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마하박가(mahabhagga) - 4. 근(根)에 관한 논의 - 첫 번째 품

실론섬 2014. 9. 10. 23:11

첫 번째 품

 

1.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에 세존께서는 사밧띠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 이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다섯 근(根)이 있다. 다섯 근(五根)이란 무엇인가?

믿음의 근(信根), 정진의 근(精進根), 마음새김(마음챙김)의 근(念根), 삼매의 근(定根), 혜의 근(慧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들이 다섯 근이다.'

 

2-1. 이들 다섯 근은 몇 가지의 모습(行相)에 의해 청정해지는가? 이들 다섯 근은 15가지 모습에 의해 청정해진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믿음을 지닌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의지하며, 공경하며, 믿음을 고양하는 여러 경들을 곰곰이 살필 때(觀察.관찰), 이들 세 가지 모습에 의해 믿음의 근이 청정해진다. 게으른 사람들을 멀리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의지하며, 공경하며, 네 가지 바른 노력을 곰곰이 살필 때, 이들 세 가지 모습에 의해 정진의 근이 청정해진다.

 

2-2. 부주의한 사람들을 멀리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의지하며, 공경하며, 네 가지 마음챙김의 시작점(念處)을 곰곰이 살필 때, 이들 세 가지 모습에 의해 마음챙김의 근이 청정해진다. 정(定)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멀리하고, 정을 얻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의지하며, 공경하며, 서정에 의한 해탈을 곰곰이 살필 때, 이들 세 가지 모습에 의해 삼매의 근이 청정해진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멀리하고, 혜를 지닌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의지하며, 공경하며, 심오한 지혜로운 행위를 곰곰이 살필 때, 이들 세 가지의 모습에 의해 혜의 근이 청정해진다. 이와 같은 다섯 부류의 사람들을 멀리하고, 다섯 부류의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의지하며, 공경하며, 다섯 부류의 경(經)을 곰곰이 살필 때, 이들 15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이 청정해진다.

 

3. 몇 가지의 모습으로 다섯 근을 닦으며, 몇 가지의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음이 있는가?1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을 닦으며, 10가지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음이 있다. 
믿음없음을 끊으면서 믿음의 근을 닦는다. 믿음의 근을 닦으면서 믿음없음을 끊는다.게으름을 끊으면서 정진의 근을 닦는다. 정진의 근을 닦으면서 게으름을 끊는다.부주의(방일)를 끊으면서 마음챙김의 근을 닦는다. 마음챙김의 근을 닦으면서 부주의를 끊는다.들뜸을 끊으면서 삼매의 근을 닦는다. 삼매의 근을 닦으면서 들뜸을 끊는다.무명을 끊으면서 혜의 근을 닦는다. 혜의 근을 닦으면서 무명을 끊는다.  
이와 같은 1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을 닦는다. 이와 같은 10가지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음이 있다. 
4. 몇 가지의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임(修習)이 있으며, 잘 닦임이 있는가?

10가지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임이 있으며, 잘 닦임이 있다. 믿음없음의 끊김과 잘 끊김에 기인하여 믿음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이 있다.  
믿음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에 기인하여 믿음없음의 끊김과 잘 끊김이 있다. 게으름의 끊김과 잘 끊김에 기인하여 정진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이 있다. 정진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에 기인하여 게으름의 끊김과 잘 끊김이 있다.부주의의 끊김과 잘 끊김에 기인하여 마음챙김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이 있다. 마음챙김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에 기인하여 부주의의 끊김과 잘 끊김이 있다.들뜸의 끊김과 잘 끊김에 기인하여 삼매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이 있다. 삼매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에 기인하여 들뜸의 끊김과 잘 끊김이 있다.무명의 끊김과 잘 끊김에 기인하여 혜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이 있다. 혜의 근의 닦임과 잘 닦임에 기인하여 무명의 끊김과 잘 끊김이 있다. 
이와 같은 10가지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임이 있으며, 잘 닦임이 있다. 


5. 몇 가지의 모습으로 다섯 근이 닦아지는가? 몇 가지의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임과 잘 닦임과 그침(止滅.지멸)과 완전한 그침(善止滅)이 있는가?네 가지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임이 있다. 네 가지 모습에 의한 다섯 근의 닦임과 잘 닦임과 그침과 완전한 그침이 있다.
흐름에 나아가는(豫流道.예류도) 순간 다섯 근이 닦아진다. 흐름에 들어선(豫流果.예류과) 순간 다섯 근의 닦임과 잘 닦임과 그침과 완전한 그침이 있다.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一來道.일래도) 순간 다섯 근이 닦아진다. 한번 돌아옴에 들어선(一來果.일래과) 순간 다섯 근의 닦임과 잘 닦임과 그침과 완전한 그침이 있다.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不還道.불환도) 순간 다섯 근이 닦아진다. 돌아오지 않음에 들어선(不還果.불환과) 순간 다섯 근의 닦임과 잘 닦임과 그침과 완전한 그침이 있다.아라한에 나아가는(阿羅漢道.아라한도) 순간 다섯 근이 닦아진다. 아라한에 들어선(
阿羅漢果.아라한과) 순간 다섯 근의 닦임과 잘 닦임이 있다. 그침과 완전한 그침이 있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나아감에 의한 청정이 있다. 네 가지 성취에 의한 청정이 있다. 네 가지 끊음에 의한 청정이 있다. 네 가지 그침에 의한 청정이 있다. 이들 네 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닦임과 잘 닦임과 그침과 완전한 그침이 있다. 

 

6. 어떠한 부류의 사람들이 근의 닦음을 지니는가? 어떠한 부류의 사람들이 닦인 근을 지니는가?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 근의 닦음을 지닌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닦인 근을 지닌다. 

어떠한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 근의 닦음을 지니는가? 

일곱의 배움을 지니는 이(有學)들과 보통사람, 이들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 근의 닦음을 지닌다.

어떠한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닦인 근을 지니는가?

들음으로써 깨달은 이, 즉 여래의 성문(聲聞)으로서 루(번뇌)의 다해 없어짐을 얻은 자는 닦인 근을 지닌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지닌 홀로 깨달은 이(緣覺.연각)는 닦인 근을 지닌다. 무량함의 의미를 지닌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이(正等覺.정등각)는 닦인 근을 지닌다.

이들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닦인 근을 지닌다.


7.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다섯 근이 있다. 다섯이란 무엇인가?

믿음의 근(信根), 정진의 근(精進根), 마음새김(마음챙김)의 근(念根), 삼매의 근(定根), 혜의 근(慧根)이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이들 다섯 근의 일어남(集) 사라짐(滅)과 맛(味)과 잘못됨과 벗어남(出離)을 여실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비구들이여,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 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만일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라도 이들 다섯 근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과 벗어남을 여실하게 알아차린다면, 비구들이여, 그와 같은 이들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도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도 바라문답다.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주) 여기에 등장하는 '사밧띠니다나(savatthinidanam)' 이란 사밧띠에서 본 경설이 설해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보통 즉정한 경전이 설해지기 직전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PTS 저본과 영역에서는 이 말을 제6절의 하단부에 귀속시키는 반면, 남전장에서는 제7절의 상단부에 싣고 있다. 본 텍스트 전체를 통하여 살펴 볼 때 이러한 표현이 경설의 뒷부분에 배속된 예는 없다. 따라서 여기서 나온 '사밧띠니다나'라고 하는 이 말도 또한 7절의 상단부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8-1. 몇 가지의 모습으로 다섯 근의 일어남이 있는가?

몇 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일어남을 알아차리는가?

몇 가지의 모습으로 다섯 근의 사라짐이 있는가?

몇 가지의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사라짐을 알아차리는가?

몇 가지의 모습으로 다섯 근의 맛이 있는가?

몇 가지의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맛을 알아차리는가?

몇 가지의 모습으로 다섯 근의 잘못됨이 있는가?

몇 가지의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잘못됨을 알아차리는가?

몇 가지의 모습으로 다섯 근의 벗어남이 있는가? 몇 가지의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벗어남을 알아차리는가?

 

8-2. 4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일어남이 있다. 4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일어남을 알아차린다. 4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사라짐이 있다. 4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사라짐을 알아차린다.

 

25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맛이 있다. 25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맛을 알아차린다. 25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잘못됨이 있다. 25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잘못됨을 알아차린다. 18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벗어남이 있다. 18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벗어남을 알아차린다.

 

9-1. 어떠한 4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일어남9集)이 있는가? 어떠한 4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일어남을 알아차리는가?

확신(勝解.승해)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集)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신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신의 힘에 의한 마음냄(作意)의 일어남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믿음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근(精勤)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진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9-2. 확립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마음챙김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삼매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학립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봄(見)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혜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9-3. 확신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근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립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봄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일어남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신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바램으로 일어남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바램의 일어남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9-4.  확신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일어남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믿음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믿음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정진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정진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마음챙김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삼매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삼매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혜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의 확립으로서 혜의 근의 일어남이 있다.

이와 같은 4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일어남이 있다. 이와 같은 4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일어남을 알아차린다.


10-1. 어떠한 4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사라짐(滅)이 있는가? 어떠한 4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사라짐을 알아차리는가?
확신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신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신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디. 믿음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근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진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10-2. 확립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마음챙김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삼매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봄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혜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10-3. 확신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근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립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봄을 일으키는 마음기울임의 사라짐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신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바램의 사라짐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10-4. 확신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근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확립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봄의 힘에 의한 마음냄의 사라짐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믿음의 근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믿음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정진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정진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마음챙김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삼매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삼매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혜의 근의 힘에 의한 하나됨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혜의 근의 사라짐이 있다.

이와 같은 4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사라짐이 있다. 이와 같은 4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사라짐을 알아차린다.


11-1. 어떠한 25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맛이 있는가? 

어떠한 25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맛을 알아차리는가?
믿음없음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믿음의 근의 맛이 있다. 믿음없음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믿음의 근의 맛이 있다. 확신에 의한 행위에 있어 완전한 자신(無畏.무외)으로서 믿음의 근의 맛이 있다. 고요한 거처에 이르름으로서 믿음의 근의 맛이 있다. 믿음의 근을 연(緣)하여 생기는 즐거움(樂)과 유쾌함(喜), 이것이 곧 믿음의 근의 맛이다. 게으름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정진의 근의 맛이 있다. 게으름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정진의 근의 맛이 있다. 정근의 행위에 있어 완전한 자신으로서 믿음의 근의 맛이 있다. 적정한 거처에 이르름으로서 정진의 근의 맛이 있다. 정진의 근을 연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유쾌함, 이것이 곧 정진의 근의 맛이다.   


11-2. 부주의를 가가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맛이 있다. 부주의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맛이 있다. 확립의 행위에 있어 완전한 자신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맛이 있다. 적정한 거처에 이르름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맛이 있다. 마음챙김의 근을 연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유쾌함, 이것이 곧 마음챙김의 근의 맛이다. 들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삼매의 근의 맛이 있다. 들뜸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삼매의 근의 맛이 있다. 산란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완전한 자신으로서 삼매의 근의 맛이 있다. 적정한 거처에 이르름으로서 삼매의 근의 맛이 있다. 삼매의 근을 연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유쾌함, 이것이 곧 삼매의 근의 맛이다. 무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서 혜의 근의 맛이 있다. 무명의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서 혜의 근의 맛이 있다. 견해의 행위에 있어 완전한 자신으로서 혜의 근의 맛이 있다. 적정한 거처에 이르름으로서 혜의 근의 맛이 있다. 혜의 근을 연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유쾌함, 이것이 곧 혜의 근의 맛이다. 
이와 같은 25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맛이 있다. 이와 같은 25가지 모습에 의해서 다섯 근의 맛을 알아차린다.

 

12-1. 어떠한 25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잘못됨이 있는가? 

어떠한 25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잘못됨을 알아차리는가?
믿음없을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믿음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믿음없음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믿음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상의 의미에서 믿음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괴로움의 의미에서 믿음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아의 의미에서 믿음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게으름을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정진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게으름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정진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상의 의미에서 정진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괴로움의 의미에서 정진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아의 의미에서 정진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12-2. 부주의를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마음챙김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부주의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마음챙김의 잘못됨이 있다. 무상의 의미에서 마음챙김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괴로움의 의미에서 마음챙김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아의 의미에서 마음챙김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들뜸을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삼매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들뜸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삼매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상의 의미에서 삼매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괴로움의 의미에서 삼매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아의 의미에서 삼매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명을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혜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명에 의한 뜨거운 번뇌를 가까이 하는 것으로서 혜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상의 의미에서 혜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괴로움의 의미에서 혜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무아의 의미에서 혜의 근의 잘못됨이 있다. 

이와 같은 25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잘못됨이 있다. 이와 같은 25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잘못됨을 알아차린다.

 

13-1. 어떠한 18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벗어남(出離.출리)이 있는가?

어떠한 18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벗어남을 알아차리는가?

확신의 의미를 지닌 믿음의 근은 믿음없음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믿음없음에 의한 뜨거운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더 뛰어난 믿음의 근을 얻어 이전의 믿음의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정근의 의미를 지닌 정진의 근은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게으름에 의한 뜨거운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더 뛰어난 정진의 근을 얻어 이전의 정진의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확립의 의미를 지닌 마음챙김의 근은 부주의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부주의에 의한 뜨거운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더 뛰어난 마음챙김의 근을 얻어 이전의 마음챙김의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삼매의 근은 들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들뜸에 의한 뜨거운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더 뛰어난 삼매의 근을 얻어 이전의 삼매의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봄의 의미를 지닌 혜의 근은 무명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무명에 의한 뜨거운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더 뛰어난 혜의 근을 얻어 이전의 혜의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13-2. 첫 번째 선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앞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두 번째 선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첫 벗째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세 번째 선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두 번재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네 번째 선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세 번째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공무변처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네 번째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식무변처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선정(무소유처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비상비비상처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아무것도 없는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힘에 의한 다섯 근은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13-3.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다해 없어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다해 없어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의한 다섯 근은 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탁월한 혜로써 법을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법(여실지견)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탁월한 혜로써 법을 보는 법에있어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잘못됨에 대해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돌이켜 관찰하여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잘못됨에 대해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물러나 따라가며 보는 법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돌이켜 관찰하여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예류도)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물러나 따라가며 보는 법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흐름에 들어선 경지(예류과)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일래도)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흐름에 들어선 경지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한번 돌아옴에 들어선 경지(일래과)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 경지(불환도)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한번 돌아옴에 들어선 경지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돌아오지 않음에 들어선 경지(불환과)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돌아오지 않음에 들어선 경지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아라한도)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돌아오지 않음에 들어선 경지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아라한에 들어선 경지(아라한과)의 힘에 의한 다섯 근은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에서의 다섯 근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13-5. 떠남(출리)에서의 다섯 근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성내지 않음에서의 다섯 근은 성냄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빛에 대한 지각에서의 다섯 근은 혼침과 졸음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산란하지 않음에서의 다섯 근은 들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법에 대한 결정에서의 다섯 근은 의심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지혜(智)에서의 다섯 근은 무명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환희에서의 다섯 근은 혐오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첫 번째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장애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두 번째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세 번째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기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네 번째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즐거움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想), 장애에 대한 지각, 잡다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공간에 걸림이 없음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의식에 걸림이 없음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에서의 다섯 근은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13-6.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항상함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즐거움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나(我)라는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즐거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탐냄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일어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취착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다해 없어짐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두터움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지속하는 힘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견고함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드러난 모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바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편향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법을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견고함의 집착에 의한 편향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어리석음에 의한 편향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잘못됨에 대해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집착에 의한 편향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돌이켜 관찰하여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돌이켜 관찰함이 결여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물러나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다섯 근은 매임에 의한 편향됨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13-7.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에서의 다섯 근은 견해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에서의 다섯 근은 거친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 경지에서의 다섯 근은 미세한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에서의 다섯 근은 일체의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일체의 루(번뇌)가 다한 이들에게서의 다섯 근은 여기 저기에서 벗어난 것이며, 잘 벗어난 것이며, 그침이며, 완전한 그침이다.

 

이와 같이 180가지 모습으로 다섯 근의 벗어남이 있다. 이와 같은 180가지 모습에 의해 다섯 근의 벗어남을 알아차린다.