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셋의 모음 - 2. 마차 제작자 품(Rathakāra-vagga. AN3.11-20)

실론섬 2014. 6. 11. 18:56

2. 마차 제작자 품 Rathakāra-vagga(AN3.11-20)

ñātasuttaṃ (AN 3.11-알려진 자 경)

11.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갖춘 잘 알려진 비구는 많은 사람의 손해와 많은 사람의 괴로움과 많은 사람의 퇴보를 위하여, 신과 인간의 손해와 괴로움을 위하여 실천한다. 어떤 세 가지인가?
적절치 못한 몸의 업에 대해 부추기고, 적절치 못한 말의 업에 대해 부추기고, 적절치 못한 법들에 대해 부추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을 갖춘 잘 알려진 비구는 많은 사람의 손해와 많은 사람의 괴로움과 많은 사람의 퇴보를 위하여, 신과 인간의 손해와 괴로움을 위하여 실천한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갖춘 잘 알려진 비구는 많은 사람의 이익과 많은 사람의 행복과 많은 사람의 번영을 위하여,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실천한다. 어떤 세 가지인가?
적절한 몸의 업에 대해 부추기고, 적절한 말의 업에 대해 부추기고, 적절한 법들에 대해 부추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을 갖춘 잘 알려진 비구는 많은 사람의 이익과 많은 사람의 행복과 많은 사람의 번영을 위하여,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실천한다.”  

 

sāraṇīyasuttaṃ (AN 3.12-기억해야 하는 것 경)
12. “비구들이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에게는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이런 세 가지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 태어난 곳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첫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끄샤뜨리야 왕이 머리에 의식을 치른 곳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두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전쟁의 승리자로서 그 전쟁의 정상에 선 곳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세 번째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이런 세가지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옷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곳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가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첫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 곳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가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두 번째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문 곳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가 목숨이 있는 한 기억해야 하는 세 번째이다."

 

āsaṃsasuttaṃ (AN 3.13-꿈꾸는 사람 경)
13.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셋인가?
꿈이 없는 사람과 꿈꾸는 사람과 꿈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꿈이 없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다. 가난하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이 부족하고 생계가 힘든 불가촉천민, 바구니 만드는 자, 사냥꾼, 마차공, 청소부의 집안이다. 그곳에는 음식과 의복이 어렵게 얻어진다. 그리고 그는 안색이 나쁘고, 용모가 추하고, 키가 작고, 병이 잦고, 외눈이거나, 기형이거나, 절름발이거나, 반신불수이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탈 것과 꽃과 향과 바를 것 그리고 침상과 거처와 밝힐 것을 충분히 얻지 못한다. 그는 '‘끄샤뜨리야들 가운데 이런 이름의 끄샤뜨리야가 끄샤뜨리야의 신성한 의식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라고 듣는다. 그에게 끄샤뜨리야들은 언제 나를 신성한 의식에 의해 왕으로 모실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꿈꾸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에게 아직 신성한 의식을 치르지 않은 그러나 확정된 첫째 왕자가 있다. 그는 '끄샤뜨리야들 가운데 이런 이름의 끄샤뜨리야가 끄샤뜨리야의 신성한 의식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라고 듣는다. 그에게 ‘끄샤뜨리야들은 언제 나를 신성한 의식에 의해 왕으로 모실까?’라는 생각이 든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꿈꾸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꿈에서 벗어난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 있다. 그는 ‘끄샤뜨리야들 가운데 이런 이름의 끄샤뜨리가 끄샤뜨리야의 신성한 의식에 의해 의해 왕위에 올랐다.’라고 듣는다. 그에게 ‘끄샤뜨리야들은 언제 나를 신성한 의식에 의해 왕으로 모실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전에 왕위에 오르지 않은 자의 신성한 의식에 대한 꿈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꿈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도 세 부류의 비구가 있다. 어떤 셋인가?
꿈이 없는 비구와 꿈꾸는 비구와  꿈에서 벗어난 비구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누가 꿈이 없는 비구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지녔고, 불결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졌고, 행위를 숨기고, 거짓된 비구이고, 사문을 사칭하고, 청정범행을 닦는 자가 아니고, 청정범행을 닦는 자를 사칭하고, 마음이 오염되었고, 번뇌가 흐르며, 청정하지 않다. 그는 ‘이런 이름의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문다.’라고 듣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물까?’라고.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꿈이 없는 비구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꿈꾸는 비구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계를 중시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다. 그는 ‘이런 이름의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문다.’라고 듣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언제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물까?’라고.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 꿈꾸는 비구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꿈에서 벗어난 비구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번뇌 다한 아라한이다. 그는 ‘이런 이름의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문다.’라고 듣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물까?’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참으로 이전에 해탈하지 않은 비구의 해탈에 대한 꿈이 가라앉았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꿈에서 벗어난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도 이러한 세 부류의 비구가 있다.”

 

cakkavattisuttaṃ (AN 3.14-전륜성왕 경)
14. “비구들이여,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전륜성왕도 왕의 특성이 없는 바퀴는 굴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무엇이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전륜성왕의 왕입니까?”

“법이다, 비구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여,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전륜성왕은 오직 법을 의지함으로써 법을 존경하고, 법을 존중하고, 법에 경의를 표하고, 법의 깃발을 들었고, 법을 휘두르고, 법의 지배를 받고, 안의 사람들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다.

 

다시, 비구여,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전륜성왕은 오직 법을 의지함으로써 법을 존경하고, 법을 존중하고, 법에 경의를 표하고, 법의 깃발을 들었고, 법을 휘두르고, 법의 지배를 받고, 끄샤뜨리야에 대해 ··· 의지하는 자들에 대해 ··· 군대에 대해 ···  바라문과 장자들에 대해 ··· 도시와 시골에 사는 자들에 대해 ··· 사문.바라문들에 대해 ··· 짐승과 새들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다. 비구여, 그런 그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전륜성왕은 오직 법을 의지함으로써 법을 존경하고, 법을 존중하고, 법에 경의를 표하고, 법의 깃발을 들었고, 법을 휘두르고, 법의 지배를 받고, 안의 사람들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 뒤에 ··· 끄샤뜨리야에 대해 ··· 의지하는 자들에 대해 ··· 군대에 대해 ···  바라문들과 장자들에 대해 ··· 도시와 시골에 사는 자들에 대해 ··· 사문.바라문들에 대해 ··· 짐승과 새들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 뒤에 오직 법으로써 바퀴를 굴린다. 그 바퀴는 사람이나 적이나 누구의 손에 의해서도 되돌려지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여,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여래∙아라한∙정등각은 오직 법을 의지함으로써, 법을 존경하고 법을 존중하고, 법에 경의를 표하고, 법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법을 휘두르고, 법의 지배를 받고, 몸의 업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다. ‘이런 몸의 업은 길천해야 하고, 이런 몸의 업은 실천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다시, 비구여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여래∙아라한∙정등각은 오직 법을 의지함으로써, 법을존경하고 법을 존중하고, 법에 경의를 표하고, 법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법을 휘두르고, 법의 지배를 받고, 말의 업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다. ‘이런 말의 업은 실천해야 하고, 이런 말의 업은 실천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 마음의 업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다. ‘이런 마음의 업은 실천해야 하고, 이런 마음의 업은 실천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비구여, 그런 그 법을 가진 자, 법의 왕인 여래∙아라한∙정등각은 오직 법을 의지함으로써, 법을 존경하고 법을 존중하고, 법에 경의를 표하고, 법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법을 휘두르고, 법의 지배를 받고, 몸의 업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보한 뒤에 ··· 말의 업에 대해 ··· 마음의 업에 대해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한 뒤에 오직 법으로써 위 없는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 바퀴는 세상에서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누구에 의해서도 되돌려지지 않는다.”

 

sacetanasuttaṃ (AN 3.15-사쩨따나 경)
15.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예전에, 비구들이여, 사쩨따나라는 왕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사쩨따나 왕이 마차 제작자에게 말했다.

‘마차 제작자여, 앞으로 6개월 후에 전쟁이 있을 것이다. 마차 제작자여, 나를 위해 한 쌍의 새 바퀴를 만들수 있겠는가?’

‘가능합니다, 왕이시여.’라고, 비구들이여, 마차 제작자는 사쩨따나 왕에게 대답했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마차 제작자는 6일이 부족한 6개월 동안 하나의 바퀴를 완성했다. 그때, 비구들이여, 사쩨따나 왕이 마차 제작자에게 말했다.

‘마차 제작자여, 앞으로 6일 후에 전쟁이 있을 것이다. 한 쌍의 새 바퀴는 완성되었는가?’

"왕이시여, 6일이 부족한 6개월 동안 하나의 바퀴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면 마차 기술자여, 이 6일 동안 나머지 한 개의 바퀴를 완성할 수 있는가?’

'가능합니다, 왕이시여.라고, 비구들이여, 마차 제작자는 6일 동안 나머지 바퀴를 완성한 뒤에 한 쌍의 새 바퀴를 가지고 사쩨따나 왕에게 갔다. 가서는 사쩨따나 왕에게 ‘왕이시여, 이것이 왕을 위한 한 쌍의 완성된 바퀴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차 제작자여, 그대의 이 바퀴는 6일이 부족한 6개월 동안에 완성된 것이고, 그대의 이 바퀴는 6일 동안에 완성된 것이다. 이들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에게서 나는 어떤 차이도 보지 못한다.’
왕이시여, 그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왕께서는 차이를 보십시오.’

 

그리고, 비구들이여, 마차 제작자는 6일 동안에 완성된 바퀴를 굴렸다. 굴려진 바퀴는 형성된 만큼 가서 빙글빙글 선회한 뒤에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6일이 부족한 6개월 동안에 완성된 바퀴를 굴렸다. 굴려진 바퀴는 형성된 만큼 가서 차축에 끼운 듯 섰다.

 

‘마차 제작자여, 6일 동안에 완선된 바퀴가 굴려져서 형성된 만큼 가서 빙글빙글 선회한 뒤에 땅에 쓰러진 데에는 무슨 원인 무슨 조건이 있는가? 마차 제작자여, 6일이 부족한 6개월 동안에 안성된 바퀴가 굴려져서 형성된 만큼 가서 차축에 끼운 듯 선 데에는 무슨 원인 무슨 조건이 있는가?’

'왕이시여, 6일 동안에 완성된 바퀴는 테두리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결함이 있습니다. 바퀴 살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결함이 있습니다. 바퀴 통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결함이 있습니다. 테두리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결함이 있기 때문에, 바퀴살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결함이 있기 때문에, 바퀴 통도 휘었고 결점이 있고 결함이 있기 때문에 굴려진 그 바퀴는 형성된 만큼 가서 빙글빙글 선회한 뒤에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왕이시여, 6일이 부족한 6개월 동안에 완성된 바퀴는 테두리도 휘어지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결함이 없습니다. 바퀴살도 휘어지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결함이 없습니다. 바퀴 통도 휘어지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결함이 없습니다. 테두리도 휘어지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결함이 없기 때문에, 바퀴살도 휘어지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결함이 없기 때문에, 바퀴 통도 휘어지지 않았고, 결점이 없,고 결함이 없기 때문에 굴려진 그 바퀴는 형성된 만큼 가서 차축에 끼운 듯 섰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참으로 그때의 그 마차 제작자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것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때 그 마차 제작자였다. 그때의 나는, 비구들이여, 나무의 휘어짐과 나무의 결점과 나무의 결함에 능숙했다. 하지만, 비구들이여, 아라한·정등각인 지금의 나는 몸이 휘어짐과 몸의 결점과 몸의 결함에 능숙하고, 말의 휘어짐과 말의 결점과 말의 결함에 능숙하다. 마음의 휘어짐과 마음의 결과과 마음의 결함에 능숙하다. 비구들이여, 몸의 휘어짐과 몸의 결점과 몸의 결함을 버리지 못하고, 말의 휘어짐과 말의 결점과 말의 결함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의 휘어짐과 마음의 결점과 마음의 결함을 버리지 못한 비구거나 비구니는 누구든지, 6일 동안에 완성된 그 바퀴처럼, 이 법과 율에서 쓰러진다.

 

비구들이여, 몸의 휘어짐과 몸의 결점과 몸의 결함을 버리고, 말의 휘어짐과 말의 결점과 말의 결함을 버리고, 마음의 휘어짐과 마음의 결점과 마음의 결함을 버린 비구거나 비구니는 누구든지, 6일이 부족한 6개월 동안에 완성된 그 바퀴처럼, 이 법과 율에서 확고히 선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몸의 휘어짐과 몸의 결점과 몸의 결함을 버릴 것이다. 말의 휘어짐과 말의 결점과 말의 결함을 버릴 것이다. 마음의 휘어짐과 마음의 결점과 마음의 결함을 버릴 것이다.’라고.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apaṇṇakasuttaṃ (AN 3.16-흠 없음 경)
16.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흠 없이 실천한다. 그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근본이 시작된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하고, 음식에 적당량을 알며, 깨어있음에 전념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nimitta]을 붙잡지 않으며, 뒤따르는 (세세한) 부분상[受, anuvyañjana]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은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간탐과 고뇌)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상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뒤따르는 부분상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음의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은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의 감각기능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아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공양 받은 음식에 대해 바른 생각으로 관찰한다. 맛을 즐기기 위함도 아니고, 배부르게 먹기 위함도 아니고, 몸을 살찌우기 위함도 아니고,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영양공급으로 몸을 해치지 않고 이 몸을 유지하여 청정범행을 돕기 위함이다. 바른 관찰로써 배고픔의 오래된 느낌을 제거하고 배부름의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져 안온하게 머물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 이 공양을 받는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깨어있음에 전념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낮 동안에는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밤의 초경에는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한밤중에는 발에 발을 포개어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正念正知] 일어날 시간을 인식하여 마음에 집중하여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으로 향하게 하여 사자처럼 눕는다. 밤의 삼경에는 일어나서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깨어있음에 전념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흠 없이 실천한다. 그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근본이 시작된다.”

 

attabyābādhasuttaṃ (AN 3.17-자신의 잘못 경)
17.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은 자신을 잘못으로 이끌고, 넘을 잘못으로 이끌고, 둘 모두를 잘못으로 이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은 자신을 잘못으로 이끌고, 넘을 잘못으로 이끌고, 둘 모두를 잘못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는 자신을 잘못으로 이끌지 않고, 남을 잘못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를 잘못으로 이끌지 않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는 자신을 잘못으로 이끌지 않고, 남을 잘못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를 잘못으로 이끌지 않는다.”

 

devalokasuttaṃ (AN 3.18-신의 세상 경)
18. “만약, 비구들이여, 외도 유행승들이 그대들에게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천상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질문을 받은 그대들은 곤란하고 부끄럽고 혐오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렇게 신들의 수명에 대해 곤란하고 부끄럽고 혐오하고, 신들의 용모, 신들의 행복, 신들의 명성, 신들의 지배력에 대해 곤란하고 부끄럽고 혐오한다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의 몸의 나쁜 행위에 대해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말의 나쁜 행위에 대해 ··· 마음의 나쁜 행위에 대해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paṭhamapāpaṇikasuttaṃ (AN 3.19-가게주인 경1)
19. “비구들이여,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가계주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리지 못한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가계주인이 오전에 주의를 기우려 일에 집중하지 않고, 한낮에 주의를 기우려 일에 집중하지 않고, 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가게주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리지 못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얻지 못한 선법을 얻거나 얻은 선법을 늘리지 못한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가 오전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고, 한낮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고, 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얻지 못한 선법을 얻거나 얻은 선법을 늘리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가게주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릴 수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이 오전에 주의를 기우려 일에 집중하고, 안낮에 주의를 기우려 일에 집중하고, 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일에 집중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가게주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릴 수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얻지 못한 선법을 얻거나 얻은 선법을 늘릴 수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가 오전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고, 한낮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고, 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표상에 집중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얻지 못한 선법을 얻거나 얻은 선법을 늘릴 수 있다.”

 

dutiyapāpaṇikasuttaṃ (AN 3.20-가게주인 경2)
20. “비구들이여,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가게주인은 오래지 않아 재물이 많아지고 가득하게 된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이 눈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고, 의지를 갖추었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눈이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이 상품을 이렇게 사고, 이렇게 팔 때 이만큼 돈이 들고, 이만큼 이익이 있을 것이다.'라고 상품을 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눈이 있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책임감이 강한가?

여기,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상품을 사고파는데 능숙하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책임감이 강하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후원자를 가지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에 대해 부유하고, 큰 부를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은 장자나 장자의 아들들이 ‘이 가게주인은 눈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고, 아내와 자식을 부양할 수 있고,때때로  우리에게 이윤을 줄 수 있다.’라고 안다. 그들은 ‘지금부터, 친애하는 가게주인이여, 재물을 운용하여 아내와 자식을 부양하고, 때때로 우리에게 이윤을 주시오.’라며 그를 위해 재물을 투자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가게주인은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가게주인은 오래지 않아 재물이 많아지고 가득하게 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오래지 않아 유익한 법들에거 큰 충만을 얻는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고, 후원자를 가진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이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이 있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책임감이 강한가?

여기,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책임감이 강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후원자를 가지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많이 배웠고, 가르침을 계승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비구들을 적당한 때에 찾아가서 '존자시여, 어떻게 이것이 있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고 묻는다. 그에게 그 존자들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하고, 여러 가지 의심되는 법들에 대해 의심을 제거해 준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오래지 않아 유익한 법들에서 큰 충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