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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상윳따 - 사리뿟따 상윳따(Sariputta samyutta. SN28:1-SN28:10)

실론섬 2014. 5. 19. 21:53

제28주제(S28) 사리뿟따(싸리뿟따) 상윳따
Sāriputta-saṁyutta(SN 28.1-10)

 

vivekajasuttaṃ (SN 28.1-분리됨(떨침)에서 생기는 것 경)

332.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낮 동안의 홀로 머묾을 위해서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장님들의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장님들의 숲'은 Andha-vana를 옮긴 것인데 사왓티 남쪽에 있는 숲의 이름이다. 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거주하였다고 하며 특히 홀로 머묾에 전념하는 자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숲으로 알려졌다. 이 숲은 유래는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부처님의 탑을 조성하기 위해서 법을 암송하는 야소다라(Yasodhara)라는 성스러운 사람이 재물을 가지고 이 숲으로 갔다고 한다. 거기에는 500명의 도적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야소다라의 눈을 손상시켜버렸다. 그 업의 과보로 그들도 장님이 되어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곳을 장님들의 숲이라 불렸다고 한다.(SA.i.189) 이 숲은 사왓티에서 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제따 숲의 아나타빈띠까 승원으로 갔다.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여기, 도반이여, 나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과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초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초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초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초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초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초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avitakkasuttaṃ (SN 28.2-거친 사유 없음 경)

333.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여기, 도반이여, 나는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제2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제2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제2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제2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제2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제2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pītisuttaṃ (SN 28.3-기쁨 경)
334.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나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제3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제3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제3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제3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제3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제3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upekkhāsuttaṃ (SN 28.4-평정 경)
335.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나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제4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제4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제4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제4선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제4선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제4선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ākāsānañcāyatanasuttaṃ (SN 28.5-공무변처 경) 
336.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나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인식(지각)을 넘어서고, 장애(부딛힘)에 대한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을 내지 않아(기울이지 않아), ‘무한한 허공(끝이 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공무변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공무변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공무변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공무변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공무변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공무변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viññāṇañcāyatanasuttaṃ (SN 28.6-식무변처 경)

337.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나는 공무변처의 경지를 넘어선 ‘무한한 의식(끝이 없는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식무변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식무변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식무변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식무변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식무변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식무변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ākiñcaññāyatanasuttaṃ (SN 28.7-무소유처 경)
338.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나는 식무변처의 경지를 넘어선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무소유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무소유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무소유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무소유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무소유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무소유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uttaṃ (SN 28.8-비상비비상처 경)

339.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나는 무소유처의 경지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는 ‘나는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비상비비상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비상비비상처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nirodhasamāpattisuttaṃ (SN 28.9-멸(滅)의 증득 경)
340.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깨끗하고 빛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오늘 어떤 머묾으로 머무셨습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나는 비상비비상처의 경지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된 경지인 상수멸(想受滅, 인식과 느낌의 그침)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그런 나에게 ‘나는 상수멸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나는 상수멸을 성취한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을 성취했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에서 나왔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sūcimukhīsuttaṃ (SN 28.10-수찌무키 경)
341.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갔다. 라자가하에서 차례대로 빠짐없이 탁발을 하여 어떤 담벼락을 의지해서 탁발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여자 유행승 수찌무키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문이여, 그대는 고개를(얼굴을) 숙이고 먹습니까?” “자매여, 나는 고개를 숙이고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문이여, 고개를 들고 먹습니까?” “자매여, 나는 고개를 들고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문이여, 사방을 바라보며 먹습니까?” “자매여, 나는 사방을 바라보며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문이여, 중간 방향을 바라보며 먹습니까?” “자매여, 나는 중간 방향을 바라보며 먹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문이여, 그대는 고개를 숙이고 먹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사문은 ‘자매여, 나는 고개를 숙이고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그렇다면 사문이여, 고개를 들고 먹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사문은 '자매여, 나는 고개를 들고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그렇다면 사문이여, 사방을 바라보며 먹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사문은 '자매, 나는 사방을 바라보며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그렇다면 사문이여, 중간 방향을 바라보며 먹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사문은 ‘자매여, 나는 중간 방향을 바라보며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문이여, 도대체 그대는 어떻게 먹습니까?”

“누구든지, 자매여, 집터 보기와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하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자매여, '고개를 숙이고 먹는다.'라고 불립니다.  

누구든지, 자매여, 별자리 보기와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하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자매여, '고개를 들고 먹는다.'라고 불립니다. 

누구든지, 자매여, 심부름이나 전령을 하는 것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하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자매여, '사방을 바라보며 먹는다.'라고 불립니다. 

누구든지, 자매여, 몸의 특징으로 예언하기와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하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자매여, '중간 방향을 바라보며 먹는다.'라고 불립니다.

 

자매여, 나는 집터 보기와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하지 않고, 별자리 보기와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 않고, 심부름이나 전령을 하는 것과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 않고, 몸의 특징으로 예언하기와 같은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삶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나는 법답게 음식을 얻고, 법답게 음식을 얻은 뒤에 먹습니다.”


그러자 수찌무키 여자 유행승은 라자가하에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이 광장에서 저 광장으로 다니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문 사꺄의 아들들은 법답게 음식을 먹습니다. 사문 사꺄의 아들들은 비난받지 않고(결점 없이) 음식을 먹습니다. 사문 사꺄의 아들들에게 탁발음식을 공양하십시오.'라고.

 

 

사리뿟따 상윳따(S28)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