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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주제 - 아누룻다 상윳따(Anuruddha-saṁyutta) - 제1장 한적한 곳 품(SN52:1-SN52:10. Rahogata-vagga)

실론섬 2014. 8. 29. 18:17

제52주제(S52) 아누룻다 상윳따 
Anuruddha-saṁyutta

제1장 한적한 곳 품
Rahogata-vagga (SN 52.1-10)

 

paṭhamarahogatasuttaṃ (SN 52.1-한적한 곳에 감 경1)
89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한적한 곳에 가서(외딴곳에 가서) 머무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런 마음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사념처.四念處))을 잃는 자는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성스러운 길을 잃는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확고한 자는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성스러운 길이 확실해진다.’라고.

 

그때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마음으로 아누룻다 존자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 뒤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빠른 시간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아누룻다 존자 앞에 나타났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누룻다여, 얼마만큼 비구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확고합니까?”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안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몸에서 일어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에서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 이 둘을 다 버린 뒤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뭅니다.

 

안으로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느낌에서 일어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느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에서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느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 이 둘을 다 버린 뒤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뭅니다.   

 

안으로 마음(心)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에서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 그는 거기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뭅니다.

 

안으로 법(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으로 법에서 일어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밖으로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에서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만약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 그는 거기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 비구는 사념처에 확고합니다.”

 

dutiyarahogatasuttaṃ (SN 52.2-한적한 곳에 감 경2)
90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머무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런 마음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사념처.四念處))을 잃는 자는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성스러운 길을 잃는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확고한 자는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성스러운 길이 확실해진다.’라고.  

 

그때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마음으로 아누룻다 존자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 뒤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빠른 시간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아누룻다 존자 앞에 나타났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누룻다여, 얼마만큼 비구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확고합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안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으로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밖으로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도반이여, 이만큼 비구는 사념처에 확고합니다.”

 

sutanusuttaṃ (SN 52.3-수따나 경)
901.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에서 수따누 강의 언덕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아누룻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들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어떤 법들을 닦고 많이 익혀서 크나큰 완전한 지혜를 얻었습니까?”

 

*크나큰 완전한 지혜(큰 실다운 지혜의 상태)를 옮긴 원어는 mahābhiññata 이다. 이것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아누룯다 존자의 경우에만 나타나는 용어인데, 아라한을 성취한 상태를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특히,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스승의 도움으로 큰 실다운 지혜의 상태를 얻었고, 아누룻다 존자는 사념처를 닦고 많이 행하여 큰 완전한 지혜의 상태를 얻었다고 나타난다.

 

“도반들이여, 나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혀서 크나큰 완전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나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혀서 크나큰 완전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혔기 때문에 저열한 법은 저열하다고 완전한 지혜로 알았습니다. 중간의 법은 중간이라고 완전한 지혜로 알았습니다. 수승한 법은 수승하다고 완전한 지혜로 알았습니다.”

 

pathamakaṇṭakīsuttam (SN 52.4-가시덤불 숲 경1) 
90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사께따에서 가시덤불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아누룻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누룻다여, 유학(有學)인 비구는 어떤 법들에 들어 머물러야 합니까?”

 

“도반이여, 유학인 비구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들어서 머물러야 합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도반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마음챙김(念)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도반이여,유학인 비구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들어 머물러야 합니다.”

 

dutiyakaṇṭakīsuttam (SN 52.5-가시덤불 숲 경2) 
90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는 사께따에서 가시덤불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아누룻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누룻다여, 무학(無學)인 비구는 어떤 법들에 들어 머물러야 합니까?”

 

“도반이여, 무학인 비구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들어서 머물러야 합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도반이여, 무학이 비구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들어 머물러야 합니다.”

 

tatiyakaṇṭakīsuttam (SN 52.6-가시덤불 숲 경3) 
90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는 사께따에서 가시덤불 숲에 머물렀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아누룻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는 어떤 법들을 닦고 많이 익혀서 크나큰 완전한 지혜를 얻었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혀서 완전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도반이여, 여기 나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도반이여,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혀서 완전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taṇhākkhayasuttam (SN 52.7-갈애의 부서짐 경)  
90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아누룻다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아누룻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아누룻다 존자여'라고. 아누룻다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히면 갈애의 부서짐으로 인도합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도반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히면 갈애의 부서짐으로 인도합니다.”

 

salaḷāgārasuttam (SN 52.8-살랄라 나무 집 경)  
90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에서 살랄라 나무로 만든 집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아누룻다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아누룻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아누룻다 존자여'라고. 아누룻다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강가 강은 동쪽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많은 무리들이 괭이와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우리는 이 강가 강을 서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강가 강을 서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아누룻다 존자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도반이여, 동쪽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서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많은 무리의 사람들은 분명 지치고 고생만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도반들이여, 비구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많이 익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나 대신들이나 친구들이나 동료들이나 친지들이나 혈육들이 그 비구로 하여금 재물을 가져가도록 초청하여 말하기를, ‘이리 오시오. 왜 이 가사가 그대를 짓누르도록 내버려둡니까? 왜 머리를 깎고 발우를 들고 돌아다닙니까? 오십시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으시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반들이여, 그 비구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많이 익히고 있기 때문에 그가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란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반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많이 익힙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많이 익힙니다.”

 

ambapālivanasuttaṃ (SN 52.9-암바빨리 숲 경)

907.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는 웨살리의 암바빨리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아누룻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누룻다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아누룻다 존자는 요즘 어떤 머묾으로 많이 머뭅십니까?”

“도반이여, 요즘 나는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많이 머뭅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여기, 도반이여, 나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도반이여, 요즘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많이 머뭅니다. 도반이여여, 아라한이고,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비구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많이 머뭅니다.”

 

"우리가 아누룻다 존자의 면전에서 고귀한 말씀을 들은 것은, 도반이여, 우리에게 참으로 이득이고, 도반이여, 우리에게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bāḷhagilāyasuttam (SN 52.10-중병 경) 
90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에서 장님들의 숲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아누룻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가 어떤 머묾으로 머물 때 이미 일어난 몸의 괴로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합니까?”

“도반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머물 때 이미 일어난 몸의 괴로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합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뭅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머물 때 이미 일어난 몸의 괴로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합니다.”

 

 

 

제1장 한적한 곳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