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6상윳따 - 범천 상윳따(Brahma Samyutta. SN6:1-SN6:15)

실론섬 2014. 4. 25. 21:14

                                     

제6주제(S6)범천 상윳따

Brahma-saṁyutta (SN 6.1-15)
 

제1장 첫번째 품

Paṭhama-vagga

brahmāyācanasuttaṃ (SN 6.1-범천의 요청 경)

17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나서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머물고 계셨다. 그리고 홀로
앉아서 머무시는 세존의 마음에 이런 생각에 떠올랐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탐욕(감각적 쾌락)을 좋아하고 탐욕에 물들어 있고 탐욕을 기뻐한다. 탐욕을 좋아하고 탐욕에 물들어 있고 탐욕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지,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緣起)'를 본다는 것은 어렵다. 또한 이런 경지, 즉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형성작용의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완전히 놓아버림이고, 갈애의 멸진이고, 탐욕의 떠남이고, 소멸인 열반을 보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법을 설한다 하더라도 저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만 피곤하게 하고 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라고. 그때 세존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로 옮긴 원어는 ajapala-nigrodha(아자빨라니그로다)이다.  수자따(Sujata)가 고행을 그만두신 세존께서 우유죽을 공양올린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였다. 세존께서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에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아가셨다고 한다. 사함빠띠 범천이 세존께 법륜을 굴리기를 간청한 곳도 이곳이었으며(Vin.i.5-7), 마라가 세존이 깨달으신 직후에 바로 열반에 드시기를 간청한 곳도 이곳이었다.(D16).
주석서는 왜 이 니그로다 나무를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라 부르는가에 대해서 몇 가지로 설명을 한다. 첫째, 이 나무의 그늘에서 염소치기들이 쉬었기 때문이며, 둘째 나이든 바라문들이 더 이상 베다를 암송하지 못하게 되자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았기 때문이여, 셋째 한밤에 염소들에게 의지처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UdA.51)

 

‘내가 어렵게 증득한 법을 설하는 것이 이제 필요가 있을까.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에게 이 법은 실로 잘 깨달아지지 않는다.
 흐름을 거스르고, 독창적이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법을
 어둠의 무더기(무명)로 덮이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한다.’라고.

 

이렇게 숙고하는 세존의 마음은 법을 설함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기울었다.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세존의 마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 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경우에도 여래·아라한·정등각의 마음이 법을 설함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기운다면 세상은 참으로 타락할 것이고, 세상은 파멸할 것이다.'라고.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듯한 그 짧은 시간에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서 세존의 앞에 나타났다.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세존을 향해 합장하여 인사를 올리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진리)을 설하여 주십시오(설하십시오). 선서께서는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태어날 때 부터 더러움이 적은 중생들이 있습니다(거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쇠퇴할 것입니다. 법을 이해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씀드린 뒤 다시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예전에 마가다에 오염된 생각 때문에  
 청정하지 못한 법이 나타났지만  
 그들이 이제 때 없는 분이 깨달은 불사(不死)의 문을

 여는 법을 듣게 하십시오.

 마치 산꼭대기 바위에 서서 사방의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현자시여, 모든 것을 보는 분이시여
 그와 같이 법으로 만든 궁전에 올라 슬픔을 제거한 분께서는

 슬픔에 빠져 있고 태어남과 늙음에 고통받는 저들을(중생들을) 살펴주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영웅이시여, 승리자여, 캐러밴(순례자)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분이시여, 세상을 유행하십시오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십시오.
 법을 이해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범천의 간청을 알고서 중생에 대한 연민(자비심)으로 깨달은 이의 눈[불안.佛眼]으로서 세상을 두루 살펴보셨다. 세존께서는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시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자들, 많이 오염된 자들, 기능이 높은(예리한) 자들, 기능이 둔한 자들, 자질이 좋은 자들, 자질이 나쁜 자들, 가르치기 쉬운 자들, 가르치기 어려운 자들, 저 세상(내세)의 허물에 대해 두려움을 보면서 사는 자들, 저 세상의 허물에 대해 두려움을 보지 않고 사는 자들을 보셨다.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있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 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물속에서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 위로 올라와 표면까지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 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서서 물에 젖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시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자들, 많이 오염된 자들, 기능이 높은(예리한) 자들, 기능이 둔한 자들, 자질이 좋은 자들, 자질이 나쁜 자들, 가르치기 쉬운 자들, 가르치기 어려운 자들, 저 세상(내세)과 비난(허물)에 대해 두려움을 보면서 사는 자들, 저 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지 않고 사는 자들을 보셨다. 이처럼 보신 뒤 세존께서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들은 믿음을 버려라(삿된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연민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던 나는

 사람들에게 잘 실천되고 뛰어난 법을 말하지 않았다.”

(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ṃ.
 vihiṃsasaññī paguṇaṃ na bhāsiṃ,
 dhammaṃ paṇītaṃ manujesu brahme”ti.)

 

*'연민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던 나는' 의 원어는 vihiṃsasaññī 이다. 원래의 뜻은 ‘폭력의 생각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문법적으로 ‘폭력의 생각을 가진 자’인 ‘나’는 말하지 않았다.가 된다. ‘믿음을 버려라’에서 명령형을 사용한 것이 현재 상황인 데 비해 ‘말하지 않았다’라는 과거 시제로 설해진 것은 삿된 믿음을 버리라고 명령하는 지금 시점 이전에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상황 즉 (깨닫지 못한 상황 또는) 중생들에게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상황이고 그 상황을 ‘폭력의 생각을 가진 자’로 대표하여 나타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에 의해 법이 설해지도록 기회를 만들었다.’라며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돈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gāravasuttaṃ (SN 6.2-존중 경)
17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나서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머물고 계셨다. 그리고 홀로 앉아서 머무시는 세존의 마음에 이런 생각에 떠올랐다.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참으로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는가?’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계의 무더기(계온.戒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존재 가운데 나보다도 더 계를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삼매의 무더기(정온(定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존재 가운데 나보다 더 삼매를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지혜의 무더기(혜온(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존재 가운데 나보다도 더 지혜를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해탈의 무더기(해탈온(解脫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해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존재 가운데 나보다도 더 해탈을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르리라.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해탈지견의 무더기(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존재 가운데 나보다도 더 해탈지견을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겠다.’라고.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세존의 마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 뒤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듯한 그 사이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서 세존 앞에 나타났다.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땅에 오른쪽 무릎을 꿇은 뒤 세존을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시여. 과거에 있었던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께서도 오직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렀습니다. 미래에 있을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께서도 오직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의 아라한∙정등각이신 세존께서도 오직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십시오."라고.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깨달은 분들도 미래의 깨달은들도
 현재의 깨달은 분도 많은 사람들의 근심과 슬픔을 없애주십니다.

 모두 정법을 존중하며 머물렀고, 머물고,
 그렇게 머물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은 분들의 법다움(법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자신을 즐거워하면서) 위대함을 추구하는 자는
 깨달은 분들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정법을 존중해야 합니다.”

 

brahmadevasuttam (SN 6.3-브라흐마데와 경)  
174.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바라문녀의 아들인 브라흐마데와가 집에서 나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다. 그리고 브라흐마데와 존자는 홀로 머물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문 브라흐마데와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외에 다른 상태는 없다.’라고. 브라흐마데와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브라흐마데와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다. 사왓티에서 집집마다 차례대로 빠짐이 없이 탁발을 하면서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 그 무렵 브라흐마데와 존자의 어머니인 바라문녀는 범천에게 항상 헌공을 베풀고 있었다. 그때 사함빠띠 범천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브라흐마데와 존자의 어머니인 바라문녀(브라흐민)는 범천에게 항상 헌공을 베푼다. 그러니 나는 그녀에게 가서 절박함을 일깨워야겠다.’라고.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빠른 시간안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서 바라문녀 앞에 나타났다. 사함빠띠 범천은 허공에 서서 브라흐마데와 존자의 어머니인 바라문녀에게 게송을 읊었다.  

 

 [범천]
“바라문녀여, 그대 항상 베푸는 헌공을 섭수하는
 범천의 세상은 여기로부터 멀다네.
 바라문녀여, 범천은 그런 음식 먹는 자가 아니니
 범천에 이르는 길을 모르면서 왜 (주문을) 암송하고 있습니까?

 바라문녀여, 참으로 집 앞에 서 있는 그대의 브라흐마데와는
 존재의 근거가 다하였고(집착을 떠났고) 신(하늘 사람)들을 능가했으니
 무소유를 행하고 남을 부양하지 않는 비구인
 그분이 탁발하러 그대의 집에 들어왔습니다.

 공양 올려 마땅한 지혜의 달인, 자신을 닦은 그는
 인간과 신들의 보시를 받아 마땅합니다.
 온갖 악을 없애 버리고 더러움(번뇌)이 없으며
 마음이 조용한 그분이 탁발을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뒤도 없고 앞에도 아무것도 없어
 고요하고 연기(분노) 없고 매듭(번뇌) 끊고 욕망이 없습니다 
 약하거나 강한 자들에 대해 몽둥이(폭력)를 내려놓은 분
 바로 그분이 그대가 올리는 최고의 공양을 드시게 하십시오.

 

*여기서 '뒤(paccha)'란 과거이고 '앞(purattha)'이란 미래이다. 과거와 미래의 오온에 대해서 욕탐이 없는 자에게는 앞도 뒤고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요하고(santa)'란 탐욕 등이 고요하다는 말이다. 분노의 연기가 없기 때문에 '연기가 없고(vidhuma)'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매듭을 끊었다(anigha)'고 한 것이다.(SA.i.207)

 

 무리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평화로워서
 잘 훈련된 코끼리처럼 꼿꼿하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계를 잘 지키고 마음이 잘 해탈한 비구
 바로 그분이 그대가 올리는 최고의 공양을 드시게 하십시오.

 

 [송출자] 

"그분에게 청정한 믿음 가져 흔들리지 않고
 공양 받아 마땅한 분께 공양물을 드리기를
 바라문녀여, 번뇌의 거친 물살을 건넌 그 성자를 뵙고
 공덕 짓고 행복한 미래를 맞으십시오.”


bakabrahmasuttam ( SN 6.4-바까 범천 경)
17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바까 범천에게 이러한 삿된 견해가 일어났다. 
‘이것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참으로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란 없다.’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바까 범천의 마음에 대해 마음으로 잘 이해하고 알아차리신 뒤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듯한 그 사이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나셨다.


바까 범천은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환영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오랜만에 기회를 내셔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참으로 이것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란 없습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바까 범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존자여, 참으로 그대 바까 범천은 무명에 빠졌다.
존자여, 참으로 그대 바까 범천은 무명에 빠졌다. 그대는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라고 말하고,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라고 말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라고 말하고, 달라지는 법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참으로 태어나고 늙고 죽고 생겨나는 것을 두고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않고 생겨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 있는데도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란 없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바까 범천]
“고따마여, 공덕지어 여기에 난 우리 72명은
 자유자재를 얻어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습니다.
 완전한 지혜를 얻은 이여, 이것이 최상의 범천의 경지이니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동경합니다.”

[세존]
“바까여, 긴 수명이라 그대가 생각하지만
 그것은 짧을 뿐 결코 긴 수명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그대 수명을 완전히 아나니
 그것은 십만 니랍부다의 기간일 뿐이다.”

 

*복주석서는 압부다(abbuda)와 니랍부다(nirabbuda)를 이렇게 설명한다.
"참깨가 가득 든 어떤 항아리에 서 백 년에 한 개씩 참깨를 꺼내어서 그 참깨가 모두 없어지는 기간은 압부다의 기간에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설명이 되는 압부다에 20배를 한 것이 니랍부다이다. 이러한 니랍부다로 10만 니라부다라는 뜻이다.(SAT.i.212)

 

[바까 범천]
“세존이시여, 당신은 ‘나는 무한한 봄을 가졌으며
 태어남∙늙음∙슬픔 모두 넘어섰다.라고 말합니다.
 저 자신의 오래된 서원과 계행을 여쭈오니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세존]
“더위에 시달리고 목말라서 괴로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는 마실 것을 주었다.
 이것이 그대의 오래된 서원과 계행.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에니 강 언덕에서 붙잡혀 끌려가던
 포로들을 그대는 모두 풀어주었다.
 이것이 그대의 오래된 서원과 계행.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강가 강의 포악한 용, 사람 잡아먹으려 잡은 배를
 힘센 그대는 용감하게 풀어주었다.
 이것이 그대의 오래된 서원과 계행.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나는 깝빠라는 그대의 제자였으니
  그대는 그를 두고 총명하다 인정했다.
  이것이 그대의 오래된 서원과 계행.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바까 범천]
“분명히 당신은 나의 수명을 완전히 알고
 다른 것도 통찰하여 알아차리니, 그래서 당신은 깨달은 자(정등각자)입니다.
 그러한 그대의 최상의 위신력이
 범천의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aññatarabrahmasuttaṃ (SN 6.5-어떤 범천 경)
176.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범천에게 이러한 삿된 
견해가 일어났다.

‘여기에 올 그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없다.’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음으로 그 범천이 마음에 일으킨 생각을 아시고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듯한 그 사이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범천 위의 하늘에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드신 뒤 가부좌를 하시고 앉으셨다. 

 

그때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시는가?’라고.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세존께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드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가부좌를 하시고 앉아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자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급히는 듯한 그 사이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동쪽 방향에 자리를 잡아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그러나 세존보다는 낮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시는가?’라고.  
마하깟사빠 존자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세존께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드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가부좌를 하시고 앉아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자 마하깟사빠 존자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급히는 듯한 그 사이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하깟사빠 존자는 남쪽 방향에 자리를 잡아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그러나 세존보다는 낮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때 마하깝삐나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시는가?’라고.  
마하깝삐나 존자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세존께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드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가부좌를 하시고 앉아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자 마하깝삐나 존자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급히는 듯한 그 사이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하깝삐나 존자는 서쪽 방향에 자리를 잡아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그러나 세존보다는 낮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때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시는가?’라고.  
아누룻다 존자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세존께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드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가부좌를 하시고 앉아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자 아누룻다 존자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급히는 듯한 그 사이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누룻다 존자는 북쪽 방향에 자리를 잡아서 불의 요소를 대상으로 본삼매에 든 뒤 그 범천보다 더 높은 하늘에 그러나 세존보다는 낮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러자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그 범천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도반이여, 이전에 가졌던 그대의 견해를 오늘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까?
 범천의 세상을 넘어서서 빛나는 찬란한 저 광명을 그대는 봅니까?”

[범천]
“존자여, 이전에 가졌던 저의 견해를 지금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범천의 세상을 넘어서서 빛나는 찬란한 저 광명을 저는 봅니다.
 그런 제가 어찌 오늘 ‘나는 항상하고 영원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는 그 범천에게 감흥을 일으킨 뒤에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듯한 그 사이에 그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제따 숲으로 돌아 오셨다. 그 범천은 어떤 범중천에게 말했다. 

“오시오, 존자여. 그대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가시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목갈라나 존자여, 그분 세존에게, 예를 들면, 목갈라나 존자, 깟사빠 존자, 깝삐나 존자, 아누룻다 존자처럼, 그렇게 크나큰 위력을 가진 다른 제자가 있습니까?’라고.”
“알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그 범중천은 그 범천에게 대답한 뒤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분 세존에게, 예를 들면, 목갈라나 존자, 깟사빠 존자, 깝삐나 존자, 아누룻다 존자처럼, 그렇게 크나큰 위력을 가진 다른 제자가 있습니까?’라고.”

그러자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그 범중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삼명을 갖추고, 신통을 얻고, 마음의 길에 능통하고
 번뇌 다한 아라한들인 세존의 제자들은 많습니다.”라고.

 

*'삼명(tevijja)'은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숙명통.pubbenivasanussati-nana),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천안통.cutupapata-nana), 모든 번뇌를 멸진하는 지혜(누진통.asavakkhaya-nana)의 셋을 말한다. 여기서 '신통(변화)'는 신통의 지혜(신족통.iddhividha-nana)을 뜻하고, '마음의 길에 능통하고'는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타심통.cetopariya-nana)를 말한다. 이렇게 해서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육신통(chalabhinna)가운데 다섯 가지 신통을 말했다. 그리고 신성한 귀의 지혜(천안통.dibbasota-nana)도 포함시켜서 육신통 전체를 말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SA.i.213)

 

그러자 그 범중천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그 범천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범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삼명을 갖추고, 신통을 얻고, 마음의 길에 능통하고
 번뇌 다한 아라한들인 세존의 제자들은 많습니다.'라고.

 

그 범중천은 이렇게 말했다. 그 범천은 즐거워하면서 그 범중천의 말을 기뻐하였다.

 

brahmalokasuttaṃ (SN 6.6-범천의 세상 경)
177.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세존께서는 낮 동안의 선정에 들어가셔서 홀로 앉아 계셨다. 그때 수브라흐마 벽지범천과 숫다와사 벽지범천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각자 문 앞 가까운 곳에 섰다. 수브라흐마 벽지범천이 숫다와사 벽지범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낮 동안의 선정에 들어가신 세존께서는 홀로 앉아 계시므로 지금은 세존을 방문하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범천의 세상은 부유하고 번창하지만 그곳의 범천은 방일하면서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범천의 세상에 갑시다, 존자여. 우리가 범천의 세상으로 가서 그 범천에게 감흥을 일으켜 줍시다.”

“알겠습니다, 존자여.”라고 숫다와사 벽지범천은 수브라흐마 벽지범천에게 대답했다. 

 

*'벽지 범천'은 pacceka-brahma를 올긴 것이다. 복주서서는 "벽지 범천이란 혼자 머무는 범천인데 대중과 함께하는 범천이 아니라는 뜻이다."(SAT.i.213)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벽지(pacekka)라는 말은 삶의 방식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벽지라는 말은 혼자(ekeka)라는 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깨달았지만 대중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 분을 벽지불(pacceka-buddha)라고 하듯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지만 대중과 함께하지 않는 범천을 벽지 범천이라 부르고 있다.

 

숫다와사 벽지범천과 수브라흐마 벽지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그 사이에 세존의 곁에서 사라져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그 범천은 멀리서 오고 있는 그 범천들을 보았다. 보고서 그 범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그런데 그대들은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라고.
“존자여, 우리는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의 곁에서 오는 길입니다. 존자여, 그대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를 친견하러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그 범천은 자신을 천 개의 분신으로 신통을 행한 뒤 수브라흐마 벽지범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그대는 나의 이러한 신통의 위력을 보고 있습니까?”라고.
“존자여, 나는 그대의 이런 신통의 위력을 보고 있습니다.”
“존자여, 이런 위력, 이런 신통력을 가진 내가 무엇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친견하러 간단 말입니까?”

 

그러자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은 자신을 2천 개의 분신으로 신통을 행한 뒤 그 범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그대는 나의 이러한 신통의 위력을 보고 있습니까?”라고.
“존자여, 나는 그대의 이런 신통의 위력을 보고 있습니다.”
“존자여, 그대와 나보다도 그분 세존께서는 더 큰 위력, 더 큰 신통력이 있습니다. 존자여, 그대는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을 친견하러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그 범천은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어떤 범천]

“3백의 금시조와 4백의 백조와 5백의 독수리와 
 선(禪)을 닦는 수행자가 있습니다.
 범천이여, 그런 이 궁전은 이 북쪽을 비추면서 빛납니다.”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
“이 궁전이 이 이 북쪽을 비추면서 빛나는 것이 그대에게 무엇입니까?

 물질에서 결점과 항상 흔들림을 보기 때문에
 현명한 자는 물질들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물질의 결점(rupe ranam)'이란 물질에는 생김과 노화와 부서짐이라 불리는 결함이 있다는 말이다. '항상 흔들림(sada pavedhitam)'이란 물질은 춥고 덥고 등에 의해서 항상 흔들리고 동요하고 부딪친다는 말이다.(SA.i.214)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은 여기서 물질로 만들어진 궁전이란 것은 오온의 하나일 뿐이며 그래서 무상한 것이라고 그 범천에게 감흥을 일으키고 있다.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과 숫다와사 벽지 범천은 그 범천에게 감흥을 일으켜 준 뒤 거기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범천은 나중에 세존∙아라한∙정등각자를 친견하러 갔다.

 

kokālikasuttam (SN 6.7-꼬깔리까 경1)
178.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세존께서는 낮 동안의 머묾에 들어가셔서 홀로 앉아 계셨다. 그때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과 숫다와사 벽지 범천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각자 문 앞 가까운 곳에 섰다. 그리고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이 꼬깔리까 비구에 관해서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지혜로운 자가 어찌 측량할 수 없는 분을
 자기가 아는 범위내에서 분별하여 억측을 한단 말입니까?
 측량할 수 없는 분을 분별하는 자는
 무지한 범부일 뿐이라 생각됩니다.”

 

*'측량할 수 없는 분을 [자기 깜냥으로] 재어서' 라는 것은 측량할 수 없는 번뇌 다한 분을 '이만큼이 그의 계이고 이만큼이 삼매고 이만큼이 지혜다.'라고 이렇게 재는 것을 말한다.(SA.i.214)

 

katamodatissasuttam (SN 6.8-까따모다띳사 경)
179.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세존께서는 낮 동안의 머묾에 들어가셔서 홀로 앉아 계셨다. 그때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과 숫다와사 벽지 범천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각자 문 앞 가까운 곳에 섰다. 그리고 숫다와사 벽지 범천이 까따모다까띳사 비구에 관해서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지혜로운 자가 어찌 측량할 수 없는 분을
 자기가 아는 범위내에서 분별하여 억측을 한단 말입니까?
 측량할 수 없는 분을 분별하는 자는
 무지한 범부일 뿐이라 생각됩니다.”

 

tudubrahmasuttam (SN 6.9-뚜두 범천 경)
180.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꼬깔리까 비구가 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뚜두 벽지범천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꼬깔리까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허공에 서서 꼬깔리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뚜두(Tudu, Turu)는 꼬깔리까의 은사인 뚜두 장로였다. 그는 불환과를 얻어서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다. 이때 그는 땅의 신으로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범천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들려오는 '꼬깔리까가 가장 나쁜 말로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비행을 저질렀다.'라는 소리를 듣고  '나를 만날 때까지 그 가련한 자가 죽어서는 안된다. 장로들에 대해 마음을 청정히 하도록 내가 그를 훈계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그에게로 와서는 그의 앞에 섰다.(AA.v.59-60)   

“꼬깔리까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마음을 청정하게 하십시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지혜를 갖춘 분들입니다.”
“도반이여, 그대는 누구입니까?”
“나는 뚜두 벽지 범천입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그대가 불환과를 얻었다고 설명하셨는데 어떻게 여기에 왔습니까? 그러니 그대의 잘못이나 보십시오.”

 

*'그대가 행한 잘못(aparaddha)'이 얼마만큼 인지, 자기의 이마에 있는 큰 혹은 보지 않고, 겨자씨만한 종기를 가지고 나를 질책하려고 생각하는가?라는 뜻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AA.v.60) 복주석서는 이렇게 다시 설명한다.  
"'얼마만큼'이라는 것은 [불환과를 얻은 자는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는 세존의 말씀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린 그대의 잘못이 얼마만큼 인지, 그것은 한계를 잴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불환자란 감각적 욕망과 악의를 다 버린 자들이라서 [여기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는 사견과 감각적 쾌락과 악의가 있기 때문에 여기 왔다. 그러니 그대의 잘못이 얼마만큼 인가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AAT.iii.323)
물론 불환과를 얻은 자는 인간으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자신을 얼마든지 나툴 수 있다. 뚜두 범천은 꼬깔리까의 사악함은 치유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의 게송들을 읊은 것이다.  


 [뚜두 벽지범천]
“사람이 태어날 때 입에 도끼가 함께 생겨나서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로 자신을 찍는다.

 책망 받아 마땅한 것을 칭송하거나
 칭송받아 마땅한 것을 책망하는 자

 입으로서 최악의 패(과보)를 모은 것이니
 그런 최악의 패로는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한다.
 노름에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잃고
 자기 자신까지 [잃는 자]

 그의 최악의 패는 오히려 하찮은 것이다. 
 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더럽힌 자
 그의 최악의 패는 아주 낭패스러운 것이 된다.

 성자들을 비난하는 자
 말과 마음으로 악을 지어
 10만과 36니랍부다 동안
 그리고 5압부다만큼 더 지옥에 떨어진다.”

 

kokālikasuttam (SN 6.10-꼬깔리까 경2)
181.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꼬깔리까 비구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꼬깔리까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삿된 바램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삿된 바램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꼬깔리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꼬깔리까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꼬깔리까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마음을 청정히 하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다.”

두 번째로 꼬깔리까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삿된 바램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삿된 바램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세존께서는 꼬깔리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꼬깔리까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꼬깔리까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마음을 청정히 하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다.”

세 번째로 꼬깔리까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삿된 바램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삿된 바램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꼬깔리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꼬깔리까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꼬깔리까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마음을 청정히 하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다.”

그러자 꼬깔리까 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세존의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서 꼬깔리까 비구에게는 겨자씨 크기의 종기가 온몸에 생겼다. 그것은 처음에는 겨자씨 크기였다가 녹두 콩 크기가 되었고, 녹두 콩 크기였다가 완두콩 크기가 되었고, 완두콩 크기였다가 대추씨 크기가 되었고, 대추씨 크기였다가 대추 크기가 되었고, 대추 크기였다가 아말라까 열매 크기가 되었고, 아말라까 열매 크기였다가 익지 않은 빌바 열매 크기가 되었고, 익지 않은 빌바 열매 크기였다가 익은 빌바 열매 크기가 되었고, 익은 빌바 열매 크기였다가 터져서는 고름과 피가 흘러나왔다. 마치 독을 마신 물고기처럼 그는 까달리(파초) 잎사귀들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꼬깔리까 비구는 그 병으로 죽었다. 꼬깔리까 비구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증오심(시기.질투)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다.

사함빠띠 범천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꼬깔리까 비구가 죽었습니다. 꼬깔리까 비구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중오심을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씀을 드린 뒤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세존의 오른쪽으로 돌아 사라졌다.

세존께서는 그 밤이 지나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난밤에 사함빠띠 범천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내게 다가왔다. 와서는 내게 경의를 표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사함빠띠 범천으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꼬깔리까 비구가 죽었습니다. 꼬깔리까 비구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 내게 경의를 표한 뒤에 공경의 의미로 나의 오른쪽으로 돌아 사라졌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얼마나 깁니까?” 
“비구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참으로 길어서 몇 년이라거나 몇 백 년이라거나 몇 천 년이라거나 몇 십만 면이라고 숫자로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비유를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구여, 그것은 가능하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예를 들면 꼬살라에 20카리 분량의 참깨를 실은 수레가 있는데 사람이 백 년이 지날 때 한 알의 참깨를 주워간다 하자. 꼬살라에 있는 20카리 분량의 참깨가 이런 방법으로 다 멸진되고 없어지는 것이 하나의 압부다 지옥 시간보다 더 빠를 것이다. 비구여, 20압부다 지옥이 1니랍부다 지옥의 시간과 같고, 20니랍부다 지옥이 1아바바 지옥의 시간과 같고, 20아바바 지옥은 1아하하 지옥의 시간과 같고, 20아하하 지옥은 1아따따 지옥의 시간과 같고, 20아따따 지옥은 1수련지옥의 시간과 같고, 20수련지옥은 1소간디까 지옥의 시간과 같고, 20소간디까 지옥은 1청련지옥의 시관과 같고, 20청련지옥은 1백련지옥의 시간과 같고, 20백련지옥은 1홍련지옥의 시간과 같다. 비구여, 꼬깔리까 비구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증오심을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이신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설하셨다.

“사람이 태어날 때 입에 도끼가 함께 생겨나서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로 자신을 찍는다.
 책망 받아 마땅한 것을 칭송하거나
 칭송받아 마땅한 것을 책망하는 자
 입으로 최악의 패(과보)를 모은 것이니
 그런 최악의 패로는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한다.


 도박에서 자기의 모든 재산 잃고
 자기 자신까지 [잃는 자]
 그의 최악의 패는 오히려 하찮은 것일지니
 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더럽힌 자
 그의 최악의 패는 아주 낭패스러운 것이 된다.

 성자들을 비난하는 자
 말과 마음으로 악을 지어
 10만과 36니랍부다 동안
 그리고 5압부다 만큼 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제2장 두번째 품
Dutiya-vagga

sanaṅkumārasuttaṃ (SN 6.11-사낭꾸마라 경)
18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삽삐니 강 언덕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낭꾸마라 범첨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삽삐니 강 언덕을 환하게 밝히고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사낭꾸마라 범천은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가문을 의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끄샤뜨리야가 으뜸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명지(明知)와 실천 구족한 사람, 그가 으뜸입니다.”라고.

사낭꾸마라 범천은 이렇게 말하였고 스승께서는 그의 말에 동의하셨다. 그러자 사낭꾸마라 범천은 ‘스승께서는 나의 [말에] 동의하셨다.’라며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세존의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사라졌다.

 

devadattasuttaṃ (SN 6.12-데와닷따 경)
18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는데 데와닷따가 승가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무렵 사함빠띠 범천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독수리봉 산을 환하게 밝히고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의 곁에서 데와닷따에 관련해서 이 게송을 읊었다.

“참으로 열매가 파초를 죽게 하고, 열매가 대나무를 죽게 하고, 열매가 갈대도 죽게 하고
태아가 암 노새를 죽이는 것처럼 존경은 어리석은 사람을 죽게 합니다.”

 

andhakavindasuttam (SN 6.13-안다까윈다 경)  
18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마가다의 안다까윈다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노지에 앉아 계셨고 비가 가끔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였다.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안다까윈다를 환하게 밝히고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안다까윈다는 마가다의 수도 라자가하(왕사성)로부터 5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라자가하와 안다까윈다 사이에는 독수리봉 산에서 발원한 삽삐니(Sappini) 강이 흐르고 있다. 「율장」의 몇곳에도 언급이 되어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 「안다까윈다 경」(AN5.114)도 이곳에서 설해졌다.

“외딴 거처에 거주해야 합니다.
 족쇄(번뇌)를 풀기위해 유행해야 합니다.
 만일 거기서도 기쁨 얻지 못한다면
 자신을 보호하고 마음챙기며 승가에 머물러야 합니다(승가 안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걸식을 하면서
 감각기능 보호하고 몸 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지혜롭고 마음챙겨서
 외딴 거처에 거주해야 하나니
 두려움에서 풀려나 두려움 없는 곳(해탈)으로 가야 합니다.

 무서운 뱀들이 기어 다니고
 번개치고 천둥소리 나기도 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무서운 밤에라도
 비구는 털이 곤두서지 않고(두려움 없이) 거기에 앉아 있습니다.

 이것을 나는 직접 보았나니
 단지 소문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청정범행을 닦을 때
 천 명이 죽음을 벗어났습니다.

 (확실히 나는 보았으니
 단지 내가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가르침을 설하니
 천 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극복했습니다).

 오백 명의 비구(제자)들이 있고
 백의 열배의 열배가 더 있나니
 모두는 흐름에 들어서 
 최소한 축생에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제 생각에는
 모두 공덕을 지은 이들인데
 그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으니
 [헤아린다고 말하면] 거짓을 범합니다.”

 

aruṇavatīsuttaṃ (SN 6.14-아루나와띠 경)
18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옛날에 아루나와라는 왕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아루나와 왕의 수도는 아루나와띠라는 곳이었다.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아루나와띠 수도를 의지해서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에게 아비부와 삼바와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그때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아비부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가자, 바라문이여, 공양 시간이 될 때까지 다른 범천의 세상으로 갈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비부 비구는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과 아비부 비구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듯한 그 빠른 시간에 수도 아루나와띠에서 사라져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때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아비부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범천과 범천의 회중(모임)과 범중천들에게 법을 설하도록 하여라.’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비부 비구는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에게 대답한 뒤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중천들에게 법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중천들은 크게 곤혹스러움을 나타내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신기합니. 존자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떻게 스승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제자가 법을 설한다니요!'라고.

 

그러자,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아비부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들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중천들이 ’존자들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찌 스승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제자가 법을 설하다니요!’라며 곤혹스러워 한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그대는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중천들에게 더욱 감동을 일으키도록 하여라.’라고.

비구들이여,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비부 비구는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대답한 뒤 그의 몸을 볼 수 있게 하여 법을 설하기도 하고, 몸을 숨긴 채 법을 설하기도 하고, 하반신만을 볼 수 있게 하고 상반신은 숨긴 채 법을 설하기도 하고, 상반신을 볼 수 있게 하고 하반신은 숨긴 채 설하기도 하였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중천들은 경이로움과 놀라움이 생겨나서 ‘존자들이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사문에게 큰 신통과 큰 위력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아비부 비구는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비구 승가 가운데서 이런 말을 했다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범천의 세상에 머물 때 천의 세계에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바라문이여, 지금이 범천의 세상에 머물면서 천의 세계에 목소리를 듣게 할 그 시간이다. 바라문이여, 지금이 그 때이다.'
비구들이여,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비부 비구는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에게 대답한 뒤 범천의 세상에 서서 이런 게송들을 읊었다.

 

"깨달은 분의 가르침에서 시작하고, 나아가고, 스스로 노력하라.
 코끼리가 갈대로 만든 오두막을 부수듯 죽음의 군대를 쓸어버려라.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끊어 버리고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과 아비부 비구는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중천들에게 더욱 감동을 일으킨 뒤에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듯한 그 빠른 시간에 그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수도 아루나와띠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때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아비부 비구가 범천의 세상에 서서 말한 이 게송들을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비부 비구가 범천의 세상에 서서 게송들을 말한 게송들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아비부 비구가 범천의 세상에 서서 말한 게송들을 어떻게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아비부 비구가 범천의 세상에 서서 말한 게송들을 저희들은 이렇게 들었습니다.

 

'깨달은 분의 가르침에서 시작하고, 나아가고, 스스로 노력하라.
 코끼리가 갈대로 만든 오두막을 부수듯 죽음의 군대를 쓸어버려라.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끊어 버리고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세존이시여, 아비부 비구가 범천의 세상에 서서 말한 게송들을 저희들은 이렇게 들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아비부 비구가 범천의 세상에 서서 말한 게송들을 들었다니 그대 비구들은 훌륭하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parinibbānasuttaṃ (SN 6.15-반열반 경)
186. 반열반하실 때 세존께서는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나무 숲에서 한 쌍의 살라 나무 사이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그대들에게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말이다(유훈이다)."라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초선(初禪)에 드셨다. 초선에서 출정하여 제2선에 드셨다. 제2선에서 출정하여 제3선에 드셨다. 제3선에서 출정하여 제4선에 드셨다. 제4선에서 출정하여 공무변처에 드셨다. 공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식무변처에 드셨다. 식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무소유처에 드셨다. 무소유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드셨다.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상수멸에 드셨다.

 

세존께서는 상수멸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드셨다.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무소유처에 드셨다. 무소유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식무변처에 드셨다. 식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공무변처에 드셨다. 공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여 제4선에 드셨다. 제4선에서 출정하여 제3선에 드셨다. 제3선에서 출정하여 제2선에 드셨다. 제2선에서 출정하여 초선에 드셨다. 초선에서 출정하여 제2선에 드셨다. 제2선에서 출정하여 제3선에 드셨다. 제3선에서 출정하여 제4선에 드셨다. 제4선에서 출정하여 바로 다음에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셨다.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사함빠띠 범천은 이 게송을 읊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필경에는 몸을 내려놓는다.
 이 세상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스승
 위대한 힘을 갖추셨고 완전하게 깨달으신 분께서
 반열반하셨다.”라고.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신들의 왕 삭까는 이 게송을 읊었다.

“형성된 것들[諸行]은 참으로 무상하여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법이다.
 일어남을 원인으로 소멸한다.
 이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다.”라고.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아난다 존자는 이런 게송을 읊었다.

“모든 것을 뛰어나게 갖추신 깨달으신 분이 반열반하실 때
 그때 무서웠고, 그때 소름이 끼쳤다.”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아누룻다 존자는 이런 게송을 읊었다.


“들숨날숨이 없고, 안정된 마음의 그러하신 분, 
 욕망을 여의신 분, 고요함에 대한 눈을 가지신 분께서
 반열반하셨다.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고통스런] 느낌을 감내하셨다.

 단지 등불이 꺼지듯 마음은 해탈하셨다.”

 


범천 상윳따(S6)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