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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의 모음 - 4. 신의 전령 품(Devadūta-vagga. AN3.31-40)

실론섬 2014. 6. 12. 18:07

제4장 신의 전령 품 Devadūta-vagga(AN3.31-40)

 

ṣabrahmakasuttaṃ (AN 3.31-범천과 함께함 경)

31. “비구들이여,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은 범천과 함께 하는 가문이다.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은 이전의 스승과 함께 하는 가문이다.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은 공양받을만한 자와 함께 사는 가문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범천이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전의 스승이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공양받을만한 자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부모는 자식들을 돌보고, 양육하고, 이 세상을 가르쳐 주는 등 많은 일을 한다.

 

부모는 범천이라고, 이전의 스승이라고 불린다.

공양물을 받을 만한 사람이다.

자식들에게 공양받을만한 사람이고, 사람들을 연민한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음식, 마실 것, 의복, 침상을 갖추고

몸을 문질러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발 씻어드리며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해서

여기서는 현자들이 그를 칭찬하고, 죽은 뒤에는 천상에서 기뻐한다.”

 

ānandasuttaṃ (AN 3.32-아난다 경)

32.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의식을 가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삼매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성취하여 머무는 자에게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성취하여 머물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비구가 의식을 가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으며,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성취하여 머물 수 있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비구가 의식을 가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삼매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성취하여 머무는 자에게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성취하여 머물 수 있습니까?”

“여기, 아난다여, 비구에게 ‘모든 형성된 것들[諸行]이 가라앉음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이요, 갈애가 다함이요, 탐욕이 사라짐이요, 소멸이요 열반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가 있다. 이렇게, 아난다여, 비구가 의식을 가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없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없는 그런 삼매를 성취할 수 있다. 그리고 성취하여 머무는 자에게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없는 그런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성취하여 머물 수 있다.

 

그리고 아난다여, 나는 그것에 관해서 『숫따니빠따』「도피안 품」의「뿐냐까의 질문」에서 이것을 말했다.

 

세상에서 높고 낮은 것을 헤아린 뒤에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요하고 연기(煙氣)가 없고 괴로움이 없고 갈애가 없는

그는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고  나는 말한다.

 

*몸으로 짓는 그릇된 행위 등의 연기(煙氣)가 없다는 뜻이다.(AA.ii.207)

 

sāriputtasuttaṃ (AN 3.33-사리뿟따 경)

33.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내가 간략하게 법을 설한다 해도, 사리뿟따여, 내가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해도, 사리뿟따여, 내가 간략하고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해도 구경의 앎(지혜)을 가진 자를 얻기 어렵다.”라고.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법을 설하실, 상세하게 법을 설하실, 간략하고 상세하게 법을 설하실 때입니다. 선서시여, 그때입니다. 법에 대한 구경의 앎을 가진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뿟따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의식을 가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으며,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성취하여 머물것이다.’라고. 사리뿟따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사리뿟따여, 비구가 의식을 가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으며,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성취하여 머물 때, 이것이, 사리뿟따여, ‘비구가 갈애를 잘랐고, 족쇄를 끊었고, 자만을 관통하여 괴로움을 종식시켰다.’라고 불린다. 그리고 사리뿟따여, 나는 그것에 관해서 『숫따니빠따』 「도피안 품」의 「우다야의 질문」에서 이것을 말했다."

 

‘감각적 쾌락의 인식과 고뇌의 둘 모두를 버린 

해태를 제거하고 후회들이 예방된

평정과 청정한 마음챙김을 갖춘, 법에 의한 사유가 선행하는, 무명이 부서진,

구경의 앎에 의한 해탈을 나는 말한다.'

 

nidānasuttaṃ (AN 3.34-인연 경)

34. “비구들이여,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탐욕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성냄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어리석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비구들이여, 탐욕이 만들었고, 탐욕에서 생겼고, 탐욕이 인연이고, 탐욕에서 자라난 업은 자기 존재가 생겨나는 곳에서 익는다. 그 업이 익는 곳에서 그 업의 과보를 경험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비구들이여, 성냄이 만들었고, 성냄에서 생겼고, 성냄이 인연이고, 성냄에서 자라난 업은 자기 존재가 생겨나는 곳에서 익는다. 그 업이 익는 곳에서 그 업의 과보를 경험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비구들이여, 어리석음이 만들었고, 어리석음에서 생겼고, 어리석음이 인연이고, 어리석음에서 자라난 업은 자기 존재가 생겨나는 곳에서 익는다. 그  업이 익는 곳에서 그 업의 과보를 경험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부서지지 않았고 썩지 않았고 바람과 태양에 상하지 않았고 씨눈이 잘 유지되었고 안전하게 잘 보관된 씨앗들이 비옥하여 잘 준비된 땅에 심어졌다. 그리고 비가 적절하게 내릴 것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 씨앗들은 싹이 트고 자라고 증장하고 풍성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탐욕이 만들었고, 탐욕에서 생겼고, 탐욕이 인연이고, 탐욕에서 자라난 업은 자기 존재가 태어나는 곳에서 익는다. 그곳에서 그 업의 과보를 경험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성냄이 만들었고, 성냄에서 생겼고, 성냄이 인연이고, 성냄에서 자라난 업은 ··· 어리석음이 만들었고, 어리석음에서 생겼고, 어리석음이 인연이고, 어리석음에서 자라난 업은 자기 존재가 태어나는 곳에서 익는다. 그곳에서 그 업의 과보를 경험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비구들이여, 이러한 업(業)들의 자라남을 위한 세 가지 인연이 있다.

 

비구들이여,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탐욕 없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성냄 없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어리석음 없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탐욕이 없을 때, 비구들이여, 이렇게 탐욕 없음이 만들었고, 탐욕 없음에서 생겼고, 탐욕 없음이 인연이고, 탐욕 없음에서 자라난 업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성냄이 없을 때, 비구들이여, 이렇게 성냄 없음이 만들었고, 성냄 없음에서 생겼고, 성냄 없음이 인연이고, 성냄 없음에서 자라난 업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어리석음이 없을 때,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리석음 없음이 만들었고, 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겼고, 어리석음 없음이 인연이고, 어리석음 없음에서 자라난 업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부서지지 않았고 썩지 않았고 바람과 태양에 상하지 않았고 씨눈이 잘 유지되었고 안전하게 잘 보관된 씨앗들이 있다. 그것들을 사람이 불로 태울 것이다. 불로 태운 뒤에 재로 만들 것이다. 재로 만든 뒤 강한 바람에 날려버리거나 물살이 센 강에다 흘려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 씨앗들은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탐욕이 없을 때, 탐욕 없음이 만들었고, 탐욕 없음에서 생겼고, 탐욕 없음이 인연이고, 탐욕 없음에서 자라난 업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성냄 없음이 만들었고, 성냄 없음에서 생겼고 ··· 어리석음이 없을 때, 비구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이 만들었고, 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겼고, 어리석음 없음이 인연이고, 어리석음 없음에서 자라난 업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비구들이여,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어리석은 자는 탐에서 생겼고 분노에서 생겼고 어리석음에서 생긴 업을 적건 많건 짓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서 생긴 것을 오직 여기에서 경험한다. 

다른 곳이 아니다. 지혜를 일으킨 그 비구는 모든 악처를 떠난다."

 

hatthakasuttaṃ (AN 3.35-핫타까 경)

3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알라위의 고막가에 있는 심사빠 숲속 나뭇잎더미 위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걸어서 이리저리 돌아 다니던 알라위 사람 핫타까가 고막가의 심사빠 숲속 나뭇잎 더미 위에 앉아 계시는 세존을 보았다. 보고서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알라위 사람 핫타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편히 주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젊은이여, 편히 잤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편히 잠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알라위(Alavi)는 사왓티에서 30요자나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지방이며 사왓티와 라자가하의 중간에 있었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몇번 알라위에서 머무셨다고 하며 16번째 안거를 알라위에서 보내셨다고 한다. 알라위에는 탑묘들이 많았고 약카 신앙이 성행한 곳이다.(Ibid) 알라위에도 많은 비구들이 거주했던 것 같으며 특히 이들의 거처를 만들고 보수하는 일 때문에 세존께서는 몇 가지 계율을 제정하셨다고 한다.(Vin.ii.172ff)
알라위의 왕은 알라와까(Alavaka)라고 불렸으며 알라위 사람들도 알라와까라고 불렸다.

*알라위의 핫타까(Hatthaka) 왕자는 본경 '하나의 모음'에서 사섭법을 실천하는 자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는 알라위 왕의 아들이었으며 그가 아이였을 때 알라와까의 약카(Yakkha. 야차)에게 먹힐 뻔했던 것을 세존께서 구해주셨으며 약카가 손으로 그를 세존의 손에 놓아주었기 때문에 핫타까(hattha는 손을 뜻함)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AA.i.391) 그만큼 세존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커서 세존의 법문을 듣고 불환과를 얻었으며 500명의 재가자들을 거느렸다고 한다.(AA.i.392;SnA.240) 본서 '핫타까 경'에 나타나는 신의 아들 핫타까는 바로 이 핫타까 왕자가 죽어서 무번천(aviha)에 태어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세존이시여, 겨울밤은 춥습니다. 겨울의 눈 내리는 가장 추운 달 사이에 있는 8일, 땅은 소 발자국 때문에 울퉁불퉁하고, 나뭇잎 더미는 얕고, 부족한 나뭇잎들,  가사의 천은 춥고, 웨람바 바람은 차갑게 붑니다. 그런데도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젊은이여, 편히 잤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편히 잠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라고.”

 

*마가(Magha, 음력 1월) 달이 끝나는 마지막 4일과 팍구나(Phagguna, 음력 2월) 달이 시작되는 처음 4일을 '달 사이에 끼어 있는 8일'이라 한다.(AA.ii.225)
*'웨람바 바람(verambha-vata)'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말한다. 한 방향이나 두 방향이나 세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웨람바 바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Ibid)

 

“그렇다면 젊은이여, 여기서 내가 되물어 보겠습니다. 그대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그대가 설명하십시오. 젊은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안팎이 회반죽으로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이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뾰족지붕의 저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소파, 모직 양탄자, 흰색의 모직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 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양면이 붉은 베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기름등불이 타고 있을 것입니다. 네 명의 부인이 마음이 흡족하도록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젊은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편안히 잠자겠습니까, 아닙니까? 또는 그는 여기에 어떻게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는 편안히 잠잘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편히 잠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젊은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몸에 속한 것이든 마음에 속한 것이든 탐욕에서 생긴 열기가 생긴다면 그런 탐욕에서 생긴 열기 때문에 타오르는 그는 괴롭게 잠자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젊은이여, 그런 탐욕에서 생긴 열기 때문에 타오르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은 괴롭게 잠잘 것입니다. 그 탐욕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편히 잠잤습니다.

 

젊은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성냄에서 생긴 ···  몸에 속한 것이든 마음에 속한 것이든 어리석음에서 생긴 열기가 생긴다면 그런 어리석음에서 생긴 열기 때문에 타오르는 그는 괴롭게 잠자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젊은이여, 그런 어리석음에서 생긴 열기 때문에 장자나 장자의 아들은 괴롭게 잠잘 것입니다. 그 어리석음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편히 잠잤습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오점이 없고, 가라앉았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린   
완전히 꺼진 바라문은 언제나 편히 잠잔다.

집착된 것들을 모두 끊은 뒤에 마음에서 슬픔을 버릴 것이다.

마음의 평화에 도달한 뒤에 평화롭고 편히 잠잔다.”

 

devadūtasuttaṃ (AN 3.36-신의 전령 경)
36.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신의 전령(저승사자)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 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그런 그를, 비구들이여, 옥졸들이 양쪽에서 잡고서 야마 왕(염라대왕)에게 보인다. 

‘왕이시여, 이 사람은 어머니를 존경하지 않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고 범행을 실천하지 않고 가문의 어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왕께서 이 사람의 형벌을 결정하십시오.'라고.

 

*'신의 전령'으로 옮긴 deva-duta 는 deva(신) 은 죽음의 신(maccu)이다. 그의 사자(使者,duta.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라고 '신의 전령(deva-duta)라고 번역했다. 저승사자라고도 한다.
*'야마 왕(Yamaraja)'은 천상에 있는 아귀의 왕(vemanika-peta-raja)이다. 그는 어느 때에는 천상의 궁전에서 천상의 소원성취의 나무와 천상의 정원과 천상의 무희 등 모든 번영을 경험하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업의 과보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야마 왕은 한 명이 아니다. 네 개의 대문ㅇ 네 명이 있다.(AA.ii.228) 이 야마라자(Yama-raja)를 중국에서는 염라대왕으로 옮겼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한다.

‘이보게, 사람아,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첫 번째 신의 전령을 보지 못했는가?’라고. 그는 ‘보지 못했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난 지 팔십이나 구십이나 백년이 되어 늙은, 허리가 서까래처럼 굽은, 꼬부라진, 지팡이에 기댄, 비틀거리면서 걷는, 병든, 젊음이 가버린, 이가 부러진, 백발이 된, 머리털이 빠져 대머리가 된, 피부가 주름진, 몸에 반점이 생긴 여자나 남자를 본 적이 없는가?’ 그는 ‘보았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현명하게 나이든 그런 그대에게 '나도 늙는 존재이고 늙음을 극복할 수 없다.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유익(有益)을 행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저는 방일했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방일 때문에 그대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유익(有益)을 행하지 못했다. 이보게, 사람아, 참으로 그대는 방일에 따르는 것을 겪을 것이다. 이 악업은 어머니가 지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지은 것도 아니고, 형제가 지은 것도 아니고, 자매가 지은 것도 아니고, 벗들과 사람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친지와 혈육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신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사문·바라문들이 지은 것도 아니다. 참으로 그대가 이 악업을 지었다. 오직 그대가 그 과보를 경험할 것이다.’라고.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첫 번째 신의 전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를 한 뒤에, 두 번째 신의 전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한다. ‘이보게, 사람아,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두 번째 신의 전령을 보지 못했는가?’라고. 그는 ‘보지 못했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서 병든, 고통받는, 중병이 든, 자신의 똥오줌에 주저앉아 잠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어나고 눕게 된 여자나 남자를 보지 못했는가?’ 그는 ‘보았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현명하게 나이든 그런 그대에게 '나도 병드는 존재이고 병을 극복할 수 없다.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유익(有益)을 행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저는 방일했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방일 때문에 그대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유익(有益)을 행하지 못했다. 이보게, 사람아, 참으로 그대는 방일에 따르는 것을 겪을 것이다. 이 악업은 어머니가 지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지은 것도 아니고, 형제가 지은 것도 아니고, 자매가 지은 것도 아니고, 벗들과 사람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친지와 혈육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신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사문·바라문들이 지은 것도 아니다. 참으로 그대가 이 악업을 지었다. 오직 그대가 그 과보를 경험할 것이다.’라고.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두 번째 신의 전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한 뒤에 세 번째 신의 전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한다. ‘이보게, 사람아,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세 번째 신의 전령을 보지 못했는가?’라고. 그는 ‘보지 못했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그대는 사람들 가운데서 묘지에 버려진,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른 빛을 띠고 부패 된, 고름이 가득 찬 여자나 남자를 보지 못했는가?’ 그는 ‘보았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현명하게 나이든 그런 그대에게 '나도 죽는 존재이고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 이제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유익(有益)을 행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는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저는 방일했습니다, 대왕이시여.’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사람아, 방일 때문에 그대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유익(有益)을 행하지 못했다. 이보게, 사람아, 참으로 그대는 방일에 따르는 것을 겪을 것이다. 이 악업은 어머니가 지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지은 것도 아니고, 형제가 지은 것도 아니고, 자매가 지은 것도 아니고, 벗들과 사람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친지와 혈육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신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사문·바라문들이 지은 것도 아니다. 참으로 그대가 이 악업을 지었다. 오직 그대가 그 과보를 경험할 것이다.’라고.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야마 왕은 세 번째 신의 전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한 뒤에 침묵한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여, 옥졸들은 다섯 가지로 묶인 처벌을 한다. 달궈진 딱딱한 쇠를 손에 갖다 대고, 달궈진 딱딱한 쇠를 다른 손에 갖다 대고, 달궈진 딱딱한 쇠를 발에 갖다 대고, 달궈진 딱딱한 쇠를 다른 발에 갖다 대고, 달궈진 딱딱한 쇠를 가슴 중간에 갖다 댄다. 그때 그는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들을 느낀다(경험한다). 그 악업이 해소될 때까지 죽지 못한다.

 

그런 그를, 비구들이여, 옥졸들은 그를 눕히고 도끼로 자른다. 그때 그는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들을 느낀다(경험한다). 그 악업이 해소될 때까지 죽지 못한다.

 

그런 그를, 비구들이여, 옥졸들은 발을 위로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잡고서 큰 칼로 자른다 ··· 그런 그를, 비구들이여, 옥졸들은 마차에 묶은 뒤 활활 타오르고 불길에 휩싸인 불타는 땅에서 앞으로 끌고 뒤로 끈다 ··· 그런 그를, 비구들이여, 옥졸들은 활활 타오르고 불길에 휩싸인 숯을 쌓아 올린 큰 산을 오르내리게 한다 ··· 그런 그를, 비구들이여, 옥졸들은 발을 위로 향하게 하고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잡고서 불꽃이 튀고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 솥에 집어넣는다. 거기서 거품 위에 던져져 익혀지는 그는 위로 가기도 하고 아래로 가기도 하고 가로지르기도 한다. 그때 그는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들을 느낀다(경험한다). 그 악업이 해소될 때까지 죽지 못한다. 그런 그를, 비구들이여, 옥졸들은 대지옥에 집어넣는다. 비구들이여, 그 대지옥은,

 

직사각형이고 네 개의 문이 있고 균형 있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쇠로 끝이 둘러싸이고 쇠로 덮인 곳

 

거기에 쇠로 만들어지고 불타고 뜨거움이 가득한 땅이 있는데

사방 백 요자나에 걸쳐 언제까지나 지속한다.'

 

예전에, 비구들이여, 야마 왕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참으로 존자여, 세상에 악업을 짓는 자들은 이런 것들이 섞인 업의 처벌을 받는다. 참으로 나는 인간의 존재를 얻어야 겠다(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겠다). 그래서 여래∙아라한∙정등각께서 세상에 출현하면, 그런 나는 세존께 예배할 것이다. 나에게 그분 세존께서 법을 설하실 것이고, 그러 나는 세존의 법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그리고 비구들이여, 이것에 대해 나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 듣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발견한 만큼을 나는 말한다."라고.

 

신의 전령들에게 책망받는 방일한 젊은이들

저열한 몸으로 간 그들은 오랫동안 슬퍼한다.

 

그러나 여기 고결한 사람들이 있다.

신의 전령들에 의해 고무된 그들은 언제든 성스러운 법에서 방일하지 않는다.

 

태어남과 죽음의 근원인 집착에서 두려움을 보았기 때문에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곳으로 집착없이 해탈한다. 

 

 불방일하여  지금.여기에서 완전히 꺼진 그들은 행복하다.

 과거의 모든 원한과 두려움들, 모든 괴로움을 극복했다.

 

catumahārājasuttaṃ (AN 3.37-사대왕(四大王) 경)

37. “비구들이여, 보름의 여덟 번째 날에 사대왕의 의회의 동료들이 이 세상을 조사한다(둘러본다).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가문에서는 사문과 바라문과 어른이 존경받는지, 포살을 준수하고 깨어있는지?'라고. 보름의 열네 번째 날에는 사대왕의 아들들이 이 세상을 조사한다.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가문에서는 사문과 바라문과 어른이 존경받는지, 포살을 준수하고 깨 있는지, 공덕을 짓고 있는지?'라고. 열다섯 번째인 포살일 당일에는 사대왕들이 직접 이 세상을 조사한다.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가문에서는 사문과 바라문과 어른이 존경받는지, 포살을 준수하고 깨어있는지, 공덕을 짓고 있는지?'라고.

 

*사대(천)왕'으로 옮긴 원어는 cattaro maharajano로 직역하면 네 명의 대왕이다. 사대천왕은 사대왕천(Catumaharajika)을 관장하는 네 명의 왕들이다. 사대왕천은 문자적인 뜻 그대로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 넷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와 일치한다.
동쪽 천왕은 다따랏따(Dhatarattha)인데 천상의 음악가들인 간답바(gandabba,건달바라 한역됨)들을 통치하고, 남쪽의 천왕은 위룰하까(Virulhaka)인데 숲이나 산이나 숨겨진 보물을 관리하는 꿈반다(kumbhanda)들을 통치하고, 서쪽의 위루빡카(Virupakka)천왕은 용들을 통치하며, 북쪽의 웻사와나(Vessavana) 천왕은 약가들을 통치한다고 한다. 

 

만약, 비구들이여,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고, 가문에서는 사문과 바라문과 어른이 존경받고, 포살을 준수하고 깨어있거, 공덕을 짓는' 수가 적으면, 비구들이여, 사대왕들은 곧바로 수담마 의회에 함께 모여 있는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알린다.

‘존자들이여,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고, 가문에서는 사문과 바라문과 어른이 존경받고, 포살을 준수하고 깨어있고, 공덕을 짓는' 수가 적습니다.'라고. 

그로 인해, 비구들이여, 십삼천의 신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존자들이여, 신들의 무리는 줄어들 것이고, 아수라의 무리는 충만할 것입니다.’라고.

 

*'삼십삼천(Tavatimsa)'의 tavatimsa는  tayo(3)_timsa(30)의 합성어로써 33을 나타내는 곡용형이며 '33에 속하는 천신'이라는 의미이다. 삼십삼천의 개념은 베다에서부터 등장하며 조로아스타교의 성전인 아베스타에서도 언급될 만큼 오래된 개념이다. 베다에 의하면 신들은 33의 무리로 되어 있으며 이들의 우두머리가 인드라(Indra)라고 한다. 이런 신들이 모여서 화합을 가지는 삼십삼천의 집회소가 바로 수담마 의회(Sudhamma sabha)이다. 

 

만약, 비구들이여,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고, 가문에서는 사문과 바라문과 어른이 존경받고, 포살을 준수하고 깨어 있고, 공덕을 짓는' 수가 많으면, 비구들이여, 사대왕들은 곧바로 수담마 의회에 함께 모여 앉아 있는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알린다.

‘존자들이여,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고, 가문에서는 사문과 바라문과 어른이 존경받고, 포살을 준수하고 깨어 있고, 공덕을 짓는' 수가 많습니다.’라고.

그로 인해,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의 신들은 마음에 들어 한다.

‘참으로 신들의 무리는 충만할 것이고, 아수라의 무리는 줄어들 것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예전에 삼십삼천의 신들을 이끌고 있던 신들의 왕 삭까는 그때 이 게송을 말했다.

 

보름의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날
그리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특별한 보름에 여덟 요소를 잘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비구들이여, 그렇게 신들의 왕 삭까에 의한 이 게송은 잘못 읊어진 것이고, 잘 읊어진 것이 아니고, 잘못 말해진 것이고, 잘 말해진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성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에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다.

 

보름의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날
그리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특별한 보름에 여덟 요소를 잘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다."

dutiyacatumahārājasuttaṃ (AN 3.38-사대왕 경2)

38. “비구들이여, 예전에 삼십삼천의 신들을 이끌고 있던 신들의 왕 삭까는 그때 이 게송을 말했다.

 

*원어는 Sakko nama devanamindo 이다. 삭까(Sk. Sakra)는 제석(帝釋)으로 한역된 신이며 베다에 등장하는 인도의 유력한 신인 인드라(Indra)를 말한다. '상윳따 니까야' 에서는(S.i.229,DhpA.i.264) 그의 여러 가지 이름을 열거하는데 그 가운데서 세 번째에서 그는 인간으로 있을 때 존경하면서 보시를 베풀었다(sakkaccam danam adasi)고 해서 삭까(sakka)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산스끄리뜨 sakra 는 '힘센, 막강한'이라는 뜻이다. 베다에서 이미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으로 등장한다. 베다의 후기 시대부터 인도의 모든 신들에게도 사성 계급이 부여되는데 아그니(Agini, 불의 신)는 바라문 계급의 신으로,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으로 베다 문헌에 나타난다. 베다 문헌들에서 신들은 자주 '인드라를 상수로 하는 신들'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이를 받아들여 초기불교에서도 '신들의 왕(devanam Indo, D11;M37/i.252)'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삼십삼천의 신들의 왕이며 그래서 삼십삼천은 제석천이라고도 부른다. 인드라는 웨자얀따(Vejayanta) 궁전에 거주하며 수도의 이름은 수닷사나(Sudassana)이다.

 

보름의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날
그리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특별한 보름에 여덟 요소를 잘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비구들이여, 그렇게 신들의 왕 삭까에 의한 이 게송은 잘못 읊어진 것이고, 잘 읊어진 것이 아니고, 잘못 말해진 것이고, 잘 말해진 것이 아니다. 그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괴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에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다.

 

보름의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날
그리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특별한 보름에 여덟 요소를 잘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들이여, 그 비구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서 벗어났고, 괴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라고 나는 말한다."

 

sukhumālasuttaṃ (AN 3.39-세심하게 양육됨 경)

39. “비구들이여, 나는 세심하게 양육되었고 아주 세심하게 양육되었고 지극히 세심하게 양육되었다. 비구들이여, 나의 아버지는 거처에 연못을 만들게 했다. 한곳에는 청련이 피었고, 한곳에는 홍련이 피었고, 한곳에는 백련이 피었는데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까시의 전단향이 아닌 것은 사용하지 않았다. 모자도 까시의 [비단으로] 것이었고 외투도 까시의 것이었고 하의도 까시의 것이었고, 상의도 까시의 것이었다. 비구들이여, '더위, 추위, 먼지, 풀, 이슬과 닿지 않도록.'이라며 밤낮으로 내게 하얀 일산이 씌워졌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세 개의 궁전이 있었다. 하나는 겨울용이었고, 하나는 여름용이었고, 하나는 우기용이었다. 비구들이여, 나는 우기의 넉 달 동안에는 우기용 궁전에서 여자로만 구성된 악사들에 의해 섬김을 받으면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는 하인과 일꾼들에게 묶은 쌀로 지은 죽을 음식으로 주었지만, 나의 아버지 집에서는 쫗은 쌀로 갓 지은 밥을 주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호화로움을 갖춘 나에게 이런 세심한 양육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늙은 사람을 보고 '참으로 나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나도 또한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만약 다른 늙은 사람을 보고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숙고했을 때, 젊음에 대한 자부심은 완전히 버려졌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병든 사람을 보고 '참으로 나도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나도 또한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만약 다른 병든 사람을 보고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숙고했을 때, 건강에 대한 자부심은 완전히 버려졌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죽은 사람을 보고 '참으로 나도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나도 또한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만약 다른 죽은 사람을 보고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숙고했을 때, 삶에 대한 자부심은 완전히 버려졌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자부심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젊음의 자부심, 건강의 자부심, 삶의 자부심이다. 

비구들이여, 젊음의 자부심을 가진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서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건강의 자부심을 가진 배우지 못한 범부는 … 삶의 자부심을 가진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서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젊음의 자부심을 가진 비구는 범행을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건강의 자부심을 가진 비구는 … 삶의 자부심을 가진 비구는 범행을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병드는 것이고 늙는 것이고 죽는 것
그런 성질을 가진 중생들인 범부는 다른 자를 싫어한다.

이런 법에서 만약 내가 그를 싫어한다면,
나의 이런 머묾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

이렇게 머물면서 나는 법 있음을 알고서
병 없음과 젊음과 장수에 대한 자부심을 극복하였다.

출리(出離)에서 안온(安穩)을 보았나니
그런 나는 열반을 추구하면서 정진한다.

내가 지금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적당치 않으리.
되돌아감이란 없을 것이며 범행을 목표로 하는 자가 될 것이다."

 

ādhipateyyasuttaṃ (AN 3.40-지배 경)
40.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지배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자신의 지배, 세상의 지배, 법의 지배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자신의 지배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숲으로 가고 나무 아래로 가고 빈집으로 간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옷을 원인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탁발 음식을 원인으로 ··· 거처를 원인으로 ···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원인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하물며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고,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감각적 쾌락이나 그보다 악한 바람을 추구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라면서,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하고, 마음 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가 없고, 마음은 집중되어 삼매를 닦을 것이다.'라고.

그는 오직 자신을 지배한 뒤배한 뒤에 불선(不善)을 버리고 선(善)을 닦는다.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것을 닦는다.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자신의 지배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세상의 지배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숲으로 가고 나무 아래로 가고 빈집으로 간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옷을 원인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탁발 음식을 원인으로 ··· 거처를 원인으로 ···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원인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하물며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 이렇게 출가한 내가 감각적 쾌락의 생각을 떠오르게 하거나, 성냄의 생각을 떠오르게 하거나, 해코지의 생각을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으로 크다. 그리고 큰 세상에는 신통력을 가졌고, 천안을 가졌고, 남의 마음을 아는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들은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마음을 꿰뚫어 안다. 그들도 나를 이와 같이 알 것이다.  

‘보시오, 존자들이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이 좋은 가문의 아들은 악한 불선법들과 섞여서 머뭅니다.’라고.

신통력을 가졌고, 천안을 가졌고, 남의 마음을 아는 신들도 있다. 그들은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마음을 꿰뚫어 안다. 그들도 나를 이렇게 알 것이다.

‘보시오, 존자들이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이 좋은 가문의 아들은 악한 불선법들과 섞여서 머뭅니다.’라면서,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하고, 마음 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가 없고, 마음은 집중되어 삼매를 닦을 것이다.’라고.

그는 오직 세상을 지배한 뒤에 불선(不善)을 버리고 선(善)을 닦는다.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것을 닦는다.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의 지배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법의 지배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숲으로 가고, 나무 아래로 가고, 빈집으로 간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옷을 원인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탁발 음식을 원인으로 ··· 거처를 원인으로 ···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원인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다. 하물며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빠져 있다. 괴로움에 빠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알고 보며 머무는 나의 동료 비구들이 있다. 이렇게 잘 설해진 법과 율에서 출가한 내가 게으름과 방일로써 머문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라면서, 그는 다시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하고, 마음 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가 없고, 마음은 집중되어 삼매를 닦을 것이다.'라고.

그는 오직 법을 지배한 뒤에 불선(不善)을 버리고 선(善)을 닦는다.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것을 닦는다.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법의 지배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가지 지배다.

 

악업을 지은 자에게, 참으로 세상에는 비밀은 없다.

사람아, 그대의 행위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그대가 안다.

 

사람아, 선(善)을 마주해서는 자신을 등한시하고

자신에게 악함이 있을때는 자신을 숨기는 사람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의 고르지 못한 행위를 신도 여래도 본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신중하고 선(禪)을 닦는다.

 

법을 지배하는 자는 법을 따라 행한다.

진리를 위해 노력하는 성자는 퇴보하지 않는다.  

노력을 다하는 자는 마라를 극복하고

죽음을 정복하여 태어남의 부서짐을 얻는다.

그렇게 그 현명한 자, 세상을 아는 성인은

모든 법에 대해 그것에서 생겨나지 않는 성자이다.”

 

 

제4장 신의 전령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