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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상윳따 - 도(道) 상윳따(Magga-saṁyutta) - 제1장 무명 품(SN45:1-SN45:10. Avijjā-vagga)

실론섬 2014. 6. 27. 21:04

제45주제(S45) (道) 상윳따

Magga-saṁyutta

 

제1장 무명 품

Avijjā-vagga (SN 45.1-10)

 

avijjāsuttaṃ (SN 45.1-무명 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불선법[不善法]들을 얻을 때에는(일어날 때에는) 무명이 앞서고,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음과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음이 뒤따른다.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 삿된 사유가 생기고, 삿된 사유를 하는 자에게 삿된 말이 생기고, 삿된 말을 하는 자에게 삿된 행위가 생기고, 삿된 행위를 하는 자에게 삿된 생계가 생기고, 삿된 생계를 가진 자에게 삿된 정진이 생기고, 삿된 정진을 하는 자에게 삿된 마음챙김이 생기고, 삿된 마음챙김을 가진 자에게 삿된 삼매가 생긴다.

 

비구들이여, 선한 법[善法]들을 얻을 때에는 명지가 앞서고, 뉘우칠 줄 아는 힘과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뒤따른다. 비구들이여, 명지를 가진 현명한 자에게 바른 견해가 생긴다. 바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바른 사유가 생기고, 바른 사유를 하는 자에게 바른 말이 생기고, 바른 말을 하는 자에게 바른 행위가 생기고, 바른 행위를 하는 자에게 바른 생계가 생기고, 바른 생계를 가진 자에게 바른 정진이 생기고, 바른 정진을 하는 자에게 바른 마음챙김이 생기고, 바른 마음챙김을 가진 자에게 바른 삼매가 생긴다.”

 

upaḍḍhasuttaṃ (SN 45.2-절반 경)

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의 나가라까라는 삭까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과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절반에 해당합니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과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전부이다. 아난다여, 비구가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벗과 사귀는 자에게 이런 것이 기대된다.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도.道)을 닦을 것이고,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많이 행할 것이다.'

 

그러면,아난다여, 비구가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벗과 사귀면 어떻게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여덟 가지 길을 닦고,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많이 행하는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견해를 닦는다. ··· 바른 사유를 닦는다 ··· 른 말(언어)을 닦는다 ··· 바른 행위를 닦는다 ··· 바른 생계(삶)를 닦는다 ··· 바른 정진을 닦는다 ··· 바른 마음챙김을 닦는다 ···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삼매를 닦는다. 아난다여,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벗과 사귀는 비구는 이렇게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닦고,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많이 행한다.  

 

아난다여, 이런 방법으로도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을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 참으로, 아난다여, 나를 좋은 친구로 삼아서 태어남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태어남으로부터 벗어나고, 늙음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늙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병듦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죽음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으로부터 벗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방법으로도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을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

 

sāriputtasuttaṃ (SN 45.3-사리뿟따 경)

3.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을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전부에 해당합니다.”라고.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뿟따여.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을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전부이다. 사리뿟따여,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벗과 사귀는 자에게 이런 것이 기대된다.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닦을 것이고,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많이 행할 것이다. 사리뿟따여, 그러면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벗과 사귀는 비구는 어떻게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닦고,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많이 행하는가(익히는가)?

 

여기, 사리뿟따여,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견해를 닦는다. ··· 바른 사유를 닦는다 ··· 바른 말(언어)을 닦는다 ··· 바른 행위를 닦는다 ··· 바른 생계(삶)를 닦는다 ··· 바른 정진을 닦는다 ··· 바른 마음챙김을 닦는다 ···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삼매를 닦는다. 사리뿟따여,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벗과 사귀는 비구는 이렇게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닦고,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많이 행한다(익힌다).

사리뿟따여, 이런 방법으로도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을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 참으로, 사리뿟따여, 나를 좋은 친구로 삼아서(좋은 친구인 나에게 온 뒤에), 태어남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태어남으로부터 벗어나고, 늙음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늙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병듦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죽음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의 법을 지닌 중생들이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으로부터 벗어난다. 사리뿟따여, 이런 방법으로도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벗을 사귀는 것은 청정범행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

 

jāṇussoṇibrāhmaṇasuttaṃ (SN 45.4-자눗소니바라문 경)

4.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아난다 존자는 자눗소니 바라문이 암말이 끄는 전체가 흰 색으로 치장된 마차를 타고 사왓티를 나가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그것은 흰 색의 장신구를 단 흰 말에 흰 멍에를 얹었으며, 흰 색의  장식을 한 흰 수레에, 흰 고삐에, 흰 몰이막대에, 흰 일산에, 흰 터번에, 흰 옷에, 흰 신발을 신고 있었으며, 흰 부채로 부채질을 받고 있었다.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존자들이여, 참으로 저 마차는 범천의 마차입니다. 참으로 범천의 마차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난다 존자는 사왓티에서 탁발을 하여 탁발에서 돌아와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자눗소니 바라문이 암말이 끄는 전체가 흰 마차를 타고 사왓티를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흰 장신구를 단 흰 말에 흰 멍에를 얹었으며, 흰 장식을 

한 흰 수레에, 흰 고삐에, 흰 몰이막대에, 흰 일산에, 흰 터번에, 흰 옷에, 흰 신발을 신고 있었으며, 흰 부채로 부채질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존자들이여, 참으로 저 마차는 범천의 마차입니다. 참으로 범천의 마차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시여, 이 법과 율에서도 범천의 마차를 천명할 수가 있습니까?”

 

“아난다여, 천명할 수 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두고 하는 이 말이 범천의 마차라고도, 법의 마차라고도,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라고도 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닦고 많이 행한(익힌) 바른 견해는 탐욕의 길들임에 이르고, 성냄의 길들임에 이르고, 어리석음의 길들임에 이르게 된다. ··· 바른 사유는 ··· 바른 말은 ··· 바른 행위는 ··· 바른 생계는 ··· 바른 정진는 ··· 바른 마음챙김은 ··· 닦고 많이 행한 바른 삼매는 탐욕의 길들임에 이르고 성냄의 길들임에 이르고 어리석음의 길들임에 이르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방법으로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범천의 마차라고도 법의 마차라고도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라고도 불린다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설하셨다.

 

“그것(팔정도)에게 있는 믿음과 지혜, 그 법들은 항상 멍에로 묶여있다.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은 몰이막대, 마음은 멍에를 묶는 끈, 마음 챙김은 주의 깊은 마부,

계율은 마차의 장신구, 선(禪)은 차축, 바퀴는 정진

평정은 짐의 균형을 잡고 탐욕의 제거는 자리의 깔개

 

성냄 없음과 해코지 않음과 조용한 머묾은 그것의 무기

인욕은 갑옷과 방패, 열반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난 위없는 범천의 마차

현자는 이를 타고 세상을 떠나 필연적으로 승리한다.”

 

kimatthiyasuttaṃ (SN 45.5-어떤 목적 경)

5.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여기, 세존이시여, 외도 유행승들이 저희들에게 ‘도반들이여, 어떤 목적을 위해서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저희들은, 세존이시여,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도반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목적으로 우리는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질문을 받고 이렇게 설명하는 저희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까?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입니까?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질문받고 이렇게 설명하는 그대들은 내가 설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거짓으로 나는 비난하지 않는다.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는다. 참으로 괴로움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목적으로 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만약 외도 유행승들이 그대들에게 ‘도반들이여, 그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질문을 받은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도반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무엇이 길이고, 무엇이 닦음인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 괴로움의 완전한 지혜를 위한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이라고, 비구들이여, 이런 질문을 받은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paṭhamāññatarabhikkhusuttaṃ (SN 45.6-어떤 비구 경1)
6.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범행, 범행’이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무엇이 범행이고, 무엇이 범행의 완성입니까?”

“비구여,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범행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여,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 범행의 완성이다.”

 

dutiyāññatarabhikkhusuttaṃ (SN 45.7-어떤 비구 경2)

7.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탐욕을 길들임, 성냄을 길들임, 어리석음을 길들임’이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탐욕을 길들임, 성냄을 길들임, 어리석음을 길들임'라는 이 말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비구여, '탐욕을 길들임, 성냄의 길들임, 어리석음의 길들임'라는 이 말은 열반의 요소를 위한 것이다. 그섯에 의해 번뇌들의 소멸이 있다고 불린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불사(不死), 불사’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불사이고, 무엇이 불사에 이르는 길입니까?”

“비구여,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을 불사라고 불린다. 오직 이것,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불사에 이르는 길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vibhaṅgasuttaṃ (SN 45.8-분석 경)
8.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설하고 분석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인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혜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견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사유[正思惟]인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으로부터의) 떠남(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성내지 않음에 대한 사유, 해치지 않음[不害]에 대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사유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말[正語]인가?

거짓말로 부터 떠나는 것. 이간하는 말로부터 떠나는 것. 거친 말로부터 떠나는 것. 꾸며대는 말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말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떠나는 것.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나는 것. 음행에 대해 삿된 행위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행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생계[正命.삶]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들은 삿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삶을 영위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생계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정진[正精進]인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不善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善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충만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정진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마음 챙김[正念]인가?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이어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상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느낌에 대해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상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마음에 대해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상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법에 대해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상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마음챙김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 [행복.樂]이 있는 첫 번째 선정(初禪)을 얻어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二禪)을 얻어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걸움이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三禪)을 얻어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네 번째 선정(四禪)을 얻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른 삼매라고 불린다.”

 

sūkasuttaṃ (SN 45.9-껍질 경)
9.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만약 밭벼나 보리의 껍질이 위로 향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잘못 향하고 있을 때 손에 닿거나 발에 밟히면 그것이 손이나 발을 찔러 피를 내게 한다고 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껍질이 다른 방향으로 잘못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잘못 향하고 있는 견해와 잘못 향하고 있는 길을 닦으며 ‘무명을 부술 것이다, 명지(明知)를 일으킬 것이다, 열반을 실현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견해가 잘못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만약 밭벼나 보리의 껍질이 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때 손에 닿거나 발에 밟히면 그것이 손이나 발을 찔러 손이나 발의 피를 내게 한다고 하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껍질이 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바르게 향하고 있는 견해와 바르게 향하고 있는 길을 닦으며 ‘무명을 부술 것이다, 명지를 일으킬 것이다, 열반을 실현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견해가 바르게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바르게 향하고 있는 견해와 바르게 향하고 있는 길을 닦으면 무명을 부수고 명지를 일으키고 열반을 실현하는가?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견해를 닦는다. ··· 바른 사유를 닦는다 ··· 른 말(언어)을 닦는다 ··· 바른 행위를 닦는다 ··· 바른 생계(삶)를 닦는다 ··· 바른 정진을 닦는다 ··· 바른 마음챙김을 닦는다 ···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욕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에 이르는, 바른 삼매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그 비구는 바르게 향하고 있는 견해와 바르게 향하고 있는 길을 닦아 무명을 부수고 명지를 일으키고 열반을 실현한다.”

 

nandiyasuttaṃ (SN 45.10-난디야 경)
10.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난디야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난다야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얼마나 많은 법들을 닦고 많이 행하면(익히면) 열반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을 완성하게 됩니까?”

 

“난디야여, 이 여덟 가지 법들을 닦고 많이 행하면 열반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을 완성하게 된다. 무엇이 여덟인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난디야여, 이 여덟 가지 법들을 닦고 많이 행하면 열반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을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난디야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제1장 무명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