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마하박가(mahavagga) - 세 번째 품

실론섬 2014. 9. 9. 13:55

세 번째 품

 

56. ['이들 제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고 새겨들은 바, 그것에 관해 알아차리는 혜(慧)로서 들음을 통해 이루어진 지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인가?

하나의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닿음(觸.촉)으로서 유루인바, 집착을 낳는 것이다. 두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정신(名)과 물질(色)이다. 세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세 가지 느낌이다. 네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네 가지 자양분이다. 다섯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다(五取蘊.오취온). 여섯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여섯 가지 내부의 터전(육내입처). 일곱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의식의 일곱가지 머무름이다. 여덟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여덟 가지 세간법이다. 아홉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중생들의 아홉 가지 머무름이다. 열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즉 열 가지 터전이다.

주) 1) '완전히 알아야 한다(parinneyya)'는 ;완전한 앎(parinna)'의 미래수동분사형이다. 완전한 앎이란 번뇌를 소멸한 상태에서 지니는 앎을 말한다. SN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비구들이여, 탐냄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것을 완전한 앎이라 한다
(yo bhikkhave ra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ayam vuccati bhikkhave parinnati)"

2) '의식의 7가지 머무름(satta vinnanatthitiyo)'이란 유정들의 의식이 머무는 양태를 일곱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곧 중생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세계가 각각 다름을 의미한다. ①여러 몸과 각기 다른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anattakaya nanattasannino vinnanatthiti) ②몸은 여럿이되 동일한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 nanattakaya ekattasannino vinnanatthiti) ③몸은 동일하되 각기 다른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ekattakaya nanattasannino  vinnanatthiti) ④동일한 몸과 동일한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ekattakaya ekattasannino vinnanatthiti) ⑤공간에 걸림이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akasanancayatanupaga vinnanattihiti) ⑥의식에 걸림이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vinnanancayatanupaga vinnanatthiti) ⑦아무것도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akincannayatanupaga vinnanatthiti)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3) '여덟 가지 세간 법(attha lokadhamma)'이란 얻음(labha. 얻지 못함(alabha). 명예(yasa). 불명예(ayasa). 비난(ninda). 칭찬(pasamsa). 즐거움(sukha). 괴로움(dukkha)의 여덟 가지를 말한다. 
4) '중생들의 아홉 가지 머무름(nava sattavasa)'이란 앞서의 '일곱 가지 의식의 머무름'에 덧붙여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evasannanasannayatanupaga vinnanatthiti)'과 '지각이 없는 중생(asannasatta)'둘을 더한 것을 말한다. 
5) '열 가지 터전(dasayatanani. 십입처.十入處)'이란 눈의 터전(cakkhayatana.안처.眼處), 시각대상의 터전(rupayatana.색처.色處), 귀의 터전(sotayatana), 소리의 터전(saddayatana), 코의 터전(ghanayatana), 냄새의 터전(gandhayatana), 혀의 터전(jivhayatana), 맛의 터전(rasayatana), 몸의 터전(kayayatana), 감촉의 터전(photthabbayatana)이라고 하는 열 가지 터전을 말한다. 

 

57. 비구들이여, 일체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완전히 알아야 할 일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눈(眼)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시각대상(色)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눈에 의한 식별(안식.眼識)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눈에 의한 닿음(안촉.眼觸)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눈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귀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소리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귀에 의한 닿음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귀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코를 ··· 냄새를 ··· 혀를 ··· 맛을 ··· 몸을 ··· 감촉을 ··· 마음을 ··· 마음현상(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마음에 의한 식별(의식.意識)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마음에 의한 닿음(안촉.意觸)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58. 물질적 요소(色)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감수작용(느낌. 受)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지각작용(想)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형성작용(行)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식별작용(識)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눈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귀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코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혀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몸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마음현상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늙음과 죽음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 죽지 않음에 도달한 열반을 끝이라는 의미로 완전히 알아야 한다. 제법을 위하여 정진할 때, 바로 그러한 제법을 얻게 된다. 이렇게 하여 그러한 제법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59.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으로부터의] 떠남(출리.出離)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떠남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성내지 않음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성내지 않음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빛에 대한 지각(광명상)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빛에 대한 지각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산란하지 않음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산란하지 않음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법에 대한 결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법의 결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지혜를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지혜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환희를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환희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60. 첫 번째 선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첫 번째 선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두 번째 선정을 ··· 세 번째 선정을 ··· 네 번째 선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네 번째 선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공무변처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식무변처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선정(무소유처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아무것도 없는 선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비상비비상처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61-1.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61-2. 다해 없어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다해 없어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공성(空性)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62. 탁월한 혜(慧)로써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탁월한 혜로써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법(여실지견. 如實智見)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의 공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잘못됨에 대해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잘못됨에 대해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돌이켜 관찰하여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돌이켜 관찰하며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물러나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물러나 따라가며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63.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예류도)를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일래도)를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 경지(불환도)를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 경지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아라한도)를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러한 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무릇 제법을 얻기 위하여 정진할 때, 바로 그와 같이 얻어지는 제법이 있다. 이와 같이 그러한 제법을 완전히 알게 되고 건너게 된다. 그와 같이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智)이며, 알아차린다는 의미에서 혜(慧)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이들 제법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고 새겨 들은 바, 그것에 관해 알아차리는 혜로서 들음을 통해 이루어진 지혜가 있다]고.

 

64. ['이들 제법을 끊어야(斷.단)한다'고 새겨들은 바, 그것에 관해 알아차리는 혜로서 들음을 통해 이루어진 지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인가?

하나의 법을 끊어야 한다. 즉 아만이다. 두 법을 끊어야 한다. 즉 무명과 있음(有.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세 법을 끊어야 한다. 즉 세 가지 갈애이다. 네 법을 끊어야 한다. 즉 네 가지 거친 흐름(폭류)이다. 다섯 법을 끊어야 한다. 즉 다섯 가지 장애이다. 여섯 법을 끊어야 한다. 즉 여섯 가지 갈애의 대상이다. 일곱 법을 끊어야 한다. 즉 일곱 가지 잠재적 성향이다. 여덟 법을 끊어야 한다. 즉 여덟가지 삿됨이다. 아홉의 법을 끊어야 한다. 즉 아홉 가지 갈애의 뿌리이다. 열의 법을 끊어야 한다. 즉 열 가지 삿됨이다.

주) 1) 끊음(pahana. 斷)의 미래수동분사형인 '끊어야 한다(pahatabba)에 대한 의미는 원래는 '내버려 두다, 버리다, 떠나다'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이다. 원래는 산스끄리뜨어의 동사원형 'pravha'와 동일한 기원을 둔 말로, vha 는 '내버려 두다, 버리다, 떠나 다'의 의미를 지닌다.  
pahana 를 단(斷)이라는 말 대신에 사단(捨斷)이라고 번역하는데, 여기에서 사(捨. 버릴 사)가 바로 그와 같은 의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접두어인 pra에는 강조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pra가 첨가됨으로싸 '버리다, 포기하다'라고 하는 원래적 의미가 '을 끊다, 을 제거하다'라고 하는 의미로까지 강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끊음'이라는 번역어는 원어에 비해 대상에 대한 주관적 의지가 지나치게 부각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의 쓰임을 살펴야 할 것이다. 본 장의 66절에 나오는 '무릇 끊긴 제법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포기되 제법이 있다는 것이다 (ye ye dhnamma pahina honti te te dhamma  pariccatta honti)'는 구절은 'pahana'라는 말의 의미가 '끊음'이라기 보다는 '버림'이나 '포기'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케하는 대목이다. 또한 pahana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할 때 본 장의 66절 등에 나온 "비구들이여, 눈을 끊어야 한다. 시각대상을 끊어야 한다. 눈에 의한 식별을 끊어야 한다(cakkhum bhikkhave pahatabbam, rupa pahatabba, cakkhuvinnanam pahatabbam)"등의 구절에 대해서도 무리 없는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2) 세 가지 갈애(tisso tanha)란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kamatanha), 있음에 대한 갈애(존재에 대한 갈애.bhavatanha), 있지 않음에 대한 갈애(무존재에 대한 갈애.vibhavatanha)의 셋을 말한다. 

3) 네 가지 거친 흐름(cattaro ogha)이란 윤회의 바다에서 생사가 거듭되는 것을 '거센 물결의 흐름(폭류)'에 비유한 것이다. '감각적 쾌락에 의한 거친 흐름(kamogha), 있음에 의한 거친 흐름(bhavogha), 견해에 의한 거친 흐름(ditthogha),무명에 의한 거친 흐름(avijjogho)'의 넷을 말한다.

4) 다섯 가지 장애(panca nivaranani)란 '감각적 쾌락(kama), 성냄(byapada), 혼침과 졸음(thinamiddha), 들뜸(uddhaccakukkucca), 의심(vidikiccha)'의 다섯을 말한다. 

5) 여섯 가지 갈애의 대상(cha tanhakaya)란 갈애의 대상으로서 '시각대상으로 이루어진 갈애의 대상(rupatanha), 소리로 이루어진 갈애의 대상(saddatanha), 냄새로 이루어진 갈애의 대상(gandhatanha), 맛으로 이루어진 갈애의 대상(rasatanha), 감촉으로 이루어진 갈애의 대상(photthabbatanha), 마음현상으로 이루어진 갈애의 대상(dhammatanha)의 여섯을 말한다.

6) 일곱 가지 잠재적 성향(sattanusaya)란 중생들이 내면적으로 지니는 일곱 가지 잠재적 성향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각적 쾌락의 잠재적 성향(kamaraganusaya), 성냄의 잠재적 성향(patighanusaya), 교만의 잠재적 성향(mananusaya), 견해의 잠재적 성향(ditthanusaya), 의심의 잠재적 성향(vicikicchanusaya),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bhavaraganusaya), 무명의 잠재적 성향(avijjanusaya)' 등이다. 

7) 여덟 가지 삿됨이란 곧 여덟의 올바른 길(팔정도)에 반대되는 것으로 곧 '삿된 견해(micchaditthi), 삿된 사유(micchasankappa), 삿된 말(micchavaca), 삿된 행위(micchakammanta), 삿된 삶(micchaajiva), 삿된 정진(micchavayama), 삿된 마음챙김(micchasati), 삿된 삼매(micchasamadhi)'를 말한다.

8) 아홉 가지 갈애의 뿌리(nava tanhamulaka)란 ①갈애(tanha) ②갈애를 인연으로 한 구함(tanham paticca pariyuesana) ③구함을 인연으로 한 얻음(pariyesanam paticca labha) ④얻음을 인연으로 한 분별(labham paticca vinicchaya) ⑤분별을 인연으로 한 욕심과 탐냄(vinicchayam paticca chandaraga) ⑥욕심과 탐냄을 인연으로 한 집착(chandaragam paticca ajjhosana) ⑦집착을 인연으로 한 간직(ajjhosanam paticca pariggaha) ⑧간직을 인연으로 한 인색(pariggaham paticca macchariya) ⑨인색을 인연으로 한 지킴(macchariyam paticca arakkha)' 등을 말한다. 이들 아홉 가지 갈애의 뿌리에 수반되어 갖가지 인간사의 다툼과 죄와 허망한 말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9) 열 가지 삿됨(dasa micchatta)이란 앞서의 여덟 가지 삿됨에 추가되어 '삿된 지혜(micchanana)'와 '삿된 해탈(icchavimutti)'의 둘을 더한 것이다.

 

65. 끊음에 둘이 있다. 단절에 의한 끊음과 그침에 의한 끊음이다. 단절에 의한 끊음은 출세간의 다해 없어짐으로 나아감(道)을 닦을 때의 것이며, 그침에 의한 끊음은 성취(果)의 순간에 속한다. 끊음에 셋이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으로부터의 떠남(출리)으로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의 벗어남과,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는 것으로서, 물질적 현상으로부터의 벗어남,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것과 유위와 연(緣)하여 생겨난 것의 소멸로서의 벗어남이다. 떠남의 획득에서 감각적 쾌락을 끊게 되고 포기하게 된다.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의 획득에서 물질적 현상을 끊게 되고 포기하게 된다. 소멸의 획득에서 형성력을 끊게 되고 포기하게 된다. 끊음에 넷이 있다. 완전한 앎에 의한 꿰뚫음으로 꿰뚫어 괴로움에 관한 진리를 끊는다. 끊음에 의한 꿰뚫으로 꿰뚫어 일어남에 관한 진리를 끊는다. 겪음을 통한 앎에 의한  꿰뚫음으로 꿰뚫어 소멸에 관한 진리를 끊는다. 닦음에 의한 꿰뚫음으로 꿰뚫어 길의 진리를 끊는다. 끊음에 다섯이 있다 제거를 통한 끊음과 결정에 의한 끊음과 단절에 의한 끊음과 그침에 의한 끊음과 벗어남에 의한 끊음이다. 제거를 통한 끊음은 다섯 장애를 끊기 위하여 첫 번째 선정을 닦을 때의 것이다. 결정에 의한 끊음은 사악한 견해를 끊기 위하여 결택에 의한 삼매를 닦을 때의 것이다. 단절에 의한 끊음은 출세간의 다해 없어짐으로 나아감을 닦을 때의 것이다. 그침에 의한 끊음은 성취의 순간에 속한다. 벗어남에 의한 끊음은 소멸.열반이다.  
주) 1) '단절에 의한 끊음(samuccheda pahana)'와 관련하여 Vism 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거룩한 나아감(도)의 지혜에 의해 결박등의 제법이 다시는 그와 같이 발생하지 않는 것, 바로 이와 같은 끊음을 일컬어 단절에 의한 끊음이라 한다."

2) '제거를 통한 끊음(vikkhambhanappahana)'과 관련하여 Vsim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그러 저러한 세간의 선정에 의해 다섯 장애등 장애의 법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을 제거를 통한 끊음이라고 한다."

3) '결정에 의한 끊음(tadanga pahana)'에 관련하여 Vsim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러 저러한 위빠사나(觀)의 요소들로 이루어진 상대적인 힘을 지닌 여러 지혜에 의해, 그러 저러한 제거되어야 할 법을 제거하는 그것을 결정에 의한 끊음이라 한다."Vsim 에 따르면 '결정에 의한 끊음'은 다음과 같은 18가지 위빠사나의 수행을 그 내용으로 한다.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항상됨에 대한 지각을,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즐거움에 대한 지각을,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이해 나라는 지각을,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즐거워 함을,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탐냄을, 소멸으르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일어남을,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취착을, 다해 없어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두려움에 대한 지각을,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지속하는 힘을, 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견고함에 대한 지각을,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드러난 모습을,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바램을,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편향됨을, 탁월한 혜로써 법을 보는 법에 이해 견고함의 집착에 의한 편향됨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법에 의해 어리석음에 의한 편향됨을, 잘못됨에 대해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집착에 의한 편향됨을, 돌이켜 관찰하여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돌이켜 관찰함이 결여됨을, 물러나 따라가며 보는 법에 의해 매임에 의한 편향됨을 제거하는 그것이 곧 결정에 의한 끊음이다."

66-1. 비구들이여, 일체를 끊어야 한다. 비구들이여, 끊어야 할 일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눈(眼)을 끊어야 한다. 시각대상(色)을 끊어야 한다. 눈에 의한 식별(眼識)을 끊어야 한다. 눈에 의한 닿음(眼觸)을 끊어야 한다. 이러한 눈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거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끊어야 한다. 
귀를 끊어야 한다. 소리를 끊어야 한다. 귀에 의한 식별(耳識)을 끊어야 한다. 귀에 의한 닿음(耳觸)을 끊어야 한다. 이러한 귀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거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끊어야 한다.  
코를 끊어야 한다. 냄새를 끊어야 한다. 코에 의한 식별(鼻識)을 끊어야 한다. 코에 의한 닿음(鼻觸)을 끊어야 한다. 이러한 코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거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끊어야 한다.  
혀를 끊어야 한다. 맛을 끊어야 한다. 혀에 의한 식별(舌識)을 끊어야 한다. 코에 의한 닿음(舌觸)을 끊어야 한다. 이러한 코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거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끊어야 한다.  
몸을 끊어야 한다. 감촉을 끊어야 한다. 몸에 의한 식별(身識)을 끊어야 한다. 몸에 의한 닿음(身觸)을 끊어야 한다. 이러한 몸에 의한 닿음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거지도 않은 느낌(受), 바로 그것을 끊어야 한다.  
마음을 끊어야 한다. 마음현상을 끊어야 한다. 마음에 의한 식별(意識)을 끊어야 한다. 마음에 의한 닿음(意觸)을 끊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에 의한 닿음을 연하여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바로 그것을 끊어야 한다. 

66-2. 물질적 요소(色)를 보는 자는 끊는다. 감수작용을 보는 자는 끊는다. 지각작용을 보는 자는 끊는다. 형성작용을 보는 자는 끊는다. 식별작용을 보는 자는 끊는다. 눈을 ··· 귀를 ··· 코를 ··· 혀를 ··· 몸을 ··· 마음을 ··· 늙음과 죽음을 ··· 죽지 않음에 도달한 열반을 끝의 의미로 보면서 끊는다. 무릇 끊긴 제법이 있다는 것은 곧 포기된 제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智)이며, 알아차린다는 의미에서 혜(慧)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이들 제법을 끊어야 한다'고 새겨들은 바, 그것에 관해 알아차리는 혜로서 들음을 통해 이루어진 지혜가 있다]고. 



세 번째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