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43상윳따 - 무위 상윳따 (Asaṅkhata-saṁyutta. SN43:1-SN43:15. Paṭhama-vagga)

실론섬 2014. 6. 26. 16:53

제43주제(S43) 무위 상윳따
Asaṅkhata-saṁyutta

 

kāyagatāsatisuttaṃ (SN 43.1-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

366.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無爲)와 무위에 이르는 길(무위로 이끄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무위(asankhata)'는 본 상윳따 경들에서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이것은 본서 제4권 「열반 경」(S38.1)과 본서 「어떤 비구 경2」(45.7)등에서 열반을 정의하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무위는 열반을 뜻한다. 그리고 여러 주석서도 무위는 열반과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부서짐.멸진),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선을 하라(jhayatha)'는 것은 ①대상을 통해서 하는 선으로 38가지 대상들을 선하라, ②특상을 통해서 하는 선으로는 무상 등으로 온과 감각장소등을 선하라는 뜻이며,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증장시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SA.iii.111)  

 

samathavipassanāsuttaṃ (SN 43.2-사마타-위빳사나 경)

367.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savitakkasavicārasuttaṃ (SN 43.3-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음 경)

368.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으킨 생각(거친 사유)과 지속적인 고찰(미세한 사유)이 있는 삼매,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인 고찰만 있는 삼매,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인 고찰도 없는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suññatasamādhisuttaṃ (SN 43.4-공삼매 경)

369.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바램이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공한 삼매(空三昧, sunnato samadhi)'dhk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animitta samadhi)'와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 appanihita samadhi)'에 대해서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세가지 삼매는 그 유래와 공덕을 가짐과 대상의 셋을 통해서 설명된다.
①먼저 유래에 의해서 설명하면, 어떤 비구는 무아라고 천착하고 무아라고 본 뒤에 무아라고 일어나서 나온다. 그러면 그의 위빳사는 공하다고 한다. 왜? 공하지 않은 행위자인 오염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빳사나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 [이러한] 도의 삼매(magga-samadhi)는 공하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 [이러한] 果(과)의 삼매는 공하다고 한다.    
다른 비구는 무상이라고 천착하고 무상이라고 본 뒤에서 무상이라고 일어나서 나온다. 그러면 그의 위빳사나는 표상이 없다고 한다. 왜? 표상을 만드는 오염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빳사나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의 삼매는 표상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의 삼매는 표상이 없다고 한다.   
다른 비구는 괴로움이라고 천착하고 괴로움이라고 본 뒤에 괴로움이라고 일어나서 나온다. 그러면 그의 위빳사나는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왜? 원함을 만드는 오염원들이 [더 이상]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빳사나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의 삼매는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의 삼매는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유래한 것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
②그런데 도의 삼매는 탐욕 등이 공하기 때문에 공이고, 탐욕의 표상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표상이 없고, 탐욕 등을 원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함이 없다. 이것은 공덕을 가진 것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  
③열반은 탐욕 등이 공하고 탐욕 등의 표상과 원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함이요, 표상 없음이요, 원함 없음이다. 이러한 대상을 가진 도의 삼매는 공하고 표상이 없고 원함이 없다. 이것은 대상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DA.ii.1003-1004) 
한편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한 삼매 등의 세 가지 삼매를 통해 오직 위빳사나를 설했다. 왜냐하면 위빳사나는 영원함(常.nicca)을 천착함, 영원함에 대한 표상, 영원함을 원함 등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 이름을 얻는다.(AA.ii.386)  
즉 공한 삼매 등으로 삼매라는 술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상 위빳사나를 뜻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서 각각 無相.無願.空의 해탈을 실현하는 체계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satipaṭṭhānasuttaṃ (SN 43.5-마음챙김의 확립(염처.念處) 경)
370.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sammappadhānasuttaṃ (SN 43.6-바른 노력 경)

371.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iddhipādasuttaṃ (SN 43.7-신통의 요소(성취수단) 경)

37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네 가지 신통의 요소[四如意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indriyasuttaṃ (SN 43.8-근(根) 경)
37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다섯 가지 근[五根]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balasuttaṃ (SN 43.9-힘(力) 경)
374.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다섯 가지 힘[五力]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bojjhaṅgasuttaṃ (SN 43.10-깨달음의 요소(覺支) 경)
375.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maggaṅgasuttaṃ (SN 43.11-길의 요소 경)
376.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덟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길[八支聖道]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asaṅkhatasuttaṃ (SN 43.12-무위(無爲) 경)

377.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사마타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위빳사나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으킨 생각(거친 사유)과 지속적인 고찰(미세한 사유)이 있는 삼매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인 고찰만 있는 삼매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인 고찰도 없는 삼매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공한 삼매(空三昧)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표상없는 삼매(無相三昧)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바램없는 삼매(무원삼매.無願三昧)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身)에서 몸(身)을 이어 보면서(띠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느낌(受)에서 느낌을를 이어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心)에서 마음(心)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法)에서 법(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믿음의 근[信根]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정진의 근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마음 챙김의 근[念根]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삼매의 근[定根]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혜의 근[慧根]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믿음의 힘(信力)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정진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마음챙김의 힘(念力)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삼매의 힘(定力)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혜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念覺支.염각지]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법의 간택(법에 대한 선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택법각지]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정진각지]를 닦는다. ··· 희열(기쁨)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喜覺支.희각지]를 닦는다. ··· 고요함(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경안각지]를 닦는다. ···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定覺支.정각지]를 닦는다. ···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捨覺支.사각지]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견해(정견.正見)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사유(정사유.正思惟)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 바른 말(정어.語)를 닦는다. ··· 바른 행위(정업.正業)를 닦는다. ··· 바른 생계(정명.正命)를 닦는다. ··· 바른 정진(정정진.正精進)를 닦는다. ··· 바른 마음챙김(정념.正念)을 닦는다. ···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삼매(정정.正定)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anatasuttaṃ (SN 43.13-치우치지 않음 경)

378.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편향되지 않음(치우치지 않음)과 편향되지 않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편향되지 않음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편향되지 않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편향되지 않음에 이르는 길인가? ···

<무위의 경우와 같이 펼쳐져야 함.> 

 

anāsavādisuttaṃ (SN 43.14-번뇌 없음 등 경)
379-408.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번뇌 없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번뇌 없음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번뇌 없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번뇌 없음에 이르는 길인가? ···

<무위의 경우와 같이 펼쳐져야 함.>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진리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진리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저 언덕과 저 언덕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저 언덕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미묘함(독창적인 것)과 미묘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미묘함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아주 보기 힘든(어려운) 것과 아주 보기 힘든 것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아주 보기 힘든 것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시들지 않음(늙지 않음) 시들지 않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시들지 않음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견고함(안정)과 견고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견고함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우러러봄(허물어지지 않음)과 우러러봄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우러러봄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드러나지 않음(볼 수 없음)과 드러나지 않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볼 수 없음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희론 없음과 희론 없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희론 없음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평화로움과 평화로움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평화로움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불사[不死]와 불사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불사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뛰어남과 뛰어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뛰어남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안전한 장소와 안전한 장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안전한 장소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안온(安隱)과 안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안온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갈애의 부서짐(소멸.멸진)과 갈애의 부서짐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갈애의 부서짐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경이로움(놀라움)과 경이로움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경이로움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신기함과 신기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신기함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재난 없음과 재난 없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재난 없음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재난 없는 법과 재난 없는 법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재난 없는 법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열반과 열반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열반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병 없음과 병 없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병 없음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바램과 바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램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청정과 청정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청정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벗어남과 벗어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벗어남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집착 없음과 집착 없음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집착 없음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섬과 섬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섬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의지처와 의지처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의지처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동굴(피난처)와 피난처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무엇이 동굴인가?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귀의처와 귀의처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무엇이 귀의처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귀의처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귀의처에 이르는 길인가? ··· 무위(無爲)의 경우와 같이 펼쳐야 함. ···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귀의처와 귀의처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parāyanasuttaṃ (SN 43.15-도피안 경)
409.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피안(종점)과 피안에 도달함에 이르는 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피안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제거, 성냄의 제거, 어리석음의 제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피안이라고 불린다.비구들이여, 무엇이 피안에 이르는 길인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피안과 피안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나는 제자들에(너희들에) 대한 연민에서, 제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자비로운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여기에 나무 밑이 있고, 빈 집(한적한 오두막)이 있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명심하라. 항상 깨어있는 일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뒤에 가서 후회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 무위 경의 경우와 같이 펼쳐야 함. ···

 

 

 

무위 상윳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