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48상윳따 - 제7장 보리분(조도) 품(SN48:61-SN48:70. Bodhipakkhiya-vagga)

실론섬 2014. 8. 5. 15:11

제7장 보리분 품
Bodhipakkhiya-vagga (SN 48.61-70)

 

saṁyojanasuttam (SN 48.61-족쇄 경)
531.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족쇄들의 버림으로 이끈다. 어떤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족쇄들의 버림으로 이끈다.”   

 

anusayasuttam (SN 48.62-잠재성향 경)
532.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잠재성향의 뿌리 뽑음으로 이끈다. 어떤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잠재성향의 뿌리 뽑음으로 이끈다.”  

pariññasuttam (SN 48.63-철저하게 앎 경)
533.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깨달음의 길을 철저하게 알게 된다. 어떤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깨달음의 길을 철저하게 알게 된다.”  

 

āsavakkhayasuttaṃ (SN 48.64-번뇌의 부서짐 경)
534.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익힌)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끈다(인도한다). 어떤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족쇄의 버림으로 이끈다. 잠재성향의 뿌리 뽑음으로 이끈다. 긴 여정에 대해 철저히 알게 된다.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족쇄의 버림으로 이끈다. 잠재성향의 뿌리 뽑음으로 이끈다. 긴 여정에 대해 철저히 알게 된다.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끈다."   

 

pathamaphalasuttam (SN 48.65-한 가지 결실 경)
535.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의 결실이 예상된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집착의 자취가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가 예상된다.”

 

dutiyaphalasuttam (SN 48.66두 가지 결실 경)
536.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일곱 가지 결실과 일곱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 결실과 이익인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한다. 만일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면
죽을 때에 구경의 지혜를 성취한다. 만일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고 죽을 때에도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노력 없이 쉽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노력하여 어렵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이르는 자가 된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은 일곱 가지 결실과 일곱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pathamarukkhasuttam (SN 48.67-나무 경1)
537.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잠부디빠에 그 어떤 나무들이라도 잠부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기능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믿음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정진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마음 챙김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삼매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혜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잠부디빠에 그 어떤 나무들이라도 잠부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근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dutiyarukkhasuttam (SN 48.68-나무 경2)
538.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그 어떤 나무들이라도 빠릿찻따가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기능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믿음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정진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마음챙김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삼매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혜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그 어떤 나무들이라도 빠릿찻따가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근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tatiyarukkhasuttam (SN 48.69-나무 경3)
539.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아수라들에게 그 어떤 나무들이라도 찟따빠딸리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기능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믿음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정진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마음챙김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삼매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혜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아수라들에게 그 어떤 나무들이 있든지 간에 찟따빠딸리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기능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catuttharukkhasuttam (SN 48.69-나무 경4)
540.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금시조들에게 그 어떤 나무들이라도 꾸따심발리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기능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믿음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정진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마음챙김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삼매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혜의 기능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이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금시조들에게 그 어떤 나무들이라도 꾸따심발리 나무가 으뜸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이라도 깨달음을 위해서는 혜의 근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離苦得樂)이다. 그러나 괴로움은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괴로움은 수행을 통해서 없어진다. 이러한 수행은 초기불전에서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되어 나타난다.

‘보리분법(菩提分法)’은 보디빡키야 담마(bodhi pakkhiya- dhamma-)를 bodhi(보리)-pakkhiya-(분) dhamma-(법)로 직역한 것인데 ‘깨달음(보리)의 편(분)에 있는 법들’로 옮겨진다. 이 보리분법은 붓다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은 <상윳따 니까야>의 <도 상윳따>(S45)부터 <성취수단 상윳따>(S51)까지의 일곱 개 주제로 분류되어 나타난다. 이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4념처(四念處,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②4정근(四正勤, 네 가지 바른 노력) ③4여의족(四如意足, 네 가지 성취수단) ④5근(五根, 다섯 가지 기능) ⑤5력(五力, 다섯 가지 힘) ⑥7각지(七覺支,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 ⑦8정도(八正道, 八支聖道,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 이처럼 37보리분법은 모두 일곱 가지 주제로 되어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포함된 법수들을 다 합하면 37가지가 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를 37보리분법이라 불러왔다. 

<청정도론>은 보리분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깨달았다는 뜻에서 깨달음이라고 이름을 얻은 성스러운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의 편에 있기 때문에 깨달음의 편(菩提分)에 있는 법이라 한다. 여기서 편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도와주는 상태에 서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Vis.XXII.33)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도와주는 상태’라는 설명 등을 고려해서 중국에서는 조도품(助道品)으로도 옮긴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리분법보다는 조도품으로 더 많이 통용되지만 CBETA로 검색해보면 중국에서는 보리분법으로 옮긴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처럼 <청정도론>을 위시한 주석서 문헌들은 보리분법을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로 해석하는데, 보리분법은 깨달음을 성취한 예류자 이상의 성자들의 편에 있는 법들이며, 깨달음을 성취할 때 이 37가지가 함께 모두 드러나는 것으로 설명한다.(XXII.39) 보리분법이라는 술어 자체가 ‘깨달음의 편에 속하는 법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37보리분법은 당연히 ‘깨달음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법들’로 이해되어야 하고 이렇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 실참수행을 하려는 불자들에게 37보리분법은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에 모은 37보리분법에 대한 가르침(S45~S51)에서는 이런 측면이 절대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37가지를 ‘도를 도와주는 것(助道)’으로 해석한 <청정도론>의 설명이 돋보인다. 이처럼 보리분법은 첫째, ‘깨달음의 편에 있는(菩提分) 법들’과 둘째, ‘깨달음을 도와주는(助道) 법들’로 설명된다.

 

 

 

제7장 보리분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