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긴 쌍 품
Mahāyamakavaggo
MN 31.고싱가 작은(짧은) 경 (cūḷagosiṅgasuttaṃ)
32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나디까에서 벽돌집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누룻다 존자와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는 고싱가살라 숲에 머물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셔서 고싱가살라 숲으로 가셨다. 숲을 관리하는 관리인이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이 숲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여기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자신을 사랑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 세 분이 머물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불편을 주지 마십시오."라고.
*나디까(Nadika)는 꼬띠가마와 웨살리를 연결하는 대로변에 위치한 왓지(Vajji)족의 마을이다. 본경과 다음 경(MN32)등을 통해서 보면 이 나디까의 고싱가살라 숲은 여러 유명한 장로들이 즐겨 수행하던 곳이었다. 그런 만큼 이 지역 사람들도 불교와 큰 인연이 있었으며 「디가 니까야」 제2권 「대반열반 경」(D16)과 「자나와사바 경」(D18)과 「상윳따 니까야」 제6권 「벽돌집 경」(S55.10)을 통해서 보듯이 과위를 증득한 신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일찍부터 이 지명에 대해서는 나디까(Nadika)로도 전승되었고, 나띠까(Natika)로도 전승되어 온 듯 하다. 주석서들에서 각각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나띠까는 친척(nati)들끼리 사는 마을로 설명되고(SA.ii.281), 나디까는 나디 강(nadi)과 연관이 있는 이름으로 간주된다. 현재 인도의 바하르주의 웨살리와 빠뜨나 사이의 강가(Ganga) 강에 있는 나따까(Nataka)라는 마을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벽돌집'은 ginjakavasatha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는 "벽돌(itthaka)로 만든 큰 강당(maha-pasada)"(MA.ii.235;SA.ii.75)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누룻다 존자(ayasma Anuruddha)는 세존의 사촌이고 사꺄의 아미또다나(Amitodana)의 아들이다. 깨달음을 증득한 후에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신 세존을 따라서 사꺄의 아누삐야(Anupiya)에서 밧디야(Bhaddiya), 아난다(Ananda), 바구(Bhagu), 낌빌라(Kimbila), 데와닷따(Davadatta) 같은 왕자와 이발사 우빨리(Upali)를 비롯한 많은 사꺄의 청년들과 함께 출가하였다. (Vin.ii.180; AA.i.108; DhpA.i.133; iv.127) 존자는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A1.14)에서 천안을 가진 자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칭송되듯이 우리에게 천안제일로 알려진 분이다. 그는 세존께 대한 한 없는 믿음을 가진 분이었으며 세존 입멸 후 마하깟사빠 존자가 당도할 때까지 장례등의 문제와 승가를 통솔하였다.
*난디야 존자(ayasma Nandiya) 아누룻다 존자, 낌빌라 존자, 바구 존자, 꾼다다나 존자, 레와따 존자, 아난다 존자와 함께 다른 잘 알려진 사꺄족의 좋은 가문의 아들들과 함께 출가하였다. 율장과 주석서 문헌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신 세존을 따라서 사꺄의 아누삐야(Anupiya)에서 밧디야(Bhaddiya), 아난다(Ananda), 바구(Bhagu), 낌빌라(Kimbila), 데와닷따(Davadatta) 같은 왕자와 이발사 우빨리(Upali)를 비롯한 많은 사꺄의 청년들과 함께 출가하였다.(Vin.ii.180; AA.i.108; DhpA.i.133; iv.127) 이처럼 그는 까삘라왓투의 사꺄족의 왕족출신이라고 하며, 그가 난디야로 불리게 된 것은 그의 출생이 가문에 큰 기쁨(nanda)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출가해서 곧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egA.i.86)
*낌빌라 존자(ayasma Kimbila)는 난디야 존자 등과 함께 출가한 사꺄족 왕자 출신이다. 위의 주해를 참조할 것.
*문자적으로 '고싱가(go-singa)'는 소(go)의 뿔(singa)을 뜻한다. 주석서의 설명에 따르면, '고싱가살라 숲(Gosingasalavana)'이라고 하였다. 이 숲에는 아주 오래 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 나무의 몸통에서부터 소의 뿔과 같은 모습을 한 가지가 뻗어나와 있었다. 그래서 이 나무 때문에 이 숲 전체가 고싱가살라(소뿔 모양을 한 살라 나무) 숲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MA.ii.235)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자신들을 사랑하는)'은 atta-kama-rup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자는 이 승가에 출가했지만 의료 행위를 한다거나 전령의 행위를 하거나 심부름꾼으로 나서는 등 21가지 삿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런 자는 자기의 이익을 원하면서 머무는 자라 하지 않는다. 어떤 자는 이 승가에 출가하여 21가지 추구해서는 안되는 것(삿된 생계수단)을 버리고 네 가지 청정한 계에 서서 세존의 말씀을 배우고 적당한 두타행을 결심하고 38가지 대상 가운데서 자기에 맞는 명상 주제를 가지고 마을을 버리고 숲 속에 들어가 증득(samapatti)을 일으켜서 위빳사나를 통하여 사문의 일을 하면서 머무는데, 이러한 자를 자기의 이익을 원하면서 머무는 자라 한다.(MA.ii.236)
아누룻다 존자는 숲 관리인이 세존과 함께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듣고서는 숲 관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숲 관리인이여, 세존을 막지 마십시오. 우리의 스승이신 세존께서 오신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아누룻다 존자는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은 나오십시오. 도반들은 나오십시오. 우리들의 스승이신 세존께서 오셨습니다."라고.
그래서 아누룻다 존자와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는 세존을 영접하고는 한 사람은 세존의 발우와 가사를 받고, 한 사람은 자리를 준비하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을 가져왔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시고 두 발을 씻으셨다. 그 존자들도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26.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견딜만하고 삶을 유지할만 하고 탁발에 어려움은 없는가?"
"저희들은 견딜만합니다, 세존이시여. 삶을 유지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탁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화합하고 즐거워하고 다투지 않고 물과 우유가 잘 섞이듯이 서로를 사랑스러운(자애로운) 눈으로 보면서 머무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확실히 화합하고 즐거워하고 다투지 않고 물과 우유가 잘 섞이듯이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머뭅니다."
"그렇다면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화합하고 즐거워하고 다투지 않고 물과 우유가 잘 섞이듯이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머무는가?"
"여기,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머무는 것은 참으로 나에게 이익이고, 참으로 잘 얻어진 것이다(축복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함께할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이 존자들에 대해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하고(몸으로 자애롭게 행위하고), 함께할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이 존자들에게 자애로운 말의 행위를 하고, 함께할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이 존자들에게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를 합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나는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저의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에 따릅니다. 생각건대,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에게 몸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아누룻다들이여'는Anuruddhā(복수호격)를 옮긴 것이다. 단수 Anuruddha가 아니라 복수 Anuruddhā로 나타나서 이렇게 옮긴 것이다. 복주석서는 이런 방법을 '하나와 나머지의 방법(eka-sesa-naya}라고 부르고 있다. 즉 하나를 지칭하여 나머지 전체를 다 포함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아누룻다 존자 한 사람만을 복수로 지칭하여 난디야 존자와 낌비라 존자를 다 포함시켜 보르는 방법을 뜻한다.(MAT.ii.170)
난디야 존자도 ··· 낌빌라 존자도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머무는 것은 참으로 나에게 이익이고, 참으로 잘 얻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함께할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이 존자들에게 자애로운 몸의 행위를 하고,이시여, 함께할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이 존자들에게 자애로운 말의 행위를 하고, 함께할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이 존자들에게 자애로운 마음의 행위를 합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나는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저의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에 따릅니다. 생각건대,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에게 각자의 몸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화합하고 즐거워하고 다투지 않고 물과 우유가 잘 섞이듯이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머뭅니다."
*'아누룻다들이여'는 anuruddhā(복수 호격)을 옮긴 것이다. 단수 Anuruddha 가 아니라 복수 anuruddhā 로 나타나고 있어서 이렇게 번역한다. 복주석서는 이런 방법을 '하나와 나머지의 방법(eka-sesa-naya)'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하나를 지칭하여 나머지 전체를 다 포함히키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아누룻다 존자 한 사람만을 복수로 지칭하여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를 다 포함시켜 보르는 방법을 뜻한다.(MAT.ii.170)
327.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가?"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확실히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뭅니다."
"그렇다면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가?"
"여기, 세존이시여, 저희들 중에서 먼저 탁발을 마치고 마을에서 돌아온 사람은 자리를 준비하고, 마실 물과 발 씻을 물을 준비하고, 남는 음식을 버릴 그릇을 준비합니다. 마을에서 탁발을 마치고 나증에 돌아온 사람은 먹고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하면 먹고, 원하지 않으면 풀이 없는 곳에 버리거나 벌레가 없는 물에 던져 넣습니다. 그는 자리를 정돈하고, 마실 물과 발 씻을 물을 정돈하고, 남는 음식을 버릴 그릇을 정돈하고, 밥 먹은 곳을 청소합니다. 누구든 마시는 물 항아리나, 손 씻는 물 항아리나, 화장실에 사용할 물 항아리가 바닥이 나거나 비어있는 것을 본 사람은 준비합니다. 만일 (너무 무거워) 혼자 감당할 수 없으면 손짓으로 다른 사람을 불러서 손을 맞잡고 가져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우리는 그것 때문에 침묵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다섯째 날에는 밤을 새워 법담을 나눕니다. 이렇게,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뭅니다."
328.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그대들은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특별한)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가?"
"어찌 아니겠습니까(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원하는 만큼 감각적 쾌락들로 멀어지고 선하지 않는 법으로 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 기쁨]과 행복[樂.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저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대들에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어찌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원하는 만큼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과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가 가라 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 한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저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대들에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어찌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원하는 만큼 희열이 떠나 평온(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온과 마음지킴을 지녀, 행복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저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대들에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어찌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원하는 만큼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희열)과 슬픔(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평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저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대들에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어찌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원하기만 하면 물질[色]에 대한 인식(지각)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장애)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를 증득하여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저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대들에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어찌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원하기만 하면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끝이 없는 의식[識]'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를 증득하여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증득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증득하여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저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입니다."
329.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아누룻다들이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대들에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어찌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원하기만 하면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인식과 느낌의 소멸인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지혜로써 보아 번뇌가 다합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이런 머묾을 넘어서고 이런 머묾을 가라앉히기 위해 저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다른 방법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이 머묾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편히 머묾은 없다.”
330.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와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에게 법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아누룻다 존자와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는 세존이 방문하고 거기에서 돌아간 뒤에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누룻다 존자에게 '아누룻다 존자가 세존의 곁에서 우리에 대해 그만큼의 번뇌의 부서짐을 말씀드린 이러이러한 머묾의 증득을 우리가 얻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까?"라고.
"존자들은 '이러이러한 머묾의 증득을 우리가 얻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존자들은 이러이러한 머묾의 증득을 얻었다.'라고 존자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잘 이해하여 알았습니다. 신들도 나에게 '이 존자들은 이러이러한 머묾의 증득을 얻었다.'라고 그 의미를 말했습니다.
세존께서 그것을 질문하셔서 그렇게 설명드린 것입니다."
331. 그때 디가 빠라자나 약카가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디가 빠라자나 약카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왓지 사람들에게 참으로 이득이고, 왓지의 자손들에게 참으로 잘 얻진 것입니다(축복입니다). 여기에 세존·아라한·정등각 그리고 아누룻다 존자와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의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머뭅니다."라고.
디가 빠라자나 약카의 소리를 듣고 땅의 신들이 소리쳤다.
'벗들이여, 왓지 사람들에게 참으로 이득이고, 왓지의 자손들에게 참으로 잘 얻진 것입니다(축복입니다). 여기에 세존·아라한·정등각 그리고 아누룻다 존자와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의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머뭅니다.'라고.
땅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사대왕천의 신들이 ··· 사대왕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삼십삼천의 신들이 ··· 야마천의 신들이 ··· 도솔천의 신들이 ··· 화락천의 신들이 ···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 범중천의 신들이 소리쳤다.
"벗들이여, 왓지 사람들에게 참으로 이득이고, 왓지의 자손들에게 참으로 잘 얻진 것입니다. 여기에 세존·아라한·정등각 그리고 아누룻다 존자와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의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머뭅니다.'라고."
*"디가 빠라자나 약카(Digha Parajana yakkha)에서 '디가'라는 것은 "마니 마니짜라, 디가, 그리고 세릿사까"(D32)라고 전해 내려오는 28명의 약카 장군(yakkha-senapati)들 가운데 한 명인 천상의 왕(devaraja)을 말한다. 빠라자나는 그 약카의 이름이다."(MA.ii.244)
*'약카(yakkha)는 중국에서는 야차(夜叉)로 한역되었다. 이 단어는 yaks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문자적으로는 '재빨리 움직이는 존재'를 뜻한다. 그러나 빠알리 주석서에서는 √yaj에서 파생된 명사로 간주하여 "그에게 제사 지낸다. 그에게 제사음식을 가져간다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224) 혹은 "에배를 받을만한 자라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333)고 풀이하고 있다.
약카는 일반적으로 비인간(amanussa)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들은 아귀(peta)들 보다는 높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며 선한 아귀들을 약카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PvA.45;55) 그들은 많은 계통이 있는데 후대 문헌으로 올수록 우리말의 정령, 귀신, 요정, 유령, 도깨비 등 나쁜 비인간인 존재들을 모두 일컫는 말로 정착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약카는 힘이 아주 센 비인간을 뜻한다. 그래서 본서 「삿짜까 짧은 경」(M35)과 「디가 니까야」 제1권 「암밧타 경」(D3)에는 금강수 약카(Vajirapani)가 금강저(벼락)을 손에 들고 세존의 곁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신들의 왕인 삭까(Sakka, Indra)도 약카로 표현되기도 하며(본서 「갈애 멸진의 짧은 경」(M37), 「상윳따 니까야」 제1권 「삭까 상윳따」(S11)의 「삭까의 예배 경」(S11.19)에서 삭까의 마부 마딸리는 세존도 약카로 지칭하고 있으며, 본서 「우빨리 경」(M56)의 세존을 찬탄하는 게송에서 우빨리 장자도 세존을 약카로 부르고 있다. 자이나교에서도 약카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고 있는데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러하다, 디가여. 그것은 그러하다, 디가여. 어떤 가문에서, 디가여,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만약 그 가문이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가문에게는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어떤 문중에서, 디가여, 세 명의 좋은 문중의 아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만약 그 문중이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문중에게는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어떤 마을에서, 디가여,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만약 그 마을이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마을은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어떤 성읍에서, 디가여,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만약 그 성읍이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심(心)으로 기억한다면, 그 성읍에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어떤 도시에서, 디가여,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만약 그 도시가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도시에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 디가여,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고, 만약 그 지역이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지역에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디가여, 모든 끄샤뜨리야가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모든 끄샤뜨리야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디가여, 모든 바라문이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모든 바라문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디가여, 모든 와이샤가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모든 와이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디가여, 모든 수드라가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그 모든 수드라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디가여, 신들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그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분명한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신들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디가여, 많은 사람의 이익과 많은 사람의 행복과 많은 사람의 번영을 위해, 신과 인간의 안녕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실천하는 이들 세 명의 좋은 가문의 아들을 보라!."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디가빠라자나 약카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고싱가살라 짧은 경(M31)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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