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제8장 유행승 품-MN 71. 왓차 삼명 경(tevijjavacchasuttaṃ)

실론섬 2016. 4. 23. 17:16

제8장 유행승 품
Paribbajaka-vagga

MN 71. 왓차 삼명 경(tevijjavacchasuttaṃ)

 

18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건물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왓차곳따 유행승이 유행승들의 에까뿐다리까 사원에 머물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웨살리로 탁발을 가셨다. 가시는 도중에 세존에게 '지금 웨살리로 탁발을 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나는 유행승들의 에까뿐다리까 사원으로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오르셨다. 세존께서는 유행승의 에까뿐다리까 사원으로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가셨다. 왓차곳따 유행승은 멀리서 오고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보고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잘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기에 오래만에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준비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세존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왓차곳따 유행승도 다른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본다. '나는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언제나 항상 앎과 봄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완전한 앎과 봄을 선언한다.'라고. 세존이시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본다. '나는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언제나 항상 앎과 봄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완전한 앎과 봄을 선언한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누구든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사람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라고.

"왓차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본다. '나는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언제나 항상 앎과 봄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완전한 앎과 봄을 선언한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내가 말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실 아닌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왓차곳따 유행승(Vacchagotta paribbajaka)은 라자가하의 왓차(Vaccha)라는 족성(gotta)을 가진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 그래서 왓차곳따(왓차라는 족성을 가진 자)라 부른다.(ThgA.i.235) 그와 세존과 나눈 대화들은 여러 경들에서 전승되어 오는데 특히 본서의 이곳에 나타나는 세 개의 경들, 즉 「왓차 삼명 경」(M71)과 「왓차 불 경」(M72)과 「왓차 긴 경」(M73)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본서 「왓차 긴 경」을 통해서 마침내 출가하게 되고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와 관계된 경들이 초기경전에 많이 전해오는데 특히 「상윳따 니까야」에는 제33주제(S33)로 「왓차곳따 상윳따」(Vacchagotta-samyutta)가 있어 모두 55개의 경들이 전승되어 온다. 이 55개의 경들은 모두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본서 「왓차 불 경」(M72)에도 나타나고 있는 10사 무기에 관계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상윳따 니까야」 제5권 「설명하지 않음 상윳따」(S44)의 「목갈라나 경」(S44.7)부터 「사비야 깟짜나 경」(S44.11)까지의 다섯 개 경들에도 그와 십사무기는 나타나고 있으며,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왓차곳따 경」(A3.57)에도 나타난다.     
*'에까뿐다리까(Ekapundarika)에서 뿐다리까라는 것은 흰 망고나무(setamba-rukkha)를 말한다. 유행승들의 사원에 한 그루의 흰 망고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에까뿐다리까라고 불리었다.(MA.iii.195) 

 

186. "세존이시여, 저희가 어떻게 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세존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어떤 사람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라고.

"'사문 고따마는 삼명(三明, 세 가지 명지)을 갖추었다.'라고 말하면, 왓차여, 내가 말한 대로 말한 것이고, 나를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어떤 사람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는다.

 

왓차여, 나는 원하는 만큼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한다. 즉 — 한 번의 생 …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한다. 왓차여, 나는 원하는 만큼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본다 …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왓차여, 나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왓차여, 나는 원하는만큼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왓차여, 나는 원하는만큼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왓차여, 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문다.

 

'사문 고따마는 삼명을 갖추었다.'라고 말하면, 왓차여, 내가 말한 대로 말한 것이고, 나를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어떤 사람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재가자로서 누구라도 재가자의 족쇄를 버리지 못한 채 몸이 무너진 뒤에 괴로움을 끝낸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왓차여, 재가자로서 재가자의 족쇄를 끊지 못한 채 몸이 무너진 뒤에 괴로움을 끝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괴로움을 끝낸 자(dukkhassanta-kara)'란 아라한을 말한다.
*"그런데 장자의 아들 욱가세나(Uggasena setthiputta)같은 자들은 재가자의 형태(gihi-linga)로 머물면서 아라한됨을 증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도(magga)의 과정에서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말려버린 뒤에 증득하였다. 그러나 아라한과를 증득한 뒤에는 그 재가자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가자의 형태란 저열한 것이기 때문에 최상의 공덕을 지닐 수가 없다. 그래서 비록 거기에 서서 아라한됨을 증득하더라도 그날 바로 출가하거나 그날 바로 반열반에 들게 된다."(MA.ii.196)  
이처럼 재가자로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는 증득 할 수는 있지만 아라한이 재가자로 머물 수는 없다는 것이 상좌부 불교의 정설이다.
재가자도 아라한이 될 수는 있다. 「상윳따 니까야」 제6권 「병 경」(S55.54)도 그 증거가 된다. 이 경에서 세존께서는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재가자와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 지 백 년이 되는 되는 비구 사이에는, 즉 이 해탈과 저 해탈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도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세존께서 재가자도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말슴하시는 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 설혹 재가자가 아라한이 된다하더라도 아라한이 되면 즉시 출가하거나 바로 반열반에 드는 길 밖에 없다고 위의 주석서는 설명한다. 「밀린다빤하」(Mil.264-266)도 아라한과를 얻은 재가자는 그날에 바로 출가하여 비구나 비구니가 되거나 반열반에 드는 것 밖에는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재가자로 아라한이 된 후 즉시 출가한 예로는 「율장」(Vin.i.17)에 나타나는 야사(Yasa)존자와, 케마(Khema)비구니(「케마 경」(S44.1)와 본 주해에 나타난 장자의 아득 욱가세나를 들 수 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재가자로서 누구라도 재가자의 족쇄를 버리지 못한 채 몸이 무너진 뒤에 천상에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왓차여, 재가자가 재가자의 족쇄를 끊지 못한 채 몸이 무너진 뒤에 천상에 태어난 사람은 단지 백 명이 아니고, 이백 명이 아니고, 삼백 명이 아니고, 사백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아니고, 더 많다."

 

"고따마 존자시여, 아지와까(사명외도)로서 몸이 무너진 뒤에 괴로움을 끝낸 사람이 있습니까?"

"왓차여, 아지와까로서 몸이 무너진 뒤에 괴로움을 끝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아지와까로서 몸이 무너진 뒤에 천상에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왓차여, 내가 기억하는 지금으로부터 91겁 동안에 나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지와까로서 몸이 무너진 뒤에 천상에 태어난 사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업을 말하고 결실 있음을 말하는 자였다(업의 교설을 따르고 [도덕적 행위]의 교설을 따르는 자였다)."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 교리로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조차도 텅 비어있습니까?"
"그렇다, 왓차여, 그런 교리로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조차도 텅 비어있다."

 

*그는 업을 말하고 결실 있음을 말하는 자였다(So pasi kammavadi kiriyavadi)'.라고 하셨다. 그는 업의 교설을 따르고 [도덕적]행위의 교설도 부정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91겁의 정점에 있었던 세존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 보살은(maha-satta) 외도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교단에 출가했다고 한다. 그 외도들은 과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았지만 보살은 정진을 버리지 않았고 도덕적 행위의 교설을 설하는 자가 되어 천상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자신만이 천상에 태어났고 다른 아지와까는 아무도 천상에 태어나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MA.ii.196-197)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왓차곳따 유행승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왓차 삼명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