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9칙 낙포귀향 洛浦歸鄕1)
[본칙]
낙포에게 어떤 학인이 물었다.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집은 허물어지고 가족도 흩어졌거늘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겠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이로군요.” “뜰 앞에 남아 있는 눈은 햇볕이 녹이지만, 방 안에 날리는 먼지는 누구를 시켜 쓸어 없앨까?”2) 洛浦因僧問, “學人擬歸鄕時, 如何?” 師曰, “家破人亡, 子歸何處?” 僧云, “恁麽則不歸去也.” 師云, “庭前殘雪日輪消,
室內游塵遣誰掃?”
1) 낙포원안(洛浦元安 834~898)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歸鄕]을 두고 본분사에 대하여 문답한 공안.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과 돌아가지 않는다는 양편에 대하여 어느쪽으로든 일방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 낙포의 안목을 보여주는 공안이다. 돌아가지 않는 것은 향상(向上)의
길이며, 돌아가는 것은 향하(向下)의 길로서 향상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향하의 작용을 걸림 없이
전개하는 선기(禪機)가 나타난다.
2) 방 안의 먼지를 쓸어 없앨 사람을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징이다. 이 문답에 이어서
낙포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은 것으로 전한다. “뜻을 굳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배를 타고 오호를
건너노라. 삿대를 잡으니 별과 달이 숨고, 노를 멈추니 해가 밝도다. 닻줄을 풀고 삿된 언덕을 떠나서,
돛대를 달고 바른길 향해 떠나네. 도달하고 보니 집은 깨끗이 쓸려 사라졌고, 집안에서 어리석음
저지를 일도 면했도다.”(『五燈會元』권6 卍138 p.203a17.決志歸鄕去, 乘船渡五湖.擧篙星月隱,
停棹日輪孤. 解纜離邪岸, 張帆出正途.到來家蕩盡, 免作屋中愚.)
[설화]
고향으로 돌아가다:본원으로 돌아간다3)는 뜻이다.
집은 허물어지고 가족도 흩어졌거늘 ~ 돌아가겠다는 말인가:‘나는 이미 형제와 자매를 찾을 집도 없는데, 그대는 이제 어디서 부모님 계시는 집을 방문하겠다는 것인가?’4)라고 묻는 말과 같다.
뜰 앞에 남아 있는 눈은 ~ 쓸어 없앨까:그럼에도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마치 ‘인정을 끊어버리면 안 된다’5)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歸鄕者, 返本還源也. 家破人亡云云者, 我已無家尋弟妹, 君今何處訪庭闈? 庭前殘雪云云者, 又須歸去. 如云,
‘不可人情斷絶去也.’
3) 반본환원(返本還源). 본원으로 되돌아간다는 말. ‘본원’이란 본래 유래한 뿌리 또는 본래 있던 자리라는
뜻으로 고향과 같다. 화엄학(華嚴學)이나 선종의 문헌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다. 동산범언(洞山梵言)이
이 공안의 주인공 낙포의 말을 답습하여 이 뜻을 전한다.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이제 12월 20일이
되니 한 해가 모두 끝나려 하는구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만 리 사방에 퍼져 있으니,
대중들은 모두 타향에서 떠도는 나그네 신세일 뿐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자가 있는가? ’불자를 치면서
말했다. ‘문앞에 남아있는 눈은 햇볕이 녹이지만, 방 안에 날리는 먼지는 누구를 시켜 쓸어 없앨까?’”
(『續傳燈錄』 권22 「洞山梵言傳」 大51 p.619a6. 上堂, ‘臘月二十日, 一年將欲盡. 萬里未歸人,
大衆總是他鄉之客. 還有返本還源者麽?’ 擊拂子曰, ‘門前殘雪日輪消, 室內紅塵遣誰掃?’);“항상 이와
같이 끝이 없는 법륜을 굴리시어 모든 중생들로하여금 본원으로 되돌아 가도록 하였다.”(『華嚴經疏』
권1 大35 p.503c20.常轉如是無盡法輪,令諸衆生,反本還源.)
4) 두보(杜甫)의 시「送韓十四江東省覲」에 나오는 구절.
5)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말이다. “원주가 석실에 갔다가 돌아오자 운암이 물었다. ‘그대는 석실에
도달했다가 어째서 곧바로 돌아 왔느냐? ’원주가 아무 대꾸가 없자 동산이 그를 대신하여 말했다.
‘그안에는 벌써 어떤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다시 찾아간 이유는 무엇이냐?’
‘인정을 끊어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洞山語錄』大47 p.508a15. 院主遊石室回, 雲巖問曰,
‘汝去到石室裏許, 爲甚麽便回?’ 主無語, 師代曰, ‘彼中已有人占了也.’ 巖曰, ‘汝更去作麽?’ 師曰,
‘不可人情斷絶去也.’)
석문원이(石門元易)의 송
가족도 집도 사라져 돌아갈 생각도 잊었으니,
방 가득 찬 먼지 쓸어버릴 사람조차 없구나.
붉은 태양에 얼음 녹아 강물 따라 흐르는데,
사립문은 누가 닫아 놓았는지 모르겠도다.
石門易頌, “人亡家破亦忘歸, 滿室紅塵掃者稀. 紅日消冰逐流水, 不知誰爲掩柴扉?”
[설화]
사무치도록 일러준다는 뜻이다.
石門云云, 徹困爲人也.
단하자순(丹霞子淳)의 송
태평스러운 고향 길은 텅 비고 아득히 먼데,
돌아가는 정감 복잡하고 생각 끝이 없구나.
다 버리고 집에 오니 무엇이 남아 있던가?
유리로 지은 보배궁전에 달 가두어 놓았네.
丹霞淳頌, “大平鄕國路空賖, 歸興悠悠思莫涯. 撒手到家何所有? 琉璃寶殿鎖蟾華.”
투자의청(投子義靑)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말해 보라! 낙포가 이렇게 그를 대한 내용 중에서 어떤 부분이 이 학인에게 고향 가는 길을 지시한 것인가? 만일 이것을 알아차리면 손에 쥔 것을 다 털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겠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발걸음마다 다시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投子靑, 上堂, 擧此話云, “且道! 洛浦恁麽對他, 甚麽處是指這僧歸路? 若於這裏會得, 可謂撒手歸家;若也不會,
擧步更須子細.”
취암사종(翠巖嗣宗)의 염
“그 학인은 앞으로 나아가도 마을을 만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도 쉬어 갈 여관을 찾지 못하여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격이었으니,6) 다름 아니라 낙포가 그에게 곧바로 가는 길을 지시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그 학인에게 그러한 질문을 받았다면 그에게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되묻고 그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 등골이 쪼개지도록 주장자를 휘둘렀을 것이다. 만일 가죽 속에 피가 끓는 사람이라면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져야 그 은혜에 보답할 여지가 있으리라.”
翠嵓宗拈, “這僧, 前不搆村, 後不搆店, 只爲洛浦, 未曾指他直路. 我若見這僧恁麽問, 只向他道, ‘你只今在什麽處?’
待他擬議, 劈脊便打. 若是箇皮下有血底人, 粉骨碎身, 報恩有分.”
6) 앞뒤로 갈 길이 모두 사라진 경계를 나타내어 낙포가 한 말의 진실을 드러내었다. 낙포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사라진 고향에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돌아갈 일이 있음을 은근히
지시하여 학인으로 하여금 진퇴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한 점을 가리킨다. “저 옛사람을 살펴보면
이십 년 동안 참구하고서도 여전히 미숙하여, 살가죽과 뼈에 바짝 달라붙어 자유롭게 튀어나오지
못했다. 옳기는 옳으나, 다만 앞으로 나아가도 마을을 만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도 쉬어갈 여관에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어떻게도 하지 못하는 신세일 뿐이다. 다음과 같은 말을 모르는가? ‘언어가
관념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찌 번뇌의 속박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흰 구름이 골짜기를
가로지르고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 길을 잃었던가?’”(『碧巖錄』72則 大48 p.200b20.
看他古人, 二十年參究, 猶自半靑半黃, 粘皮著骨, 不能穎脫. 是則也是, 只是前不搆村, 後不迭店.
不見道,‘語不離窠臼, 焉能出蓋纏!白雲橫谷口, 迷却幾人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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