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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19. 두 부분의 생각 떠오름 경(dvedhāvitakkhasuttam)

실론섬 2016. 3. 30. 22:30

MN 19. 두 부분의 생각 떠오름 경(dvedhāvitakkasuttaṃ)

 

20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싸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 하셨다.

 

“비구들이여,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던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거듭 두 부분으로 나눈 뒤에 생각의 떠오름에 머물러야겠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쾌락의 생각 떠오름, 분노(성냄)의 생각 떠오름, 해코지(폭력)의 생각 떠오름의 이것을 하나의 부분으로 나누었고, 출리(出離)의 생각 떠오름, 분노하지 않음의 생각 떠오름, 해코지 않음(비폭력)이 생각 떠오름의 이것을 두 번째 부분으로 나누었다.

 

*vitakka(위딱까)는 행위의 출발 자리를 지시하는 용어인데, vi-takka 즉 takka에서 떠남이라고 조어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takka는 행위 이전의 어떤 것이고, 행위는 takka 이후 vitakka로부터 시작된다. 세존의 깨달음을 atakkāvacara라고 이야기하는데, a-takka-avacara 즉 takka의 영역을 넘어섬/극복함이다. 그런데 세존은 번뇌의 영향을 받는 중생의 삶을 누진(漏盡-āsavānaṃ khaya-번뇌들의 부서짐)]에 의해 극복하고 열반을 실현하였다. 그래서 takka는 ①행위 이전에 위치하면서 ②번뇌가 작용하는 삶의 내적 과정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vitakka는 이런 takka에서 떠나 행위가 시작되는 지점[내면에서 표면으로 올라옴]인데, 경들은 「vitakka → [의도-기대-지향] → 사유 …」로 몸과 말의 행위 이전인 생각 과정의 전개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vittaka 는 '생각 떠오름'이다. 수동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동사형은 vitakketi(생각을 떠오르게 하다)로 나타난다.vitakka 를 뒤따르는 vicara는 떠오른 생각으로 '접근하다'의 의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에는 anuvitakketi anuvicareti(계속해서 생각을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다)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의 부분으로 만들었다.(ekāṃ bhāgam akāsiṃ).'는 것은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친 것이건, 미세한 것이건, 이 모든 생각은 오직 해로움에 속한다(akusala-pakkhiko yeva)고 생각하면서 비록 세 가지이지만 감각적 쾌락과 분노와 해코지와 관련된 생각(kāma-byāpāda-vihiṃsā-vitakka)를 하나의 부분(eka koṭṭhāsa)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MA.ii.79)

 

207. 비구들이여, 이렇게 방일(放逸)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에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나는 이렇게 철저히 알았다.

'나에게 이런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참으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고통에 빠트리고, 해치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 지혜의 소멸에 속하고, 파괴의 편에 속하고(혼란스럽게 하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를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남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둘 모두를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지혜의 소멸에 속하고, 파괴의 편에 속하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 것이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거듭 떠오르는 감각적 쾌락의 생각을 오직 버리고 제거하고 끝나게 하였다.

 

*지혜의 소멸에 속하고(paññā-nirodhika)'란 일어나지 않은 세간적인 지혜와 출세간적인 지혜를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감각적 쾌락과 관련된 생각이 일어나면 이것은 세간적인 지혜가 여덟 가지 증득[八等至, aṭṭha-samāpatti,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과 다섯 가지 신통의 지혜[五神通, pañca-abhiññā,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가 일어나더라도 이것을 끊어버리고 던져버리기 때문에 지혜를 소멸시키는 것이다.”(MA.ii.81)   

 

208. 비구들이여,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에게 분노의 생각이 떠올랐다. ··· 해코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나는 이렇게 철저히 알았다.

‘나에게 해코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참으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 지혜의 소멸에 속하고, 파괴의 편에 속하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를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남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둘 모두를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지혜의 소멸에 속하고, 파괴의 편에 속하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 것이다.’라고 숙고하는 나에게서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참으로 거듭 일어나는 해코지와 관련된 생각을 오직 버리고 제거하고 끝나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거듭해서 자주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면 마음의 성향이 된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감각적 쾌락의 생각을 자주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 접근하게 하면 출리의 생각을 사라지게 하고, 감각적 쾌락의 생각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 그런 그의  마음은 감각적 쾌락의 생각 떠오름으로 기운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분노의 생각을 ···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해코지의 생각을 자주 계속해서 떠오르게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면 해코지 않음(비폭력)의 생각을 사라지게 하고, 해코지의 생각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 그런 그의 마음은 해코지의 생각 떠오름으로 기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우기의 마지막 달에, 우기가 끝나는 계절에 곡식이 여물어 수확할 때가 되면 소치는 사람은 소들을 단속할 것이다. 그는 소들을 여기저기서 몰아 막대로 때리고 제지하고 한곳으로 몰고 곡식을 먹지 못하도록 단속할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소치는 사람은 그렇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벌을 받거나 오랏줄에 묶이거나 재산이 몰수되거나 비난받는 것을 본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나는 해로운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을 보았고, 출리에서 유익한 법들의 이익과 청정의 측면을 보았다.

 

209. 비구들이여,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에게 출리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나는 이렇게 철저히 알았다. 

'나에게 출리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참으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 지혜의 증대에 속하고, 생산의 편에 속하고(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밤 동안에 그것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나는 두려움을 관찰할 수 없다. 낮 동안에 그것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나는 두려움을 관찰할 수 없다. 밤과 낮 동안에 그것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나는 두려움을 관찰할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는 나에게 몸이 피곤해질 것이다. 몸이 피곤할 때 마음은 산란해질 것이고, 마음이 산란할 때 마음은 삼매로부터 멀어진다.'라고(철저히 알았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참으로 마음을 안으로 진정되게 하고 가라앉게 하고 집중하고 삼매에 들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나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210. 비구들이여,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에게 분노하지 않음의 생각이 떠올랐다. ··· 해코지 않음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나는 이렇게 철저히 알았다.
'나에게 해코지 않음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참으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 지혜를 증대에 속하고, 생산의 편에 속하고,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다.’라고. '
비구들이여, 밤 동안에 그것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나는 두려움을 관찰할 수 없다. 낮 동안에 그것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나는 두려움을 관찰할 수 없다. 밤과 낮 동안에 그것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나는 두려움을 관찰할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는 나에게 몸이 피곤해질 것이다. 몸이 피곤할 때 마음은 산란해질 것이고, 마음이 산란할 때 마음은 삼매로부터 멀어진다.'라고(철저히 알았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참으로 마음을 안으로 진정되게 하고 가라앉게 하고 집중하고 삼매에 들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나의 마음이 산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거듭해서 자주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면 마음의 성향이 된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출리의 생각을 자주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면 감각적 쾌락의 생각을 사라지게 하고, 출리의 생각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 그런 그의 마음은 출리의 생각 떠오름으로 기운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분노하지 않음의 생각을 ···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해코지 않음의 생각을 자주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면 해코지의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해코지 않음의 생각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 그런 그의 마음은 해코지 않음의 생각 떠오름으로 기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여름의 마지막 달에 모든 곡식을 마을의 창고에 저장하였을 때 소치는 사람은 소들을 단속할 것이다. 나무 아래나 비어 있는 장소에 간 그에게 ‘여기 소들이 있다.’라고 마음챙김을 해야 함이 있을 뿐이다(마음챙김만 잘하면 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이 법들이 있다'라고 마음챙김을 해야 함이 있을 뿐이다.

 

211. 비구들이여, 나에게 정진은 확고하여 게으르지 않았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았고, 몸은 편안하여 피곤하지 않았고, 삼매를 닦는 마음은 고요해졌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라고 하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21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는 전생에 대해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다.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했다. 한 생(한번 태어나고), 두 생(두 번 태어나고),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파괴되는) 겁(세계), 수많은 이루어지는 (생성되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에 도달한 첫 번째의 앎(명.明)이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자의 그것처럼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생겼으며,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생겼다.

 

21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마음을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련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보았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의 세계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보았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이경에 도달한 두 번째의 앎이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자의 그것처럼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생겼으며,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생겼다.

 

21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했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나는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나는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나는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나는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다.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에 도달한 세 번째의 앎이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자의 그것처럼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생겼으며,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생겼다.

 

215.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깊은 숲속에 크고 깊은 호수가 있다. 그 주변에 사슴 무리가 살 것이다. 그 무리의 번영을 바리지 않고 이익을 바라지 않고 안온을 바라지 않는 어떤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는 그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을 막아 버릴 것이다. 나쁜 길을 열어 놓고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집에서 기르는 가축의 수컷이나 암컷을 한쪽에 머물게 할 것이다비구들이여, 이런 방법에 의해 그 사슴 무리는 나중에 역경과 불행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무리의 번영을 바라고 이익을 바라고 안온을 바라는 어떤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을 열 것이다. 나쁜 길을 막고, 집에서 기르는 가축의 수컷이나 암컷을 쫓아낼 것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방법에 의해 그 사슴 무리는 나중에 번영하고 증가하고 가득하게 될 것이다.

 

*사슴들을 유인하기 위해 양들이 그들의 영역(oka)에서 움직이는 것처럼(caramānaṃ viya) 그렇게 가축들을 한쪽에 놓아둔다는 말이다.”(MA.ii.85)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유를 이익이 되는 법을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크고 깊은 호수라는 것은,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슴의 무리라는 것은, 비구들이여, 중생을 지칭하는 것이다. 번영을 바라지 않고 이익을 바라지 않고 안온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비구들이여, 마라 빠삐만뜨를 지칭하는 것이다. 나쁜 길이라는 것은,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의 삿된 길이니 곧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삿된 행위, 삿된 생활, 삿된 정진, 삿된 마음챙김, 삿된 삼매이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의 수컷이라는 것은, 비구들이여, 소망과 탐욕을 지칭하는 것이다. 암컷이라는 것은 무명을 지칭하는 것이다. 번영을 바라고 이익을 바라고 안온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은,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을 지칭하는 것이다.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이라는 것은,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지칭하는 것이니 곧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나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을 열었고, 나쁜 길을 막았고, 집에서 기르는 가축의 수컷이나 암컷을 쫓아냈다. 비구들이여, 제자들을 위해 베푸는 자인 스승이 행해야 하는 것을, 연민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했다. 비구들이여, 나무 밑이 있다. 빈 집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셨디.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두 부분의 생각 떠오름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