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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상윳따 - 제4장 즐거움의 기능 품(SN48:31-SN48:40. Sukhindriya-vagga)

실론섬 2014. 8. 2. 13:18

제4장 즐거움의 기능 품
Sukhindriya-vagga (SN 48.31-40)

suddhikasuttaṃ (SN 48.31-간단한 설명 경)
501.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sotāpannasuttaṃ (SN 48.32-예류자 경)
502.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비
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arahantasuttaṃ (SN 48.33-아라한 경)
503.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 뒤 집착 없이 해탈할 때,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라한이고,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구경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했다고 한다.”

 

paṭhamasamaṇabrāhmaṇasuttaṃ (SN 48.34-사문·바라문 경1)
504.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면,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이다.”  

dutiyasamaṇabrāhmaṇasuttaṃ (SN 48.35-사문·바라문 경2)

505.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즐거움의 기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꿰뚫어 알지 못하고), 즐거움의 기능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리지 못하고, 즐거움의 기능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즐거움의 기능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

괴로움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 만족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리지 못하고 ··· 고뇌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 평정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평정의 기능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평정의 기능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평정의 기능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즐거움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즐거움의 기능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즐거움의 디능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즐거움의 기능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 괴로움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 만족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 고뇌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 평정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평정의 기능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평정의 기능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평정의 기능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다. 또한 그들은 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이다.” 

 

paṭhamavibhaṅgasuttaṃ (SN 48.36-분석 경1)
506.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즐거움(육체적 즐거움), 몸에 속한 편안함,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한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괴로움, 몸에 속한 불편함,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만족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심.心)에 속한 즐거움, 마음에 속한 편안함, 마음의 감각접촉(의촉.意觸)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한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만족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에 속한 괴로움, 마음에 속한 불편함,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뇌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평정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하거나 마음에 속한 편안함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닌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dutiyavibhaṅgasuttaṃ (SN 48.37-분석 경2)
507.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즐거움(육체적 즐거움), 몸에 속한 편안함,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한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괴로움, 몸에 속한 불편함,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만족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심.心)에 속한 즐거움, 마음에 속한 편안함, 마음의 감각접촉(의촉.意觸)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한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만족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에 속한 괴로움, 마음에 속한 불편함,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뇌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평정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하거나 마음에 속한 편안함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닌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과 만족의 기능은 즐거움의 느낌이라고 보아야 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과 고뇌의 기능은 괴로움의 느낌이라고 보아야 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느낌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tatiyavibhaṅgasuttaṃ (SN 48.38-분석 경3)
508.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즐거움(육체적 즐거움), 몸에 속한 편안함,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한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괴로움, 몸에 속한 불편함,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만족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심.心)에 속한 즐거움, 마음에 속한 편안함, 마음의 감각접촉(의촉.意觸)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한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만족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에 속한 괴로움, 마음에 속한 불편함,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뇌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평정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하거나 마음에 속한 편안함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닌 느낌, 이것이,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과 만족의 기능은 즐거움의 느낌이라고 보아야 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과 고뇌의 기능은 괴로움의 느낌이라고 보아야 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느낌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은 다섯이면서도 셋이 되고, 셋이면서 다섯이 된다.”

 

kaṭṭhopamasuttaṃ (SN 48.39-나무토막 비유 경)
509.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비구들이여,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촉.觸)을 조건으로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 즐거움이 생겨났을 때 ‘나는 즐겁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거기에서 생긴 경험 즉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즐거움의 기능이 소멸하고, 고요해진다(가라앉는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분명히 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괴로움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 괴로움이 생겨났을 때 ‘나는 괴롭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괴로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거기에서 생긴 경험 즉 괴로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괴로움의 기능이 소멸하고, 고요해진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족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만족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 만족이 있을 때 ‘나는 만족한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만족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거기에서 생긴 경험 즉 만족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만족의 기능이 소멸하고, 고요해진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고뇌가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고뇌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 고뇌가 있을 때 ‘나는 고뇌한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고뇌가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거기에서 생긴 경험 즉 고뇌가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고뇌의 기능이 소멸하고, 고요해진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평정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평정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 평정을 가졌을 때 ‘나는 평정을 가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평정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거기에서 생긴 경험 즉 평정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평정의 기능도 소멸하고, 고요해진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두 개의 나무토막을 맞대어 비비고 마찰함에 의해 열이 생기고 불이 붙는다. 이 두 개의 나무토막을 분리하여 떼어 놓음에 의해 거기서 생긴 열도 식고 가라앉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 즐거움이 생겨났을 때 '나는 즐겁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거기에서 생긴 경험 즉 즐거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즐거움의 기능이 소멸하고, 고요해진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 비구들이여, 만족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 비구들이여, 고뇌가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 비구들이여, 평정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기능이 일어난다. 그 평정을 가졌을 때 ‘나는 평정을 가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평정이 경험될 감각접촉의 소멸로부터 '거기에서 생긴 경험 즉 평정이 경험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평정의 기능도 소멸하고, 고요해진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uppaṭipāṭikasuttaṃ (SN 48.40-순서에 따라 오름 경) 
510.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기쁨)의 기능[희근.喜根], 고뇌(불만족)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비구에게 괴로움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꿰뜷어 안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근거가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근거가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괴로움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괴로움의 기능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괴로움의 기능의 일어남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괴로움의 기능의 소멸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일어난 괴로움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곳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러면 일어난 괴로움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사유(지속적 고찰.伺)와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伺)를 지닌, 분리(멀어짐)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괴로움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괴로움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비구에게 고뇌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나에게 이 고뇌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근거가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근거가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고뇌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고뇌의 기능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고뇌의 기능의 일어남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고뇌의 기능의 소멸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일어난 고뇌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러면 일어난 고뇌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고뇌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고뇌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서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비구에게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나에게 이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근거가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근거가 없고 원이 없고 형성 작영이 없고 조건이 없는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즐거움의 기능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즐거움의 기능의 일어남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즐거움의 기능의 소멸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일어난 즐거움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러면 일어난 즐거움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지킴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지킴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즐거움의 기능은 여기서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즐거움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비구에게 만족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나에게 이 만족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근거가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근거가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만족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만족의 기능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만족의 기능의 일어남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만족의 기능의 소멸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만족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러면 일어난 만족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에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지킴의 청정을[捨念淸淨]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만족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만족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비구에게 평정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나에게 이 평정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근거가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근거가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평정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평정의 기능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평정의 기능의 일어남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평정의 기능의 소멸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일어난 평정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러면 일어난 평정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평정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평정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제4장 즐거움의 근의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