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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의 모음 - 8. 아난다 품(Ānanda-vagga. AN3.72-81)

실론섬 2014. 6. 14. 21:47

제8장 아난다 품(Ānanda-vagga. AN3.72-81)

 

channasuttaṃ (AN 3.72-찬나 경)

7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찬나 유행승이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찬나 유행승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그대들도 탐욕의 버림을 선언하고, 성냄의 버림을 선언하고, 어리석음의 버림을 선언합니다. 도반이여, 우리도 탐욕의 버림을 선언하고, 성냄의 버림을 선언하고, 어리석음의 버림을 선언합니다. 도반이여, 그대들은 탐욕에서 어떠한 위험(잘못됨)을 보기 때문에 탐욕의 버림을 선언하고, 성냄에서 어떠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성냄의 버림을 선언하고, 어리석음에서 어떠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버림을 선언합니까?”

 

“도반이여, 유쾌해하고 탐욕에 묶이고 마음을 빼앗긴 자는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하고, 마음에 속한 고통과 고뇌도 경험합니다. 탐욕이 버려질 때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마음에 속한 고통과 고뇌도 경험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유쾌해하고 탐욕에 묶이고 마음을 빼앗긴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합니다. 탐욕이 버려질 때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유쾌해하고 탐욕에 묶이고 마음을 빼앗긴 자는 자신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탐욕이 버려질 때 자신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도반이여, 탐욕은 보지 못함을 만들고, 눈 없음을 만들고, 무지(無知)를 만들고, 지혜의 소멸에 속하고, 파괴의 영역이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불쾌해하고 성냄에 묶이고  ··· 열중하고 어리석음에 묶이고 마음을 빼앗긴 자는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하고, 마음에 속한 고통과 고뇌도 경험합니다. 어리석음이 버려질 때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마음에 속한 고통과 고뇌도 경험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열중하고 어리석음에 묶이고 마음을 빼앗긴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합니다. 탐욕이 버려질 때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열중하고 어리석음에 묶이고 마음을 빼앗긴 자는 자신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 어리석음이 버려질 때 자신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도반이여, 어리석음은 보지 못함을 만들고, 눈 없음을 만들고, 무지(無知)를 만들고, 지혜의 소멸에 속하고, 파괴의 영역이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우리는 탐욕에서 이런 위험을 보기 때문에 탐욕의 버림을 선언하고, 성냄에서 이런 위험을 보기 때문에 성냄의 버림을 선언하고, 어리석음에서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버림을 선언합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어떤 길,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입니다. 도반이여,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이런 길, 이런 닦음이 있습다.”

“도반이여,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이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 아난다여, 불방일(不放逸) 하기에 충분합니다.”  

 

ājīvakasuttaṃ (AN 3.73-사명외도(邪命外道) 경)

73.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꼬삼비에서 고시따 사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아지와까의 제자인 어떤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지와까의 제자인 그 장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지와까(Ajivaka)'는 중국에서 사명외도(邪命外道 )로 옮겨져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아지와까는 생계수단을 의미하는 aviva(命명)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그들은 바르지 못한 생계수단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사명외도로 옮겼다.
주석서에 의하면 아지와까는 나체수행자(nagga-paribbajaka)들이었다.(AA.iii.334)

 

“존자 아난다시여, 잘 설해진 법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세상에서 잘 실천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세상에서 잘 끝낸 분들은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장자여, 여기에서 그것을 되묻겠습니다. 좋으시다면,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십시오. 장자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탐욕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고, 성냄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고,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는 사람들에게 잘 설해진 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존자시여, 탐욕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고, 성냄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고,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는 사람들에게 잘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자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탐욕을 버리기 위해 닦고, 성냄을 버리기 위해 닦고,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닦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닦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존자시여, 탐욕을 버리기 위해 닦고, 성냄을 버리기 위해 닦고,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닦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닦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자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탐욕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들, 성냄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들, 어리석음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끝낸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존자시여, 탐욕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들, 성냄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들, 어리석음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끝낸 분들입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장자여, 그대는 ‘존자시여, 탐욕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고, 성냄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고,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는 분들에게 잘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대는 ‘존자시여, 탐욕을 버리기 위해 닦고, 성냄을 버리기 위해 닦고,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닦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닦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대는 ‘존자시여, 탐욕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분들, 성냄이 버려지고 ··· 어리석음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분들이 세상에서 잘 끝낸 분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존자시여. 자신의 법을 칭찬하지 않고, 남의 법을 비방하지도 않으면서, 뜻은 말해졌고, 자신은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존자 아난다시여, 그대들은 탐욕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하고, 성냄을 ···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법을 설합니다. 존자 아난다시여, 잘 설해진 법들은 그대들에게 있습니다. 존자 아난다시여, 그대들은 탐욕을 버리기 위해 닦고, 성냄을 ···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닦습니다. 존자 아난다시여, 세상에서 잘 닦는 자들은 그대들입니다. 존자 아난다시여, 그대들에게 탐욕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대들에게 성냄은 버려지고 ··· 그대들에게 어리석음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 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잘 끝낸 분들은 그대들입니다.

 

경이롭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저는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저는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mahānāmasakkasuttaṃ (AN 3.74-삭까 사람 마하나마 경)
7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는 세존께서는 병이 나아 회복되신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 무렵 삭까 사람 마하나마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삭까 사람 마하나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오랫동안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이런 법을 알고 있습니다.

‘앎은 삼매를 닦는 자에게 있다. 삼매를 닦지 않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참으로 세존이시여, 삼매가 먼저 있고 앎이 나중에 있습니까, 아니면 앎이 먼저 있고 삼매가 나중에 있습니까?”라고.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께서는 병이 나아 회복되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삭까 사람 마하나마는 세존께 너무 심오한 질문을 드린다. 내가 삭까 사람 마하나마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법을 설해주어야겠다.’라고.

 

*마하나마(Mahanama)는 사꺄족 왕의 한 사람이었으며 나누룻다(Anuruddha)존자의 형이고 세존의 사촌이 된다. 그는 맛있는 공양을 승가에 올린 자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세존께서 칭찬하실 만큼 정성을 다하여 세존을 모시고 승가를 후원하였다. 

 

아난다 존자는 삭까 사람 마하나마의 손을 잡고서 한 곁으로 이끈 뒤에 삭까 사람 마하나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하나마여, 세존께서는 유학(有學)의 계(戒)도 말씀하셨고, 무학((無學)의 계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삼매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삼매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지혜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지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무엇이 유학의 계입니까?

여기 마하나마여, 여기 비구는 계를 중시합니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닦습니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유학의 계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무엇이 유학의 삼매입니까?

여기 마하나마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유학의 삼매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마하나마여, 무엇이 유학의 지혜입니까?

여기 마하나마여,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이것이, 마하나마여, 유학의 지혜라고 불립니다.

 

이런, 마하나마여, 이렇게 계를 갖추고 이렇게 삼매를 갖추고 이렇게 지혜를 갖춘 그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렇게 마하나마여, 세존께서는 유학의 계도 말씀하셨고 무학의의 계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삼매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삼매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지혜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지혜도 말씀하셨습니다.”라고.

 

nigaṇṭhasuttaṃ (AN 3.75-니간타 경)

75. 한 때에 아난다 존자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건물에 머물렀다. 그 무렵 릿차위족 아바야와 릿차위족 빤디따꾸마라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릿차위족 아바야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존자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자입니다. 그는 조금도 모자람 없는 지(知)와 견(見)을 선언합니다. '나는 가고 서고 자고 깰 때 언제나 항상 지(知)와 견(見)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그는 이전의 업들을 고행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아서 조건을 제거한다. 이렇게 업이 소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소멸하고, 괴로움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일체 괴로움이 다할 것이다.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오염원들을 부수는) 청정을 통해서 (윤회를) 건너게 된다고 합니다. 존자시여,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아바야여, 중생들의 청정을 위해, 슬픔과 비탄을 건거기 위해, 고통과 고뇌의 줄어듬을 위해, 방법을 얻기 위해,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바르게 선언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셋입니까?

 

아바야여, 여기 비구는 계를 중시하는 자입니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는 자, 바른 행위와 영역을 갖춘 자, 아주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는 자로 머물고, 학습계목들에 대해 받아 지니고서 닦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오래된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이것이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바야여, 이렇게 계를 갖춘 그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 (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오래된 업을 끝냅니다. 이것이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바야여, 이렇게 삼매를 갖춘 그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오래된 업을 끝을 냅니다. 이것이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바야여, 중생들의 청정을 위해,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해,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해, 방법을 얻기 위해,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에 의해 바르게 선언된 것 세 가지 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릿차위족 빤디따꾸마라가 릿차위족 아바야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착한 아바야여, 그대는 어떻게 아난다 존자의 좋은 말씀을 듣고서 감사하지 않습니까?”

“착한 빤디따꾸마라여, 어떻게 내가 아난다 존자의 좋은 말씀을 듣고서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아난다 존자의 좋은 말씀을 감사하지 않는 자는 그의 목이 떨어질 것입니다.”

 

nivesakasuttaṃ (AN 3.76-안정 경)

76.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가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대의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에게 그대는 세 가지에 대해서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아난다여, 여래에게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지니도록 격려해야 하고 그것에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아난다여, 법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지니도록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승가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지니도록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四雙] 여덟 단계에 계신 분들[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아난다여, 네 가지 근본 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에는 변화가 있다. 그러나 세존께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변화란 없다. 

아난다여, 내가 말한 변화가 없다는 것은 여래에게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나 아귀계에 태어나는 그런 경우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난다여,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에는 변화가 있다. 그러나 법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변화란 없다. 
아난다여, 내가 말한 변화가 없다는 것은 법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나 아귀계에 태어나는 그런 경우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난다여,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에는 변화가 있다. 그러나 승가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변화란 없다.

아난다여, 내가 말한 변화가 없다는 것은 승가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나 아귀계에 태어나는 그런 경우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난다여, 그대가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대의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에게 그대는 이러한 세 가지에 대해서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paṭhamabhavasuttaṃ (AN 3.77-존재 경1)
77.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존재, 존재’라고 불립니다. 참으로, 세존이시여, 도대체 어떻게 존재가 있게 됩니까?”

 

“아난다여, 욕계로 이끄는 업이 없다면 그래도 욕계의 존재가 나타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렇게 업은 밭이고 의식(識)은 씨앗이고 갈애는 양분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에게 의식은 낮은 계(界)에 머문다. 이렇게 미래에 다시 존재로 태어난다."

 

"아난다여, 색계로 이끄는 업이 없다면 그래도 색계의 존재가 나타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렇게 업은 밭이고 의식(識)은 씨앗이고 갈애는 양분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에게 의식은 중간의 계(界)에 머문다. 이렇게 미래에 다시 존재로 태어난다."

 

"아난다여, 무색계로 이끄는 업이 없다면 그래도 무색계의 존재가 나타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렇게 업은 밭이고 의식(識)은 씨앗이고 갈애는 양분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에게 의식은 높은 계(界)에 머문다. 이렇게 미래에 다시 존재로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렇게 존재가 있다.”

 

dutiyabhavasuttaṃ (AN 3.78-존재 경2)

78.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존재, 존재’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도대체 어떻게 존재가 있게 됩니까?”

 

“아난다여, 욕계로 이끄는 업이 없다면 그래도 욕계의 존재가 나타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렇게 업은 밭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양분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의 의도와 기대는 낮은 계에 머문다. 이렇게 미래에 다시 존재로 태어난다."

 

아난다여, 색계로 이끄는 업이 없다면 그래도 색계의 존재가 나타나겠는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렇게 업은 밭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양분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의 의도와 기대는 증간 계에 머문다. 이렇게 미래에 다시 존재로 태어난다."

 

아난다여, 무색계로 이끄는 업이 없다면 그래도 무색계의 존재가 나타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렇게 업은 밭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양분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의 의도와 기대는 높은 계에 머문다. 이렇게 미래에 다시 존재로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렇게 존재가 있다.”

 

sīlabbatasuttaṃ (AN 3.79-계(戒)와 관행(慣行) 경)

79.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참으로 아난다여, '계와 관행을 따르는 생활과 궁극을 갈망하는 범행의 닦음'은 모두 결실이 있는가?”

“여기서, 세존이시여, 한쪽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분별해보라.”

 

“세존이시여, 어떤 '계와 관행을 따르는 생활과 궁극을 갈망하는범행의 닦음'을 사는 자에게 불선법[不善法]이 늘어나고 선법[善法]들이 줄어든다면, 그런 '와 관행을 따르는 생활과 궁극을 갈망하여 범행을 실천하는 것'은 결실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어떤 '계와 관행을 따르는 생활과 궁극을 갈망하는 범행의 닦음'을 사는 자에게 불선법이 줄어들고 선법이 늘어난다면, 그런 '계와 관행을 따르는 생활과 궁극을 갈망하는 범행의 닦음'은 결실이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말씀드렸고, 스승께서는 그것에 동의를 하셨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스승께서 나의 대답에 동의를 하셨구나.’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물러갔다. 아난다 존자가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유학이지만, 지혜가 대등한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gandhajātasuttaṃ (AN 3.80-향기의 종류 경)

80.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바람의 방향으로만 가고,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는 세 가지 향기가 있습니다. 어떤 세 가지입니까?

뿌리의 향기와 심재의 향기와 꽃의 향기입니다.

이것이, 세존이시여, 이것이 바람의 방향으로만 가고,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는 세 가지 향기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람의 방향으로도 가고, 바람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바람의 방향으로도 가고 거슬러 가기도 하는 향기가 어떤 것이든 있습니까?”

 

“아난다여, 바람의 방향으로도 가고, 바람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바람의 방향으로도 가고 거슬러 가기도 하는 향기가 어떤 것이든 있다.”

“세존이시여, 바람의 방향으로도 가고, 바람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바람의 방향으로도 가고 거슬러 가는 향기는 어떤 것입니까?”


“여기, 아난다여, 어떤 마을이나 성읍에 사는 여자거나 남자가 여래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한다.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술과 발효액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선한 성품으로 계를 중시하고, 인색의 오염을 떠난 마음으로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베풂과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하며, 재가에 산다.

 

그에게 여러 방향에서 사문∙바라문들이 칭찬한다. 

‘이런저런 마을이나 성읍에 사는 여자거나 남자가 세존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한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술과 발효액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선한 성품으로 계를 중시하고, 인색의 오염을 떠난 마음으로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베풂과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하며, 재가에 산다.'라고.

 

신들도 칭찬한다.

‘이런저런 마을이나 성읍에 사는 여자거나 남자가 세존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한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술과 발효액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선한 성품으로 계를 중시하고, 인색의 오염을 떠난 마음으로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베풂과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하며, 재가에 산다.'라고.

이것이, 아난다여, 바람 방향으로도 가고, 거슬러서도 가고, 바람 방향으로도 거슬러서도 가는 그 향기이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전단향과 향기로운 관목과 재스민 향기도 못한다.
그러나 덕 있는 자의 향기는 바람을 거스른다.
고결한 사람은 모든 방향으로 퍼진다.

 

cūḷanikāsuttaṃ (AN 3.81-소천세계(小千世界) 경)

81.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아난다여, 시키 세존의 아비부라는 제자는 범천의 세상에 서서 천의 세계에 소리를 듣게 했다.’라고.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얼마 만큼에 소리를 듣게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는 제자다. 여래들은 헤아릴 수 없다.”

 

두 번째도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아난다여, 시키 세존의 아비부라는 제자는 범천의 세상에 서서 천의 세계에 소리를 듣게 했다.’라고.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얼마 만큼에 소리를 듣게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는 제자다. 여래들은 헤아릴 수 없다.”

 

세 번째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면전에서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아난다여, 시키 세존의 아비부라는 제자는 범천의 세상에 서서 천의 세계에 소리를 듣게 했다.’라고.

그러면, 세존이시여,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얼마 만큼에 소리를 듣게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대는 천의 작은 세계[小千世界소천세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설해주실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저는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을 받들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달과 태양이 움직이고, 비추어지는 방향들이 나타나는 만큼으로 천 배의 세상이 있다. 그 천 배의 세상에 천의 달과 천의 태양과 천의 산의 왕 수미산과 천의 잠부디빠와 천의 아빠라고야나와 천의 웃따라꾸루와 천의 뿝바위데하와 사천의 큰 바다와 사천의 대왕과 천의 사대천왕과 천의 삼십삼천과 천의 야마천과 천의 도솔천과 천의 화락천과 천의 타화자재천과 천의 범천의 세상이 있다. 아난다여, 이것이 천의 작은 세계라고 불린다. 

 

아난다여, 천의 작은 세계(소천세계)의 천 배의 세상이 있다. 아난다여, 이것이 두 천의 중간 세계[중천세계中千世界]라고 불린다. 

아난다여, 두 천의 중간 세계의 천 배의 세상이 있다. 아난다여, 이것이 세 천의 큰 세계[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불린다. 

아난다여, 하고자하면 여래는 세 천의 큰 세계[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소리를 듣게 할 수 있다. 하고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세존께서는세 천의 큰 세계[삼천대천세계]에 소리를 듣게 할 수 있고, 하고자하는 만큼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여기 여래는 세 천의 큰 세계를 빛으로 덮는다. 중생들이 그 빛을 인식할 때 여래는 소리를 내고, 소리를(음성을) 듣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아난다여, 여래는 세 천의 큰 세계에 소리를 듣게 할 수 있다. 하고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우다이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의 스승에게 이렇게 큰 신통과 이렇게 큰 위력이 있으니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고 참으로 나에게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우다이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스승께서 이렇게 큰 신통과 이렇게 큰 위력이 있다하더라도, 도반 아난다여, 그대에게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우다이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우다이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우다이여, 만약 아난다가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마음의 믿음 때문에 일곱 번 하늘에서 하늘의 왕이 될 것이고, 일곱 번 이 잠부디빠에서 대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다이여, 아난다는 지금.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성취할 것이다.”라고.



제8장 아난다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