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디가 니까야

D3. 암밧타 경(Ambhattha sutta)

실론섬 2014. 3. 12. 01:30

서언

 

25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 [지방]에서 유행(遊 行)하시다가 잇차낭깔라라는 꼬살라들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욱깟타에 정착해 있었는데, 그곳은 사람들로 붐비고 풀, 나무, 곡식이 풍부하였으며,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하사품이자 거룩한 마음의 표시로 그에게 영지(領地)로 준 곳이었다.

 

*꼬살라(Kosala)는 세존 재세 시에 인도에 있었던 16개국 가운데 하나이다. 16국은 점점 서로 병합되어 나중에는 마가다(Magadha)와 꼬살라 두 나라로 통일이 된다. 와라나시(Varanasi, 까시)와 세존의 고향인 까삘라왓투도 꼬살라로 병합이 된다. 세존 재세 시에는 빠세나디(Pasenadi) 왕이 꼬살라를 통치하였고, 그의 아들 위두다바(Vidudabha)가 계승하였으며, 수도는 사왓티(Savatthi)였다. 세존께서는 말년의 24년간을 이 사왓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무셨다.    

*주석서는 잇차낭깔라(Icchānaṅkala 혹은 Icchānaṅgala)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Ijjhānañgala라고 읽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맛지마니까야』「와셋타 경」(Vaseṭṭha Sutta, M98)등에 의하면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야 바라문과 다른 아주 잘 알려진 바라문의 큰 가문 출신들이 잇차낭깔라에 살고 있었으며 젊은 바라문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도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이 두 젊은 바라문은 본서 「삼명경」(D13)과 본서 제3권「세기경」(D27)에서도 세존께 질문을 드리는 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당시에 유명했던 바라문 마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뽁카라사띠 오빠만냐 수바가와니까(Pokkharasati Opamanna Subhagavanika가 전체 이름이다.(MA.ii.200) 오빠만냐는 족성의 이름이고, 수바가와니까는 수바가 숲에 사는 자라는 뜻으로, 사는 지역을 뜻한다. 세존 당시에 유명했던 바라문이며 다른 경들에도 언급이 되고 있다.  
*욱깟타(Ukkattha)는 주석서에 의하면 이 도시는 정해진 좋은 날에 공사를 완료하기 위해서 밤에도 횃불을 켜고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MA.i.9;AA.ii.504) 
*빠세나디는 꼬살라국의 왕이다. 경전에서는 항상 raja Pasenadikosala로 나타난다. 세존과 일찍부터 교분을 맺었으며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세존의 재가신도였다. 그에게는 브라흐마닷따(Brahamadatta)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세존의 아래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며(ThagA.i.460) 그의 딸 수마나(Sumana)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agA.22;A.iii.32) 그리고 젯타(Jeta) 숲을 기증한 왕자도 그의 아들이었다.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24년간이나 머무실 정도로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과는 인연이 깊었다. 「상윳따 니까야」 제3권 「꼬살라 상윳따」는 모두 빠세나디 왕과 관계된 가르침이다.  
그의 아내는 말리까(Mallika) 왕비였는데 세존께 큰 믿음을 가진 청신녀였다.  

 

pokkharasativatthu (뽁카라사띠 바라문)

 

255.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사문 꼬따마는 사캬의 후예인데 사캬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여 500명 정도의 많은 승가와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잇차낭깔라에 도착하여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존자들이여(존자여)'라고 옮긴 원어는 bho 이다. 이것은 2인칭 대명사인 bhavant의 호격이다. 주로 비슷한 연배나 비숫한 위치이거나 자기보다 낮은 사람을 칭하는 호격이다.  
*'사꺄의 후예'로 옮긴 원어는 sakyaputta인데 사꺄(sakya)의 아들(putta)이란 의미이다. 사꺄는 중국에서 석가(釋迦)로 음역하였다. 부처님은 사꺄 족의 성자라 하여 사꺄무니(Sakyamuni)로도 불린다. 중국에서는 석가모니(釋迦牟尼)라 음역하였다.   

 

256. 그 당시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젊은 바라문 암밧타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베다를 공부하는 자였고, 만뜨라를 호지 하였으며, 어휘와 제사와 음운과 어원에 이어 역사를 다섯 번째로 하는 삼베다에 통달하였고, 언어와 문법에 능숙하였으며 자연의 이치와 대인상에 능통하였다. 그는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한 자신의 스승에 의해서 '내가 아는 것을 그대도 알고, 그대가 아는 것을 나도 안다'라고 인정받았다.

 

*대인상 : 독특한 신체적 특징이나 징표로써 보통 사람들과 구분된다. 그러한 인물들은 우주의 지배자 즉 전륜성왕(carkravartin)이나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 된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32상과 80종호(80種好)라고 하며 이 둘을 합쳐서 상호(相好)라고 한다. 상(相(은) 32가지 커다란 신체적 특징을 호(好)는 80가지 미세한 특징을 가리킨다. 32가지 대인상은「삼십이상경」(三十二相經, D30)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젊은 바라문'으로 옮긴 manava는 청년, 어린이를 뜻하며 특히 초기경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바라문 가문 출신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고 스승 밑에서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을 칭한다. 바라문 학도 또는 바라문 수행승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당시 인도의 전통 바라문 지식계급의 청년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다른 경전들에서도 젊은 바라문들이 본경에서처럼 베다와 바라문의 권위에 대해서 세존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인도의 베다 문헌은 고대로부터 삼히따(Samhita), 브라흐마나(Brahmana), 아란냐까(Aranyaka), 우빠니샤드(Upanisad)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삼히따(베다본집)에는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 아타르와베다가 있다. 이 베다본집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학파와 가문들로 구성된 것이 인도의 바라문들이다. 초기경들에서는 이 가운데 아타르와베다를 제와한 앞의 세 베다만을 삼베다(tevijja)라 인정하고 있다.   

 

257.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불러서 말하였다.

"얘야 암밧타여, 사문 꼬따마는 사까의 후예인데 사까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여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잇차낭깔라에 도착하여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물러 계신다고 한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러니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얘야 암밧타여, 너는 사문 고따마에게 가거라. 가서는 사문 고따마가 소문처럼 그러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로) 그런 분인지 그런 분이 아닌지 사문 고따마 존자에 대해서 알아보아라. 그러면 너를 통해서 우리는 그분 고따마 존자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258. "존자시여, 그분 고따마 존자가 소문처럼 그러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 그런 분인지 그런 분이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아보면 되겠습니까?" 

"얘야 암밧타여, 우리의 만트라들에는 서른두 가지 대인상들이 전해 내려온다. 그런 대인상을 갖춘 분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열려 있고 다른 것은 없다. 그가 만일 재가에 머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그는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요, 사방을 정복한 승리자가 되어 나라를 안정되게 하고 일곱 가지 보배(七寶)를 두루 갖추게 된다. 그에게는 이런 일곱 가지 보배들이 있으니, 그것은 윤보(輪寶), 상보(象寶), 마보(馬輔), 보배보(寶賠寶), 여인보(女人寶), 장자보(長子寶), 그리고 주장신보(主臧臣寶)가 일곱 번째이다. 천명이 넘는 그의 아들들은 용감하고 준수하며 적군을 정복한다. 그는 바다를 끝으로 하는 전 대지를 징벌과 무력을 쓰지 않고 법으로써 승리하여 통치한다. 그런데 만일 그가 집을 나와 출가하면  아라한·정등각이 되어 세상의 장막을 벗겨버릴 것이다. 얘야 암밧타여, 나는 이 만트라들을 너에게 전해 줄 것이다. 너는 이 만트라로 그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원어는 raja-cakkavatti이다. cakka(바퀴를)-vatti(굴리는) 왕(raja)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래서 전체를 중국에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옮겼다.   
*"법에 준해서 행한다고 해서 법다운 자이다. 바른 방법으로 행한다는 뜻이다. 법에 의해서 왕국을 얻어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법왕이라 한다. 혹은 남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을 행하기 때문에 법다운 자라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법을 행하기 때문에 법왕이라 한다."(DA.i.249)  
*"여기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사견, 무명, 악행이라는 일곱 가지 장막으로 덮인 오염원(kilesa)의 암흑을 가진 세상에서 그 장막을 벗겨 버리고 모든 곳에 광명이 생기게 하여 머문다고 해서 장막을 벗겨 버린다고 한다. 아라한은 예배 받아 마땅함을, 정등각은 그 [예배받아 마땅한] 원인을, 장막을 벗겨버림은 깨달은 분이 된 원인인 장막을 벗겨비림을 말한다. 혹은 벗겨버렸고 덮인 것이 없게 했다고 해서 장막을 벗겨버림이다. 즉 윤회가 없고 장막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윤회가 없기 때문에 아라한이고 장막이 없기 때문에 정등각이다."(DA.i.250)  

 

259. "알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났다. 그는 암말이 끄는 마차에 올라 많은 젊은 바라문들과 함께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노지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그 비구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존자들이여, 지금 그분 고따마 존자는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분 고따마 존자를 친견하고자 여기에 왔습니다."

  

260. 그러자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유명한 가문 출신이여 잘 알려진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제자인 암밧타 바라문이다. 세존께서 이러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과 대회를 나누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그들은 젊은 바라문 암밧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암밧타여, 저 문이 닫혀있는 처소입니다. 그러니 소리를 내지 말고 다가가서 서두르지 말고 현관에 들어간 뒤 헛기침 소리를 낸 후 빗장을 두드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 그대에게 문을 열어 드릴 것입니다." 

 

261. 그러자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문이 닫혀있는 처소로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서 서두르지 않고 현관에서 헛기침 소리를 낸 후 빗장을 두드렸다. 세존께서는 문을 열어주셨고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젊은 바라문들도 역시 안으로 들어가서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그러나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걸으면서도 앉아 계신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그리고 선 채로도 앉아계신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262. 그러자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그대는 나이가 많고 늙거나 또는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과 대화를 할 때도 걷거나 선 채로, 지금 않아 있는 나에게 하듯이 

이렇게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대화를 하는가?"

 

pathamaibbhavado (첫 번째 비천하다는 말)

 

263.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서 있는 바라문과는 서서 대화를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앉아 있는 바라문과는 앉아서 대화를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누워있는 바라문과는 누워서 대화를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나 머리깎은 사문, 비천한 검은 피부들을 가진 자들은 우리 조상의 발에서 태어난 자들 입니다. 내가 그들과 대화를 할 때는 지금 고따마 존자와 하듯이 이렇게 합니다."

"암밧타여, 그대가 여기 온 것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목적이 있어서 왔다면 그 목적을 잘 새기고 기억하도록 하라.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아직 삶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대가 삶을 완성했다고 자만하는 것은 아직 삶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원어 bandhupādapaccā는 bandhu(친척의)-pāda)발[에서 난]-apaccā(후손들)로 분석 된다. 주석서에서는 “여기서 친척이란 범천(brahmā)을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바라문들은 그를 조상(pitamaha, 할아버지)이라 부른다.”(DA.i.254)라고 설명한다. 
『리그베다』열 번째 장(만달라)의 「뿌루샤 숙따」(Puruṣa Sūkta, 原人에 대한 찬미가)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바라문은 그(뿌루샤)의 입(mukha)이고
그의 팔(bāhu)로부터 끄샤뜨리아가 만들어졌고
그의 넓적다리(Ūru)로부터 와이샤가
발(pad)로부터 수드라가 태어났다.”(Rv.x.90:12)

 

264.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세존께서 아직 삶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시자 '사문 고따마는 나를 경멸하는구나'라고 생각하여 화가 나고 마음이 몹시 불쾌해서 세존께 거친 말을 하고 세존을 경멸하고 세존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거칩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성미가 급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포악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아주 비천하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족 들이 비천히고 비천한 출신이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고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삭까들에 대해서 첫 번째로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였다.

 

*‘삭까들’은 Sakkā(pl.)의 역어이다. 부처님의 족성(族姓)이며 우리에게 석가족(釋迦族)으로 알려진 종족과 관련되어 Sakyā, Sakka, Sākiyā의 세 가지 표현이 초기경에는 섞여서 나타난다. 초기경에서 종족과 지명은 항상 복수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도 모두 복수로 표기하였음을 밝힌다. 

 

dutiyaibbhavado (두 번째 비천하다는 말)

 

265.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암밧타여, 사꺄들이 그대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고따마 존자여, 한번은 제가 저의 스승인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어떤 일 때문에 까삘라왓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사꺄들의 집회소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꺄들과 사꺄의 소년들이 집회소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찌르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제게는 저를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제게 자리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들은 비천히고 비천한 출신이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삭까들에 대해서 두 번째로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였다.

 

tatiyaibbhavado (세 번째 비천하다는 말)

 

266.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메추리라는 새도 자기들 둥지에서는 자기들 좋을 대로 지저귀기 마련이다. 암밧타여, 까삘라왓투는 사꺄들의 보금자리이다. 암밧타가 이런 사소한 것으로 그들을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고따마 존자여, 끄샤뜨리아, 바라문, 와이샤, 수드라의 네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 네 가지 계급 가운데 끄샤뜨리아와 와이샤와 수드라의 세 계급은 완전히 바라문의 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들은 비천히고 비천한 출신이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삭까들에 대해서 세 번째로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였다.

 

dasiputtavado (여자 노비의 아들)

 

267.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이 드셨다. 

'이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삭까들을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니 아주 지나치구나. 나는 이 자의 족성을 물어봐야겠다.'라고.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그대의 족성은 어떻게 되는가?"

"고따마 존자여, 나는 깐하야나(깐하의 후예)입니다." 

"암밧타여, 그대의 조상들의 이름과 성을 기억하건데 사꺄들은 주인이고 그대는 사꺄들의 여자 노비의 아들이다. 암밧타여, 사꺄들은 옥까까 왕을 선조로 여긴다.  

 

*깐하(Kaṇha)는 산스끄리뜨로 끄리슈나(Kṛṣṇa)이다. 본경 §1.23에서 깐하(끄리슈나)는 훌륭한 선인(仙人)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힌두의 끄리슈나 신앙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끄리슈나 신앙도 북인도에서부터 비롯되어 인도의 대서사시『마하바라따』(Mahābhārata) 안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끄리슈나는 후대에 위슈누의 8번째 화신으로 힌두신화에 정착이 되었다.

*원어는 Okkāka이다. 산스끄리뜨 문헌에 나타나는 이름은 익슈와꾸(lkṣvāku)로 『뿌라나』(Purāṇa) 문헌에서 최초의 인간인 마누(Manu)의 열 명의 아들 중 첫 번째 아들로 등장한다. 그러나 『마하바리따』에 의하면 익슈와꾸는 마구의5대째 후손이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빠알리어 문헌에 등장하느 옥까까 야야기가 산스끄리뜨 『뿌라나』의 익슈와꾸는 이러한 빠알리 전설을 『뿌라나』로 의도적으로 편인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Thomas 6)아무튼 그 당시 사꺄족이 믿고 있던 조상에 대한 전설로 북인도에서는 잘 알려진 전설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익슈와꾸 신화를 인도의 여러 문헌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익슈와꾸(옥까까)를 선조로 하는 가문 혹은 씨족은 인도신화에서 최초의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마누(Manu)의 적통(嫡統)이라는 것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암밧타여, 엣날에 옥까까 왕에게는 사람스럽고 마음에 드는 새로운 왕비가 있었는데 그녀가 낳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욱까무까, 까라깐두, 핫티니까, 시미뿌라라는 (전 왕비가 낳은) 손위의 왕자들을 왕국에서 추방하였다. 그들은 왕국에서 추방되어 히말라야 산 기슭의 호수가에 있는 큰 사까 나무 숲속에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들은 혈통이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누이들과 함께 살았다.

 

암밧타여, 그러던 어느 날 옥까까 왕은 대신들과 측근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여보게들, 지금 왕자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왕이시여, 히말라야 산 기슭의 호수가에 있는 큰 사꺄 나무 숲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혈통이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암밧타여, 그러자 옥까까 왕은 감흥어를 읊었다.
'오, 참으로 왕자들은 사꺄들이로구나. 오, 참으로 왕자들은 최상의 사꺄들이로구나.'라고.
암밧타여, 그후로 그들은 사꺄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사꺄들의 시조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옥까까 왕은 다섯 명의 왕비가 있었으며 첫 번째 왕비와의 사이에서 본경에서 언급되는 네 왕자와 다섯 공주를 낳았다. 첫 번째 왕비가 죽자 또 다른 왕비를 맞아서 첫 번째 왕비[正妃]로 삼았는데 그에게서는 잔뚜(Jantu)라는 왕자를 낳았으며 이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이전의 왕비에서 난 왕자들을 추방하게 하였다고 한다.(DA.i.258f) 
*사까(sāka) 나무는 학명으로는 Tectona grandis인데 요즘 최고의 목재로 인기 있는 티크(Teak) 나무를 말한다.

그런데 암밧타여, 옥까까 왕에게는 다사라는 하녀가 있었다. 그녀는 깐하(검둥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깐하는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저를 씻어 주세요, 어머니 저를 목욕시켜 주세요. 어머니, 이 더러움으로부터 저를 벗어나게 해주세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께 이익이 될 것입니다.'라고. 암밧타여, 요즘 사람들이 유령을 두고 유령이라고 부르듯이 그때 사람들은 유령을 두고 깐하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였다. 깐하가 태어 났다. 유령이 태어났다.'라고. 암밧타여, 그때부터 깐하야나(깐하의 후예)들은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바로 깐하야나의 시조이다. 이처럼, 암밧타여, 그대의 조상들의 이름과 성을 기억하건데 사꺄들은 고귀한 후손이고 그대는 사까들의 여자 노비의 아들이다."

  

268.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문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를 꾸짖지 마십시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좋은 가문의 아들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많이 배웠습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선한 말씨를 가졌습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현자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269.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 젊은 바라문들이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나쁜 가문의 아들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적게 배웠습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말을 제대로 못합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우둔합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가만히 있게 하고, 그대들이 나와 더불어 이 담론에 참여하도록 하라. 그러나 만일 그대들이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좋은 가문의 아들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많이 배웠습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선한 말씨를 가졌습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현자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들은 가만히 있고,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나와 더불어 이 담론에 참여하게 하라." 

 

"고따마 존자여,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좋은 가문의 아들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많이 배웠습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선한 말씨를 가졌습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현자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고따마 존자와 더불어 이 담론에 참여할 것입니다." 

  

270. 그러자 세존께서는 압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이것은 그대에게 주는 법에 입각한 질문이다. 비록 그대가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설명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설명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회피한다든지, 침묵하고 있다든지, 도망간다든지 하면 그대의 머리는 바로 이 자리에서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암밧타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깐하야나(깐햐의 후예)들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누가 깐하야나의 선조인지에 대해서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침묵하였다. 

 

*'법에 입각한 질문'의 원어는 sahadhammika이다. 주석서에서는 "원인(hetu)과 이유(karana)를 가진 것"(DA.i.263)이라고 설명하며 복주서에서는 여기서 법(dhamma)은 법무애해처럼 이유를 뜻한다고 덧붙이고 있다.(DAT.i.294-295) 즉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질문이 아니라 암밧타가 사꺄들을 근거 없이 바난하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충분한 이유를 갖추어서 던지는 질문이라는 의미이다. 법무애해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IV.21 이하를 참조할 것.   

*예를 들면 갑은 a라는 주장을 하고 을은 b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 각자의 주장만 계속 말한다면 대화가 이어질 수 없다. 그럴 경우 서로 동의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상호 인정하는 결론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때 서로 동의하는 지접이 공유(共有) 법이다. 마치 6은 짝수이고 9는 홀수이지만 3이라는 공통되는 약수가 있는 것과 같다.  

 

두 번째로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깐하야나(깐햐의 후예)들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누가 깐하야나의 선조인지에 대해서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가"

 두 번째도 역시 암밧타 바라문 학도는 침묵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학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이제 설명을 하여라. 지금은 그대가 묵묵부답할 때가 아니다. 암밧타여, 여래가 세 번 법다운 질문을 했는데 설명을 하지 않으면 그대의 머리는 바로 이 자리에서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271. 그때에 금강수(金剛手) 약카가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철 곤봉을 들고 '만일 이 젊은 바라문 암밧타가 세존께서 세번 째 법에 입각한 질문을 했는데도 설명을 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그의 머리를 일곱 조각 내어 버리리라.'라고 하면서 젊은 바라문 암밧타의 바로 위의 허공에 나타났다. 세존께서도 금강수 약카를 보셨고 젊은 바라문 암밧타도 그를 보았다. 

 

*'금강수'로 옮긴 원어인 Vajirapani는 '그의 손에 금강저를 가진(vajiram panimhi assa ti)'이란 의미이며 바후워르히 합성어이다. 주석서에서는 이 금강수 약카는 신들이 왕 삭까(Sakko devaraja, 인드라, 제석)라고 설명하고 있다.(DA.i.264)  

 

272. 그러자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두렵고 털이 곤두서서 세존께 보호처를 찾고 세존께 의지처를 찾으면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지금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암밧타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깐하야나(깐햐의 후예)들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누가 깐하야나의 선조인지에 대해서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저는 들었습니다. 깐하야나는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분이 바로 깐하야나의 시조입니다."

 

ambatthavamsakatha (암밧타의 가계)

 

273. 이렇게 대답하자 젊은 바라문들에게 큰 소동이 일어나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되었다.

"오, 참으로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천한 태생이로구나. 오, 참으로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아니구나. 오, 참으로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사꺄들의 여자 노비의 아들이로구나. 사꺄들은 젊은 바라문 암밧타의 주인이로구나. 참으로 우리는 법답게 말하는 사문 고따마를 업신여기려고 했구나."

 

274.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셨다. 

'이 젊은 바라문들은 젊은 바라문 암밧타를 여자 노비의 아들이라는 말로 마음을 불편하게 하니 아주 지나치구나. 그러니 이제 나는 그가 여기서 벗어나게 해야겠다.'라고. 

세존께서는 그 젊은 바라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은 바라문들은 젊은 바라문 암밧타를 여자 노비의 아들이라는 말로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 깐하는 위대한 선인(仙人)이었다. 그는 남쪽 지방으로 가서 바라문의 만뜨라를 공부한 후에 옥까까 왕에게로 와서 그의 딸 맛다루삐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옥까까 왕은 "이보게, 이 자는 여자 노비의 아들이 되어가지고는 내 딸 맛다루삐와 결혼할려고 하는구나.'라고 화가 나고 마음이 몹시 언짢아서 그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는 그 활을 쏠 수도 없었고 거둘 수도 없었다. 

 

*'선인'으로 옮긴 원어 isi이다.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지혜로 윤회의 피안으로 달려가는 자(rsati jnanesa samsaraparam)"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불교 주석서들에서는 "제어와 절제 등을 찾는다는 뜻에서(esana-tthena) 선인이라 한다"(PvA.98)라거나 '禪 등의 공덕(guna)을 찾는다는 뜻에서 선인이라 한다"(PsA.163)라거나 '무학(asekkha)들의 계온 등을 찾는다는 뜻에서 선인이라 한다."(PvA.265)등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 보듯이 isi를 esana(구함,찾음)등으로 설명한다. 

 

젊은 바라문들이여, 그러자 대신들과 측근들이 깐하 선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만일 왕이 화살을 아래로 향하여 쏘면 왕은 안전하겠지만 그의 전 국토에는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만일 왕이 화살을 위로 향하여 쏘면 왕도 안전하고 영토도 안전하겠지만 칠 년 동안 가뭄이 들것입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만일 왕이 화살을 왕자에게 겨누면  왕자는 무탈하고 안전할 것이고 왕도 안전하고 영토에도 비가 내릴 것입니다.'라고. 

젊은 바라문들이여, 그러자 대신들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옥까까 왕은 왕자에게 화살을 겨누십시오. 왕자는 전적으로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젊은 바라문들이여, 그러자 옥까까 왕은 왕자에게 화살을 겨누었고 왕자는 전적으로 안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옥까까 왕은 천벌을 받을까 두렵고 겁이 나서 그의 딸 맛다루삐와 깐하 선인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젊은 바라문들이여, 그대들은 젊은 바라문 암밧타에게 여자 노비의 아들이라는 말로 지나치게 비난하지 말라. 깐하는 위대한 선인이었다."

 

*‘선인(仙人)’으로 옮긴 원어 isi(Sk. ṛṣi)는 √rṣ(to rush, to push)에서 파생된 단어로‘질리를 찾아서 다니는 자’라는 의미에서 서양에서는 seer라고 옮긴다.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지혜로 윤회의 피안으로 달려가는 자(ṛṣati jñānena sarṅsārapāram)” (Uṇ. iv.119에 대한 주석)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불교 주석서들에서는 “제어와 절제 등을 찾는다는 뜻에서(esana-tthena) 선인이라 한다.”(PvA.98)라거나 “禪 등의 공덕(guṇa)을 찾는다는 뜻에서 선인이라 한다.”(PvA.163)라거나 “무학(asekkha)들의 계온(戒蘊) 등을 찾는다는 뜻에서 선인이라 한다.”(PvA.265)라는 등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 보듯이 isi를 esana로 설명한다. esana는 ā(앞으로)+√iṣ(to seek, to desire)에서 파생된 명사로 ‘구함, 찾음’등을 뜻한다. 

 

khattiyasetthabhavo(끄샤뜨리야가 으뜸)

 

275. 그런 다음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끄샤뜨리아 청년과 바라문 처녀가 결혼을 할 것이다. 그들이 함께 살아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끄샤뜨리아 청년과 바라문 아내 사이에서 난 아들은 바라문들 사이에서 머물 수 있는 거처나 마실 물을 얻을 수 있는가?"

"얻을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풉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트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 줍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과 결혼을 할 수 있는가, 결혼을 할 수 없는가?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러면 그는 끄샤뜨리아의 관정식을 통해서 관정(灌頂.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는 어머니 쪽을 (순수하게) 깆추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조령제(祖靈祭)’로 옮긴 원어는 saddha인데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옮기는 saddhā와 같이 ṣrad+√dhā(to put)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주석서에서는 “죽은 사람을 지목해서 음식을 만드는(matake uddissa katabhatte)”(DA.i.267)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음식을 뜻한다. 그래서 조령제라고 옮겼다. 
*탈리빠까(thālipāka)를 주석서에서는 결혼식(maṅgala)이나 축제 등에서 준비하는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Ibid)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서는 “존경하는 사람에게 드리기에 적당한 음식(bhatta)”(AA.ii.266)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제사’로 옮긴 yañña는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가 아니다. 신들에게 올리는 큰 공공제사를 말한다. 

*'관정식'은 abhiseka를 옮긴 것이다.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뜻한다. 물을 신성시 여기는 인도에서 왕의 즉위식이나 태자의 책봉 때 거행하는 의식이다.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바라문 청년과 끄샤뜨리아 처녀가 결혼을 할 것이다. 그들이 함께 살아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끄샤뜨리아 청년과 바라문 아내 사이에서 난 아들은 바라문들 사이에서 머물 수 있는 거처나 마실 물을 얻을 수 있는가?

"얻을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풉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뜨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줍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과 결혼을 할 수 있는가, 결혼을 할 수 없는가?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러면 그는 끄샤뜨리아의 관정식을 통해서 관정(灌頂)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는 아버지 쪽을 (순수하게) 깆추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76. "이처럼, 암밧타여, 여인과 여인을 비교해 보고 남자와 남자를 비교해 봐도 끄샤뜨리아가 뛰어나고 바라문은 저열하다.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바라문들이 어떤 바라문을 어떤 일 때문에 머리를 깎고 재를 뒤집어 씌운 채로 나라나 도시로부터 추방한다면 그는 바라문들 사이에서 머물 수 있는 거처나 물을 얻을 수 있는가?

"얻을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트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주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과 결혼을 할 수 있는가, 결혼을 할 수 없는가?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끄샤뜨리아들이 어떤 끄샤뜨리아를 어떤 일 때문에 머리를 깎고 재를 뒤집어 씌운 채로 나라나 도시로부터 추방한다면 그는 바라문들 사이에서 머물 수 있는 거처나 물을 얻을 수 있는가?

"얻을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풉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트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줍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과 결혼을 할 수 있는가, 결혼을 할 수 없는가?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77. "이처럼, 암밧타여, 끄샤뜨리아가 머리를 깎고 재를 뒤집어 씌운 채로 나라나 도시로부터 추방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암밧타여, 끄샤뜨리아가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그런 끄샤뜨리아가 (바라문보다) 더 뛰어나고 바라문은 저열하다. 암밧타여, 사낭꾸마라 범천이 이런 게송을 읊었다.

'가문의 전통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끄샤뜨리아가 단연 으뜸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명지(明知)와 실천을 갖춘 자(명행족.明行足)가 단연 으뜸이다.'

 

*사낭꾸마라(Sanankumara) 문자적으로 "항상(sanam) 동자(kumara, 소년)인 자'라는 뜻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전생에 머리를 다섯 가닥으로 땋아 다니던 소년이었을 때(pañca-cūḷaka-kumāra-kāle) 禪을 닦아 그 선의 힘으로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고, 그래서 범천이 되어서도 동자의 모습을 하기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Ma.ii.584; DA.ii.647; cf. SA.i.171.)  
사낭꾸마라의 산스끄리뜨인 사낫꾸마라(Sanatkumāra)는 이미 고층 우빠니샤드인 『찬도갸 우빠니샤드』(Chāṇḍ ogya Upaniṣad, 7.26;2)에서 언급이 되고 있으며, 『마하바라따』(iii.185)에서도 그는 여기에 나타나는 게송과 비슷한 게송을 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본서 제2권의 「큰 모임 경」(D20)과 특히 「자나와사바 경」(Janavasabha Sutta, D18)과「마하고윈다 경」(D19)에서도 그가 등장하는데 빤짜시카 동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암밧타여, 이런 게송은 사낭꾸마라 범천이 잘 노래한 것이지 잘못 노래한 것이 아니며, 잘 설한 것이지 나쁘게 설한 것이 아니며, 의미를 구족한 것이지 의미를 구족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나도 동의한다. 암밧타여, 나도 역시 이와 같이 말한다.

'가문의 전통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끄샤뜨리아가 단연 으뜸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명지와 실천을 갖춘 자가 단연 으뜸이다.'

 

278.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그 실천(행.行)은 무엇이고, 그 명지(明-밝음)은 무엇입니까?"

"암밧타여, 위없는 명지과 실천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대는 나와 동등하다거나 그대는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라고 태어남(태생)을 주장하거나, 혈통(가문)을 주장하거나, 자부심을 주장하지 않는다. 암밧타여, 결혼시켜 데려오거나 결혼시켜 보내거나 결혼시켜 데려오고 보낼 때 '그대는 나와 동등하다거나 그대는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라고 이렇게 태어남을 주장하거나, 이렇게 혈통을 주장하거나, 이렇게 자부심을 주장한다. 암밧타여, 태어남을 주장하는 속박이나(주장하는 것에 묶이거나), 혈통을 주장하는 속박이나, 자부심을 주장하는 속박이나, 결혼시켜 데려오고 보내는 속박은 어떤 것이든 위없는 명지와 실천의 갖춤의 실현으로부터 먼 것이다. 태어남을 주장하는 속박이나, 혈통을 주장하는 속박이나, 자부심을 주장하는 속박이나, 결혼시켜 데려오고 보내는 속박을 버린 뒤에 위없는 명지와 실천의 갖춤이 실현된다."

 

*사낭꾸마라의 게송에서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명지와 실천을 갖춘 자(명행족)가 단연 으뜸이다."라고 하자 이제 암밧타는 그러면 무엇이 실천)carana,행)이고 무엇이 명지(vijja)인지를 세존께 질문을 드리고 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본서 사문과 경(D2)에서 네 가지 禪으로 정리되어 나타나는 삼매(samadhi)를 실천으로 설하시고, 사문과 경에서 8가지로 정리되어 설명된 지혜(panna)를 명지로 설하신다.    

*'결혼시켜 보냄과 결혼시켜 데려옴'으로 옮긴 원어는 avaha와 vivaha인데 주석서에서 각각 처녀를 데려옴(kannagahana)과 처녀를 줌(kannadana)으로 설명하고 있다.(MA.iii.400) *'명지’로 옮긴 원어는 vijjā인데 중국에서는 明으로 옮겼다. 무명으로 옮긴 avijjā의 반의어이다. 한편 vijja에 해당하는 산스끄리뜨 vidyā는 베다에 대한 지식을 뜻한다. 그래서 초기경에서는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에 능통한 자를 tevijjā(三明)하고 하고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을 tevijja-brahmaṇa(삼명 바라문)라고 부르고 있다. 바라문은 베다 공부가 생명이므로 암밧타는 세존께 이렇게 vijjā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세존께서는 이를 오히려 불교의 통찰지(혜, 반야)와 관련지어 설명하신다. 불교의 입장에서 삼명은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숙명통.宿命通]와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천안통.天眼通]와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누진통.漏盡通]를 말한다.   

 

vijjacaranakatha (명지와 실천)

 

279.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그 실천(행.行)은 무엇이고, 그 명지(明-밝음)은 무엇입니까?"

"여기, 암밧타여, 아라한[araham]이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며, 깨달은 분(buddho)이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린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며,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 (DN 2-사문과경) ···

 

암밧타여, 이렇게 비구는 계를 갖춘다. ···

 

그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성취하여 머문다). ··· 이것도 실천에 속한다(이것도 그의 실천이다).

 

다시, 암밧타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 이것도 실천에 속한다.

 

다시, 암밧타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 이것도 실천에 속한다.

 

다시, 암밧타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 이것도 실천에 속한다.

 

그가 이렇게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 이것도 명지에 속한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도 명지에 속한다. 이것이, 암밧타여, 그 명지이다. 

 

이것을, 암밧타여, 비구는 명지를 구족했다고 하며, 실천을 갖추었다고 한다. 암밧타여, 이런 명지와 실천을 갖추는 것 이외에 또 다른 더 높고 더 수승한 명지의 구족과 실천의 갖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문과 경에 상세하게 언급된 짧은 길이의 계와 중간 길이의 계와 긴 길이의 계로 '계의 갖춤'을 정리하고 있다.
*사문과 경에 나타나는 초선, 2선, 3선, 4선의 정형구로 '실천의 갖춤'을 정리하고 있다.
*사문과 경에 나타나는 8가지 지혜의 정형구로 '명지의 갖춤'을 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암밧타와의 대화를 통해서 베다의 지식에 능통한 자가 명지를 가진 바라문이 아니라, 이런 8가지 지혜를 갖춘 자야말로 참다운 명지를 갖춘 자라고 바라문들에게 천명하신다.  
또한 바라문들이 범천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암밧타가 본경에서 드러내 보인 자만과 이에 바탕한 비난과 멸시를 가져서는 안되며, 또한 그들이 범천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brahma-vihara)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신다.  

 

catuapayamukham (네 가지 타락의 입구)

 

280. 암밧타여, 이런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춤에는 네 가지 타락의 입구가 있다. 무엇이 그 넷인가? 

 

*'타락의 입구'로 옮긴 원어는 apaya-mukha이다. 참다운 명지와 실천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자책심으로 취하는 네 가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암밧타의 스승을 위지한 모든 바라문들은 이런 타락의 입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천한 지식으로 진리를 팔아먹고 사는 자들이라는 세존의 날카로운 비판이 어어진다.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추지 못하자, '떨어진 열매나 먹는 자가 되리라.'며 필수품을 나르는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숲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이러한 명지와 실천을 갖춘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춤에 관련된 첫 번째 타락의 입구이다. 


*'필수품을 나르는 막대기'로 옮긴 원어는 khari-vividha인데 이 단어만으로는 뜻이 잘 통하지 않는다. 주석서에서 "khari란 불 지피는 막대기, 물통, 바늘 등 고행의 필수품을 말한다. vividha는 막대기이다. 그러므로 '카리를 나르는 막대기를 가지고'라는 뜻이다."(DA.i.269)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자들을 주석서에서는 tapasa-pabbajja(고행하기 위해서 집을 떠난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Ibid)
*'시중드는 자'로 옮긴 원어는 paricaraka이다. 
주석서에서는 그러면 왜 이들 고행을 하기 위해서 집을 떠난 자들이 불교의 비구들에게는 타락의 입구밖에 되지 않는가?라고 질문을 제기한 뒤 계.정.혜 삼학(tisso sikkha)을 닦는 비구가 이런 고행을 하기 위해서 집을 떠난 자들보다 수승하기 때문에 이들은 삼학을 수행하는 측면에서 보면 타락이고, 이런 고행자들은 삼학을 닦는 자들을 시중드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Ibid)  

 

다시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추지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 '구근류나 뿌리를 먹는 자가 되리라.'며 삽과 바구니를 가지고 숲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이러한 명지와 실천을 갖춘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춤에 관련된 두 번째 타락의 입구이다.

 

다시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지혜와 실천을 갖추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 마을의 경계나 성읍의 경계에 불 섬기는 집을 만들고는 불을 섬긴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이러한 명지와 실천을 갖춘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춤에 관련된 세 번째 타락의 입구이다.

 

다시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지혜와 실천을 갖추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고, 불을 섬기지도 못하게 되자, '이 사거리를 지나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내 능력과 힘이 되는대로 섬기리라.'며 사거리에 네 개의 문을 가진 집을 짓는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이러한 명지와 실천을 갖춘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춤에 관련된 네 번째 타락의 입구이다.

암밧타여, 위없는지혜와 실천을 갖춤에는 이런 네 가지 타락의 입구가 있다.

 

281. 암밧타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에게서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의 갖춤을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시여, 저와 스승이 누구이기에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춘다는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와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암밧타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추지 못하자, '떨어진 열매나 먹는 자가 되리라.'며 필수품을 나르는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암밧타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추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 '구근류나 뿌리를 먹는 자가 되리라.'며 삽과 바구니를 가지고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암밧타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추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 마을의 경계나 성읍의 경계에 불 섬기는 집을 만들고는 불을 섬기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암밧타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추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고, 불을 섬기지도 못하게 되자, '이 사거리를 지나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내 능력과 힘이 되는대로 섬기리라.'며 사거리에 네 개의 문을 가진 집을 짓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282. "이처럼, 암밧타여,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갖추는 것을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위없는 지혜와 실천을 갖춤에 관련된 네 가지 타락의 입구조차도 저버렸다. 암밧타여, 그러면서도 그대의 스승인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그대에게 이렇게 가르쳤단 말인가?

'머리깎은 사문, 비천한 깜둥이들은 우리 조상의 발에서 태어난 자들인데 그들이 감히 삼베다를 갖춘 바라문들과 대화하려드는가?라고.

그러나 그 자신은 타락의 (입구조차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암밧타여, 그대의 스승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그대를 잘못 가르쳤다. 

 

pubbakaisibhavanuyogo (예전의 선인들)

 

283. 암밧타여,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하사품으로 삶을 유지한다. 그러나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그와 공개적으로 직접 대면을 하지 않는다. 그와 대면할 때면 장막을 치고 대면한다. 암밧타여, 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법답고 정당한 세금을 받아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영지를 하사해 준 그와 공개적으로 대면을 하지 않겠는가? 보라, 암밧타여, 그대의 스승 뽁카라사띠는 그대를 잘못 가르쳤다.

 

*주석서의 설명을 요약하면 끄샤뜨리야 왕들은 바라문들을 아주 무시하여 직접 대면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라문이 뽁카라사띠처럼 아주 학식이 높다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DA.i.271-272) 즉 빠세나디 왕은 뽁카라사띠 바라문을 무시하기 때문에 직접 대면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84. 암밧타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코끼리의 목에 앉거나 말의 등에 앉아서 대신들이나 지방의 수장들과 더불어 어떤 회의를 주재한 뒤에 회의를 마치고 [모두 그 장소를 떠나서] 다른 곳에 가 있을 것이다. 이제 어떤 수드라나 수드라의 하인이 와서 그 장소에 서서 회의를 주재하는 흉내를 내면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이렇게 말했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이렇게 말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왕의 말을 한 것이 되고 왕의 회의를 주재한 것이 되어 그가 왕이 되고 왕의 위엄을 가지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85. "암밧타여, 그대의 경우도 그와 같다. 그대는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분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트라를 설하는 선인들이셨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민뜨라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이제 나와 나의 스승은 그들의 만트라를 배운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그대가 선인이 될 것이라거나, 그대가 선인이 되기 위해 수행할 것이라는 그런 경우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유명한 바라문들이다. 
*바라문들이 그들의 선조들을 팔면서 그들이 지은 만뜨라를 아무리 외우고 설한다고 해도 결코 선이 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선인이 되기 위해서는 계.정.혜 삼학을 닦고 참다운 명지와 실천인 8가지 지혜와 네 가지 禪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286. 암밧타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분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트라를 설하는 선인들이셨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민뜨라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이제 나와 나의 스승은 그들의 만뜨라를 배운다'라고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머리와 수염을 잘 감고 기름을 발라서 단장하고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겼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 ···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잡곡이 섞이지 않은 최상의 쌀밥과 여러 가지 국과 여러 가지 반찬들을 먹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멋지게 주름지고 옷단을 장식한 옷을 입은 여인들의 시중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 ···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꼬리를 땋은 암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긴 작대기로 때려가며 다녔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 ···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주위에 도랑을 파고 빗장을 건 도시의 성벽 안에서 긴 칼을 찬 사람들의 보호를 받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처럼, 암밧타여,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선인도 아니며, 선인이 되기 위한 닦음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암밧타여, 그대가 나에 대한 의심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 질문을 하라. 나는 상세한 설명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dvelakkhanadassanam (나머지 두 가지 대인상을 보여 주심)

 

287. 그런 다음 세존께서는 거처에서 나가서 포행을 하셨고 젊은 바라문 암밧타도 거처에서 나가서 포행을 하였다. 그리고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포행하시는 세존을 따라 포행하면서 세존의 몸에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찾았다. 그는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세존의 몸에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그러나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과 혀가 아주 긴 것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주석서에서는 세존께서 암밧타가 도(magga)를 질문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32상을 갖추었는지를 보기 위해서 왔음을 아시고 32상을 모두 다 보여 주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셨다고 설명하고 있다.(DA.i.274-275) 

 

288.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드셨다.

'이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내게서 두 가지를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그러나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과 혀가 아주 긴 것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는구나.'

그러자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가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그런 형태의 신통변화를 나투셨다. 그 다음에 혀를 빼서 두 귓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두 콧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온 이마를 혀로써 덮으셨다. 그러자 암밧타 바라문 학도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문 고따마 존자는 서른 두 가지 대인상을 갖추셨구나, 갖추지 않은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나서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제 저희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바쁘고 할 일이 많습니다." 

"암밧타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여라." 

그러자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암말이 끈 마차에 올라 돌아갔다.

 

289.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밖으로 나가서 많은 바라문들과 함께 자신의 숲에 앉아서 젊은 바라문 암밧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암밧타 바라문 학도가 숲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마차가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 한 곁에 앉았다. 

 

290. 한 곁에 앉아서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얘야 암밧타여, 너는 고따마 존자를 만나 보았느냐?"

"존자시여, 저는 고따마 존자를 만났습니다."       

"얘야 암밧타여, 그분 고따마 존자는 소문처럼 그러하더냐, 그렇지 않더냐?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로) 그런 분이더냐, 다른 분이더냐?"

"존자시여, 그분 고따마 존자는 소문처럼 그러하셨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로) 그런 분이셨고 다른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는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모두 갖추었으며 갖추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얘야 암밧타여, 너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느냐?"

"존자시여, 저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얘야 암밧타여, 너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그대로 말해 보거라." 

그러자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세존과 함께 있었던 대화를 모두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291. 그렇게 말하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오, 우리가 현자라고 하는 자가 이렇다니! 오, 많이 배웠다는 자가 이렇다니! 오, 삼베다에 능통하다는 자가 이렇다니! 참으로 목적을 성취하러 간 자가,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생겨나게 되었구나. 암밧타야, 네가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 이렇게 모욕에 모욕을 늘어놓았으니 고따마 존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더 많은 사실을 말하였구나. 오, 우리가 현자라고 하는 자가 이렇다니! 오, 우리의 많이 배웠다는 자가 이렇다니! 오, 이런 삼베다에 능통하다는 자가 이렇다니! 참으로 목적을 성취하러 간 자가,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고통스러운 곳(苦界), 비참한 곳(惡處), 험난한 곳, 지옥에 생겨나게 되었구나." 

그는 화가 나고 마음이 몹시 언짢아서 젊은 바라문 암밧타를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 그는 바로 즉시 세존을 만나러 가고자 하였다.

 

pokkharasatibuddhupasankamanam (뽁카라사띠가 세존을 친견하러 감)

 

292. 그러자 거기 있던 바라문들이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존자시여, 오늘 사문 고따마를 친견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니 뽁카라사띠 존자께서는 내일 사문 고따마를 친견하러 가십시오." 

그러자 뽁카라시띠 바라문은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한 뒤 수레에 올라서 (주위에) 횃불을 들게하고 욱까타를 나가서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293. 한 곁에 앉아서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암밧타가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까?"

"바라문이여, 그대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암밧타가 여기에 왔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대와 젊은 바라문 암밧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습니까?"

"바라문이여, 나와 젊은 바라문 암밧타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그대와 젊은 바라문 암밧타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와 나눈 대화를 모두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말씀하시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젊은 바라문 암밧타는 어리석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젊은 바라문 암밧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바라문이여, 젊은 바라문 암밧타가 행복하기를!" 

 

294. 그런 다음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포행하시는 세존을 따라 포행을 하면서 세존의 몸에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찾았다. 그는 두 가지를 제외하고 세존의 몸에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그는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세존의 몸에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그러나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과 혀가 아주 긴 것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295.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드셨다.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내게서 두 가지를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그러나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과 혀가 아주 긴 것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는구나.'
그러자 세존께서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그런 형태의 신통변화를 나투셨다. 그 다음에 혀를 빼서 두 귓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두 콧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온 이마를 혀로써 덮으셨다.

 

296.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문 고따마 존자는 서른 두 가지 대인상을 갖추셨구나, 갖추지 않은 것이 아니구나.'

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그러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세존께서 침묵으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297. 그런 다음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하여 세존께 시간을 알려 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비구들과 함께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들과 함께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시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298. 그러자 세존께서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하셨다.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쾌락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됨, 출리(出離)의 공덕을 밝혀주셨다. 세존께서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마음이 준비가 되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의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이 고무되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생겼음을 아시게 되었을 때, 모든 아라한.정등각들께서 찾아내신 괴로움(苦)과 일어남(集)과 소멸(滅)과 소멸에 이르는 길(道)라는 법의 가르침을 드러내셨다. 마치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이 바르게 잘 염색되는 것처럼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은 무엇이든 모두 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는 티 없고 때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

 

299.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고, 법을 체득했고, 법을 간파했고 의심을 건넜고, 혼란을 제거했고, 무외를 얻었고, 스승의 교법에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속에 등불을 가져 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십시오.

 

고따마 존자께서는 욱깟타의 다른 청신사의 집들을 방문하시는 것처럼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뽁카라사띠의 집도 방문해 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젊은 바라문들이나 여자 바라문들이나 고따마 존자께 예배드리고 일어나서 영접하며 자리와 물을 내어 드리고 마음에 청정한 믿을 낼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오랫동안 그들에게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참으로 잘 말했습니다."

 

 
암밧타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