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업보에 따른 윤회를 가르키는 종교이다. 윤회는 우리가 지은 업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업은 자업자득과 인과응보라는 두 가지 큰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사상이다.
윤회는 언뜻 쉬운 교리이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생각만큼 쉬운 교리가 아니다. 더우기 무아를 주장하는 불교에서 윤회하는 그 주체가 누구인지를 놓고 심심챦게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우리들이 유전(流轉)하며 윤회하게끔 하는 업의 과보와 그 과보가 어떤식으로 우리들 윤회속에서 나타나 개개인의 삶을 결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불자들은 윤회와 업보를 믿는다고 쉽게 이야기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불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중에 과연 몇명이나 업보나 윤회를 철저히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를까? 불자들 중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이 과거의 업보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윤회나 업보를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잘못 믿으면 쉽게 운명론이나 숙명론등에 빠진다. 하지만 윤회는 절대로 숙명론이나 운명론이 아니다. 오히려 개개인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켜 주는 교리이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들 스스로는 업의 주체자이면서 상속자라고 하고 또한 내가 지은 업에서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엄중하게 훈계하고 있다. 설사 아라한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지은 과거의 업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업보의 가르침이다. 경전은 우리들 중생들의 삶의 모습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중생
②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중생
③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중생
④ 빛에서 빛으로 가는 중생
우리들은 모두 얼굴이 다르듯이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생활한다. 그런 각각의 생활환경 속에서 어떤이들은 '오늘은 잔인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들 것이지만 하지만 모레는 아름다울 것이다고 믿고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스스로를 망치기도 하며, 어떤이들은 자비심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들은 지금 위의 네 가지 삶의 방식중에서 어떤 방식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지 늘 되돌아 볼 일이다.
윤회란 시작도 알 수 없는 긴긴 세월의 과거와 그리고 긴긴 세월의 내세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결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경전은 중생들이 윤회를 하면서 목이 잘리고 흘린 피가 갠지스의 강보다 더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또한 흘린 피도 갠지스 강을 채우고도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들은 늘 현재만 생각할 뿐 과거세나 내세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불교를 믿고 윤회를 믿는 불자라고 하더라도 현실에만 집착하고 과거세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간다. 항상 단멸론이 불교만큼 우세한 세력을 차지하는 현실은 그만큼 중생들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과 갈애가 얼마나 큰 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불교 입장에서 보면 세월호의 희생자들은 현세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업보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생각하는 모든 급작스럽게 당하는 모든 죽음들도 마찬가지이다. 중생들의 세간사에는 죽음만이 있는게 아니다. 우울. 불쾌. 탄식. 비참함 등등 온갖 괴로움이 함께 움직인다. 모두가 스스로의 지은 업보의 모습들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내가 사는 현세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과거세나 미래세를 생각하면서 사는 중생들은 극히 드물다. 그러기에 현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집착하고 갈애를 일으킨다. 하지만 윤회라는 세계에서 보면 그건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일 뿐이며 또한 현세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차피 해탈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유전하며 윤회를 거듭하며 흘러갈 존재일 뿐이다.
'윤회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글에서도 밝혀져 있지만 우리들은 윤회라는 엄연한 현실을 하루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윤회의 가르침이 진실로 받아들여질 때 세월호 사건도 그리고 수많은 세간사의 괴로움과 죽음들도 불교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업보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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