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37. 여섯 감각장소(六處)의 분석 경(saḷāyatanavibhaṅgasuttaṃ)
30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여섯 감각장소[六處.육처]의 분석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감각장소'라고 할 때, '장소'의 원어는 'ayatana'이다. 한역에서는 보통 처(處)로 번역한다. 이 경우 단순한 의미의 '장소(place)'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 우리말인 '터전'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무난하다고 본다. 'ayatana'란 '기르다'·'양육하다'·'연장하다'·'확장하다'의 의미를 지닌 'ayati'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자라나는 곳'이라는 원어의 의미에서부터 비롯되어, 경전에 기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눈·귀·코·혀·몸·마음이라고 하는 여섯의 '감각요인(근.indriya)'과 그에 대응하는 형색(시각대상)·소리·냄새·맛·감촉·마음현상 등의 '대상적 요인(境.visaya)'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ayatana'는 일반적으로 '마음(心.citta)'과 '마음의 작용(心所. cetasika)'이 일어나기 위한 '의지처(所緣. arammana)'로 정의 되는데, 이는 곧 그들 여섯 '감관'과 그에 대응하는 '감각대상'들이 이러한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발생하는 '터전(foundation or base)'이 된다는 의미이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入處.육내입처]는 알려져야 한다(알아야 한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入處.육외입처]는 알려져야 한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모임)[六識.육식]는 알려져야 한다.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무리[六觸.육촉]는 알려져야 한다.
열여덟 가지 마음[意.의]의 행보(고찰)는 알려져야 한다.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길은(경지는) 알려져야 한다.
여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 성자가 실천하는 세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 있으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그는 닦음을 지도하는 스승들 가운데 위없는 조어장부(무상사조어장부.無上士調御丈夫. 사람을 잘 길들이는 가장 높으신 분)라고 불린다. 이것이 여섯 감각장소의 분석에 대한 요약이다.
*"여기서 '알려져야 한다(veditabbani).'라고 하신 것은 위빳사나와 함게한 도(saha-vipassana magga)를 얻어서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MA.v.21)
*"'서른 여섯 가지 중생의 발길(chattaimsa satta-pada)'이란 윤회를 향해 나아감과 윤회를 거슬러 가는(vatta-vivatta-nissita) 중생들의 발길을 말한다. 서른여섯 가지 가운에 열여덟 가지는 윤회를 향해 나아가는 발길(vattapada)이고, 열여덟 가지는 윤회를 거슬러 가는 발길(vivatta-pada)인데 이들도 위빳사나와 함께한 도를 얻어서 알아야 한다."(MA.v.21)
*'위 없는 조어장부'는 nuttara purisadammasarathi를 옮긴 것이며 여래 십호 가운데 무상사 조어장부(無上士調御丈夫)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다른 곳에서는 조어장부를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으로 옮기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래 십호를 설명할 때 무상사와 조어장부를 분리해서 설명하는데 본경에서는 세존을 이처럼 둘을 함께 붙여서 '위없는 조어장부' 혹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가장 높으신 분'으로 부르고 있다.
305.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음의 감각장소가 있다.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를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형색의 감각장소, 소리의 감각장소, 냄새의 감각장소, 맛의 감각장소, 감촉의 감각장소, 법(마음현상)의 감각장소가 있다.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를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모임)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 마음의 의식이 있다.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유익한 과보와 해로운 과보(kusala-akusala-vipaka)가 있기 때문에 두 종류의 '눈의 의식(안식.眼識, cakkhu-vinnana)'를 말한다. 나머지도 이와 같은 방법이다."(MA.v.21) 이렇게 하여 각각 두 종류의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의 10개의 의식을 아비담마에서는 한 쌍의 전오식(前五識, dvi-panca-vinnana)이라 한다.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무리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의 감각접촉, 귀의 감각접촉, 코의 감각접촉, 혀의 감각접촉, 몸의 감각접촉, 마음의 감각접촉이 있다.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무더기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눈의 감각접촉'이란 눈의 의식과 함께한 감각접촉(cakkhu-vinnana-samphassa)을 말한다. 나머지도 이와 같은 방법이다."(MA.v.21)
'열여덟 가지 마음의 행보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눈으로 형색을 보고서 만족을 주는 형색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형색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색으로 다가간다. 귀로 소리를 듣고서 ··· 코로 냄새를 맡고서 ··· 혀로 맛을 맛보고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고서 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법으로 다가간다.
'열여덟 가지 마음의 행보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306.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걸음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여섯 가지 세간(世間)에 의지한 만족과 여섯 가지 출리(出離)에 의지한 만족,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과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평정과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이 있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만족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을 획득을 획득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회상하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을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을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을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을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는 마음으로 인식되는 법들의 획득을 획득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회상하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인가?
형색들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형색들이나 지금의 형색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소리들은 참으로 ··· 냄새들은 참으로 ··· 맛들은 참으로 ··· 감촉들은 참으로 ··· 법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다.
307.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의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을 획득하지 못함을 힉득하지 못함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하지 못한 것들을 회상하면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을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을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을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을 ··· 마음으로 인식되는 법들을 획득하지 못함을 획득하지 못함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하지 못한 것을 회상하면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인가?
형색들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형색들이나 지금의 형색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위없는 해탈에 대한 부러움(바램.염원)을 일으킨다. '지금 성자들이 증득하여 머무는 경지를 나는 언제 증득하여 머물게 될 것인가?'라고 위없는 해탈에 대한 부러움을 일으키면서 부러움을 조건으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소리들은 참으로 ··· 냄새들은 참으로 ··· 맛들은 참으로 ··· 감촉들은 참으로 ··· 법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위없는 해탈에 대한 부러움(바램.염원)을 일으킨다. '지금 성자들이 증득하여 머무는 경지를 나는 언제 증득하여 머물게 될 것인가?'라고 위없는 해탈에 대한 부러움을 일으키면서 부러움을 조건으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다.
308.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재가에 바탕을 둔) 평정인가?
눈으로 형색을 보면서 어리석고 미혹한 범부, (오염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과보를 극복하지 못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형색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세간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맛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면서 어리석고 미혹한 범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과보를 극복하지 못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법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세간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평정이다.
*"여기서 '평정(upekkha)'은 무지의 평정(annan-upekha)을 말한다."(MA.v.24)
*「디가 니까야」 「제석문 경」(D21)에 대한 「디가 니까야 복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형색을 초월하지 못한다(rupam sa nativattati)'고 하셨다. 이와 같은 평정은 형색을 극복할 원인(samatikkamanaya karana)이 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즉 형색이라는 대상에 대해 오염원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DAT.ii.268)
본경은 만족과 불만족과 평정을 다시 재가에 바탕을 둔 것, 출리에 바탕을 둔 것 등으로 나누고 이들을 다시 각각 여섯 가지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인가?
그러나 형색들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형색들이나 지금의 형색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형색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출리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소리는 참으로 ··· 냄새는 참으로 ··· 맛은 참으로 ··· 감촉은 참으로 ··· 법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항상하지 않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법들이나 지금의 법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법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출리에 의지한 평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이다.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길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09. '여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불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세간에 의지한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310. 비구들이여,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이 있고,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이 있다.
*"'다양함(nanatta)'이란 다양하고(nana) 많고(bahu) 여러 측면을 가진 것(aneka-ppakara)을 말하고, '다양함을 의지한(nanatta-sita)'이란 다양한 대상에 의지함(nan-arammana-nissita)을 뜻한다."(MA.v.26)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
"욕계등의 유익함 등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여러 종류이다. 그래서 '여러 측면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형색, 서리등의 대상을 의지하기 때문에 '다양한 대상에 의지함'이라 한다."(MAT.ii.386)
*"'하나이기 때문에 단일함(ekatta)이고, 하나인 대상을 의지하기 때문에 '단일함을 의지한다(ekattasita).'고 하셨다."(MA.v.26)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
"종류와 세계 등의 분류가 없기 때문에 그 본성이 단일하다. 하나의 측면을 통해 대상에 일어나기 때문에 단일함을 의지한다고 했다."(MAT.ii.386)
계속해서 복주석서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면 이 평정은 어떤 평정인가? 위에서 무지의 평정을 설했고, 바로 앞에서는 여섯 가지 평정을 설했으며, 지금 여기서는 사마타의 평정과 위빳사나의 평정을이라는 두 종류의 평정을 설하고 계신다."(Av.26)
비구들이여, 무엇이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형색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소리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냄새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맛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감촉들에서의 평정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이다.
*"형색 등에 대한 평정이 다르고(anna) 소리 등에 대한 평정이 다르다. 그러므로 형색에 관한 평정은 소리 등에 관한 평정이 아니다. 형색에 관한 평정은 오직 형색을 대상으로 삼고 소리 등을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사마타의 평정은 땅의 까시나(pathavi-kasina)을 대상으로 삼아 일어나기 때문에 형색에 관한 평정의 상태와는 다르다. 물의 까시나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다양함(nanatta)을 지니고 다양함을 의지한 평정을 분석하시면서 '형색들에 관한 평정이 있고'등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MA.v.26)
비구들이여, 무엇이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고, 식무변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고, 무소유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고,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이다.
*"다양함을 지니고 다양함에 의지한 것과는 달리 '공무변처에 관한 평정(upekha akasanancayatana-nissita)'이 두 개 혹은 세 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식무변처에 관한 평정이 두 개 혹은 세 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단일함(ekatta)을 지니고 단일함을 의지한 평정을 분석하시면서 공무변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다고 하셨다."(MA.v.26)
비구들이여, 여기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그것에서 생겨남이 아닌 것'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처럼 이것을 넘어선다. '여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그것에서 생겨남이 아닌 것'으로 옮긴 원어는 atammayata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tammayata는 갈애(tanha)를 뜻한다. 그러므로 갈애가 끝난 뒤에 도의 출현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vutthanagamini-vipassana)를 '그것에서 생겨남이 아닌 것'이라 한다."(MA.v.27)
311. '성자가 닦는 세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 있으니 그것을 닦는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라고 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연민을 가지고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법을 설한다.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궁극의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서 머문다. 그때 비구들이여, 여래는 불쾌해하지 않고,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갈망하지 않고, 알아치리고, 분명히 알면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자가 닦는 첫 번째 마음챙김의 확립이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연민을 가지고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법을 설한다. 그의 어떤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궁극의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서 머문다. 어떤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궁극의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머문다. 그때, 비구들이여, 여래는 불쾌해 하지 않고, 불쾌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유쾌해하지 않고, 유쾌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불쾌함과 유쾌함 둘 다를 벗어나서 그는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평정을 가지고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자가 닦는 두 번째 마음 챙김의 확립이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연민을 가지고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법을 설한다.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궁극의 앎을 위한 마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머문다. 그때, 비구들이여, 유쾌해하고, 유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갈망하지 않고,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자가 닦는 세 번째 마음 챙김의 확립이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
'성자가 닦는 세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 있으니 그것을 닦은 성자는 스승이 되어 대중을 지도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312. '그는 닦음을 지도하는 스승들 가운데 위없는 조어장부(무상사조어장부.無上士調御丈夫. 사람을 잘 길들이는 가장 높으신 분)라고 불린다.'라고 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코끼리 조련사가 잘 조련한 코끼리는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말 조련사가 잘 조련한 말은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소 조련사가 잘 조련한 소는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잘 훈련된 사람은 여덟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질을 가져(색계의 존재)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방향이다.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지각)이 없이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방향이다.
깨끗하다고(청정하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세 번째 방향이다.
물질[色]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방향이다.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識]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음)'라고 하면서 식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다섯 번째 방향이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여섯 번째 방향이다.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일곱 번째 방향이다.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여덟 번째 방향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잘 훈련된 사람은 이러한 여덟 방향으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그는 닦음을 지도하는 스승들 가운데 위없는 조어장부(무상사조어장부.無上士調御丈夫. 사람을 잘 길들이는 가장 높으신 분)라고 불린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여섯 감각장소(육처.六處)의 분석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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