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79. 사꿀루다이 짧은(작은) 경(cūḷasakuludāyisuttaṃ)

실론섬 2016. 4. 28. 17:07

MN 79. 사꿀루다이 짧은(작은) 경(cūḷasakuludāyisuttaṃ)

 

26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공작 보호구역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에서 많은 유행승의 대중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라자가하로 탁발을 가셨다. 세존께서는 탁발을 하시러 가는 도중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라자가하로 탁발하러 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나는 공작 보호구역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가야겠다.'라고. 그래서 세존께서는 공작 보호구역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가셨다. 

 

그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많은 유행승의 대중과 함께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예를 들면,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등 여러 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하면서 앉아 있었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멀리서 오고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본 뒤에 자신의 대중을 정돈시키고 조용히 하도록 했다.

"존자들은 조용히 하십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습니다. 저 존자는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으로 길들여져 있고, 조용함을 칭찬합니다. 만약 우리 대중이 조요한 것을 알면 그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유행승들은 조용히 했다.

 

270. 그러자 세존께서는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다가 가셨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잘 오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세존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사꿀루다이 유행승도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다이여,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습니까? 그대들 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앉아서 하던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냥 두십시오. 그 이야기는 세존께서 나중에라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대중에 오지 않았을 때는 이 대중은 여러 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제가 이 대중에 올 때는 이 대중은 '우리는 사문 우다이가 우리에게 설하는 법을 들을 것이다.'라며 저의 얼굴을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 대중에 오셨을 때는 저와 이 대중은 '우리는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설하는 법을 들을 것이다.'라며 세존을 바라보며(입을 보며) 앉아 있습니다." 

 

271. "그렇다면, 우다이여, 여기서 나의 대답을 원하는 것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최근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자라면서 '나는 걸어갈 때에도, 서 있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에도 언제나 항상 앎과 봄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완전한 앎과 봄을 선언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과거에 관한 질문을 하면 그는 다른 질문으로 그 질문을 피해가고, 화제를 바꾸어버리고,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에게 ''참으로 이 법들에 아주 능숙하신 세존께서 계신다. 참으로 선서(善逝)께서 계신다.'라고 세존에 대한 기억이 일어났습니다(환희심이 생겼습니다)."

"우다이여, 그대로부터 과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른 질문으로 그 질문을 피해가고, 화제를 바꾸어버리고,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낸 사람, 모든 것을 알고 보는 자라면서 '나는 걸어갈 때에도 서 있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에도 언제나 항상 앎과 봄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완전한 앎과 봄을 선언하는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는 니간타 나따뿟따입니다." 

 

"우다이여,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여러 전생의 존재 상태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과거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고, 내가 그에게 과거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그는 과거에 관한 내 질문에 대답하여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내가 과거에 관한 그의 질문에 대답하여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다이여,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볼 수 있는 사람, 즉,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볼 수 있고,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알아 차리는 사람이, 나에게 미래에 관해 질문을 하거나 내가 그에게 미래에 관해 질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그는 미래에 관한 내 질문에 대답하여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내가 미래에 관한 그의 질문에 대답하여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쨋거나 우다이여, 과거도 그만두고(내버려 두고) 미래도 그만두고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이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이것이 소멸한다.' 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현재의 이 몸으로 경험한 것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상세하게 기억해 내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제가 세존처럼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즉, 한 생, 두 생 ···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여러 전생의 존재 상태를 기억할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진흙탕에서 나타난 귀신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가 세존처럼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의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또한 세존께서는 '어쨌거나 우다이여, 과거도 그만두고 미래도 그만두고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이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할 때 이것이 소멸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저에게 더욱더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희 스승들의 가르침에 대한 질문의 상세한 설명으로 세존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272. "우다이여, 그대들 스승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다이여,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는 그대들 스승의 가르침에서 무엇이 그 최상의 광명입니까?"

"세존이시여,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

 

"무엇이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는 최상의 광명입니까?"

"세존이시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

 

"우다이여, 그대가 '고따마 존자이시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라고 말하는 이것은 그대에게 오랫동안 주장될 것입니다(그대의 이런 이야기는 오래 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광명을 천명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우다이여,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고 갈망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갈망하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끄샤뜨리야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와이샤 여인인지, 수드라 여인인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갈망하는, 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이런 이름, 이런 성이라고 그대는 아는가? 라고 ···  키가 큰지 작은 지 중간인지, 피부색이 검은지 갈색인지 노란색인지 ··· 어떤 마을이나 성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원하고 갈망하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주장될 것입니다'라는 것은 즉 우다이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백 년 혹은 천 년 동안 계속한다고 해도 그 뜻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말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MA.iii.273)

 

우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으로 이와 같다면 그 사람의 말은 터무니 없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그 사람의 말은 터무니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우다이여, 그대가 '세존이시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광명을 선언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붉은 색의 담요 위에 놓인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에메랄드는 빛나고 밝고 눈부십니다. 이런 광명이 죽은 뒤에 병이 없는 자아입니다(이러한 광명이 자아이고 죽고 나서도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광명이 자아다(evamvanno atta hoti)'라는 것은 그가 색계 제3선천인 변정천(subhakinha-devaloka)에 태어난 무더기를 두고 '우리가 죽을 때에 자아는 변정천의 무더기처럼 빛을 발합니다.'라고 말한 것일 뿐이다."(MA.iii.273)  

 

273.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붉은 색의 담요 위에 놓인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에메랄드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반딧불이 있을 때,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세존이시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반딧불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반딧불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기름등불이 있을 때,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세존이시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기름 등불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기름 등불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큰 모닥불이 있을때,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세존이시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큰 모닥불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큰 모닥불과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새벽하늘의 밝은 별이 있을 때,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세존이시여,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새벽하늘의 밝은 별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새벽하늘의 밝은 별과 보름의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의 보름달이 있을때,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세존이시여, 보름날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의 보름달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보름날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의 보름 달과 우기의 마지막 달에 우기를 뒤따르는 계절의 깨끗하고 비구름이 물러간 하늘에서 한낮에 뜬 태양이 있을 때,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세존이시여, 우기의 마지막 달에 우기를 뒤따르는 계절의 깨끗하고 비구름이 물러간 하늘에서 한낮에 뜬 태양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그렇듯이, 우다이여, 이런 해와 달의 광명이 미칠 수 없는 그런 광명을 지닌 더 훌륭한 많은 신들을 나는 분명히 압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은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깟짜나여, 그대는 '반딧불보다 더 보잘것 없고 더 희미한 광명이 최상의 광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광명을 선언하지 못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논의의 결말을 내버렸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우다이여, 왜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까?"

"세존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저희는, 세존이시여, 세존과 함께 서로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면서 저희 스승의 가르침이 부족하고, 텅 비고,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274.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습니까(오로지 행복뿐인 세상이 있습니까)?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근거있는 닦음)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다.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이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은 무엇입니까?"

"여기,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납니다. 그리고 어떤 고행에 속한 것을 받아들여 행합니다이것이 세존이시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그 닦음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멀리 떠날 때, 자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자아는 오로지 행복만을 느낍니까, 아니면 행복과 즐거움을 다 느낍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날 때, 자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날 때, 자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우다이여,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날 때, 자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우다이여, 어떤 고행에 속한 것을 받아들여 행할 때, 자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우다이여, 행복과 괴로움이 섞인 닦음으로도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할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우다이여, 왜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까?"
"세존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다.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이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저희는, 세존이시여, 세존과 함께 서로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면서 저희 스승의 가르침이 부족하고, 텅 비고,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275. "그런데, 세존이시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은 있습니까?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은 있습니까?"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고,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그 닦음은 무엇입니까?"

 

"여기, 우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이것이,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그 닦음입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이 아닙니다. 참으로 세존이시여, 이 시점에서 이미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실현된 것입니다(이만큼이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입니다)."

"참으로 우다이여, 이 시점에서 아직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실현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닦음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대중은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해졌다. 

'여기에 우리는 스승에게서 전승된 것이 없는가? 여기에 우리는 스승에게서 전승된 것이 없는가? 우리는 이것을 능가하는 더 높은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라고.

그러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그 유행승들을 진정시킨 뒤 세존에게 "그러면, 세존이시여, 어떤 시점에서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실현됩니까?"라고 말했다.

"우다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오로지 행복한 세상에 태어난 그 신들과 함께 머물고 대화하고 토론합니다. 참으로 우다이여, 이 시점에서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실현됩니다."

 

*유행승들은 '우리는 이것을 능가하는 더 높은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이제 우리는 스승들의 가르침과 함께 망했다).'라고 했다.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말했는가? 그들은 수행자들이 이전에는 다섯 가지 법들에 확고하게 머물러 까시나를 대상으로 한 준비 작업(까시나를 통한 수행의 예비 단계)을 지어 제3선을 일으켜서 그 선정에 든 채 임종하여 변정천(Subhakinha)에 태어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까시나를 대상으로 한 준비 작업도 알지 못했고 제3선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섯 가지 예비단계의 법들을 '오로지 행복한 세상(ekanta-sukha loka)'을 실현하는 '조건을 갖춘 닦음'이라고 여기고, 제3선을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MA.iii.275)

*"다섯 가지 법들보다 더 높은 닦음, 혹은 제3선보다 더 높은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ekanta-sukha loka)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MA.iii.275) 

 

276. "참으로 세존이시여, 이런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을 원인으로(실현하기 위해서) 비구들은 세존에게서 범행의 삶을 삽니까?"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을 원인으로 비구들이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우다이여,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들이 있습니다. 비구들은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삽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더 높고 더 수승한 법들이 어떤 것이기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비구들이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우다이여, 여기 바라문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립니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습니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집니다. 얻어진 그 믿음을 갖춘 그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재가의 삶이란 갇혀  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완전무결하고 청정무구한 잘 닦여진 자개껍질과 같은 청정한 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해야겠다.'라고. 그는 얼마 뒤에 재산이 많이 있거나 적거나 간에 모두 버리고, 일가친척 또한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옷을 입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합니다. 

 

이렇게 출가하여 비구들의 학습계목을 갖춘 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몽둥이를 내려놓았고 칼을 내려놓았고,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으로 머뭅니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준 것만을 받는 자이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는 자이고, 스스로 훔치지 않는 청정한 존재로 머뭅니다.
그는 범행(梵行) 이 아닌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범행을 닦는 자입니다. 독신자이고, 저속한 성행위를 멀리 떠납니다.
그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이고,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고, 세상을 속이지 않습니다(세상을 위해 진실을 말합니다).
그는 이간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이간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습니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는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단결을 가져오는 자입니다.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합니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적절한 때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이익이 있는 것을 말하고, 법에 맞게 말하고, 율에 맞게 말합니다. 적절한 때에, 근거를 갖춘, 절제된, 이익되는 말을 합니다.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을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하루 한끼만 먹습니다. 밤에 먹은 것을 여의고 때 아닌때에 먹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춤, 노래, 음악,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화환을 두르고 향과 화장품을 바르고 장신구로 꾸미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여인이나 어린 소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코끼리, 소, 말 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사고파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저울을 속이고 돈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뇌물을 주고, 속이고, 사기치고, 정직하지 않은 어떠한 종류의 부정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납니다. 
그는 남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거나 또는 누군가를 강제하고 구속하여 폭력을 행하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합니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資具)[필수품]을 몸에 지니고 갑니다. 예를 들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기 양 날개만으로 날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資具)을 몸에 지니고 갑니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그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세세한 부분상(受細相)을 붙잡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의 눈의 근(眼根)이 보호되지 않은 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상들의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눈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길들이기 위해서,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습니다. ···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맛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지각)하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세세한 부분상도 붙잡지 않습니다. 만약 그의 마음의 근(意根)이 보호되지 않은 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의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마음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길들이기 위해서,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습니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의 근의 보호를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그는 나아갈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正知] 행합니다. 앞을 볼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구부릴 때도 펼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먹을 때도 마실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대소변을 볼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걸으면서 서면서 앉으면서 잠들면서 잠을 깨면서 말하면서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비어 있는 장소에 의지합니다.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습니.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뭅니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악의의 오점[악의와 성냄]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악의와 성냄]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뭅니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 차리며[正念‧正知]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뭅니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뭅니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뭅니다.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요,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다시 우다이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다시 우다이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다시 우다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우다이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합니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합니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합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우다이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합니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봅니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립니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봅니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립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우다이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합니다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번뇌다. ’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ㅏ알아 차립니다.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감각적 쾌락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합니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합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합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깁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압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277.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대중은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다이여, 존자께서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우다이여, 스승이었던 존자께서 제자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예를 들면, 큰 물동이었다가 작은 물동이가 될 것입니다. 우다이 존자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다이여, 존자께서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마십시오. 우다이여, 스승이었던 존자께서 제자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라고. 

이렇게 세존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기 위해 오는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이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대중은 장애가 되었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과거 깟사빠 세존의 시대에 출가하여 사문의 법을 닦았다. 그런데 그의 동료 비구가 교단에 흥미를 잃어 버려서 '도반이여, 나는 환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의 발우와 가사가 탐이 나서 환속하도록 부추겼다. 그리하여 그 동료는 그에게 발우와 가사를 주고 승단을 떠났다. 그 업으로 지금의 세존 곁으로 출가하는 것에 장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앞이 경에서도 길게 설법을 하셨고, 본 경에서도 길게 법을 설하셨다. 이 설법으로 그가 도와 과를 통찰하지는 못하지만 통찰을 위한 미래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아시고 법을 설하셨다.
세존께서는 미래의 조건을 보시고는 자애관을 닦으면서 머무는 자에 관한 한 어떤 비구도 이 사람의 앞에 앉히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미래에 이 사람이 나의 교단에 출가하여 자애관을 닦으면서 머무는 자들 가운데 최고가 돌 것이라고 아셨기 때문이다.
그는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신 뒤에 아소까 왕의 시대에 빠딸리따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는 앗사곳따 장로라는 이름으로 자애관을 닦으면서 머무는 자들 가운데 상수가 되었으며 전인도 비구 승가의 교계사(ovad-avariya)가 되었다. ··· 아소까 왕이 장로의 공덕을 듣고 친견하기를 청하여 세 번이나 사신을 보냈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MA.iii.275-276)

 

 

사꿀루다이 짧은 경(M79)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