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30. 심재 비유의 작은(짧은) 경(Cūḷasāropamasuttaṃ)

실론섬 2016. 4. 5. 19:08

심재 비유의 작은(짧은) 경 

Mn30 Majjhima Nikàya I 3 10. Cålasàropam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삥갈라꼿차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삥갈라꼿차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고따마 존자시여,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리,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타뿟따 등 따르는 자들의 무리(승가)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따르는 자들의 스승이고, 잘 알려졌고,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이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존경받는 그들은 자신이 드러내듯이(스스로 선언하듯이) 완전한 지혜를 가졌습니까? 아니면 모두 완전한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자들은 완전한 지혜를 가졌고 어떤 자들은 완전한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되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그들 모두 자신이 드러내듯이 완전한 지혜를 가졌습니까? 아니면 모두 완전한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자들은 완전한 지혜를 가졌고 어떤 자들은 완전한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라는 이 질문은 멈추십시오. 바라문이여,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여."라고 삥갈리꼿차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석서에 의하면 삥갈라꼿차 바라문(Piṅgalakoccha brāhmaṇa)의 원래 이름은 꼿차(Koccha)였는데 그가 황갈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piṅgala-dhātuka)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MA.ii.232)

*뿌라나 깟사빠(Puraṇa Kassapa)를 비롯한 여기서 언급되는 사람들은 세존 당시의 육사외도(六邪外道)들이다. 『디가 니까야』 제1권 「사문과경」(D2)에 나타나는 이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뿌라나 깟사빠(Pūraṇa Kassapa)의 사상은 한마디로 도덕부정론(akiriya-vāda, 업지음 없음)이다. 그는 「사문과경」(D2)에서 어떤 나쁜 짓을 하거나 어떤 선한 일을 해도 죄악도 아니고 공덕도 아니라고 업지음 없음을 주장한다.
(2) 막칼리 고살라(Makhaligosāla)는 윤회를 통한 청정(saṃsāra-suddhi)을 주장한다. 그는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똑같이 그것을 모두 치달리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끝을 낸다.”(D20)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운명론(niyati)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떠한 업 지음(kiriya)도 노력(viriya)도 업의 결과(vipaka)도 있을 수 없다고 이 모두를 부정한다.
(3) 아지따 께사깜발리(Ajita Kesakambalī)는 [사후] 단멸론(uccheda-vāda)을 주장한다. 그는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멸절할 뿐이라서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D2)라고 주장한다.
(4)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āyana)의 사상은 한마디로 결정론이다. 그는 땅의 몸, 물의 몸, 불의 몸, 바람의 몸, 즐거움, 괴로움, 마지막으로 영혼이라는 이 일곱은 본래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5)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taputta)의 사상은 “모든 찬물을 금하고, 모든 악을 금하고, [모든 악을] 철저하게 금하여 모든 악을 제거하고, 모든 악을 금하여 [해탈을] 얻는다.”(D2)라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함(catu-yāma-saṃvara)이라고「사문과경」(D2)은 정리하고 있다. 
(6) 산자야 벨랏티뿟따(Sañjayena Belaṭṭhiputta)의 사상은 우리에게 회의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문과경」(D2)은 애매모호함(vikkhepa)이라는 용어로 정리하고 있다. D2 에는 16가지 질문에 대해서 애매모호하게 답변 하는 것으로 그의 태도를 정리하고 있다. 

 

2.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치고, 가지와 잎사귀를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 갈 것입니다.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심재를 모르고, 겉재목을 모르고, 속껍질을 모르고, 겉껍질을 모르고, 가지와 잎사귀을 모른다. 그래서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치고, 잔가지와 앞사귀를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3. "다시,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 갈 것입니다.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심재를 모르고, 겉재목을 모르고, 속껍질을 모르고, 겉껍질을 모르고, 잔가지와 잎사귀를 모른다. 그래서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4. "다시,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 갈 것입니다. 눈 있는 사람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
'참으로 이 사람은 심재를 모르고, 겉재목을 모르고, 속껍질을 모르고, 겉껍질을 모르고, 잔가지와 잎사귀을 모른다. 그래서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5. "다시,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 갈 것입니다.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심재를 모르고, 겉재목를 모르고, 속껍질을 모르고, 겉껍질을 모르고, 잔가지와 잎사귀를 모른다. 그래서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6. "다시,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알면서 돌아 갈 것입니다.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심재를 알고, 겉재목을 알고, 속껍질을 알고, 겉껍질을 알고, 잔가지와 잎사귀를 안다. 그래서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알면서 돌아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의 목적을 실행할 것이다.'라고."

 

7. "이처럼, 바라문이여, 여기 '나는 태어남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면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출가한 그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고(만족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나에게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이 있다. 그러나 이 비구들은 알려지지 않았고, 위력이 없다.'라고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업신여깁니다. 그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지 않고(관심을 생기게 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집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치고, 잔가지와 잎사귀를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그 비유를,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말했습니다."

 

8. "다시, 바라문이여, 여기 '나는 태어남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면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출가한 그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을러지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계의 구족을 얻습니다. 그 계의 구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계의 구족 때문에 그는 '계를 중시하는 나에게 유익한 법이 있다. 그러나 계를 경시하는 이 비구들에게는 악한 법이 있다.'라고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업신여깁니다. 그는 계의 구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집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그 비유를,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말했습니다."

 

9. "다시, 바라문이여, 여기 '나는 태어남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면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출가한 그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을러지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계의 구족을 얻습니다. 그 계의 구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그 계의 구족 때문에 그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계의 구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을 실현하기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으르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삼매의 구족을 얻습니다. 그 삼매의 구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삼매의 구족 때문에 그는 '삼매를 닦는 나는 집중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삼매를 닦지 않는 이 비구들은 산란한 마음을 가졌다.'라고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업신여깁니다. 그는 삼매의 구족 때문에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집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그 비유를,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말했습니다."

  

10. "다시, 바라문이여, 여기 '나는 태어남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면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출가한 그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을러지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계의 구족을 얻습니다. 그 계의 구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계의 구족 때문에 근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계의 구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으르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삼매의 구족을 얻습니다. 그 삼매의 구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삼매의 구족 때문에 그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삼매의 구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을러지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지(知)와 견(見)을 얻습니다. 그 지와 견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와 견 때문에 그는 '나는 알고 보면서 머문다. 그러나 이 비구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서 머문다.'라고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업신여깁니다. 그는 지와 견으로부터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집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속껍질을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그 비유를,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말했습니다."

 

11. "다시, 바라문이여, 여기 '나는 태어남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면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출가한 그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을러지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계의 구족을 얻습니다. 그 계의 구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계의 구족 때문에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계의 구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으르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삼매의 구족을 얻습니다. 그 삼매의 구족 때문에 그는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삼매의 구족 때문에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삼매의 구족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으르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지(知)와 견(見)을 얻습니다. 그 지와 견 때문에 그는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지와 견 때문에 그는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법들의 실현을 위해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게으르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12. "그러면, 바라문이여, 무엇이 지와 견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들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어떻게 초선 등의 법이 지와 견보다 더 높은가?(ñāṇadassanena uttitarā jātāti) 소멸의 토대가 되기 때문(nirodha-pādakattā)이다. 앞에서는 초선 등의 법들이 위빳사나의 토대(vipassanā-pādakā)가 되었고 여기는 소멸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더 높다고 알아야 한다.” (MA.ii.234)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인식)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다시, 바라문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진리를] 보아 번뇌들이 다합니다. 이것도, 바라문이여, 지와 견 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입니다.

 

이것들이, 바라문이여, 지(知)와 견(見)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법들입니다."

 

13.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심재를 바라고 심재를 구하고 심재를 찾아 다니는 이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잘라 손에 들고서 심재라고 알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재를 가지고 할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목적을 실행할 것이다.'라는 그 비유를, 바라문이여,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렇게, 바라문이여, 이 범행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이익으로 하지 않고, 계의 구족을 이익으로 하지 않고, 삼매의 구족을 이익으로 하지 않고, 지(知)와 견(見)을 이익으로 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이 범행은 이것이 목적이고, 이것이 정수이고, 이것이 완결입니다."

 

14. 이렇게 말씀하시자 삥갈라꼿차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게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Cūḷasāropam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Opammavaggo niṭṭhito tatiyo.

심재 비유의 짧은 경(M30)이 끝났다.

 

제3장 비유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