피부색은 청정하고 빛이 납니다. 벗이여, 그대는 어느 분께로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그대는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나는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모든 것에서 승리한 자, 일체를 아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일체를 버리고, 갈애가 다하여 해탈했습니다.
누구를 스승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스승도 없고 나와 같은 이도 없으며
인간과 천상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도 없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아라한이고, 나는 위없는 스승이며

유일한 정등각자이고, 모든 번뇌가 다한 자이고, 적멸을 이룬 자입니다. 
나는 법의 바퀴[法輪]를 굴리기 위해 까시로 갑니다.
나는 눈먼 자들의 세상에서 불사(不死)의 북을 울릴 것입니다.'

 

'벗이여, 그대가 선언한 바와 같이 그대는 무한한 승리자라고 동의하고 인정합니다.'
'번뇌의 부서짐이 성취된 나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일체의 악한 법들은 나에게 정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빠까여, 나는 승리자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비구들이여,  그 아자와까 [유행승]인 우빠까는 '벗이여, 그럴 것입니다.'라고 말하고서 머리를 흔들면서 다른 길로 떠났다."

 

15. "비구들이여, 나는 차례대로 유행하여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미가디야(녹야원에) 있는 다섯명의 비구들을 찾아갔다. 비구들이여, 다섯 명의 비구들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서로 간에 의견을 맞추었다.

'도반들이여, 저기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습니다. 그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노력을 포기하고 풍족한 생활에 젖어 있습니다. 그가 오면 아무런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서지도 말고, 그의 발우와 가사를 받아주지도 맙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원한다면 앉을 수는 있도록 자리는 마련해줍시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자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다섯 명의 비구들은 그들 스스로의 합의를 지킬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마중 나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자리를 마련하고, 또 다른 사람을 발 씻을 물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도반이여.'라고 말을 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를 이름으로 불러서도 안되고, '도반이여.'라고 불러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正等覺者]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우려라. 불사(不死)는 성취되었다.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말하자 다섯명의 비구들은 내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행동과 그런 실천과 그런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이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풍족하게 살고 노력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삶으로 되돌아 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을 성취하겠습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풍족하게 살지 않고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치스러운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우려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번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두 번째에도  다섯 비구는 내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행동과 그런 실천과 그런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이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풍족하게 살고 노력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삶으로 되돌아 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을 성취하겠습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풍족하게 살지 않고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치스러운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우려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번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세 번째에도 다섯 비구는 내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행동과 그런 실천과 그런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이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풍족하게 살고 노력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삶으로 되돌아 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을 성취하겠습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전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존자시여.'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우려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나는 가르친다. 나는 법을 설한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비구를 설득하고 확신시킬 수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두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세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세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함께 먹었다. 비구들이여, 세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두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두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함께 먹었다.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가르침을 받아, 자신들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태어남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늙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알아 늙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늙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병듦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병듦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병듦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죽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죽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죽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슬픔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슬픔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슬픔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슬픔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번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번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번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번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그들에게 앎과 봄이 생겼다.

'우리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고."

 

16.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의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횐락을 야기하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횐락을 야기하는,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횐락을 야기하는,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횐락을 야기하는,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횐락을 야기하는,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의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탐착하고 마음을 빼앗기고 탐닉하고 잘못됨을 보지 못하고 그것에서 벗어남에 대한 지혜를 갖추지 못한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그들은 불행을 만났고 고통에 처했고 사악한 마라(빠삐만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라고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숲에 사는 사슴이 올가미에 걸려 쓰러져 있을 것이다. 그는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냥꾼이 오더라도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없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들 다섯 가지의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탐착하고 마음을 빼앗기고 탐닉하고 잘못됨을 보지 못하고 그것에서 벗어남에 대한 지혜를 갖추지 못한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그들은 불행을 만났고 고통에 처했고 사악한 마라(빠삐만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라고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탐착하지 않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탐닉하지 않고 그것에서 벗어남에 대한 지혜를 갖추어서 구족하면, '그들은 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고통에 처하지 않았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숲에 사는 사슴이 올가미에 걸리지 않았고 누워있을 것이다. 그는 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고통에 처하지 않았고 사냥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 사냥꾼이 오더라도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들 다섯 가지의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탐착하지 않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탐닉하지 않고 잘못됨을 보고 벗어남에 대한 지혜를 갖추어 구족한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그들은 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고통에 처하지 않았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숲에 사는 사슴이 숲에서 다닐 때 두려움 없이 가고 두려움 없이 서고 두려움 없이 앉고 두려움 없이 잠을 자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냥꾼의 영역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 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色]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잡다한(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끝이 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없는 공무변처를 넘어선, '무한한 의식(끝이 없는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다는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그의 지혜로써 보아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마라가 없는 곳으로 갔다. 이 세상에 대한 강한 집착을 건넜고, 걸림 없이 가고, 걸림 없이 서고, 걸림 없이 앉고, 걸림 없이 눕는다.라고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사악한 마라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17.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기뻐하며 찬탄했다.

 

Pāsarāsisuttaṃ niṭṭhitaṃ chaṭṭhaṃ.

성스러운 구함 경(M26)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