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연꽃은 나쁜 친구일까 아니면 선우(善友. 좋은친구)일까?

실론섬 2014. 5. 27. 13:50

붓다는 경전 곳곳에 나쁜 친구를 사귀는 해로움과 좋은 친구를 사귀는 이로움에 대하여 설법을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수행자들에게는 좋은 친구는 수행의 완전의 전부라고까지 단언하시고 계시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보면 나쁜 친구와 좋은 친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법하신다. 


“비구들이여, 이것 이외에 다른 어떤 법에 의해서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들이 일어나고, 또 이미 일어난 선법들이 버려지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나쁜 친구를 가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쁜 친구를 가진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들이 일어나고, 또 이미 일어난 선법들은 버려진다.”


“비구들이여, 이것 이외에 다른 어떤 법에 의해서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고, 또 이미 일어난 불선법들이 버려지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선우(善友)를 가짐이다. 비구들이여, 선우를 가진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고, 또 이미 일어난 불선법들은 버려진다.”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정법을 어지럽히고 사라지게 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나쁜 친구를 가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쁜 친구를 가짐은 정법을 어지럽히고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정법을 굳건히 머물게 하고 어지럽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선우를 가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선우를 가지는 것은 정법을 굳건히 머물게 하고 어지럽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나쁜 친구를 가짐이다. 비구들이여, 나쁜 친구를 가짐은 큰 해로움을 가져온다."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좋은 친구를 가짐이다. 비구들이여, 선우를 가지는 것은 큰 이로움을 가져온다."


경전에서 좋은 친구를 가짐의 이로움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구차하게 길게 사족을 달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다. 


연꽃은 그의 글에서 한국대승불교와 스님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여러번 같은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있다. 단 한번도 한국불교나 스님들에 대해서 칭찬하는 글을 본 기억이 없다. 그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불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쓰레기 같은 것이고 또한 스님들은 중생들이 보시하는 밥을 먹으면서 밥값도 못하는 적주비구들 뿐이다. 


그렇다면 재가불자 입장에서 그토록 한국불교와 승가를 비난하는 연꽃은 과연 얼마만큼 재가불자로써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남방권 불교나 빠알리어 니까야 경전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의 지식이 있을까? 실제로 그는 남방불교권에 와서 빠알리어 니까야를 공부하고 이곳 불교계의 현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난 후에 글을 쓰고 감상문을 쓰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여러번에 걸쳐서 한국불교의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한국불교의 정체성이나 수행승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엉터리 재가불자에게 있다고 주장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의 탓을 하기는 싶고 남을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기는 더더욱 쉽다. 자신은 엄격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엄격함을 요구하기는 누어서 떡먹기 보다 더 쉽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 재가불자들은 올바른가? 재가불자로써의 조건을 제대로 충족하면서 불자라고 천명하고 글을 쓰고 생활하고 불교를 비난하고 수행승들을 비난하고 있는가?


연꽃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초발심 불자들에게 극히 위험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준다. 교리적이나 경전적으로도 상당한 잘못이 있지만 더더욱 한국불교를 비난하고 수행승을 비난하는 자세는 응당 재가불자가 그렇게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상당히 크다.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 보고 우리가 올바른 재가불자로써 붓다의 말씀을 따르고 승가를 외호하고자 하는 글은 전혀 없으니 초발심 재가자들은 수행승에게 존경심이나 복전으로써의 공양을 드릴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불자라는 재가자들이 불교나 수행승들의 잘못만을 골라서 365일 앵무새처럼 떠든다면 이는 스스로 누워서 침뱉기와 조금도 다름없는 불교훼손 행위인 것이다. 재가자라고 하는 작자가 오히려 앞장서서 훼불행위를 하는 꼴이다. 그러는 그는 얼마만큼 재가불자로써 제대로 된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선한 친구와 악한 친구의 비유에서 보듯이 이런 연꽃 같은 악한 친구를 가진다면 그것은 그들 개인에게 엄청난 불행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연꽃을 외도라고 비난하면서 그의 글을 줄기차게 비판하는 주요 이유중의 하나이다. 악한 친구는 그 자신만이 잘못되는게 아니라 그를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마저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초심자들이나 초기불교를 좀더 알고자 하는 분들이 올바른 눈을 가져서 이런 악한 친구를 멀리하고 하루라도 빨리 선한친구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