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9상윳따 - 숲 상윳따(Vana samyutta. SN9:1-SN9:14)

실론섬 2014. 4. 27. 13:35

제9주제(S9) 숲 상윳따
Vana-saṁyutta (SN 9.1-14)

vivekasuttam (SN 9.1-홀로 머묾 경)
22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비구가 꼬살라의 어떤 밀림(울창한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그 비구는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 들어가서는 삿되고 선하지 않으며 또한 세속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비구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비구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일깨워주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게송들로 말했다.


“홀로 머물기를 원하여 그대는 숲에 들어왔지만
 그대 마음 밖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비구여, 사람들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십시오.
 그러면 갈망을 건너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따분함(불만.지루함) 없애고 그대는 마음챙기십시오.
 참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내가 상기시켜 주겠습니다.
 탁하기 짝이 없는 나락(지옥)은 참으로 건너기 어려우니
 욕망의 먼지(번뇌)가 그대를 그 나락으로 끌어내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마치 흙먼지에 뒤덮인 새가
 달라붙은 먼지를 흔들어서 털어내듯
 정진과 마음 챙김을 두루 갖춘 비구도
 달라붙은 먼지를 흔들어서 털어냅니다.”

그러자 그 비구는 밀림에 사는 신의 자극을 받아서 절박감이 생겼다.

 

upaṭṭhānasuttam (SN 9.2-일깨움 경)
22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비구가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그 비구는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 들어가서는 잠에 들어 있었다. 그러자 그 비구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비구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게송들로 말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비구는 아라한이었다고 한다. 그는 멀리 탁발을 갔다 왔기 때문에 피곤하여 누워서 쉬고 있었으며 실제로 잠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은 그의 몸의 둔간함을 제거하기 위해서 다가가서 게송을 읊은 것이라 한다.(SA.i.288-289)

[천신]
“일어나십시오, 비구여. 왜 누워 있습니까?
그대는 잠에 빠져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쇠살 맞아 덧나고 관통을 당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에서 나와 집 없이 되었으니
바로 그 믿음을 마음속에 잘 기르십시오.
졸음(게으름)의 지배를 받지 마십시오.”

[비구]
“감각적 쾌락이란 무상하고 견고하지 못한 것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 그것에 사로잡혀 있지만
 속박에서 풀려나서 집착하지 않는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히겠는가?

 욕탐과 애욕을 길들이고
 무명을 건넜기 때문에
 지혜가 깨끗하게 된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히겠는가?   

 명지로 무명을 자르고
 번뇌를 멸진하였기 때문에
 슬픔 없고 절망 없는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히겠는가?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독려하고 항상 분발하며
 열반을 성취하고자 하는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히겠는가?”

kassapagottasuttam (SN 9.3-깟사빠곳따 경)
22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깟사빠곳따 존자는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깟사빠곳따 존자는 낮 동안의 홀로 머무는 동안에 어떤 사냥꾼을 훈계하였다. 그러자 깟사빠곳따 존자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깟사빠곳따 존자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깟사빠곳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깟사빠곳따 존자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사냥꾼(cheta)은 사슴 사냥꾼(miga-luddaka)이었다고 한다. 사냥꾼은 붉은 사슴을 쫓다가 장로가 홀로 머묾에 들어 있는 숲에 들어갔다. 장로는 사냥꾼에게 불살생에 관한 법을 설하였다. 그는 눈으로는 장로를 쳐다보고 귀로는 듣는 것처럼 하였지만 마음으로는 계속 사슴을 쫓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이 와서 아래 게송을 읊은 것이다.(SA.i.289-290)

“평탄하지 않은 산길을 다니는 사냥꾼은
 어리석으며 정신마저 혼미한데
 바르지 못한 때에 비구가 가르침으로 훈계하니
 내가 보기에 어리석은 자 같습니다.   

 듣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보지만 알아보지 못하니
 법을 설하더라도
 어리석은 자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깟사빠여, 비록 그대
 열 손가락에 열 개의 횃불을 들더라도
 그는 형색을 보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그런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깟사빠곳따 존자는 밀림에 사는 신의 자극을 받아서 경각심이 생겼다.

 

sambahulāsuttam (SN 9.4-많음 경)
22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비구들이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구들은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 유행을 떠났다. 그러자 그 밀림에 사는 신이 비구들을 친견하지 못하게 되자 탄식하면서 이 사실에 대해서 이 게송을 읊었다. 

 

“많은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니
 오늘 내게 슬픔이 생기네.
 많이 배워서 여러 가지를 설하시던
 고따마의 제자들은 어디로 가셨을까?”

이렇게 말하자 다른 신이 그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마가다로도 가셨고 꼬살라로도 가셨고
 어떤 분들은 왓지 땅으로 가셨습니다.
 마치 줄에서 풀려난 사슴들처럼
 비구들은 집이 없이 머뭅니다.” 

 

*사슴은 산록이나 밀림에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좋은 초지나 위험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그들은 이것은 부모에게서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집이 없는 비구들도 이것은 우리 스승과 은사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집착하지 않으면서 정해진 곳이 없이 적당한 기후나 적당한 음식이나 적당한 동료나 적당한 거처나 적당한 법의 가르침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곳에 머문다.(SA.i.291)

 

ānandasuttam (SN 9.5-아난다 경)

22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비구들이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재가자들에게 설법을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아난다 존자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본경은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 세존의 화장을 마치고 마하깟사빠 존자가 주장하여 하안거에 세존의 가르침을 합송하기로 결의하여 오백 명의 비구들을 선임하였으며 아난다 존자도 그 가운데 포함되었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숲에 들어가서 더 높은 세 가지 도(일래도부터 아라한도까지)를 얻도록 정진하라고 당부한다. 아난다 존자는 그때까지 예류과를 얻었을 뿐이다.
아난다 존자는 본경에서 보듯이 꼬살라 지방의 숲에 들어와서 정진을 하려 하였지만 매일 재가신도들이 찾아와서 세존을 반열반을 슬퍼하자 그들에게 무상의 가르침을 설하기에 바빴다. 그러자 이 신은 아난다 존자가 아라한이 디어 1차합송에 참석해야 경의 결집이 가능함을 알고 아난다 존자가 절박감이 생겨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 본경의 게송을 읊은 것이다.(SA.i.292)

 

"밀림의 깊숙이 나무 아래 들어가서

 그대는 열반을 가슴에 간직하고

 고따마여, 삼매에 드십시오. 방일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혼란해서 그대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밀림에 사는 신의 자극을 받아서 경각심이 생겼다.

 

anuruddhasuttam (SN 9.6-아누룻다 경)
22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잘리니라는 삼십삼천의 무리에 속하는 어떤 천신이 있었는데 그는 아누룻다 존자의 전생의 아내였다. 그가 아누룻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잘리니(Jālinī)는 문자적으로 ‘그물에 거는 여자’라는 뜻이다. 본서 「잠 경」(S4:7)에서 갈애(taṇhā)의 동의어로 나타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녀는 바로 앞의 전생에 아누룻다 존자가 삼십삼천의 천신이었을 때 그의 아내였다고 한다.(SA.i.293)   

[잘리니]
“그대가 예전에 머물던 곳으로 마음을 향하십시오.
 모든 감각적 쾌락들이 충족되는 삼십삼천에서
 천상의 여인들에 에워싸여 존경받으며
 그대는 빛날 것입니다.”

[아누룻다 존자]
“자기 존재 있음[有身]에 확고한
 천상의 여인들은 불행하다.
 천상의 여인들에 빠진
 그 중생들도 역시 불행하다.”

 

*'자기 존재 있음[有身.유신.sakkaya]'이란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온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이것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천신들은 8가지로 자기 존재에 확고하다. 그것은 탐욕(raga), 성냄(dosa), 어리석음(moha), 자만(mana), 견해(ditthi), 잠재성향(anusaya), 의심(vicikiccha), 들뜸(uddhacca)이다.  
*'불행한(duggata)'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머무는 곳이 불행한 곳(악도)이라서 불행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좋은 곳(선처)에 머물면서 번영을 누리기 때문이다. 도닦음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은 불행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한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떨어져 지옥에도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SA.i.293)  

[잘리니]
“남성 천신들의 거주처이고
 영광스러운 삼십삼천의
 난다나 정원을 보지 못한 자들은
 지극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누룻다 존자]
“어리석을 사람이여, 그대는 아라한들의 이런 말씀도 모르는가?”
‘형성된 것들[諸行]은 참으로 무상하여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법이다.
일어났다가는 소멸하니
이들의 가라앉음 진정한 행복이다.’ 

잘리니여, 이제 내가 천상의 무리에
다시 거주함은 없을 것이다.
태어남의 윤회는 이것으로 끝났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을 것이다.”

nāgadattasuttam (SN 9.7-나가닷따 경)
22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나가닷따 존자는 꼬살라의 어떤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나가닷따 존자는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갔다가 너무 늦게 돌아왔다. 그러자 나가닷따 존자를 연민하고 나가닷따 존자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나가닷따 존자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나가닷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나가닷따 존자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앙굿따라 니까야」「 유학 경」(AN5.90)는 '재가자들과 섞여 지내고 부적절하게 재가자들과 교제하며 지내는 것'과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고 정오를 지나서 돌아오는 것'을 유학인 비구를 망가지게 하는 세 번재와 네 번째 법으로 들고 있다.   

“나가닷따여, 너무 일찍 들어갔다 너무 늦게 돌아오면서
 그들(재가자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나누어 가지니
 그대는 재가자들과 너무 오랜 시간 가까이 지냅니다.

  나가닷따가 신도 집에 발이 묶이는 것을
  내가 이제 크게 걱정합니다.
 막강한 죽음의 왕, 저 종말을 만드는 자
 그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러자 나가닷따 존자는 밀림에 사는 신의 자극을 받아서 경각심이 생겼다.


kulagharaṇīsuttam (SN 9.8-집안 안주인(가정주부) 경)
22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비구가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그 비구는 어떤 신도 집과 지나치게 친밀하게 지냈다. 그러자 그 비구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원하는 숲에 사는 신(여신)이 그 비구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 집안의 안주인 모습을 나툰 뒤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비구는 세존으로부터 명상주제를 받고 이 숲에 와서 수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날 탁발을 나갔을 때 어떤 신도 집에서 그의 반듯한 행동거지에 큰 신뢰가 생겨서 오체투지로 탁발음식을 공양하면서 항상 자기 집에 와서 탁발을 하라고 요청하였다. 장로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들의 후원으로 열심히 정진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고마워서 계속해서 같은 곳에 머물면서 과의 증득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밀림에 사는 신이 이 장로가 아라한과를 얻은 줄을 알지 못하고 그가 그 집안의 안주인과 너무 가깝게 지낸다고 생각하여 장로를 비난하기 위해 와서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SA.i.294-295)

[어떤 신]
“강의 언덕에서도 쉬는 곳에서도
 집회소에서도 길에서도
 사람들은 함께 모여 수근수근 합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냐고요.”

[비구]
“귀에 거슬리는 많은 소리들이 있으니
고행자는 그것을 견뎌야 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언쨚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오염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람소리에 놀라는 숲 속의 사슴처럼
그런 소리에 놀란다면
그를 두고 마음이 가벼운 자라 합니다.
그의 서원 어디서도 성취되지 못합니다.”

 

vajjiputtasuttam (SN 9.9-왓지 출신 경)
22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왓지 출신 비구가 웨살리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웨살리에는 밤새도록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그 비구는 웨살리에서 악기와 음악으로 요란한 소리를 듣고 탄식하면서 이 사실에 대해서 이 게송을 읊었다.

 

*왓지 출신 비구(Vajjiputtaka bhikkhu)는 왓지국의 왕자였는데 왕궁을 버리고 출가하였다.(SA.i.295)

“숲 속에 버려진 나무 토막처럼
우리는 숲에서 혼자 머물고 있는데
이와 같은 밤에
우리보다 더 불쌍한 자 누가 있을까?”

그러자 그 비구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에게 절박감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숲 속에 버려진 나무 토막처럼
 그대는 숲에서 혼자 머물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대를 부러워합니다.
 지옥 중생들이 천상으로 가는 자들을 부러워하듯이.”

그러자 그 비구는 밀림에 사는 신의 자극을 받아서 절박감이 생겼다.

 

sajjhāyasuttam (SN 6.10-암송 경)
23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비구가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그 비구는 처음에는 지나치게 암송을 많이 하며 머물다가 나중에는 무관심해져서 침묵하며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자 그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로부터 더 이상 법을 듣지 못하게  되자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비구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열심히 독송을 했고, 사라진 소리에 대해 부서짐이라고 명상하여 차츰 파생된 물질, 근본 물질, 정신과 물질 등 오온에 대해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 뒤에 '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독송을 했는데 이제 그 목적을 성취하였다. 그러니 이제 내가 더 독송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독송하기를 그만두고 과의 증득의 행복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SA.i.296)

[어떤 신]
“비구여, 왜 그대는 비구들과 함께 살면서
 법의 구절들을 암송하지 않습니까?
 법을 들으면 청정한 믿음 내게 되고
 [암송자는] 지금∙여기에서 칭송을 받습니다.”

[비구]
“탐욕의 떠남을 성취하기 전까지는
 이전에 법의 구절들 좋아하였습니다.
 탐욕의 떠남을 성취한 이후로는
 보고 듣고 생각한 것 잘 알아
 그것을 버릴 것을 참 사람들은 말씀합니다.”

akusalavitakkasuttam (SN 9.11-지헤롭지 못함 경)
2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비구가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그 비구는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 들어가서는 삿되고 해로우며 오염원에서 비롯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과 성냄에 대한 생각과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러자 그 비구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게송들로 말했다.

“존자여, 지혜 없이 닦고 있기 때문에
 그대는 [자신의] 생각에 압도되어 버렸습니다.
 지혜롭지 못함을 이제 쓸어버리고
 그대는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스승과 법과 승가와
 자신의 계행을 토대로 해서
 그대는 의심할 여지없이
 환희와 희열과 행복을 얻게 되고
 그대가 기쁨으로 가득찰 때
 그대는 괴로움을 끝낼 것입니다.”

그러자 그 비구는 밀림에 사는 신의 게송을 듣고서는 절박감이 생겼다.

 

majjhantikasuttam (SN 9.12-대낮 경)
23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비구가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어떤 신]
“정오에 이르자
 새들마저 조용히 쉬고 있는데
 광활한 숲 스치는 소리가 있어
 저에게는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비구]
“정오에 이르자,
 새들마저 조용히 쉬고 있는데
 광활한 숲 스치는 소리가 있어
 나에게는 즐거움이 생겨납니다.”

 

pākatindriyasuttam (SN 9.13-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음 경)
23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비구들이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경솔하고 거만하고 허세를 부리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혼란하여 감각의 근이 제어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자 그 비구들을 연민하고 그들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들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게송들로 말했다.

“예전에 고따마의 제자인 비구들은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바라는 것 전혀 없이 탁발음식 구하였고
 바라는 것 전혀 없이 침상과 좌구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무상함을 알아
 괴로움을 종식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의 촌장처럼
 스스로의 부양조차 힘들게 되었으며
 계속해서 먹어댄 뒤 두러누워 버립니다.
 남의 집에 있는 것들을 갈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승가에 합장하여 예배드리고
 여기 저는 어떤 분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버려졌고 주인이 없습니다.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와도 같습니다. 

 저의 말은 방일하여 머무는 분들을 두고 한 것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분들에게 저는 귀의하옵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밀림에 사는 신의 게송을 듣고서 절박감이 생겼다.

 

gandhatthenasuttam (SN 9.14-향기 도둑 경)
23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어떤 비구가 꼬살라의 어떤 밀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그 비구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서 연못으로 들어가서 연꽃의 냄새를 맡곤 했다. 그러자 그 비구를 연민하고 그의 이익을 바라는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에게 절박감(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이 신은 그 비구가 줄기를 잡고 연꽃의 향기를 맡는 것을 보고 '이 비구는 스승으로부터 명상주제를 받고 사문의 법을 행하기 위해 숲에 들어와서는 향기를 대상으로 명상을 하는구나, 오늘 냄새를 맡고 내일도 냄새를 맡으면 그 향기에 대한 갈애가 증장하여 금생과 내생의 이로움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가까이 가서 그를 경책해야겠다.'라고 하면서 그에게 다가가서 게송을 읊은 것이다.(SA.i.297-298)

[어떤 신]
“그대에게 주지도 않은
 물에 핀 연꽃 향기를 맡는 것은
 존자여, 일종의 도둑질과 같으니
 그대는 향기의 도둑입니다.”
  
[비구]
“나는 갖지도 않고 꺾지도 않고
 다만 물에 핀 연꽃의 향기만 맡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대는 나를 향기의 도둑이라 말합니까?

 줄기를 파내는 자들과
 꽃들을 꺾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거친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습니까?”

[어떤 신]
“하녀의 젖은 앞치마처럼
 사람이 잡다하고 흉포하다면
 그에게는 아무 말도 필요 없지만
 그대에게는 말을 해야 합니다.

 흠이 없는 사람은
 항상 청정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단지 머리털만한 죄악도
 구름만큼 [크게] 여겨집니다.”
 
[비구]
“정령이여, 분명 그대는
 나를 알고 나를 연민합니다.
 정령이여, 그대가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다시 내게 말해 주십시오.” 

[어떤 신]
“나는 그대의 후원을 받아 살지 않고(의지하여 살지 않고)
 그대의 하인도 아닙니다.
 비구여, 선처로 가는 길은
 그대 스스로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 그 비구는 밀림에 사는 신의 게송을 듣고 절박감이 생겼다. 


*그 신은 ‘이 비구는 자신의 이로움을 바라는 신이 있어서 자신을 경책해 주고 인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방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해야겠다.’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SA.i.298-299)

 

숲 상윳따(S9)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