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시선집

枕肱集 침굉집(懸辯 현변)

실론섬 2016. 10. 17. 17:40

枕肱集 침굉집(懸辯 현변)


呈岑道人 잠(岑) 도인에게 드림


西來一寶燭   서쪽1)에서 온 보배로운 촛불 하나

何必苦推尋   무엇하러 힘들게 찾으려 하나?

夜深山雨後   깊은 밤 산에 비 내린 후

凉月上東岑   서늘한 달이 동쪽 봉우리 위에 떠올랐네.

1) 서쪽은 인도를 지칭한다.


送友人 벗을 보내며


萬水千山路   만 산 천 강의 길을

悽然獨去身   그대 홀로 떠나가는구려.

無論去與住   떠나는 자든 머무는 자든

俱是夢中人   모두가 꿈 속의 사람인 것을.


幽居偶吟 은거하면서 우연히 읊다


莫笑生涯薄   나의 삶이 박복하다고 비웃지 마오

腰懸一小刀   허리에 작은 칼 하나 차고 있다오.

騰騰天地內   천지 사이에 기세등등하여

處處盡吾家   곳곳이 모두 나의 집이라오.


與故人遊仙巖寺 벗과 함께 선암사(仙巖寺)에 갔다가


秋晴孤寺夜   외로운 절 맑게 갠 가을 밤

相對月明時   달빛 밝은 때 서로 마주하네.

此中無限興   이 가운데의 무한한 흥

坐咏古人詩   앉아서 옛사람의 시를 읊어 보네.


淸夜聞磬 맑은 밤에 풍경 소리 듣고서


一聲淸磬夢初醒   맑은 풍경 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

驚起松窓月掛明   놀라 일어나 보니 창 밖 소나무에 달이 밝게 걸렸네.

安得思如陶謝手   어찌하면 도연명이나 사영운과 같은 솜씨를 얻어

令渠寫我此中情   나의 이 기분을 표현해 볼까!


贈行脚僧 행각하는 스님에게


爾也年逾四十籌   그대는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飽叅知識遍南州   남쪽으로 수많은 선지식을 찾아뵈었지.

西來妙旨何煩問   서쪽에서 온 묘한 뜻을 무엇하러 번거롭게 묻고 다니나?

雲盡秋空月似鈎   구름 걷힌 가을 하늘에 달이 낫처럼 걸렸거늘.


題鰲山庵 오산암(鰲山庵)3)에서

3) 오산암(鰲山庵) : 전라남도 하동군 구례읍에서 약 2km 남쪽인 죽마리 오산(鰲

   山) 꼭대기에 있는 암자. 544년(성왕 22)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

   고 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사성암(四聖庵)이라 한다. 오산은 해발 530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경승지이다.


山高岩逈接雲端   산 높고 바위 우뚝하여 구름 끝에 닿았는데

世外仙都日月閑   세상 벗어난 신선의 땅 세월이 한가롭구나.

石室蕭然僧入㝎   고요한 석실에서 스님은 선정에 드시어

不關秋色亂層巒   봉우리마다 가을빛이 난만한 것을 상관하지 않으시네.


歸家時途中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家在天涯遠   집은 멀리 하늘 끝에 있어

迢迢七日程   이레나 가야 할 아득한 길.

隨風桐葉落   바람 따라 오동잎 떨어지고

和露菊花明   이슬 맺힌 국화는 화사한데

蕭索三秋晩   쓸쓸한 늦가을에

飄然一錫輕   지팡이질 경쾌하네.

應知故山鶴   내가 살던 옛 산의 학이

待我月中鳴   나를 기다리며 달빛 속에 울고 있으리.


香爐庵吟 향로암(香爐庵)4)의 노래

4) 향로암(香爐庵) : 향로암은 금강산에도 있었고, 전라남도의 조계산에도 있었다.

   침굉현변이 전라도에서 활동을 많이 한 것으로 보아 조계산의 향로암일 가능성

   이 높다.


萬事平生已墮甑   만사는 이미 다 지나버린 일이니

兀然高臥碧山層   푸른 산 속에서 꼿꼿이 앉았노라.

澄心祖域心猿亂   마음을 맑혀야 할 조사의 땅에서 마음은 원숭이처럼 나부대고

息意宗乘意馬騰   뜻을 쉬어야 할 우리 종단에서 생각은 말처럼 날뛰네.

三尺竹笻挑日月   세 척 지팡이로 해와 달을 건드리고

七斤麻衲抱鵾鵬   일곱 근 삼베 누더기로 곤과 붕5)을 껴안네.

功名富貴浮雲耳   부귀공명이란 뜬구름일 뿐이니

擬作禪林本分僧   선림에서 본분에 충실한 승려가 되고자 하네.

5) 곤(鵾)과 붕(鵬) : 『장자(莊子)』에 나오는 전설상의 물고기와 새. 그 크기가 대단

   히 커서 사람의 큰 포부와 기개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