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논문·평론

상수멸정(想受滅定)의 성취에 관한 일고찰 -니까야(Nikāya)를 중심으로/정준영

실론섬 2016. 7. 16. 13:07

상수멸정(想受滅定)의 성취에 관한 일고찰

-니까야(Nikāya)를 중심으로

정준영

 

1. 시작하는 말

2. 상수멸정의 의미

3. 성취과정

4. 상수멸정과 열반의 관계

 

5. 마치는 말

 

1. 시작하는 말

 

상수멸정은 수행자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의 병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단계

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본고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되는 상수멸정을 역사적으로 구분하기에 앞서 초기불교를 기준으로 살펴 보고

자한다. 초기경전(Pāli-Nikāya)의 설명에 따르면 상수멸정은 불교수행에서 나타나는

최상의 즐거움1)으로 모든 번뇌가 소멸되는,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수행상태

이다.

1)『바후웨다니야 경(Bahuvedanīya sutta)』은(M. I. 397ff, S. IV. 231f) 선정의 성취와 함께 
   얻어지는 상승적인 즐거움을 설명하였다. 이 경은 네 가지 느낌들이 사라지고 중립의 느낌
   (adukkhaṃasukha)만이 남은 네 번째 선정의 위치도 즐거움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상수
   멸정까지의 진행을 모두 고원의 즐거움을 얻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상수멸정의 상태는 현대과학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언어, 호흡 그리고 마음(의식)의 모든 정

신적, 육체적 활동이(三行) 잠정적으로 중지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특수한 현

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경전의 설명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현상을 체험하는 수행자들이 있기에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수행자는 선정수행과 상수멸정을 통하여 삼행(身,口,意行)의

중지를 체험한다. 뿐만 아니라 남방불교의 많은 수행자들 역시 이와 같은 삼행의

중지를 체험하며 이러한 중지의 상태를 열반의 체험 혹은 열반자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일례로 마하시 사야도(ven. Mahasi Sayadaw)의 가르침에 따르면 삼행과 함

께하는 의식의 중지는 체험되며, 곧 열반을 의미한다.

 

"열반을 성취한 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주시의 대상들과 그것을 주시하

는 의식은 모두 중지한다. 또는 대상들과 주시의 행위들은 넝쿨이 칼에 의해

잘리듯이 잘린다. … 잘 배운 사람은 행(行)들의 중지가 열반(nibbāna)이며,

중지의 깨달음이고, 도과(magga-phala)의 기쁨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내적

으로 말할 것이다 : ‘나는 지금 열반(nibbāna)을 깨달았고 예류의 도과(道果)를

얻었다.’ 이 분야에 대해 경전을 공부했거나 설법을 들은 이는 이와 같은 선명

한 지혜를 분명하게 안다."2)

2) Mahasi Sayadaw. 1984. Practical Insight Meditation. Kandy, Sri Lanka. BPS. 31, 34쪽, 
   비고) U. Pandita Sayadaw, 1993. In this very Life. 272쪽, Piyadassi Thera. 1987. The
   Buddha’ Ancient Path. 210쪽.

 

마하시 사야도는 이와 같이 의식과 모든 행이 중지한 상태를 열반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단계를 경험한 자는 예류과를 성취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남방불교의 지도자나 수행자들 사이에서 이 상태를 ‘상수멸정’이라 부르지 않

는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을 초기경전과 비교해 보면 상수멸정의 상태와 가장

유사하다. 왜냐하면 초기경전 내에서 모든 행이 중지하고 지각과 느낌이 인지되지

못하는 위치는 상수멸정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수행의 단계가 설명

되지 않는 한,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을 통한 ‘중지의 체험’은 ‘상수멸정’의 상태와

비교될만하다. 따라서 상수멸정과 중지의 체험은 경전적 이해와 실천적인 입장이라

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구분은 일정의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몇몇 경전과 주석서를 통하여 상수멸정이나 중지의 체험이 열반이라고 보

는 견해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이들이 모두 열반을 의미하는 경우, 경전적 이해와

실천적 이해는 서로 상통할 수 있다. 하지만 상수멸정과 열반 사이에는 여러 차이

점들이 있으며 이러한 차이점들은 다시 열반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문제로 귀착되

고 있다.3) 따라서 논자는 본고를 통하여 수행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범부

(puthujjana)와 성인(ariya-puggala)의 분수령으로 이해되는 중지의 체험을 상수멸

정과 함께 살펴봄으로써 자칫 교학과 수행사이에서 올 수 있는 괴리감을 좁혀보고

자 한다. 또한 초기경전(Pāli-Nikāya) 자체를 통하여 수행의 과정을 이해하려는 시

도의 하나로 상수멸정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떠한 과정에 의해서 성취되는지, 그리

고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상태로 열반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3) 본고에서 ‘열반(nibbāna)’은 다양한 표현을 떠나 ‘탐, 진, 치의 소멸’ 즉, ‘번뇌(갈애)의 소멸’로
   이해한다. 참고) Asanga Tilakaratne. 1993. ‘Nirvana and Ineffability’ PGIPBS, K.R.
   Norman. 1996. ‘Mistaken Ideas About Nibbāna’ PTS, Rune, E. A. Johansson. 1969. ‘The
   Psychology of Nirvana’ GAAUL, Hwang, soon-in. 2002. ‘Metaphor and Literism’. Oxford
   Univ. Ph.D thesis.

 

2. 상수멸정의 의미

 

초기경전에서 보이는 상수멸정(想受滅定)은 불교수행 과정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8선정의 성취이후에 얻어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고 불린다. 또한 번뇌의 소멸

(āsavakkhaya,제거)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멸진정(滅盡定, Nirodha- sammāpatti)과

동의어4)로 사용되며 열반으로 이끄는 혹은 열반자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상수멸

정(Saññā-vedayita-nirodha)에서 상수멸이 의미하는 것은 ‘지각(인식, saññā)과 느

낌(vedanā)5)의 중지(소멸, nirodha)’이다. 하지만 느낌이라고 해석한 빠알리어

‘vedayita’는 ‘느끼다,’ ‘경험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vedeti’의 과거분사로, ‘지각

(saññā)과 느껴진 것(vedayita)의 중지(nirodha)’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여기

에서 ‘느껴진 것’이 의미하는 느낌은 오직 ‘정신적으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

은 느낌’(adukkhamasukha vedanā, upekkhindriya, 평정심)으로 다른 정신적, 육체적

인 느낌들은 이미 4선정(catuttha jhāna)의 얻음을 통하여 중지되어 있었다.6) 이처럼

상수멸정은 선정의 과정을 통해 준비된 단계로 모든 지각이 멈추고 감각기관이 외

부로부터 차단된 상태를 말한다. 즉, 모든 육체적 정신적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지된

상태이다.

4) ‘Nirodha’는 ‘중지’를 포함하는 ‘소멸’의 의미로 ‘khaya’는 ‘파괴, 제거’를 포함하는 ‘소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5) M. I. 292
6)『웁빠띠까경(Uppatikasutta)』(SN. V. 213ff.)의 설명에 따르면 수행자는 첫 번째 선정을 통
   하여 육체적 괴로운 느낌이 중지하고, 두 번째 선정에서 정신적 괴로운 느낌이, 세 번째 선정
   에서 육체적 즐거운 느낌, 네 번째 선정에서 정신적 즐거운 느낌 그리고 상수멸정을 통하여
   중립의 느낌이 중지한다고 설명한다. 참고) 느낌에 대해서는 졸고. 2003. 217쪽~.『대념처경에
   서 보이는 수념처의 실천과 이해』(불교학연구 제7호)를 통해 다양한 각도로 정의해 보았다.

 

그렇다면 상수멸정이 불교수행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아리야빠리예사나경

(Ariyapariyesanāsutta)』의 설명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부처님은 두 스승

으로부터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지도 받았

다.7) 하지만 이러한 선정을 체험하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부처님은 스승들을 떠

나 홀로 깨달음을 성취한다. 부처님을 번뇌의 소멸로 이끈 수행과정은 색계 선정

네 가지와 무색계 선정 네 가지 그리고 상수멸정(Saññāvedayitanirodha)이다.8) 부처

님은 기존에 존재하던 여덟 가지 선정에 상수멸정 하나를 더 체험함으로써 깨달음

을 성취한 것이다. 즉, 사마타만으로 얻어지는 선정의 진행과정에 만족하지 않고 이

선정의 진행과정에서 현상의 생멸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를 통해 무상, 고, 무아를 통

찰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최초 다섯 비구들에게 설법했던 예를 들

며 수행승들에게 악마(Māra)를 눈멀게 하고 번뇌를 소멸시키는 길로써 팔선정과 함

께 상수멸정의 성취를 설명하신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깨달음 이후 추가된 상수멸

정은 무엇보다도 불교적인 수행위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9) 그리고 이와 같은 사

실은『칫따상윳따(Cittasaṃyutta)』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어떤 것들이 상수멸정을

얻는데 도움을 주느냐는 재가자 칫따(Citta)의 질문에 까마부(ven. Kāmabhū)장로는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ā), 두 가지의 조화가 상수멸정을 성취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7) 본 경전(M. I. 163f)은 두 스승을 통하여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만을 언급하지만 이는
   색계 4선,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그리고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을 경험한 후에 얻는 7번째
   와 8번째 선정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본경에서 정각을 얻은 후에 두 스승을 만나지 못한 붓다는 
   다섯 비구를 찾아가 8선정과 상수멸의 이익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초기경전에서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을 색계와 무색계 선정 없이 성취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8) 초기경전에서 설명하는 선정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4가지 색계선정, 8가지 색계와 무
   색계선정, 그리고 9가지 색계, 무색계, 상수멸정을 모두 설명한 경전이다.
9) 상수멸정과 유사한 단계들은 우빠니샤드의 ‘suṣupti(deep dreamless sleep)’등을 통하여 여러
   문헌에서 보여 진다. 하지만 이러한 위치가 상수멸과 같다고 보기에 충분한 전거들은 제시되
   지 못하고 있다. 참고) 졸고. 2002. 320, 322쪽. ‘A Textual Study of Material Relating to
   Vipassanā Meditation as Found in Pāli Buddhist Scriptures.’ PGIPBS. Ph.D Thesis. A.
   Berriedale Keith. 1923. 143쪽. ‘Buddhist Philosophy in India and Ceylon.’ Oxford
   University Press, Rande 260쪽. ‘Constructive Survey of Upaniṣadic Philosophy,’ D. J.
   Kalupahana, 1977. 7, 9쪽. ‘Buddhist Philosophy. A Historical Analysis.’ The University
   Press of Hawaii.

 

‘그런데 존자여, 지각과 느낌의 소멸(想受滅定)을 성취하기위해서는 어떠한 법

이 가장 도움이 됩니까?’ ‘장자여, 그대는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하는 것을 가장

나중에 묻는군요. 그렇지만 나는 그대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장자여, 지각과 느

낌의 소멸(중지)을 성취하기위해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두 가지 법이 많은 도

움이 됩니다.’10)

10) S. IV. 295. 비고) Vism. 705ff.

 

그러므로 사마타 수행뿐만 아니라 위빠사나 수행의 병행을 통하여 얻어지는 상수멸

정은 무엇보다도 불교적인 수행의 위치이며 불교수행에서 나타나는 높은 단계라고

볼 수 있다.

 

3. 성취과정

 

초기경전(Pāli-Nikāya)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병행을 통하여 얻어지는 상수멸

정은 크게 세 가지 과정에 의해 성취된다. 첫째, 팔해탈(八解脫, vimokkha)의 과정

을 통하여 여덟 번째 해탈로써 얻어지는 것,11) 둘째, 일곱 가지 요소들 중에 일곱

번째 요소로 얻어지는 것.12) 그리고 셋째, 색계사선(色界四禪)과 무색계사선(無色界

四禪)을 거쳐 9번째로 얻어지는 것이다.13) 이들 세 가지 과정은 공통적으로 상수멸

정을 가장 최상의 수행단계로 놓고 있으며 무색계선정(arūpa jhāna)을 거쳐야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11) A. IV. 306, D. II. 70f : ① 물질적 형태를 지니고 물질적 형태를 본다, ② 내적으로 물질적
    형태를 지각하지 않고 외적으로 물질적 형태를 본다, ③ ‘아름답다’라는 생각에 몰입, ④ 空無
    邊處定, ⑤ 識無邊處定, ⑥ 無所有處定, ⑦ 非想非非想處定, ⑧ 想受滅定. ①③의 과정이 색계
    선정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고) A. III. 66, M. I. 477. - 여기서 팔해탈
    (vimokkha)이란 해방(liberation)의 의미로 심해탈(心解脫), 혜해탈(慧解脫)등의 해탈(풀려남,
    vimutti)과는 다르다. 선정의 8단계가 상수멸정을 포함하지 않는 것에 비해 팔해탈(vimokkha)
    이 상수멸정을 포함한 것은 이것이 불교성립이후에 정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2) SN. II. 150f :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① 빛의 요소, ② 청정(아름다움)의 요소, ③ 空無邊處
    定, ④ 識無邊處定, ⑤ 無所有處定, ⑥ 非想非非想處定, ⑦ 想受滅定의 요소이다. - 여기서
    도 ③⑥은 무색계 선정과 동일하고 상수멸정은 7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경전은 ①⑤의 요소
    는 지각의 성취에 의해 얻어지고(saññāsamāpatti pattabbā), ⑥은 행이 남아있는 성취를 통해
    (sankhārāvasesa-samāpatti) 그리고 ⑦은 소멸의 성취(nirodhasamāpatti)에 의해 얻어진다고
    설명한다. 이곳에 색계선정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①,②의 요소는 빛과 청정
    (아름다움)에 대한 kasiṇa 수행이후에 얻어지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비고) Vism. 337f.
13) M. I. 204, M. I. 175.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상수멸정과 무색계선정의 관계이다. 상수멸정이 무색계 선

정을 거쳐야만 성취된다는 것은 사마타를 통한 선정(jhāna)수행이 상수멸정을 성취

하는데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선정을 경험하지 않는 건관행자(乾觀行者,

sukkha-vipassaka)나 네 가지 색계선정까지만 경험하는 혜해탈자(慧解脫者,

paññāvimutta)14)들은 상수멸정을 경험하지 않고 아라한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상수멸정은 아라한들의 구분 중에 색계와 무색계 선정을 모두 경험

하는 양분해탈자(兩分解脫者, ubhatobhāgavimutta)에게 경험되는 것으로 볼 수 있

다.15) 하지만 무색계 선정이 상수멸을 얻는데 필수조건이라는 정의는 상수멸정과

열반을 동일하게 보는 견해와 상충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상수멸정과 열반을 동일

하게 본다면 양분해탈자 뿐만 아니라 혜해탈자를 포함하는 모든 아라한들이 상수멸

정을 경험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색계 선정의 얻음 없이 아라한이 된 연후에

상수멸정을 경험한다는 설명도 가능하나 이 역시 모든 선정(색계, 무색계)을 가지고

있어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상수멸정을 성취하기 위해 4가지 색계와 4가

지 무색계 선정의 성취는 꼭 필요하다.

14) M. I. 477, D. II. 70, Sumaṅgalavilāsinī(DN-a). II. 512, 참고) 건관행자는 순관행자(純觀行
    者)와 동의어로 주석서를 통해 나타나는 용어이다. 빠알리니까야(Pāli-Nikāya)에는 혜해탈자
    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건관행자나 순관행자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혜해탈자와 관
    련하여 한가지 특이한 것은 「앙굿따라니까야(A. IV. 453)」에 4색계 선정만이 아니라 모든
    선정과 상수멸정을 체험하는 9가지의 혜해탈자들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이는 주석서(DN-a.
    II. 512)에서 설명하는 혜해탈자들의 구분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15) D. II. 71, Vism. 702 : 청정도론(淸淨道論)은 사쌍팔배의 성인들 중에 팔선정을 경험한 불환
    과와 아라한만이 상수멸정을 경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고) M. I. 481, S. I. 412, L.
    Schmithausen. 1981. 217쪽.

 

『웨다나상윳따(Vedanāsaṃyutta)』는 이러한 선정과 상수멸정의 관계를 더욱 선

명하게 보여준다. 경전은 수행자가 두 번째 선정을 얻음으로 구행(口行,

vacisaṅkhāra), 네 번째 선정을 얻음으로 신행(身行, kāyasaṅkhāra), 그리고 무색계

선정들을 거쳐 마지막으로 상수멸정의 얻음으로 의행(意行, cittasaṅkhāra)이 중지하

는 것을 설명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점진적인 행(saṅkhā)의 중지(소멸, nirodha)를 설한다. 첫 번

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언어는 중지(소멸)되었다(niruddhā honti). 두 번째 선

정을 얻은 자에게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은 중지되었다. 세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기쁨은 중지되었다. 네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들숨과 날숨은

중지되었다. 공무변처정을 얻은 자에게 물질에 대한 지각은 중지되었다. 식무

변처정을 얻은 자에게 공무변처정은 중지되었다. 무소유처정을 얻은 자에게 식

무변처정은 중지되었다. 비상비비상처정을 얻은 자에게 무소유처정은 중지되었

다. 상수멸정을 얻은 자에게 지각과 느낌은 중지되었다. 번뇌를 제거한 비구에게 

탐심(rāga)은 중지되었다. 성냄(dosa)은 중지되었다. 어리석음은 중지되었다

(moho niruddho hoti). … 첫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언어는 가라앉았다

(vācā vūpasanthā hoti). 두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

각은 가라앉았다. … 탐심, 성냄, 어리석음은 가라앉았다(moho vūpasanto

hoti). … 첫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언어는 고요해졌다(vācā paṭippassaddhā

hoti). 두 번째 선정을 얻은 자에게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은 고요해졌다.

… 탐심, 성냄, 어리석음은 고요해졌다(moho paṭippassaddho hoti).16)

16) S. IV. 217f, S. IV, 294f. - 상수멸정에 들어갈 때에는 구행(口行)→신(身行)→의(意行)의 순
    서로 중지하고 중지에서 깨어날 때는 의(意)→신(身)→구(口)의 순서로 나타난다. 비고) M. I.
    302.

 

즉, 선정과 상수멸의 과정을 통해 언어적인 사유와 숙고, 육체적인 느낌과 호흡,

그리고 의식(意識, 意行)의 활동마저도 점차적으로 중지하게 된다는 것이다.17)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정을 통한 점진적 중지의 과정은 상수멸정을 얻는데 필수요소이고

결국 탐, 진, 치의 중지로 이끈다.18)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선정을 통한 지속적인

중지의 과정이 상수멸정을 거쳐 탐, 진, 치의 중지(소멸)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만약 선정의 과정을 통하여 삼행(口,身,意行)의 요소들이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

라앉으면(vūpasammati) 탐, 진, 치 역시 가라앉고 삼행의 요소들이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고요해지면(paṭippassambhati) 탐, 진, 치 역시 고요해진다. 그러므로 탐, 진,

치의 소멸을 위해서는 삼행의 과정이 가라앉거나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중지

(nirodha)’해야 한다.

17) 초기경전 내의 상수멸정은 생명력(āyu)과 열(usmā)을 제외하고 죽음과 같다고 보는 단계로
    의행(citta-saṅkhāra)의 중지를 통하여 모든 정신적인 활동 즉, 지각(saññā)과 의식(viññāṇa)
    이 중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참고) Rune. E. A. Johansson. 1979. 62쪽. The Dynamic
    Psychology of Early Buddhism : 삼매의 최고단계인 상수멸정에서 수행자는 지각(인식)과 느
    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식(viññāṇa, 識)의 모든 변화와 내용을 떠나게 된다. (M. I. 293,
    M. III. 223), Sarathchandra. E. R. 1958. 16쪽. Buddhist Theory of Perception. (S. III. 87) :
   ‘초기경전에서 의식(viññāṇa)은 지각(saññā, 인식)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Griffiths,
    Paul J. 1999. 8쪽. on Being Mindless. Delhi : Sri Satguru Publications. : ‘두 가지 배경에
    서 붓다고사는 상수멸정 안에 어떠한 정신(활동)이 남아있다는 견해도 부정한다.’(Bhikkhu
    Ñāṇamoli. 1976. 407쪽, Vism. 372) Bhikkhu Bodhi. 1995. The Middle Length Discourses of
    the Buddha. 1,241쪽. Notes no. 470 : 수행자가 중지로부터 나왔을 때, 결과-성취의 의식
    (phalasamāpatticittaṃ)이 처음 일어나고, 의행과 관련된 인식과 느낌이 처음으로 일어나며,
    그 후에… 신행… 구행…이 일어난다.(Papañcasūdanī. II. 366), 1,316쪽. Notes no.1,053 : 중지
    의 얻음 이후에 정신적인 요소는 없다…. Mathieu Boisvert. 1995. 113쪽~. The Five
    Aggregates Understanding Theravada Psychology and Soteriology, L. Schmithausen. 1981.
    ‘On some aspects of Descriptions or Theories of ‘Liberating Insight’ and ‘Enlightenment’
    in Early Buddhism.’ 215쪽. - 또한『마하웨달라경(Mahāvedalla sutta, MN. I. 293)』은 상
    수멸정의 설명에 앞서 느낌(vedanā), 지각(saññā)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느낌, 지각 그리고 의
    식(viññāṇa) 세 가지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결합된 관계임을 설명한다. 즉, 상수멸을 통한 느
    낌(vedanā)과 지각(saññā)의 중지는 자연스럽게 의식(viññāṇa)의 중지로 이끈다는 의미로 이
    해할 수 있다. 비고) 초기경전과 아비담마에서는 마음(citta)과 의식(viññāṇa)을 동의어로 사용
    하기도 한다. (D. I. 21, Nārada, Mahā Thera. 9쪽. A Manual of Abhidhamma)
18) 비고) M. I. 302f, D. III. 233, Papañcasūdanī. II. 365, Vimuttimagga, 323 참고) King,
    Winston L. 1992. 41쪽~. Theravāda Buddhism Motial Banarsidas Pub.

 

4. 상수멸정과 열반의 관계

 

탐, 진, 치심의 중지로 이끄는 상수멸정의 얻음은『아리야빠리예사나경

(Ariyapariyesanā-sutta)』과『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Nikāya)』를 통해 다음

과 같이 설명된다.

 

‘지각되는 것도 지각되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그는

지각과 느낌의 중지에 머문다, 지혜로 관찰하면서 그의 번뇌들은 소멸(제거)되

었다(parikkhīṇā honti).’19)

19) M. I. 175, A. IV. 448 :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paññāya ca 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비고) M. I. 477. 참고) Alexander Wynne. 2002. An interpretation of ‘Released on
    both sides’ and the ramifications for the study of Early Buddhism. Buddhist Studies
    Review. vol. 19. no.1. 비고) Vajirañāṇa Māhathera. 1975. 460쪽~. Buddhist Meditation in
    Theory and Practice. Buddhist Missionary Society.

 

경전은 상수멸정의 얻음을 ‘지혜로 관찰하며 번뇌가 소멸되었다’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 상수멸정을 통해 번뇌가 소멸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시간적인 차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상수멸정을 성취한 상태에서 번뇌의 소멸이 이루어

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성취한 상태에서 깨어나 지혜로써 번뇌를 소멸했

다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 전자의 경우는 상수멸정 상태에서 번뇌가 제거되었다는

의미로 그 자체를 열반과 유사한 상태라고 볼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상수멸정이

열반으로 이끌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의 정

확한 이해를 위해 경전의 문구를 살펴보면 ‘parikkhīṇā’는 ‘소멸(제거, 멸진)되다’라

는 의미를 가진 ‘parikkhīyati’의 과거분사로 역사적 현재시제 ‘honti와의 결합을 통

해 과거완료형의 형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는 상수멸정을 성취한 상태가 이미 번

뇌들이 소멸된 상태이고 더 이상 어떤 번뇌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

다. 이러한 해석은 상수멸정을 열반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전자의 해석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역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상수멸정의 상태

를 이미 번뇌가 소멸된 상태라고 본다면 상수멸정은 번뇌가 소멸된 아라한만이 성

취할 수 있다는 가설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라한뿐만 아니라 불환

과(不還果, 阿那含)도 [상수멸정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 있기에 아라한만이 상수

멸정을 성취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20) 그러므로 상수멸정 자체를 열반과 같

이, 번뇌가 영원히 제거된 상태라고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아라한이나

불환과의 성취에 상관없이 상수멸정은 지각과 모든 정신적 활동이 중지한 상태이므

로 이미 번뇌가 일어날 수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

이 소멸된 상태를 번뇌가 잃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상수멸정은 다시 열

반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0) Vism. 702, M. I. 481. 아누빠다경(Anupadasutta, M. III. 28f.)의 주석설명(Papañcasūdanī. IV.
    91)에 따르면 사리풋다 장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통하여 불환과를 성취한 후에 상수멸정을
    경험하고 아라한과를 얻는다. 이는 번뇌의 완전한 제거이전에 상수멸정을 얻었다는 설명으로
    볼 수 있다. 참고) Bhikkhu Bodhi. 1995. 1,316쪽. Notes no. 1,052.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은 번뇌의 완전한

소멸상태에서 의식과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행동하고 말하며 육체적인 즐거

움과 괴로움을 모두 느낀다.21) 하지만 상수멸정의 상태는 죽음과 비교가 될 수 있

을 정도로 느낌과 호흡 그리고 의식마저도 중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번뇌

가 중지한 상태라는 기준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아라한의 열반과 같다고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뿐만 아니라 모든 아라한이 상수멸정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왕기사상윳따(Vaṅgīsasaṃyutta)』의 설명에 따르면 500명의 아라한들 중에 양분

해탈자들은 60명에 불과했다.22) 즉, 부처님 시대에 많은 비구들은 무색계 선정을 필

요로 하는 상수멸정을 체험하지 않고도 열반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불교 내에서 ‘중지의 얻음’이 반드시 열반과 동일시된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

가 있다.

21) 초기경전을 기준으로 열반은 탐, 진, 치가 소멸상태이고 아라한은 열반 안에 있다. 따라서 아
    라한은 행동하고 말을 하는 동안에도 탐, 진, 치의 소멸상태인 열반 안에 있다. 하지만 아비담
    마에 따르면 아라한에게 열반은 대상으로 나타난다. 마음은 주체이고 열반은 대상인 것이다.
    마음은 찰나에 생멸하기에 찰나의 마음이 열반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열반의 상태이다. 따
    라서 아라한뿐만 아니라 모든 성인들이 열반을 대상으로써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많은 해석을 낳았고 초기불교의 경전적인 이해와 상좌부불교의 실천적인 이해에 커다란 차이
    를 두게 되었다. 참고) 졸고. 2003. 210쪽. 불교학연구 제7호.
22) S. I. 191. - 삼명 60명, 육신통 60명, 양분해탈 60명, 나머지는 혜해탈자 320명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성으로 상수멸정과 열반은 동일시 취급될 수 없는가? 만약

동일시 취급할 수 있다면 상수멸정과 가장 비교될만한 열반의 상태는 어떤 것일까?

『앙굿따라 니까야』는 8선정의 단계를 거쳐 상수멸정을 얻는 것이 곧 현세에서의

열반이라고 말한다.23) 또한 『숫따니빠따(Suttanipāta)』는 ‘의식의 중지에 의해 더

이상 고통의 발생은 없다… 의식의 고요에 의해 비구는 갈망이 사라지고 완전한 적

멸(해방)에 든다’라고 설명한다.24) 이는 ‘존재의 소멸이 열반(bhavanirodho

nibbānaṃ)’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의식이 소멸(중지)된 상수멸의 상태가 열반과 같

다는 설명으로 볼 수 있다.25) 초기불교의 수행과정 중에 의식이 소멸된 상태가 상

수멸정 뿐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이처럼 현세에서의 열반이 상수멸정과 동일시

취급되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우다나(Udāna)』26)의 부처님께서는 답바

말라뿟따(Dabba Mallaputta)장로가 지각(想, saññā), 느낌(受, vedanā) 그리고 의식

의 소멸을 통해 반열반(般涅槃, parinibbāna)을 성취하는 것으로 설명하신다. 그러므

로 상수멸정 상태는 여러 경전에서 의식의 소멸상태란 의미로 반열반 혹은 무여열

반(無餘涅槃)27)과 매우 유사하게 설명되고 있다.

23) A. IV. 454 : 그는 상수멸정에 머문다, 지혜로 관찰하면서 그의 번뇌들은 소멸(제거)되었다
    존자여, 여기까지를 세존께서는 차별 없는 현세의 열반이라고 부른다. 비고) Vajirañāṇa
    Māhathera. 1975. 464쪽. Vism. 705.
24) Sn. 734, 735, A. I. 236 : 의식의 중지에 의한 갈애제거의 해탈을 얻은 자에게 빛의 열반과
    같은 마음의 해탈이 있게 된다. Manorathapūraṇī. II. 352, 비고) Rune E. A. Johansson. 1969.
    58쪽.
25) A. V. 7f, 9f. 참고) Bhikkhu Ñāṇananda. 1974. 71쪽~. The Magic of the Mind in
    Buddhist Perspective. B.P.S. Rune E. A. Johansson. 1969. 49쪽~, Vajirañāṇa Māhathera.
    1975. 21쪽~ : 불환과와 아라한 중에 모든 색계와 무색계 선정들을 성취한 자가 만약 ‘과의
    성취(phala-samāpatti)’라는, 단지 열반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지각과 느낌의 중지
    (상수멸정)’, ‘현재 삶에서의 열반’이라 부르는 곳을 즐길 것이다. Narada Maha Thera. 1998.
    The Buddha and His Teaching. 297쪽 : 이 초월적인 단계는 멸진정(nirodhasamāpatti)으로
    이는 현재 삶에서 열반(Nibbāna)을 경험하는 것이다. Chandima Wijebandara. 1993. Early
    Buddhism : Its Religious and Intellectual Milieu. 21쪽~ : 붓다는 스스로 9번째 선정을 추
    가했다. 그리고 이 9번째의 것(상수멸정)은 경험의 중지로써 설명된 후로부터 열반의 기쁨과
    다소 동일시된다. Vism. 705.
26) Udāna. 93. 비고) Verses of Uplift. Translated by F. L. Woodward. The Minor
    Anthologies of the Pali canon. part. II. Oxford University Press. 1948. 113쪽, Nalinaksha
    Dutt. Mahāyāna Buddhism. Delhi : Motilal Banarsidas, 1978. 202쪽.
27) 빠알리 주석문헌 상에서 반열반(parinibbāna, 완전한 열반)과 무여열반은 동등하게 취급되었
    다. 예를 들어, 담마빠다 주석서(Dhammapada Aṭṭhakathā. II. 163쪽)는 반열반이 오염(번뇌)의
    종결(kilesaparinibbāna)과 모임(khandha, 蘊)의 종결(khandhaparinibbāna)이라는 두 가지 성향
    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오염의 종결은 유여열반과 일치되고 모임의 종결은 무여열반과 동일시
    된다. 그리고 유여열반의 상태는 오온을 제외한 모든 오염들이 파괴된 상태이며 모임(五蘊, 오
    온)들 역시 오염으로 고려되고 있다. 또한 주석서는 모임의 부재와 모임의 종결을 같은 것으
    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반열반과 무여열반은 동일시 취급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두 종류의
    반열반 이론은 초기경전에서 보이지 않는다. 참고) 비고) Piyadassi Thera. 3rd. impression.
    1987. 70쪽~ Rune E. A. Johansson. 1969. 58쪽~, 75쪽~. Nyanatiloka Thera. 1972.
    Buddhist Dictionary 106쪽, 참고) D. II. 108f, Itivuttaka. 38 (As it was said. 143쪽.) M. I.
    486, S. II. 117, Vin. I. 11, A. I. 259, M. I. 487.

 

이와 같은 상수멸정과 무여열반의 유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초기경전에서

보이는 열반을 구분해야한다. 열반은 유여열반(saupādisesā nibbāna)과 무여열반

(anupādisesa nibbanā) 두 가지로 설명되고 이들은『쿳다까 니까야(Kuddaka-

Nikāya)』의『이띠웃따까(Itivuttaka)』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사실 빠알리경전 

내에서 이곳 외에 열반의 두 가지 요소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곳은 찾아 보기 어렵다.28) 

그러므로 『이띠웃따까』에서 보이는 두 가지 열반의 설명은 상수멸정과 열반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경전은 산문과 운문으로 구분되어있으며 산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8) 비고) Kalupahana, David, J. 1977. 70쪽.

 

‘비구들이여, 무엇이 유여열반 요소(有餘涅槃, saupādisesā nibbānadhātu)인

가?’ ‘비구들이여, 여기에(idha) 아라한인 비구는 번뇌를 제거하고, 완전함을

이루고,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짐을 내려놓고, 최상의 목표를 성취하였고, 존재

의 속박을 부수고, 완전한 지혜를 통하여 풀려남(해탈)을 얻었다. 그에게 다섯

가지 감각들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들이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그는 즐거운

것과 즐겁지 않은 것들을 경험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낀다. 그에게 탐욕,

성냄, 어리석음은 제거되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유여열반 요소라고 부른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여열반 요소(無餘涅槃, anupādisesā nibbānadhātu)인

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아라한인 비구는 번뇌를 제거하고, 완전함을 이루고,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짐을 내려놓고, 최상의 목표를 성취하였고, 존재의 속박

을 부수고, 완전한 지혜를 통하여 풀려남(해탈)을 얻었다. 비구들이여, 바로

여기에서(idheva) 그가 느꼈던 모든 것들은, 기쁘지 않은 것들은 식게 될 것

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무여열반 요소라고 부른다.’29)

29) Itivuttaka. 38쪽~. 참고) Peter Masefield. 1979. ‘Religion’ vol.9. 219쪽, 222쪽. Peter
    Masefield trans. 2000. ‘The Itivuttaka’ 35쪽~. PTS, 졸고. 2002. 308쪽~, University of
    Kelaniya., Oliver Abeynayake. 2003. ‘The Element Theory of Nibbāna’. 46쪽~. Exchange
    of Buddhist Thought and Culture Between Sri Lanka & Korea. University of Kelaniya and
    Dongguk Univ.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유여이든 무여이든 열반은 같은 아라한에 의해 성취된다.

즉,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아라한이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과 전혀 다르지 않

다는 것이다. 단지 유여열반의 아라한에게 있어서 구별되는 특징은, 다섯 가지 감각

기능들이 파괴되지 않았고 이들에 의해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낀다는 것이고 무여열반의 아라한에게 있어서 특징은 모든 느꼈던 것들, 기쁘지

않았던 [혐오스러운] 것들이 ‘바로 여기에서(idheva)’ [차갑게] 식어 가라앉는다는 것

이다.

 

일반적으로 무여열반은 오온(五蘊)이 사라진, 죽은 아라한의 열반상태로 이해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경전에서 설명되는 무여열반의 아라한을 모든 존재의 형태가

소멸된 자로 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이띠웃따까』에서 보이는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의 차이는 죽음이 아닌 경험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여

열반 상태의 아라한은 ‘여기에서(현재 여기에서)’ 그의 감각을 통하여 즐거움과 괴

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무여열반 상태의 아라한 역시 ‘바로 여기에서(현재 여기에

서)’ 감각기능이 중지하고 이로 인해 [그의 느낌들은] 차가움(냉정함)을 유지한다.

 

즉, 유여열반도 ‘여기(idha)’, 무여열반도 ‘바로 여기(idheva)’를 통하여 모두가 현재

살아있는 아라한의 상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경에서 무여열반

을 ‘바로 여기에서(idheva)’라고 설명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물론 경전의

‘식게 될 것이다(sītibhavissanti)’라는 의미를 죽은 후 아라한의 상태라고 이해할 수

도 있으나 ‘식게 될 것이다’라는 동사가 미래시제라고 해서 꼭 죽은 후로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느 형태로든 빠알리 니까야(Pāli-Nikāya)에서 죽은 후의 아라한

을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30) 더 나아가 무여열반

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빠디세사(upādisesa)’의 정의 역시 중요하다.31) 여

기서 ‘유여(sa-upādi-sesa)’를 감각기관들을 통한 지각과 느낌이 남아있는 상태로,

‘무여(anupādisesa)’를 지각과 느낌들이 모두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이해한다면 유

여열반은 모든 느낌들을 경험하고 무여열반은 ‘바로 여기서(idheva)’ 이런 모든 느

낌들이 식어 고요해져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에『청정도론(Visuddhi-magga)』

은 상수멸정을 열반과 같은 상태로 설명하며 주석서인 『빠라맛따만주사

(Paramattha-mañjusa)』는 이 열반을 무여열반과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30) 초기경전에서 죽은 후의 열반은 대부분 무기(avyākata, 無記)로 설명되었다. 따라서『이띠웃
    따까』를 통한 무여열반의 설명은 매우 특징적이다. (D. I. 27, D. III. 135)
31) 유여(열반)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역시 보여진다. 유여열반은 ‘sa-upādi-sesa-nibbāna’로 ‘우
    빠디(upādi)’가 남아있는 열반을 나타낸다. 여기서 ‘우빠디’에 대한 해석은 경전 내에서 다양하
    게 나타난다. 먼저 ‘우빠디’는 ‘우빠다나’(upādāna)와 유사한 의미로 ‘집착’, ‘잡음’, ‘연료’, ‘생명’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유여’는 ‘오온(五蘊)이 남아있는(sesa)’, ‘존재의 모임들이 남아
    있는’, ‘생명의 연료가 남은’, ‘받은 것이 남아있는’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그리고 주석서들도 이
    ‘우빠디’가 생명을 지속시켜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여 오온과 같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빠알리
    경전에서 ‘우빠디(upādi)’의 사용용례는 보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도
    의 계발에서부터 두 가지 결과들 중에 한 가지가 기대되는데, 한 가지는 아라한이고 만약에
    ‘우빠디세사’가 있다면 이생에서 불환과를 얻는다고 한다.(M. I. 481쪽, S. V. 181쪽, A. III. 82)
    이러한 문맥을 보면 ‘우빠디세사’는 불환과가 제거해야 할 것으로 무언가 남아있는 번뇌를 나
    타낸다. 마할리경에 따르면 불환과에 의해 제거 되어야하는 번뇌는 다섯 가지 높은 속박들
    (uddhambhāgiya-samyojana)이다.(D. I. 156f, A. IV. 67쪽.) 따라서 ‘수행중인 성인(sekha)’인
    예류과, 일래과, 그리고 불환과들은 모두 번뇌(오염)들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saupādisesa(有
    餘)’안에 포함되고(A. IV. 377f) 누군가 아라한에 도달한 자는 ‘anupādisesa(無餘)’안에 포함되
    는 것이다. 숫타니빠타 역시 ‘saupādisesa(有餘)’를 가진 자는 아직 열반(제거, 소멸)을 얻지 못
    한 것과 같이 설명한다. (Suttanipāta, stanza 354, Theragāthā, stanza 1274.) 이러한 내용은
    주석을 통해 더욱 선명해지는데 빠라맛따조띠까(paramattajotikā. II. vol. I. 350쪽)를 살펴보면
    무여는 아라한(無學)의 것으로 유여는 수행중인 성인(有學)의 것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열반’
    과 ‘saupādisesa(有餘)’의 관계에 대해서는 몇 가지 모순된 설명이 나타난다.(참고 upādi :
    PED. 1986. 149쪽, CPD. 1960. 494쪽~, 497쪽, 200쪽, A Dictionary of Pāli. 2001. 482쪽, 
    パーリ語佛敎辭典. 1997. 210쪽~.)

 

"8가지[선정]을 성취한 성자들은 멸진정(想受滅定)에 들어 ‘우리는 지금 여기

에서 7일간 의식(acitta)이 없는 소멸(중지)인 열반을 얻고서 즐거움에 머물리

라.’라고 집중을 수행한다. ….32) … [상수멸정은] 무엇으로부터 성취하는가?

행(sankhārā)들의 실행과 파괴에 실망하고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의식

(acitta)이 없는 소멸인 열반을 얻고서 즐거움에 머물리라.’ 라고 성취한다."33)

32) Vism. 372, Bhikkhu Ñāṇamoli. 1976. 407쪽
33) Vism. 705, Bhikkhu Ñāṇamoli. 1976. 828쪽

 

"[여기서 말하는] ‘열반을 얻고서’ 라는 것은 ‘무여열반을 얻고서’와 같다."34)

34) Paramattha-mañjusa (Visuddhimagga-Mahatika) 2, Myanmar. II. 526 : Nibbānaṃ patvā ti
    anupādisesanibbānaṃ patvā viya. 참고) 상수멸정 = 열반 = 무여열반.

 

그러므로 비활동적인 감각기능들은 현재 하는데 그 감각기능들에 대한 의식이나

느낌이 나타나지 않는 특별한 경험을 무여(anupādisesa)열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아라한은 열반의 일반적인 경험으로부터 감각의 접촉들과 느낌들

을 가진 채, 언제든지 그가 원하면 무여열반의 특별한 경험에 들어간다. 바로 이러

한 이유로 『이띠웃따까』는 느낌들이 ‘식게될 것이다(sītibhavissanti)’라는 미래시제

로 나타내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되는 무여열반의 성질은 상수

멸정과 매우 유사하다.

 

『마하웨달라경(Māhavedallasutta)』35)의 설명에 따르면 죽은 자의 경우 신(身),

구(口), 의(意)의 삼행이 완전히 멈추고 생명력(āyu), 열(usmā)까지 완전 소멸되지만

상수멸정을 성취한 경우에는 삼행이 멈추었다할지라도 생명력과 열은 유지되며, 청

정해진 감각기관들(indriyāni vippasannāni)은 활동하지 않을 뿐 완전히 소멸(제거)

되지 않는다.36) 주석서37)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감각기관들이 청정해졌다는 의미

는 마치 상자 안에 곱게 담긴 거울에 먼지가 붙지 않는 것처럼 외부대상과의 접촉

이 멈추었기에, 오염 받지 않고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면에서 감각기능들은 현재하고 그 활동이 멈춘 상수멸정은 무여(anupādisesa)열반

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이 상수멸정의 상태는 초기경전의 설명에 따라 ‘의식이

소멸된 상태’ 혹은 ‘감각기능들에 대한 느낌이 중지한 상태’로써 무여열반과 매우

유사하게 설명되고 있다.

35) M. I. 295f.
36) S. IV. 294. 비고) Lily de Silva. 1987. 30쪽. Nibbāna as Experience. -『마하웨달라경
    (Mahāvedalla sutta)』은 다른 정신적 활동의 도움 없이도 생명력은 열에, 열은 생명력에 서
    로 의지하여 유지된다고 설명한다. (M. I. 295f)
37) Papañcasūdanī. II. 351f. 비고) Bhikkhu Bodhi. 1995. 1,237쪽~. Notes. no.448.

 

하지만 무여열반을 죽은 아라한의 상태로 이해하는 경우 상수멸정과 커다란 차이

점이 나타난다. 먼저 『마라따자니야경(Māratajjaniyasutta)』38)에 따르면 수행자는

상수멸정의 상태에서 죽지 않는다. 길을 가던 농부와 목동들이 상수멸정에 든 산지

와 장로(ven. Sañjīva)를 보고 앉아죽은 사람으로 오인하고 화장을 한다. 그러나 다

음날 아침 산지와 장로는 상수멸정에서 깨어 아무런 피해 없이 가사를 털고 일어나

마을로 탁발을 하러갔다가 자신을 화장한 농부와 목동들을 만난다는 얘기가 있다.

이처럼 상수멸정 상태의 수행자는 죽음으로부터 보호되며 그의 의복과 소유물마저

도 불로부터 보호받는다. 물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나 수행자가 상수멸

정의 상태에서 죽지 않는 다는 것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칫

따상윳따』39)를 통해서도 상수멸정과 죽음의 차이점들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상수

멸정과 죽음의 무여열반40)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38) M. I. 333. - ‘Sañjīva’라는 이름의 의미는 ‘살아남은 자, 소생(甦生)’이다. 비고) Vism. 706.
    Griffiths, Paul J. 1999, David J. Kalupahana. 1976. 69쪽~.
39) S. IV. 294.
40) 초기경전(Pāli-Nikāya)에서 무여열반이 사용된 용례를 찾아보면 ‘Vin. II. 239, Iti. 38, 121, D.    

    II. 108, D. III. 135, A. II. 120, A. IV. 202’등이다. 하지만 이둘 중에 무여열반을 아라한이 죽    

    은 후의 열반이라고 설명된 부분은 찾아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고는 삶과 죽음의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제시하고 있다. 참고) 시공불교사전. 2003. 185쪽. 시공사 : 무여열반(無餘涅槃)    

    - ① 번뇌와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 온갖 번뇌와 분별이 끊어진 상태, 모든 분별이 완
    전히 끊어진 적멸(寂滅), ②번뇌와 육신이 모두 소멸된 죽음의 상태

 

5. 마치는 말

 

지금까지 상수멸정의 의미, 성취과정, 그리고 열반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상수멸

정은 다른 선정들과 마찬가지로 열반과는 다른 일시적 머무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들은 상수멸정과 무여열반 사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차이라기보다 삶과 죽

음, 혹은 상수멸정과 유여열반에서 오는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초기경

전에 나타나는 의식의 중지 상태인 상수멸정을 열반과 비교한다면 지금 이 현세에

서 경험할 수 있는 무여열반의 일시적 상태로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여러 경전

들을 통해 의식의 중지로써 설명된 열반은 바로 무여열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살아있는 동안에 중지로써 경험되는 상수멸정은 무여열반과 가장 유사한 상

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행자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의 병행을 통해 얻

어지는 이 중지를 통해 잔재 없는 소멸을 체험함으로써 더 없는 최상의 행복을 경

험하게 된다.41)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상수멸정은 열반과 비교되기에 충분하다.

41) M. I. 209, M. I. 400, 졸고. 2003. 217쪽~, Lily de Silva. 1987. 30쪽~, Piyadassi Thera.
    1987. 76쪽~.

 

오늘날 수행에 대한 이해는 진행방식에 따라 이처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설명은 많은 수행자들이 보다 쉽게 수행을 접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수행자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수행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반면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수행을 이해하려는 새로운 풍토 역시 만들어

내고 있다. 여러 수행자들은 그들의 지도자가 경험한 방식에 따라 각자의 수행방법

과 결과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수행자들로 하여금 특정한 경험을 향

한 집착으로 반영되기도 하였다. 일례로 남방불교의 수행체계에 따르면 의식과 모

든 행이 중지한 상태를 열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42) 더 나아가 이러한 상태를 경

험한 자는 예류과를 성취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열반을 마음의 대상으로 보는 아비

담마(abhidhamma)의 해석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해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초기불교를 기준으로 살펴볼 때 열반은 탐욕,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

의 완전한 제거 상태이다. 그러므로 성인(ariya-puggala)의 성취는 어떠한 특정한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 수행자가 스스로 수행을 통하여 자신이 속박(족쇄,

samyojana)43)들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마할리경(Mahāli sutta)』은 ‘고귀한 여덟 가지 길(八正道)’을 따라 성인

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42) 이러한 상태를 ‘중지의 체험’ 혹은 ‘과의 성취(phala-samāpatti)’라는 이름으로 열반이라 부른
    다. 하지만 ‘중지의 체험’은 초기경전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상수멸정’과 함께 실천적인 입장과
    경전적 이해라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43) Nyanatiloka Thera. 1972. 161쪽~, A. IV. 70, A. III. 85, Sn. 231, D. III. 234.

 

부처님이시여, 무엇이 더 높고 더 훌륭한 법들이며 이것들을 깨닫기 위한 원

인으로 비구들은 부처님에게서 종교적 삶을 삽니까? 마할리여, 여기 한 비구는

세 가지 속박(samyojana)들을 제거함으로 인해 결코 악계에 떨어지지 않으며

최상의 깨달음을 얻도록 확정되어진 예류과입니다. 마할리여, 실로 이것이 더

높고 더 훌륭한 법들이며 이것을 깨닫기 위한 원인으로 비구들은 나에게서 종

교적 삶을 삽니다. 더 나아가 마할리여, 한 비구가 세 가지 속박들을 제거함으

로써 탐, 진, 치를 줄임으로써 일래과입니다. 실로 한번 이 세상을 돌아온 후에

고통의 끝을 만듭니다. … 더 나아가 마할리여, 한 비구가 다섯 가지 낮은 속

박들(五下分結)을 제거함으로써 그 세상으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화생자

(化生者)44)입니다. … 더 나아가 마할리여, 한 비구가 번뇌들을 제거함으로써

번뇌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 이 순간 특별한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성

취하여 머무릅니다. … 부처님이시여, 이러한 법들을 깨닫기 위한 방법과 길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바로 고귀한 여덟 가지 길(八正道)입니다.45)

44) 불환과(anāgāmin, 不還果)를 나타낸다. 비고) Puggala-paññatti. 17쪽.
45) D. I. 156f, 비고) M. I. 34.

 

따라서 범부(puthujjana)와 성인(ariya)의 구별은 특정경험의 유무에 따라 판단하기

이전에 경전의 설명에 따라 10가지 속박(족쇄, samyojana)의 유무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46) 그러나 만약 수행에 따르는 특정한 경험을 수행결과의 잣대

로 삼는다면 많은 수행자들은 그것을 쫓아 새로운 집착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수행이라고 할지라도 그 수행이 탐, 진, 치의 소멸로 이끄는 수행

이라면 무엇보다도 경전에 근거하는 바른 이해가 수행의 바탕으로 자리매김 해야한

다. 따라서 초기경전(Pāli-Nikāya)을 통하여 수행의 과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불교

수행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바람직한 지평이 될 것이다.

46) Sn. 231, A. I. 232, A. IV. 406, D. I.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