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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상윳따 - 제3장 108가지 방편 품(S36:21-S36:31. Aṭṭhasatapariyāya-vagga)

실론섬 2014. 6. 20. 22:19

제3장 108가지 방편 품

Aṭṭhasatapariyāya-vagga (SN 36.21-31)

 

sīvakasuttam (SN 36.21-시와까 경)

269.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몰리야시와까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몰리야시와까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몰리야시와까 유행승(Moliyasivaka paribbahaka)의 이름은 시와까이다. 그러나 그는 상투(cula)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몰리야시와까라 불린다.(SA.iii.81) 몰리(moli)는 상투를 뜻하는 단어이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담즙(膽汁) 때문에 생긴 것이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누구나 스스로 알 수 있고 세상에서도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시와까여, 그런데도 여기에 대해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스스로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과 어긋나고, 세상에서 인정하는 사실과도 어긋나기 때문에, 나는 그들 사문∙바라문들이 잘못되었다고 설한다.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점액(粘液) 때문에 생긴 것이니 ···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바람(風) 때문에 생긴 것이니 ···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그 세 가지가 겹쳐서 생긴 것이니 ···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계절의 변화(환경)에 의해서 생긴 것이니 ···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고르지 못한 주의집중(치우침, 몰두, 중독)에 의해서 생긴 것이니 ···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갑작스러움(의외의 변수)에 의해서 생긴 것이니 ··· 

*굳이 여기서 담즙과 점액과 바람을 인용한 것은 이 세가지는 인도의학 즉 아유르베다(Ayurveda)에서 체질이나 기질의 토대가 된다고 여기는 세 가지 원인이 되는 물질이다.  

 

시와까여, 어떤 느낌들은 업보에 의해서 생긴 것이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누구나 스스로 알 수 있고 세상에서도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시와까여, 그런데도 여기에 대해서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그런 주장과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스스로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과 어긋나고, 세상에서 인정하는 사실과 어긋나기 때문에, 나는 그들 사문∙바라문들이 잘못되었다고 설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몰리야시와까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거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봅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aṭṭhasatasuttaṃ (SN 36.22-백팔 방편 경)

270.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방편에 따른 108 법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방편에 따른 108가지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방편에 따라 두 가지 느낌도 설하고, 나는 방법에 따라 세 가지 느낌도 설하고, 나는 방편에 따라 다섯 가지 느낌도 설하고, 나는 방편에 따라 여섯 가지 느낌도 설하고, 나는 방편에 따라 열여덟 가지 느낌도 설하고, 나는 방편에 따라 서른여섯 가지 느낌도 설하고, 나는 방편에 따라 108가지 느낌도 설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두 가지 느낌인가?

육체적인 느낌과 정신적인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가지 느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세 가지 느낌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느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다섯 가지 느낌인가?

육체적 즐거움의 기능[樂根], 육체적 괴로움의 기능[苦根], 정신적 즐거움의 기능[喜根], 정신적 괴로움의 기능[憂根], 평정의 기능[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느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여섯 가지 느낌인가?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열여덟 가지 느낌인가?

정신적 즐거움을 수반하는 여섯 가지 추구, 정신적 괴로움을 수반하는 여섯 가지 추구, 평정(평온)을 수반하는 여섯 가지 추구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열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불린다.

 

*'추구'는 upavicara를 옮긴 것이다. 여기서 여섯 가지 추구는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에 대한 추구이다. 그래서 모두 18가지가 된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서른여섯 가지 느낌인가?

여섯 가지 세간에 연결된 정신적 즐거움, 여섯 가지 출리에 연결된 정신적 즐거움, 여섯 가지 세간에 연결된 정신적 괴로움, 여섯 가지 출리에 연결된 정신적 괴로움, 여섯 가지 세간에 연결된 평정, 여섯 가지 출리에 연결된 평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백여덟 가지 느낌인가?

과거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 미래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 현재의 서른여섯 가지의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백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방편에 따른 108가지 법문이다.”

 

aññatarabhikkhusuttaṃ (SN 36.23-어떤 비구 경)
271.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느낌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실천이고, 무엇이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입니까? 무엇이 느낌의 맛이고, 무엇이 위험(잘못됨)이고, 무엇이 벗어남입니까?”

 

"비구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여, 이것이 느낌이라고 불린다. 감각접촉의 일어남으로부터 느낌이 일어남이 있고, 갈애가 느낌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실천이다.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느낌의 소멸이 있고, 오직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느낌을 연(緣)하여 일어나는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 이것이 느낌의 맛이다.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 이것이 느낌의 위험이다. 느낌에 대한 욕탐의 길들임과 욕탐의 버림, 이것이 느낌의 벗어남이다.”

 

pubbasuttaṃ (SN 36.24-이전 경)

272.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무엇이 느낌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실천이고, 무엇이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입니까? 무엇이 느낌의 맛이고, 무엇이 위험(잘못됨)이고, 무엇이 벗어남인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이라고 불린다. 감각접촉의 일어남으로부터 느낌이 일어남이 있고, 갈애가 느낌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실천이다. ··· 느낌에 대한 욕탐의 길들임과 욕탐의 버림, 이것이 느낌의 벗어남이다.”   

ñāṇasuttaṃ (SN 36.25-앎 경)
273. “'이런 느낌들이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 ‘이것이 느낌의 소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 ‘이것이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 ‘이것이 느낌의 맛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 '이것이 느낌의 위험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 ‘이것이 느낌의 벗어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혜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sambahulabhikkhusuttam (SN 36.26-많은 비구 경)
274.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느낌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느낌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실천이고, 무엇이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입니까? 무엇이 느낌의 맛이고, 무엇이 위험(잘못됨)이고, 무엇이 벗어남입니까?”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느낌이라고 불린다. 감각접촉의 일어남으로부터 느낌이 일어남이 있고, 갈애가 느낌의 일어남으로 이끄는 실천이다.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느낌의 소멸이 있고, 오직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느낌을 연(緣)하여 일어나는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 이것이 느낌의 맛이다.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 이것이 느낌의 위험이다. 느낌에 대한 욕탐의 길들임과 욕탐의 버림, 이것이 느낌의 벗어남이다.”

 

paṭhamasamaṇabrāhmaṇasuttaṃ (SN 36.27-사문-바라문 경1)
275.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세 가지 느낌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면,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라도 이 세 가지 느낌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린다면, 그와 같은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dutiyasamaṇabrāhmaṇasuttaṃ (SN 36.28-사문-바라문 경2)

276.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세 가지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철저히 알지 못하면,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라도 이 세 가지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철저히 알아차린다면, 그와 같은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tatiyasamaṇabrāhmaṇasuttaṃ (SN 36.29-사문-바라문 경3)

277.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느낌을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을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라도 느낌을 철저히 알아차리고 느낌의 일어남을 철저히 알아차리고 느낌의 소멸을 철저히 알아차리고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철저히 알아차린다면, 그와 같은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suddhikasuttaṃ (SN 36.30-단순함 경)

278.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다.”

 

nirāmisasuttaṃ (SN 36.31-출세간 경)

279. “비구들이여, 개발되지 않은 희열[喜]이 있고, 개발된 희열이 있고,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희열이 있다. 개발되지 않은 행복[樂]이 있고, 개발된 행복이 있고,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행복이 있다. 개발되지 않은 평정[捨]이 있고, 개발된 평정이 있고,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평정이 있다. 개발되지 않은 해탈이 있고, 개발된 해탈이 있고,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해탈이 있다.  

 

*여기서 '개발된'과 '개발되지 않은'과 개발된 것보다 더 큰 개발된 것'은 각각 samisa와 niramisa 와 niramisatara를 옮긴 것이다. amisa는 형용사 ama(날것의)에서 파생된 것인데 문자적으로는 생고기(raw meat)를 뜻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되지 않은 희열인가?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는 마련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기 마련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연(緣)하여 일어나는 희열,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되지 않은 희열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희열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된 희열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희열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으로부터 해탈된(완전히 벗어난) 마음을 관찰하고, 성냄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고, 어리석음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는 번뇌 다한 비구에게 일어나는 희열,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된 거보다 더 개발된 희열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되지 않은 행복인가?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기 마련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기 마련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연하여 일어나는 행복과 즐거움,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되지 않은 행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행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된 행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행복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고, 성냄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고, 어리석음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는 번뇌 다한 비구에게 일어나느 행복,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행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되지 않은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기 마련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불러 일으키고 환락을 야기하기 마련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을 연하여 일어나는 평정,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되지 않은 평정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평정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된 평정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고, 성냄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고, 어리석음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는 번뇌 다한 비구에게 일어나는 평정,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평정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되지 않은 해탈인가?

물질[色]에 묶여있는 해탈이 개발되지 않은 해탈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해탈인가?

무색[無色에 묶여 있는 해탈이 개발된 해탈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해탈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고, 성냄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고, 어리석음으로부터 해탈된 마음을 관찰하는 번뇌 다한 비구에게 일어나는 해탈, 비구들이여, 이것이 개발된 것보다 더 개발된 해탈이라고 불린다.”

 

 

제3장 108가지 방편 품이 끝났다. 

 

 느낌 상윳따(S36)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