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넷의 모음 - 20. 대품(Mahā-vagga. AN4.191-200)

실론섬 2014. 7. 4. 13:13

 

제20장 대품 Mahā-vagga(AN 4.191-200)

 

sotānugatasuttaṃ (AN 4.191-들어서 앎 경)
191. “비구들이여, 들어서 알고(귀로 들은 것들),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숙고한 것들), 견해로써 잘 꿰뚫은 법들에게 네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상세한 설명),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을 익힌다. 그는 그 법들을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죽을 때 (마음챙김을)잊은 그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일어남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빠르게 특별함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은 법들에게 이것이 첫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힌다. 그는 그 법들을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죽을 때 잊은 그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신통력이 있고 마음이 잘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다. 그에게 '이것은 예전에 내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의 그 법과 율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일어남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빠르게 특별함을 얻는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북소리에 능숙한 사람이 있다. 그는 먼 길을 걸어갈 때 북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에게 '참으로 북소리인가 아닌가?'라는 불확실이나 혼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직 북소리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힌다. 그는 그 법들을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죽을 때 잊은 그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신통력이 있고 마음이 잘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다. 그에게 '이것은 예전에 내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의 그 법과 율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일어남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빠르게 특별함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은 법들에게 이것이 두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힌다. 그는 그 법들을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죽을 때 잊은 그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력이 있고 마음이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신의 아들이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다. 그에게 'ㅇ것은 예전에 내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의 그 법과 율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일어남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빠르게 특별함을 얻는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소라고둥 소리에 능숙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 길을 걸어갈 때 소라고둥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에게 참으로 '소라고둥 소리인가 소라고둥 소리가 아닌가?'라는 불확실이나 혼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직 소라고둥 소리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힌다. 그는 그 법들을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죽을 때 잊은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력이 있고 마음이 잘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신의 아들이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다. 그에게 '이것은 예전에 내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의 그 법과 율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일어남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빠르게 특별함을 얻는다. 구들이여,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은 법들에게 이것이 세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힌다. 그는 그 법들을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죽을 때 잊은 그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력이 있고 마음이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신의 아들이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먼저 그곳에 화생한 자가 화생한 자에게 ‘우리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를, 존자여, 그대는 기억합니까? 존자여, 그대는 기억합니까?라고 기억을 일으키게 한다. 그는 ‘기억합니다, 존자여. 기억합니다, 존자여.’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일어남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을 빠르게 특별함을 얻는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함께 흙장난을 하며 놀던 두 친구가 그들이 언제 어디에서 서로서로 만날 것이다. 한 친구가 친구에게 '벗이여, 이것도 기억하는가? 벗이여, 이것도 기억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벗이여, 나는 기억하네. 벗이여, 나는 기억하네.'라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힌다. 그는 그 법들을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죽을 때 잊은 그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력이 있고 마음이 잘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신의 아들이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먼저 그곳에 화생한 자가 화생한 자에게 ‘우리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를, 존자여, 그대는 기억합니까? 존자여, 그대는 기억합니까?'라고 기억을 일으키게 한다. 그는 ‘기억합니다, 존자여. 기억합니다, 존자여.’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의 일어남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빠르게 특별함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은 법들에게 이것이 네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비구들이여,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마음으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은 법들에게 이런 네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ṭhānasuttaṃ (AN 4.192-경우 경)
192. “비구들이여, 네 가지 조건으로 네 가지 경우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계(戒)는 함께 삶으로써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

 

비구들이여, 깨끗함은 함께 대화함으로써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

비구들이여, 힘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 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를 가진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

 

비구들이여, 지혜는 토론을 통해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 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를 가진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

 

'비구들이여, 계(戒)는 함께 삶으로써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게 될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는 오랫동안 깨지고, 끊어지고, 결점이 있고, 얼룩이 있다. 일관되게 행위 하지 않고 일관되게 살지 않는다. 이 존자는 계에 대해서 계(戒)를 경시하는 자이다. 이 존자는 계(戒)를 중시하는 자가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았다. 일관되고 행위하고 일관되게 산다. 이 존자는 계에 대해서 계를 중시하는 자이다. 이 존자는 계를 경시하는 자가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계(戒)는 함께 삶으로써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조건으로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깨끗함은 함께 대화함으로써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이 사람과 함께 대화하게 될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는 일대일로 대화할 때 다르게 말하고 두 사람과 함께 대화할 때 다르게 말하고 세 사람과 대화할 때 다르게 말하고 많은 사람과 대화할 때 다르게 말한다. 이 존자가 앞사람과 나눈 대화는 뒷사람과 나눈 대화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 존자는 청정하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 존자는 청정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사람이 사람과 함께 대화하게 될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는 일대일로 대화할 때 이대로 말하고두 사람과 대화할 때 그대로 말하고 세 사람과 대화할 때 그대로 말하고 많은 사람과 대화할 때 그대로 말한다 이 존자가 앞사람과 나눈 대화는 뒷사람과 나눈 대화와 일치한다. 이 존자는 청정한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 존자는 대화는 청정하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깨끗함은 함께 대화함으로써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조건으로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힘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친척과 관련된 실패(불운)를 겪거나 겪고 재물을과 관련된 실패를 겪거나 병과 관련된 실패를 겪을 때 이렇게 숙고하지 않는다. 

‘참으로 남들과 함께하는 세상은 이러하고 자기 존재의 얻음은 이러하다. 이러한 남들과 함께하는 세상과 이러한 자기 존재의 얻음에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세상은 다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아가게 한다. 그것은 얻음과 잃음,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송, 즐거움과 괴로움이다.’라고.

그는 친척과 관련된 실패를 겪거나 재물과 관련된 실패를 겪거나 병과 관련된 실패를 겪을 때(친척을 잃는 불운을 겪고 재물을 잃는 불운을 겪고 건강을 잃는 불운을 겪을 때)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친척과 관련된 실패를 겪거나 재물과 관련된 실패를 겪거나 병과 관련된 실패를 겪을 때 이렇게 숙고한다.

‘참으로 남들과 함께하는 세상은 이러하고 자기 존재의 얻음은 이러하다. 이러한 남들과 함께하는 세상가 이러한 자기 존재의 얻음에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세상은 다시 여덟 가지 세상의 법을 돌아가게 한다. 그것은 얻음과 잃음(획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송, 즐거움과 괴로움이다.’라고. 

그는 친척과 관련된 실패를 겪거나 재물과 관련된 실패를 겪거나 병과 관련된 실패를 겪을 때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힘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조건으로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지혜는 토론을 통해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이 사람과 함께 토론하게 될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이 존자의 마음을 기울이는 것과 이 존자의 질문하는 발언에 의하면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다.’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존자는 심오하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현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알아볼 수 있는) 그러한 의미와 구절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존자는 법을 설할 때 간략하거나 상세하게 그 의미를 공표하고, 전달하고, 선언하고, 시작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 힘이 없다.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눈을 가진 사람이 호숫가에 서서 작은 물고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물고기가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과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가는 속력에 의하면 이 물고기는 작은 것이다. 이 물고기는 큰 것이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기 사람이 함께 사람과 함께 토론하게 될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이 존자의 마음을 기울이는 것과 이 존자의 질문하는 발언에 의하면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다.’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존자는 심오하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현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알아볼 수 있는) 그러한 의미와 구절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존자는 법을 설할 때 간략하거나 상세하게 그 의미를 공표하고, 전달하고, 선언하고, 시작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 힘이 없다.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사람이 사람과 함께 토론하게 될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이 존자의 마음을 기울이는 것과 이 존자의 질문하는 발언에 의하면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존자는 심오하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현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의미와 구절을 말한다. 그리고 이 존자는 법을 설할 때 간략하거나 상세하게 그 의미를 공표하고, 전달하고, 선언하고, 시작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눈을 가진 사람이 호숫가에 서서 큰 물고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물고기의 솟구쳐 오르는 것과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가는 속력에 의하면 이 물고기는 큰 것이다. 이 물고기는 작은 것이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기 사람이 사람과 함께 토론하게 될 때 이렇게 안다. 

‘이 존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이 존자의 마음을 기울이는 것과 이 존자의 질문하는 발언에 의하면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존자는 심오하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현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의미와 구절을 말한다. 그리고 이 존자는 법을 설할 때 간략하거나 상세하게 그 의미를 공표하고, 전달하고, 선언하고, 시작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존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이 존자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지혜는 토론을 통해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조건으로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경우로써 네 가지 경우가 알려져야 한다.”

 

bhaddiyasuttaṃ (AN 4.193-밧디야 경)

193.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에 머무셨다. 그 무렵 릿차위 밧디야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릿차위 밧디야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외도의 제자들을 개종시키는 요술을 아는 요술쟁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사문 고따마는 외도의 제자들을 개종시키는 요술을 아는 요술쟁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한 것입니까?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까?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입니까? 이어서 말하는 동료 비구는 누구라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저는 세존을 비방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석서는 외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외도란 사상(dassana)도 다르고, 옷차림(akappa)도 다르고, 처세(kutta)도 다르고, 행실(acara)도 다르고, 사는 방식(vihara)도 다르고, 자세도 다른 종교인(titthiya)을 말한다.(DA.iii.833)

 

“밧디야여, 소문으로 들었다 해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가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비난받는 것이고, 이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불익(不益)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탐욕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불익을 생깁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열망하고, 탐욕에 억눌리고, 사로잡힌 마음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합니다(부추깁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 성냄은 ··· 어리석음은 ···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격분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불익을 위해 생깁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격분하고, 격분에 억눌리고, 사로잡힌 마음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합니다(부추깁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다, 세존이시여.”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현명한 자에 의해 비난받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칭송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비난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고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밧디야여, ‘소문으로 들었다 해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가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비난받는 것이고, 이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불익(不益)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라고 그대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밧디야여, ‘소문으로 들었다 해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가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칭송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탐욕 없음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이익을 위해 생깁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열망하지 않고, 탐욕에 억눌리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누립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 성냄 없음은 ··· 어리석음 없음은 ···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격분 않음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이익을 생깁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격분하지 않고, 격분에 억눌리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누립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선입니다, 세존이시여.”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현명한 자에 의해 비난받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칭송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칭송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고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밧디야여, ‘소문으로 들었다 해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가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칭송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라고 그대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밧디야여, 세상에 있는 고결한 사람들은 제자에게 이렇게 유도합니다(가르칩니다).

‘오라 그대여, 그대는 탐욕을 길들이면서(제어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탐욕을 길들이면서 머무는 자는 탐욕에서 생긴 업을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지 않을 것이다. 성냄을 길들이면서 머물어야 한다. 성냄을 길들이면서 머무는 자는 성냄에서 생긴 업을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음을 길들이면서 머물어야 한다. 어리석음을 길들이면서 머무는 자는 어리석음에서 생긴 업을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지 않을 것이다. 겨분을 길들이면서 머물러야 한다. 격분을 길들일면서 머무는 자는 격분에서 생긴 업을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지 않을 것이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방편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밧디야여, 그대에게 내가 이렇게 말했는가?
'오라, 밧디야여, 그대는 나의 제자가 되어라. 나는 스승이 되겠다.’라고."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밧디야여,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설명하는 나를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근거 없고 헛되고 거짓이고 사실 아닌 것으로 비난한다. ‘사문 고따마는 외도의 제자들을 개종시키는 요술을 아는 요술쟁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세존의 개종시키는 요술은 축복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개종시키는 요술은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사랑하는 혈육과 친척들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사랑하는 혈육과 친척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든 끄샤뜰리야들도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끄샤뜨리야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든 바라문들도 ··· 와이샤들도 ··· 수드라들도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수드라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밧디야여, 그렇다, 밧디야여. 밧디야여, 만약 모든 끄샤뜨리야들도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갖추기 위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끄샤뜨리야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밧디야여, 만약 모든 바라문들도 ··· 와이샤들도 ··· 수드라들도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갖추기 위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끄샤뜨리야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밧디야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존재들도 만일 신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의 중생들이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갖추기 위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이 큰 살라 나무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인간이 된다면, 인간이 된 그들에게 하는 말이다.”  

 

*바로 앞에 살라 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그것을 가리키면서 하신 말씀이다.(AA.iii.173)
*세존의 말씀을 듣고 밧디야는 예류과를 얻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Ibid)

 

sāmugiyasuttaṃ (AN 4.194-사무기야 경)

한 때에 아난다 존자는 꼴리야에서 사무가라는 꼴리야들의 성읍에 머물렀다. 그 무렵 많은 꼴리야의 후예인 사무기야들이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꼴리야의 후예 사무기야들에게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중생들의 청정을 위해, 슬픔과 불행을 건너기 위해서, 고통과 비탄을 없애기 위해서, (올바른) 방법을 얻기 위해, 열반의 실현을 위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바르게 선언된 네 가지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계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 마음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 견해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 해탈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입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은 byagghapajja(웨약가빳자)를 풀어서 옮긴 말이다. 여기서 byaggha 는 호랑이를 뜻하고 pajja는 pada(길)에서 파생된 단어다. 이 웨약가빳자(byagghapajja)는 꼴리야(Koliya)의 수도인 꼴라나가라(Kolanagara)의 다른 이면서 동시에 웨약가빳자 즉 꼴라나가라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꼴리야(Koliya)족들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꼴라나가라에는 꼴라 나무들을 가져와서 심었기 때문에 꼴라나가라라 하기도 하고, 호랑이가 다니는 길에다 이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웨약가빳자(호랑이 길이 있는 곳)라고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이름이 있다. 이들의 선조들이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호랑이 길이 있는 곳ㅇ 사는 사람들(byagghapajjavasino) 혹은 웨약가빳자(byaggahapajja,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라고 부른다.(AA.iii.173)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계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입니까? 

여기,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비구는 계를 중시합니다(잘 지킵니다). 삐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수행규칙)들 위에서 닦습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이것이 계의 청정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이런 계의 청정을 나는 완성하지 못한 것은 완성할 것이고, 완성한 것은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열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는 거기에서 지혜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이것이,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계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라고 불립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마음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입니까?
여기,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과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거친 사유와 마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지킴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지킴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슬픔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지킴의 청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이것이 마음의 청정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이런 마음의 청정을 나는 완성하지 못한 것은 완성할 것이고, 완성한 것은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열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는 거기에서 지혜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이것이,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마음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라고 불립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견해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입니까?
여기,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이것이 견해의 청정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이런 견해의 청정을 나는 완성하지 못한 것은 완성할 것이고, 완성한 것은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열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는 거기에서 지혜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이것이,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견해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라고 불립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탈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입니까?
그렇게,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이런 계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를 갖추고, 마음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를 갖추고, 견해의 청정을 위한 노력을 구성요소를 갖춘 그 성스러운 제자는 매혹적인 법들에서 마음이 물들지 않게 하고, 해탈해야 하는 법들에서 마음을 해탈하게 합니다. 그는 매혹적인 법들에서 마음이 물들지 않게 하고, 해탈해야 하는 법들에서 마음을 해탈케 함으로써 바른 해탈을 성취합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이것이 해탈의 청정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이런 해탈의 청정을 나는 완성하지 못한 것은 완성할 것이고, 완성한 것은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열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는 거기에서 지혜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이것이,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해탈의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라고 불립니다.

 

호랑이 길에 사는 자들이여, 이것이 중생들의 청정을 위해, 슬픔과 불행을 건너기 위해서, 고통과 비탄을 없애기 위해서, (올바른) 방법을 얻기 위해, 열반의 실현을 위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바르게 선언된 네 가지 청정을 위한 노력의 구성요소입니다." 

 

vappasuttaṃ (AN 4.195-왑빠 경)

195.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가 목갈라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삭까족 왑빠에게 목갈라나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왑빠(Vappa)는 세존의 작은 아버지(삼촌)였으며 삭까 족의 왕이었다고 한다.(AA.iii.174) 그는 본경을 통해서 세존의 가르침이 니간타의 가르침보다 수승함을 알고 세존의 재가신자가 된다.

 

“왑빠여, 여기 어떤 이는 무명이 사라져 소멸되었고 명지가 일어났기 때문에 몸으로 단속되고 말로 단속되고 마음으로 단속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존자시여, 저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저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 과보가 익지 않은 이전에 지은 악한 업을 원인으로 그 사람에게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 간의 이런 이야기는 중단이 되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저녁무렵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강당으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후 세존께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목갈라나여,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앉았는가? 그대들 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왑빠여, 어떤 이는 무명이 사라져 소멸되었고 명지가 일어났기 때문에 몸으로 단속되고 말로 단속되고 마음으로 단속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라고.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시여, 저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존자시여, 여기 과보가 익지 않은 이전에 지은 악한 업을 원인으로 그 사람에게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를 것입니다.'라고. 세존이시여,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와 함께한 저희 간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왑빠여, 만일 그대가 나에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인정하고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거부하고, 내가 말한 어떤 것의 의미를 모르겠으면 여기서 '세존이시여, 어떻게 이렇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나에게 더 되물어본다면 여기서 우리가 우정의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에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인정하고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거부하고, 세존께서 말한 어떤 것의 의미를 모르겠으면 여기서 '세존이시여, 어떻게 이렇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더 되묻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우정의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몸의 행위를 피한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이러한 오염원을 부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말의 행위를 피한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이러한 오염원을 부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일어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마음의 행위를 피한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이러한 오염원을 부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무명이 사라져 소멸하고 명지가 일어난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이러한 오염원을 부숨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왑빠여, 이렇게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 여섯 가지 지속하는 머묾의 얻음이 있습니다. 그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맛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닿으면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는(경험하는) 그는 ‘나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그는 ‘지금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끝나면,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도 오직 여기에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기뻐하지 않는 모든 느낌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예를 들면, 왑빠여, 나무줄기를 연(緣)하여 그늘이 알려집니다. 그때 사람이 괭이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는 그 나무줄기를 뿌리에서 자를 것이고,  뿌리를 자른 뒤에는 땅을 팔 것이고 땅을 판 뒤에는 뿌리와 그 안에 있는 잔뿌리까지 모두 뽑아낼 것입니다. 그런 후에 다시 그는 그 나무를 토막토막 자를 것이고 토막토막 자른 뒤에는 쪼개고 또 쪼개어 다시 산산조각을 내어 바람이나 햇빛에 말릴 것입니다. 바람이나 햇빛에 말린 뒤에는 불에 태우고 불에 태운 뒤에는 재로 만들고 재로 만든 뒤에는 강한 바람에 날려 보내거나 물살이 센 강에 흘려 보낼 것입니다. 왑빠여, 이렇게 나무줄기를 연한 그늘은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왑빠여, 이렇게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 여섯 가지 지속하는 머묾의 얻음이 있습니다. 그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맛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닿으면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하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는(경험하는) 그는 ‘나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그는 ‘지금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끝나면,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도 오직 여기에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기뻐하지 않는 모든 느낌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말을 팔아서 이익을 만들려는 사람이 말을 잘 먹여 키우지만 말이 병에 걸리거나 일찍 죽어버려 수익을 올리기는커녕 그 사람은 지치고 고생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이익을 만들고자 저는 어리석은 니간타들을 공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익을 만들지 못하고, 더 나아가 지치고 고생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저는 오늘부터 어리석은 니간타들에 대한 저의 믿음을 강한 바람에 날려 보내고 강물의 거센 흐름에 씻어 버리겠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sāḷhasuttam (AN 4.196-살하 경)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릿차위족 살하와 릿차위족 아바야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릿차위족 살하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두 가지로 격류를 건너는 것을 천명합니다. 그것은 계의 청정을 원인으로 하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원인으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하십니까?”

“살하여, 계의 청정은 다른 외도들과 공통되는 요소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나, 살하여, 고행을 통한 금욕을 격류를 건너는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핵심으로 삼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문∙바라문들은 격류를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살하여, 몸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지 못하고, 말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지 못하고, 생계수단이 청정하지 못한 사문∙바라문들도 지와 견을 얻을 수가 없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살하여,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은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나무가 크고 곧고 유용한 것을 볼 것입니다. 그는 그것의 밑둥을 자를 것입니다. 밑둥을 자르고 꼭대기를 자를 것입니다. 꼭대기를 자르고 잔가지와 잎사귀를 깨끗하게 제거할 것입니다. 잔가지와 잎사귀를 깨끗하게 제거한 뒤에 도끼로 껍질을 벗길 것입니다. 도끼로 껍질을 벗긴 뒤 대패로 껍질을 다듬을 것입니다. 대패로 껍질을 다듬은 뒤 문지르는 것으로 문지를 것입니다. 문지르는 것으로 문지른 뒤 속돌로 씻어낼 것입니다. 속돌로 씻어낸 뒤 강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살하여. 그 사람은 강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건널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이 나무는 외부는 잘 다듬어졌지만 내부는 깨끗하게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무 줄기는 가라앉을 것이고 그 사람은 재앙을 자초할 것입니다.’라고 기대됩니다.”

“그와 같이, 살하여, 고행을 통한 금욕을 격류를 건너는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핵심으로 삼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문∙바라문들은 격류를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살하여, 몸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지 못하고 말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지 못하고 생계수단이 청정하지 못한 사문∙바라문들도 지(앎)와 견(봄)을 얻지 못하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살하여, 고행을 통한 금욕을 격류를 건너는 원인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핵심으로 삼지 않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의지하여 살아가지 않는 사문∙바라문들은 격류를 건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하여, 몸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고 말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고 생계수단이 청정한 사문∙바라문들도 지와 견을 얻을 수 있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살하여,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은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나무가 크고 곧고 유용한 것을 볼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밑둥을 자를 것입니다. 밑둥을 자르고 꼭대기를 자를 것입니다. 꼭대기를 자르고 잔가지와 잎사귀를 깨끗하게 제거할 것입니다. 잔가지와 잎사귀를 깨끗하게 제거한 뒤에 도끼로 껍질을 벗길 것입니다. 도끼로 껍질을 벗긴 뒤 대패로 껍질을 다듬을 것입니다. 대패로 껍질을 다듬은 뒤 끌을 가지고 안을 아주 깨끗하게 파낼 것입니다. 안을 아주 깨끗하게 파낸 뒤 문지르는 것으로 문지를 것입니다. 문지르는 것으로 문지른 뒤 속돌로 씻어낼 것입니다. 속돌로 씻어낸 뒤 배를 만들고 노와 키를 묶을 것입니다.  배를 만들고 노와 키를 묶은 뒤 강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살하여. 그 사람은 강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건널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이 나무는 외부도 아주 잘 다듬어졌고 내부도 깨끗하게 다듬어 졌으며 더군다나 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은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달할 것이다.’라고 기대됩니다.”

“그와 같이, 살하여, 고행을 통한 금욕을 원인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핵심으로 삼지 않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의지 하여 살아가지 않는 사문∙바라문들은 격류를 건널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하여, 몸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고 말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하고 생계수단이 청정한 사문∙바라문들도 지와 견을 얻을 수 있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살하여, 여러 종류의 화살을 아는 무사와 같습니다. 그는 세 가지 경우를 통해서 왕에게 어울리고 왕을 섬길 수 있으며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무엇이 셋입니까? 
멀리 쏘고, 전광석화와 같이 꿰뚫고, 큰 몸을 쳐부수는 것입니다.

살하여, 마치 무사가 멀리 쏘는 것처럼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삼매를 가집니다. 
살하여, 바른 삼매를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이 어떠한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모든 물질적 요소를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봅니다. ··· 감수작용이건 ···  지각작용(인식)이건 ··· 형성작용이건 ··· 의식작용(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모든 의식작용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봅니다.

 

살하여, 마치 무사가 전광석화와 같이 꿰뚫는 것처럼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가집니다. 살하여, 바른 견해를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압니다.

살하여, 마치 무사가 큰 몸을 쳐부수는 것처럼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해탈을 가집니다.

살하여, 바른 해탈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크나큰 무명의 무더기를 쳐부숩니다.”

 

mallikādevīsuttaṃ (AN 4.197-말리까 왕비 경)

197.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말리까 왕비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말리까 왕비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말리까 왕비(Mallika Devi)는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Pasenadi)의 아내였다. 문자적으로 mallika는 재스민 꽃을 뜻한다. 말리까는 꼬살라의 화한 만드는 자의 딸이었으며 16세에 세존을 뵙고 죽을 공양 올렸는데 세존께서는 그녀가 왕비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고 한다.(J.iii.405;SA.i.140) 바로 그날 빠세나디 왕은 아자따삿뚜에게 패하여 그곳으로 가게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그녀는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DhpA.iii.119f) 이렇게 세존과 왕을 만난 인연을 가진 그녀는 그 후로 세존의 변함없는 재가신도였다. 그녀와 관계된 여러 경들이 기록되어 있다.


“세존이시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합니까? 가진 것이 적고, 재물이 적고, 힘이 없는 가난한 자입니까(영향력이 적습니까)?

세존이시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합니까? 많은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큰 힘을 가진 부자입니까?
세존이시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사랑스럽고, 보일만하고, 호감을 주고, 꽃 같은 용모를 갖췄습니까? 가진 것이 적고, 소유한 것이 적고, 힘이 없는 가난한 자입니까?
세존이시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사랑스럽고, 보일만 하고, 호감을 주고, 꽃 같은 용모를 갖췄습니까? 많은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큰 힘을 가진 부자입니까?”

 

“여기, 말리까여, 어떤 여인은 자주 화를 내고 절망한다. 말해진 것이 조금 있어도(사소한 말에도)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낸다. 그녀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질투심을 가졌다. 다른 사람의 얻음과 존경과 명성과 존중과 칭송과 예배를 질투하고, 공격하고, 질투에 묶인다. 만약 그녀가 죽은 뒤에 그것을 원인으로 지금의 상태에 오면, 그녀는 거듭 태어나는 곳마다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게 된다. 가진 것이 적고, 소유한 것이 적고, 힘이 없는 가난한 자가 된다.

 

여기, 말리까여, 어떤 여인은 자주 화를 내고 절망한다. 말해진 것이 조금 있어도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진(嗔)과 의혹을 드러낸다. 그녀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과 탈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한다. 그리고 그녀는 질투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얻음과 존경과 명성과 존중과 칭송과 예배를 질투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질투에 묶이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죽은 뒤에 그것을 원인으로 지금의 상태에 오면, 그녀는 거듭 태어나는 곳마다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게 된다. 소유한 것이 많고, 큰 힘을 가진 부자가 된다.

 

여기, 말리까여, 어떤 여인은 자주 화를 내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 말해진 것이 많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질투심을 가졌다. 다른 사람의 얻음과 존경과 명성과 존중과 칭송과 예배를 질투하고, 공격하고, 질투에 묶인다. 만약 그녀가 죽은 뒤에 그것을 원인으로 지금의 상태에 오면, 그녀는 거듭 태어나는 곳마다 사랑스럽고, 보일만하고, 호감을 주고, 꽃 같은 용모를 갖춘다. 가진 것이 적고, 소유한 것이 적고, 힘이 없는 가난한 자가 된다.

 

여기, 말리까여, 어떤 여인은 자주 화를 내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 말해진 것이 많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한다. 그리고 그녀는 질투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얻음과 존경과 명성과 존중과 칭송과 예배를 질투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질투심에 질투에 묶이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죽은 뒤에 그것을 원인으로 지금의 상태에 오면, 그녀는 거듭 태어나는 곳마다 사랑스럽고, 보일만 하고, 호감을 주고, 꽃 같은 용모를 갖춘다. 많은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큰 힘을 가진 부자가 된다.

 

말리까여, 이런 원인 이런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게 된다. 가진 것이 적고, 소유한 것이 적고, 힘이 없는 가난한 자가 된다. 말리까여, 이런 원인 이런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게 된다. 많은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큰 힘을 가진 부자가 된다. 말리까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사랑스럽고, 보일만 하고, 호감을 주고, 꽃 같은 용모를 갖추게 된다. 가진 것이 적고, 소유한 것이 적고, 힘이 없는 가난한 자가 된다. 말리까여, 이런 원인 이런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사랑스럽고, 보일만 하고, 호감을 주고, 꽃 같은 용모를 갖추게 된다. 많은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큰 힘을 가진 부자가 된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말리까 왕비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는 다른 생에서 자주 화를 내고 절망했습니다. 말해진 것이 조금 있어도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했습니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지금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합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는 다른 생에서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지금 많은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은 부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는 다른 생에서 질투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얻음과 존경과 명성과 존중과 칭송과 예배를 질투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질투에 묶이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지금 큰 힘을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왕의 가문에는 끄샤뜨리야 처녀들도 있고,  바라문 처녀들도 있고, 장자의 처녀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저는 오늘부터는 자주 화를 내지 않고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말해진 것이 많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하겠습니다. 질투심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얻음과 존경과 명성과 존중과 칭송과 예배를 질투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질투에 묶이지 않겠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청신녀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attantapasuttaṃ (AN 4.198-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 경)

198.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넷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제거되고, 평온하고,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음식을 받은 뒤에 핥아서 먹고, '오십시오' 하고 음식은 주기 위해 부르면 오지 않고, '서십시오' 하고 음식을 주기 위해 부르면 서지 않고, 가져 온 음식을 받지 않고, 내몫으로 지정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하여 주는 음식을 받지 않는다. 그는 그릇에서 떠 주는 음식, 항아리에서 떠주는 음식.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서 주는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고 있을 때 주는 것, 임신부가 주는 것,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가 주는 것, 남자에게 안긴 여자로 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를 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파리 떼가 날라 다닐 때 받지 않으며, 생선과 고기를 받지 않고, 술과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는 한 집에 가서 한 입의 음식을 받고, 두 집에서 두 입의 음식을 받고 ... 일곱 집에서 일곱 입이 음식을 받아 먹는다. 작은 그릇 한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작은 그릇 두 개의 음식을 삶을 유지하고 ... 작은 그릇 일곱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한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고 ... 일주일에 한 번 음식을 먹는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보름에 한 번 음식을 먹으며 산다.  
그는 채소를 먹기도 하고, 수수를 먹기도 하고, 생쌀을 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뼈를 먹기도 하고, 수초를 먹기도 하고, 왕겨를 먹기도 하고, 쌀 씻은 물을 먹기도 하고, 깻가루를 먹기도 하고, 풀을 먹기도 하고, 소똥을 먹기도 하고, 나무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그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가죽을 입고, 영양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판자로 만든 옷을 입고, 인간의 머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동물의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털로 만든 옷을 입는다.  
그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고행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려 앉는 고행으로 쪼그려 앉고,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한다. 저녁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 수행을 실천하면서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어떻게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양을 도살하고, 돼지를 도살하고, 새를 잡고, 사슴을 죽이고,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죽이고, 도둑이고, 도둑을 죽이는 집행관이고, 죄수이거나 혹은 다른 잔인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한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스스로 힘든 삶을 살아서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면서 남을 힘들게 하는 삶을 살아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큰 재력을 가진 바라문이다. 그는 도시의 동쪽에 새로운 사당을 짓게 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거친 가죽옷을 입고 버터와 기름을 몸에 바르고 사슴뿔로 등을 긁고 그의 첫째 왕비와 왕실의 바라문 제관과 함께  
사당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황갈색의 땅 위에 자리를 만들게 한다. 같은 색깔의 송아지를 가진 한 마리의 암소의 첫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을 왕이 먹는다. 두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을 왕비가 먹는다. 세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을 왕실의 바라문 제관이 먹는다. 네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은 불에 헌식한다. 나머지는 송아지가 먹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사지내기 위해서 이만큼의 황소들을 도살하라. 제사지내기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땐 숫송아지를 도살하라. 제사지내기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땐 암송아지들을 도살하라, 제사지내기 위해서 이만큼의 암염소들을 도살하라. 제사지내기 위해서 이만큼의 숫암소들을 도살하라. 제사기둥을 위해서 이만큼의 나무를 베어라. 제사풀로 쓰기 위해서 이만큼의 다르바 풀을 베어라.’라고 그러면 그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은 처벌을 두려워 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한탄하면서 제사를 지내기 위한 이러한 여러 준비를 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스스로 힘든 삶을 살아서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면서 남을 힘들게 하는 삶을 살아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한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아서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 남을 힘들게 하는 삶을 살지 않아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는가?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제거되고, 평온하고,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린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이런 믿음을 갖춘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완전무결하고 청정무구한 잘 닦여진 자개껍질과 같은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얼마 뒤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 또한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하여 비구들의 닦음과 생활규칙을 갖춘 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몽둥이를 내려놓았고, 칼을 내려놓았고,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으로 머문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준 것만을 받는 자이고, 준 것만을 바라는 자이다. 스스로 훔치지 않는 청정한 존재로 머문다.

그는 청정범행이 아닌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청정범행을 닦는 자이다. 멀리 사는 자이고, 저속한 성행위를 멀리 떠났다.

그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진실을 말하는 자이고, 믿을만하고, 신뢰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고, 세상을 위해 진실을 말한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이간하는(중상모략) 말을 하는 행위로붜 멀리 떠난 자이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는 거친(욕설)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적절한 때에 말하고, 진실되게 말하고, 이익되게 말하고, 법에 맞게 말하고, 율에 맞게 말한다. 적절한 때에, 근거를 갖춘, 절제된, 이익되는 말을 한다.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하루 한 끼만 먹는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떠나고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춤, 노래, 음악,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화환을 두르고 향과 화장품을 바르고 장신구로 꾸미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떠난다.

그는 금과 은을 받은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여자나 어린 소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코끼리, 소, 말, 암말을 받은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중개하는 일이나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사고 파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저울을 속이고 돈을 속이고 도량을 속이는 부정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뇌물을 주고 속이고 사기치고 어떠한 종류의 정직하지 않은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는 남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거나 또는 누군가를 강제하고 구속하여 폭력을 쓰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그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몸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필수품을 몸에 지니고 간다. 예를 들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기 양날개를 짐의 전부로 하여 날아가는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몸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필수품을 몸에 지니고 간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을 경험한다.

 

그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을 붙잡지 않으며, 뒤따르는 부분상[受]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가 눈의 근(기능)이 보호되지 않은 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상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근(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렵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 그는 마음으로 법을 지각하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도 않으며, 뒤따르는 부분상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가 마음의 근이 보호되지 않은 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근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그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서면서 앉으면서 잠들면서 잠을 깨면서 말하면서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근의 단속을 갖추고, 이러한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춘 그는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언 그는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 유익한 법들에 대해 불확실함을 가지지 않은 자로 머물고,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그는 마음의 지혜를 무력하게 하는 마음의 오염원인 이런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쾌락으로 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과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를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으미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지킴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지킴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지킴의 평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케 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들을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아서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 남을 힘들게 하는 삶을 살지 않아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제거되고, 평온하고,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사람이다.”

 

taṇhāsuttaṃ (AN 4.199-애(愛) 경)

199. 세존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흐르고, 퍼지고, 달라붙는 갈망인 갈애를 설하겠다. 공격당하고, 덮히고, 실타래처럼 엉키고,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엉킨 문자 풀 같은 존재인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공격당하고, 덮이고, 실타래처럼 엉키고,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엉킨 문자 풀 같은 존재인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흐르고, 퍼지고, 달라붙는 갈망인 갈애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안의 붙잡음(집착)을 원인으로 생기는 18가지 갈애의 행보와 밖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생기는 18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다.

 

무엇이 안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18가지 갈애의 행보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가 있을 때 ‘나는 여기에 있다.’가 있고, ‘나는 동등하다’가 있고,  ‘나는 다르다.’가 있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영원하지 않다).’가 있고,  ‘나는 존재한다(영원하다).’가 있고,  ‘나는 있었으면’이 있고, ‘나는 여기에 있었으면’이 있고,  ‘나는 이렇게 있었으면’이 있고,  ‘나는 다르게 있었으면.’이 있고,  ‘나는 참으로 있기를.’이 있고,  ‘나는 참으로 여기에 있기를.’이 있고,  ‘나는 참으로 이렇게 있기를’이 있고,  ‘나는 참으로 다르게 있기를’이 있고,  ‘나는 있게 되었으면’이 있고,  ‘나는 여기에 있게 되었으면.’이 있고,  ‘나는 이렇게 있게 되었으면.’이 있고,  ‘나는 다르게 있게 되었으면’이 있다. 안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생기는 이런 18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다.

 

*'내가 있다(asmi)'는 것은 안의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를 집착하여 갈애와 자만과 사견을 통해서 오온을 나라고 무더기로 움켜쥐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그런 생각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AA.iii.206)
*'나는 동등하다(evamsmi)'라는 것은 동등하게 취급하여 나라고 움켜쥐는 것이다. 이 사람이 끄샤뜨리야이고 이 사람이 바라문인 것처럼 나도 그러하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AA.iii.207)
*'나는 다르다(annathasmi)'라는 것은 동등하지 않게 취급하여 나라고 움켜쥐는 것이다. 이 사람은 끄샤뜨리야이고 이 사라은 바라문이지만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 즉 저열하거나 높다는 뜻이다.(Ibid)
*'나는 영원하다(asasmi)'와 '나는 영원하지 않다(satasmi)'의 이 둘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있다(atthi)고 해서 존재함(asa)이다. 이것은 항상함과 동의어이다. 가라앉다(sidati)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음(sata)이다. 이것은 무상(anicca)과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상견과 단견(sassati-uccheda)으로써 설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Ibid)
*'나는 있었으면'으로 옮긴 원어는 sam 인데 주석서는 '나는(aham)있었으면(siyam)이라는 뜻으로 알아야 한다.'(Ibid)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참으로 있기를'로 옮긴 원어는 api ha sam 인데 주석서는 '참으로(api nama) 나는 있기를(bhaveyyam)이라고 소망을 이루는 것으로 말한 것이다.'(Ibid)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있었으면'보다 더 강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있을 것이다(bhavissam)'는 주석서의 설명대로 당연히 미래를 나타낸다.(AA.iii.208)

 

무엇이 밖의 붙잡음을 인으로 생기는 18가지 갈애의 행보인가?

비구들이여, ‘이것으로 인해 내가 있다’가 있을 때 ‘이것으로 인해 나는 여기에 있다’가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이러하다(동등하다)’가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다르다.’가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영원하지 않다)’가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존재한다(영원하다)’가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있었으면’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여기에 있었으면’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이렇게 있었으면(동등하게 되었으면)’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다르게 있었으면’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참으로 있기를’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참으로 여기에 있기를’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참으로 이렇게 있기를(동등하게 되기를’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참으로 다르게 있기를’이 있고,  ‘이으로 인해 인해 나는 있게 되었으면’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여기에 있게 되었으면'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이렇게 있게 되었으면(동등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나는 다르게 있게 되었으면'이 있다. 밖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생기는 이런 18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다. 

 

이렇게 안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생기는 18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고, 밖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생기는 18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36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36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고, 미래의 36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고, 현재의 36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다. 이렇게 108가지 갈애의 행보가 있다."

 

*현실 6가지 - ①'내가 있다.'는 [생각]이 있을 때 ②'나는 여기에 있다.' ③'나는 동등하다.' ④'나는 다르다.' ⑤'나는 영원하다.' ⑥'나는 영원하지 않다.'

*바램 8가지 - ①'나는 있었으면.' ②'나는 여기에 있었으면.' ③'나는 동등하게 되었으면.' ④'나는 다르게 되었으면.' ⑤'나는 참으로 있기를.' ⑥'나는 참으로 여기에 있기를.' ⑦'나는 참으로 동등하게 되기를.' ⑧'나는 참으로 다르게 되기를.' 3) 예측 4가지 - ①'나는 있을 것이다.' ②'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③'나는 동등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④'나는 다르게 되어 있을 것이다.'

 

pemasuttaṃ (AN 4.200-사랑 경)

“비구들이여, 네 가지가 이런 (사랑이)생긴다. 어떤 넷인가?

사랑(pemā) 때문에 사랑(애정)이 생긴다. 사랑 때문에 성냄이 생긴다. 성냄 때문에 사랑이 생긴다. 성냄 때문에 성냄이 생긴다.

 

구들이여, 어떻게 사랑 때문에 사랑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을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한다.'라고.

그는 그들에 대해 사랑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랑 때문에 사랑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랑 때문에 성냄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라고. 

그는 그들에 대해 성냄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랑 때문에 성냄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성냄 때문에 사랑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라고. 

그는 그들에 대해 사랑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성냄 때문에 사랑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성냄 때문에 성냄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한다.’라고. 

그는 그들에 대해 성냄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성냄 때문에 성냄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에서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물 때, 사랑 때문에 사랑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때 그 사랑 때문에 성냄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때 성냄 때문에 사랑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때 성냄 때문에 성냄이 생기지도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 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물 때 ··· 제3선(三禪)을 ···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물 때, 사랑 때문에 사랑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때 그 사랑 때문에 성냄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때 성냄 때문에 사랑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때 성냄 때문에 성냄이 생기지도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때, 사랑 때문에 사랑이 생기는 것도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사랑 때문에 성냄이 생기는 것도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성냄 때문에 사랑이 생기는 것도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성냄 때문에 성냄이 생기는 것도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자기 자신에게 끌리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그을리지도 않고, 타오르지도 않고, 화염에 휩싸이지도 않는다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끌리는가(자신을 움켜쥐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色)을 자아(我)라고 간주한다거나, 나를 물질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물질이, 혹은 물질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느낌을 ··· 인식(想)을 ··· 형성들을(行) ··· 의식(識)을 자아라고 간주한다거나, 나를 의식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의식이, 혹은 의식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끌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끌리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을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나를 물질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물질이, 혹은 물질에 내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 인식(想)을 ··· 형성들을(行) ··· 의식(識)을 자아라고 간주하지 않고, 나를 의식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의식이, 혹은 의식에 내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끌리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반대를 하면서 싸우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욕을 모욕으로 되갚고 분노를 분노로 되갚고 다툼을 다툼으로 되갚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반대를 하면서 싸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반대를 하면서 싸우지 않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욕을 모욕으로 되갚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 되갚지 않고, 다툼을 다툼으로 되갚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반대를 하면서 싸우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안을 집착하여 갈애의 연기를 뿜는가?

비구들이여, ‘내가 있다.’는 생각이 있을 때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동등하다.’ ‘나는 다르다.’ ‘나는 영원하다.’ ‘나는 영원하지 않다.’ ‘나는 있었으면’ ‘나는 여기에 있었으면’ ‘나는 동등하게 되었으면’ ‘나는 다르게 되었으면’ ‘나는 참으로 있기를’ ‘나는 참으로 여기에 있기를’ ‘나는 참으로 동등하게 되기를’ ‘나는 참으로 다르게 되기를’ ‘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동등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다르게 되어있을 것이다.’라는 이런 생각이 일어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을 집착하여 갈애의 연기를 뿜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안을 집착하여 갈애의 연기를 뿜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내가 있다.’는 [생각이] 없을 때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동등하다.’ ‘나는 다르다.’ ‘나는 영원하다.’ ‘나는 영원하지 않다.’ ‘나는 있었으면’ ‘나는 여기에 있었으면’ ‘나는 동등하게 되었으면’ ‘나는 다르게 되었으면’ ‘나는 참으로 있기를’ ‘나는 참으로 여기에 있기를’ ‘나는 참으로 동등하게 되기를’ ‘나는 참으로 다르게 되기를’ ‘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동등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다르게 되어있을 것이다.’라는 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을 집착하여 갈애의 연기를 뿜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밖을 집착하여 갈애로 타오르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에 의해서 내가 있다.’는 생각이 있을 때 ‘이것에 의해서 나는 여기에 있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동등하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다르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영원하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영원하지 않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있었으면’ ‘이것에 의해서 나는 여기에 있었으면’ ‘이것에 의해서 나는 동등하게 되었으면’ ‘이것에 의해서 나는 다르게 되었으면’ ‘이것에 의해서 나는 참으로 있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참으로 여기에 있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참으로 동등하게 되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참으로 다르게 되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있을 것이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동등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이것에 의해 나는 다르게 되어있을 것이다.’라는 이런 생각이 일어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밖을 취착하여 갈애로 타오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밖을 집착하여 갈애로 타오르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에 의해서 내가 있다.’라는 [생각이] 없을 때 ‘이것에 의해서 나는 여기에 있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동등하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다르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영원하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영원하지 않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있었으면’ ‘이것에 의해서 나는 여기에 있었으면’ ‘이것에 의해서 나는 동등하게 되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다르게 되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참으로 있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참으로 여기에 있기를’ ‘이것에 의해서 나는 참으로 동등하게 되기를’ ‘이것에 의해 나는 참으로 다르게 되기를’ ‘이것에 의해 나는 있을 것이다.’ ‘이것에 의해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것에 의해 나는 동등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이것에 의해 나는 다르게 되어있을 것이다.’라는 [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밖을 취착하여 갈애로 타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나라는 자만의 화염에 휩싸이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내가 존재한다는 자아의식을 제거하지 못했고 뿌리를 자르지 못했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들지 못했고 멸절시키지 못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지 못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라는 자만의‘ 화염에 휩싸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나’라는 자만의 화염에 휩싸이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내가 존재한다는 자아의식을 제거하였고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켰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라는 자만의 화염에 휩싸이지 않는다.”

 

 

제20장 대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