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1175칙 동안향거 同安向去

실론섬 2026. 4. 22. 17:47

1175칙 동안향거 同安向去

​[본칙]

홍주 봉서산의 동안상찰선사〈어떤 판본에는 구봉도건(九峯道虔)선사라 한다>에게 어떤 학인이 물었다. “저편을 향하여 떠난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 “가을 매미1)가 고목나무에 붙어 소리를 다하여 울면서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편으로 되돌아온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 “갈대꽃이 불 속에서 피어나니 봄을 맞이했으나 가을과 같구나.” “되돌아오지도 떠나지도 않는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 “돌양이 돌호랑이와 마주치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 일 없이 쉰다.”  
洪州鳳捿山, 同安常察禪師〈一本嗣九峯虔禪師〉, 因僧問, “如何是向去底人?” 師云, “寒蟬抱枯木, 泣盡不廻頭.” 
“如何是却來底人?” 師云, “蘆花火裏秀, 逢春恰似秋.” “如何是不來不去底人?” 師云, “石羊逢石虎, 相逢早晩休.”
1) 한선(寒蟬). 매미의 일종으로 보통 매미보다 작고 청적(靑赤)빛깔이다.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리면 한선이 운다.”(『禮記』「月令」. 孟秋之月 涼風至, 白露降, 寒蟬鳴.);채옹(蔡邕)의 
   『月令章句』에 따르면, “한선은 음기에 반응하여 우니, 그것이 울면 날씨가 서늘해지므로 한선이라 
   부른다.”(寒蟬應陰而鳴, 鳴則天涼, 故謂之寒蟬也.)라고 한다.

[설화]

‘저편을 향하여 떠난 사람’은 공공시(共功時)2)에 해당한다. ‘이편으로 되돌아온 사람’은 공공시(功功時)3)에 해당한다. 또한 ‘저편을 향하여 떠난 사람’이란 사문이 깨달은 결과[果]와 상응하며, ‘이편으로 되돌아온 사람’이란 사문이 자신의 결과를 현상 세계에 펼치는 실천[行]과 상응한다. ‘되돌아오지도 떠나지도 않는다’는 것은 과(果)와 행(行)으로 하나의 수행자[沙門]를 완성하는 것이니 이류(異類)를 가리킨다.
가을 매미가 고목나무에 붙어 ~ 돌아보지 않는다:담담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일이며 허망하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갈대꽃이 불 속에서 피어나다:무차별로부터 차별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봄을 맞이했으나 가을과 같다:생(生)하는 것 그대로 생함이 없는 것[無生]이라는 뜻이다.
돌양이 돌호랑이와 마주치고 ~ 할 일 없이 쉰다:되돌아오는 것이나 향하여 떠나는 것이나 하나하나가 모두 생함이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向去底人者, 共功時也. 却來底人者, 功功時也. 又向去底人, 沙門果也. 却來底人, 沙門行也. 不來不去者, 
果行成一沙門異類也. 寒蟬抱枯木云云者, 枯淡寂滅, 動誕不得也. 蘆花火裏秀者, 從無差別起差別也. 逢春恰似秋者, 
生則無生也. 石羊逢石虎云云者, 却來向去, 一一是無生也.
2) 조동종(曹洞宗)의 공훈오위(功勳五位)중 네 번째 지위. 본래면목을 철저히 깨친 다음 그 공을 함께 
   공유한다는 뜻이다. 곧 색(色)을 벗어난 경계에서 다시 색의 차별된 경계로 내려와 깨달은 공(功)을 
   펼치는 지위를 말한다. 무차별과 동시에 차별의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다. “‘공공이란 무엇인가?’
   ‘색(色)을 얻을 수 없다.’ 또 말한다. ‘흰가루로 얼굴에 분칠을 해도 종적을 숨기기 어려우니 장안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다.’”(『洞山語錄』大47 p.510b10. 云, ‘如何是共功?’ 師曰, ‘不得色.’ 又曰, 
   ‘素粉難沈跡, 長安不久居.’) 공(共)이란 모든 차별된 색이 함께 전개되는 것을 말하고, 색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공위의 무차별로는 제법의 실상이 감추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장안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라는 것도 무차별에 머물러 집착하지 않고 차별의 세계로 벗어남을 가리킨다. “중생과 부처는 
   서로 침범하지 않으니, 산은 높을 뿐이고 물은 깊을 뿐이라네. 천차만별의 분명한 현상들이여!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들이 신선하구나.<공공(共功)에 대한 게송>”(『洞山語錄』「功勳五位頌」 
   大47 p.516a15. 衆生諸佛不相侵, 山自高兮水自深. 萬別千差明底事! 鷓鴣啼處百花新.<共功>)
3) 조동종(曹洞宗)의 공훈오위(功勳五位)중 다섯 번째 지위. 모든 차별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으므로 
   차별된 색이 개별적 모습을 가지지 않는다. 더 이상의 수행이 필요 없는 무공용(無功用)의 경지로서 
   해탈과 다르지 않다. “‘공공이란 무엇인가?’ ‘함께 나누지 않는다.’ 또 말한다. ‘하나로 섞이어 숨길 
   곳이 없으니, 이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洞山語錄』 大47 p.510b11. 云, ‘如何是功功?’ 師曰, 
   ‘不共.’ 又曰,‘混然無諱處, 此外更何求!’);“머리에 뿔이 생기자마자 벌써 아무도 대적하지 못하는데, 
   분별하며 부처를 구하려 하니 대단히 부끄럽구나. 아득하고 아득한 공겁의 경계 아무도 모르니, 
   남쪽으로 53선지식을 찾아 돌아다니려 하는구나.<공공(功功)에 대한 게송>”(『洞山語錄』
   「功勳五位頌」大47 p.516a17. 頭角纔生已不堪, 擬心求佛好羞慚. 迢迢空劫無人識, 肯向南詢五十三.
   <功功>)

낭야혜각(瑯 慧覺)의 염

“옛사람은 비록 활을 쏘아 큰 기러기를 맞힐 줄은 알았지만, 나무 주위를 빙빙 도는 원숭이를 쏘아 맞힐 줄은 몰랐다."4)
瑯琊覺拈, “古人, 雖解箭穿鴻雁, 要且, 不解遶樹射猿.”
4) 전설적인 활쏘기의 달인 감승(甘蠅)의 설화 또는 백발백중의 명사수 양유기(養由基)의 고사에 따른다.
   『太平廣記』권350에『列子』의 대의를 인용하여 이렇게 전한다. “비위(飛衛)는 감승에게서 활쏘기를 
   배웠는데 모든 방법을 다 잘 터득했지만 날아오는 화살을 무는 비법은 배우지 못했다. 비위가 몰래 
   화살을 장전하여 감승을 쏘았으나 감승은 그 화살을 입에 물어잡고 비위를 향해 쏘았다.비위가 나무를 
   빙글빙글 돌면서 달아났지만 화살도 나무를 돌면서 날아갔다.”(飛衛學射於甘蠅, 諸法幷善, 唯嚙法不敎. 
   衛密將矢以射蠅, 蠅囓得鏃矢射衛. 衛遶樹而走, 矢亦遶樹而射.);“양유기가 활시위를 당기자마자 
   원숭이는 나무를 끌어안고 울었고, 화살이 발사되었을 때 원숭이가 나무를 빙글빙글 돌면서 피했지만 
   그 화살 또한 나무를 돌면서 따라가 원숭이를 맞혀 죽였다.”(『碧巖錄』69則「頌 評唱」 大48p.199a20. 
   由基方彎弓, 猿乃抱樹悲號, 至箭發時, 猿遶樹避之, 其箭亦遶樹中殺.)『韓非子』등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설화]

활을 쏘아 큰 기러기를 맞히다:무수하게 많은 단계도 하나의 근본으로 꿴다5)는 뜻이다.
나무 주위를 빙빙 도는 원숭이를 쏘아 맞히다:구절 하나하나에서 모두 신령한 경지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瑯琊:箭穿鴻雁者, 許多階級, 一以貫之也. 遶樹射猿者, 句句入神也.
5) 일이관지(一以貫之).『論語』에 나오는 말. “공자는 ‘증삼(曾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 모두 꿰뚫었다’라 
   하였고, 또한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도란 만법을 
   관통하여 끊어짐도 소멸함도 없는 것이다. 끊어짐도 소멸함도 없음을 알았으므로 그것에 맡겨 두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한 것이다.”(『眞覺語錄』「答崔參政狀」韓6 p.47b1. 孔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又曰, ‘朝聞道, 夕死可矣.’ 所言道者, 乃貫通萬法, 無斷無滅者也. 旣知無斷無滅故,
   任之曰,‘夕死可矣.’)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소참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모름지기 이와 같이 무심하게 상응하고 근본적인 도리[理]와 구체적인 현상[事]이 통하여 서로 오고 가는 데 걸림이 없어야 하며, 언어로 이르지 못하는 경지와 시비 분별로 미치지 못하는 경지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진리를 나타내는 모든 법수(法數)와 구절도 진리를 나타내는 법수와 구절이 아니니, 그것이 나의 신령한 깨달음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6)라고 한 것이다. 말해 보라! 어떻게 해야 이와 같이 진리와 하나로 상응할 수 있겠는가? 말에 현묘한 도리를 두르고 있더라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없으며, 입으로 말하더라도 진리 그대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안녕히.” 
天童覺, 小參, 擧此話云, “是須恁麽恰恰相應, 理事貫通, 往來無碍, 始得, 更須知有言語不到處, 是非不及處. 所以道,
‘一切數句非數句, 與吾靈覺何交涉?’ 且道! 作麽生得如此相應去? 語帶玄而無路, 舌頭談而不談. 珎重.”
6) 『證道歌』大48 p.396b11.

​[설화]

모든 법수와 구절도 ~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종전의 무수하게 많은 단계를 밟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에 현묘한 도리를 두르고 ~ 말하는 것은 아니다:무수하게 많은 단계를 마주쳐도 그 계급에 떨어지지 않는다7)는 뜻이다.
天童:一切數句云云者, 不涉從前許多階級也. 語帶玄云云者, 當許多階級, 不落階級也.
7) 불락계급(不落階級). 계급은 수행의 점차적 단계를 말한다. 이러한 단계를 한 발 한 발 밟고 올라가서 
   목적지에 이르지 않고 곧바로 궁극의 경지를 깨우치는 방법을 두고 ‘계급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말과 분별로 구성된 논리의 절차에 따르지 않고 본분을 직접 체득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 말은 6조 
   혜능(慧能)과 청원행사(靑原行思) 사이의 다음 문답에서 비롯하였다. “행사가 6조 혜능에게 물었다. 
   ‘어떻게 힘을 써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어떤 수행을 해왔는가?’ ‘성제(聖諦)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계급에 떨어졌는가?’ ‘성제도 행하지 않았거늘 떨어질 계급이 어디 있겠습니까?’ 
   6조가 그를 큰 그릇으로 여겼다.”(『景德傳燈錄』권5「靑原行思傳」大51 p.240a19. 問曰, ‘當何所務, 
   卽不落階級?’ 祖曰, ‘汝曾作什麽?’ 師曰, ‘聖諦亦不爲.’ 祖曰, ‘落何階級?’ 曰, ‘聖諦尙不爲, 何階級之有?’ 
   祖深器之.);“‘어떻게 운신하면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남극성은 일곱이요, 북극성은 여덟이다.’”
   (『雲門廣錄』권상 古尊宿語錄15 卍118 p.337a15. 問, ‘如何轉動, 卽得不落階級? ’師云, ‘南斗七北斗八.’)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염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자기 자신에게 써먹는 데만 맞을 뿐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부처의 경계로 들어가는 방법으로는 허용되어도 마구니의 소굴로 들어가는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누군가 나에게 ‘저편을 향하여 떠난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었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이편으로 되돌아 온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밝은 해가 수미산을 돈다’8)라고 대답할 것이고, ‘되돌아오지도 떠나지도 않는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급하게 흐르는 여울을 타니 만인이 본다’라고 할 것이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시험 삼아 분별해 보라.”   
育王諶拈, “恁麽說話, 只可爲己, 未可爲人;只可入佛, 未可入魔. 或問盧山, 如何是向去底人? 紅霞穿碧海, 
如何是却來底人? 白日遶須彌, 如何是不來不去底人? 急流灘上萬人看. 靈利底, 試請辨看.”
8) 이 구절은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었다’라는 앞의 구절과 함께 운문문언(雲門文偃)이 쓴 말이다. 
   “대천상량(종사가 본분을 들어주고 학인은 언어에 의지하지 않고 그것을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호관계):
   만나도 눈썹 한 번 찡긋하지도 않고서, 그대는 동쪽을 보고 나는 서쪽을 보노라.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었고, 밝은 해가 수미산을 도는구나.”(『雲門廣錄』 권하 大47 p.576c16. 擡薦商量:相見不揚眉, 
   君東我亦西. 紅霞穿碧海, 白日繞須彌.)

[설화]

​단지 자기 자신에게 ~ 마구니의 소굴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단지 자기의 일을 밝힐 수 있을 뿐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수단은 없다는 뜻이다.
붉은 노을이 ~ 수미산을 돈다:돌아가면서 하나씩 대답한 것이다.
급하게 흐르는 여울:저편으로 떠난다는 뜻이다.
만인이 본다:만인이 와서 본다는 뜻이므로 떠나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 그대로가 떠나고 오는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育王:只可爲己至入魔者, 只是明得自己邊事, 無爲底人9)手段也. 紅霞云云須彌者, 回互答得也. 急流灘, 則去也. 
萬人看, 則萬人來看, 卽不去不來卽去來也.
9) ‘底人’은‘人底’의 잘못.

​자항요박(慈航了朴)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자세히 알겠는가? 공(功)을 돌려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니 미묘함이 본체 앞에 있고, 본래의 자리를 돌려서 공을 발휘하러 나가니 돌아오는 길이 또한 미묘하다. 텅 비고 깊은 근본을 해치지 않으면서 되돌아오고 떠나는 것이 자유로우니 이것이 바로 동안의 경지가 아님이 없다. 문제는 여전히 그가 파놓은 함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저편을 향하여 떠난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옥말[玉馬]이 관문을 지나서 발굽에서 가시를 뽑아낸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이편으로 되돌아온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금털의 사자가 땅에 웅크리고 꼬리를 급하게 흔든다’라고 할 것이고, ‘되돌아오지도 떠나지도 않는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찰간 꼭대기에 앉아 있는 쇠로 만든 용이다’라고 말해 줄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나의 안목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 보라.”   
慈航朴, 上堂, 擧此話云, “還相委悉麽? 轉功就位, 妙在體前, 轉位就功, 廻途復妙. 虛玄不犯, 來去自由, 卽不無同安. 
要且, 脫他窠臼未得. 或有人問天童, ‘如何是向去底人?’ 卽道, ‘玉馬度關蹄撥刺.’ ‘如何是却來底人?’ ‘金毛踞地尾吒沙.’ 
‘如何是不來不去底人?’ 却向道, ‘刹竿頭上鐵龍兒.’ 行脚人試驗, 山僧眼目在什麽處.”

​[설화]

옥말, 금털의 사자, 찰간 등이라 운운한 말은 모든 지위에서 그가 파놓은 함정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慈航云云, 玉馬云云, 金毛云云, 刹竿云云者, 當一切位, 脫他窠臼也.

​송원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근본적 이치로 들어가는 심오한 말로써 기틀에 따라 중생에 응한 것이 저 동안스님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납승 문하의 관점에 따르면 그도 잘못을 벗어나지 못했다. 왜 그런가? 단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달 줄만 알았지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며 키를 잡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야보10)에게 ‘저편을 향하여 떠난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눈동자가 튀어나왔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되돌아온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하늘과 땅이 모두 드넓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되돌아오지도 떠나지도 않는 사람이란 어떤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밝은 달이 깊은 계곡을 비추고, 차가운 물결은 한 밤의 다듬잇돌과 함께 울린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그대들이 씹어서 맛볼 수 없으니11) 모름지기 깨달아야 한다.”12)  
松源, 上堂, 擧此話云, “入理深談, 隨機應物, 還他同安老人. 若據衲僧門下, 未免漏逗. 何故? 只解順風張帆, 不能逆風把柁.

或有人問冶父, ‘如何是向去底人?’ 對云, ‘眼睛突出.’ ‘如何是却來底人?’ 對云, ‘天闊地闊.’ ‘如何是不來不去底人?’ 對云, 
‘明月照幽谷, 寒濤響夜砧.’ 此語無你咬嚼處, 直須是悟, 始得.”
10) 冶父.송원의 산호(山號). 야보산(冶父山)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호이다.
11) 각 구절에 대한 모든 대답이 곰곰이 생각하여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모두 분별이 떨어져 나간 다음에 
    뚫을 수 있는 관문이라는 말이다.
12) 이 송원의 상당에 대한 고림청무의 다음과 같은 평석도 전한다. “존경하는 동안은 밥상째 먹을 것을 
    밀어내어 주었으나, 옷소매가 팔에 비하여 짧은 격이어서 조동종의 종풍을 적지 않게 매몰시킨 것을 
    어찌하랴! 송원화상은 비록 못을 베어버리고 쇠를 자른 경계에서 칼날을 슬쩍 드러내었지만, 점검해 보면 
    말에 이끌려 이해를 일으키는 잘못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저편을 향하여 떠난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빈틈없이 쌓고 어김없이 맞아떨어진다’라고 할 것이고, ‘이편으로 되돌아온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입가가 축 늘어진 채 아무 말도 못한다’라고 할 것이며, 
    ‘되돌아오지도 떠나지도 않는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관세음보살이 호떡을 사니 
    금강신장이 웃다가 뒤집어졌다’라고 대답할 것이다.”(『古林淸茂語錄』권2 卍123 p.437a17. 老同安, 
    和盤托出, 爭奈袖短臂長, 埋沒它洞上宗風不少! 松源和尚, 雖則向斬釘截鐵處, 略露鋒鋩, 檢點將來, 
    未免隨語生解. 有問澹湖, ‘如何是向去底人?’ ‘築著磕著.’ ‘如何是却來底人?’ ‘口似匾檐.’ 
    ‘如何是不來不去底人?’ ‘觀音買胡餅, 笑倒金剛神.’)

[설화]

​근본적 이치로 들어가는 심오한 말:‘돌양이 돌호랑이와 마주치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 일 없이 쉰다’라는 구절에 해당한다.
기틀에 따라 중생에 응한 것:앞의 두 가지 답변을 가리킨다. 
눈동자가 튀어나왔다’, ‘하늘과 땅이 모두 드넓다’, ‘밝은 달이 깊은 계곡을 비추고~’라고 한 등등의 말은 상대가 실토한 말에 따라 판단해 주는 방식이다. 세 가지 문제를 마주하여 하나하나 핵심에 어김없이 맞아 떨어지지만, 씹어서 맛볼 수 없으니 이 어찌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며 키를 잡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밝은 달이 깊은 계곡을 비춘다:편위(偏位)에서 정위(正位)에 이르는 것이다.
차가운 물결은 한밤의 다듬잇돌과 함께 울린다:정위로부터 편위로 돌아오는 것이다. 침(砧)이라는 글자는 석(石)과 같다.
松源:入理深談者, 石羊逢石虎云云也. 隨機應物者, 前之二答也. 眼睛突出, 天闊地闊, 明月照幽谷云云者, 據款結案也.
當三處一一的的, 無咬嚼處, 豈不是 風把柁也. 明月照幽谷, 則從偏至正也. 寒濤響夜砧, 則從正來偏也. 砧者, 石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