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시선집

栢庵集 백암집(性聰 성총)

실론섬 2016. 10. 17. 17:58

栢庵集 백암집(性聰 성총)


別學天上人 학천(學天) 상인과 이별하며


莫謂有離合   만남과 이별이 있다고 말하지 말지니

此身無去來   이 몸은 가고 옴이 없다오.

誰知大道上   누가 알리오, 대도(大道)의 위에서는

天地一浮埃   천지도 하나의 뜬 티끌에 불과함을.


秋夜獨坐 가을 밤 홀로 앉아


秋夜坐石牀   가을 밤 돌 침상에 홀로 앉았으니

露冷虫暄急   이슬은 차가웁고 벌레 소리 요란하구나.

四壁悄無人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도 없는데

虛簷明月入   텅 빈 처마에 밝은 달만 비춰 드네.


入山 산으로 들어가며


行行過石溪   걷고 또 걸어 돌 위의 시냇물을 건너니

細徑通踈竹   좁은 오솔길이 성긴 대숲으로 통하누나.

不覺濕禪衣   수행복이 젖는 것도 알지 못하였는데

鶴搖松露滴   학이 솔잎에 맺힌 이슬 방울을 흔들고 있네.


題暉上人房 휘(暉) 상인의 방


寺在淸溪上   맑은 계곡 위에 절이 있어

烟生碧樹間   푸른 나무 사이로 안개가 생겨나네.

幽人寂無事   은거하는 이는 일 없이 고요하여

終日對靑山   하루 종일 청산만 마주하네.


春晴 비 개인 봄날


遠峀收微雨   먼 산 위 바위 쪽으로 가랑비 물러가고 나니

高窓引細風   높은 창문으로 산들 바람 불어 오는구나.

小眠仍隱几   잠시 졸다가 다시 안석에 기대어서는

殘夢鳥聲中   새 소리 들으며 남은 졸음 즐기노라.


次庵師韵 암(庵) 스님의 시에 답함


碧樹蟬鳴急   푸른 나무에 매미 울음 요란한데

靑山暮雨踈   청산 저물녘에 가랑비 떨어지네.

道人幽寂意   도인의 깊고 고요한 마음

竹榻臥看書   대 평상에 누워서 책을 보누나.


衰老仍多病   늙어지니 병도 많아져

親知日漸踈   친하던 이도 점차 소원해지네.

閑懷誰與說   한가로운 생각을 누구에게 말해볼까?

斫樹白而書   나무를 잘라 흰 면에다 적어보네


碧岑雲淡淡   푸른 고개에 옅은 구름 덮이었고

蒼竹雨踈踈   파란 대숲엔 뚝뚝 비 떨어지네.

無限淸幽思   무한히 맑고 깊어지는 생각

高聲一讀書   높은 소리로 한바탕 책을 읽노라.


途中春暮 길 가던 중에 봄날 저물어


落花千片萬片   천 조각 만 조각 떨어지는 꽃잎

垂柳長條短條   긴 가닥 짧은 가닥 늘어진 버들 가지.

怊悵天涯獨客   슬프구나, 하늘 끝 외로운 나그네

不堪對此魂消   이를 보고 있자니 혼이 다 녹아내리는구나.


偶吟 우연히 읊다


安居圓覺大伽藍   편안히 있으면서 원만한 진리를 깨닫는 큰 가람

絕聖離凡孰共叅   성인도 범인도 다 떠나 있으니 누가 함께 수행할까?

獨臥獨行仍獨坐   홀로 눕고 홀로 다니며 홀로 앉았으니

夜來惟對月成三   밤이 되자 오로지 달을 마주하여 셋이 되었네.1)

1) 달과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가 셋을 이루었다는 말. 원래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

   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나오는 표현이다.


夜聞梵音贈彩英魚山

밤중에 범패소리를 듣고 채영(彩英) 어산(魚山)2)에게 드림

2) 어산(魚山) : 범패(梵唄)와 같은 의미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여

  기서는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스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空山靜夜道心淸   텅 빈 산 고요한 밤에 도심(道心)은 맑기만 한데

萬籟俱沉一月明   온갖 소리 모두 사라지고 달 하나만 밝구나.

無限世間昏睡軰   수많은 세간의 어리석은 무리들

孰聆天外步虛聲   누가 하늘 바깥 허공 밟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漁父 어부


穿魚換酒渡頭沙   나루터 모랫사장에서 잡은 물고기를 술로 바꾸어

歸臥扁舟醉放歌   조각배로 돌아와 취하여 마음껏 노래 부르네.

楓葉荻花秋色老   단풍잎 물억새꽃 가을빛 짙어가는데

一江寒雨滿漁蓑   온 강에 찬 비 내리어 어부의 도롱이 가득 젖네.


送春 봄을 보내며


桃李風流夢一塲   복숭아와 오얏의 풍류는 한 바탕 꿈이 되었고

谷鶯迁木弄淸商   계곡의 앵무새가 숲으로 옮겨와 맑은 소리 희롱하네.

道人不惜春歸去   도인은 돌아가는 봄을 애석해 하지 않나니

只愛禪窓白日長   다만 참선하는 창문에 밝은 낮이 길어짐을 사랑할 뿐.


病中吟 병을 앓으며


經旬病臥竹方牀   열흘을 병으로 대나무 침상에 누워 있으니

辱暑熏蒸苦日長   후끈후끈 찌는 더위에 긴 낮 보내기가 힘들구나.

安得本空眞妙藥   어떻게 하면 본래부터 공(空)하다는 참되고 묘한 약을 얻어서

將身與病一時忘   몸과 병을 한꺼번에 다 잊어버릴까!


放觸蛛網蝶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놓아주며


忙忙飛去又飛回   바쁘게 날아서 왔다 갔다 하더니만

誤觸蛛絲粉翅摧   거미줄에 잘못 걸려 날개가 꺾이었구나.

戒爾從今其輕薄   이제부터 너에게 그 경박함을 경계하노니

由來好色喪身媒   색을 좋아하다가는 몸을 망치게 될 껄.


春興 봄의 흥취


細雨初晴三月時   보슬비 갓 개인 삼월의 어느 날

桃花勝錦柳如絲   복사꽃은 비단보다 낫고 버들은 실과 같구나.

一春無限好消息   이렇게도 좋은 봄의 소식을

不有幽禽說句誰   산 새가 아니었다면 누구에게 말을 하리오?


挽人 죽은 이를 애도하며


白日西傾逝水東   밝은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 가는데

浮生㝎似夕煙空   뜬 인생은 정녕 허공의 저녁 연기 같구나.

誰知大造茫茫內   누가 알리오, 아득한 천지 안에서

去住元來一夢中   가고 머무는 것이 애당초 한바탕 꿈 속의 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