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39. 무쟁((無諍)의 분석 경(araṇavibhaṅgasuttaṃ)
32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쟁((無諍)에 대한 분석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해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이런 양 극단을 떠나(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으로, 철저한 앎으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한다. 칭찬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칭찬해야 할 것을 알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고서 칭찬도 하지 말고 비난도 하지 말고 법을 설해야 한다. 즐거움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판단할 줄 알아서 안으로 즐거움을 실천해야 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뒤에서 말하지 않아야 하고, 앞에서 찌르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 서둘지 말고, 차분하게 말해야 한다.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지역의 언어로 기울지 말고, 명칭의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무쟁에 대한 분석의 개요다."
*"'오직 법을 설해야 한다(dhammameva deseyya)'는 것은 칭찬하지도 말고 비난하지도 말고 오직 있는 그대로의 상태만(yathabhuta-sabhavameva)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이다."(MAT.ii.390)
*"'안의 즐거움(ajjhatta sukha)'이란 것은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다(ajjhattam anavajjam)고 이렇게 특별히(visesa) 판별된 행복(vinicchita-sukha)을 말한다."(MAT.ii.390)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sammukha na khinam)'라고 하셨다. 공개적 비판은 말을 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모두 다치고 상처 입는다.(MAT.ii.390)
324.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닦음이다.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지 않고 만족해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기가 함께하는 삿된 닦음이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이것을 연(緣)하여,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괴로움이 함께한다'라는 것은 '과보의 괴로움'과 '오염원의 괴로움'과 함께 한다는 말씀이다.(MAT.ii.390)
*'열병이 함께한다(saparilaha)'라는 것은 과보의 열병과 오염원의 열병을 수반한다는 말씀이다.(MAT.ii.390)
*"'삿된 닦음(micchapatipada)'이란 진실하지 못한 도닦음(ayathava-patipada)이고, 해로운 도닦음(akusala-patipada)이라는 말씀이다."(MA.v.31)
325. '이런 양 극단을 떠나(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으로, 철저한 앎으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있다. 이것을 연(緣)하여 '이런 양 극단을 떠나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으로, 철저한 앎으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한다.'라고 말했다.
326. '칭찬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칭찬해야 할 것을 알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고서 칭찬도 하지 말고 비난도 하지 말고 법을 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칭찬과 비난은 하면서 법을 설하지 않는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지 않고 만족해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자들을 칭찬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기가 함께하는 삿된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면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자들을 칭찬한다.
'존재의 족쇄를 제거하지(버리지) 못했다면 누구든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존재의 족쇄를 제거했다면 누구든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자들을 칭찬하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칭찬과 비난은 하면서 법을 설하지 않는다.
327.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칭찬과 비난은 하지 않으면서 법을 설하는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이 법을 닦아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것은 삿된 닦음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오직 법을 설한다.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 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이 법을 닦지 않아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것이 바른 닦음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오직 법을 설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기가 함께하는 삿된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이 법을 닦아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것은 삿된 닦음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오직 법을 설한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이 법을 닦지 않아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것이 바른 닦음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오직 법을 설한다.
'존재의 족쇄를 제거하지 못했다면 누구든지 모두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하는 삿된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존재의 족쇄가 제거되지 않을 때 존재도 제거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자는 오직 법을 설한다.
'존재의 족쇄를 제거했다면 누구든지 모두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을 행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존재의 족쇄가 제거될 때(버려질 때) 존재도 제거된다(버려진다).'라고 말하는 자는 오직 법을 설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칭찬과 비난은 하지 않으면서 법을 설한다. 칭찬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칭찬해야 할 것을 알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고서 칭찬도 하지 말고 비난도 하지 말고 법을 설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은 연하여 말했다.
328. '즐거움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판단할 줄 알아서 안으로 즐거움을 실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고 매혹적인(환락을 야기하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거움과 기쁨, 이것이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 비천한 즐거움, 범속한 즐거움, 성스럽지 못한 즐거움이라고 불린다. '그 즐거움은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닦지 않아야 하고, 많이 행하지 않아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 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는 법으로 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용해 지고, 마음이 한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마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지킴(正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지킴(마음새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지킴의 청정을 지닌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출리의 즐거움, 여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이라고 불린다. '그 즐거움은 실천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행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즐거움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판단할 줄 알아서 안으로 즐거움을 실천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29.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뒤에서 말하지 않아야 하고, 앞에서 찌르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안다면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 사실이고 정당하지만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안다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끈다고 안다면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한 때를 알아야 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안다면 공개적인 비판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앞에서 찌르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이고 정당하지만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안다면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끈다고 안다면 그 공개적 비판을 하기에 적절한 때를 알아야 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뒤에서 말하지 않아야 하고, 앞에서 찌르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330. '서둘지 말고(침착하게), 차분하게 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서둘러 말하는 사람에게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산만하고 목소리도 불편하고 목도 아프다. 서둘러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뚜렷하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는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서둘러서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게 몸도 피곤하지 않고 마음도 산만하지 않고 목소리도 불편하지 않고 목도 아프지 않다. 서둘러 말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또렷하고 이해된다. '서둘지 말고(침착하게), 차분하게 말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31.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게 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떤 지방에서는 접시라고 부르고, 발우라고 부르고, 사발이라고 부르고, 컵이라고 부르고, 냄비라고 부르고, 단지라고 부르고, 잔이라고부르고, 그릇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그 지방에서 부르는 대로 그것을 완고하게 고집하여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게 된다.
332.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떤 지방에서는 접시라고 부르고, 발우라고 부르고, 사발이라고 부르고, 컵이라고 부르고, 냄비라고 부르고, 단지라고 부르고, 잔이라고부르고, 그릇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그 지방에서 부르는 대로 '참으로 존자들은 이것을 두고 이런 말로 사용하는구나.'라고 니착하지 않고 말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33. 거기서 비구들이여,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고 만족해 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감각적 쾌락과 연결되어 행복해 하지 않고 만족해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34. 거기서 비구들이여,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기가 함께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35. 거기서 비구들이여, '이런 양 극단을 떠나(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으로, 철저한 앎으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한다. 이 법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36. 거기서 비구들이여, 칭찬과 비난은 하면서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칭찬과 비난은 하지 않으면서 법을 설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37. 거기서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 비천한 즐거움, 범속한 즐거움, 성스럽지 못한 즐거움은(즐거움이 있는 법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출리의 즐거움, 여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38.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고 정당하더라도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끄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39.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 공개적인 비판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고 정당하지만 이익으로 이끌지 않는 공개적인 비판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끄는 공개적인 비판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40. 거기서 비구들이여, 서둘러(성급하게) 말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서둘러서 말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341. 거기서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함께 하는 삿된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번민과 절망과 열병이 없는 바른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우리는 분쟁의 법을 알고, 무쟁의 법을 알 것이다. 분쟁의 법을 알고 무쟁의 법을 알아서 무쟁의 법을 닦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닦아야 한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수부티라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쟁의 법을 닦는 자이다."라고.
*'수부티라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쟁의 법을 닦는 자이다(Subhuti kulaputto arana-patipadam patipanno)'라고 말씀하셨다. 「앙굿따라 니까야」 1권 「으뜸 품」(A1:14)에서도 '다툼없이 머무는 자들 가운데 수부띠 존자가 으뜸이다.'라고 나타난다.
수부띠 존자(ayasma Subhuti)는 수마나 상인의 아들이자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동생이다. 아나타삔디카 승원의 개원식 때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자애와 함께하는 삼매'를 닦아 아라한이 되었다. 그는 주로 숲에 머물면서 평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다툼없이 머무는 자들(arana-vihari)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무쟁의 분석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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