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10상윳따 - 약카(야차) 상윳따(Yakkha samyutta. S10:1-S10:12)

실론섬 2014. 4. 27. 16:41

제10주제(S10) 약카(야차) 상윳따
Yakkha-saṁyutta (SN 10.1-12)

indakasuttaṃ (SN 10.1-인다까 경)
23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인다꾸따 산에 있는 인다까 약카의 거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인다까 약카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약카(yakkha)'는 중국에서 야차(夜叉)로 한역되었다. 이 단어는 vyaks 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문자적으로 '재빨리 움직이는 존재'를 뜻한다. 그러나 빠알리 주석서에서는 vyaj에서 파생된 명사로 간주하여 '그에게 제사 지낸다. 그에게 제사음식을 가져간다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224) 혹은 '예배를 받을만한 자라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333)고 풀이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 「빠야시 경」(D23)에서 보듯이 약카는 일반적으로 비인간(amanussa)으로 묘사되고 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천신을 이처럼 약카로 부르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들은 아귀(peta)들보다 높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며 선한 아귀들을 약카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PvA.45;55) 그들은 많은 계통이 있는데 후대 문헌으로 올수록 우리말의 정령, 귀신, 요정, 유령, 도깨비 등 나쁜 비인간인 존재들을 모두 일컫는 말로 정착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약카는 힘이 아주 센 비인간을 뜻한다. 그래서 「디가 니까야」 「암밧타 경」(D3)에는 금강수 약카(Vajirapani)가 금강저(벼락)를 손에 들고 세존 곁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래서 신들의 왕인 삭까(Sakka)도 약카로 표현되기도 하며(MA37), 본서 「삭까 상윳따」(SN11) 「삭까의 예배 경」(SN11.19)에서 삭까의 마부 마딸리는 세존도 약카로 지징하고 있으며, 「맛지마 니까야」 「우빨리 경」(M56)의 세존을 찬탄하는 게송에서 우빨리 장자도 세존을 약카로 부르고 있다. 자이나교에서도 약카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고 있다. 

 

 [인다까 약카]
“물질은 생명이 아니라고 여래.정등각들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몸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뼈와 간 등 덩어리는 어디서 온 것이며
  어떻게 그들이 모태에 안착합니까(모태에 생명이 잉태됩니까?)”   

 

[세존]
“맨 처음 깔랄라 상태가 있다.
 깔랄라로부터는 압부다가 된다.

 임신후 2주째 태아가 된다.
 압부다에서 빼시가 생기고
 빼시가 성장하여 가나가 된다.
 가나에서 다시 빠사카와
 머리털, 몸털, 발톱 생겨난다. 


*깔랄라(kalala.진흙같은 상태)
  압부다(abbuda.종기같은 상태. 임신 2주째의 태아)
  빼시(pesi.덩어리 상태. 태아의 세 번째 단계)
  빠사카(pasaka. 팔 다리등 가지부분)

 어머니가 먹는 밥과 마실 것과 음식에 의해
 모태에 든 존재는 모태 속에서
 그것으로 거기서 살아간다.(생명을 유지한다).” 

 

sakkanāmakasuttam (SN 10.2-삭까나마까 경)  
23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삭까라는 이름의 약카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삭까 약카]
“모든 매듭 제거하여 해탈한 
 그런 사문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
 결코 좋은 일(옳은 일)이 아닙니다.”   

[세존]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사람들과
 삭까여, 친근함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지혜로운 자는 그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자신의 마음이 동요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만일 깨끗한 마음으로 
 그가 남을 가르친다면
 그 때문에 속박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연민과 동정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연민(anukampa)과 동정(anuddaya)은 세속적인 애정(sineha)때문에 오염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남들을 가르쳐도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SAT.i.270)  

 

sūcilomasuttaṃ (SN 10.3-수찔로마 경)
237. 한 때에 세존께서는 가야의 땅기따만짜에 있는 수찔로마 약카 거처에서 머물고 계셨다.

 

*문자적으로 수찔로마(Suciloma)는 침(바늘,suci)으로 된 털(loma)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그의 몸이 온통 침과 같은 털로 덮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깟사빠 세존 시대에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지만 어떤 특별함도 증득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는 죽어서 이곳 가야 마을의 입구에 있는 쓰레기 더미에 약카로 태어났다고 하며 온몸에 침과 같은 털이 생겼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그가 예류과를 증득할 인연이 있음을 아시고 그에게 법을 설하기 위해 그가 사는 땅끼따만짜(manica는 침상이라는 뜻임)로 가신 것이다. 땅끼따만짜는 석판으로 된 것인데 네 개의 다른 석판 위에 놓인 것이라고 한다.(SA.i.302)

 

그 무렵 카라 약카와 수찔로마 약카가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카라 약카가 수찔로마 약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사문이다.”라고.
“저 사람은 사문이 아니라 가짜 사문이다. 저 사람이 사문인지 가짜 사문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수찔로마 약카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몸을 가까이 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몸을 멀리했다. 그러자 수찔로마 약카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나를 두려워하는가?”라고.
“도반이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그대와 접촉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고.

 

*약카는 무서운 모습을 만든 뒤 큰 입을 벌리고 침으로 된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몸을 세존에게 가까이 했다. 이런 그는 마치 똥과 같고 불과 같고 맹독을 가진 독사와도 같아서 피해야 하는 존재이다. 황금과 같은 피부를 가진 세존의 몸에 닿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나쁜 것이다. 약카는 자신과 닿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SA.i.303)


“사문이여, 그대에게 질문을 할 것이오. 만약 나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대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거나, 그대의 심장을 찢어버리거나, 발을 잡고서 강가 강 너머로 던져버릴 것이다.”
“도반이여,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 세계, 신이 사는 세계에서 나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거나, 나의 심장을 찢어버리거나, 발을 잡고서 강가 강 너머로 던져 버릴 수 있는 자를 나는 보지 못한다. 그러나 도반이여,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대는 질문하라.”   
그러자 수찔로마 약카는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수찔로마 약카]
“탐욕과 성냄의 근원은 무엇입니까(어디가 인연입니까)?
 불쾌와 기뻐함과 공포는 어디에서 생깁니까?
 어디에서 생겨날 때 마음의 생각들은 
 아이들이 까마귀를 묶어서 놓아주는 것처럼 이리저리 날아 다닙니까?”  

 

*아이들이 까마귀를 잡아서 그것의 다리에 긴 실을 묶어서 그 다른 끝을 자신들의 손가락에 묶은 뒤에 까마귀를 날려 보낸다. 그러면 까마귀는 어느 정도까지 날아가다가 다시 그 아이들의 발아래 떨어지고 만다. 즉 이렇게 하여 까마귀를 날려보내면 까마귀는 그 실의 근원이 되는 아이들의 손가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애욕, 성냄, 불만, 기뻐함, 공포 등은 마음속 생각들은 어디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를 세존께 여쭙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그 모든 생각은 바로 애정에 묶여 있고 자기 자신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뒤 이러한 근원을 없애버리면 폭류로 비유되는 생사의 흐름을 건너게 된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세존]
 “탐욕과 성냄은 여기가 인연이다.
  불만과 기뻐함과 공포는 여기에서 생긴다.
  여기에서 생겨날 때 마음속 생각들은 
  아이들이 까마귀를 묶어서 놓아주는 것처럼 이리저리 날아 다닌다.   

 

*'여기가 인연이다'고 하는 것은 이 자기 존재가 바로 근원이라는 말이다. 마치 긴 실로 아이들의 손가락에 묶인 까마귀처럼 삿된 생각들은 이러한 자기 존재에서 생겨나서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다.(SA.i.304)

 

  애정에서 생긴 것, 자신에게서 생긴 것, 니그로다 나무의 몸통에서 생긴 것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들은, 말루와 넝쿨이 숲에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널리 퍼진다.

 

*'니그로다 나무의 몸통에서 생긴 것'은 니그로다 나무의 줄기에서 뿌리가 나서 그것이 아래로 자라 땅에 닿으면 기둥과 같은 굳은 뿌리 혹은 새로운 줄기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여 니그로다 나무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뿌리와 줄기를 만들면서 확장되어 간다.
*'말루와 넝쿨이 숲에서 퍼져나가는 것처럼.'은 것은 마치 말루와 넝쿨이 어떤 나무를 의지해서 자라서는 그 나무를 뿌리부터 나무 끝까지 그리고 끝으로부터 뿌리까지 에워싸고 둘러싸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와 같이 오염원인 여러 가지 감각적 쾌락들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에워싸고 있다. 혹은 여러 중생들은 이러한 오염원인 감각적 쾌락들로 감각적 쾌락의 대상들을 에워싸고 있다는 뜻이다.(SA.i.304)
말루와 넝쿨이 온 숲에 퍼지듯이 중생들의 감각적 쾌락은 이 대상과 저 대상으로 온 대상으로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어디로부터의 인연인지 꿰뚫어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떨쳐버린다. 약카여, 들으라.
 그들은 다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이전에 건너지 못한, 건너기 힘든 이 폭류를 건넌다."

 

*'건너기 힘든(duttara)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집성제(samudaya-sacca =갈애)를 제거하여 이 건너기 어려운 오염원의 폭류를 건넌다는 뜻이다. '이전에 건너지 못한(atinna-pubba)'이란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윤회에서 꿈에서라도 전에 건넌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다시 존재가 되지 않는다)(apuna-bbhavaya)'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음이라 불리는 멸성제(nirodha-sacca=열반)을 말한다. 이처럼 본 게송은 사성제를 밝히면서 아라한과를 정점으로 하여 가르침을 완결하셨다.
이 설법을 통해서 수찔로마는 그 자리에 서서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면서 지혜를 일으켜서 예류과(sotapatti-phala)를 증득하였다. 예류과를 얻은 자는 망가진 몸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가 예류과를 얻는 것과 더불어 그의 몸에 난 침과 같은 털은 모두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땅의 신의 외모(bhumma-devata-parihara)를 얻게 되었다.(SA.i.304-305)

 

maṇibhaddasuttam (SN 10.4-마니밧다 경)  
23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마가다의 마니말라까 탑묘에 있는 마니밧다 약카의 거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니밧다 약카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마니밧다 약카]
“마음 챙기는 자는 항상 행운이 함께 하고(항상 좋은 일이 있고)
 마음 챙기는 자는 큰 행복을 얻습니다. 
 마음 챙기는 자는 매일매일 더 나아지고
 아울러 그는 증오로부터  벗어납니다.”

[세존]
“마음 챙기는 자는 항상 행운이 함께 하고
 마음 챙기는 자는 행복을 얻는다.
 마음 챙기는 자는 매일매일 더 나아지지만
 결코 증오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그의 마음
  항상 남을 해치지 않음을 기뻐하고
  모든 존재에 자애를 가진 자는
  누구에 대해서건 증오를 품지 않는다.”

 

sānusuttam (SN 10.5-사누 경)  
239.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사누라는 어떤 청신녀의 아들이 약카에게 사로잡혔다(씌었다). 그때 그 청신녀는 탄식하면서 이 사실에 대해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사누(Sanu)는 이 청신녀의 외아들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사미로 출가하여 계행을 잘 지키었는데 구족계를 받을 나이가 되어서는 출가생활에 만족하지 못하여 환속을 하려고 어머니 집으로 왔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하고 음식을 준비하러 갔다. 그 사이에 전생에 그의 어머니였던 여자 약카(yakkhini)가 그의 환속을 막기 위해서 그를 사로잡아 땅에 내팽개쳐버렸다. 그리고는 사지를 떨고 눈동자가 풀리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하였다. 그의 현생의 어머니가 돌아와서 이 모습을 보고 아래의 게송을 읊었다.(SA.i.305-307)      

[청신녀]
“열나흘 날과 보름날, 보름의 여덟째 날
 혹은 그 외의 특별한 기간에
 여덟 가지 구성요소 원만하게 잘 갖춘
 [팔관재계 실천하는] 포살을 준수하고

 청정범행 잘 닦는 그러한 사람들을
 어느 약카도 농락하지 못한다고
 아라한들로부터 나는 들었습니다.
 그런 내가 이제 오늘 사누를 농락하는
 험상궂은 약카를 보게 되었습니다.”   

[약카]
“열나흘 날과 보름날, 보름의 여덟째 날
 혹은 그 외의 특별한 기간에
 여덟 가지 구성요소 원만하게 잘 갖춘
 [팔관재계 실천하는] 포살을 준수하고

 청정범행 잘 닦는 그러한 사람들을
 어느 약카도 농락하지 못한다고
 아라한들로부터 그대가 들었다니
 그런 그대 참으로 훌륭하다.   

 사누가 깨어나면 약카들의 다음 말을 전해 주어라.
 ‘드러나건 드러나지 않건 삿된 업 짓지 말라.
 삿된 업 지으려고 하거나 짓고 있다면
 그대가 아무리 위로 날아 도망친다 하더라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청신녀의 아들 사누]
“어머니, 사람들은 죽은 자나
 혹은 살아 있어도 그를 볼 수 없을 때 웁니다.
 어머니, 그런데 살아있는 저를 보면서
 당신은 왜 저 때문에 울고 계십니까?”   

 

*약카는 앞의 게송을 말하고 사누를 놓아 주었다. 사누가 눈을 떴을 때 그의 어머니는 머리칼을 흩트리며 울고 있었다. 사누는 자신이 약카에게 잡힌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SA.i.307)

[사누의 어머니]
“아들이여, 사람들은 죽은 자나
 살아있어도 그를 볼 수 없을 때 울지만
 감각적 쾌락을 버려 [출가를 하고 나서]
 다시 여기 환속한 자를 보고 사람들은 운다.
 그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랑스런 자여, 그대 뜨거운 불더미에서 뛰쳐나와서는
 다시 뜨거운 불더미로 뛰어들기를 원하고
 혹독한 지옥에서 뛰쳐나와서는
 다시 그대 지옥에 빠지기를 원하는구나.  

 계속해서 달리시오(달아나게). 행운은 그대의 것(행운이 함께 하기를).
 누구에게 우리 슬픔 하소연 한단 말이오?
 불로부터 물건을 꺼내었는데도
 그대 다시 불타기를 원하고 있구나.”

 

*'누구에게 우리가 슬픔을 하소연한단 말이오'라는 것은 그대가 환속하려 하다가 약카에게 붙들리게 되면 이런 모욕을 우리가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것이다.(SA.i.308)  
*그대는 마치 불로부터 재물을 끄집어낸 것처럼 세존의 교법으로 출가하였다가 다시 대화재와 같은 재가의 삶 속에서 불타기를 원하는구나라는 뜻이다.(SA.i.308)  
주석서에 의하면 약카의 개입과 어머니의 설득으로 사누 사미는 환속할 생각을 버리고 구족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구족계를 받은 뒤 오래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얻었고 뛰어난 설법자가 되었으며 12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SA.i.308)   

 

piyaṅkarasuttam (SN 10.6-삐양카라 경)  
24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아누룻다 존자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법의 구절들을 외웠다. 그때 삐양까라의 어머니 약카가 아들을 조용하게 하였다.

“삐양까라야, 소리를 내지마라.
 비구가 법의 구절들을 외우시는구나.
 법의 구절들을 잘 이해하면
 우리도 이로움을 위해 정진할 수 있단다.   

 생명들을 [죽이는 것] 삼가고
 고의적으로 거짓말 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계행을 잘 닦으면
 우리는 약카의 경계에서(모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단다.”
 
punabbasusuttam (SN 10.7-뿌납바수 경)  
241.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열반에 관한 법을 설하시어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리고 비구들은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온 마음을 다하여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다. 그때 뿌납바수의 어머니 약카가 아이들을 조용하게 하였다.

[뿌납바수의 어머니]
“조용히 해라, 웃따리까야.
 조용히 해라, 뿌납바수야.
 스승이시고 으뜸이신 정등각자
 그분의 법을 나는 듣고자 한다.   

 모든 매듭을 풀어버린 열반을
 세존께서 말씀하고 계시니
 이런 법에 대한 깊은 감동이
 내게 생겨났다.   

 세상에서 아들은 사랑스럽고
 세상에서 남편도 사랑스럽지만
 내게는 이런 법을 추구하는 것이
 이보다 더 소중하단다.   

 아들이나 남편은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니
 정법을 들어야 생명 가진 자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단다.   

 참으로 이 세상은 괴로움에 흠뻑 젖고
 늙음과 죽음에 세게 묶여 있지만
 [세존은] 완전하게 법을 깨달으셨나니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바로 그 법을 듣고자 한다.
 그러니 뿌납바수야, 조용히 하거라.”

[뿌납바수 약카]
“어머니,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웃따라도 곁에서 조용히 있습니다.
 그러니 오직 법만을 경청하세요.
 정법을 듣는 것은 행복이랍니다.
 정법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처럼 괴롭게 산답니다.   

 미혹에 빠져 있는 신과 인간들에게
 광명을 주시는 분, 눈을 가지신 분
 마지막 몸 받으신 그분 세존 정등각
 그분 세존께서 법을 설하십니다.”   

[뿌납바수의 어머니] 
“내가 낳아 내 가슴에서 자라난
 나의 아들 현명하니 참으로 장하구나.
 내 아들은 으뜸이신 부처님의 청정한 법
 그런 법을 사랑하니 크게 경이롭구나.   

 뿌납바수야, 행복하라.
 오늘 나는 마침내 미혹에서 벗어났단다.
 성스러운 진리를 보았단다.
 웃따라야, 너도 내 말을 들어라.”

 

sudattasuttaṃ (SN 10.8-수닷따 경)
24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시띠와나(차가운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어떤 일 때문에 라자가하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라고 들었다. 듣자마자 세존을 친견하러 가고자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나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오늘은 세존을 친견하러 갈 적당한 시간이 아니다. 이제 나는 내일 적당한 시간에 세존을 친견하러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세존을 친견하러 가기 위한 시간을 마음에 새기면서(때맞춰 일어나야 한다는) 누웠지만 깊이 잠들지 못하고 중간에 새벽이 다 된 줄 알고 밤에 세 번이나 일어났다. 그래서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공동묘지의 문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비인간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세존께서 머물고 계신 차가운 숲으로 가고자 도시에서 나가는 아나따삔디까에게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나타났다. 두렵고 놀라고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되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때 시와까 약카가 소리쳤다.

 

*아나타삔디까[급고득] 장자(Anathapindika gahapati)가 처음 세존을 친견한 일화는 율장(Vin.ii.154-159)에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나타난다. 율장에 따르면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세존을 처음 친견한 것은 세존께서 성도하신 다음 해에 그가 사업상 라자가하를 방문했을 때라고 한다.(Vin.ii.154) 그의 원래 이름은 수닷따(Sudatta)였으며 아나타삔디까는 애칭으로 '무의탁자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사왓티의 상인인 수마나 장자(Sumana-setthi)의 아들이다. 우리에게 수보리 존자로 잘 알려진 수부띠 존자(ayasma Subhuti)존자는 장자의 동생이다. 
그리고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제따 왕자와 함께 제따 숲(Jetavana)ㅇ 지어서 승단에 기증한 사원의 이름이 아나타삔디까 승원(Anathapindikassa arama) 즉 급고독원이다. 이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은 우리나라에서 기원정사로 알져니 곳이고, 세존께서 말면 19년 동안을 여기서 보내셨다고 한다.(DhA.i.3;Bua3;AA.i.314)  

*“그는 밤의 초경이 지날 무렵 잠에서 깨어 세존을 계속해서 생각하자 강한 청정한 믿음이 생겼고 희열의 빛(Pīti-āioka)이 생겨 모든 어둠이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천 개의 등불을 켠 것과 같았고 태양이 떠오른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미 새벽이 되어 해가 뜬 줄 알고 승원으로 떠날 채비를 한 것이다. 밖에 나와서 달을 보고는 단지 초경이 지났음을 알았다. 2경과 3경에도 마찬가지였다.

*본경에서 보듯이 차가운 숲(Sitavana) 근처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주석서에 의하면 장자는 이 때문에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빛과 어둠의 교차는 장자 내면의 믿음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코끼리 백마리와 말 백마리와 노새가 끄는 마차 백대와

 보석과 귀고리로 장식한 십만의 처녀도

 한 걸음 내딛는 발자국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대에게 더 낫습니다. 뒤돌아 가지 마십시오.”

 

그러자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나타났다. 두렵고 놀라고 소름 돋는 것이 진정되었다. 두 번째도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나타났다. 두렵고 놀라고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되돌아가고 싶어졌다. 두 번째도 시와까 약카가 소리쳤다.

 

“코끼리 백마리와 말 백마리와 노새가 끄는 마차 백대와 
 보석과 귀고리로 치장을 한 십만의 처녀도
 여기서 한 발짝 내딛는 발자국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대에게 더 낫습니다. 뒤돌아 가지 마십시오.”   

장자에게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나타났다. 두렵고 놀라고 소름 돋는 것이 진정되었다. 세 번째도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나타났다. 두렵고 놀라고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되돌아가고 싶어졌다. 세 번째도 시와까 약카가 소리쳤다.

 

“코끼리 백마리와 말 백마리와 노새가 끄는 마차 백대와 
 보석과 귀고리로 치장을 한 십만의 처녀도
 여기서 한 발짝 내딛는 발자국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대에게 더 낫습니다. 뒤돌아 가지 마십시오.”   


그러자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나타났다. 두렵고 놀라고 소름 돋는 것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차가운 숲으로 세존께 다가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난 뒤 노지에서 경행을 하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는 경행을 멈추고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앉으신 뒤에 세존께서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오라, 수닷따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세존께서 나의 이름을 불러주셨다.'라며 즐겁고 행복해져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숙여 공경을 표한 뒤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편히 주무셨습니까?” 

 

[세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오점이 없고, 가라 앉았고, 재생의 조건에서 벗어난, 
 완전히 꺼진 바라문은 언제나 편히 잠잔다.

 모든 갈애를 끊고 마음에서 근심 잠재우고 
 마음의 평화에 도달한 뒤에 평화롭게 편히 잠잔다."

 

*“장자는 가면서 ‘내가 어떻게 스승이 깨달은 분(buddha-bhava)인지를 알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는 ‘많은 사람들은 [아나타삔디까이라는] 나의 덕에서 생긴 이름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문에서 지어준 이름인 [수닷따]는 아무도 모른다. 만일 그분이 세존이시라면 나를 가문에서 지어준 이름으로 불러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수닷따라고] 부르신 것이다.”(SA.i.315)  

 

pathamasukkāsuttam (SN 10.9-숙까 경1)  
24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숙까 비구니가 많은 회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하고 있었다. 그때 숙까 비구니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진 약카가 라자가하에서 이 거리 저 거리로, 이 광장 저 광장으로 다니더니 이 게송들을 읊었다.

 

*「장로니게 주석서」(ThigA)에 의하면 숙까 비구니(Sukka bhikkhuni)는 라자가하의 큰 장자집안 출신이다. 세존께서 라자가하에 오셔서 설법하는 것을 듣고 청신녀가 되었으며, 뒤에 담마딘나(Dhammadinna, 세존께서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비구니임) 비구니가 설법하는 것을 듣고 그녀의 곁으로 출가하여 오래지 않아서 무애해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라한이 된 뒤에 오백 명의 비구들에 둘러 싸여서 법을 설하였다고 한다. 본경에서 보듯이 그녀의 설법을 들은 약카가 환희심이 나서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게송을 읊고 있다.(ThigA.57-60) 그녀의 게송이 「장로니게」(Thig.54-56)으로 전해 온다.


“라자가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마치 그들은 술을 마신 듯이 잠들어 있고
 불사의 길을 설하는 숙까 비구니를 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법은] 거부할 수 없고
 감로수요 자양분을 두루 갖추었으니
 지혜로운 자 그것을 마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나그네가 구름을 마시듯이”   

 

*'마치 나그네가 구름을 마시듯이(valahakam eva panthagu)'란 열기에 타들어가는 여행자들이 구름이 내리는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SA.i.316)  

dutiyasukkāsuttam (SN 10.10-숙까 경2)
24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청신사가 숙까 비구니에게 음식을 보시하였다. 그때 숙까 비구니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진 약카가 라자가하에서 이 거리 저 거리로, 이 광자 저 광장으로 다니더니 이 게송들을 읋었다.

“모든 매듭으로부터 풀려난
 숙까  비구니에게 음식을 보시하여
 참으로 그는 많은 공덕 쌓았다.
 그 청신사 참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cīrāsuttam (SN 10.11-찌라 경)  
24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청신사가 찌라 비구니에게 옷을 보시하였다. 그때 찌라 비구니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진 약카가 라자가하에서 이 거리 저 거리, 이 광장 저 광장으로 다니더니 이 게송을 읊었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찌라 비구니에게 옷을 보시하여
 참으로 그는 많은 공덕을 쌓았다.
 그 청신사 참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āḷavakasuttam (SN 10.12-알라와까 경)  
24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알라위의 알라와까 약카의 거처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알라와까 약카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주석서는 본경에 얽힌 일화를 담고 있다.(SA.i.316)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알라위의 알라와까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약카에게 잡혔다. 약카는 왕을 먹어버리겠다고 위협하였고 왕은 매일 한 사람씩을 그의 먹이로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났다. 왕은 매일 죄수들을 보내었는데 마침내 죄수들이 다 보내지자 각 가정에서 아이를 차례로 한명씩 보내가로 명령하였다. 그러자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다른 지방으로 도망을 가버렸고 왕은 마침내 자신의 아들(알라와까 왕자)을 약카의 먹이로 보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세존께서는 약카의 사악함을 되돌리기 위해서 왕자가 보내지기 전날에 그의 동굴로 찾아가셨다. 약카는 히말라야에서 열리는 약카들의 회합에 참석하러 갔었고 세존께서는 약카의 동굴에 들어가서 약카의 왕좌에 앉으셔서 약카의 궁녀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이 소식을 들은 약카는 화가 나서 알라위로 돌아와서 본경에서처럼 자신의 왕좌에서 일어나서 나가라고 세존께 요구하는 것이다.     

“사문이여, 나가시오.”
 세존께서는 “알았노라, 도반이여.”라고 하면서 나가셨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세존께서는 “알았노라, 도반이여.”라고 하면서 들어가셨다.

두 번째로 약카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나가시오.”
세존께서는 “알았노라, 도반이여.”라고 하면서 나가셨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세존께서는 “알았노라, 도반이여.”라고 하면서 들어가셨다.

세 번째로 알라와까 약카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나가시오.”
세존께서는 “알았노라, 도반이여.”라고 하면서 나가셨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세존께서는 “알았노라, 도반이여.”라고 하면서 들어가셨다.

네 번째로 알라와까 약카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나가시오.”
“도반이여, 나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사문이여, 그대에게 질문을 할 것이오. 만약 나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대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거나, 그대의 심장을 찢어버리거나, 발을 잡고서 강가 강 너머로 던져버릴 것입니다.”  
“도반이여,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 세계, 신이 사는 세계에서 나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거나, 나의 심장을 찢어버리거나, 발을 잡고서 강가 강 너머로 던져 버릴 수 있는 자를 나는 보지 못한다. 그러나 도반이여,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대는 질문하라.”     

 

*세존께서는 거친 약카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설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가 시키는 대로 순응하셨지만 약카가 밤새도록 이렇게 하려는 것을 알고 네 번째에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주석서는 어머니와 우는 아이의 비유 등을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SA.i.326)  

*이 약카가 어렸을 때 약카의 부모는 깟싸빠 부처님을 친견하고 배웠던 여덟 가지 질문과 답을 이 약카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약카는 그 답은 잊어버렸지만 질문은 황금 두루마리에 주홍색 글씨로 써둔 것이 그의 동굴에 있었다.(SA.i.327)

[알라와까]
“무엇이 인간의 으뜸가는 재화(보물)이며
 무엇을 잘 닦아야 행복 가져옵니까?
 무엇이 참으로 가장 뛰어난 맛이며
 어떻게 살아야 으뜸가는 삶이라 부릅니까?”   

[세존]
“믿음이 인간의 으뜸가는 재화이며
 법을 잘 닦아야 행복 가져오는 것이다.
 진리가 참으로 가장 뛰어난 맛이며
 지혜로 살아야 으뜸가는 삶이라 부른다.”

[알라와까]
“어떻게 험한 물결을 건너고
 어떻게 험난한 바다를 건넙니까?
 어떻게 괴로움을 극복하고
 어떻게 청정하게 됩니까?”   

[세존]
“믿음으로 험한 물결을 건너고
 불방일로 험난한 바다를 건넌다.
 정진으로 괴로움을 극복하고
 지혜로 청정하게 된다.”

[알라와까]
“어떻게 지혜를 얻고
 어떻게 재물을 획득합니까?
 어떻게 명성을 얻고
 어떻게 우정을 맺습니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
 어떻게 슬퍼하지 않습니까?”   

[세존]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
 아라한들의 법에 믿음을 가지고
 방일하지 않고 주도면밀한 자는
 배우고자 함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적절한 것 행하고 충실하고(사리에 맞는 일을 하고 의무를 잘 지키며)
 진취적인 사람은 재물을 획득하고
 진실(정직함)로써 명성을 얻고
 보시로써 깊은 우정을 맺나니
 이렇게 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
 슬퍼하지 않는다.   

 진실, 길들임(다스림), 확고부동함, 베풂
 이런 네 가지 법 갖춘 믿음 있는 재가자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 슬퍼하지 않는다.   

 오라, 다른 여러 사문에게 물어보고
 바라문들에게도 역시 물어보라.
 진실, 길들임, 베풂, 인내보다
 뛰어난 것이 이 세상에 있는지를.”   

[알라와까]
“왜 제가 여러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물어보겠습니까?
 오늘 저는 미래의 이익을 철저히 알았습니다.

 세존께서는 저의 이익 위해서
 이곳 알라위에 와서 머무십니다.

 어디에 보시하면 큰 결실이 있는지를
 저는 오늘 여기서 철저히 알았습니다.

 그런 저는 완전하게 깨달으신 세존과
 수승한 그분 법에 귀의하고 예배하며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고
 이 성에서 저 성으로 다닐 것입니다."

 

*주석서는 이 이후의 일화를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약카가 이 게송을 말씀드렸을 때는 이미 태양이 떠올랐고 왕의 사람들이 아기 왕자를 희생의 재물로 약카에게 데려와서 약카에게 건네주었다. 약카는 그 어린아이를 세존께 드렸으며 세존께서는 축복의 게송을 읊으신 후 왕의 사람들에게 다시 되돌려주었다. 왕자는 장성하여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Alavaka)로 알려졌는데 그는 이 사람의 손(hattha)에서 저 사람의 손으로 건네졌기 때문에 가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재가에 있으면서 불환과를 증득하였으며 세존의 으뜸가는 재가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본서 「외아들 경」(SN17.23)에서 재가자의 모범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AN1.14)에서는 사섭법을 갖춘 자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칭송되고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 「발원 경」(AN2.12)과 「포부 경」(AN4.176)에서는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남자신도로 거명되고 있으며, 「핫타까 경」(AN8.23)에서도 칭송되고 있다.


 

약카 상윳따(S10)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