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08. 고빠까목갈라나 경(gopakamoggallānasuttaṃ)
7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렀는데, 세존께서 완전히 열반하고 오래지 않아서였다. 그 당시 마가다의 왕 아지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빳조따 왕을 의심하여 라자가하를 요새화하게 하였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라자가하로 탁발을 갔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라자가하로 탁발을 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나는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의 작업장으로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에게 가야겠다.'라고.
*"'세존께서 완전히 열반하고 오래지 않아(acira-parinibbute bhagavati)'라는 것은 세존의 사리를 분배한 뒤 아난다 존자가 경의 합송을 위해 라자가하로 돌아왔을 때를 말한다."(MA.iv.70)
*아자따삿뚜 왕은 모든 경에서 이처럼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위데하뿟따(raja Magadha Ajatasattu Vedehiputta)'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아자따삿뚜라는 이름은 왕의 적(sattu)은 태어나지 않을 것(aiata)이라는 점성가들의 예언때문이었다(DA.i.133). 또 그가 위데히뿟따(위데하의 여인의 아들)이라 불린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가 위데하 출신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는 꼬살라 왕의 딸이며, 위데히는 현자와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있다(DA.i.139). 아자따삿뚜는 빔비사라 왕의 아들인데 부친인 빔비사라 왕을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우다이밧다(Udayibhadda)에 의해서 살해당할까 항상 두려워했고, 그래서 아들이 출가하기를 바랐다고 한다(DA.i.153). 그러나 결국은 그도 그의 아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아자따삿뚜 왕은 32년간 왕위에 있었다고 하며 그가 왕으로 있을 때 왓지를 정복하고 꼬살라를 병합하여 빠딸라뿟따를 마가다 국의 수도로 지정했다.
*'짠다빳조따(Candapajjota)'라는 이름의 이 왕은 빔비사라 왕의 친구였다. 짠다빳조따 왕이 병들었을 때 빔비사라 왕이 그의 주치의인 자와까를 보내어 치료하게 한 뒤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아자따삿뚜 왕은 아버지의 친구인 빳조따 왕이 자기에게 복수할 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MA.iv.71).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의 작업장으로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에게 다가갔다.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은 멀리서 오고 있는 아난다 존자를 보았다.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오십시오, 아난다 존자여. 아난다 존자께서는 잘 오셨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기에 오랫만에 오셨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준비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아난다 존자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도 다른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아라한‧정등각이었던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성취하였던(갖추었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성취한(갖춘)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성취하였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성취한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길(道)을 일으킨 분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길을 생기게 한 분이고, 아직 설해지지 않은 길을 설한 분이고, 길을 아는 분이고, 길을 발견한 분이고, 길에 능숙한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자들은 그 길을 따라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성취하여 머뭅니다."라고.
그러나 아난다 존자와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의 이 대화는 중단 되었다.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이 라자가하를 요새화하는 일을 감독하러 왔다가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의 작업장으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모였 앉았습니까? 그리고 두 분께서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바라문이여, 여기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아라한‧정등각이었던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성취하셨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성취한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성취하셨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성취한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길을 일으킨 분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길을 생기게 한 분이고, 아직 설해지지 않은 길을 설한 분이고, 길을 아는 분이고, 길을 발견한 분이고, 길에 능숙한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자들은 그 길을 따라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성취하여 머뭅니다.'라고.
이것이 바라문이여, 내가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과 함께 서로 나눈 이야기인데 끝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앗사까라 바라문(Vassakara brahmana)은 마가다 왕인 아자따삿뚜의 대신이었다.
「디가 니까야」 제2권 「대반열반경」(D16)에는 같은 마가다의 대신인 수니다(Sunidha)와 함게 왓지를 공격하기 위해서 빠딸리 마을에 성을 건설하는 감독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대반열반경」(D16)에 의하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위데히뿟따는 왓지를 정복하기 위해서 마가다의 대신인 이 왓사까라 바라문을 세존께 보내서 세존의 말씀을 듣게 한다. 세존께서는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신다. 그가 본경을 통해서 세존이 반열반에 드신 후에 제자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난다 존자와 나눈 대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와 관계된 경으로는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왓사까라 경」(A4.35)와 「들음 경」(A4.183)과 「왓사까라 경」(A7.20)등이 있다.
80. "아난다 존자시여, 그분 고따마 존자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귀의처(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한 사람의 비구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승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승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렇게 귀의처가 없을 때, 누가 화합의 원인이 됩니까(무엇을 근거로 해서 화합합니까)?"
"바라문이여, 우리는 귀의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귀의처가 있습니다. 법이 귀의처입니다."
*(DN 16-대반열반경, 세존의 마지막 말씀) ― “아난다여, 그런데 그대들은 '이전에는 스승이 있었다. 이제는 스승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난다여. 그러나 이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선언한 법과 율이 내가 가고난 후에는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귀의처가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승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승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렇게 귀의처가 없을 때, 누가 화합의 원인이 됩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우리들은 귀의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귀으치ㅓ가 있습니다. 법이 귀의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81.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비구들을 위해 제정한 학습계목과 암송해야 하는 빠띠목카(계목)가 있습니다. 한 마을을 의지하여 머무는 우리는 포살일에 모두 함께 모입니다. 모여서 빠띠목카를 암송하는 비구에게 빠띠목카의 암송을 요청합니다. 만약 빠띠목카를 암송할 때 비구에게 계를 범한 것이 있고 위반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 비구를 법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조치합니다(스승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법에 따라 승가갈마를 행합니다). 참으로 존자가 우리를 조치하지 않고, 법이 우리를 조치합니다(우리들을 다루는 것이 존자가 아니라 법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지금 그대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그런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지금 우리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본 경의 대화는 ①세존에 의해 귀지처가 될 것이라고 정해준 사람도 없고, ②승가의 동의로써 정해진 사람도 없으며, ③의지하여 머무는 사람도 없다고 진행된다. 그러나 그간의 해석에서는 ③‘의지하여 머무는 한 명의 사람이 있다.’라고 해석되어서 경의 가르침이 극명하게 혼동되어 있는 것을 원전 그대로의 해석을 통해 바로잡았다. 경은 분명히 사람이 의지처가 될 수 없고 오직 법이 귀의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참고로 본 경이 참고로 하고 있는 미얀마 6차 결집본과 그리고 다른 분들이 참고로 하고 있는 PTS본과 다른 분들의 번역을 함께 올려 놓았다.
• (6차 결집 본) “natthi kho, brāhmaṇa, ekabhikkhupi yaṃ mayaṃ etarahi sakkaroma garuṃ karoma mānema pūjema;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āmā”ti.
• (PTS 본) “N'atthi kho brāhmaṇa, eka bhikkhū pi yaṃ mayaṃ etarahi sakkaroma, garukaroma, mānema, pūjema, sakkatvā garukatvā upanissāya viharāmā” ti.
• (초기불전연구원) “바라문이여, 지금 우리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며, 존경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의지하여 머무는 그런 비구는 한 명 있습니다.”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바라문이여, 지금 내가 존중하고 존경하고 공경하고 예배할 뿐만 아니라 존중하고 존경하여 의지해서 사는 한 사람의 수행승이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귀의처가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승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라고 승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지금 그대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그런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지금 우리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그런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82.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선언한 믿음으로 이끄는 열 가지 법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 법이 있을 때라면(있는 곳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뭅니다. 어떤 열 가지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 (6차 결집 본) “atthi kho, brāhmaṇ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asa pasādanīyā dhammā akkhātā. yasmiṃ no ime dhammā saṃvijjanti taṃ mayaṃ etarahi sakkaroma garuṃ karoma mānema pūjema;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āma. katame dasa?
• (PTS본) “Atthi kho brāhmaṇ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amBuddhena dasa pasādanīyā dhammā akkhātā, yasmiṃ no ime dhammā saṃvijjanti. Taṃ mayaṃ etarahi sakkaroma garukaroma mānema pūjema. Sakkatvā garukatvā upanissāya viharāma. Katame dasa?
• (초기불전연구원)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이신 그분 세존께서는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열 가지 법을 설하셨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이런 법을 가지고 있는 자를 우리는 지금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며, 존경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의지하여 머뭅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요?”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바라문이여, 세상에서 존경받는 님,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 의해서 선포된 열 가지 청정한 믿음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자에게 이러한 원리가 발견되면, 우리들은 그를 존중하고 존경하고 공경하고 예배할 뿐만 아니라 존중하고 존경하여 의지해서 삽니다. 그 열 가지 원리란 어떠한 것입니까?.”
①비구는 계를 중시합니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습니다.
②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명심하고(잘 간직하고), 배운 것을 쌓습니다(잘 정리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들과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선언하는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만족하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 사유하고(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습니다(알아 차립니다).
③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에 의해서 만족합니다.
④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의 단계를 바라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습니다.
⑤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합니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습니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속에서와 같습니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습니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습니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습니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칩니다.
⑥신성한 귀의 요소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합니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요소)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습니다.
⑦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립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탐욕을 여읜 마음은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성냄을 여읜 마음은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은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집중한 마음은 집중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산란한 마음은 산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고귀한 마음(광대한 마음)은 고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고귀하지 않은 마음(광대하지 않은 마음)은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위가 없는 마음은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삼매를 얻은 마음은 삼매를 얻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은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리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립니다.
⑧여러 전생을 기합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계),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 합니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합니다.
⑨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중생들의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좋은 곳[善處],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립니다.
⑩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 [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선언한 믿음으로 이끄는 이런 열 가지 법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 법들이 있을 때라면(있는 곳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뭅니다."라고.
83. 이렇게 말했을 때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은 대장군 우빠난다에게 말했다.
"대장군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존자들은 존경해야 하는 것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을 존중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을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는 것을 예배합니까?"
"참으로 이 존자들은 존경해야 하는 것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을 존중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을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는 것을 예배합니다. 참으로 이 존자들이 이것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지 않는다면, 이제 이 비구들은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물겠습니까?"
그리고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지금 대나무 숲(웰루와나)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대나무 숲은 마음에 들고 조용하고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고 홀로 머물기에 적당합니까?"
"참으로 바라문이여, 보호하고 지켜주는 그대들 덕분에 대나무 숲은 마음에 들고 조용하고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고 홀로 머물기에 적당합니다."
"참으로 아난다 존자여, 선(禪)을 하고 선을 하는 성품을 가진 존자들 덕분에 대나무 숲은 마음에 들고 조용하고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고 홀로 머물기에 적당합니다. 존자들들은 선을 하고 선을 닦는 분들입니다.
*"왓사까라 바라문(Vassakaro brahmana)은 아난다 존자가 지금 어디에서 머물고 있는지를 물었는데, 왓사까라 바라문이 실제로 아난다 존자의 거처를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웰루와나(Veluvana,대나무 숲)가 이 바라문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를 찬양하고 싶어 물은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까닭으로 그가 이 대나무 숲을 보호했는가?
어느 날 그는 마하깟짜야나(Maha-kaccayana) 장로가 라자가하의 독수리 봉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이 자는 원숭이(makkata) 같구나.'라고 말했다. 세존께서 그 말을 듣고 만약 그가 용서를 구하면 괜챦지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 대나무 숲에서 원숭이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세존의 이 말씀을 듣고 '사문 고따마의 말은 사실과 다른 것이 없다. 나중에 내가 원숭이가 되었을 때 활동영역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대나무 숲에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보호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죽어서 원숭이로 태어났다."(MA.iv.73)
아난다 존자시여, 한때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웨살리의 큰 숲의 뾰족지붕(중각강당) 강당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때 나는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으로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분 고따마 존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선을 하고 선을 닦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모든 선을 칭송하셨습니다."
84.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선(禪)을 칭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선을 칭찬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어떤 선을 칭찬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은 욕탐(慾貪)이 스며들고, 욕탐(慾貪)에 시달리는 마음(心)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욕탐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욕탐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성냄이 스며들고, 성냄에 시달리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성냄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성냄을 일으킨 채로 선정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해태와 혼침이 스며들고, 해태와 혼침에 시달리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해태와 혼침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해태와 혼침을 일으킨 채로 선정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합니다. 들뜸과 후회가 스며들고, 들뜸과 후회에 시달리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들뜸과 후회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들뜸과 후회를 일으킨 채로 선정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의심이 스며들고, 의심에 시달리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의심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의심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선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는 jhayanti pajjhayanti nijjhayanti apajjhayanti를 옮긴 것이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어떤 선을 칭찬하였습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사유 (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 喜)과 즐거움(행복 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 지고, 마음이 한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를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라고 하는 제3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선을 칭찬하셨습니다."
85. "참으로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열한 선을 비난하고, 칭찬해야 할 선을 칭찬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제 우리가 돌아가겠습니다. 우리는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바라문이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난다 존자에게 질문한 것에 대해 아난다 존자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바라문이여, 아라한‧정등각이었던 그분 세존께서 성취하셨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성취한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길을 일으킨 분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길을 생기게 한 분이고, 아직 설해지지 않은 길을 설한 분이고, 길을 아는 분이고, 길을 발견한 분이고, 길에 능숙한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자들은 그 길을 따라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성취하게 됩니다.'라고."
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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