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아홉의 모음 - 5. 일반 품(Samanna-vagga. A9.42-51)

실론섬 2014. 8. 27. 18:29

 

제5장 일반 품 Samanna-vagga (AN 9.42-51)

 

sambādhasuttaṃ (AN 9.42-속박 경)

42. 한 때에 아난다 존자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우다이 존자가 아난자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다이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신의 아들 빤짤라짠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를 향해 나아갔으니, 광대한 지혜를 얻었음이라.

선(禪)에 의해 깨달은 세존은 벗어남에 앞장 선 성자이시다.'

 

도반이여, 무엇이 속박이고, 무엇이 속박 가운데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속박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다섯입니까?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쾌락을 자극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쾌락을 자극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이 속박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소멸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기쁨이 소멸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줄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평정과 즐거움이 소멸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물질에 대한 인식이 소멸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공무변처의 인식이 소멸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 도반여,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식무변처의 인식이 소멸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무소유처의 인식이 소멸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도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짐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속박이 있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속박입니까? 거기에 비상비비상처의 인식이 소멸하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속박입니다.

 

다시,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봄에 의해서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속박 가운데에서 자유로 나아감이라고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지지 않음에 의해 말씀하셨습니다.”

 

*단계지어짐(pariyayena)'라는 것은 한 가지 이유에 의해서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감감적 쾌락의 속박이 없다는 [한 가지] 이유로 초선을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말하는 것일 뿐, 상수멸에 이르는 모든 속박이 초선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초선에서 증득할 수 있는것만 성취하고, 2선 3선 .. 순으로 단계적으로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단계지어짐(단계적 증득)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2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단계적 증득을 밝히고 있다.

 

kāyasakkhīsuttam (AN 9.43-몸으로 체험한 자 경) 

43.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합니다. 도반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으로 체험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몸으로 체험한 자'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paññāvimuttasuttaṃ (AN 9.44-혜해탈자 경)
44. “도반이여,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자[慧解脫],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자’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지혜로 그것을 철저히 압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들이 다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그것을 철저히 압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혜해탈자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ubhatobhāgavimuttasuttaṃ (AN 9.45-양면해탈자 경)
45. “도반이여, ‘양면으로 해탈한 자(兩面解脫),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를 지닌, 분리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뭅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지혜로 그것을 철저히 압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양면으로 해탈한 자'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들이 다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가 있든지 간에, 그 방법대로 그 경지를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지혜로 그것을 철저히 압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단계 지어지지 않은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sandiṭṭhikadhammasuttaṃ (AN 9.46-스스로 보이는 법 경)
46. “도반이여, ‘스스로 보이는 법, 스스로 보이는 법’이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이는 법'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를 지닌, 분리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스스로 보이는 법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들이 다합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스스로 보이는 법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sandiṭṭhikanibbānasuttaṃ (AN 9.47-스스로 보이는 열반 경) 

47. “도반이여, ‘스스로 보이는 열반, 스스로 보이는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를 지닌, 분리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스스로 보이는 열반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를 다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스스로 보이는 열반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nibbānasuttam (AN 9.48-열반 경)

48. “도반이여, ‘열반,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열반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를 다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열반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parinibbānasuttam (AN 9.49-반열반 경)

49. “도반이여, ‘반열반, 반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반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를 지닌, 분리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반열반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를 다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반열반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tadaṅganibbānasuttaṃ (AN 9.50-그 요소만큼의 열반경)

50. “도반이여, ‘그 요소만큼의 열반, 그 요소만큼의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 그 요소만큼의 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를 지닌, 분리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그 요소만큼의 열반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를 다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그 요소만큼의  열반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diṭṭhadhammikasuttam (AN 9.51-지금·여기 경)
51. “도반이여, ‘지금.여기에서의 열반, 지금.여기에서의 열반’이라고 합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여기에서의 열반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를 지닌, 분리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뭅니다. 이만큼도, 도반이여, 지금.여기에서의 열반인데, 단계 지어졌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도반이여, 비구는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봄에 의해 번뇌를 다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지금.여기에서의 열반인데, 단계 지어지지 않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제5장 일반 품이 끝났다.


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