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마하박가(mahavagga) - 5. 해탈에 관한 논의 - 첫 번째 품

실론섬 2014. 9. 11. 15:16

해탈에 관한 논의 - 첫 번째 품

 

[빠리뿐나니다나(paripunnanidan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해탈이 있다. 셋이란 무엇인가? 공성에 의한 해탈,드러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해탈(無因相解脫), 바램을 지니지 않는 해탈(無願解脫)이다. 비구들이여, 이들이 세 가지 해탈이다. 

다시 68가지의 해탈이 있다.

공성에 의한 해탈, 드러난 모습을 지니지 않는 해탈, 바램을 지니지 안ㄶ은 해탈,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내 가지 해탈,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 안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 밖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 양쪽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 '빛깔의 영상을 지니고서 빛깔을 본다'고 할 때의 해탈, '안으로 빛깔에 대한 지각을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밖으로 빛깔을 본다'고 할 때의 해탈, '극히 청정하다'고 할 때의 해탈, 공간에 걸림이 없는 해탈,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 아무것도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에 의한 해탈,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선정에 의한 해탈, 일시적인 해탈, 지속적인 해탈, 시간에 따르는 해탈, 시간에 따르지 않는 해탈, 동요됨이 있는 해탈, 동요됨이 없는 해탈, 세간에 속한 해탈, 출세간에 속한 해탈, 루(번뇌)가 있는 해탈, 루가 다한 해탈, 저열함을 지닌 해탈, 저열함을 지니지 않은 해탈, 저열함과 저열하지 않음을 넘어선 해탈, 바램을 지닌 해탈, 바램을 지니지 않은 해탈, 바램을 그친 해탈, 속박을 지닌 해탈, 속박을 벗어난 해탈, 하나됨을 이룬 해탈, 분산된 해탈, 지각으로부터의 해탈, 지혜에 의한 해탈, 청량함을 얻은 해탈, 선정에 의한 해탈,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주)
1. '바램을 지니지 않은 해탈(appanihito vmokkho)'이란 앞에 나온 '세 가지 해탈'에서도 이미 열거된 바가 있다. 여기에서는 단지 '바램을 지닌 해탈(panihito vmokkho)'과 짝을 이루는 해탈을 열거하기 위한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2. 본 절의 도입부에서는 66가지 해탈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열거되고 있는 해탈의 수는 도합 48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ㅣ해탈'에 속한 나머지 3개씩 추가하면 도합 75가지 해탈에 이른다. 따라서 이 대목은 숫자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 공성에 의한 해탈(空性解脫)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어떤 비구가 있어 아란냐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비어있는 곳에 가서 '이것은 나라든가 나의 것이라는 면에서 공(空)하다'고 돌이켜 관찰한다. '그와 같이 거기에서 편향됨을 짓지 않는다'고 하는 공성에 의한 해탈이 있다. 이것이 공성에 의한 해탈이다.

 

드러난 모습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어떠한 비구가 있어 아란냐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비어있는 곳에 가서, ''나의 것이라는 면에서 공(空)하다'고 돌이켜 관찰한다. '그와 같이 거리에서 드러난 모습(因相)을 짓지 않는다'고 하는 드러난 모습을 지니지 않음에 의한 해탈이 있다. 이것이 드러난 모습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다.

 

바램을 지니지 않은 해탈(無願解脫)이라 무엇인가?
이 가르침 안에서 비구는 아란냐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비어있는 곳에 가서, '나의 것이라는 면에서 공(空)하다'고 돌이켜 관찰한다. '그와 같이 거기에서 바램을 짓지 않는다'고 하는 바램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 있다. 이것이 바램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다.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선정이 있다. 이것이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이다.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선정(四無色定사무색정)이다. 이것이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이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거룩한 길(사성제)이다. 이것이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해탈이다.

 

3-1.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선정은 다섯 장애로부터 벗어난다. 두 번째 선정은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로부터 벗어난다. 세 번째 선정은 기쁨으로부터 벗어난다. 네 번째 선정은 즐거움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이것이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이다.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공무변처정)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想), 장애에 대한 지각, 잡다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식무변처정)은 공간에 걸림이 없음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다. 아무것도 없는 선정은(무소유처정) 의식에 걸림이 없음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비상비비상처정)은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다. 이것이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이다.

 

3-2.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예류도)는 몸이 있다는 견해(有身見), 의심, 삿된 계에 대한 고집(계금취), 견해의 잠재적 성향, 의심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따르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난다.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일래도)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따르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난다. 

돌아오지 않음에 나가는 경지(불환도)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따르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난다.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아라한도)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따르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난다. 이것이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의한 네 가지 해탈이다. 

 

4.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선정을 얻는데에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와 기쁨과 즐거움과 마음의 하나됨이 있다. 두 번째 선정을 얻는데에 ... 세번째 선정을 얻는데에 ... 네번째 선정을 얻는데에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와 기쁨과 즐거움과 마음의 하나됨이 있다. 이것이 안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이다.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을 얻는데에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와 기쁨과 즐거움과 마음의 하나됨이 있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을 얻는데에 ... 아무것도 없는 선정을 얻는데에 ...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닌 없는 것도 아닌 선정을 얻는데에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와 기쁨과 즐거움과 마음의 하나됨이 있다. 이것이 밖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이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를 얻는데에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법이 있다.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를 얻는데에 ...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얻는데에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를 얻는데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법이 있다. 이것이 양쪽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르는 네 가지 해탈이다.

 

5. 안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異熟)이다. 두 번째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異熟)이다. 세 번째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異熟)이다. 네 번째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異熟)이다. 이것이 안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이다. 

밖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이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이다. 아무것도 없는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이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이다. 이것이 밖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이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이란 무엇인가?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예류도)에 의한 흐름에 들어선 경지(예류과)이다.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일래도)에 의한 한번 돌아 옴에 들어선 경지(일래과)이다.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 경지(불환도)에 의한 돌아오지 않음에 들서선 경지(불환과)이다.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아라한도)에 의한 아라한에 들어 선 경지(아라한과)이다. 이것이 양쪽으로부터 벗어나 그치는 네 가지 해탈이다. 


6. '빛깔의 영상을 지니고서 빛깔을 본다'고 할 때의 해탈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어떠한 사람이 있어 내부적으로 각각의 푸른색 영상에 대해 마음을 내어(作意) 푸른색의 지각을 얻는다. 그는 영상(相)을 잘 지니고, 잘 유지하고, 잘 안주케 한다. 그는 그 영상을 잘 지니고서, 잘 유지하고서, 잘 안주케 하고서, 외부의 푸른색 영상에 대해 마음을 엮어 푸른색의 지각을 얻는다. 그는 영상을 잘 지니고, 잘 유지하고, 잘 안주케 한다. 그는 그 영상을 잘 지니고서, 잘 유지하고서, 잘 안주케 하고서,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한다. 그것은 이와 같다. '내부와 외부 둘 다 이러한 빛깔이다'라는 색깔(色)의 지각(想)을 지닌다. 여기에 어떠한 사람이 있어 내부적으로 각각의 노란색 영상에 대해 ... 붉은색 영상에 대해 ... 흰색의 영상에 대해 마음을 내어 흰색의 지각을 얻는다. 그는 그는 영상(相)을 잘 지니고, 잘 유지하고, 잘 안주케 한다. 그는 그 영상을 잘 지니고서, 잘 유지하고서, 잘 안주케 하고서, 외부의 흰색 영상에 대해 마음을 엮어 흰색의 지각을 얻는다. 그는 영상을 잘 지니고, 잘 유지하고, 잘 안주케 한다. 그는 그 영상을 잘 지니고서, 잘 유지하고서, 잘 안주케 하고서,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한다. 그것은 이와 같다. '내부와 외부 둘 다 이러한 빛깔이다'라는 색깔(色)의 지각(想)을 지닌다.  

이것이 '빛깔의 영상을 지니고서 빛깔을 본다'고 할 때의 해탈이다.

 

7. '안으로 빛깔에 대한 지각을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밖으로 빛깔을 본다'고 할 때의 해탈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어떠한 사람이 있어 내부적으로 각각의 푸른색 영상에 대해 마음을 내지 않아, 푸른색의 지각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푸른색의 영상을 마음에 엮어 푸른색의 지각을 지닌다. 그느 그 빛깔을 잘 지니고, 잘 유지하고, 잘 안주케 한다. 그는 그 영상을 잘 지니고서, 잘 유지하고서, 잘 안주케 하고서, 외부의 푸른색 영상에 대해 마음을 엮어 푸른색의 지각을 얻는다. 그는 영상을 잘 지니고, 잘 유지하고, 잘 안주케 한다. 그는 그 영상을 잘 지니고서, 잘 유지하고서, 잘 안주케 하고서,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한다. 그것은 이와 같다. '내부적으로는 빛깔을 지니지 않지만 외부적으로는 이러한 빛깔이다'라는 빛깔에 대한 지각을 지닌다. 여기에 어떠한 사람이 있어 내부적으로는 각각의 노란색 영상에 대해 ... 붉은색 영상에 대해 ... 흰색의 영상에 대해 마음을 내지 않아 하얀색의 지각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하얀색의 영상을 마음에 엮어 하얀색의 지각을 얻는다. 그것은 이와 같다. '내부적으로는 빛깔을 지니지 않지만 외부적으로는 이러한 빛깔이다'라는 빛깔에 대한 지각을 지닌다. 이것이 '안으로 빛깔에 대한 지각을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밖으로 빛깔을 본다'고 할 때의 해탈이다.

 

8. '극히 청정하다'고 할 때의 해탈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자비(慈)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의 사방 모든 곳에, 일체에,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비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문다. 자비로써 닦음을 얻은 까닭에 모든 중생들이 싫어하지 않는다. 가엾이 여김(悲)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 가엾이 여김으로써 닦음을 얻은 까닭에 모든 중생들이 싫어하지 않는다. 기뻐함(喜)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 기뻐함으로써 자비를 얻은 까닭에 모든 중생들이 싫어하지 않는다. 평정(捨)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 평정으로써 닦음을 얻은 까닭에 모든 중생들이 싫어하지 않는다. 이것이 '극히 청정하다'고 할 때의 해탈이다.

 

9-1.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空無邊處定解脫)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해 지각(色想)을 넘어섬으로 인하여,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함으로 인하여, 잡다한 지각을 마음에 내지 않음으로 인하여 끝이 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여 머문다. 이것이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識無邊處定解脫)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공무변처.空無邊處)를 넘어섬으로 인하여 끝이 없는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식무변처.無邊處)에 도달하여 머문다. 이것이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9-2. 아무것도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無所有處定解脫)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無邊處.식무변처)를 넘어섬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無所有處.무소유처)에 도달하여 머문다. 이것이 아무것도 없는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에 의한 해탈(非想非非想處定解脫)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無所有處.무소유처)를 넘어섬으로 인하여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非想非非想處.비상비비상처)에 도달하여 머문다. 이것이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선정에 의한 해탈(想受滅定解脫)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非想非非想處)를 넘어섬으로 인하여 지각과 느낌의 소멸에 도달하여 머문다. 이것이 지각과 느낌이 소멸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10-1. 일시적인 해탈(時解脫)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선정(사선정)과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네 가지 선정(사무색정)이다. 이것이 일시적인 해탈이다.
지속적인 해탈이란 무엇인가?네 가지 거룩한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지속적인 해탈이다.
시간에 따르는 해탈이란 무엇인가?네 가지 선정과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네 가지 선정이다. 이것이 시간에 따르는 해탈이다.
시간에 따르지 않는 해탈이란 무엇인가?네 가지 거룩한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시간에 따르지 않는 해탈이다.
동요됨이 있는 해탈이란 무엇인가?네 가지 선정과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네 가지 선정이다. 이것이 동요됨이 있는 해탈이다. 

10-2. 동요없는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거룩한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동요없는 해탈이다.
세간에 속한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선정과 네 가지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선정이다. 이것이 세간에 속한 해탈이다.
출세간에 속한 해탈이란 무엇인가?내 가지 네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출세간에 속한 해탈이다.
루가 있는 해탈이란 무엇인가?네 가지 선정과 네 가지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선정이다. 이것이 루가 있는 해탈이다.
루가 다한 해탈이란 무엇인가?네 가지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루가 다한 해탈이다.


11-1. 저열함을 지닌 해탈이란 무엇인가?

물질(色)에 매여 있는 해탈이다. 이것이 저열함을 지닌 해탈이다.
저열함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란 무엇인가?물질에 매여 있지 않은 해탈이다. 이것이 저열함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다.
저열함과 저열하지 않음을 넘어선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거룩한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果)와 열반이다. 이것이 저열함과 저열하지 않음을 넘어선 해탈이다.
바램을 지닌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선정과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네 가지 선정이다. 이것이 바램을 지닌 해탈이다.
바램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바램을 지니지 않은 해탈이다.


11-2. 바랩을 그친 해탈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이다 ... 지각이 있는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의 획득 혹은 이숙이다. 이것이 바램을 그친 해탈이다.
속박을 지닌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선정과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네 가지 선정이다. 이것이 속박을 지닌 해탈이다.
속박을 벗어난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속박을 벗어난 해탈이다.
하나됨을 이룬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거룩한 나아감과 네 가지 사문의 성취와 열반이다. 이것이 하나됨을 이룬 해탈이다.
분산된 해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선정과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은 네 가지 선정이다. 이것이 분산된 해탈이다.


12-1.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란 무엇인가?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되고, 열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나하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될 수 있다. 

'이 될 수 있다'라고 할 때, '될 수 있다'란 무엇인가?'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항상함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想)으로부터의 해탈이다. '고통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즐거움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방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나라는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즐거움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탐냄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일어남(集)'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취착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드러난 모습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바램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편향됨에 의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될 수 있다.


12-2.'물질적 요소(色)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항상됨의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 '물질적 요소에 대해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편향됨에 기인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 '감수 작용에 대해 ... 지각작용(想)에 대해, 형성작용(行)에 대해, 식별작용(識)에 대해, 눈(眼)에 대해 ...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편향됨에 기인한 지각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한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지각으로부터의 해탈이다. 


13-1. 지혜에 의한 해탈이란 무엇인가?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한 지혜의 해탈이 될 수 있다.
'이 될 수 있다'고 할 때, '이 될 수 있다'란 무엇인가?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열실한 지혜는 항상됨이라는 미망(迷妄)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즐거움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나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여시한 지혜는 즐거움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탐냄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일어남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취착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드러난 모습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바램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편향됨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한 지혜의 해탈이 될 수 있다. 

13-2. '물지적 요소(色)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열실한 지혜는 항상됨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 '물질적 요소에 대해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편향됨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 '감수작용(受)에 대해 ... 지각작용(想)에 대해 ...형성작용(行)에 대해 ... 식별작용(識)에 대해, 눈에 대해 ...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여실한 지혜는 편향됨이라는 미망과 무지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한 지혜에 의한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한 지혜의 해탈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지혜에 의한 해탈이다.

 

14-1.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란 무엇인가?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항상됨이라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즐거움에 의한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나라고 하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즐거워 함에 의한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탐냄이라고 하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위없는 청량한 지혜는 일어남이라고 하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취착이라고 하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드러난 모습이라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바램이라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편향됨이라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될 수 있다.  

 

14-2. '물질적 요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항상됨이라는 뜨거운 번민과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 '감수작용에 대해 ...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위 없는 청량한 지혜는 항상됨이라는 뜨거운 번뇌와 근심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한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청량함을 얻은 해탈이다.

 

15-1. 선정을 얻은 해탈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으로부터 떠남을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을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명상하면서 해탈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태워 없애면서 해탈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명상한다'는 것은 법에 대해 명상한다는 것이다. '태워 없앤다'는 것은 번뇌를 태워없앤다는 것이다. '선정과 태워없앰을 안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주) 여기에서 'jhayati(명상하다. 곰곰이 생각하다. 불에 타다)'와 'jhapeti(명상하다. 태워 없애다. 파괴하다)'는 둘 다 '명상하다'와 '타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둘은 완전히 다른 기원을 지닌 말이다. 즉 'jhayati'는 'vdhyai(곰곰이 생각하다. 명상에 잠기다)'에서 기원한 말이,  jhapeti'는 'vksai(태우다)'에서 기원한 말이다. 한편 jhapeti는 jhayati와 사역형이기도 한데, 이 경우에도 '명상하다'와 '타다'의 의미가 동시에 존재한다. 본 대목에서는 전혀 다른 어원에서 기원한 동음이어의 말을 교묘하게 접합하여 내용을 이끌어 가고 있다. 

"성내지 않음을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성냄을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명사하면서 해탈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태워 없애면서 해탈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명상한다'는 것은 법에 대해 명상한다는 것이다. '태워 없앤다'는 것은 번뇌를 태워 없앤다는 것이다. '선정과 태워없앰을 안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15-2. '빛에 대한 지각(광명상)에 대해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혼침과 졸음을 태워 없앤다'는의미에서 선정이다. '산란하지 않음에 대해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들뜸을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법에 대한 결정에 대해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의심을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지혜를 지녀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무지를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첫 번째의 서정의 상태에서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다섯 장애를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에서 명상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일체의 번뇌를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선정이다. '명상하면서 해탈한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명상한다는 것은 법을 명상한다는 것이다. '태워 없앤다'는 것은 번뇌를 태워 없앤다는 것이다. '선정과 태워 없앰을 안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이것이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16-1.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란 무엇인가?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다.

'이 될 수 있다'라고 할 때, '이 될 수 있다'란 무엇인가?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항상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해탈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즐거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즐거워 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탐냄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탐냄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일어남에 대한 지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취착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드러난 모습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바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편향됨에 의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다.  


16-2. '물질적 요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항상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 '감수작용에 대해 ...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편향됨에 의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다. 

16-2. '물질적 요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항상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 '감수작용에 대해 ...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편향됨에 의한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방법이 지닌 힘에 의한 것으로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고 열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하나의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 

17.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몇 가지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세 가지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하나의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세 가지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나의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하나의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네 가지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네 가지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세 가지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하나의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세 가지 집착(取)으로부터 해탈한다.

 

18-1.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계금취), 자신에 관련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지헤는 어떠한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 자신에 관련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네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 자신에 관련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네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네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 자신에 관련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네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18-2.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 자신에 관련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바램이 없이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어떠한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하는가?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 자신에 관련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지혜,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 공성을 따라가며 보느느 지혜의 이들  네 가지 지혜는 세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즉 삿되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 자신에 관련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지혜,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지혜의 네 가지 지혜는 하나의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으로부터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지혜의 이들 두 지혜는 네 가지 집착으로부터 해탈한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 삿된 계에 대한 집착, 자신에 관련된 말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이다. 이들이 집착하지 않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