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110칙 육조풍번 六祖風幡

실론섬 2016. 11. 25. 13:34

110칙 육조풍번 六祖風幡

 

[본칙]

6조 혜능대사가 인종법사의 회하(會下)에 있을 때1)의 일이다. 두 학인

이 바람과 깃발을 놓고 다투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한 학인은 ‘바람이 움

직인다’ 하고, 다른 한 학인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6조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

닙니다.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두 학인은 놀라 모골이 송

연하였다.

六祖慧能大師, 在印宗法師會下. 見二僧爭風幡, 一僧曰,
‘風動.’ 一僧曰, ‘幡動.’ 祖曰, “不是風動, 不是幡動. 仁者
心動.” 二僧悚然.
1) 宗寶本『壇經』大48 p.349c9에 따르면, 6조는 5조로부터 의발(衣鉢)을 전수받고
   16년 동안 숨어 지내다가 법성사(法性寺)에서『涅槃經』을 강의하던 인종(印宗
   627~713)을 만난 것을 계기로 삭발하고 정식으로 출가한 뒤 인근의 보림사(寶林
   寺)에 주석하였다고 한다.

 

[설화]

한 학인은‘ 바람이 움직인다’하고 다른 한 학인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다외도들

이 말하는 인연에 의해 움직인다거나 자연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인가?

 

바람이 움직인다:물은 습하고 땅은 단단하며 불은 뜨겁고 바람은 움직이

므로 움직임이 곧 바람의 속성이라는 말이니, 이는 사물의 속성에 집착한

학인의 견해이다.2)
2)『楞嚴經』권3 大19 p.117b15, p.154c6 등에 잘못된 인연의 논리 그리고 자연 발
   생이라는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배척하는 까닭이 나온다. 이 인연은 세간의 근거
   없는 주장[戱論]에 따라 인연을 아무렇게나 헤아리거나[妄想], 아무 인과관계
   없이 자연히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견해를 중생의 망심(妄心)에 의한 분
   별이라 비판했다.

 

깃발이 움직인다:바람의 성질이 비록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반드

시 깃발로 인하여서만이 그 움직임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니, 이는 사물의

현상에 집착한 학인의 견해이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가령 다른 곳에서

“만법은 본래 한가한데 사람이 스스로 시끄러울 뿐이다”3)라고 한 말과 같

은 뜻에서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옛사람이 “바람이 움직이니 마음이 나무를 흔들고, 구름이 이니 본성

이 먼지를 일으킨다”4)라고 한 말과 같으니, 바람이 움직이거나 깃발이 움

직이거나 그것은 바로 하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현상일 뿐이라는 뜻이다.

3) 만법은 본래 어떤 관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떤 조작도 하지 않은 채 여유롭고
   한가하며, 모든 존재는 본래 자신의 확정된 성품이 없는데, 사람이 공연히 그 모
   든 것을 지어낸다는 말.『黃龍語錄』大47 p.637c29,『楊岐語錄』大47 p.648c13 
   등 참조.
4) 당말(唐末) 오대(五代) 때 스님으로 수산주(修山主)라고도 불리는 용제소수(龍
   濟紹修)의 게송 중 1, 2구. 이어지는 3, 4구는 “금일사를 밝힌다면 본래인이 어두
   워지리라.”(若明今日事, 昧却本來人.)이다.『五燈會元』권8「龍濟紹修章」卍138
   p.308a5 참조.

 

옛사람들은 이 일화를 평하여 “6조의 뜻은 비단 한 마음이 움직였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니,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

도 아니며 마음 또한 움직인 것이 아니다”5)라고 하는가 하면, 또한 반대로

“바람도 움직이고 깃발도 움직이며 마음도 움직인다”라고도 한다. 마치 소

라 껍데기처럼 나선형으로 틀어 올린 머리털[螺紋髻角]6)은 송골매같이 날

카로운 눈으로도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7)과 같다. 이런 말들

은 훌륭하기는 훌륭하지만 조사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쓸데없이 자

세히 말한 것일 뿐이니, 어찌 단지 ‘한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말하는 것만

하겠는가! 그러므로 각범8)은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니 스스로 눈

을 가린 격이요,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곧바로 나

타난다. 이것이 조계(6조)의 분명한 종지이다”9)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 이

와 같이 한 말은 자세히 분석하여 설명하였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까 걱

정스러워 한 말일 뿐이지, 이러한 이치가 씻은 듯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분석하여 설명하는 방법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또한

이러한 이치가 전혀 없지도 않다는 도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각범이

6조를 찬탄하여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니 스스로 눈을 가린 격이

요 ~ 분명한 종지이다’라고 한 말에 대해 숭각공(崇覺空)10)은 이렇게 게송

으로 읊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

하니, 찰간 끝이 허공을 찌르는구나. 강남의 이삼월 버드나무 물오르는 시

절, 아무리 누대를 보려 해도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가려 있네.”11)

一云風動, 一云幡動者, 外道因緣動, 自然動耶? 風動者, 水
濕地堅火熱風動, 動是風性, 則執性僧也. 幡動者, 風性雖動,
必因幡而動, 則執相僧也. 不是風動不是幡動云云者, 如他處
云,“ 萬法本閑, 唯人自鬧.” 則仁者心妄動耶? 非也. 古人云,
“風動心搖樹, 雲生性起塵.” 則風動幡動, 只是一心動也. 古
人論此云,“ 六祖意非止一心動也, 不是風動, 不是幡動, 亦
不是心動.” 又,“ 是風動, 是幡動, 是心動.” 如螺紋髻角, 鶻
眼迷蹤, 善則善矣也. 似分踈不識祖師意, 爭如只道得箇一心
動! 故覺範云,“ 是風幡動, 眼自遮覆, 非風幡動, 心卽現露,
此是曺溪顯決要旨.” 如今伊麽道, 但恐未免分踈故云爾, 亦
未嘗泯然無此義也. 旣不許分踈, 又如何會得, 未嘗無此義地
道理? 覺範六祖讚云, 是風幡動, 眼自遮覆云云, 崇覺空頌云,
“不是幡兮不是風, 刹竿頭點太虛空. 江南楊柳二三月, 極目
樓臺烟靄中.”
5) 이 같은 평을 한 선사로는 무문혜개(無門慧開)가 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마음이 움직인 것도 아니니, 어디서 조사
   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만일 이 안에서 진리에 딱 들어맞게 근본을 알아
   차린다면 비로소 그 두 학인이 쇠를 사려다 금을 얻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조사
   는 자신의 깊은 뜻을 참을 수가 없어서 말로 표현한 것이니 한바탕 잘못을 저지
   르고 말았구나.”(『無門關』「非風非幡」 大48 p.296c21. 不是風動, 不是幡動, 
   不是心動, 甚處見祖師? 若向者裏見得親切, 方知二僧, 買鐵得金. 祖師忍俊不禁
   一場漏逗.) 그러나 6조가 “마음이 움직인다[心動]’라고 한 말이 ‘바람이 움직인
   다[風動]’느니 ‘깃발이 움직인다[幡動]’느니 하며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에 대해 
   단지 마음을 들어 그 두 가지 판단 모두 그릇되었음을 경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과 같이, 무문혜개가 “不是風動, 不是幡動, 不是心動”이라 한 말 
   역시 6조가 ‘인자심동(仁者心動)’이라 한 말을 후세 사람들이 일면적으로 이해하
   는 폐단을 물리치기 위하여 설정한 선(禪)의 장치로 이해해야 한다.
6) 나문결각(羅紋結角). 가로 실과 세로 실로 세밀하게 조합하여 무늬를 만들고 각
   을 맺어서 만든 엷은 명주 직물을 가리키는데, 미묘하게 짜여 어디가 처음이고
   끝인지 그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것 또는 미묘하여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
   운 가르침 또는 깨달음을 비유한다.
7) 미종(迷蹤). 길의 자취를 잃는 것 또는 자취를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분별의 틀과 언어문자라는 수단을 전혀 허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지도 방법을 말한다. 유무(有無)·선악(善惡)·시비(是非) 등의 지적(知的)
   분별로 화두에 접근하는 길을 차단하는 수단이다.
8) 각범혜홍(覺範慧洪 1071~1128). 청량덕홍(淸涼德洪)이라고도 한다. 송나라 때 황
   룡파(黃龍派) 스님.『林間錄』,『禪林僧寶傳』등을 남겼다.
9)『新編林間後錄』「六世祖師贊并序」卍148 p.649b2에 실려 있다. “是風幡動, 眼自
   遮護, 非風幡動, 心則現露, 是爲曹溪.”
10) 임안부(臨安府) 고숙(姑孰) 출신. 황룡사심(黃龍死心)의 법제자이다.
11) 이와 동일한 숭각공선사의 시는 보이지 않으며 다만『宗鑑法林』권6 卍116
    p.100a13,『頌古聯珠通集』권7 卍115 p.78a14 등에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마음
    이 움직인다 하니, 마치 아리따운 마고(麻姑)가 가려운 데를 내키는 대로 긁는
    것과 같구나. 하늘 멀리 나는 외로운 난새의 골수는 누가 얻었으며, 끊어진 거문
    고 줄을 아교로 이어 붙일 줄 아는 이 누구인가?”(不是風旛是心動, 似倩麻姑癢處
    搔. 天外孤鸞誰得髓, 何人解合續絃膠.)라는 시가 전한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송1 12)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라 하니,

납승들 이 말을 진실이라 퍼뜨리네.

강을 건넘에 뗏목을 쓰는 것이 보통의 일이니,13)

남산에서는 숯을 굽고 북산은 붉게 물들었구나.14)
雪竇顯頌, “不是幡兮不是風, 衲僧於此作流通. 渡河用筏尋常
事, 南山燒炭北山紅.”
12) 1, 2구는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6조의 말을 진실이라 여기는 잘못에
    대하여 읊었고, 3, 4구는 앞의 구절을 뒤집어 ‘움직인다’는 말 자체를 긍정적으
    로 수용하여 하나의 화두로 전환시켰다.
13) 뗏목이 강을 건너는 수단이듯이 ‘움직인다’는 말도 본분의 화두로 수용할 수 있
    다.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에 뿌리박는 근거를 박탈하여 하나의
    허언(虛言)으로 만들고 있다.
14) 숯을 굽는 행위와 울긋불긋한 꽃으로 덮인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풍경
    으로 전체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바람과 깃발의 움직임을 모두 허용
    한다는 비유이다. <설화>의 취지도 동일하다.

 

[설화]

남산에서는 숯을 굽고 북산은 붉게 물들었구나:바람도 움직이고 깃발도 움직

인다는 뜻이다.

雪竇:南山燒云云者, 亦是風動幡動也.

 

설두중현의 송2 15)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면 어디에 귀착될까?16)

신개의 작자17)는 이렇게 핵심을 집어냈다네.

요즘의 멍청하고 어리석은 선수행자18)들이여,

깊은 마음이 저 홀로 우뚝하다 말하지 마라!

又頌,“ 不是風幡何處着? 新開作者曾拈却. 如今懵懂癡禪和,
謾道玄玄爲獨脚!”
15) 앞의 게송에 이어 이번에는 ‘마음이 움직인다’라는 구절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분별에 대하여 비판한 게송이다.
16) 바람과 깃발 두 가지가 모두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는 뜻
    을 의문의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무문혜개(無門慧開)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마음이 움직인 것도 아니다.”(不是
    風動, 不是幡動, 不是心動.)라고 했던 취지와 통한다.『無門關』29則「評唱」 
    大48 p.296c21 참조.
17) 파릉호감(巴陵顥鑑)을 말한다. 호감이 호남 파릉(巴陵)의 ‘신개원(新開院)’에 주
    석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작자(作者)는 작가(作家)와 같은 말이다.
18) 선화(禪和). 선화자(禪和子)라고도 한다. 선승에게 친밀감을 나타내는 호칭이며
    선사가 학인을 부를 때에도 사용한다.

 

[설화]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 또한 남겨두지 말라는 뜻이다.

又頌:心動, 亦不存.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송1 19)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 하니,

길 가는 이들 두 겹의 관문에서 막혀 있었다네.

장안이 응당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있다 하여,

곤륜20)이 갔다가 왔다는 말 진실로 믿지 마라.21)
大洪恩頌, “不是風兮不是幡, 行人曾滯兩重關. 長安道在應須
到, 莫聽崑崙叙往還.”
19) 투자의청(投子義靑)의 다음 시와 내용이 비슷하다. “(모든 중생에게 본래 불성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예로부터 내려온 두 겹의 관문이여<관에서 발행한 증명서가
    분명하다. 감변하느라 헛수고하지 마라.>! 바른 안목을 갖춘 선수행자도 통과하
    기 어려우니라<너무 가벼이 본 것이 아닌가?>. 활처럼 쭉 뻗어 있는 길을 지나 장
    안에 이르고자 하면서<다만 좋은 일을 하면 될 뿐이다.>, 곤륜이 갔다가 왔다는 말
    진실로 믿지 마라<앞일을 묻지 마라.>.”(『空谷集』 98則 「芭蕉拄杖」 卍117 p.
    637a14. 有無今古兩重關<公驗明白. 不勞勘辨.>! 正眼禪人過者難<莫便等閑看?>. 
    欲通大道長安路<但行好事.>, 莫聽崑崙敘往還<莫問前程.>)
20) 崑崙. 곤륜노(崑崙奴)·곤륜자(崑崙子)라고도 하는데, 곤륜국(崑崙國:南海의 여
    러 나라)의 흑인 혹은 인도나 서역에서 온 사람을 중국 사람들이 낮춰 부르는 말
    이다.
21) 장안의 길이 넓다 해도 반드시 관문을 통과해야 그곳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홍보은의 송 2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라 하는데,

석성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세상 얼마나 아득한가!

하늘의 별들은 모두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인간세상의 물줄기 동해로 흘러드는 법이니라.22)
又頌,“ 不是幡兮不是風, 石城山頂望何窮! 天上有星皆拱北,
人閒無水不朝東.”
22)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라고 한 말에 본분의 소식이 다 드러나 있다는
    취지. “원오가 불자를 들자 학인이 나와서 ‘하늘의 별들은 모두 북극성을 중심
    으로 돌고 인간세상의 물줄기는 동해로 흘러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
    였다. 이에 원오가 말했다. ‘드디어 화두를 알아차렸군.’”(『圜悟語錄』권1 大47
    p.715b20. 師擧拂子, 進云, ‘天上有星皆拱北, 人間無水不朝東.’ 師云, ‘且得領話.’) 불
    자 자체를 본분의 화두로 제시했다.

 

대홍보은의 송 3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면 어디에 귀착될까?

바람이니 깃발이니 하는 견해도 버려야 하리.

그 말에 끌려 다니면 어쩔 도리 없을 것이요,

한 구절로 기틀에 부합하여도 큰 착각일세.

착각이로다, 착각이야!

콧대가 하늘을 찌르더라도23) 코 꿰어지리라.

又頌,“ 不是風幡何處着? 是風幡兮亦拈却. 隨他去也大無端,
一句當機還大錯. 錯錯! 鼻孔撩天也穿却.”
23) 비공요천(鼻孔撩天). ‘撩’자는 ‘遼’로도 쓴다. ‘撩天’은 조천(朝天)이라고도 하는
    데 하늘을 향해 있다는 뜻이다. 즉 비공요천이란, 코가 하늘에까지 뻗었다는 말
    로 대단히 오만하고 자부심이 넘치는 것을 말한다.

 

낭야혜각(瑯慧覺)의 송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고 하니,

말 많은 아사리들 설명할 수 없으리라.

교묘한 말로 깊은 이해 구하려 한다면,

새삼스레 천 산 만 산이 가로막으리라.

瑯琊覺頌, “不是風兮不是幡, 多口闍梨不可詮. 若將巧語求玄
會, 特地千山隔萬山.”

 

천의의회(天衣義懷)의 송 1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 하니,

이 말 드러난 다음 세상에 퍼졌다네.

노로24)의 분명한 뜻 알고자 하는가?

천태와 남악 사이 만 겹의 산 있네.25)
天衣懷頌, “不是風兮不是幡, 斯言形已播人間. 要會老盧端的
處? 天台南岳萬重山.”
24) 老盧. 6조 혜능(慧能)을 가리킨다. ‘노’는 혜능의 속성이고, ‘로’는 존칭.
25) 만 겹의 무수한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 천태산과 남악산 사이처럼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표면적인 말과 6조의 본의는 깊은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천의의회의 송 2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라 하는데,

호인이 주문 시끄럽게 외우는 듯하다.26)

초봄인 음력 정월의 소식 알려주노니,

수많은 봉우리 온통 쪽빛처럼 푸르다.

又頌,“ 不是風兮不是幡, 胡人持呪口喃喃. 報道孟春正月節,
千峯隱隱色如藍.”
26) 시끄럽기만 하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주문(呪文)과 같다는 말. 소리만 있고
    뜻으로 포착되지 않는 이것이 화두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안탕천의 송 1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라 하니,

벼 베는 낫의 양 끝이 둥글게 굽었네.27)

조사의 분명한 뜻 아는 사람 누구인가!

남악과 천태 사이 첩첩의 산 있느니라.

鴈蕩泉頌, “不是風兮不是幡, 刈禾鎌子兩頭彎. 祖師的旨何人
會! 南岳天台千萬山.”
27) 양 끝의 하나는 바람, 다른 하나는 깃발이다. 그 양 끝이 하나의 낫을 이루듯이
    바람과 깃발의 움직임을 모두 부정하는 양단이 이 공안의 분명히 드러난 관문
    이다.

 

안탕천의 송 2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라 하니,

조주의 남쪽이요 석교의 동쪽이라네.28)

찰간 끝에 간 눈길 돌려 보지 않는다면,29)

황매에서 방아 찧던 늙은이30)를 등지리라.

又頌,“ 不是幡兮不是風, 趙州南畔石橋東. 刹竿頭上不迴首,
辜負黃梅踏碓翁.”
28) 서로 엇갈리는 견해를 나타내기 위하여 조주의 게송을 활용한 구절. “제방의 견
    해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듯한 현상을 보고 게송 한 수를 지었다. ‘조주의 남쪽
    이요 석교의 북쪽이며, 관음원 안에는 미륵이 있다네. 달마가 짚신 한 짝만 남기
    고 떠났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른 한 짝 찾지 못했노라.’”(『趙州語錄』古
    尊宿語錄14 卍118 p.334a5. 因見諸方見解異途, 乃有頌, ‘趙州南, 石橋北, 觀音
    院裏有彌勒. 祖師遺下一隻履, 直至如今覓不得.)
29)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는 말에 얽매여서는 6조의 본의를 알 수 없다.
30) 5조 홍인(弘忍) 문하에서 행자의 신분으로 방아를 찧었던 혜능을 가리킨다.

 

서록본선(瑞鹿本先)의 송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인다 하니,

예로부터 전해져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네.

지금 이후로 운수납자들 깨닫고자 하면,

조사야말로 참으로 마음 아는 벗이라네.

瑞鹿先頌, “非風幡動仁心動, 自古相傳直至今. 今後水雲人欲
曉, 祖師眞是好知音.”

 

승천전종(承天傳宗)의 송

 

바람과 깃발 흔들어 맑게 개도록 털어냈으니,

갖은 생각을 다 해봐도 끝내 알지 못하리라.

수많은 조사 문하의 선객들이여!

머리 뿔 드러내면 틀림없이 기린아이리라.

承天宗頌, “風幡搖動拂晴暉, 展事商量卒未知. 多少祖師門下
客! 頭角須是麒麟兒.”

 

자수첩의 송

 

바람 불어 깃발 흔들리다 잠잠하면 깃발 쳐지고,

검은 나귀가 흰 노새를 낳았네.

중양절 가까워오니 서풍이 급하게 불고,

매미는 뜰 회나무에 가득하고 국화는 울타리 넘어섰네.

資壽捷頌, “風動幡搖靜則垂, 黑驢生得白騾兒. 重陽日近西風
緊, 蟬滿庭槐菊滿籬.”

 

원통법수(圓通法秀)의 송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라 하니,

이에서 밝히더라도 마음 깨닫기는 어렵다네.

아무렇게나 막 지껄이는 말에서 찾으려 말고,

찰간 끝을 무심히 살펴보기만 하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31)
圓通秀頌, “不是風兮不是幡, 於斯明得悟心難. 胡言漢語休尋
覓, 刹竿頭上等閑看.”〈 且莫錯認.〉
31) 마지막은 편집자가 첨가한 말이다. 무심히 살펴보기만 할 뿐, 바람이 움직인다
    거나 깃발이 움직인다거나 하는 말에 상응하는 현상이 진실로 있는 것으로 착
    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설봉도원(雪峯道圓)의 송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라 하지만,

백운은 예전 그대로 청산을 덮을 뿐.

세월 흐르고 늙어 도무지 힘없어도,

바쁜 가운데 작은 휴식을 취했도다.

雪峯圓頌, “不是風兮不是幡, 白雲依舊覆靑山. 年來老大渾無
力, 偸得忙中些子閑.”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송32)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지 않고 마음만 움직인다 하니,

같은 말을 어째서 두 가지로 이야기한 것일까?

참을 수 없구나, 아무도 없는 듯이 오만한33) 노로34)여!

아사리와 좌주35) 모두 그에게 속고 말았구나.36)
海印信頌,“ 風幡不動唯心動, 一語如何話兩般? 叵耐老盧
大傍若! 闍梨座主被欺謾.”
32) 풍동(風動)과 번동(幡動)을 질책하며 제시한 6조의 심동(心動)도 동일한 잘못이
    지만 그것이 마치 옳은 것처럼 두 편으로 갈라놓아 관문을 설정했다는 관점이
    보이는 게송이다.
33) 방약(傍若)은 방약무인(傍若無人)의 줄임말. 자기 이외에 아무도 없는 듯이 군
    다는 뜻.
34) 老盧 . 주석24) 참조.
35) 아사리(阿闍梨 ācārya)는 모범적 법도가 되는 스승이라는 뜻에서 궤범사(軌範
    師)라 한역한다. 스승이 되어 제자를 가르칠 만한 덕을 갖춘 자를 말한다. 좌주
    (座主)는 가르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두 학인을 가리킨다.
36)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한 6조의 말도 진실이 아니지만 두 학인은 그것을 몰랐
    기 때문에 속았다는 말로서 6조의 말에 숨어 있는 관문(속임수)을 간파한 해인
    의 견해가 드러나 있다.

 

법창의우(法昌倚遇)의 송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라 하니,

검은 무늬 고양이 얼굴에 반점이 얼룩얼룩.

밤길 가는 사람 밝은 달빛만 좇아가다,

저도 모르게 옷 입은 채 찬 강물 건너네.

法昌遇頌, “不是風兮不是幡, 黑花猫子面門斑. 夜行人只貪
明月, 不覺和衣渡水寒.”

 

[설화]

검은 무늬 고양이 얼굴에 반점이 얼룩얼룩:어둠 가운데 밝음이 있다는 말이니,

한 마음이 움직일 때 바람이 움직이고 깃발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밤길 가는 사람 ~ 강물 건너네:단지 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오인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밝은 달빛을 좇아가느라 도리어 옷 입은 채 차가운 강물

을 건너는 꼴이라는 뜻이다.

法昌:黑花猫云云者, 暗中有明, 謂一心動處, 有風動幡
動也. 夜行人云云者, 只認一心動, 是貪明月, 反是和衣渡
水寒.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송

 

막힘없이 쭉 뻗은 관의 역참 길,

새벽에도 밤에도 통행 금한 일 없노라.

모두들 나다니려 하지 않는 것 아닌데,

문 앞에 가시나무 무성하니 어찌하랴!

保寧勇頌, “蕩蕩一條官驛路, 晨昏曾不禁人行. 渾家不是不
進步, 無奈當門荊棘生!”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송

 

파릉의 늙은이37) 예전에 핵심 집어내어 말하기를,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면 어디에 귀착될까 하였네.38)

시끄러운 저자에서 왕씨네 셋째 아들 피리39) 부니,

페르시아의 연회에서 삼대 곡조40)에 맞춰 춤추네.

法眞一頌,“ 巴陵老作昔拈來, 不是風幡安在哉? 鬧裏王三吹
觱篥, 波斯筵上舞三臺.”
37) 파릉호감(巴陵顥鑑). 운문문언의 법제자로서 악주(嶽州) 파릉 신개원(新開院)에
    주석하였다. 주석17) 참조.
38) 본칙에도 파릉호감의 염이 실려 있고,『雪竇語錄』大47 p.688a15,『聯燈會要』
    권2「六祖惠能大師傳」卍136 p.462a9 등에도 전한다.
39) 필률(觱篥). 일명 당(唐)피리. 대나무로 만든 황관악기(簧管樂器)에 속한다. 서역
    에서 전래된 중국 악기로 우리나라에는 1114년(고려 예종9)에 들어왔다. 원래는
    9공(孔)이었으나 조선 성종 때 8공으로 개량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가관
    (笳管)·두관(頭管)이라고도 부른다.
40) 본서 2則 주석75) 참조.

 

장로종색(長蘆宗賾)의 송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라 하면서,

찰간41) 꼭대기를 무심하게 보라 하네.42)

원통의 불법에는 복잡한 것이 없으니,43)

코는 언제나처럼 눈앞에 드러나 있네.44)
〈원통법수(圓通法秀)의 송을 아울러 제기했다.〉
長蘆賾頌, “不是風兮不是幡, 刹竿頭上等閑看. 圓通佛法無多
子, 鼻孔依前在目前.” 〈兼擧圓通秀頌.〉
41) 刹竿. 깃발이 달려 있는 장대. 절 앞에 세워 놓고 설법이나 의식이 거행되고 있
    음을 표시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또는 탑 위나 불당(佛堂) 등에 상시적으로
    세워 놓는 장대다.
42) 원통법수(圓通法秀)의 게송 중 1구와 4구를 인용한 것.
43) 임제의현(臨濟義玄)이 “황벽의 불법에는 복잡할 것이 없다(黃蘗佛法無多子)”
    라고 한 말을 활용한 것이다. 선사들의 불법은 복잡한 이치로 설명할 것이 없
    고 눈앞에 드러나 있는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이라는 뜻이다.『臨濟語錄』大47
    p.504c19 참조.
44) 원통이 말하는 불법은 얼굴의 중심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코와 같이 분명한데,
    ‘찰간 꼭대기를 무심하게 보라’고 한 말의 의미가 그와 같다.

 

승천회의 송

 

바람 불고 깃발 흔들림 딱 들어맞는 뜻이거늘,

6조는 어찌하여 마음이 움직인다 한 것일까?

당시에 진실로 눈 밝은 이45)가 있었다면,

의발을 반드시 전하지 않았으리라고는 못하리.46)
承天懷頌,“ 風動幡搖旨最親, 老盧心動若爲陳? 當時果有迦
羅眼, 未必衣盂不付人.”
45) 가라안(迦羅眼). 삭가라안(爍迦羅眼)을 줄여 이르는 말. 견고안(堅固眼)·금강안
    (金剛眼)이라고도 한다. 금강과 같이 견고한 눈이란 뜻으로 사정(邪正)·시비(是
    非)·득실(得失) 등을 판별하는 지혜와 견식을 갖춘 깨달은 사람을 가리킨다.
46) 선종에서 초조 달마대사 이후 조사의 징표로 가사와 발우를 전하여 6조 혜능까
    지 이어졌지만 그 뒤로는 이 전통이 사라졌다는 설에 따른다. 5조 홍인(弘忍)은
    혜능을 6조로 인가하여 대대로 전해온 가사와 발우를 부촉하면서 더 이상 싸움
    의 실마리가 되는 이 가사를 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옛날에 달마대사가 중
    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그 법을 믿지 못했으므로 이 가사를 전하여 믿음
    의 근거로 삼기 위해 대대로 전했던 것이다. 그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
    는 것으로 모두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이해하도록 했다. 옛날부터 부처님들
    은 오직 본체만을 전했고, 조사들은 본심만을 친밀하게 전수했다. 가사를 전하
    는 것은 싸움의 발단이 되므로 그대에게서 그치고 더 이상 전하지 말도록 하라.
    만일 이 가사를 전하면 생명이 허공에 실로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울 것이다. 그
    대는 속히 떠나라!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해칠까 걱정된다.”(宗寶本『壇經』大48
    p.349a28. 昔, 達磨大師, 初來此土, 人未之信, 故傳此衣, 以爲信體, 代代相承. 法
    則以心傳心, 皆令自悟自解, 自古佛佛, 惟傳本體, 師師密付本心. 衣爲爭端, 止汝勿
    傳. 若傳此衣, 命如懸絲. 汝須速去! 恐人害汝.)

불인지청(佛印智淸)의 송

 

바람과 깃발이 마음이거늘 다시 무슨 말할까?

여섯 문 고요히 쉬라는 말47) 예부터 전한다네.

터럭만큼이라도 들어서면 예전처럼 멀어지리니,

대천사계48)는 모두 한 털끝에 있을 뿐이라네.
佛印淸頌,“ 風幡是心更何言? 六門休歇古今傳. 若立絲毫仍
舊隔, 大千沙界一毛端.”
47) 여섯 문[六門]이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등의 인식기
    관인 육근(六根)을 가리킨다.『景德傳燈錄』권29 大51 p.452c28에 실려 
    있는 용아거둔(龍牙居遁)의 게송에 동일한 취지가 보인다. “한번 무심하게
    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탈속한 경지이니, 여섯 문이 고요히 쉬어 아무 수고
    로움 없게 된다네. 인연 있는 것은 나의 벗 아니요, 쓸모없는 양 눈썹이 도
    리어 나의 형제니라.”(一得無心便道情, 六門休歇不勞形. 有緣不是余朋友, 
    無用雙眉却弟兄.)
48) 大千沙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항하사세계(恒河沙世界)를 합하여 이
    르는 말. 삼천대천의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 곧 우
    주 안에 있는 모든 세계를 가리킨다.

 

취암사종(翠嵓嗣宗)49)의 송

 

바람도 깃발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니,

조사의 바른 안목 지금 이것일 뿐일세.

지금을 알지 못하면 산하에 막힐 것이요,

지금을 알더라도 바다와 산에 침몰되리라.

翠嵓宗頌, “不是風幡不是心, 祖師正眼只如今. 如今不識山河
礙, 識得如今海嶽沉.”
49) 1085~1153. 조동종의 스님. 호는 문암(聞庵). 설두산(雪竇山)에 주석했으므로 설
    두사종이라고도 한다.

 

불감혜근(佛鑑慧懃)의 송

 

바람도 깃발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라 하니,

얼마나 많은 이들 칼 빠뜨린 곳 뱃전에 표시하고 찾았던가?

여러 선객들에게 분명히 말해주노니,

예로부터 놋쇠는 금과 바꾸지 않는 법이라네.50)
佛鑑懃頌,“ 不是風幡不是心, 幾人遺劒刻舟尋? 分明寄語諸
禪客, 自古眞鍮不愽金.”
50) 놋쇠[眞鍮]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산 놋쇠이며 귀하기 때문에 금과 버금가는 가
    치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서로 맞바꿀 필요가 없는 대등한 가치를 나타내는 말
    이다.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하거나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하거나 놋쇠
    와 금의 관계와 같다는 뜻이다. “속담에 ‘놋쇠는 황금과 바꾸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놋쇠가 귀한 물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천연 그대로 자생한 것을 진
    유라 하는 이상 노감석(盧甘石)으로 제련한 것은 그것과 구분하여 가유(假鍮)라
    한다.”(『演繁露』권7. 諺言, 眞鍮不博金, 甚言其可貴也. 夫天然自生者, 旣名眞
    鍮, 則盧甘石所煑者, 决爲假鍮矣.);“유석(鍮石)<유의 음은 투이다.『비창(埤倉)』
    에 ‘유석은 금과 비슷하지만 금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서쪽 오랑캐 티베트에서는 
    동을 단련하여 약을 만든다. 여기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두 종류 유석이 있어 
    같지 않다. 나쁜 것은 비교적 흰색으로 회절(灰折)이라 하고, 좋은 것은 비교적 
    황금색으로 금절(金折)이라 한다. 그래서 금절이라고도 하고 진유라고도 한다. 
    속담에 ‘금과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한 말은 이것을 가리킨다.>”(『一切經音義』 
    권60 大54 p.710a24. 鍮石<上音偷, 埤倉云, 鍮石似金, 似而非金. 西戎蕃國, 藥
    鍊銅所成. 有二種鍮石, 善惡不等. 惡者, 挍白名爲灰折;善者, 挍黃名爲金折. 亦
    名爲金折, 亦名眞鍮. 俗云, 不愽金, 是也.>)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송

 

바람도 깃발도 아니요 오직 마음이 움직였다 하니,

바다의 물결 언제나 거세게 치솟는구나.

물고기들 출몰하며 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질 뿐,

삶과 죽음, 성인과 범부 온전히 한가지로다.

온전히 한가지인 것은 어떤 모습인가?

조사와 부처는 방관한 채 부질없이 합장하고 있다.

佛眼遠頌,“ 非風幡動唯心動, 大海波瀾常洶湧. 魚龍出沒
任升沈, 生死聖凡無別共. 無別共底怎摸樣? 祖佛傍觀空
合掌.”

 

숭승원공(崇勝院珙)의 송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 동으로 서로 분주하지만,

그대들의 마음은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다네.

어리석은 자51)가 기틀 드러내기는 했으나 깨치지는 못하더니,52)

조사가 지시해 주자 병은 점점 깊이 침입했다네.

능엄의 밝음과 어둠 그리고 막히고 통하는 이치 안다 해도,53)

현사가 제기한 벙어리 소경 귀머거리의 병통 어찌 면하리오!54)
崇勝珙頌,“ 風幡動兮自西自東, 仁者心兮非異非同. 獃漢
呈機兮未曾發蒙, 祖師指示兮轉見病攻. 縱了首楞兮明暗塞
通, 爭免玄沙兮瘖噁盲聾!”
51) 흔히 치애한(癡獃漢)이라고 쓴다.
52) 발몽(發蒙). 격발몽체(激發蒙滯)와 통하는 말. 어리석음을 깨닫도록 자극한다
    는 뜻.
53) “그러므로 이제 그대가 어둠도 떠나고 밝음도 떠난다면 헛되게 듣는 근거가 없
    어지고, 움직임도 떠나고 고요함도 떠나면 원래 망령되게 듣는 바탕이 없게 되
    며, 통함도 없고 막힘도 없으면 냄새라는 성질도 생겨나지 않고, …… 인연경계
    를 보는 것이 밝음 때문이라 하여 어두울 때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밝지 않
    아도 스스로 밝게 아는 작용이 생긴다면 온갖 어두운 상(相)도 영원히 어둡지
    않으리라. 인식기관과 대상경계가 사라진다면 어찌 원만하고 미묘한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겠는가!”(『楞嚴經』권4 大19 p.123b21. 是以, 汝今離暗離明, 無有
    見體, 離動離靜, 元無聽質, 無通無塞, 嗅性不生, …… 緣見因明, 暗成無見, 不明
    自發, 則諸暗相, 永不能昏. 根塵旣銷, 云何覺明不成圓妙!)
54)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가 당시 선자(禪者)라고 하는 이들이 지니고 있던
    병통을 환맹(患盲:스승이 지도해 주어도 그 뜻을 알지 못함)·환롱(患聾:스승의
    말을 흉내만 냄)·환아(患啞:불법을 설할 줄 모름) 등 세 가지로 나타내 보인 공
    안. 현사삼병(玄沙三病)·현사삼종병인(玄沙三種病人)·현사접물이생(玄沙接物
    利生)·삼종병인(三種病人) 등이라고 한다. “현사사비가 대중에게 말했다. ‘제방
    의 노숙(老宿)들이 모두들 「중생을 가르치고 그들을 이롭게 한다」고 하는데, 가
    령 세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소경에
    게 건추를 들거나 불자를 세워 보여도 그들은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에게 깊이
    있는 말을 들려주어도 그들은 듣지 못할 것이며, 벙어리에게 말하도록 가르쳐
    도 그들은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불법에 신령한
    효능은 없는 것이다.’”(『玄沙語錄』권중 卍126 p.415b8. 師垂語云, ‘諸方老宿, 
    盡道接物利生, 祇如三種病人, 汝作麽生接? 患盲者, 拈槌竪拂, 他又不見, 患聾者, 
    語言三昧, 他又不聞, 患瘂者, 教伊說, 又說不得. 若接不得, 佛法無靈驗.’)

 

장령수탁(長靈守卓)의 송

 

꿈속에 화정55)에 올라 노닐다가 단구56)를 지나,

청량한 구름 다 밟고서 돌 누각에 기대어 있었네.

벼랑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에 시선을 빼앗겨,

이 몸 푸른 강가에 다다른 줄은 알지도 못하였네.

長靈卓頌, “夢遊華頂過丹丘, 躡盡寒雲倚石樓. 貪看瀑泉瀉
崖壁, 豈知身在碧江頭.”
55) 華頂. 천태산(天台山)의 주봉(主峰).
56) 丹丘(坵). 전설 속에 신선이 산다는 곳. 밤도 낮과 같이 늘 밝다고 한다.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송

 

강가에는 연기 피어오르고 수양버들 간들간들,

대밭에는 구름 짙어 낡은 집 더욱 나지막하네.

녹음이 산천을 온통 덮으니 봄의 정취는 가고,

오동나무꽃 가득 떨어진 땅에 소쩍새 우는구나.

心聞賁頌, “水邊煙膩垂楊裊, 竹裏雲深古屋低. 綠遍山川春事
過, 桐花滿地子規啼.”

 

자항요박(慈航了朴)의 송

 

바람도 깃발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라니,

무심하게 움켜쥔 흙 그대로 황금이로다.

조계로 가는 한 길은 숫돌처럼 평탄하거늘,

아무 일 없던 무수한 사람들 땅속에 묻혔네.57)
慈航朴頌, “不是風幡不是心, 等閑握土是黃金. 曹溪一路平如
砥, 無限平人被陸沉.”
57) 육침(陸沉).『莊子』「雜篇」則陽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와 자로가 초나라를 지나
    다가 하인노릇을 하는 성인을 보았다. 공자는 그에 대해 ‘땅 밑에 빠진 듯 숨어
    지내는 자로다(是陸沈者也)’라고 평가하였다.

송원의 송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 하니,

만 겹 관문 분명히 찢어 갈가리 조각내었네.

누가 알리오, 팔심 있는 대로 다 써버린 뒤,

덧없는 명성 일으켜 세간의 덫에 걸린 것을.

松源頌,“ 不是風兮不是幡, 分明裂破萬重關. 誰知用盡腕頭
力, 惹得閑名落世間.”

 

묘지곽의 송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 하니,

신령한 칼날 오롯이 드러나 시퍼런 빛 번뜩이네.

망망한 우주에 알아주는 이 없으니,

높은 누각에 부질없이 기대어 찰간만 바라볼 뿐.

妙智廓頌, “不是風兮不是幡, 靈鋒獨露寶光寒, 茫茫宇宙無知
己, 空倚危樓望刹竿.”

 

개암붕의 송58)

 

바람도 깃발도 다 옳지 않고,

그대들의 마음 또한 틀렸다네.

옛길에 쓰러진 조각난 비석,59)

그 아래 돌 거북 깔렸도다.

介庵朋頌,“ 風幡俱不是, 仁者心亦非. 斷碑橫古道, 下有石
烏龜.”
58) 1구와 3구, 2구와 4구가 각각 호응한다. 조각난 비석은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 하며 두 가지로 조각난 견해를 상징하고, 돌 거북은 마음이 움직인다
    고 한 말을 나타낸다. 조각난 비석과 비석을 받치고 있다가 깔려버린 돌 거북이
    모두 제 모양을 잃은 꼴을 비유하고 있다.
59) “학인이 물었다. ‘위앙 문하의 본분사는 어떤 것입니까?’ ‘조각난 비석이 옛길에
    쓰러져 있다.’”(『五祖法演語錄』권상 大47 p.655c8. 學云, ‘如何是溈仰下事?’ 
    師云, ‘斷碑橫古路.’)

 

설봉의존(雪峯義存)의 염

 

설봉이 “대단하신 조사여! 용 머리에 뱀 꼬리를 단[龍頭蛇尾] 형상이로

구나.60) 20방을 맞아야 할 잘못이다”라고 이 공안의 핵심을 집어내자, 부상

61)가 시봉하고 있다가 (뿌드득) 이빨을 갈았다. 설봉이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한 말도 20방을 맞아야 할 잘못이다.” 〈대혜종고(大慧宗
杲)가 말했다. “부상좌의 진실을 알고 싶은가? 무소가 달빛을 즐기다가 뿔에 무늬가 생긴
격이다. 설봉의 의중을 알고 싶은가? 코끼리가 천둥소리에 놀라 상아에 꽃 그림(번개 그
림자)이 새겨진 격이다.62)”〉
雪峯存拈,“ 大小祖師! 龍頭蛇尾. 好與二十棒.” 孚上座侍立
次, 咬齒. 峯云,“ 我伊麽道, 也好與二十棒.”〈 雲門杲曰,“ 要識孚上
座麽? 犀因翫月紋生角;要識雪峯麽? 象被雷驚花入牙.”〉
60) 움직이면 모두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야 수미일
    관한 말인데, 처음과 끝이 다르게 갈라졌다는 뜻.
61) 孚上座. 설봉의존의 법을 이은 선사로서 보통 태원부상좌(太原孚上座)라 불린다.
62) 무소뿔에 생긴 무늬나 상아에 새겨진 꽃 모양의 번개 그림자는 눈에 보이는 그
    대로의 무늬나 꽃이 아니며 곧 사라질 것들이다. 20방의 잘못이라는 말과 이빨
    을 가는 동작을 비롯하여 바람과 깃발과 마음 그리고 그것이 움직인다거나 움
    직이지 않는다는 말들은 모두 잠시 주었다가 빼앗고 빼앗았다가 다시 주는 선
    어(禪語)의 도구일 뿐 결정된 의미는 없다. <설화>에서 ‘밝은 듯이 보이지만 어
    둡고, 어두운 듯이 보이지만 밝다’라고 해설한 취지도 같은 맥락이다.『仰山語
    錄』大47 p.586c28,『宏智廣錄』권4 大48 p.38b16 등 선어록과 공안집에 널리
    인용된다.

 

[설화]

대단하신 조사여 ~ 형상이로구나:마음이 움직인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는 뜻이다.

이빨을 갈았다:부상좌가 설봉을 긍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내가 이렇게 한 말도 20방을 맞아야 할 잘못이다:도둑질하는 사람의 마음이

불안한 것과 같다.63) 그런데 ‘용두사미가 되었구나’라는 말에서 ‘바람이 움

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라는 구절은 용의 머리

에 해당하고,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뱀의 꼬리에

해당한다. 뱀의 꼬리에 해당하는 바로 이 부분이 20방을 맞아야 합당한 잘

못이다.

대혜종고가 ‘무소가 달빛을 즐기다가 ~ 새겨진 격이다’라고 한 말은 부

상좌가 비록 밝게 보이지만 어둠을 떠난 적이 없고, 설봉이 어둡게 보이지

만 밝음을 떠난 적이 없다는 뜻이다.

雪峯:大小祖師云云者, 心動亦不立. 咬齒者, 不肯雪峯也.
我伊麽道云云者, 作賊人心虛. 然龍頭蛇尾者, ‘不是風動, 不
是幡動’, 是龍頭,‘ 仁者心動’, 是蛇尾, 此合喫二十棒處. 雲
門, 犀因翫月云云者, 孚上座雖明, 未嘗離暗;雪峯雖暗, 未
嘗離明.
63) 부상좌가 이빨 가는 소리를 낸 것은 별 뜻이 없었는데, 설봉은 도둑이 제 발이
    저린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질책하는 소리로 들었다는 뜻이다. 마음이 움직인
    다는 말도 20방의 잘못이듯이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숨은 뜻도 마찬가지
    잘못이라는 점을 설봉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복종전(保福從展)의 염

 

“도둑질하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한 법이지만, 그래도 소하64)와 맞먹는

전략이 있어야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65)”
保福拈,“ 作賊人心虛, 也是蕭何置律.”
64) 蕭何(?~B.C.193). 장량(張良)·한신(韓信)과 함께 한(漢)나라의 삼걸(三傑) 중 한
    사람.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제패하고, 진나라의 법을 취사하여
   『九章律』을 편찬하였다.
65) 뛰어난 지략과 책략으로써 한나라를 창건하는 데 큰 힘을 보태고 법규를 제정
    하기도 한 소하는 흉노(匈奴)의 군주인 선우(單于)를 토벌할 때는 은성(銀城)을
    준다는 속임수로 적을 유도하여 모조리 포획하기도 했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은 허(虛)한 말로서 소하의 속임수와 같지만 상대를 유도하는 전략에 능하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곧 종사들이 제정하는 법률은 ‘마
    음이 움직인다’는 말을 주었다가 도둑질하듯이 빼앗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
    로 바꾸어 주고, 그것을 다시 훔치는 방식의 여탈자재(與奪自在)한 법률이다.

 

[설화]

도둑질하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하다:6조가 ‘한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한 말

이 원래 실(實)한 뜻이 아님을 나타낸다.

소하와 맞먹는 전략이 있어야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한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한 말은 실한 뜻이기도 하다는 말이다.66)
保福:作賊人心虛者, 祖師一心動, 元非實意也. 是蕭何置律
者, 一心動, 亦是實意.
66) 각운(覺雲)은 ‘마음이 움직인다’라는 말이 실(實)이 아니면서 실이기도 하다고
    하여 실과 비실(非實)을 대칭시켜 해설하고 있다. 이것은 이 화두를 소재로 삼
    아 또 하나의 관문을 설정하는 이중공안(二重公案)의 방식에 따르는 해설이다.

 

파릉호감(巴陵顥鑑)의 염

 

“조사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 하

였으니,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면 어디에 귀착된다는 말일까? 조사의 주인

이 되어볼 사람이 있다면,67) 나와서 나와 맞부딪쳐 보자.”

巴陵鑒拈,“ 祖師道, 不是風動, 不是幡動, 旣不是風幡, 向什
麽處着? 有人與祖師作主, 出來與巴陵相見.”
67) 조사의 주인이 되어 볼 사람이란 6조의 말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6조
    와는 다른 자신만의 확고한 견해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설화]

조사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 어디에 귀착된다는 말일까:바람과 깃발이

무엇에 귀착되느냐고 던진 질문일까? 바람과 깃발을 떠나서 어디에 의지

하겠느냐고 물은 말이다. 바람과 깃발을 떠나서 별도로 무슨 의지할 대상

이 있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조사의 주인이 되어볼 사람:한 마음이 움직인다는 6조의 말을 마음대로 주

재할 수 있는 자를 가리킨다.

나와서 나와 맞부딪쳐 보자: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고 한 말에 무슨 잘못

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巴陵:祖師道不是風動云云, 至麽處著者, 風幡向什麽處著耶?
離風幡外向什麽處寄著也. 意謂離風幡外, 別有什麽寄着處.
有人與祖師作主云云者, 於一心動, 作主宰者. 出來與巴陵相
見者, 風幡動有什麽過.

 

청량문익(淸涼文益)의 상당68)
68) 6조가 한 말에 어떤 첨삭도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궁구하도록 권하는 법문이다.
    그것이 온전히 실현된 공안[現成公案]이라 보는 안목이다.

 

“여러 상좌들이여! 무심히 넘길 문제로 여기지 마라. 권고하건대, 옛 성

인이 자비심으로 펼쳐 보인 문에 의지해야 한다. 옛 성인들이 갖가지 경계

를 보았지만 그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본 것일 뿐이다. 6조는 ‘바람이 움

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

이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다만 이 말 그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친밀하

게 전한 이 말씀보다 특별히 더 친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淸涼益, 上堂云,“ 諸上座! 且莫將爲等閑. 奉勸, 且依古聖慈
悲門好. 他古聖所見諸境, 唯見自心. 祖師道,‘ 不是風動, 不
是幡動, 仁者心動.’ 但且伊麽會好. 別無親於親處也.”

 

오조사계(五祖師戒)의 염

 

“무엇에 근거하여 한 말일까?”

五祖戒拈,“ 着甚來由?”

 

[설화]

조사가 한 마음이 움직인다고 한 말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五祖云云者, 嫌他祖師一心動也.

 

천태덕소국사(天台德韶國師)의 시중

 

“옛 성인의 방편은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다. 6조가 말하기를, ‘바람

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

으니, 이는 최상의 심인(心印)이며, 가장 근본적인 법문이다. 조사 문하의

학인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떤 자는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망령되게 움직이는

것이다’라 말하고, 어떤 자는 ‘바람과 깃발에 대한 말을 치워 없애지 말고,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 바로 그 말에서 꿰뚫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어떤 자는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고 한 바로 이 말은 무슨 뜻인

가?’라고 물음을 던진다. 또 어떤 자는 ‘사물에 의지하여 마음을 밝히더라

도 사물 그대로가 진실이라 오인해서는 안 된다’라 말하고, 어떤 자는 ‘색

그대로 공[色卽是空]’이라 말하며, 어떤 자는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는 것

이 아니라 하니 이 말은 반드시 미묘하게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러한 말들은 6조의 의중과 전혀 관계가 없다. 이 같은 갖가지 이해들이 모

두 옳지 않다면, 어떻게 알아야 할 것인가? 만약 진실로 알아낸다면, 어떤

법문인들 밝히지 못하겠는가? 비록 무수한 부처님의 방편이라도 한꺼번

에 막힘없이 깨우칠 것이다.”

天台韶國師, 示衆曰, “古聖方便, 猶如河沙. 六祖曰, ‘非風幡
動, 仁者心動.’ 是爲無上心印, 至妙法門. 我軰稱祖師門下士,
何以解之? 若言, 風幡不動, 汝心妄動;若言, 不撥風幡, 就風
幡處通取;若言, 風幡動處, 是什麽?;若言, 附物明心, 不須
認物;若言, 色卽是空;若言, 非風幡動, 應須妙會. 與祖師意
旨, 了沒交涉. 旣非種種解會, 合如何知悉? 若眞見去, 何法門
不明? 雖百千諸佛方便, 一時洞了.”

 

[설화]

아버지가 아니면 자식을 낳지 못한다.69)
天台:非父, 不生其子也.
69) 아버지의 뛰어난 가르침이 아니면 자식을 바르게 길러낼 수 없다는 뜻. 천태덕
    소의 시중(示衆)에 제자를 지도하는 스승으로서의 높은 안목이 있음을 칭송하
    는 말이다.

 

설두중현의 염

 

파릉호감의 염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바람이 움직이고 깃발도 움직인

다고 하니, 이미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면 다시 어디에 귀착된다는 말일

까? 파릉의 주인이 되어볼 사람 있는가?70) 있다면 나와서 나와 맞부딪쳐

보자.”

雪竇顯, 擧巴陵拈, 師云,“ 風動幡動, 旣是風幡, 向甚處着? 有
人與巴陵作主, 亦出來與雪竇相見.”
70) 파릉과 다른 견해를 제시하여 그의 견해를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사람을 가리
    킨다. 다음 구절에서 그런 사람과 대결해 보겠다고 한 말은 설두 자신은 파릉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설화]

바람이 움직이고 깃발도 움직인다:파릉은 바람이 움직이고 깃발도 움직인다

는 견해를 근본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이미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면 다시 어디에 귀착된다는 말일까:한 마음이 움직

인다는 것에서 벗어나 어디에 의지하겠느냐는 뜻이다.

파릉의 주인이 되어볼 사람 있는가:바람이 움직이고 깃발이 움직인다는 입

장을 마음대로 주재할 수 있는 자를 가리킨다.

있다면 나와서 나와 맞부딪쳐 보자:6조가 한 마음이 움직인다고 한 말에 무

슨 잘못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설봉과 부상좌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라는 주장과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

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요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대칭시

켰고, 파릉과 설두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요 깃발도 움직이는 것이다’라

는 주장과 ‘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대칭시켰다.

雪竇:風動幡動者, 巴陵則以風動幡動爲宗. 旣是風幡, 向什
麽處着者, 離一心動外, 向什麽處寄着也. 有人與巴陵作主者,
於風動幡動, 作主宰者也. 出來與雪竇相見者, 一心動有什麽
過也. 雪峯孚上座, 不是風動不見幡動不是心動, 是風動是幡
動是心動爲對;巴陵雪竇, 以風動幡動一心動爲對.

 

해인초신의 염

 

“대단하신 조사여, 같은 말을 두 가지로 달리하였으니 30방을 맞아야 할

잘못이다. 한 방의 잘못이 더 남아 있으니 꼼짝 말고 있어라.”

海印信拈,“ 大小祖師, 話成兩截, 好與三十棒. 更有一个, 切
忌動着.”

 

[설화]

같은 말을 두 가지로 달리하였다:‘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는 말과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 두 가지로 나뉘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71) 이는 30방

을 맞아 마땅한 잘못인데, 그것에 덧붙여 또 남아 있는 한 방의 잘못72)

어찌 향상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겠는가라는 뜻이다.

海印:話成兩截者, 風幡動心動, 是兩截也. 是合喫三十棒處,
更有一棒, 豈向上一竅耶?
71) 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은 말임에도 다른 듯이 갈라놓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72) 마음이 움직인다고 한 6조의 말.

 

장산법천(蔣山法泉)의 소참

 

이 공안과 더불어 파릉호감과 설두중현의 염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이

두 분 존숙의 궁극적 뜻을 알고자 하는가?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비

유를 들어 말해 주리라. 마치 어떤 집안이 조상 대로부터 가산이 지극히

넉넉하였는데, 두 형제가 서로 재산을 두고 다투는 것과 같다. 형은 500전

(錢)을 가지고 동생은 한 관(1000전)을 가지고서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싸

움을 그치지 않다가 끝내는 조부의 가산을 일시에 탕진하여 그들 자손에

게까지 누가 미치게 되자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느 날 친구가 그의 자손들이 의지할 데 없이 외롭게 사는 것을 보고 마

침내 그들 조상들이 가졌던 집을 빌려주어 살게 하였다. 그때 자손들은

‘예전 우리 조상들이 이룬 가업이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단 말

인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당시의 재산 증서를 찾아내야 비로소 결실을

맺으리라. 눈앞의 일을 좇으며 세월을 보내더라도 안 될 것이야 없지만 남

의 집에 사는 신세를 면치는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대중들이여, 내

가 그대들에게 비유를 들어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묻겠다. 그들이 어떤 방

법을 써야 당시의 재산 증서를 찾을 수 있겠는가?”

蔣山泉, 小叅, 擧此話, 連擧巴陵雪竇拈, 師云,“ 要知二尊宿
落處麽? 蔣山爲你說箇譬喩. 一似箇人家祖上, 從來極有涯業,
有二兄弟, 各各鬪使. 大者使五百, 小者使一貫, 日往月來, 鬪
使不已, 遂將祖父涯業, 一時蕩盡, 累他子孫, 無安身立命處.
忽有一親友, 見其子孫孤露, 遂將伊家祖上宅舍, 借伊居止. 其
間子孫須念, ‘舊時祖業, 如何却屬他人? 須作方便, 討得當時
契書, 方爲究竟. 若趂目前過日, 得則得, 未免住在他人屋下.’
大衆, 蔣山爲你說譬喩了也. 且問, 諸人, 作何方便, 討得當時
契書?”

 

[설화]

어떤 집안이 조상 대로부터 가산이 지극히 넉넉하였다:6조를 가리킨다.

두 형제가 있었는데 서로 재산을 두고 다투었다:여기서 두 형제란 파릉호감과

설두중현을 말한다.

형은 500전을 가지고 동생은 한 관을 가지고서:파릉은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

다는 말을 꺼내어 6조의 말과 달랐으므로 한 관의 반이라 하고, 설두는 6

조와 같이 (마음이 움직인다고) 말했으므로 한 관 전체를 가졌다고 한 것

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두 존숙 모

두 6조의 뜻을 알지 못하였기에 가업을 탕진한 것이다. 훗날 사람들이 그

말을 따라 친·소와 득·실을 따지는 일이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자손들에

게 누를 끼쳐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느 날 친구가 ~ 집을 빌려주어 살게 하였다:여기서 친구라는 것이 어찌 자

기 자신을 가리킨 말이겠는가?

그동안 자손들은 ~ 비로소 결실을 맺으리라:당시의 재산 증서라는 것은 6조

의 종지를 뜻한다.

蔣山:一似箇人家, 至極有涯業者, 言祖師也. 二兄弟, 謂巴
陵雪竇. 大者五百, 小者一貫者, 巴陵出風幡動, 與祖師言異
故, 一貫之半也, 雪竇與祖師言同故, 一貫之全也. 日往月來
至立命處者, 二尊宿, 皆不會祖師意, 蕩盡家業也. 後人隨言
有親踈得失商量, 是累他子孫, 無安身立命處也. 忽有親友至
居止者, 一友豈自謂耶? 子孫須念至究竟者, 當時契書則祖師
宗旨也.

 

고목법성(枯木法成)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여러분, 조사는 시기에 적절한 방편을 세움

으로써 그 의향을 가늠할 틀을 만들었다. 여러분은 조사가 학인들에게 분

명하게 가르쳐 보인 뜻을 알고자 하는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하였다. “바

람이니 깃발이니 마음이니 하거나, 움직인다고 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거나 모두가 미혹의 실마리일 뿐이다. 조사가 설정한 관문의 빗장73)

알고자 하는가? 벼랑 앞에서 때마침 두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구나.”

枯木成, 上堂, 擧此話云,“ 諸仁者, 祖師權時施設, 用作指歸.
諸人要會祖師端的爲人處麽?” 良久云,“ 風兮幡兮心兮, 動與
不動, 還迷. 要會祖師關捩子? 嵓前時聽子規啼.”
73) 관려자(關捩子). 관려자(關棙子)라고도 쓴다. 관문의 열쇠·관문의 빗장을 말한
    다. 하나의 공안에 들어 있는 핵심 또는 그 공안을 해결하는 관건을 비유하는 말
    이다.

 

[설화]

바람이니 ~ 미혹의 실마리일 뿐이다:남의 말만 따라 정신없이 내달리기 때

문에 미혹되는 것이다.

조사가 설정한 관문의 빗장 ~ 두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구나:바람과 깃발이 움

직이는 것이 곧 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란 뜻이다.

枯木:風兮至還迷者, 隨言走殺故迷. 要會祖師至子規啼者,
風幡動卽一心動.

 

정자본의 소참

 

“6조가 행자살이할 때 인종법사의 회하에 이르러 두 학인이 바람과 깃

발의 움직임을 보고 서로 다투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였다. 한 사람은 바

람이 움직인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며 옥신각신 의견

이 분분하였으나 모두 이치에 맞지 않았다. 6조가 당시 길에서 공평하지

못한 그 장면을 보고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

도 아니요. 다만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비록 이와 같이 6조에게는 일시적으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편이 없지 않

았으나 또한 후세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지는 못하였다. 산승이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그 학인들을 보았다면

그들에게 ‘이 졸음뱅이들아!74) 그대들은 무엇을 바람이라 하고 무엇을 깃

발이라 하는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말해 보라! 조사가 한 말과 같은가,

다른가? 눈 밝은 자는 판단해 보라.”

淨慈本, 小叅云,“ 六祖作行者時, 到印宗法師會下, 忽見二
僧因覩風幡, 共相論議. 一云風動, 一云幡動, 往復紛紜, 皆
未中理. 他家當時, 路見不平, 便道‘不是風動, 不是幡動. 仁
者心動.’ 然雖如此, 老盧一期接引則不無, 又且未能塞斷後
人口. 山僧者裏卽不伊麽. 當時若見者僧, 只向伊道,‘ 瞌睡
漢! 你喚什麽作風幡?’ 且道! 與祖師道底, 是同是別? 明眼
底鑒看.”
74) 갑수한(瞌睡漢). 갑한(瞌漢)이라고도 한다. 앉아서 조는 답답한 사람을 가리킨
    다. 활안(活眼)을 갖추지 못한 수행자를 나무라는 말로 쓰인다.

 

[설화]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므로 마음이 움직이고,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 또한 움직일 일이 없다는 뜻이다.

淨慈:有風幡動故, 心動, 無風幡動則, 亦無心動.

 

법진수일(法眞守一)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파릉호감과 설두중현의 염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말

해 보라! 이 두 노숙의 말은 같은가, 다른가? 만일 판정했다면 나와서 산

승과 의견을 겨루어 보자.”

法眞一, 擧此話, 連擧巴陵雪竇拈, 師云,“ 且道! 二老宿語, 是
同是別? 若定當得, 出來, 與山僧相見.”

 

[설화]

같거나 다르거나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法眞:兩頭不干.

 

황룡사심(黃龍死心)과 법창의우(法昌倚遇)의 문답

 

황룡이 법창에게 물었다. “‘바람도 아니고 ~ 저도 모르게 옷 입은 채 찬

강물 건너네’라는 게송은 화상께서 짓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 내가 지

은 이러한 게송이 있다.” “대단히 뛰어난 게송입니다.” “말해 보라. 조사는

앞의 단락에서 학인을 가르쳤는가? 아니면 뒤의 단락에서 학인을 가르쳤

는가?” “조사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가?” “바람이 움

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모르십니까?”

“여우가 물을 건너는 것과 같으니75) 어떻게 생기 넘치고 활발할 수 있겠는

가?” “스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법창이 불자를 흔들자 황룡이 말했

다. “그것 또한 뱀을 그리면서 발을 덧붙여 그리는 격이군요.” “아무 일 없

는 것을 왜 어지럽히는가?” “화상의 경지라야 되겠군요.”

黃龍心, 問法昌遇曰,“ ‘不是風兮, 至渡水寒.’ 豈不是和尙偈
耶?” 遇曰, “然. 有是語.” 心曰, “也大奇特.” 遇曰, “汝道祖
師, 前叚76)爲人, 後叚爲人?” 對曰, “祖師, 終不妄語.” 遇曰,
“意作麽生?” 對曰,“ 豈不見道, 不是風動, 不是幡動?” 遇曰,
“如狐渡水, 有甚快活?” 心曰,“ 師意如何?” 遇以拂子搖之,
心曰, “也是爲蛇畫足.” 遇曰, “亂統作麽?” 心曰, “須是和尙,
始得.”
75) 호의(狐疑). 의심이 많은 여우에 빗대어 의심이 많은 것 또는 그러한 사람을 이
    르는 말.『漢書』「文帝紀」안사고(顏師古) 주(注)에 “여우라는 짐승은 그 본성이
    의심이 매우 많아서 매양 얼음이 언 강을 건널 때마다 물이 흐르는지 귀 기울
    여 듣고 확인하고서야 건넌다. 그래서 의심이 많은 사람을 ‘호의’라고 부르는 것
    이다.”(狐之爲獸, 其性多疑, 每渡冰河, 且聽且渡. 故言疑者, 而稱狐疑.)라고 하였다.
    “마치 여우가 의심이 많아 빙판 위를 갈 때에 물소리가 나는지 들어보고 소리가
    나지 않아야 비로소 강의 얼음을 건너는 것과 같다. 공부하는 사람이 여우가 의
    심하고 또 의심하듯이 한다면 언제 평온해질 수 있겠는가?”(『碧巖錄』21則 大48
    p.162b23. 如野狐多疑, 氷凌上行, 以聽水聲, 若不鳴方可過河. 參學人, 若一狐疑了
    一狐疑, 幾時得平穩去?)
76) ‘叚’는 ‘段’의 잘못. 이하도 동일하다.

 

[설화]

황룡의 뜻은 바람과 깃발과 마음 모두가 움직인다는 주장이므로 “조사

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앞의 단락에서 ~ 가르쳤는가:바람이 움직이고 깃발이 움직인다는 구절을

묶은 것이 앞의 단락의 내용이고, 한 마음이 움직인다고 한 것은 뒤의 단

락의 내용이다.

여우가 물을 건너는 것과 같으니 ~ 있겠는가:단지 한쪽에 치우쳐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불자를 흔든 것:바람이 움직이고 깃발이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다. 불자

는 한 자루의 불자일 뿐이다.

그 다음 구절들은 황룡에게 장점이 없지 않으나 법창의우가 작가종사

이니 그인들 어찌하겠는가라는 뜻이다.

黃龍意, 一切動處主張, 故云, 祖師終不妄語也. 前段云云者,
風動幡動是前段, 一心動是後段也. 如狐渡云云者, 只見一邊
故也. 以拂子搖云云, 風動幡動之樣子. 拂子則一條拂子也. 下
節云云, 黃龍不無長處, 爭奈法昌是作家宗師.

 

조계명의 상당

 

“깃발도 아니요 바람도 아니라 하면 그만인 것을 어찌하여 공양이 끝난

후에 번거롭게 다시금 종을 치는가!77) 영양이 가지에 뿔을 걸고 자는 모습

은 아무도 보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애써 그 자취만 가리켜 주

는구나.78)” 이어서 ‘6조 대사가 어느 날 두 학인이 바람이 움직인다느니 깃

발이 움직인다느니 하고 다투는 것을 보고 ~ 두 학인이 깨달았다’라고 한

이야기를 제기하고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이 이야기에 따라 그 두 명의

도인이 이와 같이 깨달았다고 한다면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고 말리라.

살갗 속에 혈기가 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

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뿐이

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돌! 이 무슨 말인가?’라고 했을 것이다. 바로 그

때 이렇게 한 번 큰소리(돌)를 내질렀더라면 비로소 얽매인 몸을 반전시

킬 하나의 활로(活路)79)를 찾았을 것이다. 옛사람이 ‘마음도 아니요 부처

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다’80)라고 한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는가! 그렇다면

결국은 그것을 무엇이라 해야 할까?” 마침내 불자를 던지면서 말했다. “이

늙은이가 오늘 그대들에게 감파당하고 말았구나.”81)
曹溪明, 上堂云, “不是幡兮不是風, 何煩齋後却聲鐘! 羚羊掛
角無人見, 剛被渠儂强指蹤.” 乃擧六祖大師, 一日, 見二僧爭
風幡, 至二僧因而省悟, 師云, “大衆, 據此, 二員道人, 伊麽悟
去, 入地獄如箭射. 若是皮下有血漢, 見他道, 不是風動, 不是
幡動, 是汝心動, ‘咄! 是何言歟?’ 當時, 若下得者一咄, 方有
轉身一路. 君不見, 古德有言兮,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畢
竟喚作箇什麽?” 遂擲下拂子云,“ 老僧今日, 被諸人勘破.”
77) 공연히 ‘마음이 움직인다’라는 말을 덧붙여 추적할 단서를 남김으로써 사람들
    의 망상을 촉발했다는 뜻.
78) 가지에 뿔을 건 영양은 종적이 모두 끊어진 경지를 나타내는 비유이다. 깃발도
    바람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단서도 없는 완결된 화두인데, 굳이 ‘마음
    이 움직인다’는 말을 하여 좇을 자취가 있는 듯이 현혹했다는 뜻이다.
79) 전신일로(轉身一路). 속박된 몸을 뒤집어 벗어나는 하나의 활로를 말한다. 전신
    (轉身)은 몸을 뒤집는다는 번신(翻身)과도 통하는 말로서 미혹한 상태에서 깨달
    음으로 전환하는 반전(反轉)을 비유한다. 또는 어떤 상황에서나 자재하게 운신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속박된 몸을 뒤집어 자유자재한 본분의 생명을 얻는 것
    을 번신활명(翻身活命)이라고 한다.
80) 마조도일(馬祖道一)과 그의 제자 남전보원(南泉普願)이 제기한 화두이다.
81) 자신의 속내를 모두 드러내어 감파될 정도로 자세히 말해 주었다는 뜻.

 

[설화]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라는 말은 공양이 끝난 후에 종

을 치는 격이라는 뜻이다. 또한 아랫말로 대하면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

이 움직인다’는 구절도 공양이 끝난 후에 치는 종소리와 같고, 윗말로 대

하면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자는 영양을 보지 못하고 애써 자취만을 가리

키는 것’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고 말리라:마음이 움직인다는 말 역시 아직 업식을

끊지 못한 데서 나온 주장이라 보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살갗 속에 혈기가 돌고 있는 사람이라면 ~ 들어보지 못하였는가:앞에서 말한 것

처럼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자는 영양과 같이 종적이 없다는 뜻이다.

불자를 던졌다:‘요점82)이 무엇인가?’라고 물은 뜻이다.

曺溪:仁者心動, 是齋後聲鍾也. 又下而對, 則風動幡動, 是齋
後聲鍾, 上而對, 則掛角羚羊强指蹤也. 入地獄云云者, 一心
動, 猶是業識未斷故也. 皮下有血云云, 至是物者, 前所言掛角
羚羊也. 擲下拂子, 是什麽孔竅?
82) 공규(孔竅). 구멍. 일반적으로는 인체의 눈·코·귀·입·대변도·소변도 등 아홉
    가지 구멍을 가리킨다. 뜻이 변하여 급소(急所)·요소(要所), 또는 요긴한 것을
    뜻한다.

 

상방일익(上方日益)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파릉호감과 설두중현의 염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한

마리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자 모든 개들이 그 소리를 듣고 따라 짖는 꼴

이다.83) 그때 만약 금색두타(가섭)84)라면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85) 남북

의 선수행자들이 바람과 깃발에 쫓겨 다니는 어리석음을 면하게 했을 것

이다. 비록 그러하기는 하지만 금색두타를 부리는 주인이 될 수는 있어도

나와 맞부딪치고자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上方益, 擧此話, 連擧巴陵雪竇拈, 師云,“ 一犬吠形, 百犬吠
聲. 當時, 若是金色頭陁, 倒却門前刹竿, 也免得南北禪和被
風幡走殺. 然雖如是, 爲金色頭陀作主, 則可, 要與法雲相見,
未在.”
83) ‘形’은 그림자를 뜻하는 ‘영(影)’에 가깝기 때문에 ‘影’으로도 쓴다. 실정을 알아
    보지도 않고 남이 하는 소리를 따라 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속담이다. “한
    마리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자 모든 개들이 그 소리를 듣고 따라 짖는다. 세상
    사람들이 이 병을 앓은 지는 참으로 오래되었도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진실인
    지 거짓인지 실정을 살피지 않는 것이 슬픈 것이다.”(王符『潛夫論』「賢難」. 
    諺曰, ‘一犬吠形, 百犬吠聲.’ 世之疾此固久矣哉! 吾傷世之不察眞僞之情也.);
    “‘인도의 조사(달마)가 중국에 전한 것을 스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
    니다.’ ‘개 한마리가 허공에 대고 짖자 다른 모든 삽살개가 진짜 먹이가 있는 
    듯이 으르렁거리며 싸운다.’”(『景德傳燈錄』권13「風穴延沼傳」大51 p.303
    a28. 問, ‘西祖傳來請師端的.’ 師曰, ‘一犬吠虛, 千㺜啀實.’) “한 사람이 허(虛)로 
    전한 것을 모든 사람이 오인하여 실(實)이라 전한다(一人傳虛, 萬人傳實.)”라는 
    선종의 상용구와 통한다.
84) 본서 33則 주석22) 참조.
85)『禪門拈頌說話』 81則의 본칙이기도 하다. “아난이 가섭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금란(金襴)가사를 전한 것 외에 별도로 어떤 법을 전하셨습니까?’ 가섭이 ‘아난
    아!’ 하고 부르자 아난이 ‘예!’ 하고 응답하였다. 가섭이 말했다. ‘문 앞의 찰간을
    쓰러뜨려라!’”(『傳心法要』大48 p.384a3. 阿難問迦葉云, ‘世尊傳金襴外, 別傳
    何法?’ 迦葉召阿難, 阿難應諾. 迦葉云, ‘倒却門前刹竿著!’)

 

[설화]

한 마리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자 ~ 따라 짖는 꼴이다:6조가 파릉호감과 설두중

현에게 그러하였다는 뜻이다.86)

그때 만약 금색두타라면 ~ 어리석음을 면하게 했을 것이다:찰간을 쓰러뜨리는

일 같은 뛰어난 기량은 그렇게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금색두타를 부리는 주인이 될 수는 있어도 나와 맞부딪치고자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바람이나 깃발이 움직인다는 말과 한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에 무슨 잘못

이 있느냐고 반문한 뜻이다.

上方:一犬吠形云云者, 祖師與巴陵雪竇如此. 當時若是至走
殺者, 倒却刹竿處, 無如此許多也. 爲金色至未在者, 風幡動一
心動, 有什麽過.
86) 6조(한 마리 개)는 허(虛)로 전했으나 두 선사(모든 개)가 그것을 따라 실(實)이
    라 잘못 전했다는 취지의 해설.

 

백운지병(白雲知昺)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파릉호감과 설두중현의 염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파

릉은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에 귀착된다는 말일

까?’라 하였고, 설두는 ‘이미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면 다시 어디에 귀착

된다는 말일까?’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물로는 물을 씻지 못하고 금으로

금을 바꿀 필요가 없다87)는 말이 된다. 행여라도 생명을 아끼지 않는 이가

이 두 노인네의 발꿈치88)를 끊어버리기만 했다면 속된 말이 세상에 퍼지

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白雲昺, 擧此話, 連擧巴陵雪竇拈, 師云, “巴陵云, ‘旣不是風
幡, 向什麽處着?’ 雪竇云, ‘旣是風幡, 向什麽處着?’ 然則水
不洗水, 金不愽金. 忽有箇不惜性命底漢, 截斷二老脚跟, 也免
得世諦流布.”
87) 물과 물이나 금과 금이 동일한 성질과 가치를 가지듯이 파릉의 견해와 설두의
    견해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움직인다거나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하여 긍정과 부정으로 갈라져서 다른 주장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두가 뚫
    을 수 없는 화두로 귀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88) 각근(脚跟). 발꿈치가 땅에 붙어 있어야 안정되고 어떠한 불안과 동요도 없듯이
    확고한 입각점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두 선사들의 견해가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근거처럼 보이는 ‘표면적인 말’을 가리킨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발꿈치
    를 잘라버려라.’ 다시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발꿈치를 잘라버려라.’”(『佛
    祖歷代通載』권19 大49 p.675a10. 問, ‘如何是佛?’ ‘截斷脚跟’ 又問, ‘如何是佛?’ 
    師曰, ‘截斷脚跟.’) 부처라는 관념의 소굴을 없애라는 뜻.

 

[설화]

만일 두 노인네의 발꿈치를 끊어버리되 세밀하지 못하다면 속된 말만

세상에 퍼질 것이고, 발꿈치를 완전히 끊어버리면 금으로 금을 바꿀 필요

가 없고 물로 물을 씻지 못하는 경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뜻이다.

白雲:若截斷二老脚跟, 不得宛, 是世諦流布, 若截斷脚跟, 金
不愽金, 水不洗水.

 

불안청원의 상당

 

“예전에 6조가 거사 신세가 되었을 때89) 광주 법성사 인종법사 회하에

숨어 살았다. 어느 날 밤 행랑 사이를 지나다 두 학인이 바람이니 깃발이

니 하고 다투는 장면을 마주쳤는데 근본 이치를 남김없이 담아내지 못했

다. 조사가 조용히 다가가 말하였다. ‘나 같은 속인도 고상한 논의에 끼어

줄 수 있소?’ 그러고는 바람이나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

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대중들이여, 바로 지난밤부터 바람이

불고 있다. 말해 보라! 바람이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바람이 움직

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처럼 발[簾]을 건드리고 문을 흔들며 흙먼지를

일으키는데 어찌하여 바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가? 판단해 낼 수 있

겠는가? 산승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

니며,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겠다. 내 뜻을 아는 사람 있

는가? 청산은 한없이 좋은데 오히려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 말하는

구나.”

佛眼遠, 上堂云,“ 昔日, 六祖大師, 作居士時, 隱於廣州法性
寺印宗法師席下. 遇夜廊廡間, 有二僧風幡競辯, 未盡厥理. 祖
師躡步而謂曰, ‘可容俗士得預高論不?’ 直以非風幡動仁者心
動告之. 大衆, 秪如夜來風起. 且道! 是風動, 不是風動? 若道
不是風動, 如此觸簾動戶, 簸土揚塵, 作麽生不是風動? 還斷
得出麽? 山僧道, 也不是風動, 也不是幡動, 也不是心動. 有人
識得麽? 靑山無限好, 猶道不如歸.”
89) 혜능이 행자 신분으로 5조 홍인(弘忍)으로부터 6조로 인가받은 다음 신변의 위
    협을 느껴 남쪽으로 피신하여 속인으로 살던 시절을 말한다.

 

[설화]

‘바람이 움직이는 것인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인가’라는 문제에 닥쳐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마음이 움직

이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곧 바람이 움직이든 깃발이 움직이든 청산이

한없이 좋은데 또 어디로 돌아가겠느냐는 뜻이다.

佛眼:當風動幡動, 也不是風動, 也不是幡動, 也不是心動也.
則風動幡動, 靑山無限好, 更敢何歸.

 

육왕개심(育王介諶)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파릉호감과 설두중현의 염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이

세 존숙 가운데 한 사람은 마치 무너지는 벼랑에서 돌이 조각조각 굴러

떨어지는 것과 같은 방행(放行)의 입장이었고, 한 사람은 마치 큰 바다가

조수를 모두 삼킨 것과 같은 파정(把定)의 입장이었으며, 한 사람은 수미

산과 같이 꼿꼿이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은 법의 조례(條例)와 규장(規章)을 전혀 살피지 않은 격이다.”

育王諶, 擧此話, 連擧巴陵雪竇拈, 師云,“ 此三尊宿, 一人放
行, 如頹崖裂石;一人把定, 如大海呑潮;一人端坐不動, 如
須彌山. 顯寧伊麽說, 大殺不顧條章.”

 

[설화]

꼿꼿이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입장:6조를 말한다.

파정의 입장:파릉을 말한다.

방행의 입장:설두를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 없이 말한 육왕의 뜻은 무엇인가? 한 구절에 세

구절을 다 갖추었으니 법안이 말한 것처럼 예전 그대로라는 뜻이다.

育王:端坐不動云云, 謂祖師也. 一人把定云云, 謂巴陵也. 一
人放行云云, 謂雪竇也. 今顚末無次序, 育王意如何? 一句中
具三句, 法眼所謂仍舊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보설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나는 언젠가 한 장로에게 이 공안에 대한

더 향상된 가르침을 청하며, ‘6조의 본의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장

로는 장삼 소매 자락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이

것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몹시도 당황스럽

게 만들고, 몹시도 바보 취급하는구나. 어떤 자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결정코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

고 말한다. 나는 평상시 학인들에게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

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는

가?’라고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하여 어찌 눈을 깜박이며 분별할 여지가 있

겠는가!”

雲門杲, 普說, 擧此話云,“ 山僧曾請益一箇長老,‘ 意旨如何?’
長老將衫袖搖, 作風動勢云,‘ 是什麽?’ 苦哉! 苦哉! 慚惶殺
人, 鈍置殺人. 有者道,‘ 不是風動, 不是幡動, 定是心動.’ 山
僧尋常問學者, ‘不是風動, 不是幡動, 不是心動, 作麽生?’ 者
裏豈容眨眼!”

 

[설화]

장삼 소매 자락을 흔들어 ~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바람이 움직이고

깃발이 움직인다는 뜻을 나타낸다.

결정코 마음이 움직인다: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어찌 눈을 깜박이며 분별할 여지가 있겠는가:최상의 관문에 걸린 빗장을 집어

내어 제기했다는 뜻이다.90)
雲門:衫袖搖云云者, 是風動幡動義也. 定是心動者, 是心動
義也. 豈貶眼者, 拈起上頭關捩子.
90) 이미 실현된 화두만을 집어내었기에 더 이상 분별할 여지가 없다는 뜻. ‘관문의
    빗장’에 대해서는 주석7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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