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78. 사문 문디까 경(samaṇamuṇḍikasuttaṃ)
26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은 오백 명이나 되는 큰 유행승의 대중과 함께 띤두까 나무껍질로 지어지고 하나의 강당으로 된 토론장인 말리까 숲에 머물렀다. 그런데 빤짜깡가 목수가 한낮에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 제타 숲으로 향했다. 제타 숲으로 향하는 도중에 빤짜깡가 목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세존을 친견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다. 세존께서는 홀로 머묾에 들어 계신다. 마음으로 존경받을 만한 비구들을 친견하기에도 적당한 때가 아니다. 마음으로 존경받을 만한 비구들도 홀로 머묾에 들어 계신다. 나는 띤두까 나무껍질로 지어지고 하나의 강당으로 된 토론장인 말리까 숲에 있는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을 만나러 가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빤짜깡가 목수는 띤두까 나무껍질로 지어지고 하나의 강당으로 된 토론장인 말리까 숲에 있는 사문 만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에게 갔다.
*'욱가하마나(Uggahamana)'는 그의 유행승으로서의 이름이었고, 본래의 이름은 수마나(Sumana)였다. 무엇이든 섭수할 수 있고 섭수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욱가하마나라고 불렀다고 한다.(MA.iii.265)
*"그곳에서 많은 바라문들과 출가자들이 함께 모여 각자 자기의 교리를 천명하고 드러내고 설명했기 때문에 그 사원은 '토론장소(samaya-ppavadaka)'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그것은 띤두까 나무라고 불리는 띰바루 나무를 정렬하여 사방으로 둘러쌌기 때문에 '띤두까 나무로 지어진'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처음에는 한 개의 강당만 있었는데 나중에 덕 높은 유행승인 뿟타빠다에 의해 많은 강당이 들어섰다. 그러므로 그 한 개의 강당에 대해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에 '하나의 강당(eka-salaka)'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왕비인 말리까(Mallika)에 의해 만들어진 말리까의 정원이었는데 꽃과 과일로 가득 찬 숲으로 만들어 '말리까의 숲(Mallikaya arama)'이라고 불렸다."(MA.iii.266)
그때 사문 문디까의 아들 욱가하마나 유행승은 큰 유행승의 대중과 함께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예를 들면, 즉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등 하챦은 이야기를 하면서 앉아 있었다.
사문 문디까의 아들 욱가하마나 유행승은 멀리서 오고 있는 빤짜깡가 목수를 보았다. 본 뒤에 자기의 대중을 정돈시키고 조용히 하도록 했다.
"존자들은 조용히 하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시오. 사문 고따마의 제자인 빤짜깡가 목수가 오고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인 흰옷을 입은 재가자들이 사왓티에 살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오. 그 존자는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으로 길들여져 있고, 조용함을 칭송합니다. 만약 우리 대중이 조용한 것을 알면 그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유행승들은 조용히 했다.
261. 빤짜깡가 목수는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빤짜깡가 목수에게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은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선한 법을 갖춘 자, 궁극의 선함(선.善),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어떤 넷입니까? 여기, 장자여, 몸으로 삿된 업을 짓지 않고, 삿된 말을 하지 않고, 삿된 사유를 하지 않고, 삿된 생계로 삶을 영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자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선한 법을 갖춘 자, 궁극의 선함(선.善),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자 빤짜깡가 목수는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의 말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부정하지도 못했다. 인정하지도 못하고 부정하지도 못한 채 '나는 세존의 앞에서 이 말의 의미를 알아봐야 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빤짜깡가 목수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빤짜깡가 목수는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과 함께 나누었던 우정의 대화를 그대로 모두 세존께 말씀드렸다.
262.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빤짜깡가 목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수여,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의 말과 같다면,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가 선한 법을 갖춘 자, 궁극의 선함,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자일 것이다. 목수여,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참으로 몸이라고 할 것도 없고 단지 움직일 뿐인데 어디로부터 몸에 의한 삿된 업(악업.惡業)을 지을 것인가?
목수여,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참으로 말이라고 할 것도 없고 단지 울 뿐인데 어디로부터 말에 의한 삿된 업을 지을 것인가? 목수여,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참으로 사유라고 할 것도 없고 단지 잠만 잘 뿐인데 어디로부터 악한 사유를 할 것인가? 목수여,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생계라고 할 것도 없고 단지 어머니의 젖을 먹을 뿐인데 어디로부터 삿된 생계로 삶을 영위할 것인가? 목수여,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의 말과 같다면,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가 선한 법을 갖춘 자, 궁극의 선함,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자일 것이다.
263. 목수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은 선한 법을 갖춘 자도 아니고, 궁극의 선함도 아니고,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도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오히려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의 특징을 얻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목수여, 몸으로 삿된 업을 짓지 않고, 삿된 말을 하지 않고, 삿된 사유를 하지 않고, 삿된 생계로 삶을 영위하지 않는 것이다. 목수여,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사람은 선한 법을 갖춘 자도 아니고, 궁극의 선함도 아니고,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도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오히려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의 특징을 가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목수여,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선한 법을 갖춘 자, 궁극의 선함,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이라고 나는 말한다.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dasahi dhammehi samannagata purisa-puggala)'는 본경 마지막에 나타나는 무학의 열 가지 바른 길 즉 바른 견해로부터 바른 해탈까지를 갖춘 사람을 말한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다음부터 각각 '선하지 않은 계행', '선한 계행', 선하지 않은 사유', '선한 사유'를 말씀하시고 마지막에 무학의 열 가지를 갖춘 사람을 설명하신다.
목수여, '이것이 선하지 않은 계행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하지 않은 계행은 여기로부터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하지 않은 계행은 여기에서 남김없이 소멸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런 길(道)을 닦는 것이 선하지 않은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길을 닦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것이 선한[善] 계행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한 계행은 여기로부터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한 계행은 여기에서 남김없이 소멸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런 길을 닦는 것이 선한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길을 닦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것이 선하지 않은 사유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하지 않은 사유는 여기로부터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하지 않은 사유는 여기에서 남김없이 소멸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런 길(道)을 닦는 것이 선하지 않은 사유를 소멸하기 위한 길을 닦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것이 선한 사유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한 사유는 여기로부터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선한 사유는 여기에서 남김없이 소멸한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런 길(道)을 닦는 것이 선한 사유를 소멸하기 위한 길을 닦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264. 그러면 목수여, 무엇이 선하지 않은 계행인가?
선하지 않은 몸의 업, 선하지 않은 말의 업, 선하지 않은 생계이다. 목수여, 이것이 선하지 않은 계행이라고 불린다.
목수여, 무엇이 이 선하지 않은 계행의 일어남인가?
그것들의 일어남도 말했다. 마음의 일어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떠한 마음인가? 마음도 참으로 많고 다양하고 여러 종류가 있다. 탐욕이 있는, 성냄이 있는,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으로부터 선하지 않은 계행은 일어난다.
목수여, 이 선하지 않은 계행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그것들의 소멸도 설했다. 여기, 목수여, 비구는 몸의 선하지 않은 행위를 버리고 몸의 선한 행위를 닦는다. 말의 선하지 않은 행위를 버리고 말의 선한 행위를 닦는다. 마음의 선하지 않은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선한 행위를 닦는다. 선하지 않은 생계를 버리고 선한 생계로 삶을 유지한다. 여기서 이 선하지 않은 계행이 남김없이 소멸한다.
*'여기서 선하지 않은 계행들은 남김없이 소멸한다(etthete akusalasila aparicesa nirujjhanti)'는 것은 예류과이 경지를 말한다. 빠띠목카의 단속을 통한 계행은 이 예류과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곳에 이르러서 해로운 계행들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MA.iii.269)
*해로운 계행, 선하지 않은 계행, 나쁜 계행은 모두 동의어이다.
목수여, 어떤 닦음이 선하지 않은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닦음인가?
여기, 목수여,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런 닦음이 선하지 않은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닦음이다.
*여기서 예류도까지를 두고 해로운 계행들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류과를 얻었을 때는 그것들은 이미 소멸되었다.(MA.iii.269)
265. 그러면, 목수여, 무엇이 선한 계행인가?
선한 몸의 업, 선한 말의 업이다. 건축가여, 청정한 생활도 계에서 나는 말한다. 목수여, 이것이 선한 계행이라 한다.
목수여, 무엇이 선한 계행의 일어남인가?
그것들의 일어남도 말했다. 마음의 일어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떤 마음인가? 마음도 참으로 많고 다양하고 여러 종류가 있다. 탐욕이 없는, 성냄이 없는,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으로부터 선한 계행은 일어난다.
목수여, 이 선한 계행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그것들의 소멸도 말했다. 여기 목수여, 비구는 계를 지닌다. 그러나 계를 지니는데 그치지 않는다. 선한 계행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여기서 선한 계행들이 남김없이 소멸한다'는 것은 아라한과의 경지를 말한다. 아라한과에 이르러 선한 계행들이 남김없이 소멸하기 때문이다.(MA.iii.270)
목수여, 어떤 닦음이 선한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닦음인가?
여기, 목수여,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런 닦음이 선한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닦음이다.
266. 그러면 목수여,무엇이 선하지 않은 사유인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유, 성냄(악의)에 대한 사유, 해코지에 대한 사유이다. 목수여, 이것이 선하지 않은 사유라고 불린다.
목수여, 무엇이 이 선하지 않은 사유의 일어남인가?
그것들의 일어남도 말했다. 인식의 일어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떠한 인식인가? 인식도 참으로 많고 다양하고 여러 종류가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인식, 성냄에 대한 인식, 해코지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선하지 않은 사유가 일어난다.
목수여, 이 선하지 않은 사유는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그것들의 소멸도 말했다. 여기 목수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서 이 선하지 않은 사유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여기서 초선은 불환과의 초선이다. 불환과를 얻었을 때 해로운 사유들이 남김없이 소멸하기 때문이다.(MA.iii.270)
목수여, 어떤 닦음이 선하지 않은 사유를 소멸하기 위한 닦음인가?
여기, 목수여,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해서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이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런 닦음이 선하지 않은 사유를 소멸하기 위한 닦음이다.
*여기서는 불환도까지 닦는 것을 해로운 사유들을 소멸하기 위한 닦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환과에 이르러서는 그들이 소멸했다고 한다.(MA.iii.270)
267. 그러면 목수여, 무엇이 선한 사유인가?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성내지 않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이다. 목수여, 이것이 선한 사유라고 불린다.
목수여, 무엇이 이 선한 사유의 일어남인가?
그것들의 일어남도 말했다. 인식의 일어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떠한 인식인가? 인식도 참으로 많고 다양하고 여러 종류가 있다. 출리(出離)에 대한 인식, 성냄 없음에 대한 인식, 해코지 않음으로부터 선한 사유가 일어난다.
목수여, 이 선한 사유는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그것들의 소멸도 말했다. 여기, 목수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서 이 선한 사유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이것은 아라한과의 경지를 말한다. 아라한과의 제2선에 이르러 선한 사유들이 남김없이 소멸하기 때문이다.(MA.iii.270)
목수여, 어떤 닦음이 선한 사유를 소멸하기 위한 닦음인가?
목수여, 여기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해서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이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목수여, 이런 닦음이 선한 사유를 소멸하기 위한 닦음이다.
*여기서는 아라한도까지 닦는 것을 선한 사유들을 소멸하기 위해 닦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라한과에 이르러서는 그들이 소멸했다고 한다.(MA.iii.270)
268. 그러면 목수여, 어떤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선한 법을 갖춘 자, 궁극의 선함,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는가?
여기 목수여, 비구는 무학(無學)의 바른 견해를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사유를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말을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행위를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생계를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정진을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마음챙김을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삼매를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지혜를 갖추었고, 무학의 바른 해탈을 갖추었다. 목수여,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을 선한 법을 갖춘 자, 궁극의 선함, 최고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이라고 나는 말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빤짜깡가 목수는 즐거워하며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다.
사마나만디까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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