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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상윳따 - 우두머리 상윳따(SN42:1-SN42:13. Gāmaṇi-saṁyutta)

실론섬 2014. 6. 21. 15:33

제42주제(S42) 우두머리 상윳따 

Gāmaṇi-saṁyutta

 

caṇḍasuttaṃ (SN 42.1-짠다 경)

353.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짠다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짠다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은 사나운 자(난폭한 자)라는 이름을 얻습니까?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은 온화한 자라는 명칭을 얻습니까?”

 

“촌장이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 탐욕이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탐욕이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을 화나게 하고, 남들에 의해 화가 나게 되면 화를 드러냅니다. 그러면 그는 사나운 자라는 명칭을 얻게 됩니다. 성냄이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냄이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을 화나게 하고, 남들에 의해 화가 나게 되면 화를 드러냅니다. 그러면 그는 사나운 자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어리석음이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리석음이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을 화나게 하고, 남들에 의해 화가 나게 되면 화를 드러냅니다. 그러면 그는 사나운 자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촌장이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은 사나운 자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촌장이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 탐욕이 버려졌습니다. 그는 탐욕이 버려졌기 때문에 남들을 화나게 하지 않고, 남들에 의해 화가 나게 되면 화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는 온화한 사람(친절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성냄이 버려졌습니다. 그는 성냄이 버려졌기 때문에 남들을 화나게 하지 않고, 남들에 의해 화가 나게 되면 화를 드러내지 않슺니다. 그러면 그는 온화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어리석음이 버려졌습니다. 그는 어리석음이 버려졌기 때문에 남들을 화나게 하지 않고, 남들에 의해 화가 나게 되면 화를 드러내지 않슺니다. 그러면 그는 온화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촌장이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은 온화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짠다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tālapuṭasuttaṃ (SN 42.2-딸라뿌따 경)
354.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연극단장 딸라뿌따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연극단장 딸라뿌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문자적으로 딸라뿌따(tala-puta)는 야자 잎으로 만든 상자를 뜻한다. 주석서에 의하면 연극단장 딸라뿌따(Talaputa natagamani)는 그의 얼굴 색깔이 익어서 막 떨어진 야자열매(tala-pakka)처럼 맑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는 많은 배우를 거느린 연극단의 단장이었으며 인도 전역에서 유명하였다고 한다.(SA.iii.102)  
그는 본경에서 보듯이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도덕적인 진지함을 담고 있는 그의 게송이 「장로게」(Thag.97){1091-1145}로 나타나고 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연극단의 예전의 스승의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무대에서나 집회장에서 사실이나 거짓으로 대중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하는 배우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환희하는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만 두시오. 단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그것을 나에게 묻지 마시오.”라고. 
두 번째도 연극단장 딸라뿌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연극단의 예전의 스승의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무대에서나 집회장에서 진실이나 거짓으로 대중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하는 배우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환희하는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만 두시오. 단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그것을 나에게 묻지 마시오.”
세 번째도 연극단장 딸라뿌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연극단의 예전의 스승의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무대에서나 집회장에서 진실이나 거짓으로 대중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하는 배우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환희하는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라고.

 

“단장이여, 나는 '그만 두시오. 단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그것을 나에게 묻지 마시오.'라고 그대에게 말했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대에게 설명하겠습니다. 단장이여 먼저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탐욕의 속박에 묶인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배우는 무대에서 또는 집회장에서 탐욕을 자극하는 것들을 공연하여 그들이 더욱더 탐욕에 물들게 만듭니다. 단장이여, 먼저 성냄을 떠나지 못하고 성냄의 속박에 묶인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배우는 무대에서 또는 집회장에서 성냄을 자극하는 것들을 공연하여 그들이 더욱더 성내도록 만듭니다. 단장이여, 먼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의 속박에 묶인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배우는 무대에서 또는 집회장에서 어리석음을 자극하는 것들을 공연하여 그들이 더욱더 어리석도록 만듭니다. 그는 스스로도 도취하고 방일해지고, 남들도 도취하게 하고 방일하게 만든 뒤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환희라는이름의 지옥에 태어납니다. 만약 ‘무대에서 또는 집회장에서 사실이나 거짓으로 대중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하는 배우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환희하는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는 견해를 가진다면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그리고, 단장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는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로 갈 것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연극단을 이끄는 딸라뿌따는 울면서 눈물을 흘렸다.
“단장이여, 나는 '그만 두시오, 단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그것을 나에게 묻지 마시오.'라고 그대에게 말했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존이시여, 저는 연극단의 예전의 스승의 스승들에 의해 오랫동안 속고 기만당하고 현혹되었습니다. 
‘무대에서 또는 집회장에서 사실이나 거짓으로 대중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하는 배우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환희하는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연극단을 이끄는 딸라뿌따는 세존의 곁에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고 오래지 않아 딸라뿌따 존자는 혼자 은둔하고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물렀고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았다.
딸라뿌따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yodhājīvasuttaṃ (SN 42.3-요다지와 경)
355. 그 무렵 용병대장 요다지와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대장 요다지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사의 예전의 스승인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서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대장이여, 그만 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시오.”
두 번째도 대장 요다지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사의 예전의 스승인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서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대장이여, 그만 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시오.”
세 번째로 대장 요다지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사의 예전의 스승인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서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라고.

 

“대장이여, 나는 ‘그만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두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시오.’라고 그대에게 말했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대에게 설명하겠습니다. 대장이여,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에게 그 마음은 이미 ‘이 중생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거나 전멸시키거나 파괴하거나 존재하지 않게 하거나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나쁘게 행동하고, 나쁜 염원을 가집니다. 그를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이 죽이고 임종을 맞게 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이라는 지옥에 태어납니다. 만약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를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면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대장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는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로 갈 것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대장 요다지와는 울면서 눈물을 흘렸다.
“대장이여, 나는 '그만 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그것을 나에게 묻지 마시오.'라고 그대에게 말했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존이시여, 저는 전사의 예전의 스승의 스승들에 의해 오랫동안 속고 기만당하고 현혹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hantthārohasuttam (SN 42.4-핫타로하 경)
356. 한 쪽에 앉은 코끼리 부대 대장 핫타로하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사의 예전의 스승인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 

 

assārohasuttaṃ (SN 42.5-앗사로하 경)

357. 그 무렵 기마부대 대장 앗사로하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기마부대 대장 앗사로하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사의 예전의 스승인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서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대장이여, 그만 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시오.”
두 번째도 기마부대 대장 앗사로하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사의 예전의 스승인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서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대장이여, 그만 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시오.”
세 번째로 기마부대 대장 앗사로하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무사의 예전의 스승인 스승들의 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서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라고.

“대장이여, 나는 ‘그만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두시오. 나에게 그것을 묻지 마시오.’라고 그대에게 말했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대에게 설명하겠습니다. 대장이여,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에게 그 마음은 이미 ‘이 중생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거나 전멸시키거나 파괴하거나 존재하지 않게 하거나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나쁘게 행동하고, 나쁜 염원을 가집니다. 그를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이 죽이고 임종을 맞게 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이라는 지옥에 태어납니다. 만약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를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면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대장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는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로 갈 것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기마부대 대장 앗사로하는 울면서 눈물을 흘렸다.
“대장이여, 나는 '그만 두시오, 대장이여, 그것을 내버려 두시오. 그것을 나에게 묻지 마시오.'라고 그대에게 말했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존이시여, 저는 전사의 예전의 스승의 스승들에 의해 오랫동안 속고 기만당하고 현혹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움하고 분투하는 무사가 싸움하고 분투하는 다른 무사들에게 죽어서 임종을 맞게 되면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패전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asibandhakaputtasuttaṃ (SN 42.6-아시반다까뿟따 경)
358. 한 때에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서쪽 지방에 사는 바라문들은 물병을 가지고 다니고 세왈라 수초로 만든 화환을 두르고 물속에 들어가고 불을 피워서 헌공을 하는 자들(불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임종한 사람을 위로 인도한다고 하고 잘 알게 한다고 하고 천상에 가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렇다면 촌장이여, 여기서 내가 그대에게 되묻겠습니다.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 보십시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해서 삿되게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간탐하고, 성냄의 마음을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이 함께 모여 절하고 기도를 올리고 합장하고 그의 주위를 돌면서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소서.’라고.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많은 군중이 함게 모여 절하고 기도를 올리고 합장하고 그의 주위를 돌며 예배한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크고 넓은 돌을 깊은 물 속으로 던질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이 함께 모여 절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주위를 돌면서 말할 것입니다. ‘떠오르라, 크고 넓은 돌이여. 솟아나라, 크고 넓은 돌이여. 밖으로 나오라, 크고 넓은 돌이여. ’라고.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면 그 크고 넓은 돌은 많은 군중이 함게 모여 절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그의 주위를 돈 것을 원인으로 떠오르고 솟아나고 밖으로 나오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촌장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해서 삿되게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고, 간탐하고, 성냄의 마음을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이 함께 모여 절하고 기도를 올리고 합장하고 그의 주위를 돌면서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소서.’라고. 그러나 그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이간하는 말을 멀리 여의고, 거친 말을 멀리 여의고, 꾸며대는 말을 멀리 여의고, 간탐하지 않고, 성냄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이 함께 모여 절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그의 주의를 돌면서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소서.’라고.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많은 군중이 함게 모여 절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그의 주의를 돈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버터 단지나 기름 단지를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깨뜨릴 것입니다. 그러면 단지의 파편이나 조각은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고 버터나 참기름은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군중이 함께 모여 절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주위를 돌면서 말할 것입니다. ‘가라앉아라, 버터와 기름이여. 물 속에 잠겨라, 버터와 참기름이여. 아래로 내려가라, 버터와 기름이여.’라고.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면 그 버터나 기름은 많은 군중이 함께 모여 절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주위를 돈 것을 원인으로 가라앉고 물속에 잠기고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촌장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이간하는 말을 멀리 여의고, 거친 말을 멀리 여의고, 꾸며대는 말을 멀리 여의고, 간탐하지 않고, 성냄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이 함께 모여 절하고 기도하고 합장하고 주위를 돌면서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소서.’라고. 그러나 그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khettūpamasuttam (SN 42.7-들판 비유 경)  
35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세존께서는 일체 생명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하며 머무십니까?”
“그렇습니다, 촌장이여. 여래는 일체 생명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하며 머무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왜 세존께서는 어떤 때는 친절하게 법을 설하시고 어떤 때는 친절하게 법을 설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촌장이여, 여기서 내가 그대에게 되묻겠습니다.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 보십시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농사짓는 장자에게 세 가지 들판이 있는데 하나는 기름진 들판이고 하나는 중간쯤 가는 들판이고 하나는 거칠고 척박하고 삭막하고 황폐한 들판일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농사짓는 장자가 씨앗을 뿌리고자 한다면 먼저 어디에다 뿌리겠습니까? 기름진 들판인가, 중간쯤 가는 들판인가, 거칠고 척박하고 삭막하고 황폐한 들판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농사짓는 장자가 씨앗을 뿌리고자 한다면 그는 먼저 기름진 들판에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그런 뒤에 중간쯤 가는 들판에다 뿌릴 것입니다. 그런 뒤에 거칠고 척박하고 삭막하고 황폐한 들판에다 뿌리기도 하고 뿌리지 않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적어도 거기서 나는 것을 소의 먹이로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비구와 비구니들은 기름진 들판에 비유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촌장이여, 이들은 나를 섬으로 삼고, 나를 의지처로 삼고, 나를 피난처로 삼고, 나를 귀의처로 삼아 머물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청신사와 청신녀들은 중간쯤 가는 들판에 비유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촌장이여, 이들은 나를 섬으로 삼고, 나를 의지처로 삼고, 나를 피난처로 삼고, 나를 귀의처로 삼아 머물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외도인 사문과 바라문과 유행승들은 거칠고 척박하고 삭막하고 황폐한 들판에 비유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촌장이여, 그들이 단 한 구절이라도 이것을 이해하면 그들에게는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촌장이여, 사람에게 세 개의 물 항아리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물 항아리는 깨어지지 않아서 물이 새어 나오지 않고 흘러나오지 않으며, 하나의 물 항아리는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금이 생겨서 물이 새어 나오고 흘러나오며, 하나의 물 항아리는 깨어져서 물이 새어 나오고 흘러나올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이 물을 채우고자 한다면 먼저 어디다가 채우겠습니까? 깨어지지 않아서 물이 새어 나오지 않고 흘러 나오지 않는 물 항아리인가,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금이 가서 물이 새어나오고 흘러나오는 물 항아리인가, 깨어져서 물이 새어 나오고 흘러나오는 물 항아리입니까?”
“세존이시여, 사람이 물을 채우고자 한다면 먼저 깨어지지 않아서 물이 새어나오지 않고 흘러나오지 않는 물 항아리를 채울 것입니다. 그런 뒤에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금이 가서 물이 새어 나오고 흘러나오는 물 항아리를 채울 것입니다. 그런 뒤에 깨어져서 물이 새어 나오고 흘러나오는 물 항아리를 채우기도 하고 채우지 않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적어도 그것을 그릇 씻는 물로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비구와 비구니들은 깨어지지 않아서 물이 새어 나오지 않고 흘러나오지 않은 물 항아리에 비유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촌장이여, 이들은 나를 섬으로 삼고, 나를 의지처로 삼고, 나를 피난처로 삼고, 나를 귀의처로 삼아 머물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청신사와 청신녀들은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금이 가서 물이 새어 나오고 흘러 나오는 물 항아리에 비유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촌장이여, 이들은 나를 섬으로 삼고, 나를 의지처로 삼고, 나를 피난처로 삼고, 나를 귀의처로 삼아 머물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외도인 사문과 바라문과 유행승들은 깨어져서 물이 새어 나오고 흘러나오는 물 항아리에 비유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촌장이여, 그들이 단 한 구절이라도 이것을 이해한다면 그들에게는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saṅkhadhamasuttaṃ (SN 42.8-소라고둥 부는 자 경)
360. 한 때에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니간타의 제자인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자들에게 어떤 법을 설합니까?”
“세존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생명을 해치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가 거듭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거듭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생명을 해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생명을 해치는 시간과 생명을 해치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생명을 해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생명을 해치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생명을 해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시간과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시간과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거짓을 말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거짓을 말하는 시간과 거짓을 말하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거짓을 말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거짓을 말하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촌장이여, 어떤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생명을 해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촌장이여, 그 스승에 대해 제자는 믿음을 가집니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생명을 해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생명을 해쳤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주지 않은 것을 가졌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했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거짓을 말했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그러나, 여기, 촌장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거짓을 말하는 것을 멀리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촌장이여, 그 스승에 대해 제자가 믿음을 가집니다. 그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정도로 생명을 해쳤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생명을 해친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나는 그것에 대해서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이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그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주지 않는 것을 가졌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주지 않는 것을 가진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내가 그것에 대해서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이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그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했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한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내가 그것에 대해서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이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거짓을 말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거짓을 말하였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거짓을 말한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내가 그것에 대해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그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거짓을 말하는 해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이간하는 말을 버렸기 때문에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거칠게(욕설)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칠게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꾸며대는 말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간탐을 버렸기 때문에 간탐하지 않는 자입니다. 성냄(악의)의 결점을 버렸기 때문에 성냄 없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삿된 견해를 버렸기 때문에 바른 견해를 가진 자입니다. 

촌장이여,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냄이 없고, 혼란함이 없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자애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예를 들면, 촌장이여, 힘센 소라고둥을 부는 사람은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소리를 듣게 합니다. 이처럼, 촌장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자에게 제한적으로 지어진 업은 어떠한 것도 거기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을 입니다.

 

촌장이여,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냄이 없고, 혼란함이 없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연민을 수반하는 마음을 ··· 기뻐함을 수반하는 마음을 ···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아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예를 들면, 촌장이여, 힘센 소라고둥을 부는 사람은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소리를 듣게 합니다. 이처럼, 촌장이여,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자에게 제한적으로 지어진 업은 어떠한 것도 거기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을 입니다."라고.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metta cetovimutti)'이라고 하였다. 만일 단지 자애라고만 말하면 그것은 근접삼매도 되고 본삼매도 된다. 그러나 마음의 해탈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본삼매만을 뜻한다.(SA.iii.105)   
*'제한된 업(pamana-kata kamma)'이란 욕계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무량한 업(appamana-kata kamma)은 색계에 속하나니 이것은 제한을 넘어서서 한정적이거나 제한이 없거나 모든 방향에 가득 채움을 통해서 증장시킨 뒤에 닦기 때문에 무량한 것이라 불린다.(SA.iii.105)  
한편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제한된 업을 짓는 것을 욕계라 부른다. 무량한 업을 짓는 것을 색계와 무색계라 부른다."(DA.ii.406)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욕계의 마음을 제한된 마음이라 하고 색계와 무색계의 마음을 고귀한 마음이라 부른다. 욕계의 마음은 그 힘이나 지배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제한된 마음이라 하고 색계와 무색계의 마음은 장애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고귀하고, 고귀한 선(禪)에 의해서 얻어졌기 때문에 고귀하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na tam tatra-avasissati, na tam tatravatitthati를 옮긴 것이다. 욕계의 업은 제한되어 있고 색계와 무색계의 업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사무량심. brahma-vihara)은 색계 혹은 무색계의 삼매의 경지에 속하는 제한되어 있지 않은 무량한 마음이라는 말이다. 본경의 주석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욕계의 업은 색계와 무색계의 업에 배회하거나 머무르지 못한다. 무슨 말인가? 욕계의 업은 색계와 무색계의 업을 방해하거나 그것을 지배하고 억누른 뒤 자신의 과보를 생산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마치 큰 폭류가 작은 개울물을 범람시켜 버리듯이 색계아 무색계의 업은 욕계의 업을 지배하고 억누른 뒤 자신의 과보를 생산할 기회를 만든다. 그것은 욕계의 업이 자신의 과보를 생산하는 것을 막은 뒤 스스로 범천의 세상에 재생하게끔 한다.(SA.iii.105-106)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kulasuttaṃ (SN 42.9-가문 경)
36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대중)와 함께 꼬살라 지방에서 유행(遊行)하시다가 날란다에 도착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날란다에는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농작물은 하얗게 타들어가 지푸라기로 변해 버렸다. 그 당시 니간타 나따뿟따가 많은 니간타 무리와 함께 날란다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니간타의 제자인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이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에게 니간타 나따뿟따는 이렇게 말했다.

“오시오, 촌장이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의 교설을 논파하십시요. 그러면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이처럼 크나큰 신통을 가졌고 이처럼 크나큰 위력을 가진 사문 고따마의 교설을 논파하였다.’라는 이런 명성이 퍼질 것입니다.”라고,

“그러나 존자이시여, 어떻게 제가 이처럼 크나큰 신통을 가졌고 이처럼 크나큰 위력을 가진 사문 고따마의 교설을 논파한단 말입니까?”
"오시오, 촌장이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에게 가십시요. 가서는 사문 고따마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들을 위해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연민하는 것을 칭송하시지 않습니까?’라고. 만일, 촌장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은  사문 고따마가 ‘그렇습니다, 촌장이여. 여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을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고 연민하는 것을 칭송합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농작물은 하얗게 타들어가 지푸라기로 변해버린 시기에 많은 비구 승가와 유행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파멸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라고. 촌장이여, 이런 양 극단을 가진 그대의 질문을 받으면 사문 고따마는 그것을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이시여.”라고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후 존경의 믜미로 오른쪽으로 돈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곁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을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연민하시는 것을 칭송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촌장이여. 여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을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고 연민하는 것을 칭송합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농작물은 하얗게 타들어가 지푸라기로 변해버린 시기에 많은 비구 승가와 유행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파멸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촌장이여, 내가 지난 91겁을 기억해 보건데 전에 어떤 가문도 단지 요리된 탁발음식을 공양한 것만으로 파멸된 가문을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금과 은이 풍부하고, 토지와 도구가 풍부하고, 재산과 곡식이 풍부한 가문들은 모두 보시가 일으키고(보시를 통해서), 진실이 일으키고, 재산을 탕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촌장이여,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왕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도둑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불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물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비밀리에 저장해 둔 장소를 떠나거나(찾아내지 못하거나), 사업을 잘못하여 실패하거나, 재물을 낭비하고 허비하고 탕진하는 자가 가문 안에서 생깁니다. 무상하다는 것이 여덟 번째입니다. 촌장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촌장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가 나에게 말하기를 세존께서는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파멸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고 죽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maṇicūḷakasuttaṃ (SN 42.10-마니쭐라까 경)
362.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왕의 대신들이 왕궁에서 함께 모여 앉아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 금과 은이 허락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습니다.'라고.

그때 마니쭐라까 촌장이 그 모임에 앉아 있었다. 마니쭐라까 촌장은 그 모임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는 금과 은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보석과 금을 내려놓았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마니쭐라까 촌장은 그 모임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니쭐라까 촌장은 세존께 찾다가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니쭐라까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여기, 세존이시여, 여기 왕의 대신들이 왕궁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 금과 은이 허락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습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세존이시여, 제가 그 모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는 금과 은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보석과 금을 내려놓았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그 모임을 납득시킬 수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렇게 설명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하는 동료 수행자가 누구라도 (세존께서 설하셨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라고. 


“확실히, 촌장이여. 이렇게 말하는 그대는 내가 말한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나를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하는 동료 수행자가 누구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촌장이여,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는 금과 은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보석과 금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금과 은을 허락하는 것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들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촌장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들을 허락하는 것은 결코 사문의 법이 아니며, 결코 사카의 아들인 사문들의 법이 아니라고 그대는 분명하게 받아 지녀야 합니다. 나아가서, 촌장이여,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풀은 풀을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이고, 목재는 목재를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이고, 수레는 수레를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이고, 사람은 사람을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촌장이여, 어떤 방편으로도 '금과 은은 인정해야 하고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bhadrakasuttaṃ (SN 42.11-바드라까 경)
363.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말라의 우루웰라깝빠라는 말라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바드라까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바드라까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촌장이여, 만약 내가 그대에게 ‘과거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라고 과거와 관련하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한다면 거기에서 그대에게 의심과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촌장이여, 만약 내가 그대에게 ‘미래에는 이런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미래와 관련하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한다면 거기에서 그대에게 의심과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촌장이여, 바로 지금 앉아있는 바로 여기에서 앉아있는 그대에게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하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바드라까 촌장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라(Malla)는 인도 중원의 16개 국 가운데 하나이다. 세존 시대에는 빠와(Pava)와 꾸시나라(Kusinara)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각각 빠와의 말라족은 빠웨이야까말라(Paveyyaka-Malla)라 불리었고,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꼬시나라까(Kosinaraka)라 불리었다. 대반열반경(D16)에서 빠와의 말라들이 꾸시나라로 전령을 보내어서 세존의 사리를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 것에서 보듯이 이 둘은 다라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세존께서 쭌다의 마지막 공양을 받은 곳도 바로 이 빠와였다. 이 두 곳 이외에도 초기불전에서는 보가나가라(Bhoganagara)와 아누삐야(Anupiya)와 본경에 나타나는 우루웰라깝빠(Uruvelakappa)가 언급되고 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촌장이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길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그대에게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길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저에게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들에게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가 생기지 않을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그대에게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처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기지 않을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저에게 있습니다.”  

“촌장이여,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우루웰라깝빠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깁니까? 그리고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우루웰라깝빠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지 않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길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에게 욕탐(관심, 욕구, chanda)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기지 않을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에게 욕탐이 없습니다.”   
“촌장이여, 현재에서 보여진 것이고, 알려진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성취된 것이고, 꿰뚫은 것인 이런 현재의 법을 과거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바른 결론으로 이끌어내십시오. ‘일어났던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과거에도 모두 욕탐를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났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 일어날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미래에도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날 것이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일어나는 것인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난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집 밖에서 거주하고 있는 찌라와시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아침에 일어나면 사람을 불러 ‘여보게, 가서 어린 찌라와시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게’라고 사람을 보냅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저는 ‘찌라와시가 아프지는 않아야 할 텐데.’라고 걱정을 합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린 아들 찌라와시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어린 아들 찌라와시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심지어 삶이 만신창이 되어버린 것인데,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촌장이여,  ‘일어나는 것인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난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찌라와시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에 그대에게 '찌라와시 어머니에 대한 욕탐이나 탐욕이나 사랑'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보게 되고 듣게 된 뒤에 그대에게 '찌라와시의 어머니에 대한 욕탐이나 탐욕이나 사랑'이 있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찌라와시의 어머니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찌라와시의 어머니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심지어 삶이 만신창이 되어버린 것인데,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촌장이여, ‘생겨나는 것인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난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rāsiyasuttam (SN 42.12-라시야 경)
364. 그 무렵 라시야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라시야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이렇게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그들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하는 동료 수행자가 누구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촌장이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내가 말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나를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촌장이여, 출가자가 멀리해야 하는 두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며, 그리고 고통스럽고 거룩하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고행의 탐닉입니다. 촌장이여, 여래는 이들 두 가지 극단을 멀리하여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은 바, 이러한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소멸, 평안,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끕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여래가 완전히 깨달은 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소멸, 평안,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八支聖道=팔정도]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촌장이여, 여래가 이러한 중도를 완전히 깨달은 바, 이러한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소멸, 평안, 철저한 앎,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입니다.

 

촌장이여, 세상에는 세 부류의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가 있습니다. 무엇이 셋입니까?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는 재산에 묶이고, 집착하며, 잘못됨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사용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어떤 자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그리고 재산에 묶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잘못됨을 보고,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사용합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으고, 부당한 방법과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이 사람은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한다. 이것이 칭송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드는 자는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어떤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어떤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어떤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폭력을 쓰지 않기도 하여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드는 자는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써서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어떤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지만,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나누어 가지지 않고, 공덕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들지만, 재산에 묶이고, 집착하며, 잘못됨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자는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재산에 묶이고, 집착하며, 잘못됨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사용합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은 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들며, 재산에 묶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잘못됨을 보고,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사용하는 자는 네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네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쓰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만듭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재산에 묶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잘못됨을 보고,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사용합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네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는 이러한 네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촌장이여, 세상에는 세 부류의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가 있습니다. 무엇이 셋입니까?
촌장이여, 여기 힘든  삶을 사는 어떤 고행자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유익한 법을 증득할 것이다.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할 것이다.’라며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그러나 그는유익한 법도 증득하지도 못하고,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도 실현하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힘든 삶을 사는 어떤 고행자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유익한 법을 증득할 것이다.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할 것이다.’라며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그는 유익한 법을 증득하지만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함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하지 못합니다.  

 

다시, 촌장이여, 여기 힘든 삶을 사는 어떤 고행자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유익한 법을 증득할 것이다.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한 것이다.’라며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그는 유익한 법도 증득하고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도 실현합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자신을 고통을 주고 괴롭히지만 유익한 법을 증득하지도 못하고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하지도 못하는 자는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자신을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유익한 법을 증득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는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자신을 고통을 주고 괴롭히지만 유익한 법은 증득하지만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하지 못하는 자는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자신을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유익한 법을 증득했습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는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이러한 한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자신을 고통을 주고 괴롭히지만 유익한 법도 증득하고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한 자는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그는 자신을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이것이 비난받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어떤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까? 그는 유익한 법을 증득했습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성취를 실현했습니다. 이것이 칭송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촌장이여, 이 경우에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는 이러한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칭송받습니다.

 

촌장이여, 이런 세 가지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 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셋입니까?    
탐욕에 빠진 자는 탐욕 때문에 자신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합니다. 탐욕을 버렸을 때 그는 자신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 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내는 자는 성냄 때문에 자신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합니다. 성냄을 버렸을 때 그는 자신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 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합니다. 어리석음을 버렸을 때 그는 자신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 [이처럼]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 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라시야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pāṭaliyasuttaṃ (SN 42.13-빠딸리야 경)
365.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꼴리야의 웃따라라는 꼴리야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빠딸리야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빠딸리야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요술을 안다.’라고. 세존이시여, ‘사문 고따마는 요술을 안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살함들은 누구든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것이고,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하는 동료 수행자가 누구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들은 세존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촌장이여, ‘사문 고따마는 요술을 안다(요술에 대해서 안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내가 말한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나를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하는 돌료수행자가 누구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의 만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사문 고따마는 요술을 안다. 사문 고따마는 요술쟁이다.'라고 저들 사문∙바라문들이 말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나는 요술을 안다.’고 말하는 자는 ‘나는 요술쟁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로 그것입니다, 선서시여.”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촌장이여, 그대는 결발(結髮)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을 압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을 압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들은 꼴리야들에게 침입한 도적을 잡기도 하고 꼴리야들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 역활을 하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의 임무는 바로 이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이 계행을 갖추었는지 아니면 계행이 나쁜지 압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은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이라고 압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 가운데 한 무리입니다.”
“촌장이여, 만일 누가 말하기를 ‘빠딸리야 촌장은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이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이라고 안다. 그러므로 빠딸리야 촌장도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과 저는 엄연히 다릅니다. 결발을 한 꼴리야의 고용인들의 성질과 저의 성질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러므로, 촌장이여, 그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빠딸리야의 촌장은 결발을 한 꼴리야의 순찰인들이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이라고 안다. 그러나 빠딸리야 촌장은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렇다면 왜 여래에 대해서는 ‘여래는 요술을 안다. 그러나 여래는 요술쟁이는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까? 촌장이여, 나는 요술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요술의 과보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요술쟁이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생명을 죽이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삿된 음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삿된 음행을 하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한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이간질 하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이간질 하는 말을 하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이간질 하는 말을 하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거친 말을 하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거친 말을 하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간탐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간탐하는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간탐을 하는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찬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마음이 분노로 가득찬 것에 대한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분노로 가득찬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나는 삿된 견해를 가진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삿된 견해를 가진 것의 과보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그리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그런 행위를 하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분명하고 완전히 압니다."  

 

“촌장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과 고뇌를 겪을 것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과 고뇌를 겪을 것이다. 삿된 음행을 하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과 고뇌를 겪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과 고뇌를 겪을 것이다.’라고.  

촌장이여,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이 사람은 왕의 적을 공격하여 목숨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아주 기쁜 왕은 그에게 보상을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의 봉사를 받습니다.’라고.

 

촌장이여,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이 사람은 왕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이나 남자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를 붙잡아서 이런 처형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이런 것을 보았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보기도 했고, 듣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보고 듣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생명을 죽이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괴 고뇌를 겪을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은 진실을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을 말한 것입니까?”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계행을 갖춘 자들입니까, 아니면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까?”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은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바른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삿된 법을 닦는 자들은 바른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아니면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올바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이 사람은 왕의 적을 공격하여 보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아주 기쁜 왕은 그에게 보상을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의 봉사를 받습니다.’라고.   

촌장이여,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이 사람은 마을이나 숲에서 도둑질이라고 불리는 주지 않는 것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를 붙잡아서 이런 처형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이런 것을 보았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보기도 했고 듣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보고 듣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과 고뇌를 겪을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은 진실을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을 말한 것입니까?”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계행을 갖춘 자들입니까, 아니면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까?”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은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바른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삿된 법을 닦는 자들은 바른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아니면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올바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촌장이여,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이 사람은 왕의 적을 아내를 겁탈하였습니다. 아주 기쁜 왕은 그에게 보상을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의 봉사를 받습니다.’라고.  


촌장이여,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이런 것을 보았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보기도 했고 듣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보고 듣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삿된 음행을 하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과 고뇌를 겪을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은 진실을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을 말한 것입니까?”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계행을 갖춘 자들입니까, 아니면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까?”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은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바른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삿된 법을 닦는 자들은 바른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아니면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올바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촌장이여,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좋은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들의 봉사를 받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왕을 거짓말에 의해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아주 기쁜 왕은 그에게 보상을 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화환을 두르고, 귀걸이를 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하고, 마치 왕인 것처럼, 여인의 봉사를 받습니다.’라고.  

촌장이여,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어떤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에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단단한 밧줄로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깎이고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로 끌려 다니다가 남쪽 문으로 끌려 가서 도시의 도시의 남쪽에서 머리가 잘리는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한 것입니까?’라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거짓말에 의해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를 붙잡아서 이런 처형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이런 것을 보았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보기도 했고 듣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듣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자는 누구든지 지금∙여기에서 괴로움과 고뇌를 겪을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은 진실을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을 말한 것입니까?”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계행을 갖춘 자들입니까, 아니면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까?”
“계행이 나쁜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계행이 나쁘고 사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은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바른 법을 닦는 자들입니까?”
“삿된 법을 닦는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러면 삿된 법을 닦는 자들은 바른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아니면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까?”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올바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제게는 강당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침상도 있고 의자도 있고 물 항아리도 있고 기름등잔도 있습니다. 저는 제게 힘이 닿는 대로 거기에 머물기 위해 오는 사문이나 바라문과 함께 그것들을 나누어 사용합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각각 다른 견해를 가지고, 다른 믿음을 가지고, 다른 성향을 가진 네 명의 스승들이 그 강당에 머물기 위해서 왔습니다.

세존이시여, 한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보시도 없고 제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고.

 

세존이시여, 한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보시도 있고 제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고.

세존이시여, 한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자와 슬퍼지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 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자, 거짓말을 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지지 않는다(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원반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하나의 고기 살점으로 만들지라도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자, 보시하게 하는 자, 공양하는 자, 공양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 보시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라고.   

 

세존이시여, 한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 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 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진다. 만약 면도날 같은 끝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고기 살점으로 만든다면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만약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 자, 보시하게 하는 자, 공양하는 자, 공양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 보시와 길들임과 스스로의 제어와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래서 제게는 도대체 이들 사문∙바라문 존자들 가운데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의문이 있고 의심이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대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대가 의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문스러운 것에 대해서 그대의 의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도록 법을 설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라는 세존께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습니다.”

“촌장이여, 법의 삼매가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법의 삼매입니까?
촌장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삿된 음행을 버리고 삿된 음행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하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이간질 하는 말을 버리고 이간질 하는 말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거친 말을 하는 것을 버리고 거친 말을 하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버리고 구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멀리 떠납니다. 그는 간탐을 버리고 간탐하지 않습니다. 그는 악의를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는 삿된 견해를 버리고 바른 견해를 가집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보시도 없고 제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보시도 있고 공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나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지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 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자, 거짓말을 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지지 않는다(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원반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하나의 고기 살점으로 만들지라도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자, 보시하게 하는 자, 공양하는 자, 공양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 보시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 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 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진다. 만약 면도날 같은 끝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고기 살점으로 만든다면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만약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 자, 보시하게 하는 자, 공양하는 자, 공양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 보시와 길들임과 스스로의 제어와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연민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 기뻐함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보시도 없고 제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보시도 있고 제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나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지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 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자, 거짓말을 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지지 않는다(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날카로운 원반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하나의 고기 살점으로 만들지라도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자, 보시하게 하는 자, 공양하는 자, 공양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 보시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 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하게 하는 자, 생명을 죽이는 자,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 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겁탈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지어진다. 만약 면도날 같은 끝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고기 살점으로 만든다면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만약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자르는 자와 자르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 자, 보시하게 하는 자, 공양하는 자, 공양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 보시와 길들임과 스스로의 제어와 사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만약 그 스승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 때문에 나무랄 것이 없다. 나는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해치지 않는다.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나의 경우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인 두 가지 면에서 좋은 것을 잡은 자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깁니다. 마음이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편안합니다. 몸이 편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입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빠딸리야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듯이,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우두머리 상윳따(S42)가 끝났다. 

 

 

제4권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