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72. 왓차 불 경(aggivacchasuttaṃ)

실론섬 2016. 4. 25. 14:00

MN 72. 왓차 불 경(aggivacchasuttaṃ)

 

18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이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이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유한하다(세상은 끝을 지닌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유한하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무한하다(세상은 끝을 지니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무한하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생명은 바로 몸이다라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은 바로 몸이다라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생명은 몸과 다른 것이다라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은 몸과 다른 것이다라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88.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세상이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끝을 지닌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세상은 끝을 지닌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끝을 지니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세상은 끝을 지니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목숨이 바로 몸이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목숨이 바로 몸이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목숨과 몸이 다르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목숨과 몸이 다르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여래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사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무슨 잘못됨(위험)을 보시기에 이렇게 이 모든 편향된 견해를 가까이하지 않습니까?"   

 

189. "왓차여, '세상이 영원하다.'라는 것은 견해의 편향됨이고, 견해의 헝크러짐이고, 견해의 장애이고, 견해의 분쟁이고, 견해의 모순이고, 견해의 속박입니다. 그것은 괴로움과 함께하고 번뇌와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고, 또 그것은 싫어하여 떠남, 탐욕의 떠남, 소멸, 고요함(평안),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왓차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 '세상은 끝을 지닌다.'라는 ··· '세상은 끝을 지니지 않는다.'라는 ··· 생명은 바로 몸이다.'라는 ···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는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는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라는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라는 것은 견해의 편향됨이고, 견해의 헝크러짐이고, 견해의 장애이고, 견해의 분쟁이고, 견해의 모순이고, 견해의 속박입니다. 그것은 괴로움과 함께하고 번뇌와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고, 또 그것은 싫어하여 떠남, 탐욕의 떠남, 소멸, 고요함(평안),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왓차여, 나는 이런 잘못됨을 보기에 이렇게 이 모든 편향된 견해를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에게 개인적인 견해가 어떤 것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여래에게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은 제거되었습니다. 여래는 이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물질이 있고, 이렇게 물질이 일어나고, 이렇게 물질이 소멸된다. 이렇게  느낌이 있고, 이렇게 느낌이 일어나고, 이렇게 느낌이 소멸된다. 이렇게  인식이 있고, 이렇게 인식이 일어나고, 이렇게 인식이 소멸된다. 이렇게 형성이 있고, 이렇게 형성이 일어나고, 이렇게 형성이 소멸된다. 이렇게 의식이 있고, 이렇게 의식이 일어나고, 이렇게 의식이 소멸된다.'라고.

그러므로 여래는 생각된 모든 것, 동요된(잘못된) 모든 것, 모든 '나'라는 것과 모든 '내 것'이라는 것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의 부서짐과 탐욕의 사라짐과 소멸과 포기와 놓아버림 때문에 집착없이 해탈한 자라고 나는 말합니다." 

 

*"'집착없이 해탈한다(anupada vimutta)'는 것은 네 가지 집착에서 어떤 법도 취하지 않고 해탈하는 것이다."(MA.ii.198)
네 가지 집착은 감각적 쾌락, 사견, 계행과 의례의식, 자아가 있다는 견해에 대한 집착이다.  

 

190. "고따마 존자시여, 이렇게 해탈한 마음을 가진 자는 어디에 태어납니까?"

"왓차여,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지 않습니까?"

"왓차여,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는다(na upapajjati).'라는 것에 동의하게 되면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유행승은 단멸(uccheda)을 취할 것이고, '태어난다(upapajjati).'라고 하면 영속(sassata)을,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upapajjati ca na upapajjati).'라고 하면 일부영속(ekacca-sassata)을,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neva upapajjati na na upapajjati).'라고 하면 애매모호함(amara-vikkhepa)를 취할 것이기 때문에 세존께서 이것은 근거가 없다(appatittha analmba)고 하시면서 동의하지 않으셨다."(MA.ii.198)   

 

"'고따마 존자시여, 이렇게 해탈한 마음을 가진 자는 어디에 태어납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태어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질문을 드리면 '왓차여,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서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당황스럽습니다. 예전에 대화를 나누면서 고따마 존자에게 있었던  만큼의 믿음마저도 이제 나에게서 사라졌습니다." 

"왓차여, 그대가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당연합니다. 왓차여, 이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숭고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습니다. 다른 견해, 다른 믿음, 다른 성향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 닦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그대에게 이 법은 알기 어렵습니다.

 

191. 그렇다면, 왓차여, 여기서 그것을 되묻겠습니다. 좋다면 그대에게 보이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왓차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그대의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이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 수 있습니까?"

"만약, 고따마 존자시여, 제 앞에 불이 타고 있다면 저는 '내 앞에서 이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 수 있습니다다."

 

"만약에 왓차여, 그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왓차여,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입니까?"

"만약에 고따마 존자시여, 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고따마 존자여,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제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마른 풀과 나무토막이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있습니다.'라고."

 

"만약에 왓차여, 그대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이 불이 꺼졌다.'라고 알 수 있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만약 제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내 앞에서 이 불이 꺼졌다.'라고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왓차여, 그것을 '그대의 앞에서 꺼진 그 불은 동쪽이나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의 어느 방향으로 갔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어느 방향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른 풀과 나무토막이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꺼진 그 불은 연료가 다 소비되고 다른 것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에 연료가 없어 꺼진 것이라는 이름을 얻을 뿐입니다(연료가 없어서 꺼졌다고 합니다)."

 

192. "이처럼, 왓차여, 묘사하는 자가 어떤 물질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물질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물질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yena rupena tathagatam pannapayamano)'라는 것은 물질로써 길다거나 짧다거나 검다거나 희다라는 중생에게 속하는 것(satta-sankhata)으로 여래를 묘사한다는 말이다.  
'물질은 여래에게 버려지고(tam rupam tathagatassa pahinam)'라는 것은 앞서 말한 형태의 물질이 일어남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물질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였다(rupa-sankhaya vimutto)'는 것은 미래에 물질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물질적 부분이라거나 정신적 부분이라는 그러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인습적인 표현(vohara)이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이라는 개념으로부터 해탈했다는 말이다.
'깊고(gambhiro)'라는 것은 성향이 깊고 공덕이 깊기 때문에 깊다. 그분의 공덕이 깊기 때문에 일체지자인 여래가 태어나면 중생에게 속하는 여래라는 개념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더 이상 오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중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는 자에게는 중생에게 속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 등은 해당되지 않고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SA.iii.113)   

 

묘사하는 자가 어떤 느낌(受. 감수작용)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느낌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느낌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묘사하는 자가 어떤 인식(想. 지각작용)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인식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인식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묘사하는 자가 어떤 형성(行. 형성작용)들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형성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형성들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묘사하는 자가 어떤 의식(識. 식별작용)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의식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의식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마을이나 성읍의 멀지 않은 곳에 큰 살라나무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무상함 때문에 가지와 잎들은 떨어질 것이고, 껍질은 벗겨질 것이고, 심재를 둘러싼 부분은 제거될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은 가지와 잎들도 없고, 껍질도 없고, 심재를 둘러싼 부분도 없이 순전히 심재만이 남을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의 말씀은 가지와 잎들도 없고, 껍질도 없고, 심재를 둘러싼 부분도 없이 순전히 심재만이 남은 것입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합니다(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왓차곳따 불 경(M72)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