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N 109. 보름달 큰 경(mahāpuṇṇamasuttaṃ)

실론섬 2016. 5. 27. 15:39

MN 109. 보름달 큰 경(mahāpuṇṇamasuttaṃ)

 

8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녹자모)의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보름 포살일 밤에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 노지에(열린 장소에) 앉아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세존을 향해 합장한 채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포살일(布薩日)' 혹은 줄여서 포살은 uposatha의 음역이며 불교의 계율준수 일을 말한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날에 준수한다(upavasati)고 해서 포살이라 한다. 준수한다는 것은 계(sila)나 금식(anasana)을 지키면서 머문다는 뜻이다. 이 포살일(uposatha-divasa)은 8일, 14일, 15일의 세 가지가 있기 때문에 다른 두 가지를 제외한다는 뜻으로 '보름 포살일(tadahuposatha pannarasa)'이라고 하였다."(MA.iv.74-75;SA.i.276)  

 

"세존이시여, 만약 세존께서 저를 위해 질문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저는 세존께 어떤 부분을 질문드리고자 합니다."라고.

"그렇다면, 비구여, 그대는 그대의 자리에 앉아서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하라."

 

*"왜 세존께서는 그가 서서 말하지 않고 앉아서 말하게 하였는가? 사실 이 비구는 열심히 노력하는 60명의 비구들의 승가 장로로써 60명의 비구들을 데리고 숲에서 거주했다. 그들은 그에게서 명상주제(kammatthana)를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했다. 근본물질(maha-bhutani)을 파악하고 근본물질을 의지하고 있는 파생된 물질(upada-rupani)을 파악하고 정신과 물질의 조건을 대상으로 하는 위빳사나(nama-rupa-paccayalakkhan-arammanika-vipassana)도 파악했다.  
마침 그들이 스승을 시중들기 위해 와서 인사를 올리고 앉았을 때 장로는 근본물질을 파악하는 것 등에 대해 그들에게 질문했다. 그들은 모두 대답했지만 도와 과에 대한 질문(magga-phala-panha)을 했을 때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장로는 '나는 훈계를 계속해 왔고 이들도 열심히 졍진하면서 머물고 게으르지도 않은데 도와 과를 성취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이들의 성향(ajjhasaya)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세존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이들을 데리고 스승(satthu)께 가야겠다. 그러면 스승께서는 그들에게 기질에 따라 가르침을 듣게 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비구들을 데리고 세존께 왔다. 이 비구는 자신의 의심 때문에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대신 질문하기 위해 일어섰다. 만약 그가 알아서 질문을 하면 나머지 비구들도 그들의 스승이 일어섰기 때문에 일어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념으로(ekagga) 법담을 나눌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세존께서는 그를 앉게 하신 것이다."(MA.iv.75-76)  

 

86. 그러자 그 비구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물질적 요소(色)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색취온.色取蘊), 감수작용(受)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수취온.受取蘊), 지각작용(想)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상취온.想取蘊), 형성작용(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행취온.行取蘊), 식별작용(識)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식취온.識取蘊)의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오취온]이 있지 않습니까?"

"비구여,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의 이런 다섯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물질적 요소 = 물질(色.색), 감수작용 = 느낌(受.수), 지각작용 = 인식(想.상), 형성작용 = 형성(行.행), 식별작용 = 의식(識.식)

 

"감사합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에 세존께 이어지는 질문을 했다.

"세존이시여, 이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비구여, 이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뿌리는 갈애이다." 

"세존이시여,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다른 것입니까?"

"비구여,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다른 것도 아니다비구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에 대한 욕탐(欲貪)이 거기서 집착이다."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에 대한 욕탐은 차이가 있습니까(욕탐은 다양합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에게 '미래에 나는 이런 물질적 요소를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감수작용을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지각작용을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형성작용을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식별작용을 가지기를' 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비구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에 대한 욕탐은 차이가 있다."

 

"세존이시여, 얼마만큼 무더기(온.蘊)들에게 무더기이라는 이름이 있습니까?"

"비구여, 어떤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물질적 요소의 온(색온.色蘊)이라 불린다. 어떤 감수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감수작용의 온(수온.受蘊)이라 불린다. 어떤 지각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지각작용의 온(상온.想蘊)이라 불린다. 어떤 형성작용이건 간에, 즉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형성작용의 온(행온.行蘊)이라 불린다. 어떤 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식별작용의 온(識蘊)이라 불린다. 이만큼, 비구여, 무더기들에게 무더기이라는 이름이 있다."   

 

"세존이시여, 물질적 요소의 무더기(색온.色蘊)의 선언을 위해서는(드러나기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감수작용의 무더기(수온.受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지각작용의 무더기(상온.想薀)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형성작용들의 무더기(행온.行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식별작용의 무더기(식온.識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비구여, 물질적 요소의 무더기의 선언을 위해서는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사대]이 원인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이 조건이다. 감수작용의 무더기의 선언을 위해서는 감각접촉[觸.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이 조건이다. 지각작용의 무더기의 선언을 위해서는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이 조건이다. 형성작용들의 무더기의 선언을 위해서는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이 조건이다. 식별작용의 무더기의 선언을 위해서는 정신과 물질(명색.名色)이 원인이고 정신과 물질이 조건이다."

 

*"비구들이여, 접촉하여 느끼고 접촉하여 의도하고 접촉하여 인식한다(phuttho bhikkhave vedeti phuttho ceteti phuttho sanjanati)"(「상윳따 니까야」 제 4권 「쌍 경」(S35.93))이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감각접촉(觸.phassa)이 세 가지 무더기(수온, 상온, 행온)가 드러나는 원인(hetu)이고 조건(paccaya)이다."(MA.iv.78)

 

87.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자아(유신견.有身見)가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까(생겨납니까)?"

"여기, 비구여, 거룩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무지한 보통사람이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 물질적 요소(물질 色)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혹은 물질적 요소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감수작용(느낌 受)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감수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감수작용이, 혹은 감수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지각작용(인식 想)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지각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지각작용이, 혹은 지각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형성작용(형성 行)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형성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형성작용이, 혹은 형성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식별작용(의식.識)을 나로 간주한다. 이렇게, 비구여,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없습니까(생기지 않습니까)?"

"여기, 비구여, 거룩한 이를 알아보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아 보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운 성스러운 제자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 보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웠기 때문에, 물질적 요소를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혹은 물질적 요소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감수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감수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감수작용이, 혹은 감수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각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지각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지각작용이, 혹은 지각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형성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형성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형성작용이, 혹은 형성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식별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식별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식별작용이, 혹은 식별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여,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없다(생기지 않는다)."

 

88. "세존이시여, 물질적 요소에서 무엇이 맛(매력)이고, 무엇이 잘못됨(위험)이고, 무엇이 벗어남입니까? 감수작용에서 무엇이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이고, 무엇이 벗어남입니까? 지각작용에서 무엇이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이고, 무엇이 벗어남입니까? 형성작용들에서 무엇이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이고, 무엇이 벗어남입니까? 식별작용에서 무엇이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이고, 무엇이 벗어남입니까?"

"비구여, 물질적 요소를 연(緣)하여 일어나는 즐거움과 만족이 물질적 요소의 맛이다. 물질적 요소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물질적 요소에 대한 잘못됨이다. 물질적 요소에 대한 욕탐의 제어와 욕탐을 버리는 것이 물질적 요소의 벗어남이다. 감수작용을 연하여 ··· 지각작용을 연하여 ··· 형성작용들을 연하여 ··· 식별작용을 연하여 일어나는 즐거움과 만족이 식별작용의 맛이다. 식별작용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식별작용의 잘못됨이다. 식별작용에 대한 욕탐으 제어와 욕탐을 버리는 것이 식별작용의 벗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적 요소에 대한 맛이다(ayam rupe assado).'라는 말씀으로 철저하게 앎의 꿰뚫음(parinna-pativedha)과 괴로움의 진리(dukkha-sacca)를 말씀하셨다. '이것이 물질적 요소에 대한 잘못됨이다(ayam rupe adinavo).'라는 말씀으로 버림의 꿰뚫음(pahana-pativedha)과 일어남의 진리(samudaya-sacca)를, '이것이 물질적 요소에서 벗어남이다(idam rupe nissaranan).'라는 말씀으로는 실현의 꿰뚫음(sacchikiriya-pativedha)과 소멸의 진리(rirodha-sacca)를 말씀하셨다.  
이러한 세 가지 경우에 대한 바른 견해 등의 법들은 수행의 꿰뚫음(bhavana-pativedha)이고 도의 진리(magga-sacca)이다."(MA.iv.78)  

 

89.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외부의 모든 표상(相)들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과 내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없습니까(일어나지 않습니까)?" 

"비구여, 어떤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본다. ··· 어떤 감수작용이건 간에 ··· 어떤 지각작용이건 간에 ··· 어떤 형성작용들이건 간에 ··· 어떤 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본다. 비구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외부의 모든 표상들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 없다(일어나지 않는다)." 

 

*본 구문은 「상윳따 니까야」 제2권 「잠재성향 경」(S18.21)과 제3권 「라다 경」(S22.71)과 「라훌라 경」(S22.91)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표상'은 nimitta(니밋따)를 옮긴 것이다. 초기경전과 특히 주석서 문헌에서는 표상(nimitta)이라는 술어가 아주 많이 나타나는데 ①신호, 표시, 징조, 조짐 등의 뜻으로도 쓰이고(영어의 sign) ②외관, 흔적, 자국, 특성, 성질 등의 뜻으로도 쓰이며(영어의 mark) ③영상, 잔영, 표상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영어의 image)
주석서 문헌에서는 세 번째 의미로 많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의미로 쓰이는 표상은 특히 삼매 수행에서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본삼매의 증득은 준비단계의 표상, 익힌 표상, 닮은 표상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주석서 문헌들은 설명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인식의 원인(sanjanana-hetu)이 되기 때문에 '표상(niitta)'이라 한다"(DA.i.500)라고 설명하고 있다.
*"'외부의(bahiddha)'라는 단어는 의식을 가진 다른 사람의 몸이다. '모든 표상들(sabba-nimitta)'은 무정물(anindriya-baddha)을 포함하기도 한다. 혹은 '의식을 가진 이 몸(savinnanaka kaya)'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을 모두 포함하고, '외부의 모든 표상(bahiddha sabba-nimitta)'이라는 단어는 무정물을 포함하기도 한다."(MA.iv.78)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밖의 모든 표상들(bahiddha sabba-nimitta)'이란 색깔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감촉의 표상, 영원함 등의 표상, 인간의 표상, 법의 표상 등 이러한 밖의 표상들을 뜻한다."(AA.ii.206)

 

90. 그런데 어떤 비구에게 '이렇게, 참으로, 물질적 요소는 무아다. 감수작용은 무아다. 지각작용은 무아다. 형성작용들은 무아다. 식별작용은 무아다. 무아에 의해 지어진 업들은(자아가 없이 지어진 업들은)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라는 마음의 온전한 생각이 일어났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생각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어떤 쓸모없는 자가 갈애에 지배되어 마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능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런 경우가 있다. '이렇게, 참으로, 물질적 요소는 무아다. 감수작용은 무아다. 지각작용은 무아다. 형성작용들은 무아다. 식별작용은 무아다. 무아에 의해 지어진 업들은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서 여기저기서 거듭하여 그 법들에 대하여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설명한 나의 가르침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적 요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감수작용은 ··· 지각작용은 ··· 형성작용들은 ··· 식별작용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어떤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 어떤 감수작용이건 간에 ··· 어떤 지각작용이건 간에 ··· 어떤 형성작용들이건 간에 ··· 어떤 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감수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지각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식별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사라진다. 탐욕의 사라짐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하는 앎이 있다'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 라고 분명히 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 60명의 비구들은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이 비구들은 평소의 명상주제를 내려놓고 다른 새로운 명상주제를 받아서 가부좌를 틀고 그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었다."(MA.iv.79)
복주석서는 평소의 명상주제란 그 장로에게서 받은 명상주제이고, 새로운 명상주제란 세존으로부터 받은 명상주제라고 설명하고 있다.(MAT.ii.267)

 

 

보름달 큰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