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아홉의 모음 - 1. 깨달음의 품(Sambodhi-vagga. AN9.1-10)

실론섬 2014. 8. 19. 16:24

제1장 깨달음의 품 Sambodhi-vagga (AN 9.1-10)

 

sambodhisuttaṃ (AN 9.1-깨달음 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만약 외도 유행승들이 ‘도반들이여,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들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 조건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 뜻을 잘 설명해주십시오.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이제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만약 외도 유행승들이 ‘도반들이여,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들을 닦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졌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들을 닦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뭅니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들을 닦기 위한 두 번째 조건입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바라는 것이 적음에 대한 이야기, 만족에 대한 이야기,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이야기, 열심히 정진함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 를 바라는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들을 닦기 위한 세 번째 조건입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불선법들을 제거하고 선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며 머뭅니다. 그는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들을 닦기 위한 네 번째 조건입니다.

여기, 벗들이여, 비구는 지혜를 가졌습니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 차리고, 성스럽고, 지혜가 있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지혜를

구족했습니다. 벗들이여, 이것이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들을 닦기 위한 다섯 번째 조건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는 ‘그는 계를 잘 지킨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닦는다.’는 것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는 ‘그는 바라는 것이 적음에 대한 이야기, 만족에 대한 이야기,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이야기, 열심히 정진함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 등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는 ‘그는 불선법들을 제거하고 선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며 머문다. 그는 선한 법들에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입니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는 ‘그는 지혜를 가졌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 차리고, 성스럽고, 지혜가 있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지혜를 구족했다.’는 것이 기대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다섯 가지 법에 굳게 선 뒤에 네 가지 법을 더 닦아야 한다. 즉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서 부정(不淨)함을 닦아야 한다. 악의를 제거하기 위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 일으킨 생각을 멈추기 위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아야 한다.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을 뿌리 뽑기 위해 무상의 인식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무상의 인식을 가진 비구는 무아의 인식이 확립된다. 무아의 인식을 가진 자는 '내가 있다'라는 자아의식을 뿌리 뽑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다.”라고.

 

nissayasuttaṃ (AN 9.2-의지 경)
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비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의지한다, 의지한다'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비구가 의지합니까?”라고.
“만약, 비구여, 비구가 믿음을 의지하여 선하지 않음을 제거하고 선함을 닦으면, 그 선하지 않음은 제거된다. 
만약, 비구여, 비구가 뉘우칠 줄 아는 힘을 의지하여 ··· 만약, 비구여, 비구가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을 의지하여 ··· 만약, 비구여, 비구가 정진을 의지하여 ··· 만약, 비구여, 비구가 지혜를 의지하여 선하지 않음을 제거하고 선함을 닦으면, 그 선하지 않음은 제거된다. 비구에게 성스러운 지혜로 보아서 버려진 것인 선하지 않음의 버려짐은 완전히 버려진 것이다.

 

그리고 비구여, 그 비구는 이런 다섯 가지 법에 확고히 선 뒤에 네 가지 법을 의지해야 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여, 여기 비구는 숙고한 뒤에 수용해야 할 것은 수용한다. 숙고한 뒤에 감내해야 할 것은 감내한다. 숙고한 뒤에 피해야 할 것은 피한다. 숙고한 뒤에 제거해야 할 것은 제거한다. 이렇게, 비구여, 비구는 의지한다.”

 

meghiyasuttaṃ (AN 9.3-메기야 경)
3. 한 때에 세존께서는 짤리까에서 짤리까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메기야 존자가 세존의 시자로 있었다.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잔뚜가마에 탁발을 가고자 합니다.”

“메기야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라.”

 

*짤리까(Calika)는 도시 이름이다. 이 도시의 문을 열면 출렁이는 소택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도시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져서 짤리까라 불렸다고 한다.(UdA.217) 이곳에 있는 산이 짤리까 산(Calikapabbata)인데 세존께서는 열 세번째, 열여덟 번째, 열아홉 번째 안거를 이곳에서 보내셨다고 한다.(AA.ii.124) 이곳에는 큰 승원이 있었으며 세존께서는 이곳에서 보내셨다고 한다.(AA.ii.124)
*메기야 존자(ayasma Meghiya)는 샤까(Sakya.석가족)의 까삘라왓투 출신이며 본경에서 보듯이 한때 세존의 시자 소임을 맡았다. 그는 본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DPPN)
*세존의 시자 소임을 본 분은 모두 여덟 분인데, 그분들은 나가사말라(Nagasamala), 나기따(Nagita), 우바와나(Upavana), 수낙캇따(Sunakkhatta), 사미라고 불린 쭌다(Cunda samanuddesa), 사가따(Sagata), 메기야(Meghiya)이며(AAT.iii.247-248) 깨달음을 얻은 후 21년째 되던 해부터 반열반하시기까지 대략 25년간은 아난다 존자가 시자 소임을 맡았다.

 

메기야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 잔뚜가마로 들어갔다. 잔뚜가마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끼마깔라 강의 언덕으로 갔다. 메기야 존자는 끼미깔라 강의 언덕에서 이리저리 경행하다가 마음에 드는 망고 숲을 보았다. 그것을 보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망고 숲은 참으로 마음에 든다.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정진하기에 좋은 곳이다. 만일 세존께서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정진을 위해 이 망고 숲으로 와야겠다.’라고.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

“여기, 세존이시여, 저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잔뚜가마로 탁발을 갔습니다. 잔뚜가마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끼미깔라 강의 언덕으로 갔습니다. 저는 끼미깔라 강의 언덕에서 이리저리 경행하다가 마음에 드는 망고 숲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망고 숲은 참으로 마음에 든다.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정진하기에 좋은 곳이다. 만일 세존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정진을 위해 이 망고 숲으로 와야겠다.’라고."

“누구든지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메기야여, 그때까지 나는 혼자이다.”

 

두 번째도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해야 할 것이 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없습니다(더 보태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허락하신다면 저는 정진을 위해 그 망고 숲으로 가고자 합니다.”라고.

“누구든지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메기야여, 그때까지 나는 혼자이다.”

 

세 번째도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해야 할 것이 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허락해주신다면 저는 정진을 위해 그 망고 숲으로 가고자 합니다.”라고.

“메기야여, 그대가 정진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메기야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라.”

 

그러자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세존의 오른쪽으로 돌아 공경을 표하고 망고 숲으로 갔다. 그는 망고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그런데 그 망고 숲에 머무는 메기야 존자에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 성냄에 대한 생각,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라는 세 가지 삿되고 선하지 않은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그러자 메기야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놀랍다! 나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런데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과 성냄에 대한 생각과 해코지에 대한 생각의 세 가지 삿되고 선하지 않은 생각이 많이 일어나는구나!’라고.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여기, 세존이시여, 그 망고 숲에 머무는 저에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 성냄에 대한 생각, 해코지에 대한 삿되고 선하지 않은 생각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놀랍다! 나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런데도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과 성냄에 대한 생각과 해코지에 대한 생각의 세 가지 나쁘고 선하지않은 생각이 많이 일어나는구나!’라고.”

 

“메기야여, 다섯 가지 법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마음의 해탈(심해탈.心解脫)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끈다. 어떤 다섯인가?

여기, 메기야여, 비구는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졌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마음의 해탈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첫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그는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마음의 해탈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두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바라는 것이 적은 것에 대한 이야기, 만족에 대한 이야기,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이야기, 열심히 정진함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 등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마음의 해탈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세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선하지 않은 법들을 제거하고 선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며 머문다. 그는 선한 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마음의 해탈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네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지혜를 가졌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 차리고, 성스럽고, 지혜가있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지혜를 갖추었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마음의 해탈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다섯 번째 법이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 ‘비구는 계를 잘 지킬 것이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을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 ‘바라는 것이 적은 것에 대한 이야기, 만족에 대한 이야기, 홀로 머묾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이야기, 열심히 정진함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 등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 ‘그는 선하지 않은 법들을 제거하고 선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며 머물 것이다. 그는 선한 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일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 ‘그는 지혜를 가졌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차리고, 성스럽고, 지혜가 있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지혜를 구족할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이러한 다섯 가지 법에 굳게 선 뒤에 네 가지 법을 더 닦아야 한다. 즉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서 부정(不淨)함을 닦아야 한다. 악의를 제거하기 위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 일으킨 생각을 멈추기 위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아야 한다.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을 뿌리 뽑기 위해 무상의 인식을 닦아야 한다. 메기야여, 무상의 인식을 가진 비구는 무아의 인식이 확립된다. 무아의 인식을 가진 자는 '내가 있다'라는 자아의식을 뿌리 뽑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다.” 라고.

 

nandakasuttaṃ (AN 9.4-난다까 경)

4.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난다까 존자가 집회소에서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셔서 집회소로 가셨다. 가서는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문밖에 서 계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 헛기침을 하시고는 문을 가볍게 두드리셨다. 비구들은 세존께 문을 열어드렸다.

 

세존께서는 집회소로 들어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는 난다까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난다까여, 그대는 비구들에게 긴 법문을 했구나. 문밖에서 법문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서 있었더니 등이 아프구나.”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죄송스러운 난다까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께서 문밖에 서 계신다.'라고 알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세존께서 문밖에 서 계신다.'라고 알았다면 저희는 이만큼이나 대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난다까 존자가 죄송스러워하는 줄 알고서 난다까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난다까여. 그대들이 법담을 위해 함께 모여 앉은 것은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과 같은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마땅한 일이다. 난다까여
, 그대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땐 오직 두 가지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은 있지만 계를 중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나는 믿음이 있고 계를 중시하는가?’라고.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할 때,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지만 안으로 마음의 삼매를 얻지는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나는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를 얻을 때,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었지만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觀]을 얻지는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예를 들면, 난다까여, 네발 가진 짐승의 발 하나가 짧고 절뚝거리는 것과 같이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었지만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그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나는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고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고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 얻을 때,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난다까 존자는 세존께서 거처로 들어 가신지 오래지 않아서 비구들을 불러서 말했다.

“여기,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며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네 단계로써 확실하게 드러내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습니다.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은 있지만 계를 중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나는 믿음이 있고 계를 중시하는가?’라고.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할 때,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지만 안으로 마음의 삼매를 얻지는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나는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를 얻을 때,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었지만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觀]을 얻지는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예를 들면, 난다까여, 네발 가진 짐승의 발 하나가 짧고 절뚝거리는 것과 같이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지 못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었지만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그 요소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나는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고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난다까여, 비구가 믿음도 있고 계도 중시하고 안으로 마음의 삼매도 얻고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 얻을 때, 이렇게 그는 이 요소를 원만하게 갖춘다.'
라고.

 

도반들이여,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토론하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동료 비구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자주 확실하게 드러낼수록, 그는 스승을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 하고 존중하고 따르고자 합니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토론함으로써 얻는 첫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동료 비구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자주 확실하게 드러낼수록, 그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합니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담론함으로써 얻는 두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동료 비구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자주 확실하게 드러낼수록, 그는 그 법에 대해서 심오한 뜻의 경지를 지혜로 통찰하고 봅니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담론함으로써 얻는 세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동료 비구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자주 확실하게 드러낼수록, 동료 비구들은 ‘이 존자는 아라한과를 얻었거나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를 더 존경합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담론함으로써 얻는 네 번째 이익입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동료 비구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자주 확실하게 드러낼수록,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고 위없는 유가안은을 원하며 머무는 유학인 비구들은 그 법을 듣고는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합니다. 그러나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 놓고, 자신의 참된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들은 그 법을 듣고는 지금 여기에서 원만하게 행복하게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담론함으로써 얻는 다섯 번째 이익입니다.
도반들이여, 적절한 시기에 법을 배우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담론하면 이런 다섯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balasuttaṃ (AN 9.5-힘 경)
5.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힘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지혜의 힘, 정진의 힘, 결점 없음의 힘(비난받을 일이 없음의 힘), 따르게 함의 힘(섭수의 힘)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혜의 힘인가?

'유익하고 유익하다고 판명된 법들(동의 된 법들), 무익하고 무익하다고 판명된 법들, 결점이 있고 결점이 있다고 판명된 법들, 결점 없고 결점이 없다고 판명된 법들, 나쁘고 나쁘다고 판명된 법들(검은 것과 검은 것으로 동의된 법들), 좋고 좋은 것으로 판명된 법들(흰 것과 흰 것으로 동의된 법들), 실천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판명된 법들,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명된 법들, 성자에게 적합하지 않고 성자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명된 법들, 성자에게 적합하고 성자에게 적합하다고 판명된 법들'은 지혜에 의해 알려지고 이해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혜의 힘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정진의 힘인가?

무익하고 무익하다고 판명된 법들, 결점이 있고 결점이 있다고 판명된 법들, 나쁘고 나쁜다고 판명된 법들,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실천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명된 법들, 성자에게 적합하지 않고 성자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명된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을 행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을 쓴다. 유익하고 유익하다고 판명된 법들, 결점이 없고 결점이 없다고 판명된 법들, 좋고 좋다고 판명된 법들, 실천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판명된 법들, 성자에게 적합하고 적합하다고 판명된 법들을 얻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을 행하고 마음을 다잡고 힘을 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진의 힘이라고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결점이 없음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결점이 없는 몸의 업을 갖추고, 결점이 없는 말의 업을 갖추고, 결점이 없는 마음의 업을 갖추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결점이 없음의 힘이라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따르게 함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따르게 하는 행위가 있다. 보시, 사랑스런 말[愛語], 이로운 행위[利行], 함께 함[同事]이다. 비구들이여, 보시 가운데 으뜸은 법보시이다. 사랑스런 말 가운데 으뜸은 듣고자 하고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거듭거듭 법을 설하는 것이다. 이로운 행위 가운데 으뜸은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믿음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계행이 나쁜 자에게 계를 지키도록 격려하고, 계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인색한 자에게 베풂을 갖추도록 격려하고, 베풂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지혜가 없는 자에게 지혜를 갖추도록 격려하고, 지혜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는 것이다. 함께함 가운데 으뜸은 예류자는 예류자와 함께 하고 일래자는 일래자와 함께 하고 불환자는 불환자와 함께 하고 아라한은 아라한과 함께 함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따르게 함의 힘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힘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다섯 가지 두려움을 극복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생계에 대한 두려움, 나쁜 평판에 대한 두려움, 모임에 당당하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쁜 곳에 태어남에 대한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생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내가 생계에 대해 두려워하겠는가? 나에게는 지혜의 힘, 정진의 힘, 결점 없음의 힘, 따르게 함의 힘이라는 네 가지 힘이 있다. 어리석은 자는 생계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게으른 자는 생계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에 결점이 있는 자는 생계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따르게 함이 없는 자는 생계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나는 나쁜 평판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 나는 모임에 대해 당당하지 못함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 나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 나는 나쁜 곳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내가 나쁜 곳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겠는가? 나에게는 지혜의 힘, 정진의 힘, 결점 없음의 힘, 따르게 함의 힘이라는 네 가지 힘이 있다. 어리석은 자는 나쁜 곳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게으른 자는 나쁜 곳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몸의 업과 말의 업고 마음의 업에 결점이 있는 자는 나쁜 곳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따르게 함이 없는 자는 나쁜 곳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힘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다섯 가지 두려움을 극복한다."

 

sevanāsuttaṃ (AN 9.6-가까이 함 경)
6.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사람도 가까이해야 할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사람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의복도
가까이 해야 하는 것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탁발음식도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거처도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마을과 성읍도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 지방과 지역도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사람도 가까이해야 할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사람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습니까?
거기서 어떤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을 가까이 하는 나에게 불선법은 증장하고 선법은 줄어든다. 그리고 출가자인 내가 얻어야 하는 삶의 필수품인 의복, 탁발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기 어렵다. 그리고 사문의 결실을 위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나에게 그 사문의 결실은 닦아서 완성되지 않는다.’라고 알게 되면, 도반들이여, 그는 숙고한 뒤에 그 밤이든 낮이든 말없이(물어 볼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을 떠나야 하고,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깊이 숙고한 뒤(sankha)'란 것은 사문의 결실이 수행을 통해 완성에 이르지 않음을 알고서라는 뜻이다.(AA.iv.169)

 

거기서 어떤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을 가까이 하는 나에게 불선법은 증장하고 선법은 줄어든다. 그리고 출가자인 내가 구해야 하는 삶의 필수품인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어렵지 않게 얻는다. 그리고 사문의 결실을 위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나에게 그 사문의 결실이 닦아서 완성되지 않는다.’라고 알게 되면, 도반들이여, 그는 숙고한 뒤에 그 밤이든 낮이든 말없이 그 사람을 떠나야 하고,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거기서 어떤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을 가까이 하는 나에게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증장한다. 그리고 출가자인 내가 구해야 하는 삶의 필수품인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기 어렵다. 그리고 사문의 결실을 위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나에게 그 사문의 결실이 닦아서 완성된다.'라고 알게 되면, 도반들이여, 그는 숙고하면서 그 사람을 따라야 하고 떠나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어떤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을 가까이 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증장한다. 그리고 출가자인 내가 구해야 하는 삶의 필수품인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도 어렵지 않게 얻는다. 그리고 사문의 결실을 위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나에게  그 사문의 결실이 닦아서 완성에 이른다.’라고 알게 되면, 도반들이여, 그는 목숨이 있는 한 그를 따라야 하고 쫓아내더라도 그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도반들이여 '사람도 가까이해야 할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사람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의복도 가까이 해야 하는 것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무엇을 연하여 이렇게 말했습니까?    
거기서 어떤 의복에 대해 ‘이 의복을 가까이 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증장하고 선법은 줄어든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의복을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어떤 의복에 대해서 ‘이 의복을 가까이 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증장한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의복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의복도 가까이 해야 하는 것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탁발음식도 가까이 해야 할 것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는데, 무엇을 연하여 이렇게 말했습니까? 
거기서 어떤 음식에 대해서 '이 음식을 가까이 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증장하고 선법은 줄어든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음식을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어떤 음식에 대해서 ‘이 음식을 가까이 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증장한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음식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탁발음식도 가까이 해야 할 것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거처도 가까이 해야 할 것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무엇을 연하여 이렇게 말했습니까?
거기서 어떤 거처에 대해서 ‘이 거처를 가까이 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증장하고 선법은 줄어든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거처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어떤 거처에 대해서 ‘이 거처를 가까이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증장한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거처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거처도 가까이 해야 할 것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마을과 성읍도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무엇을 연하여 이렇게 말했습니까?
거기서 어떤 마을과 성읍에 대해서 ‘이 마을과 성읍을 가까이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증장하고 선법은 줄어든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마을과 성읍을 가까이해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어떤 마을과 성읍에 대해서 ‘이 마을과 성읍을 가까이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증장한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마을과 성읍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마을과 성읍도 가까이 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지방과 지역도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무엇을 연하여 이렇게 말했습니까?
거기서 어떤 지방과 지역에 대해서 ‘이 지방과 지역을 가까이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증장하고 선법은 줄어든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지방과 지역을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어떤 지방과 지역에 대해서 ‘이 지방과 지역을 가까이하면 나에게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증장한다.’라고 알게 되면, 그러한 지방과 지역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지방과 지역도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가지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습니다.”

  

sutavāsuttaṃ (AN 9.7-수따와 경)
7.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수따와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수따와 유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때에 라자가하에서 기립바자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서 직접 듣고 받아 지녔습니다.

‘수따와여,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 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는 다섯 가지 경우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번뇌 다한 비구가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으로부터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도둑질이라고 불리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성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알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예를 들면 이전에 재가자일 때처럼, 재물을 축적해 두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은 세존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배우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호지하는 것입니까?”

 

*기립바자(Giribbaja)는 라자가하(Rajagaha,왕사성)의 옛 이름이다. 기립바자(문자적으로는 산의 요새)는 산에 있는 성으로 마하고윈다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고 한다. 라자가하는 산 아래에 빔비사라 왕이 지었다고 한다.(VmA.82) 한편 숫타니빠따의 주석서에 의하면 라자가하는 빠다와(Pandava), 독수리봉(Gijjhakuta), 웨바라(Vebhara), 이시길리(Isigili), 웨뿔라(Vepulla)라는 다섯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기립바자라고 불렸다고 한다.(SnA.ii.382)

 

“참으로, 수따와여, 그대에게 이것은 잘 듣고, 잘 배우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호지하는 것이다. 수따와여, 나는 이전에도 이와 같이 말했고 지금도 이와 같이 말한다.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 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가 아홉 가지 경우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번뇌 다한 비구가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으로부터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도둑질이라고 불리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성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알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예를 들면 이전에 재가자일 때처럼, 재물을 축적해 두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열망(관심) 때문에 방향 아닌 곳(잘못된 길)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따와여, 나는 이전에도 이와 같이 말했고 지금도 이와 같이 말한다.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 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가 아홉 가지 경우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sajjhasuttaṃ (AN 9.8-삿자 경)
8.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삿자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삿자 유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때에 라자가하에서 기립바자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서 직접 듣고 받아 지녔습니다.
‘삿자여,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 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는 다섯 가지 경우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번뇌 다한 비구가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으로부터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도둑질이라고 불리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성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알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예를 들면 이전에 재가자일 때처럼, 재물을 축적해 두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세존이시여, 저에게 이것은 세존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배우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호지하는 것입니까?”

“참으로, 삿자여, 그대에게 이것은 잘 듣고, 잘 배우고, 잘 마음에 새기고, 잘 호지하는 것이다. 삿자여, 나는 이전에도 이와 같이 말했고 지금도 이와 같이 말한다.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 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가 아홉 가지 경우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번뇌 다한 비구가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으로부터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도둑질이라고 불리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성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알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예를 들면 이전에 재가자일 때처럼, 재물을 축적해 두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열망(관심) 때문에 방향 아닌 곳(잘못된 길)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뇌 다한 비구가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삿자여, 나는 이전에도 이와 같이 말했고 지금도 이와 같이 말한다.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 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가 아홉 가지 경우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puggalasuttam (AN 9.9-사람 경)

9.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아홉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아홉인가?”

아라한, 아라한과를 실현하기 위해 길을 닦는 자, 불환자, 불환과를 실현하기 위해 길을 닦는 자, 일래자, 일래과를 실현하기 위해 길을 닦는 자, 예류자, 예류과를 실현하기 위해 닦는 자, 범부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아홉 부류의 사람이 있다.”

 

Āhuneyya-sutta (AN 9.10-공양받아 마땅함 경)
10. “비구들이여, 아홉 사람은 공양 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무엇이 아홉인가?

아라한, 아라한과를 실현하기 위해 닦는 자, 불환자, 불환과를 실현하기 위해 닦는 자, 일래자, 일래과를 실현하기 위해 닦는 자, 예류자, 예류과를 실현하기 위해 닦는 자, 종성(種姓)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아홉 사람은 공양 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1)종성(種姓, gotrabhū) : 성인의 반열에 드는 순간의 마음, 또는 열반으로 전향하는 첫 번째 마음이다. 즉 첫 번째 성자의 경지인 예류도를 얻기 바로 전 찰나에 범부의 이름을 버리고 성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찰나를 종성이라고 부른다. 2) 禪의 증득의 경우, 이것은 욕계의 ‘범부 혈통’에 속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드디어 고귀한 마음의 혈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종성이라는 이름을 얻고, 첫 번째 도인 예류도의 경우, 이 순간에 범부의 혈통에서 성자의 혈통으로 바뀌기 때문에 고뜨라부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이 순간의 마음을 종성의 지혜(gotrabhū-ñāṇa)라 한다. 또 이 종성의 지혜는 수행자의 지혜가 도(magga)를 얻을 만큼 충분히 무르익었다는 뜻에서 성숙의 지혜라 한다.3) '보통사람(puthujjana)'에 상대되는 의미의 '거룩한 이'를 가리킨다. PsA 에는 '극복한다면 곧 종성을 지닌 이라는 것이다. 보통사람이 지니는 품성을 극복한 까닭에 종성을 지닌 이라 말한다. 뛰어든다면 종성을 지닌 이라는 것이다. 거룩한 이들이 지닌 품성을 계발한 까닭에 종성을 지닌 이라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1장 깨달음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