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118칙 도명본래 道明本來

실론섬 2016. 11. 25. 15:04

118칙 도명본래 道明本來1)
1) 혜능(慧能)이 행자의 신분으로 5조 홍인(弘忍)으로부터 6조로 인가를 받아 달마
   (達磨) 이래로 조사의 징표인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대유령(大庾嶺)을 넘어가다
   가 그것을 빼앗으려고 추적하던 도명과 마주친 인연에서 생긴 공안이다. 宗寶
   本『壇經』大48 p.349b14에 따르면, 그 당시 도명은 혜능이 바위에 던져 놓은 
   가사를 집어 들려 하였으나 꼼짝도 하지 않자 겁을 먹고 ‘의발이 욕심이 나서 쫓아
   온 것이 아니라 5조로부터 받은 법을 알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혜능이 그
   전후의 사정을 모두 간파하고 그에 적절한 문제를 던진 것이 바로 이 공안이다.
   곧 의발을 강탈하려 했던 애초의 악한 마음과 그 뒤에 법을 구하겠다고 한 선한
   마음을 소재로 삼아 그 현장에 가장 적절한 공안으로 도명을 이끌었던 것이다.
   도명의 의중에 근거해서 ‘의발을 빼앗으려 했던 의도를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그 뒤에 법을 물으러 왔다고 바꾼 마음을 선이라고도 생각하지 마라’고 한
   혜능의 말은 추상적인 개념의 선과 악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그 당사
   자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
   고 하면 뜻에 맞지 않는다. 이 말이 일반화되면서 후대의 문헌 가운데 그렇게 해
   석해도 무방한 맥락이 있을 뿐이다.

 

[본칙]

 

도명선사는 6조가 대유령 꼭대기에서 “선이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악

이라고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이럴 때 어떤 것이 명상좌 그대의 본래면

목인가?”라는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道明禪師, 因六祖在大庾嶺頭云, “不思善, 不思惡! 正當伊
麽時, 阿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師卽大悟.

 

[설화]

 

자취를 밟으며 따라와 대유령에 이르렀을 때를 가리켜 악한 생각을 품

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법을 구하러 왔다’라 운운한 말은 선한 생각을 품

고 있는 것에 해당된다. ‘선이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마라’고 한 말은 선이나 악 그 어느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면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본체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니,2)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의

본래면목이라는 뜻이다.

躡迹追逐至嶺時, 是思惡也;我來求法云云, 是思善也. 不思
云云, 善惡都莫思量, 自然得入淸淨心體, 是諸人本來面目也.
2) 宗寶本『壇經』大48 p.360a13,『景德傳燈錄』권5「慧能傳」大51 p.236a21 등에 
   나오는 구절.

 

관음원 종현의 염

 

“나는 지금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나에게 명상좌의 본래면목을 돌려

다오.”

觀音院, 從顯拈,“ 今日不伊麽道. 還我明上座來.”

 

[설화]

본래면목이라 하면 인식 주체[能]와 대상[所]이 있는 듯하지만 없으므

로 ‘나에게 명상좌의 본래면목을 돌려다오’라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

으로써 본래 인식 주체와 대상의 차별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從顯:本來面目, 則似有能所, 不如道,‘ 還我明上座來.’ 本無
能所也.

 

단하자순(丹霞子淳)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저 앞서 간 조사들이 사람을 가르치는 방

법을 살펴보니, 결코 이편으로 오려 하지 않는구나.3) 여러분은 그 뜻을 알

겠는가? 별이 뜨기 전에 떠난 사람이 천 길 봉우리의 보금자리에 누워 있

으니,4) 불조(佛祖)일지라도 그를 알아볼 근거가 없다.”

丹霞淳, 上堂, 擧此話云,“ 看他先祖爲人, 終不肯過這邊來.
諸人還會麽? 星前人臥千峯室, 佛祖無因識得渠.”
3) 6조의 공안이 말로 표현하기 이전의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편’이란 언어와
   분별로 통하는 경계를 나타내는데, 6조는 ‘저편’에 있다는 말이 된다. 이어서 나
   오는 ‘별이 뜨기 전에 떠난 사람’과 ‘천 길 봉우리의 보금자리’ 등과 호응한다.
4) 아무런 조짐도 나타나기 전의 시간과 누구도 찾아낼 수 없는 고원한 장소를 가
   지고 6조의 공안이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다는 뜻을 보여준다.『空谷集』11則
   卍117 p.545a3에는 이 구절에 “농부는 무슨 일로 여전히 깊은 잠에 떨어져 있을
   까?(農夫何事睡猶濃)”라는 착어가 붙어 있다.

 

[설화]

 

별이 뜨기 전에 ~ 알아볼 근거가 없다:6조가 말한 내용을 자세히 밝힌 것이

다. 아래 나오는 불안의 뜻도 이상과 같다.

丹霞:星前人臥云云者, 深明六祖道得處也. 佛眼意, 上同.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이 공안을 알겠는가? 바로 이

럴 때5) 무수한 겁이 지나도록 미혹된 적이 없었던 것과 같으리니, 걸음마

다 삼계의 속박을 넘어서 본래의 집에 돌아오면 단번에 모든 의심이 끊어

지리라.”

佛眼遠, 上堂, 擧此話云,“ 大衆! 還會者話麽? 正當伊麽時,
歷劫不曾迷. 步步超三界, 歸家頓絶疑.”
5) 선이라고도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때.      ■

'한국전통사상 > 공안집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5칙 마조원상 馬祖圓相  (0) 2016.11.28
161칙 마조일구 馬祖一口  (0) 2016.11.28
110칙 육조풍번 六祖風幡  (0) 2016.11.25
108칙 사조해탈 四祖解脫  (0) 2016.11.25
98칙 달마성제 達磨聖諦  (0) 2016.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