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칙 비목집수 毗目執手1)
1)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친견한 53선지식 중 여덟 번째인 비목선인(毗目仙人)과
의 인연을 소재로 한 공안이다. 80권본『華嚴經』권64 大10 p.345c20의 내용이
기초가 된다.
[본칙]
비목선인이 선재동자의 손을 잡자 선재는 그 즉시 자신의 몸이 시방
불국토의 티끌과 같이 무수한 부처님이 계시는 모든 세계로 갔다가 불가
설불가설2)의 티끌과 같이 무수한 겁(劫)을 지나는 광경을 스스로 보았
고, 선인이 손을 놓는 순간 자신의 몸이 본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오는 광
경을 목격하였다.
毗目仙人, 執善財手, 善財, 卽時自見其身, 往十方佛刹微
塵數諸佛所, 乃至經不可說不可說微塵數劫. 仙人放手, 卽
見自身, 還在本處.
2) 不可說不可說. 고대 인도의 10대수(大數) 또는 60수(數) 중 하나. anabhilāpya,
anabhilāpya. 10대수는 아승기(阿僧祇)·무량(無量)·무변(無邊)·무등(無等)·불
가수(不可數)·불가칭(不可稱)·불가사(不可思)·불가량(不可量)·불가설(不可
說)·불가설불가설 등이다. 이 10대수는 아승기부터 점차로 제곱하여 불가설불
가설에 이르는 형식이다. “불가량전의 제곱이 1불가설이고, 불가설의 제곱은 1
불가설전(不可說轉)이며, 불가설전의 제곱은 1불가설불가설이다.”(『華嚴經』
권45「阿僧祇品」大10 p.238b3. 不可量轉不可量轉, 爲一不可說, 不可說不可
說, 爲一不可說轉, 不可說轉不可說轉, 爲一不可說不可說.)
[설화] 3)
3) 이 <설화>는 각 구절을 이통현(李通玄)의 설에 따라 해석하고, 동일한 구절에 대
하여 다시 선어록 등을 전거로 삼아 거듭 해설하는 형식을 취한다.
비목의 온전한 음사어는 비목구사4)이며, 한역하면 출성가외(出聲可畏)
이다. 곧 ‘말하는 소리가 온갖 삿된 무리들을 두렵게 한다’라는 뜻이다. 비
목은 화엄의 제8주인 동진주5)의 선지식이다.
4) 毘目瞿沙. Bhīsmottara-nirghosa.
5) 童眞住. 화엄의 10주(住) 중 제8주. 보리심(菩提心)에서 퇴행하지 않고 무공용
(無功用)의 지혜를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장자론』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손을 잡자 ~ 겁(劫)을 지나는 광
경을 스스로 보았다’라는 말은 처음으로 10주의 초지7)에 들어가 바른 지
혜로써 더욱 밝혀 부처님과 동등한 견해가 되었다는 뜻이다.8) 한 찰나 중
에 삼매의 힘으로 모든 무량한 겁의 변화가 한꺼번에 일제히 나타나게 된
것이다.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라는 말은 처음으로 10주의 초지에
이르러 일부분을 더욱 밝히고, 성자(비목선인)가 이끌어 가지(加持)9)해 주
는 힘에 의지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게 되며, 불지(佛地)에 이
르러 공을 마치면 시방 전체가 항상 눈앞에 나타나 애써 가지 받을 일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10) 또한 이렇게 말한다. “지혜의 힘으로 가지 받아 법
을 깨닫고, 일단 법을 얻은 다음에는 자신의 지혜력이 항상 그렇게 머문
다. 비록 성자(비목선인)에게 돌아와 그의 가지를 버리더라도 한눈에 그
와 다른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넌
다음에는 배를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11) 곧 비목선인의 가
지를 받아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고 나서 그 가지를 버리더라도 자신의
지혜력이 항상 그렇게 머문다는 뜻이다.
6) 長者論. 이통현의『略釋新華嚴經論』과『新華嚴經論』을 말한다.
7) 지위(地位).『略釋新華嚴經論』에는 지위(智位)로 되어 있으나 초위(初位) 또는
초지(初地)와 같다.『華嚴經隨疏演義鈔』권68 大36 p.546c10 참조.
8) 이하『장자론』원문의 몇 구절은 생략되었다.
9) 불보살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으로 중생을 보호하는 것. 섭지(攝持)·가호
(加護)·소지(所持)·호념(護念) 등의 뜻이다.
10)『略釋新華嚴經論』권2상 大36 p.1029c9 이하의 내용에 따른다. 앞부분은 요약하
여 처리하였지만 몇 글자의 출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치한다.
11)『新華嚴經論』권35 大36 p.963c22.
자신의 몸이 ~ 무수한 겁(劫)을 지나는 광경을 스스로 보았다:‘검소한 상태로부터
사치스러운 상태로 들어간 것과 같다. 황금을 땅으로 삼고’12)라고 운운한
말에 상응한다.
12) 검소와 사치는 진각혜심(眞覺慧諶)에게만 보이는 독특한 개념이며, 여타의 경
론이나 선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각운이 빌려 쓴 것인데,『禪門拈頌說
話』32則 <설화>에 나오는 다음 내용을 생략한 것이다. “여자가 선정(禪定)에 들
어갔을 때는 ‘검소’한 상태로부터 ‘사치’스러운 상태로 들어간 것과 같다. 이것
은 황금으로 땅을 삼고 백은으로 벽을 삼으니 곧 겹겹이 누각으로 된 화장세계
(華藏世界)의 자라장(紫羅帳) 속에 진주를 뿌리는 경계이다. 여자가 선정에서 빠
져나왔을 때는 사치스러운 상태로부터 검소한 상태로 나온 것과 같다. 이것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주장자는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고, 백반은 원래
쌀알로 지은 경계를 말한다.”(女子入定時, 從儉入奢, 黃金爲地, 白銀爲壁, 則樓
閣重重華藏界, 紫羅帳裏, 撒眞珠也. 女子出定時, 從奢入儉, 山是山, 水是水, 拄杖
元是木頭造, 白飯元是米粒做.)
자신의 몸이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광경을 목격하였다:‘사치스러운 상태로
부터 검소한 상태로 나온 것과 같다. 산은 산이고’13)라 운운한 말과 같다.
13) 주석12) 참조.
차수(叉手)는 서로 잡는 것을 뜻하니 손을 잡은 경계14)에 대해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잠시 망념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이곳이 바로 미륵이 계
신 곳이니 선재동자가 없는 문이 없다. 또한 망념을 거두어들이면 누각의
문은 손가락 퉁기는 짧은 순간에 열린다.”15)
14) 망념을 거두는 것과 비목선인이 선재의 손을 잡은 것을 상응시키기 위한 말이다.
15) 정확히 일치하는 구절은 없지만, 앞뒤의 단락이 선문헌에 적지 않게 발견된다.
『天聖廣燈錄』권27「寶覺澄諟章」卍135 p.874a17,『佛心才和尙語』續古尊宿語要
4 卍119 p.2b2 참조. 용문불안(龍門佛眼)의 법어에도 유사한 구절이 있다. “잠시
망념을 거두어들이면, 이곳이 바로 미륵이 계신 곳이니 문마다 선재동자가 있
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마음이 남아 있으면, 토석과 산하와 돌덩이와 가시나무
가 나타날 것이다.”(『龍門佛眼語錄』 古尊宿語錄29 卍118 p.538a15. 暫時歛念,
是處是慈氏, 門門有善財. 介爾有心, 土石山河瓦礫荊棘.)
손을 놓는 순간 자신의 몸이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잠깐 사이에 생각이 일
어나면 이전 그대로 산하와 토목과 돌덩이가 가로막을 것이고, 다시 머뭇
거리며 분별하면 등왕16)의 사자좌가 유마의 방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17)
16) 燈王. 수미등왕불(須彌燈王佛)의 약칭.
17)『維摩經』권상「不思議品」大14 p.527a20에 따르면, 수미등왕불의 신장은 8만
4천 유연(由延)이고, 이 부처님이 앉는 사자좌(獅子座)의 높이는 6만 8천 유연인
데, 유마거사가 신족통(神足通)을 보이자 이 부처님이 즉시 3만 2천 개의 사자좌
를 유마거사의 방으로 들여보냈다고 한다. ‘유연’은 yojana의 음사어로 유순
(由旬)이라고도 하며, 걸어서 하루 걸리는 거리를 말한다.
‘자신의 몸이 시방 불국토의 티끌과 같이 무수한 부처님이 계시는 모든
세계로 가는 것을 본다’라고 한 말은 장소에 걸림이 없다는 뜻이고, ‘불가
설불가설의 티끌과 같이 무수한 겁(劫)을 지난다’라고 한 말은 시간에 걸
림이 없다는 뜻이다. 마치 ‘끝이 없는 불국토의 경계에’18)라 운운한 말과
같다.
18)『新華嚴經論』권1 大36 p.721a20에 나오는 다음 단락을 줄인 말이다. “끝이
없는 불국토의 경계에서는 자·타 간에 조금도 간격이 없고, 10세의 고·금은 처
음부터 끝까지 현재의 한 찰나를 벗어나지 않는다.”(無邊刹境, 自他不隔於毫端;
十世古今, 始終不離於當念.)
‘자신의 몸이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광경을 목격하였다’라고 한
말에 대하여 불안청원(佛眼淸遠)은 이렇게 말한다. “4생과 6도19)가 모두 그
대로 마음의 자성이고, 3도와 8난20) 그 어디에나 두루 색신을 나타내며, 화
장해21)에 살면서 부사의한 경지에 머문다. 이와 같은 취지는 우리들의 본
분 그 자체일 뿐이니, 그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본래 있는 곳을 떠나
서 별도로 화장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며, 화장세계를 떠나서 별도로 본래
있는 곳도 없다. 곧 평상의 경계와 부사의한 세계(화장세계)는 하나의 길
로 함께 간다.22)
19) 四生六道. 중생이 태어나는 네 가지 양식과 윤회하는 여섯 가지 세계를 말한다.
4생은 태생(胎生)·난생(卵生)·습생(濕生)·화생(化生) 등 네 가지이고, 6도는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人)·천(天) 등이다. 인
과 축생은 4생의 양식을 모두 가지고 있고, 아귀는 태생·화생, 지옥·천, 그리고
중유(中有)는 오로지 화생만 있다.『俱舍論』권8 大29 p.43c21 참조.
20) 三途八難. 3도는 6도 윤회 중 악업(惡業)을 저지른 결과로 태어나는 지옥·아
귀·축생 등 세 가지 세계로 3악도(惡途)라고도 한다. 8난은 지옥·아귀·축생·
울단월(鬱單越)·장수천(長壽天)·농맹음아(聾盲瘖啞)·세지변총(世智辨聰)·불
전불후(佛前佛後) 등이다.『增壹阿含經』권36「八難品」大2 p.747a6 등에
서술되어 있다.
21) 華藏海.『華嚴經』에 제시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말한다. 비로자나불(毘盧
遮那佛)이 과거세에 발원하여 보살행을 닦음으로써 성취한 청정하고 장엄한 세
계이며, 십불(十佛)이 교화하는 경계이다.
22) 연화장세계의 부사의(不思議)에 대하여 징관(澄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
토(淨土)와 예토(穢土) 등 모든 국토는 어느 것이나 여래께서 성취한 신통과 지
혜의 힘으로 이룬 것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두 가지 국토를 취한 다음 두
루 응하고자 부처님께서 응하여 통솔하는 세계는 모두 불토(佛土)라 하기 때문
이다. 연화장해는 부처님께서 엄정(嚴淨)하신 세계로 그 안에는 정토와 예토가
모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장에서 말하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은 국
토가 없다. 이미 예토 그대로 정토이므로 그 세계는 부사의한 것이다.”(『華嚴經
疏』 권11 大35 p.575b14. 一切淨穢等土, 皆是如來通慧力成. 爲物而取, 擬將普應,
佛應統之, 皆稱佛土故. 蓮華藏海, 佛所嚴淨, 而內含淨穢. 然就佛言之故, 無國而不
淨也. 旣卽穢而淨, 故不思議.)
고인23)의 게송 세 수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비목선인이 손을 잡았던
순간, 시방 전체가 그 뒤를 따랐다네. 돌아와 누우니 불어오는 솔바람, 한
없이 맑은 기운 스스로만 알 뿐.”, “시방 전체가 털끝 하나에 일제히 나타
나니,24) 화장세계 두른 겹겹의 제망25) 싸늘히 밝다. 보배처럼 귀한 선재동
자 어디로 갔을까? 맑은 밤바람은 푸른 대나무26)를 흔드네.”, “화장장엄세
계 안에는, 한 티끌에 얼마나 많은 것들 겹쳐 들어 있나? 홀연히 밀치고
나아가 눈 치켜뜨고 살펴보니, 이전 그대로 성긴 주렴이 새벽바람에 흔들
리네.”
23) 순서대로 진각혜심(眞覺慧諶), 홍영소무(洪英邵武)의 게송이며, 나머지 하나는
작자 미상이다.
24) 60권본『華嚴經』권26 大9 p.587a2의 다음 구절과 통한다. “저 하나하나의 털끝
에 불가설(不可說)의 모든 불국토를 안치한다.”(於彼一一毛端處, 置不可說諸佛刹.)
25) 帝網. 제석천(帝釋天)의 주망(珠網) 곧 인다라망(因陀羅網 indra-jāla)을 말한다.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비유이다. 존재 하나하나가
다른 모든 존재를 자기 안에 포섭하고 그 하나의 존재는 다른 모든 존재 속에 포
섭되어 있는 관계로서, 겹겹이 무한하게 중첩된 그 연기적 관계를 비유한다. 그
물코마다 달려 있는 보배 구슬이 서로 다른 구슬을 투영하여 하나의 구슬에 모
든 구슬이 비추어지는 현상을 비유로 삼은 것이다.
26) 낭간(琅玕). 주옥같이 아름다운 돌을 가리키는데, 대나무의 푸른빛 또는 대나무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구슬과 같은 열매를 맺는다는 전설상의 신선
나무[仙樹]를 가리키기도 한다.
毘目, 具云, 毘目瞿沙, 此云, 出聲可畏, 謂所出之音, 衆邪驚
怖也. 華嚴第八, 童眞住善知識. 長者論云,“ 執手至劫者, 以
初入地位, 正智增明, 與佛同見. 於一念中, 以三昧力, 一切無
量劫, 一時幷現也. 還復如舊者, 初至地位, 一分增明, 以假聖
所接引加待, 見諸佛境界, 至佛功終, 十方常在目前, 無勞所加
持也.” 又云,“ 智力加持入法, 旣得法已, 自力常然. 雖復聖者,
捨其加持, 一見見無異. 如人濟渡於河, 不可負舟而去.” 則被
仙加持, 見諸佛境界, 捨其加持, 自力常然也. 又自見其身至
劫者, 從儉入奢, 黃金爲地云云. 卽見自身云云者, 從奢出儉,
山是山云云. 叉手以攀攬爲意, 則執手處. 古人云, “暫時歛念,
是處是慈氏, 無門無善財. 又歛念, 則樓閣之門, 彈指卽開也.”
放手處, 卽見自身, 還在本處者, 瞥爾情生, 依舊山河土木瓦
礙. 又議27)心, 則燈王之座, 不入維摩之室. 又自見其身至佛所
者, 處無礙;乃至經不可說至劫者, 時無礙. 如無邊刹境云云.
卽見自身, 還在本處者, 佛眼遠云,“ 四生六道, 卽心自性;三
途八難, 普現色身;居華藏海之中, 住不思議之內. 如斯之旨,
乃吾輩之常分耳, 還信得及麽?” 非離本處, 別有華藏世界, 非
離華藏世界, 別有本處. 所謂平常不思議, 一途而行. 古人有三
頌云,“ 毘目仙人執手時, 十方無處不追隨. 歸來一枕松風在,
無限淸凉只自知.”,“ 十方齊現一毛端, 華藏重重帝網寒. 珎重
善財何處去? 淸宵風撼碧琅玕.”,“ 華藏莊嚴世界中, 一塵中有
幾重重. 忽然排出擡眸看, 依舊疏簾動曉風.”
27) ‘擬’의 잘못으로 보인다.
황룡사심(黃龍死心)의 염
“손을 놓은 것에 대해서는 그대에게 묻지 않겠다. 손을 잡은 경계는 어
떻게 말할 것인가?”
黃龍心拈,“ 放手卽不問爾, 執手處作麽生道?”
[설화]
손을 놓은 것에 ~ 말할 것인가:손을 놓은 경계를 떠나서 손잡은 경계를 물
은 것이 아니다. 만약 손잡은 경계를 이해한다면 손 놓은 경계 또한 이해
할 것이다. 그래서 ‘평상의 경계와 부사의한 세계는 하나의 길로 함께 간
다’라고 말한다. 아래 제시되는 불안청원의 상당법문도 이 뜻이다.
黃龍:放手卽不問云云者, 非離放手處, 問執手處. 若會得執
手處, 則放手處亦如是. 所謂平常不思議, 一途而行也. 下佛眼
遠上堂, 卽此意.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상당
하안거를 마치는 날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비목선인이 선재동자의
손을 잡자마자 작은 티끌과 같이 무수한 과거의 부처님들이 나타났고, 손
을 놓자 완연히 이전 그대로의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모든 대중들을 이끌
며 이곳에서 도량 밖으로 나가지 않고28) 안거를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안
거를 마치는 날이 되고 보니 완연히 이전 그대로이구나. 선재동자는 이전
그대로 돌아온 곳에서 무수한 부처님을 하나로 거두어 돌아간 흔적을 남
겼으나, 대중들이 맞이한 이전 그대로의 경계에는 석 달 90일 동안의 일을
모두 거두어 자취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하라. 알겠는가? 하나의 털끝에 모
든 세계를 감추고 겨자 씨 하나에 수미산을 거두며, 보거나 듣는 대상을
떠나지 않고 십지29)에 훌쩍 뛰어 오른다. 4생과 6도가 모두 그대로 마음의
자성이고, 3도와 8난 그 어디에나 두루 색신을 나타내며, 화장해에 살면서
부사의한 경지에 머문다. 이와 같은 취지는 우리들의 본분 그 자체인데,
그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佛眼遠, 解夏, 上堂云,“ 毗目仙人, 執善財手, 頓見過去微諸
佛, 及其放手, 宛然依舊. 龍門長老, 領諸大衆, 爰於此地, 結
足安居, 及其解夏, 宛然依舊. 善財依舊處, 微塵諸佛, 含攝有
歸;大衆依舊處, 三月九旬, 歛收無迹. 還會麽? 毛端藏刹海,
芥子納須彌, 不離見聞緣, 超然登十地. 四生六道, 卽心自性;
三途八難, 普現色身, 居華藏海之中, 住不思議之內. 如斯之
旨, 乃吾輩之常分耳, 還信得及麽?”
28) 결족(結足). 금족(禁足)과 같은 말. 안거 3개월 90일 동안 외출을 금하는 규정이다.
29) 十地. 불지(佛地)와 같은 말, 10지 중 마지막 지위로 궁극적 경지이다. 일체종지
(一切種智) 등 부처님이 깨달은 법은 빠짐없이 갖춘 지위를 가리킨다.
각범혜홍(覺範慧洪)의 평
“주세영(朱世英)이 이 공안을 제기하고 일찍이 나에게 ‘이 한 토막의 이
치는 어떻게 밝힙니까’라고 묻기에 나는 ‘이 모두가 상징입니다’라고 대
답했다. 선재의 손을 잡은 것은 법을 관찰하는 삼매로 들어간 순간이니,
‘자·타 간에 조금도 간격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의 한 찰나를 벗어
나지 않는다’30)라는 진실을 본 것이다. 손을 놓은 것은 삼매에서 나온 순
간을 말한다. 영명연수(永明延壽)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알라! 본래
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멀거나 가까운 국토가 뚜렷이 드러나며, 한 찰
나도 떠나지 않고 느린 시간이나 빠른 시간이 진실 그대로 나타난다.’31)
부처님께서는 대체로 연꽃을 비유로 삼으셨고 세상에는 그 뜻을 아는 자
가 없으나 나만 유독 그것을 안다. 연꽃이 막 피려고 할 때 그 안에는 이미
씨가 있고, 씨 안에도 이미 연근이 있다. 그러므로 원인 중에 이미 결과가
있고 결과 중에 원인이 있으니 삼세가 동일한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그
씨는 골고루 퍼져 있으면서 또한 한곳에 모여 있으니, 서로 이어져 끊어지
지 않고 시방 그 어느 곳과도 떨어져 있지 않다.”
覺範曰, “朱世英, 擧此話, 嘗問予, ‘此一段義, 何以明之?’ 予
云,‘ 皆象也.’ 方執其手, 卽入觀法之時, 見自他不隔於毫端,
始終不移於當念, 及其放手, 卽是出定之時. 永明曰,‘ 是知!
不動本位, 遠近之刹歷然;一念靡移, 延促之時宛爾.’ 世尊,
盖以蓮爲譬, 而世莫有知者, 予特知之. 夫蓮方華時, 中已有
子, 子中已有藌. 因中有果, 果中有因, 三世一時也. 其子分布,
又會屬焉, 相續不斷, 十方不隔也.”
30) 이통현(李通玄)의 말. 주석18) 참조.
31) 선재동자와 비목선인의 인연에 관한 영명연수의 평가이다.『宗鏡錄』권16 大48
p.500c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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