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칙 백수성전 白水聲前
[본칙]
고안의 백수본인선사가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노승은 평소에 소리가 나기 이전의 경지이건 말로 드러낸 다음의 경계이건 그 어디에서나 선량한 보통 사람들을 우롱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소리는 소리가 아니요 색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어떤 학인이 물었다. “소리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소리를 색이라 불러도 될까?”1) “색은 색이 아니라는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색을 소리라 불러도 될까?” 이에 그 학인이 절을 올리자 백수가 말했다.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설명해 주었는가? 그대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는가? 누구든 이 질문을 바르게 가려낸다면 그에게 깨달은 점이 있다고 인정해 주리라.”
高安, 白水本仁禪師, 上堂云, “老僧尋常, 不欲向聲前句後, 皷弄人家男女. 何故? 且聲不是聲, 色不是色.” 時, 有僧問,
“如何是聲不是聲?” 師云, “喚作色得麽?” 僧云, “如何是色不是色?” 師云, “喚作聲得麽?” 僧作禮, 師云, “且道! 爲汝說?
答汝話? 若人辨得, 許你有箇入處.”
1) 부정적 의문이다. 곧 소리는 소리라고만 불러야 한다는 뜻이다.
[설화]
이 문답에서 소리와 색[聲色]이란, 말이라는 소리와 글자라는 색을 가리킨다.
소리가 나기 이전의 경지이건 말로 드러낸 다음의 경계이건 그 어디에서나:소리나 색으로 드러나기 전도 아니고, 소리나 색으로 드러난 후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2) 마치 꽃 앞에서 달빛을 즐기는 것과 같다.
우롱하고 싶지 않았다:언어의 상을 벗어나고 문자의 상도 벗어나3) 소리나 색으로 드러나기 전의 경계에서 학인들을 가르친다4)는 뜻이다.
‘소리를 색이라 불러도 될까’, ‘색을 소리라 불러도 될까’라고 한 말:소리는 소리이고 색은 색이라는 말이니, 이전부터 대중에게 설법한 내용이 소리와 색을 벗어나서 별도로 소리와 색이 아닌 경계를 취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보거나 듣는 것 그대로가 바로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며,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 밖의 다른 소리와 색은 없다는 뜻이다.
그대에게 설명해 주었는가 ~ 대답해 주었는가:설명으로 보면 이(理)도 설명했고 사(事)도 설명했으며, 대답으로 보면 분명하게 대답했다는 뜻이다. 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이고 색은 단지 색일 뿐이라고 했으니 그대에게 설명해준 것이며, 소리와 색 그대로 소리와 색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대에게 대답한 말이라는 뜻이다. 만일 소리와 색 그대로 소리와 색이 아니라는 도리를 안다면 깨달은 점이 있는 것이다.
此話聲色者, 言聲字色也. 聲前句後者, 非聲色前頭, 非聲色前後也. 如花前月下也. 不欲云云者, 離言語相, 離文字相,
向聲色前頭接機也. 喚作色得麽, 喚作聲得麽者, 聲是聲, 色是色也, 則從前示衆, 非離聲色, 別取非聲色也. 卽此見聞非見聞,
無餘聲色可呈君也. 爲汝說云云者, 說則說理說事, 答則答斷也. 聲但聲色但色, 則爲汝說也, 卽聲色而非聲色, 則答汝話也.
若也知得, 卽聲色非聲色, 有箇入處也.
2) 이것은 어떤 말을 붙여도 해설할 수 없는 화두로 제시된 것이다. 위산영우(潙山靈祐)에게 이와 유사한 화두가
있다. “우뚝하게분명히드러나있고,휘황찬란하게 빛나는구나. 소리가 나기 이전에는 소리가 아니고 색이 나타난
다음에는 색이 아니다. 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탄 것과 같아서 누구건 부리를 꽂을 곳이 전혀 없다.”(『潙山語錄』
大47 p.578a2. 巍巍堂堂, 煒煒煌煌. 聲前非聲, 色後非色. 蚊子上鐵牛, 無汝下嘴處.)
3)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즐겨 쓰는 말이다. “불법의 미묘한 요체는 언설의 상을 벗어나고 문자의 상을 벗어나며
마음으로 헤아리는 상[心緣相]도 벗어나 있기에 유심(有心)으로도 구할 수 없고 무심(無心)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언어로도 이르지 못하고 침묵으로도 통할 수 없다.”(『大慧語錄』권5 大47 p.829b26. 佛法要妙, 離言說相,
離文字相, 離心緣相, 不可以有心求, 不可以無心得, 不可以語言造, 不可以寂默通.)
4) 접기(接機). ‘접’은 접견(接見) 또는 접득(接得)이라는 말로 학인을 만나서 가르치는 것, ‘기’는 학인들의 기틀
또는 근기를 나타낸다.
단하자순(丹霞子淳)의 송
색은 색일 뿐이요 소리는 소리일 뿐이니,
꾀꼬리 우는 곳 무성한 버드나무 나부끼네.
집집마다 대문 앞에 서울로 통하는 길 있고,
삼도5)는 바다 위에 뜬 밝은 달 아래 비껴 있네.6)
丹霞淳頌, “色自色兮聲自聲, 新鸎啼處柳煙輕. 門門有路通京國, 三島斜橫海月明.”
5) 三島. 말 자체는 세 개의 섬이지만 신선(神仙)들이 산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등
세개의 산을 가리킨다. 이 산들이 바다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섬이라 한다. 봉래산을 봉도(蓬島) 또는
봉래도(蓬萊島)라 하는 것과 같다. 신선의 경계[仙境]를 나타낸다.
6)『虛堂集』권4 卍124 p.570b16 참조.
[설화]
삼도는 바다 위에 뜬 밝은 달 아래 비껴 있네:지금 당면한 소리와 색에 몸을 숨길 곳이 있다는 뜻이다.7)
丹霞云云, 三島斜橫云云者, 當聲色有隱身處也.
7) 세상을 떠나 자신을 숨기고 사는 신선의 경계는 눈앞의 소리와 색을 벗어나 별도로 있지 않다는 말. 곧
신선이 은거하는 세계는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눈앞에 들리는 소리와 보이는 색 바로 그 속에
있다는 해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송
소리는 허에서 나오고 색은 무에서 발생하지만,
소리 이전과 말 생긴 다음의 경계 갈수록 모호하네.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 없거늘,
어떻게 이름 짓고 모양 본뜨리오!
분명하고 원만하게 응하지만 헤아릴 도리 없으니,
교묘하게 수단8)을 펼쳐도 말만 허비할 뿐이리라.
방에서 발휘되는 무생법인(無生法忍)9)이,
길에 가득한 향기를 맡는 것과 견주어 어떠한가!10)
圜悟勤頌, “聲出虛色生無, 聲前句後轉塗糊. 間不容髮, 安可名摸! 堂堂圓應沒錙銖, 巧張爐鞴費分踈. 爭如棒下無生忍,
聞見馨香滿道塗!”
8) 노비(爐鞴).본서1122則 주석5)참조.
9) 방하무생인(棒下無生忍). 휘두르는 방에서 근본 진리[無生法忍]를 펼쳐 보인다는 말.
‘임기불양사(臨機不讓師)’와 짝을 이룬다. 본분의 기틀을 발휘할 상황에서는 상대가 스승이라고 해도 양보하지
않고 방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스승과 제자를 차별하지 않는 준엄한 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남원이 풍혈에게
‘남방의 한 방(棒)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풍혈이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 다음
되물었다. ‘화상이 주석하시는 이곳의 한 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원이 주장자를 집어 들고
말하였다. ‘방에 무생법인이 있으니, 기틀에 임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南院語要』 古尊宿語錄7
卍118 p.239b6. 問風穴, ‘南方一棒, 作麽商量?’ 穴云, ‘作奇特商量?’ 穴却問, 和尚此間一棒,作麽商量?’師拈拄杖云,
‘棒下無生忍,臨機不讓師.’)
10) 언어 이전의 지시 방편인 방(棒)과 어디에나 퍼져 있는 향기와 같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 현상을 대비시켜 양자
어느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긴장을 설정했다.
자항요박(慈航了朴)의 송
소리는 본래 색 아니고 색도 소리 아니니,
귀를 잡고 보고 눈을 붙이고 들으리라.
까닭도 없이 우롱하는 것이 아니요,
새 울고 꽃 떨어져 정감 절로 풍부해진 탓이라네.
慈航朴頌, “聲本非色色非聲, 把耳來看著眼聽. 不是等閑相弄, 鳥啼花落自多情.”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염
“백수의 말은 대단히 기이하구나! 요는 천상의 세계를 과분하게 관찰하
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미 소리가 나기 이전도 아니고 말로 드러낸 다음도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雪竇顯拈, “本仁也甚奇怪! 要且, 貪觀天上. 旣非聲前句後, 且作麽生入?”
[설화]
소리와 색에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여기서는 (학인과의 문답은 제외하고) 다만 대중에게 전한 처음의 말만 제기하여 평가한 것이다.
雪竇:聲色有什麽過. 此本, 但擧示衆也.
장산법천(蔣山法泉)의 염
“본인화상은 선량한 보통 사람들을 우롱하기를 그칠 날이 없었구나. 이미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라 하고서는 어찌하여 ‘색이라 부르지도 못한다’고 하고, ‘색이 색이 아니다’라고 하고서는 어찌하여 ‘소리라 부르지도 못한다’고 한 것일까? 말해 보라! 나와 본인의 생각에 차이점이 있는가? 만일 이에 대하여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깨달음의 길에 들어설 여지가 있다고 인정해 줄 것이다.”
蔣山泉拈, “本仁和尙, 皷弄人家男女, 未有了日在. 旣然聲不是聲, 如何不喚作色, 旣然色不是色, 如何不喚作聲? 你道!
蔣山與本仁同別? 若向遮裏會得, 亦許你有个入路.”
[설화]
본인화상은 ~ 그칠 날이 없었구나:소리와 색의 얽매임을 모두 뚫고 벗어났기 때문에 한 말이다. 소리가 소리가 아니라면 소리의 상(相)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소리와 색이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해도 무방하니, 또한 소리를 색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그 다음의 말(색에 관한 것)도 이 뜻에 따른다. 본인은 소리와 색을 각각 긍정하는 입장이고, 장산은 소리와 색을 긍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그에게 깨달음의 길에 들어설 여지가 있다고 인정해 줄 것이다:소리와 색으로 들어가지 않는 입장을 철저하게 견지해야 함을 나타낸 말이다.
蔣山:本仁至了日者, 透出聲色故也. 聲不是聲, 則聲相不可得, 聲色無二不妨, 亦喚作色. 下倣此. 此師立聲色,
蔣山不立聲色. 亦許你有箇入路者, 不入聲色處到底也.
대위회수(大潙懷秀)의 염
“본인은 단지 땅이 한없이 넓다는 것만 알았지 하늘이 헤아릴 수 없이 높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11)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라고 한 말은 어떤 뜻일까? 소리의 울림을 쫓아다니지 마라. ‘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한 말은 어떤 뜻일까? 푸르거나 노란 색깔을 쫓아다니지 마라. 다만 소리가 나기 이전의 경지와 말로 표현된 다음의 경계에서 모두 몸을 편안히 하는 도리를 찾기만 한다면 자연히 자신만의 독자적인 살림살이12)를 누리게 되리라.”
大潙秀拈, “本仁, 秪知橫千, 不會堅百. 如何是聲不是聲? 莫逐音響. 如何是色不是色? 莫逐靑黃. 且從但向聲前句後,
覓箇安身, 自然別有生涯.”
11) 소리와 색 이전의 경지만 알고, 그것이 다 드러난 경계는 몰랐다는 말. 천(千)과 백(百)은 만수(滿數)로 지극히
넓고 높다는 뜻을 형용하는 말이다.
12) 별유생애(別有生涯). 자신만의 고유한 살림살이. 별은 각자 또는 ‘격외(格外)의’·‘특별한’이란 뜻이고, 생애는
생활·생계·살림살이라는 뜻이다. 일생 동안 자신이 붙들고 살아야 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본분의 양식을
말한다. 즉, 스승이나 다른 사람의 견해에 예속되지 않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틀이나 수단을 뜻한다.
[설화]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라고 한 말은 ~ 푸르거나 노란 색깔을 쫓아다니지 마라:소리와 색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다만 소리가 나기 이전의 ~ 살림살이를 누리게 되리라:본인의 가르침에 따라 소리와 색에서 몸을 편안히 하는 도리를 찾으라는 뜻이다. ‘자연(自然)’ 이 두 글자는 연문인 듯하다.
大潙:莫逐至靑黃者, 不落聲色也. 且從但向云云者, 從他本仁, 向聲色安身也. 自然二字, 疑衍文也.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염
“본인은 아주 대단한 말을 하였다. 그러나 만약 뒤에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면 어찌할 뻔하였겠는가? 하지만 뒤의 말 역시 그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
法眞一拈, “本仁大殺葛藤. 若無後語, 堪作甚麽? 然雖如是, 放過卽不可.”
[설화]
아주 대단한 말을 하였다:대중에게 설법하고 문답한 것이 바로 그 말[葛藤]이다.
뒤에 이어지는 말:‘그대에게 설명해 주었는가? 그대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는가?’라고 물은 말을 가리킨다.
그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여전히 모든 일을 마친 무사의 경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法眞:大殺云云者, 示衆問答, 是葛藤也. 後語者, 爲汝說答汝話, 是也. 放過卽不可者, 猶未得無事也.
고목법성(枯木法成)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색을 소리라 불러도 될까?’라 한 부분에 이르러 말했다. “여러분, 옛사람의 자비심은 매우 컸으나 향내와 누린내를 가려내지 못하고, 경수(涇水)와 위수(渭水)를 구분하지 못한 것을 어찌하랴! 나 또한 평소에 소리가 나기 이전의 경지나 말이 있은 다음의 경계에서 선량한 보통 사람들을 우롱하려 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차라리 내 몸을 미세한 티끌처럼 부수어버릴지언정, 결코 중생의 눈을 멀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枯木成, 上堂, 擧此話, 至‘喚作聲得麽?’ 師云, “諸仁者, 古人慈悲大甚, 爭奈薰蕕不辨, 涇渭不分! 香山尋常,
亦不欲向聲前句後, 皷弄人家男女. 何故? 乍可碎身若微塵, 終不瞎箇衆生眼.”
[설화]
소리와 색을 철저하게 긍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枯木:不立聲色到底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병불13)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본인은 한 꿰미의 염주 알로 세상 사람들의 눈동자를 바꾸려 하다가 도리어 그 학인의 끊어진 새끼줄14)에 무기조차 휘둘러보지 못하고 코를 뚫리고 말았다.15) 후대에 순노부(舜老夫:雲居曉舜)는 이 공안에 대하여 ‘본인은 이미 무성한 풀숲으로 들어갔고, 그 학인 또한 깊숙한 촌마을에 떨어졌다. 그런즉 고상한 양춘백설곡(陽春白雪曲)16)에 당시 사람들이 화답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소박한 노래와 춤으로 어디서나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이다’17)라고 평가했다. 순노부의 말이 옳기는 옳지만 사람들을 끌어서 취하게 만드는 잘못을 모면하지 못했다. 병불상좌인 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18)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말해 보리라. ‘소리는 소리가 아니며 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는구나! 줏대 없이 남의 말만 따라다니니,19)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리라. 고상한 양춘설곡에 대한 화답은 일정하지 않고, 소박한 노래와 춤도 어지럽게 만들었을 뿐이로다.’20)” 불자로 선상을 치고서 “바로 이것은 결정코 소리가 아니다”라 하고, 다시 불자를 들고서 “이것은 결정코 색이 아니다. 그렇다면 필경 이것은 무엇일까?”라고 물은 다음 한 소리 크게 내지르고 말했다. “바로 이때, 근원을 궁구하지 못한다면 아득한 미래까지 기다렸다가 미륵에게나 물어보아야 하리라.”21)
雲門杲, 秉拂, 擧此話云, “本仁將一穿雲居子, 換却天下人眼睛, 却被這僧將一條斷貫索, 不動干戈, 穿却鼻孔. 後來,
舜老夫拈云, ‘本仁, 旣已入草, 遮僧, 又落深村. 然則陽春雪曲, 時人難和, 村歌社舞, 到處與人合得着.’” 師云, “舜老夫,
是則也是, 未免隨摟摗. 秉拂上座, 不惜眉毛, 爲諸人說破. ‘聲不是聲, 色不是色! 馬後驢前, 神出鬼沒. 雪曲陽春和不齊,
村歌社舞且淈 .’” 以拂子, 擊禪床云, “遮箇決定不是聲.” 復擧起云, “者个決定不是色. 且畢竟是个什麽?” 喝一喝云,
“此時, 若不究根源, 直待當來問彌勒.”
13) 秉拂.주지나방장이불자(拂子)를잡고법상에올라앉아대중에게설법하는것. 또는 이들을 대신하여 그 설법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후자의 뜻으로 많이 쓴다. 본서792則 주석9) 참조.
14) 단관삭(斷貫索). 단은 단절(斷絶)의 뜻이고, 관삭은 엽전을 꿰는 끈 또는 썩어서 끊어진 노끈을 가리킨다.
쓸데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15) 천각비공(穿却鼻孔). 천인비공(穿人鼻孔)이라고도 한다. 소의 코에 코뚜레를 꿰어 소를 부리듯이 마음대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보통은 스승이 학인을 지도할 때 쓰는 파주(把住)의 한 방편을 뜻하나, 여기서는
상대에게서 모든 수단을 빼앗아 제압하였다는 뜻으로 쓰였다.
16) 양춘설곡(陽春雪曲).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고도 쓴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고상하고 전아한 가곡(歌曲)
이름이다.
17)『宗門拈古彚集』권31 卍115 p.868a11.
18) 불석미모(不惜眉毛).본서181則 주석66)참조.
19) 마후여전(馬後驢前).본서677則 주석8)참조.
20) 백수 본인이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방편을 전개했지만 그것마저 혼란을 초래했다는 말이다.
21) 현장에서 불자를 쳐서 낸 소리와 들어 보인 색에서 근원을 알아차려야 하며 분별로 궁구하여 알려고 한다면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설화]
한 꿰미의 염주알[雲居子]:예를 들면 이 지방의 목환자22)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것이다.
도리어 ~ 코를 뚫리고 말았다:도리어 그 학인에 의해 눈동자가 바뀌어 다시 소리와 색 속으로 거꾸러져 버렸다는 뜻이다.
본인은 이미 풀숲으로 들어갔고, 그 학인 또한 깊숙한 촌마을에 떨어졌다:소리와 색이라느니 소리와 색이 아니라느니 하는 것이 곧 거친 풀숲이며 깊숙한 촌마을이다.
양춘백설곡:소리와 색이라느니 또는 소리와 색이 아니라느니 하는 어느 편에도 떨어지지 않은 경계이다.
소박한 노래와 춤으로 어디서나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이다:소리와 색이라느니 소리와 색이 아니라느니 한 것이 그 학인이 사람들과 어울려 합일한 경계라는 말이다.
소리는 소리가 아니며 ~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리라:소리는 소리가 아니고, 색은 색이 아니라는 말이다. 줏대 없이 남의 말만 따라다니며 얻어듣는 소리와 색이 바로 귀신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과 같은 허상이라는 뜻이다.
양춘설곡에 대한 화답은 일정하지 않고:순노부의 말을 긍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박한 노래와 춤은 어지럽게 만들었을 뿐이로다:본인화상의 말을 긍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결정코 색이 아니다. 그렇다면 필경 이것은 무엇일까’라고 한 말 이하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소리와 색 그대로가 철저하게 할 일을 마친 무사(無事)의 경계라는 뜻이다.
雲門:雲居子者, 如此方木槵子, 似而不似者也. 却被至鼻孔者, 被他喚,23) 又向聲色裏著倒也. 旣已入草云云者,
聲色非聲色, 是荒草深村也. 陽春雪曲者, 不落聲色非聲色處也. 村歌社舞云云者, 聲色非聲色, 是這僧合著處也.
聲不是聲至鬼沒者, 聲不是聲, 色不是色. 馬後驢前聲色, 是神出鬼沒也. 雪曲陽春云云者, 不肯舜老夫也. 村家社舞云云者,
不肯本仁也. 決定不是聲云云已下, 當聲色徹底無事也.
22) 木槵子. 환자(槵子)·목환자(木槵子)·무환자(無患子) 등이라고도 한다. 무환자(無患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그 나무의 씨앗은 염주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23) 대혜의 법문에 따르면 ‘喚’은 ‘換’자의 오식이 분명하며, 이 경우 ‘換却眼睛’을 줄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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