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셋의 모음 - 9. 사문 품(Samaṇa-vagga. AN3.82-92))

실론섬 2014. 6. 15. 19:15

제9장 사문 품 Samaṇa-vagga(AN3.82-92)

 

samaṇasuttaṃ (AN 3.82-사문 경)

82. “비구들이여, 사문에게 주어진 이런 세 가지 사문의 의무, 사문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높은 계의 닦음을 감당함, 높은 마음의 닦음을 감당함, 높은 지혜의 닦음을 감당함. 

이것이, 비구들이여,사문에게 주어진 세 가지 사문의 의무, 사문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높은 계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관심)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높은 마음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를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높은 지혜의 공부를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gadrabhasuttaṃ (AN 3.83-당나귀 경)

83.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나도 소다. 나는 소도.’라고 하면서 소 떼를 뒤따르는 당나귀가 있다. 그에게 소와 같은 모습이 없고, 소와 같은 소리가 없고, 소와 같은 발자국이 없다. 그는 단지 ‘나도 소다. 나도 소다.’라고 하면서 소 떼를 뒤따를 뿐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나도 비구다. 나도 비구다.’라고 하면서 비구 승가를 뒤따른다. 그에게 다른 비구들처럼 높은 계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열의가 없다. 그에게 다른 비구들처럼 높은 마음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열의가 없다. 그에게 다른 비구들처럼 높은 지혜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열의가 없다. 그는 단지 ‘나도 비구다. 나도 비구다.’라고 하면서 비구 승가를 의 뒤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높은 계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관심)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높은 마음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를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높은 지혜의 공부를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khettasuttaṃ (AN 3.84-들판 경)

84. “비구들이여, 농사짓는 장자에게는 먼저 해야 하는 이런 세 가지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농사짓는 장자는 먼저 땅을 잘 쟁기질하고 잘써레질해야 한다. 먼저 땅을 잘 쟁기질하고 써레질한 뒤 시기에 맞게 씨를 뿌린다. 씨를 뿌린 뒤에 때맞춰 물을 넣기도 하고 물을 빼기도 한다. 

이 세 가지가, 비구들이여, 농사 짓는 장자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먼저 해야 하는 이런 세 가지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높은 계의 닦음을 감당함, 높은 마음의 닦음을 감당함, 높은 지혜의 닦음을 감당함. 

이 세 가지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기서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높은 계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관심)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높은 마음의 닦음을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를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높은 지혜의 공부를 감당하기 위한 강한 열의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vajjiputtasuttaṃ (AN 3.85-왓지의 후예 경)

85.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에 있는 뾰족지붕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왓지의 후예인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아서 왓지의 후예인 비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150개가 넘는 이 학습계율들을 보름마다 암송합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저는 이대로 닦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비구여, 높은 계를 닦고, 높은 마음을 닦고, 높은 지혜를 닦는 세 가지 닦음에 대해 닦는 것은 그대에게 가능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높은 계의 닦음과 높은 마음의 닦음과 높은 지혜의 닦음의 세 가지 닦음에 대해 닦는 것은 저에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비구여, 그대는 높은 계의 닦음과 높은 마음의 공부와 높은 지혜의 공부의 세 가지 닦음에 대해 닦아라비구여, 그대가 높은 계를 닦을 것이고, 높은 마음을 닦을 것이고, 높은 지혜를 닦을 것이기 때문에, 비구여, 그대에게 높은 계를 닦음에 따라, 높은 마음을 닦음에 따라, 높은 지혜를 닦음에 따라 탐욕이 제거될 것이고, 성냄이 제거될 것이고, 어리석음이 제거될 것이다. 그런 그대는 탐욕이 제거되고, 성냄이 제거되고, 어리석음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불선(不善)을 짓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실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그 비구는 뒤따라 높은 계를 닦았고, 높은 마음을 닦았고, 높은 지혜를 닦았다. 그에게 높은 계를 높은 계를 닦음에 따라, 높은 마음을 닦음에 따라, 높은 지혜를 닦음에 따라 탐욕이 제거되었고 성냄이 제거되었고 어리석음이 제거되었다. 그는 탐욕이 제거되고 성냄이 제거되고 어리석음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불선(不善)을 짓지 않았고, 악(惡)을 실천하지 않았다,"

 

sekkhasuttaṃ (AN 3.86-유학 경)

86.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유학(有學), 유학’이라고 불립니다. 어떻게, 세존이시여, 유학이 됩니까?”

“비구여, '닦는다(공부한다)'라고 해서 유학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무엇을 닦는가? 높은 계도 닦고, 높은 마음도 닦고, 높은 지혜도 닦는다. '닦는다.'라고 해서, 비구여, 유학이라고 불린다.

 

바른 길에 일치된 닦음을 따르는 유학에게 

먼저 부서짐에 대한 지혜가 있다. 그로부터 구경의 지혜가 뒤따른다.

 

그로부터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자에게 존재의 족쇄의 부서짐에서  

‘나에게 부동(不動)의 해탈이 있다.’라는 지혜가 있다."

 

paṭhamasikkhāsuttaṃ (AN 3.87-외움 경)

“비구들이여, 자신의 이익을 바라는(자신을 사랑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닦는 곳에서는 150개 이상의 학습계목을 암송하기 위해 보름마다 온다. 비구들이여, 모임을 위해서 가는 이 모든 곳에는 세 가지 이런 닦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높은 계를 닦음, 높은 마음을 닦음, 높은 지혜를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모임을 위해서 가는 이 모든 곳에는 이런 세 가지 닦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어느 만큼씩 닦은 자이고(어느 정도만 완성하였고) 지혜에 대해 어느 만큼씩 닦은 자이다.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에 흔들리지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확립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예류자預流者]여서  [네 가지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어느 만큼씩 닦은 자이고(어느 정도만 완성하였고) 지혜에 대해 어느 만큼씩 닦은 자이다.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에 흔들리지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확립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일래자一來者]이니, 한 번만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지혜에 대해 어느만큼만 닦은 자이다.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에 흔들리지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 학습계목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한다.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불환자不還者]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지혜에 대해 완성한 자이다.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기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그것 때문에 성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에 흔들리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심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혜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아라한阿羅漢]

 

이렇게, 비구들이여, 부분적으로 완성하는 사람은 부분적인 것을 성취한다. 완전하게 완성하는 사람은 완성된 것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학습계목들은 결코 무익하지 않다고 나는 말한다.”

 

dutiyasikkhāsuttaṃ (AN 3.88-외움 경2)

88. “비구들이여, 이익을 바라는(자신을 사랑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닦는 곳에서는 150개 이상의 학습계목을 암송하기 위해 보름마다 온다. 모임을 위해서 가는 이 모든 곳에는 세 가지 이런 닦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높은 계를 닦음, 높은 마음을 닦음, 높은 지혜를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모임을 위해서 가는 이 모든 곳에는 이런 세 가지 닦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어느 만큼씩 닦은 자이고 지혜에 대해 어느 만큼씩 닦은 자이다.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기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에 흔들리지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최대 일곱 번의 생이 남아 있는 자가 된다. 그는 신이나 인간 가운데 최대 일곱 번 옮겨가고 윤회한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좋은 가문에서 좋은 가문으로 가는 자가 된다. 두 번 혹은 세 번 좋은 가문을 옮겨가서 윤회한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한 번만 싹 트는 자(eka-bījī)가 된다. 한 번만 인간의 상태로 ㅐ어난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지혜에 대해 어느 만큼만 닦은 자이다.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기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그것 때문에 성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에 흔들리지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높은 흐름에 든 자, 색구경천에 태어나는 자가 된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들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을 통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행(行)없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수명의 중반에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안성한 자이고 지혜에 대해 완성한 자이다. 그는 계에 흔들리지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모든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부분적으로 완성하는 사람은 부분적인 것을 성취한다. 완전하게 완성하는 사람은 완성된 것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학습계목들은 결코 무익하지 않다고 나는 말한다.”

 

tatiyasikkhāsuttaṃ (AN 3.89-외움 경3)

89. “비구들이여, 이익을 바라는(자신을 사랑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닦는 곳에서는 150개 이상의 학습계목을 암송하기 위해 보름마다 온다. 모임을 위해서 가는 이 모든 곳에는 세 가지 이런 닦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높은 계를 닦음, 높은 마음을 닦음, 높은 지혜를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모임을 위해서 가는 이 모든 곳에는 이런 세 가지 닦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에 대해 안성한 자이고 삼매에 대해 완성한 자이고 지혜에 대해 완성한 자이다.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비구들이여, 참으로 여기서 나는 불가능 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에 흔들리 않고 계에 안정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닦는다. 그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아라한(阿羅漢)].

 

그러나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수명의 중반에 완전한 열반하는 자가 된다. 또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또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행없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또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행을 통해 완전히 열반하는 자가 된다. 또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높은 흐름에 든자(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Akaniṭṭha)에 태어나는 자가 된다.

 

떠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또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한 번만 싹 트는 자(eka-bīji)가 되어 한 번만 인간 상태로 태어난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또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좋은 가문에서 좋은 가문으로 가는 자가 되어 두 번 혹은 세 번 좋은 가문을 옮겨가고 윤회한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또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면, 그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최대 일곱 번의 생이 남아 있는 자가 된어 그는 신이나 인간 가운데 최대 일곱 번 옮겨가고 윤회한 뒤에 괴로움을 끝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부분적으로 완성하는 사람은 부분적인 것을 성취한다. 완전하게 완성하는 사람은 완성된 것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학습계목들은 결코 무익하지 않다고 나는 말한다.” 

 

paṭhamasikkhattayasuttaṃ (AN 3.90-세 가지로 구성된 공부 경1)

90.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닦음이 있다. 어떤 셋인가? 

높은 계를 닦음, 높은 마음을 닦음, 높은 지혜를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계를 닦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계를 중시한다(잘 지킨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계를 닦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삼매를 닦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삼매를 닦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지혜를 닦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지혜를 닦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닦음이 있다.”

 

dutiyasikkhattayasuttaṃ (AN 3.91-세 가지로 구성된 공부 경2)

91.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닦음이 있다. 어떤 셋인가? 

높은 계를 닦음, 높은 마음을 닦음, 높은 지혜를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계를 닦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계를 중시한다(잘 지킨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계를 닦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삼매를 닦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삼매를 닦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지혜를 닦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높은 지혜를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닦음이 있다.

 

노력과 끈기와 확고함을 갖추고 선(禪)을 하는 사람은 마음챙김을 갖추고 감각기능들을 보호하며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혜를 닦아야 한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먼저처럼 나중을'라고 옮긴 원문은 yatha pure tatha paccha 인데 주석서에서는 처음 삼학을 닦을 때처럼 나중에도 그렇게 한다는 뜻이라고 하고, 아랫줄의 '아래처럼 위로'라는 것은 yatha adho tatha uddha 인데 아랫부분의 몸에 대해서도 부정하다고 보고 윗부분에 대해서도 그렇게 본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AA.ii.352)

 

낮처럼 밤을, 밤처럼 낮을

무량한 삼매로써 모든 방향을 지배한다.

 

그는 유학의 법을 닦는 자, 청정하게 사는 자라고 말하고

그를 지혜로써 닦음을 끝낸 자, 세상에서 바르게 깨달은 자라고 말한다.

 

의식의 소멸로 인해 갈애가 부서져 해탈한 사람에게

등불이 꺼지듯 마음이 해탈한다.”

 

saṅkavāsuttaṃ (AN 3.92-상까와 경)
92.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시다가 상까와라는 꼬살라의 성읍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쌍까와에 머무셨다. 그 무렵 깟사빠곳따라는 비구가 쌍가와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깟사빠곳따 비구는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시는 세존을 ‘이 사문은 지나치게 엄한 스승이다(이 사문은 단지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하였다. 세존께서는 쌍까와에서 원하는 만큼 머문 뒤에 라자가하로 유행을 떠나셨다. 점차적으로 유행하여 라자가하에 도착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다.

 

깟사빠곳따 비구는 세존께서 떠나고 오래지 않아서 후회하고 뉘우쳤다.

‘내가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시는 세존을 ‘이 사문은 지나치게 엄한 스승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한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세존께 가야겠다. 가서 세존의 곁에서 잘못을 참회해야겠다.'라고. 그래서 깟사빠곳따 비구는 거처를 정리한 뒤에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라자가하로 출발했다. 첨차적으로 유행을 하여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계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깟사빠곳따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한때 그분 세존께서는 상까와에서 상까와라는 꼬살라의 성읍에서 머무셨습니다. 거기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습니다. 저는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시는 세존을 ‘이 사문은 지나치게 엄한 스승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ㅗ못마땅해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상까와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에 라자가하로 유행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떠나고 오래지 않아서 후회하고 뉘우쳤습니다. ‘내가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시는 세존을 ‘이 사문은 지나치게 엄한 스승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한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세존에게 가야겠다. 가서 세존의 곁에서 잘못을 참회해야겠다.’라고.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해서 저는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시는 세존을 ‘이 사문은 지나치게 엄한 스승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저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깟사빠여,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해서 비구들에게 학습계목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나를 ‘이 사문은 지나치게 엄한 스승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깟사빠여, 그대가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에 따라 바로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를 받아들인다. 깟사빠여,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고, 미래에 단속하는 자는 이 성스러운 율에서 향상한다. 

 

만약에, 깟사빠여, 닦음을 좋아하지도 않고, 닦는 것를 칭찬하지 않는 장로 비구가 있어서 닦음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닦음을 위해서 부추기지 않고(격려하지 않고), 닦음을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 진실하고 바르게 적절한 때에 칭찬하지 않는다면, 이런 장로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손해와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러한 장로 비구를 칭찬하지 않는다.

 

만약에, 깟사빠여, 닦음을 좋아하지도 않고, 닦는 것를 칭찬하지 않는 중진 비구가 있어서 ··· 만약에, 깟사빠여, 닦음을 좋아하지도 않고, 닦는 것를 칭찬하지 않는 신참 비구가 있어서 닦음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닦음을 위해서 부추기지 않고(격려하지 않고), 닦음을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 진실하고 바르게 적절한 때에 칭찬하지 않는다면, 이런 신참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손해와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러한 신참 비구를 칭찬하지 않는다.

 

만약에, 깟사빠여, 닦음을 좋아하고, 닦는 것을 칭찬하는 장로 비구가 있어서 닦음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닦음을 위해 부추기고, 닦음을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게 진실하고 바르게 칭찬한다면, 이런 장로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런 장로 비구를 칭찬한다.

 

만약에, 깟사빠여, 닦음을 좋아하고, 닦는 것을 칭찬하는 중진 비구가 있어서 ··· 만약에, 깟사빠여, 닦음을 좋아하고, 닦는 것을 칭찬하는 신참 비구가 있어서 닦음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닦음을 위해 부추기고, 닦음을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게 진실하고 바르게 칭찬한다면, 이런 신참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런 신참 비구를 칭찬한다."   

 

 

 

제9장 사문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