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 경(dīghanakhasuttaṃ)

실론섬 2016. 4. 25. 17:52

MN 74. 디가나카 경(dīghanakhasuttaṃ)

 

20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의 수까라카따라는 동굴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디가나카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디가나카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견해도 그대에게 인정되지 않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에게 이 견해는 인정된다고 해도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제가 이 견해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악기웻사나여,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견해를 버리지 않고 다른 견해를 붙잡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는 많고, 더욱 많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는 적고, 더욱 적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나는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들의 이 견해는 욕망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기쁨에 가깝고, 묶임에 가깝고, 집착에 가깝습니다.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들의 이 견해는 욕망 없음에 가깝고, 족쇄 없음에 가깝고, 기쁨 없음에 가깝고, 묶임 없음에 가깝고, 집착 없음에 가깝습니다."

 

*디가나카 유행승(Dighanakha paribbajaka)은 사리뿟따 존자의 여동생의 아들이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단견론자였다고 한다.(MA.iii.203)
*디가나카 유행승은 왜 세존을 친견하러 갔는가? 사리뿟따 존자가 출가한 지 보름이 되었을 때 디가나카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내 외숙부가 다른 교단에 출가했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사문 고따마의 곁으로 출가한 지 보름이 되었다. 그의 소식도 듣지 못했고, 훌륭한 교법인지, 그것을 알아야겠다.'라는 생각에 세존을 친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MA.iii.203)
*'나는 모든 것을(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sabbam me nakkhamati)'라는 것은 모든 재생과 더불어 모든 재생연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이것으로 '나는 단견을 주장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나의 의도는 우선 제쳐두고 그의 말에서 결점을 드러내시면서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대의 견해는 적어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신다. 그러나 디가나카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기의 견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자기의 견해는 변함이 없다고 대답을 한다. 그 '아무것, 모든 것' 속에 자기의 견해도 포함되기 때문에 그의 말에 모순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보호하려 하지만 자기의 견해를 인정할 수 없는 잘못을 범하고 만다, 결국 단견에 대한 단멸을 증하는 꼴이 되고만 것이다.(MA.iii.204)  
*악기웻사나(Aggivessana)는 웨살리의 종족의 이름인 듯하다. 니까야에서 악기웻사나라는 이름은 본경에서 디가나카 유행승을 부를 때와 본서 「삿짜까 짧은 경」(M35)과 「삿짜까 긴 경」(M36)에서는 삿짜까를 부를 때 나타나고, 「길들임의 단계 경」(M125)에서는 아찌라와띠 사미도 이렇게 호칭되고 있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사문과 경」(D2)에서는 니간타 나따뿟따가 악기웻사나라 호칭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웨살리 출신들이다. 그러므로 악기웻사나는 웨살리 지방에 사는 왓지 족들에게 사용되던 족성의 호칭이었던 듯하다.

 

202. 이렇게 말씀하시자 디가나카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의 편향된 견해를(저의 견해를) 칭찬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의 편향된 견해를 매우 칭찬합니다.라고."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그들이 인정하는 그런 견해는 욕망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기쁨에 가깝고, 묶임에 가깝고, 집착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은 그런 견해는 욕망 없음에 가깝고, 족쇄 없음에 가깝고 기쁨 없음에 가깝고, 묶임 없음에 가깝고, 집착 없음에 가깝습니다. 거기서, 악기웨사나여,  '나에게 모든 것은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는 나의 이런 견해를 만약 내가 강하게 집착하고 경향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리이며 다른 것은 쓸모없다.'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그리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이런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툼이 있을 때 논쟁이 있고, 논쟁이 있을 때 성냄이 있고, 성냄이 있을 때 해침이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서 다툼과 논쟁과 성냄과 해침을 관찰하는 그는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버립니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움켜쥐지 않습니다.

 

203.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면 나의 이런 견해를 만약 내가 강하게 집착하고 경향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리이며 다른 것은 쓸모없다.'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그리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이런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툼이 있을 때 논쟁이 있고, 논쟁이 있을 때 성냄이 있고, 성냄이 있을 때 해침이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서 다툼과 논쟁과 성냄과 해침을 관찰하는 그는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버립니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움켜쥐지 않습니다.  

 

204.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나의 이런 견해를 만약 내가 강하게 집착하고 경향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리이며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그리고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이런 두 사람과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툼이 있을 때 논쟁이 있고, 논쟁이 있을 때 성냄이 있고, 성냄이 있을 때 해침이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서 다툼과 논쟁과 성냄과 해침을 관찰하는 그는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버립니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움켜쥐지 않습니다.  

 

205. 악기웻사나여,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사대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죽으로 성장했으며,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불행이라고 고뇌라고 남이라고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해야 합니다. 이 몸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불행이라고 고뇌라고 남이라고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하는 그에게 몸에 대한 욕망과 몸에 대한 애정과 몸에 대한 집착이 버려집니다.  

 

악기웻사나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악기웻사나여,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때에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지 않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오직 즐거운 느낌만 경험합니다. 악기웻사나여, 괴로운 느낌을 경험할 때에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지 않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오직 괴로운 느낌만을 경험합니다. 악기웻사나여, 괴로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할 때에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지 않고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오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을 경험합니다. 

 

 악기웻사나여, 즐거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고(형성된 것이고),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고(연기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고, 탐냄을 떠난 법이고, 소멸하는 법입니다. 악기웻사나여, 괴로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고,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고, 탐냄을 떠난 법이고, 소멸하는 법입니다. 악기웻사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고,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고, 탐냄을 떠난 법이고, 소멸하는 법입니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즐거운 느낌도 염오하고, 괴로운 느낌도 염오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염오합니다. 염오하기 때문에 탐욕이 사라집니다. 탐욕이 사라짐으로 해탈합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깁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압니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해탈된 마음을 가진 비구는 누구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고 누구에 대해서도 다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말해진 것을 붙잡지 않고 살아갑니다.

 

206.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사리뿟따 존자가 부채를 부치면서 뒤에 서 있었다그때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참으로 세존께서는 거듭 그 법들을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버리는 것을 말씀하셨다. 참으로 선서께서는 거듭 그 법들을 완전한 지혜로 안 뒤에 놓아 버리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렇게 숙고하는 사리뿟따 존자의 마음은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해탈했다. 그리고 디가나카 유행승에게 '무엇이든 생기기 마련인 것은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이 생겼다. 그렇게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을 관통하고,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게 된 디가나카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법(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합니다." 

 

*본경은 사리뿟따 존자의 깨달음의 현장을 묘사하는 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모든 것을 인정한다거나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견해의 문제를 지적한 뒤 그 견해들을 버리고 놓고서 물질과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설명합니다. 이때,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존재의 긍정 즉 유(有)의 견해이고,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의 부정 즉 무(無)의 견해로 간주하여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과 연결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법안이 생겨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게 된 디가나카 유행승은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됩니다.

 

 

디가나카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