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1069칙 운문일언 雲門一言

실론섬 2026. 4. 22. 16:41

1069칙 운문일언 雲門一言

[본칙]1)

어떤 학인이 운문에게 물었다. “한마디 말로 남김없이 말한 경우2)라면 어떻습니까?” “갈가리 찢어버려라!”3) “화상께서는 어떻게 집어 담으시겠습니까?”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가져오너라.”4)
雲門因僧問. “一言道盡時, 如何?” 師云, “裂破!” 僧云, “和尙如何拈掇?” 師云, “拈取糞箕掃箒來.”
1) 학인이 모조리 거두어들이는 ‘한마디 말’로 운문을 실험하자 운문은 찢어서 다양하게 펼치고, 학인이 다시 
   무수하게 찢어져 펼쳐진 그것을 어떻게 들어 보이는지에 대하여 묻자 남김없이 쓸어서 쓰레받기에 담는다고 
   응답했다. 운문이 처음에는 펼쳤지만 마지막에는 다시 모두 거두는 ‘한마디 말’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결정적인 뜻을 가진 말들이 아니라 무미(無味)하게 설정된 관문(關門)일 뿐이다.
2) 일언도진(一言道盡). 몰자미(沒滋味)의 화두가 지니는 속성과 같다. 다른 모든 언어와 관념을 부수어 버리고 
   무미(無味)하게 만들어 낱낱의 것들을 모조리 화두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전환시키는 기능이 바로 ‘일언도진’ 
   그것이다.
3) 열파(裂破). “쫙 펼쳐져 있구나!”라는 번역도 가능하다. 갈가리 찢어서[裂] 환히 보이도록 열려 있는[破] 풍경을 
   가리킨다. 이 경우 파(破)는 <설화>의 해설과 같이 열려 있다는 뜻[開]으로 본 것이다. 이러면 운문이 그 다음에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받기에 모조리 담는다는 뜻과 호응하여 앞에서 열었다가 뒤에서 닫는 선기(禪機)가 
   나타난다. 다양한 맛을 가진 세계로 열었다가 다시 닫음으로써 몰자미(沒滋味)의 경계로 몰아가는 수법이다.
4) 펼쳐진 것을 하나로 쓸어 담겠다는 말. 운문이 앞에서는 쫙 펼쳐져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경계를 제기했다가 
   다시 남김없이 쓸어 없애는 ‘한마디’로 돌아가고 있다.

[설화]

한마디로 남김없이 말하다:한 구절로 모조리 말해버린다는 뜻이다.
갈가리 찢어버려라:그렇게 던진 질문 자체가 ‘한마디로 남김없이 말하는’ 경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찢어버린다는 말 곧 열파(裂破)는 이 뜻으로 완결된 것인가? 열파가 활짝 열어젖힌다는 뜻의 열개(裂開)와 같다고 한다면, 한마디로 남김없이 말하여 무엇 하겠느냐는 뜻이 된다.5) 
어떻게 집어 담으시겠습니까:한마디로 남김없이 말한다는 것에 착안한 견해이지만 운문의 말을 잘못 이해했다.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가져오너라:분별이 붙지 않는 말[無味之語]로 그 학인을 속인 것이다.6)
一言道盡者, 一句道盡也. 裂破者, 伊麽問來, 不是一言道盡也. 裂破, 了也耶? 裂破, 猶言裂開也, 則一言道盡作什麽. 
如何拈掇者, 一言道盡處著眼, 誤認雲門語也. 拈取云云者, 無味之語謾他也.
5) 열파를 ‘열개’와 같은 뜻으로 본다면,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현상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므로 ‘한마디’로 
   통일시켜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된다.
6) 모두 거두어들이겠다고 했지만 언제든지 갈가리 찢어서 펼친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동시에 이 두 가지 
   말이 모두 특별한 의미와 분별이 붙을 수 없음에도 실제로 쓸어 담을듯이 말하는 방식은 일종의 ‘속임수’와 같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의 거

‘어떤 학인이 운문에게 물었다 ~ 찢어버려라’라고 한 부분을 제기하고서 손가락을 세 번 퉁겼다. 다시 ‘어떤 학인이 목주에게 한마디로 남김없이 말한 경우라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목주선사가 내가 그대의 바랑 속에 있는 격이로구나’7)라고 답한 문답을 제기하고 껄껄 웃었다.
雪竇顯, 擧‘僧問雲門〈至〉裂破.’ 師彈指三下. 又擧‘僧問睦州, 一言道盡時如何? 州云, 老僧在你鉢囊裏.’ 師呵呵大笑.
7) 원오극근(圜悟克勤)은 두 선사의 화두를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목주가 평상시에 발휘하는 기틀은 번개가 
   치듯이 재빨랐고 납승의 본분도 가지고 있었기에 그 학인이 이와 같이 물었을 때 목주가 이와 같이 응답했던 
   것이다. 말해 보라! 운문의 응답과 같은가, 다른가? 만약 다르다고 한다면 불법에 두 종류가 있게 되고, 같다고 
   한다면 어째서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내린 응답이 두 종류이겠는가? 반드시 조금도 의심이 남아있지 않은 
   경계에 도달해야 비로소 진실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닦아도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무수히 많은 양상으로 망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법이다. 설두가 껄껄하고 크게 웃었는데, 이는 무슨 
   도리일까? 한번 가려내어 보라!”(『佛果擊節錄』54則「評唱」卍117 p.484b15. 師云, ‘睦州, 尋常機如掣電, 
   有衲僧巴鼻, 這僧如此問, 睦州如此答. 且道! 與雲門答處, 是同是別? 若道是別, 佛法有兩般;若道是同, 爲什麽, 
   問處則一, 答處兩般? 須是透到無疑處方見徹. 修心未到無心地, 萬種千般逐水流. 雪竇呵呵大笑, 是什麽道理?
   試辨看!)

[설화]

손가락을 세 번 퉁겼다:운문의 입장뿐만 아니라 목주의 입장 역시 남겨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록 목주의 입장을 거론하기 이전이지만 그 뜻은 서로 따르며 통한다.  
껄껄 웃었다:비단 목주의 입장뿐만 아니라 운문의 입장 역시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다.
운문의 입장은 방행(放行)이고 목주의 입장은 파정(把定)이라는 해설이다.8)
雪竇:彈指三下者, 非但雲門地, 睦州地亦不存也. 雖不擧睦州地, 其意相隨來也. 呵呵大笑者, 非但睦州地, 雲門地, 
好个消息也. 雲門地則放行, 睦州地則把定也.
8) 방행(放行)과 파주(把住). 방행은 일체를 긍정하기만 하는 입장에서 학인을 가르치는 방식이고, 반대로 파주 
   또는 파정(把定)은 일체를 부정하는 입장에서 학인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본서1則 주석37) 참조.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염

​“말한다면 크게 지나치고 침묵한다면 미치지 못하니, 언어와 침묵 그 사이에 눌러앉았구나.9) 말해 보라! 궁극적으로는 어떤 뜻인가? 영리한 자라면 여기서 결정적인 한 구절을 나와 다르게 말해 보라.”   
育王諶拈, “開口大過, 閉口不及, 開與不開, 坐在中閒. 且道! 畢竟如何? 靈利漢, 向者裏, 別下一轉語看.”
9) 언어와 침묵 그리고 그 중간등 세가지를 모두 부정한 말이다.

[설화]

말한다면 ~ 그 사이에 눌러앉았구나:입을 열어 말하는 것에 입을 닫고 침묵하는 뜻이 들어 있으니 입을 연다는 뜻이나 열지 않는다는 뜻이나 모두 옳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어떤 뜻인가:이 상황을 떠나서 말하라는 뜻인가? 이 상황 안에서 말하라는 뜻인가?10)
育王:開口至中間者, 開口則又有閉口義, 又開與不開義, 皆不可也. 畢竟如何云云者, 離此而道得耶? 卽此而道得耶?
10) 말을 해도 안 되고 침묵해도 안 되며 그 중간에 머물러도 안 되는 곤경(困境) 자체를 또 다른 곤경의 상황을 
    설정하여 처리했다. 곧 떠나거나[離] 그 안에 있거나[卽] 그 어느 편이 옳은지 물음으로써 새로운 화두를 
    제기한 것이다. 하나의 화두에 또 하나의 화두로 반응하는 이중공안(二重公案)의 형식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시중

​‘어떤 학인이 목주에게 물었다 ~ 그대의 바랑 속에 있는 격이로구나’ 그리고 ‘학인이 운문에게 물었다 ~ 찢어버려라’라는 두 문답을 제기하고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한마디 말로 남김없이 말한 경우라면 어떻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 칠통!’11)이라고 답하리라.”
雲門杲, 示衆, 擧‘僧問睦州〈至〉在你鉢囊裏,’ 又, ‘問雲門〈至〉裂破.’ 師云. “或有人問山僧, 一言道盡時, 如何? 遮漆桶!”
11) 이중의 뜻이다. 하나는 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통 속처럼 무지한 자라고 상대를 비판하는 말이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말의 뜻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그렇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칠통속과 같이 언어나 
    침묵을 비롯한 어떤 수단과 분별도 통하지 않는 ‘한마디’의 화두를 상징한다.

[설화]

이 칠통:양쪽 모두를 범하지 않은 것이다.12)
雲門:這柒桶者, 兩頭不干也.
12) 목주와 운문 그 어느 편으로도 귀착시키지 않고 또 하나의 화두를 제시하는 방식이라는 해설이다. 이 말들은 
    모두 결론을 내린 말, 곧마친 말이 아닌[不了] 활구(活句)로서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송원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다시 ‘어떤 학인이 선사에게 물었다 ~ 그대의 바랑 속에 있는 격이로구나’라고 한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두 노인도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안주하는 틀에 떨어졌구나. 어떤 이가 나에게 ‘한마디 말로 남김없이 말한 경우라면 어떻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단지 그에게 ‘소가 없으면 말을 부린다’라고 할 것이다.”   
松源, 上堂, 擧此話, 又擧‘僧問睦州, 〈至〉在你鉢囊裏.’ 師云. “二老漢猶墮時人窠臼, 或有問虎丘, ‘一言道盡時, 如何?’ 
只向他道, ‘無牛使馬.’”

​[설화]

두 노인도 ~ 떨어졌구나:아직 규범을 떠나지 않은 입장에서 말했기 때문이다.
소가 없으면 말을 부린다:운문의 입장도 가능하고 목주의 입장도 가능하니 어떤 것도 안 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松源:二老漢云云者, 未離規矩故也. 無牛使馬者, 雲門地亦得, 睦州地亦得, 意則無不可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