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161칙 마조일구 馬祖一口

실론섬 2016. 11. 28. 12:05

161칙 마조일구 馬祖一口

 

[본칙]

마조에게 방거사가 물었다.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한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들이켜면 말해 주겠다.”

방거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그 뜻을 알아차렸다.

馬祖, 因龐居士問, “不與萬法爲侶者, 是什麽人?” 師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居士言下領解.

 

[설화]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자:『방거사어록』에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처

음에 석두(石頭)에게 법을 물으러 가서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자

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석두가 손으로 거사의 입을 틀어막았는

데, 거사가 여기서 막힘없이 크게 깨달았다. 석두가 하루는 거사에게 ‘그

대는 나를 만난 이래로 일상사가 어떠한가?’라고 물음에 방거사가 ‘만일

저에게 일상사에 대하여 물으신다면 저는 당장에 할 말이 없어집니다’라

고 대답했다. 석두가 ‘그대가 그런 줄 알고 내가 물어본 것이다’라고 말했

다. 방거사가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바쳤다. ‘일상사에 특별한 점은

없으니, 나 스스로 짝하여 함께할 뿐이라네. 모든 현상에서 취하거나 버리

지 않고, 어떤 곳에서나 어긋나는 일도 없다네. 주색과 자색은 누가 이름

을 붙였을까?1) 산악에는 한 점의 티끌조차도 없노라. 신통 그리고 묘용이

여! 물 긷고 땔나무 나르는 일이로다.’”2) 그 다음에 마조에게 던진 똑같은

질문은 이미 터득한 자신의 견해를 보여주고 물은 것이다. 옛사람은 “처음

에 석두를 친견하고는 눈앞의 대상 경계와 단번에 하나가 되었고, 뒤에 마

조를 친견하고는 다시 본심과 부합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1) 주자(朱紫). ‘朱’는 정색(正色), ‘紫’는 간색(間色) 중 아름다운 것. 두 가지 색은
   바른 것과 삿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 등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서도
   그러한 차별의 관념을 대표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2)『龐居士語錄』 卍120 p.55a5.

 

그대가 한입에 ~ 말해 주겠다:이전에는 산하의 대상 세계를 돌려 자기에게

귀착시켰으므로 이번에는 (마조가) 방거사로 하여금 자기를 돌려 산하가

되도록 하였던 것일까? 아니면 말 머리에 뿔이 나고 항아리에서 뿌리가

자라더라도 끝내 그대에게 가볍게 말해 주지 않겠다는 뜻인가? 모두 틀

린 말이다. 비록 ‘눈앞의 대상 경계와 단번에 하나가 되었다’라고는 하지

만 단번에 하나가 되었다는 분별은 서강과 같이 커다란 잔재여서 서강의

물은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그로 하여금 모두 들이켜 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다’라는 뜻

을 진실하게 밝힌 것이므로 뒤에 마조를 친견하고 물어서 다시 본심과 부

합한 것이다. 옛사람이 “방거사의 입은 서강에서 무엇을 모두 들이킨 것이

며, 마조의 발은 천하에서 어떤 것을 짓밟은 것일까?3)”라고 반문했다. 곧

한입에 모두 말하지 못하는 소식이므로 당면한 기틀을 곧바로 가리킨 것

이며 별다른 곳에 귀착시키지 않았다4)는 뜻이다. 깨달았다는 분별도 남기

지 않은 것이 진실로 깨달은 경지인 것이다.

3) 6조 혜능(慧能)이 남악회양(南嶽懷讓)에게 반야다라삼장의 예언으로 들려준 말
   에 나온다. “서천의 반야다라가 예언하기를 ‘그대[懷讓]의 발밑에서 한 마리 망
   아지[馬祖]가 나와 세상 사람들을 짓밟아버릴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마땅히 그
   대 마음속에만 담아 둘 것이며 경솔하게 말을 흘리면 안 된다.”(宗寶本『壇經』 
   大48 p.357b24. 西天般若多羅讖, ‘汝足下, 出一馬駒, 踏殺天下人.’ 應在汝心, 
   不須速說.)
4)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 기틀을 곧바로 지시[直指]한 것일 뿐 경계와 하나
   가 된다거나 본심과 부합한다거나 하는 등 그 이상의 귀착점은 없다는 말이다.

 

不與萬法爲侶者, 居士本錄云,“ 初參石頭問云,‘ 不與萬法爲
侶者, 是什麽人?’ 頭以手掩居士口, 居士於此, 豁然大悟. 頭
一日, 問居士曰, ‘子自見老僧已來, 日用事作麽生?’ 士曰,
‘若問某甲日用事, 直下無開口處.’ 頭云,‘ 知子伊麽, 方始問
看.’ 士乃呈偈曰, ‘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頭頭非取捨, 處
處勿張乖. 朱紫誰爲號? 丘山絶點埃. 神通幷妙用, 運水與槃
柴.’ 次問馬祖者, 呈似已見也. 古人云,“ 初參石頭, 頓融前境;
後參馬祖, 復印本心.” 待汝一口云云者, 前轉山河歸自己故,
令他轉自己成山河耶? 馬頭生角瓮生根, 終不爲君輕說破耶?
皆非也. 雖曰, ‘頓融前境.’ 頓融之解, 大如西江, 西江水猶在
故, 令他吸盡無涓滴也. 此眞實明得不與萬法爲侶, 則後參馬
祖, 復印本心. 古人云, “龐公口, 卽西江吸盡箇什麽? 馬師脚,
卽天下踏殺箇什麽?” 一口道不得底消息故, 當機直指, 不落
別處. 悟解不遺, 悟得處也.

 

투자의청(投子義靑)의 송

 

부모와 광겁5) 이래 이별했으니,

모실 기회 되면 있는 힘 다하라.

장승이 한밤에 비밀을 말했으나,

집 밖 사람 누구도 모르게 하라.6)

投子靑頌,“ 父母曠來別, 得奉當竭力. 木人半夜言, 莫使外
人識.”
5) 曠劫.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겁의 세월.
6) 마조와 방거사의 말에 대하여 분별[識]로 헤아릴 여지를 주지 말라는 뜻.

 

[설화]

1구와 2구:이전에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다’고 한 말은 부모 모

실 기회를 얻은 것과 같고, 지금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다’라고 한

말은 있는 힘을 다하여 모시고 효도하는 것과 같다.

장승이 한밤에 ~ 모르게 하라:분별하는 마음[情識]으로 도달할 수 없거늘

어찌 사려를 용납하겠느냐는 뜻이다.

投子:上二句, 前來不與萬法爲侶, 是得奉也, 今日不與萬
法爲侶, 是竭力奉孝也. 木人半夜云云者, 非情識到, 豈容
思慮.

 

석문원이(石門元易)의 송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걷는 사람에게 물으니,

모조리 들고 전하며 가까워지라고 외치는구나.

서강 물 모두 마셔 한 방울도 남지 않았지만,

목구멍은 단단히 잠긴 관문임을 뉘라서 알까?

石門易頌, “借問乾坤獨步人, 全提分付大言親. 西江吸盡無涓
滴, 誰解喉門鏁要津?”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1

 

서강 물 다 마신 다음 말해 주리라 하니,

마조는 거친 풀에 떨어지려 하지 않았네.7)

삼천대천세계 한결같이 가을에 접어드니,

달과 산호가 싸늘하게 서로 비추는구나.

天童覺頌, “吸盡西江向汝道, 馬師不肯落荒草. 三千刹海一成
秋, 明月珊瑚冷相照.”
7) 자세한 방편으로 설명해 주지 않고 언어 이전의 경계를 고수했다는 말. ‘거친
   풀’ 곧 번뇌의 경계로 들어가 스스로 몸을 더럽히며 가르침을 주려 하지 않았다
   는 뜻이다.

 

[설화]

천동의 제4구에도 광명이 찬란하게 비추는 소식이 담겨 있다.

天童四句, 亦有光明燦爛地消息也.

 

천동정각의 송 2

 

서강 물 다 마신 다음 말해 주리라 하니,

마조의 가풍에는 조급한 기색이 없다네.

물살 가르는 노질 한 번에 찬 안개 흩어지니,

하늘과 강물 함께 가을 들어 맑고 아득하네.

又頌,“ 吸盡西江向汝道, 馬師家風不草草. 截流一棹破煙寒,
天水同秋淸渺渺.”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송

 

바람 불고 태양 이글거리는 곳에 버려진 시체,

애원하며 산사람8)에게 물어 묻을 터를 찾았네.

속내를 참지 못해 쓸데없이 말 많던 늙은이는,

음지건 양지건 안배하여 묻을 터 없다고 하네.

保寧勇頌, “風吹日灸露屍骸, 泣問山人覓地埋. 忍俊不禁多口
老, 陰陽無處可安排.”
8) 산인(山人). 선인(仙人) 또는 선인(僊人)으로 되어 있는 문헌도 있다

 

오조법연(五祖法演)의 송

 

한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마시라 하니,

낙양의 모란이 새롭게 꽃술을 토해낸다.

흙 까부르고 먼지 날렸으나 찾을 곳 없더니,

머리 들자마자 마주치니 제자리에 있었다네.

白雲演頌, “一口吸盡西江水, 洛陽牡丹新吐蘂. 簸土颺塵勿處
尋, 擡頭撞着自家底.”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송

 

한입에 서강의 물 모두 마시라 하니,

갑을병정경무기9)로다.
돌, 돌, 돌! 나라리!10)

雲門杲頌,“ 一口吸盡西江水, 甲乙丙丁庚戊己. 咄, 咄, 咄! 囉
囉哩!”
9) 천간(天干)의 일부. 무의미한 나열을 통하여 언어의 통로를 차단하는 수법.
10) 위의 천간과 유사한 맥락에서 의미 없이 쓴 말이다. ‘돌’은 혀를 차는 소리 또는
    할(喝)과 같이 ‘돌!’ 하고 한 소리 크게 내지르는 것. ‘나라리’는 입에서 나오는
    가락대로 흥얼거리는 소리이다. 모두 이 공안의 몰자미(沒滋味)한 뜻을 나타내
    고 있다.

 

죽암사규(竹菴士珪)의 송

 

바다의 파도는 얕고,

소인의 마음은 깊네.

바다가 마르면 바닥 드러나지만,

사람은 죽어도 마음 알 수 없네.

竹庵珪頌,“ 大海波濤淺, 小人方寸深. 海枯終見底, 人死不
知心.”

 

[설화]

방거사가 얻은 경계는 한계가 없이 자유로운 경지라는 말이다. 어떤 책

에서 ‘말이 끝나자마자 알아차렸다’라고 한 요지를 나타낸다.

竹庵:言龐居士所得, 直得無限也. 一本云, 言下領解之要.

 

밀암함걸(密庵咸傑)의 송

 

서강의 물을 남김없이 다 들이켜고 나니,

당당한 기상의 대장부 돌연히 나타나네.

세간에서 모두들 달마 수염 붉다고 하나,

붉은 수염의 달마가 있음도 알아야 하리.11)
密庵傑頌, “西江吸盡了無餘, 突出堂堂大丈夫. 盡道世閒胡鬚
赤, 須知更有赤鬚胡.”
11) 앞의 달마나 뒤의 달마나 수염이 붉기는 마찬가지이다. 대답한 마조뿐만 아니
    라 질문을 던진 방거사도 마조와 견줄 수 있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개암붕의 송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다 하니,

어떤 시험의 수단12) 있는지 살펴보라!

듣는 순간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잎같이,

총림 전체가 시끌벅적 들끓게 되었다네.13)

시끌벅적 들끓지 마라!

소쩍새는 으슥한 꽃밭에서 지저귄다.14)

介庵朋頌, “不與萬法爲侶, 看來有甚巴鼻! 纔聞風吹草動, 直
得叢林鼎沸. 休鼎沸! 鷓鴣啼在深花裏.”
12) 파비(巴鼻). 소를 마음대로 부리기 위한 고삐를 말한다. 여기서는 방거사의 물음
    에 들어 있는 시험의 수단을 가리킨다.
13) 그 말에 따라 이러니저러니 분별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이 바람이 부는 방
    향에 따라 흔들리는 풀잎과 같이 자기 중심이 없다는 뜻이다.
14) 설두중현(雪竇重顯)의 게송 중 한 구절. 법안(法眼)이 ‘부처가 무엇이냐’는 질문
    을 받고 ‘그대가 바로 혜초이니라’라고 대답한 문답에 대한 게송의 제2구이다.
    『碧巖錄』7則 「頌」大48 p.147c17 참조. 소쩍새 울음소리는 봄이 왔다고 알리는
    소식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공안의 문답에서 전하는 본분의 소식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송

 

한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시라 하니,

어리석은 자 밤새워 연못 물 퍼 올리네.15)

방거사는 붉은 화로에 앉은 눈송이 되었고,

마조는 풀 속으로 돌아가 몸을 감추었다네.

파도는 끝없이 솟고 강물은 아득히 이어지는데,

뗏목 타고 노는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는구나.

해가 떠서 동쪽을 비추는 그대로 맡겨 두리라.

心聞賁頌,“ 一口吸西江, 癡人戽夜塘. 龐公化作紅爐雪, 馬
祖身歸草裏藏. 波渺渺水茫茫, 好是乘槎人不顧. 從敎日出照
扶桑.”
15) 두레박으로 아무리 연못 물을 퍼 올려도 연못은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입
    에 마시라는 말에 그대로 끌려 다니는 어리석음을 또 다시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설화]

방거사가 한입에 모두 마신 것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이 밤새워 두레박

으로 연못 물을 퍼 올린 것에 해당된다. 세 번째 구절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네 번째 구절은 마조는 그가 말한 한계를 벗어나 전적으

로 차별의 세계 속에 있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구절은 생사윤회의 물결을

말하며, 여섯 번째 구절은 생사윤회의 물에서 여유롭게 헤엄치며 자유자

재한 경지를 말한다. 해가 떠서 동쪽을 비춘다는 일곱 번째 구절은 방거사

의 경지를 말한다.

心聞:龐居士一口吸盡, 是癡人戽夜塘也. 三句, 非實有也.
四句, 馬祖不在此限, 全在差別也. 五句, 生死波瀾也. 六
句, 生死波瀾, 優游自在地也. 七句, 日出照於扶桑, 謂龐居
士也.

 

본연거사의 송

 

강물은 동해로 흘러가는데,

그대의 입 좁은 것 아노라.

마조는 할 말을 다했지만,

당나귀해에나 그 뜻 알까?

세상 사람 의심에 사무치게 한 것,

바로 이 한 칙의 공안이로다.

本然居士頌,“ 江水向東流, 知君口門窄. 馬師道了也, 驢年還
會得? 疑殺天下人, 只是遮一則.”

 

보령수의 염

 

“마조대사는 비록 분별할 길을 완전히 틀어막는 방법[把定]을 썼지만,

그것은 속된 놈에게 가볍게 질문의 압박을 당하고 곧바로 잘못을 저지른

것에 불과했다. 말해 보라! 그의 허물은 어디에 있을까? 바른 안목을 갖춘

자는 분별해 보라!”

保寧秀拈,“ 馬大師, 雖然把定意根, 被箇俗漢輕輕拶着, 便見
敗闕. 且道! 過在什麽處? 具眼者, 辨看!”

 

[설화]

마조대사는 ~ 잘못을 저지른 것에 불과했다:비단 방거사뿐만 아니라 마조 또

한 허물이 없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해 보라 ~ 분별해 보라:(그렇다고 해서) 또한 어떤 허물이 있느냐는 반문

이다.

保寧:馬大師雖然至敗闕者, 非但龐公, 馬師亦不得無過. 且
道云云者, 又有什麽過.

 

동림상총(東林常總)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연이어 어떤 학인이 풍혈(風穴)에게 ‘만법과 더불

어 짝이 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풍혈이 ‘이마에 손을

대고 멀리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지만, 뗏목을 탄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

다’라고 대답한 문답을 들고 평가했다. “대중들 중에는 ‘마조대사는 물리

치는 말을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숨 쉴 틈도 없게 만들었고, 풍혈은 칭찬

하는 말을 함으로써 한 번 들먹일 때마다 한 번 새롭게 하였다’라고 말하

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 또한 여러 선사들의 점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두 스님은 단지 칼날을 쓰는 일만 알았지 칼날 속에 몸을 감출 줄은 몰랐

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자

는 어떤 사람일까?’라고 묻는다면, ‘앞에도 짝이 될 대상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뒤에도 빽빽이 들어차 있다’16)라고 대답할 것이다.”

東林總, 上堂, 擧此話, 連擧僧問風穴,‘ 不與萬法爲侶者, 是
什麽人?’ 風穴云,‘ 斫額望扶桑, 乘槎人不顧.’ 師云,“ 衆中道,
‘馬大師, 是貶底語, 敎伊無出氣處;風穴, 是褒底語, 一廻擧
着一廻新.’ 與麽批判, 亦未免諸方檢責. 此二老, 只解用劒刃
上事, 不解向劒刃裏藏身. 寶峯卽不然.‘ 不與萬法爲侶者, 是
什麽人?’‘前三三, 後三三.’”
16)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 ‘짝이 되지 않는 자’라는 질문에 대하여 ‘어떤
    것과 짝을 해도 무방한 자’를 제시한 것이다. 원래 무착(無著)선사가 오대산(五
    臺山)을 돌아다니다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나 제시받은 화두이다. ‘三三’이
    라는 수는 3 곱하기 3과 같으므로 9가 된다. 9 자체가 만수(滿數)이기 때문에 수
    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극치의 숫자가 된다. 따라서 앞뒤로 가득 들어찼다
    는 뜻이며 ‘삼삼(森森)’과 통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화두에 대한 표피적인
    분석일 뿐 화두가 지니는 몰자미(沒滋味)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이 말 자체도
    몰자미를 본질로 하는 화두이기 때문이다.『禪門拈頌說話』1436則 참조.

 

[설화]

이마에 손을 대고 멀리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본다:향상하는 결정적인 한 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뗏목을 탄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다:뗏목을 탄 사람은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

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대단히

훌륭한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풍혈은 칭찬하는 말을 함으로써 한 번 들먹일 때마다 ~ 칼날 속에 몸을 감출 줄은 몰

랐다:범하지도 않고 더럽히지도 않으면서 지향할 경지가 남아 있다는 뜻

이다.

칼날 속에 몸을 감추다: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는 일도 방해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앞에도 짝이 될 대상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뒤에도 빽빽이 들어차 있다:만법이 자

신의 짝이 된다고 한들 범부에게나 성인에게나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고

반문한 말이다. 앞에서 심문담분이 ‘뗏목을 탄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다’라

고 한 말과 이 말은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東林:斫額望扶桑者, 謂望向上一著也. 乘槎人不顧者, 謂乘
槎人不顧扶桑, 則此不與萬法爲侶甚好故. 風穴褒地語, 一回
擧著, 至劒刃上事云云者, 不犯不觸, 有趣向處也. 劒刃裏藏身
者, 不妨與萬法爲侶也. 前三三後三三者, 萬法爲侶, 則凡聖有
什麽過. 前心聞乘槎人不顧, 與此小異.

 

진정극문(眞淨克文)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선문에서 흔히 이 공안에 대하여 기특하다

고 헤아리거나 현묘한 이치가 있다고 이해하지만, 마조대사가 위엄스러운

지혜의 광명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면서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을 보충했

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眞淨文, 上堂, 擧此話云,“ 禪門多作奇特商量, 玄妙解會. 又
不見馬大師, 威光自在, 裁長補短.”

 

[설화]

흔히 이 공안에 대하여 기특하다고 헤아리거나 현묘한 이치가 있다고 이해한다:한

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마시라는 말에 대하여 눈동자를 붙이고 골똘히 분

별하기 때문이다. 마조대사의 의중은 단지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을 보충

하는 것일 뿐이었지만, 이와 같은 뜻에 그치지 않고 위엄스러운 광명을 자

유자재로 발휘한 것이다.

眞淨:多作奇特至解會者, 謂一口吸盡西江水處, 著得眼睛故
也. 馬師意, 但裁長補短爾, 不止如此, 威光自在也.

 

오조법연(五祖法演)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한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들이켜니, 만 길의

깊은 못이 바닥을 드러내었다. 외나무다리는 조주의 큰 다리가 아니니,17) 밝

은 달과 맑은 바람인들 어찌 견줄 수 있으랴!”

白雲演, 上堂, 擧此話云, “一口吸盡西江水, 萬丈深潭窮到底.
略彴不是趙州橋, 明月淸風安可比!”
17) 조주의 문답에 따르는 말. “어떤 학인이 조주에게 물었다. ‘조주의 돌다리에 대
    하여 오래전부터 소문을 들어왔는데, 막상 와 보니 겨우 외나무다리만 보이는
    군요.’ ‘그대가 단지 외나무다리만 보고, 조주의 다리는 보지 못한 탓이다.’ ‘조
    주의 다리는 어떤 것입니까?’ ‘건너오라!’ 또한 다른 학인이 이전과 같은 질문
    을 했고, 조주 또한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답했다. 그 학인이 물었다. ‘조주의 다
    리란 어떤 것입니까?’ ‘나귀도 말도 건너게 하느니라.’ ‘외나무다리란 어떤 것입
    니까?’ ‘한 사람씩 건너도록 한다.’”(『景德傳燈錄』권10「趙州傳」 大51 p.277
    c12. 僧問, ‘久嚮趙州石橋, 到來只見掠彴.’ 師云, ‘汝只見掠彴, 不見趙州橋.’ 僧云, 
    ‘如何是趙州橋?’ 師云, ‘過來!’ 又有僧同前問, 師亦如前答. 僧云, ‘如何是趙州橋?’ 
    師云, ‘度驢度馬.’ 僧云, ‘如何是掠彴?’ 師云, ‘箇箇度人.’)

 

[설화]

한입에 ~ 바닥을 드러내었다:근원을 철저하게 밝혀 더 이상 뒤에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외나무다리는 ~ 견줄 수 있으랴:큰 다리는 외나무다리가 미칠 수 없으며,

또한 밝은 달과 맑은 바람으로도 견줄 수 없다는 뜻이다. 바람과 달을 비

유로 삼아 손님과 주인의 관계를 나타내었다.

白雲:一口至到底者, 徹根徹源, 更無後事也. 略彴云云者, 橋
非略彴所可及, 亦非明月淸風所可比. 況風月謂賓主也.

 

원오극근(圜悟克勤)의 거 1

『심요』에 이 공안이 제기되어 있다.18) “이 노스님이 세상 사람들을 짓밟

았다고 믿고 있었는데, 다만 한마디를 무심코 내뱉어서 끝이 없는 분별을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만일 이 노스님이 제시한 복잡한 말의 실마리를 풀

어낼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공부를 끝내고 펼치는 법문[罷參法門]을 청하

리라.”

佛果勤, 心要, 擧此話云, “信此老踏殺天下人, 只等閑出一語,
便令作無限知見. 若有解截這老漢葛藤, 便請罷參.”
18) 이하는 원오극근(圜悟克勤)이『圜悟心要』「示逾上人」 卍120 p.732b3과「示照道
    人」 p.737a12,「示張國太」p.753a7 등 세 곳에서 이 공안을 제기하고 자신의 견해
    를 밝힌 내용이며, 나머지 하나의 소참은『圜悟語錄』권11 大47 p.765a4에 수록
    되어 있다.

 

[설화]

마조가 비록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으나 만일 그에 대하여 끝이 없는

분별을 일으킨다면 궁극적인 깨달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름지기 문제의

복잡한 말을 끊어 없애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을 세 번 짓밟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 화두의 근본적인 뜻과 다르지 않게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佛果:馬祖雖有此語, 若作無限知見, 便不是了也. 直須絶斷
葛藤, 方知踏殺天下人三度, 擧此話大意一般.

 

원오극근의 거 2

 

“이 공안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인 말에 얽매여 헤아리고는 일

정한 기틀과 경계를 만들어내어 이해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결코 종지를

이어받지 못한다. 반드시 무쇠로 주조된 것과 같은 사람19)이라야 비로소
그러한 흐름을 거스르고20) 초연히 깨달아 두 선사의 쇠로 만든 배21)를 뒤집
어엎을 줄 알고, 더 나아가 만 길 높이로 우뚝 솟은 절벽22)에
 도달하여야

마침내 쓸데없이 할 일이 많지 않다는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又擧此話云,“ 此个公案, 多有涉唇吻商量, 作機境解會, 殊不
稟宗猷也. 要須是个生䥫鑄就底, 方能逆流超證, 乃解翻却二
老䥫船, 始到壁立萬仞處, 方知無許多事.”
19) 어떤 말과 견해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견지하는 사람.
20) 번뇌망상과 분별이 끊임없이 흐르는 물[流]과 같으므로 이것을 거스른다[逆]는
    뜻이다.
21) 철선(鐵船). 쇠로 만든 배는 물에 뜨지 않는다는 과거의 관념에 따른다. 물에 뜰
    수 없는 배를 띄우듯이 조사들이 보이는 기량은 탁월하다는 비유이다. 그들이
    설정하는 관문(關門)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관문에 현혹되어 분별하는 자들은
    결코 이 철선을 뒤집어엎을 수 없다. “늙어서 허리가 구부러진 운문이 쇠로 만
    든 배를 띄우자, 강남과 강북에서 다투며 살펴보는구나. 불쌍하도다, 낚싯줄을
    드리운 한없이 많은 사람들이여! 모범적인 예를 따르다가 아득한 바다 위에서
    낚싯대를 잃어버렸네.”(『雪竇語錄』권5「透法身句」大47 p.702c6. 潦倒雲
    門泛鐵船, 江南江北競頭看. 可憐無限垂鉤者! 隨例茫茫失釣竿.)
22) 벽립만인(壁立萬仞). 높고 험하여 올라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언어와 사유의 수
    단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경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은산철벽(銀山鐵
    壁)과 같은 뜻이다.

 

원오극근의 거 3

 

“이것은 매우 빠른 지름길이며 군더더기 없는 핵심이거늘 어찌 그와 같

이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게다가 그들의 말에 빠져들면 영원히 그 함정을

뚫고 나오지 못할 것이다. 배운다는 자들을 보면 대부분 다만 이렇게 헤아

리고 말을 붙여 진실에 부합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생사(生死)의

굴레를 뚫고 벗어난 견해이겠는가! 생사의 굴레를 뚫고 벗어나고자 한다

면 오로지 마음이라는 바탕을 막힘없이 열어야 한다. 이 공안은 바로 마음

이라는 바탕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다만 이 공안을 밝히고자 한다면 겉으

로 드러난 말을 벗어나 본래 지향하는 뜻을 이해해야 비로소 의심이 남아

있지 않는 경계에 도달할 것이다.”

又擧此話云,“ 多少徑截省要, 何不便與麽承當? 更入他語言
中, 則永不透脫. 多見學者, 只麽卜度下語, 要求合頭. 此豈是
透生死見解! 要透生死, 除非心地開通. 此箇公案, 乃是開心
地鑰匙子也. 只要明了, 言外領旨, 始到無疑之地.”

 

원오극근의 소참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산승이 간략하게 하나의 소식을 드러내

겠다. 남들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철저하게 해야 하고, 사람을 죽이려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 한다. 지금 당장 모조리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벌써

두 번째 달23)에 떨어진 것이다. 말해 보라! 첫 번째 달이란 어떤 것일

까? 돌!24)”

又小叅, 擧此話云,“ 山僧略露个消息. 爲人須爲徹, 殺人須見
血. 直下便承當, 已落第二月. 且道! 如何是第一月? 咄!”
23) 제이월(第二月). 허상(虛像)을 말한다. 하늘에 뜬 유일한 달을 제일월(第一月)이
    라 하고, 눈에 병이 있어 헛보이거나 손가락으로 눈을 눌러 제일월 옆에 또 하나
    나타나는 달이 바로 제이월이다.
24) 咄. 첫 번째 달이 있다는 분별조차 없애버리는 부정의 언사이다.

 

불안청원(佛眼淸遠)의 문답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방거사가 마조대사에게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

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은 말은 어떤 뜻인가?” 그 학인이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하여 말했다. “저는 이미 스님께 대답을 모두 마

쳤습니다.”

佛眼遠, 問僧, “龐居士問馬大師, 不與萬法爲侶者, 是什麽人,
如何?” 自代云,“ 某甲已答和尙了也.”

 

[설화]

저는 이미 스님께 대답을 모두 마쳤습니다: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것

이외에 더 이상 무슨 뜻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미 대답을 마

쳤다’라고 말한 것이다.

佛眼云云, 某甲已答和尙了也者, 不與萬法爲侶外, 更有什麽
意? 故云答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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