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시선집

月峯集 월봉집(策憲 책헌)

실론섬 2016. 10. 17. 17:47

月峯集 월봉집(策憲 책헌)


示悟師 오(悟) 스님께 보임


月下淸溪咽   달 아래 맑은 시내에 안개 끼고

風前落葉紅   바람 앞에 낙엽은 붉구나.

分明聲色裡   소리와 빛 속에 분명하거늘

何更說眞空   다시 무엇하러 진공(眞空)을 설하리?


訪主人公 주인공을 찾아서


三際尋無住   삼제1)를 찾아봐도 머무는 곳이 없고

十方覔沒鄕   시방2)을 둘러봐도 있는 곳이 없구나.

靑山與紫陌   푸른 산과 붉은 도시

何處是渠塲   그 어디에 있는 것인지!

1) 삼제(三際) :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시간.

2) 시방[十方] : 동·서·남·북과 그 사이, 그리고 위와 아래까지의 열 가지 방향. 모

   든 방향을 의미한다.


幽㞐 은거


久住烟霞裡   자연 속에 오래 머물며

噉蔬世味輕   푸성귀 먹고 사는 세상 살이 소박하구나.

床寒知霧濕   책상이 차가우니 안개에 젖었음을 알겠고

庭滑認苔生   뜰이 미끄러우니 이끼가 생겼음을 알겠구나.

峰月臨軒白   봉우리에 솟은 달은 집 앞에 밝고

山泉入戶鳴   산골의 샘물은 소리 내며 흐르네.

幽居雖不貴   은거하여 사는 것이 귀한 것은 아니나

只欲便韜名   다만 이름을 숨기고자 함일 따름이라.


獨坐茅庵萬慮空

띠집에 홀로 앉았으니 만 가지 생각이 다 비는구나


欲叅眞妙道   참되고 묘한 도를 참구하고자 한다면

先自萬緣空   먼저 스스로 만 가지 인연을 비워야 하리.

深入靑山裡   푸른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

端居石室中   석실에 단정히 앉기도 하고

經行雲霧共   구름 안개와 함께 거닐기도 하며

去住鹿麋同   떠나고 머물기를 사슴과 함께 하네.

世慮都忘却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어버리고

玄微仔細窮   깊고 미묘한 이치를 자세히 궁구하니

身閑憑竹搨   몸은 대나무 의자에 기대어 한가롭고

氣宇掛淸穹   기개는 맑은 하늘에 걸리었네.

䁘至遊臺畔   눈길은 저 높고 평평한 대(臺) 곁으로 노닐며

思來步澗東   사색에 잠겨 산골물 동쪽으로 거닐기도 하니

巖間花灼灼   바위 틈엔 꽃이 화사하게 피었고

林外草蒙蒙   숲 바깥엔 풀로 뒤덮혔구나.

日久根塵歇   날이 오래 되니 보고 듣는 것 쉬게 되고

年多道味融   해가 많이 지나니 도의 맛이 우러나네.

隔簾看岫月   주렴 너머 산 꼭대기에 달이 뜨고

倚檻聽松風   난간에 기대어선 솔바람 소릴 듣노라.

若到亡羊處   만약 양을 잃어버린 곳3)에 이르더라도

頭頭活眼通   모든 것이 활안4)으로 통하리라.

3) 양을 잃어버린 곳 :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섰다가 갈림길이 너무 많아 결국은 양

   을 찾지 못했다는 고사[多岐亡羊]. 여러 가지 복잡한 학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진리를 찾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4) 활안(活眼) : 사물의 이치를 간파하는 살아 있는 눈.


歎世浮譽 세상의 헛된 명예를 탄식함


也吾胷中有一句   내 가슴 속에 한 마디 할 말이 있건만

爲君題詠最難形   시를 지어 보아도 정말 나타내기 어려워.

吾師若問甚麽語   우리 스님께서 만약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向道風搖殿角鈴   바람이 법당 모퉁이 풍경을 흔든다고 하리라.


揮筆吟詩非我事   붓을 휘둘러 시를 짓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요

倚窓閑睡是吾禪   창가에 기대어 한가로이 조는 것이 우리가 하는 선이라.

西來面目君知未   서쪽에서 온 참뜻을 그대는 아시는지?

風送溪聲月檻邉   바람결에 시냇물 소리 달빛 비치는 난간으로 들려오네.


終朝竟夜窮何道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슨 도를 찾고 있는지?

恰似騎牛更覔牛   흡사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과 같구나.

可笑如今叅學軰   가소롭구나, 요즈음 참구하는 무리들

將心待悟幾時休   마음을 써서 깨닫기를 기다리니 어느 때에나 쉬리오?


奇談恠語稱知識   괴이한 말들을 하면서 선지식이라 일컫고

愽覽多聞擬聖流   많이 보고 들었다고 성인인 척하니

雖善經書詩賦筆   비록 경전을 잘 알고 시를 잘 쓴다 한들

未明心地盡虛頭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모두가 헛것이로다.


自心觀 내 마음을 관하다


片時歷歷千經義   잠깐 동안에 천 가지 경전의 뜻을 또렷이 알고

一念昭昭億佛心   한 생각 사이에 억만의 부처님 마음을 환하게 보네.

從此頓忘塵世慮   세속의 온갖 걱정들 모조리 다 잊고

白雲高臥但觀心   흰 구름 속에 높이 누워 다만 마음만을 관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