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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상윳따 - 잠부카다까 상윳따(S38:1-S38:16. Jambukhādaka-saṁyutta)

실론섬 2014. 6. 20. 23:33

제38주제(S38) 잠부카다까 상윳따 

Jambukhādaka-saṁyutta 

 

nibbānapañhāsuttaṃ (SN 38.1-열반 질문 경)

314,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의 날라까가마까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잠부카다까 유행승이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잠부카다까 유행승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라까가마까(Nalaka-gamaka) 혹은 날라까 마을은 사리뿟따 존자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사리뿟따 존자는 이 날라까가마까에 있는 그의 고향집에 가서 어머니를 불교에 귀의하게 하고, 옛날 자기 방에서 세존보다 먼저 반열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사리뿟따 존자 생전에도 그와 인연이 많았던 곳인데 특히 본 잠부카디까 상윳따의 모든 경들과 드음의 사만다까 상윳따의 첫 번째 경을 제외한 모든 경들은 사리뿟따 존자가 이곳 날라까가마까에서 설한 경들이다.

*잠부까다까 유행승(Jambukhadaka paribbajaka)은 사리뿟따 존자의 조카였으며 그는 옷을 입는 유행승이었다.(SA.iii.88) 문자적으로는 잠부카다까는 잠부 열매를 먹는 자라는 뜻이다. 

주석서와 복주석서에 의하면 유행승에도 옷을 입는 유행승(channa-paribbahaka)과 옷을 입지 않는 유행승(nagga-paribbajaka)이 있었으며 옷을 입지 않는 유행승을 나체수행자(acela)라 부른다.(DA.ii.349;DAT.i.472)

 

“도반이여, ‘열반, 열반’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무엇이 열반입니까?”

“도반이여, 탐욕이 부서지고, 성냄이 부서지고, 어리석음이 부서진 것 – 이것을 열반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러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길(道)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러한 열반의 실현을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열반의 실현을 위해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러한 열반의 실현을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열반의 실현을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열반의 실현을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하기에 충분합니다.”

 

arahattapañhāsuttaṃ (SN 38.2-아라한 됨 질문 경)

315. “도반이여, ‘아라한 됨, 아라한 됨’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무엇이 아라한 됨입니까?”

“도반이여, 탐욕이 부서지고, 성냄이 부서지고, 어리석음이 부서진 것 – 이것을 아라한 됨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러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길(道)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러한 아라한 됨의 실현을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아라한 됨의 실현을 위해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러한 아라한 됨의 실현을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아라한 됨의 실현을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아라한 됨의 실현을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하기에 충분합니다.”

 

dhammavādīpañhāsuttaṃ (SN 38.3-법을 설파한 자에 대한 질문 경)

316. “도반 사리뿟따여, 누가 세상에서 법을 설파한 자이고, 누가 세상에서 잘 닦은 자이고, 누가 세상에서 잘 가신 분[선서.善逝]입니까?”

“도반이여, 탐욕을 버리기 위한 법을 제시하고, 성냄을 버리기 위한 법을 제시하고,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법을 제시한 그들이 세상에서 법을 설파한 자들입니다. 도반이여, 탐욕을 버리기 위해 닦은, 성냄을 버리기 위해 닦은,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닦은 그들이 세상에서 잘 닦은 자들입니다. 탐욕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짤린 줄기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고, 성냄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짤린 줄기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고, 어리석음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짤린 줄기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그들이 세상에서 잘 가신 분들입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버림을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하기에 충분합니다.

 

kimatthiyasuttaṃ (SN 38.4-어떤 목적 경)

317. “도반 사리뿟따여, 무엇을 목적으로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

“도반이여, 괴로움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목적으로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런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하기에 충분합니다.”

 

assāsappattasuttaṃ (SN 38.5-안락을 얻음 경)

318. “도반 사리뿟따여, ‘안락(평안) 얻음, 안락을 얻음'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얼마만큼 안락을 얻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여섯 가지 감각접촉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 때, 도반이여, 그만큼 안락을 얻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안락의 실현을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런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안락을 실현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하기에 충분합니다.”

 

paramassāsappattasuttaṃ (SN 38.6-궁극의 안락을 얻음 경)

319. “도반 사리뿟따여, ‘궁극의 안락(평안)을 얻음, 궁극의 안락을 얻음' 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얼마만큼 궁극의 안락을 얻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여섯 가지 감각접촉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 뒤 집착 없이 해탈합니다. 도반이여, 그만큼 궁극의 안락을 얻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궁극의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궁극의 안락을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궁극의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런 궁극의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궁극의 안락을 실현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궁극의 안락을 실현하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이여, 불방일하기에 충분합니다.”

 

vedanāpañhāsuttaṃ (SN 38.7-느낌에 대한 질문 경)

320. “도반 사리뿟따여, ‘느낌, 느낌’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느낌입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세 가지입니까? 그것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런 세 가지 느낌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의 완전한 지혜를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느낌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닦음입니다. 그러니 도반이여, 불방일하기에 충분합니다.”

 

āsavapañhāsuttaṃ (SN 38.8-번뇌에 대한 질문 경)

321. “도반이여, ‘번뇌, 번뇌’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번뇌입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세 가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를 버리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avijjāpañhāsuttaṃ (SN 38.9-무명(無明)에 대한 질문 경)

322. “도반 사리뿟따여, ‘무명, 무명’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무명입니까?”

“도반이여, 괴로움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무지. 도반이여, 이것이 무명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 무명을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 무명을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 무명을 제거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세 가지 무명을 제거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무명을 제거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번뇌를 버리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taṇhāpañhāsuttaṃ (SN 38.10-갈애에 대한 질문 경)

322. “도반 사리뿟따여, ‘갈애, 갈애’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갈애입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갈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갈애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갈애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갈애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갈애를 제거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세 가지 갈애를 제거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갈애를 제거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갈애를 버리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oghapañhāsuttaṃ (SN 38.11-폭류에 대한 질문 경)

323. “도반 사리뿟따여, ‘폭류(거친 흐름), 폭류’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폭류입니까?”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폭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의 폭류, 존재의 폭류, 견해의 폭류, 무명의 폭류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폭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폭류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폭류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폭류를 제거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네 가지 폭류를 제거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폭류를 제거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폭류를 버리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upādānapañhāsuttaṃ (SN 38.12-집착에 대한 질문 경)

324. “도반 사리뿟따여, ‘집착, 집착’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집착입니까?”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집착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집착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집착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네 가지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네 가지 집착을 버리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bhavapañhāsuttaṃ (SN 38.13-존재에 대한 질문 경)
326. “도반 사리뿟따여, ‘존재, 존재’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존재입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욕계의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의 존재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를 제거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를 제거하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세 가지 존재를 제거하기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존재를 버리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dukkhapañhāsuttaṃ (SN 38.14-괴로움(苦)에 대한 질문 경)

327. “도반 사리뿟따여, ‘괴로움, 괴로움’이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괴로움입니까?”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런 괴로움의 성질[苦苦性], 형성된 괴로움의 성질[行苦性],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의 성질[壞苦性]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성질들을 완전히 알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성질들을 완전히 알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성질들을 완전히 알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런 괴로움의 성질들을 완전히 알기 위한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성질들을 완전히 알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괴로움의 성질들을 완전히 알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에 대해서 「청정도론」 XVI:35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①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은 고유성질로서도, 이름에 따라서도 괴롭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괴로움이라 한다. ②즐거운 느낌은 그것이 변할 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원인이 되기 때문에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이라 한다. ③평온한 느낌과 너머지 삼계에 속하는 상카라들(행)은 일어나고 사라짐에 압박되기 때문에 형성된 괴로움이라 한다.  

 

sakkāyapañhāsuttaṃ (SN 38.15-자기 존재(유신.有身)에 대한 질문 경)

328. “도반 사리뿟따여, ‘자기 존재, 자기 존재’라고 불립니다. 도반이여, 무엇이 자기 존재입니까?”

“도반이여, 그것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느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인식)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의식작용(식별)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의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오취온.五取蘊)이 자기 존재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자기존재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자기존재를 완전히 알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런 자기존재를 완전히 알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이런 자기존재를 완전히 알기 위한 어떤 길이 있고 어떤 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오직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바른 길이 이런 자기존재를 완전히 알기 위한 위한 길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자기존재를 완전히 알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도반이여, 이런 자기존재를 완전히 알기 위한 훌륭한 길이고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러니 도반 사리뿟따여, 불방일을 위해(하기에) 충분합니다.”   

 

dukkarapañhāsuttaṃ (SN 38.16-행하기 어려운 것 질문 경)

329. “도반 사리뿟따여, 이 법과 율에서 행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이여, 출가가 이 법과 율에서 행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출가한 자가 행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이여, 출가자가 행하기 어려운 것은 기뻐함(만족)입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기뻐하는 자가 행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이여, 기뻐하는 자가 행하기 어려운 것은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닦는 비구가 아라한이 되는 데는 얼마난 걸립니까?”

“도반이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잠부카다까 상윳따(S38)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